새롭게 등장한 21세기 정신장애들

  

과학의 발달은 인간에게 편리하고 유익함을 제공해주지만 반드시 행복을 함께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니다 라는 말을 필자가 좋아하는 경구 중의 하나이다. 과학의 발달로 인간이 편안해지고 편리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복잡함도 함께 가져다 준다. 과거보다 엄청나게 세상이 복잡해지고 인간관계가 더욱 더 힘들어진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을 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과학의 발달은 정신장애의 등장과 깊은 관계가 있다(프로이트의 문명과 불만을 보라).

정신장애는 원시시대부터 존재했다. 원시시대에는 정신이 이상한 사람들을 샤만(Shama) 즉 무당이 굿으로 치유를 했다. 세계 곳곳에서 샤만이즘의 흔적들을 찾아볼 수 있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 우울증과 조울증은 존재를 했다. 이것을 제외한 정신질환은 처음으로 의학의 아버지인 히포크라테스가 히스테리아(hysteria)라는 이름으로 정신 질병으로 치료를 하게 된 것이 과학적인 정신병의 치료의 시작이었다. 히스테리아는 중세에 들어오면서 기독교의 영향으로 몸과 마음이 몸과 영혼으로 바뀌면서 귀신 이론으로 바뀌고 치료는 귀신을 쫓아내는 굿인 엑소시즘(exorcism)으로 바뀐다. 이것이 18세기에 계몽주의를 거치면서 메즈머(Mesmer)의 등장으로 귀신 이론이 히스테리아라는 정신병으로 복귀하게 되고 치료를 하는 자석치료(동물 자장, 유체 이론)로 바뀌면서 이것이 1843년에 영국의 외과 의사인 브레이드(Braid)에 의해서 최면으로 이름이 바뀌면서 히스테리아의 최면치료의 세계적인 대가인 의과대학 내과 교수인 가르코트(Charcot)가 등장했고 비엔나의 의과대학에서 레지던트를 끝내면서 프로이트가 파리에 6개월간 가르코트에게 최면학을 공부하게 된다는 것을 여러 개의 글에서 소상하게 밝힌 바 있다(프로이트에 대해서 지금까지 우리가 몰랐던 사실들 4 를 보라).

산업혁명(1760-1840) 이전에는 정신장애들이 거의 없었다. 우울증과 조울증과 히스테리아가 고작이었다. 그러나 산업혁명의 등장으로 농경사회가 산업사회로 바뀌면서 노동력의 부족으로 농민들이 대거 도시로 몰려들게 되면서 도시 곳곳에 빈민가가 등장하고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 노동자 농민 계급이 등장할 시점에서 각종 정신장애들이 함께 등장하게 된다. 이 시점을 역동적 정신의학 역사가 들은 1849(마르스크와 엥겔의 공산당 선언서와 플로레타이라 계급의 등장 시점)으로 본다(Ellenberger, 1970: 주㈜: 참고). 그 이후에 각종 새로운 정신 장애들이 등장하게 된다. 1860년경에 신경쇠약증이 그리고 강박증이 등장하고 프로이트에 의해서 불안 신경증이 등장하게 된다. 프로이트가 신경과 의사로써 최면학으로 히스테리아를 치료하다가 최면학을 포기하고 정신분석학을 창조한 것은 이 시쯤이다. 그가 1890-1900년까지 10년 동안 히스테리아 신경증, 강박 신경증, 신경쇠약 신경증 그리고 불안 신경증을 연구해서 신경증의 핵심이 어린 시절에 섹스 상처가 원인이라는 유아섹스 이론이 등장하게 된 것도 이 시쯤이다(Ernest Jones, 1953, 1955, 1957: (): 참고).

20세기에 들어 오면서 1899년에 독일의 정신과 의사인 크레펠린(Kraepelin)이 편집증을 조발성 치매로부터 분리시켰다. 그는 라이프지그(Leipzig) 의과 대학에서 신경병리학을 공부한 사람으로 프레세이그(Flechsig)의 제자(대법원 판사로써 편집증 조발성 치매를 가졌던 스케레버(Schreber)의 주치의 - 프로이트가 스케레버 판사의 회고록을 보고 1911년에 그의 편집증 조발성 치매의 정신분석 논문을 발표)이고 그리고 심리 과학을 탄생시킨 분트(Wundt)의 제자였다(2018, 7, 21, 위키피아 참고).

조발성 치매(dementia praecox)는 젊은이들이 치매 현상을 보인다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었다. 1911년에 스위스의 쥬리히에 부르고졸리 대학 정신병원의 원장이었던 유진 블루러(Eugen Bleuler)가 그의 병원에 입원한 조발성 치매 환자들을 15년 동안 연구한 것을 바탕으로 조발성 치매는 잘못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을 밝히고 정신분열증으로 이름이 바뀌게 된다. 20세기 초반에 정신분열증(우리나라에서는 2013년에 조현병으로 개칭)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1943년에 좁 홉킨즈 의과대학의 교수인 레오 케너(Leo Kanner) 11명의 이상한 어린이들(3명이 딸, 8명이 아들)이라는 제목으로 유아 자폐증(autism)이 등장하게 된다. 자폐증은 제 2 차 세계대전과 관계 있다. 1941 12월에 일본이 진주만 공격으로 미국이 공식적으로 전쟁에 가담하게 되면서 남자들이 징집으로 떠난 일자리를 여성들이 메우게 되면서 자녀 양육이 조부모 혹은 친척에게 그리고 이것이 확대 되면서 유아방, 놀이방이 등장하게 된다. 유아들이 엄마의 양육에서 벗어나면서 유아 자폐증이 등장한 것과 관계 있다. 레오 캐너는 비엔나 출신 유태인으로 미국에 이민 옴으로써 나치의 유태인 학살을 피할 수 있었다. 미국에서 최초로 정신장애들 즉 정신분열증, 조울증이 유전적인 뇌의 영향력이 아닌 환경적인 영향력인 양육 환경과 관계 있다는 이론으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을 지지한 스위스 출신의 혼 홉킨즈 의과대학의 정신과 학과장인 아돌프 메이어(Adolf Meyer)의 도움으로 케너는 존 홉킨즈 의과대학에서 소아 정신과를 창설한 사람이다. 케너는 그의 논문에서 11명의 자폐증 어린이들의 엄마의 특징이 감정이 차가운 엄마, 고학력의 지적인 엄마로, 기계적인 엄마로 이 엄마를 냉장고 엄마라는 이름을 유행시킨 장본인이다. 그는 유아 자폐증에서 특별히 열악한 양육 환경의 어려움 속(엄마와 아기 관계)에서 자폐증이 등장한다고 밝혔다.

1950년에 미국의 각 대학에서 정신장애를 연구하고 치료를 하는 전문가들이 각 장애들의 이름을 마음대로 사용하면서 용어들의 통일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1952년에 미국 전국의 유명 정신과 의사들과 정신분석학자들과 치료 심리학자들이 한 곳에 모여서 정신장애의 전문 용어를 통일하면서 정신장애들을 분류하고 특징을 모은 DSM-(미국 정신의학 학회의 정신장애의 진단과 통계 분류 지침서)이 탄생하게 된다. 이후에 10년 마다 미국의 유명한 정신과 의사들과 정신건강 전문가들의 수백 명이 모여서 DSM의 개정판을 출판하게 되었다. 1967년에 DSM-Ⅱ에서는 불안 신경증으로 이름이 소개되어 있다.

2 차 세계 대전 이후에 여성의 직장 생활의 본격화로 부부 맞벌이로 유아들이 유아방, 놀이방으로 맡겨지면서 어린 시절의 양육 과정에서 다양한 장애들이 50년 후에 새롭게 등장하게 된다. 1980년에 등장한 DSM-Ⅲ에서 불안 신경증은 불안 장애로 이름이 바뀌게 되고 여기에 공황장애, 광장공포증, 특수 공포증, 대인 공포증,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강박사고 강박행동 장애, 일반화된 불안장애 그리고 급성 스트레스 장애가 소속되면서 본격적인 새로운 정신장애들이 대거 등장하게 된다.

20세기는 이미 핵무기의 등장으로 많은 시인과 작가들이 20세기를 불안의 시대라고 정의를 했다. 1950년에 스텐포드 대학의 석좌 교수였던 놀로 메이(Rollo May, 1999: 주㈜: 참고)는 그의 저서 불안의 의미에서 실존 불안(존재의 무가치함에서 오는 불안-키에르키에골), 획일화 된 사회에서 오는 외로움의 불안(시인인 오덴(W.H. Auden)), 그리고 까뮤(Albert Camus)의 두려움의 시대, 토마스 울프(Thomas Wolfe)의 뿌리가 뽑힌 부평초, 심리학자들의 자아 존재의 불안 등으로 20세기를 불안의 시대라고 노래를 했고 프로이트의 불안 장애의 치료인 정신분석학이 유행하게 되었다.

역동적 정신의학자들은 17세기를 수학의 시대, 18세기를 물리학의 시대, 19세기를 생물학의 시대, 20세기를 심리학의 시대로 정의를 하면서 불안두려움의 시대로 이름을 붙였다(May, 1999: 주㈜: 참고).

1950년대에 하버드 의과대학을 졸업한 건드슨(Gunderson, 1987, 주㈜: 참고)이 하버드 대학 부설 멕클린(McLean Hospital) 정신병원(정신과 의사들과 심리치료 전문가들이 200명이 넘는다)에서 15년 동안 연구한 성격에 대한 분류가 1980년에 DSM-Ⅲ에서 성격장애의 분류로 채택되어지면서 12개의 성격장애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된다. 그는 그의 저서인 보드라인 환자들의 집중치료에서 21세기를 자아 장애의 시대로 명명을 했다. 성격장애, 인격장애들이 앞으로 자아 장애로 이름이 붙여지게 된 것이라고 예견을 했다.

20세기 초반에는 프로이트의 불안 장애의 치료인 정신분석학이 유행을 했다. 프로이트는 불안장애를 신경증으로 그리고 정신분열증을 정신증으로 분류를 했다. 그는 정신분석을 신경증 치료에 국한 시켰다. 정신증은 전이가 형성되지 않기 때문에 치료 불가라고 선언을 했다. 따라서 정신건강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정신장애는 크게 두 개로 나누어서 신경증정신증으로 분류를 해 왔다. 그러나 이후에 정신분석가들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을 수정 보완을 해서 다양한 정신증 환자들이 전이가 형성된다는 연구와 치료 논물들이 속속 출판되면서 정신분석이 정신증 치료로 확대되어져 갔다.

1937년에 정신과 의사이자 정신분석가인 아돌프 스턴(Adolf Stern)이 신경증 보다는 심각하고 정신증(정신분열증, 편집증, 조울증)보다는 약한 환자들을 치료하게 되면서 이전의 분류에 소속되지 않는 많은 환자들이 있다는 것을 학계에 보고하게 되었다. 그는 새로운 환자들이 신경증과 정신증 사이에 있다는 용어로써 경계선이 있는 환자의 뜻으로 경계선 장애 혹은 보드라인 장애(borderline disorder)라는 말을 사용해서 학계에 새로운 장애가 등장하게 되었다.

동시에 1938년에 프랑스의 작가이자 실존주의 철학자인 장뽈 싸르트르(Jean Paul Sartre)가 구토라는 작품에서 늘 익숙해진 대상들이 갑자기 이상하게 보이고 현기증이 나고 구토가 나오면서 내가 아닌 것처럼 느껴지고(이인증) 현실이 아닌 것으로 그리고 늘 익숙해진 주변 환경이 낯설게 느껴진다는 것을 호소한 작품에서 새로운 정신장애로 자아 장애가 등장하게 되었다. 이것은 스턴의 보드라인 장애와 싸르트르의 자아 장애는 두 개가 등장 계통은 다르지만 실제로는 한 개의 장애로써 등장하게 되었다. 자아 장애는 에릭슨에 의해서 자아 주체성 장애로, 그리고 시카고 의과대학의 정신과 교수이자 정신분석가인 코호트(Kohut)에 의해서 나르시즘 장애로 연결되어 시키고 대학과 시카고 정신분석 학교에서 자아 심리학이 탄생하게 된다. 스턴의 보드라인 장애는 성격장애 쪽으로 연결되어져서 코넬 의과대학의 정신과 교수이자 정신분석가인 컨버그(Kernberg, 1980, 주㈜:참고)에 의해서 보드라인 장애로 연구와 치료로 연결되어진다.

1980년대에 컨버그는 그의 저서인 내면의 세계와 외면의 세계에서 정신장애를 신경증과 정신증의 이원 분류를 깨고 이것을 신경증 그룹과 정신증 그룹에다 세 번째 그룹인 보드라인 그룹으로 분류를 했다. 신경증과 정신증 사이에 포함되는 모든 종류의 정신장애들을 보드라인 그룹으로 포함시켰다. 여기에서 새로운 보드라인 장애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치료자의 홈 페이지에서 21세기의 정신장애를 보라).

치료자가 36년 동안 정신의학과 심리과학을 연구하고 치료를 해 오면서 치료자는 정신분석 심리치료로 다양한 정신장애자들을 치료를 해 왔다. 치료자는 자폐증을 이론적으로 연구한 경험(자폐증 연구로 세계적인 대가인 영국의 정신분석가인 프란시스 투스틴(Frances Tustin, 1975: 주㈜:참고)은 있지만 실제 치료를 하지 않았다. 즉 자폐증을 제외한 모든 정신장애자들을 정신분석 심리 치료로 연구하고 치료해 왔다. 자폐증 어린이들(놀이 치료로 치료)은 대화 치료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치료자의 치료 영역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이 블로그 글의 제목인 21세기 새로운 정신장애로 들어가 보자. 보드라인 장애는 치료자의 홈페이지와 치료 사례에서 많이 보고 되어져 있기 때문에 새로운 낯선 용어는 아니다. 미국에서는 정신분석가들이 신경증 치료로부터 보드라인 환자의 치료로 주의 관심이 이동되면서 1980-1990년의 10년 동안 미국의 심리치료의 논문 집에서 보드라인에 대한 연구와 치료와 출판이 가장 많았던 시대라고 보고하고 있다(Gunderson, 1987), 그런데 보드라인으로 분류되어지는 것과 약간 다르게 새로운 장애를 가진 환자들이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으면서 등장하게 된 것을 보고하고자 한다. 신경정신과에서는 주로 심리검사 결과로 분류되어진 그 장애에 따른 약물 치료로써 진행되어지지 때문에 심리검사지 에 들어 있지 많은 새로운 장애들을 분류해낼 수가 없다.

치료자는 약물로 치료를 하는 것이 아니고 대화 치료로써 치료를 하기 때문에 치료를 받는 사람들을 치료해 나가면서 과거와 다른 새로운 신종의 장애들과 그들의 치료 과정의 등장을 소개하고자 한다. 2017년과 2018년에 치료자에세 치료를 받았거나 그리고 지금 치료 중에 있는 3명의 청년들 한데서 등장한 새로운 정신 장애의 등장에 대한 이야기이다.

A군은 24세로 군 복부를 끝내고 대학에 복귀한 후에 신경정신과에서 7년 동안 약물 복용으로 지탱해 왔으나 2016 12월 달에 약물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치료자의 홈 페이지를 보고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요청한 휴학한 대학생이었다. 그의 정신과 진단은 우울증이었다. 그러나 A군은 약간 우울함이 있었지만 정확한 진단은 우울증이 아니었다고 본인이 스스로 밝혔다.

B군은 25세로 군 복무 이후에 복학해서 공부를 하다가 고시를 준비하기 위해서 대학 3학년 때 휴학을 하고 2년 동안 공부를 하다가 공부가 머리에 입력이 되지 않고 도저히 승산이 없다고 생각해서 어머니에게 호소해서 2018 6월 달에 치료자에게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받게 된 청년이다. 그는 지금까지 정신과를 찾지 않았다. 왜냐하면 정신과적인 문제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C군은 27세로 2 6개월 전부터 치료자에게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받고 있는 대학 졸업반 학생으로 그 역시 과거에 정신과 의사들을 찾은 경험은 없었다. 그는 남성다움에 관계된 문제로 치료자를 찾은 사람이었다.

세 사람의 공통점은 심한 정신과적인 장애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A군은 7년 동안 약물 복용을 했지만 약물의 효과는 거의 없었다고 스스로 실토를 했다. 그는 약물을 7년 동안 복용해 오고 있지만 실제로 약물을 복용해도(아침에 5, 저녁에 4알의 약물을 7년 동안 복용) 그의 자아 작동이 40%를 넘어가지 않았다고 실토를 했다. 그가 2017 7월 달에 치료자를 찾아올 시점에서는 99%의 자아가 작동하지 않는다고 호소한 학생이었다.

이들은 대인관계에서 어려움을 가지고 있는 것은 확실하지만 그의 부모님에게 친구들에게 대인관계의 어려움들을 이야기를 한 적은 없었다. 그들이 그리고 부모들이 그것을 대인관계 문제를 가진 정신과 적인 문제로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치료자가 36년 동안 정신분석 심리치료로써 치료를 해 오면서 대인관계가 어려운 사람들이 대부분이 대인공포증으로 이름이 붙여진 것과 비교해 볼 때 위의 3 명의 청년들은 대인공포증으로 분류되어질 수 있지만 심한 경우가 아니라는 점이다. 3명 다 대학 재학생으로 아르바이트를 별 문제없이 잘 해온 사람들이었다. 심한 대인공포증을 가진 젊은이들은 아르바이트를 할 수 없다. 일자리를 구해서 일을 한다고 해도 2개월, 3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그만 두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위의 3사람은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에는 크게 문제가 없었다. 단지 A군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초반기에는 별 문제가 없었지만 계속해서 문제가 누적되어가면서 결국은 아르바이트를 중단하게 된 것이 유일했다.

동료들과 관계에서도 3 사람은 고립적이거나 외톨이는 아니었다. A군은 남자 친구보다 여자 친구들이 많다고 자랑을 했다. 그 이유를 분석해 본 결과 그는 초, , 고교 시절에 여학생들과 잘 어울리고 농담도 하고 유머적이어서 여학생들이 그를 좋아했다. 남자 친구들은 10 명 정도인데 비해서 여자 친구는 20명 정도가 된다고 했다. B군은 남자 친구들과 관계를 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는데 반해서 여자 친구와 사귀는 것이 어렵다고 호소를 했다. C군은 남자 친구들과 친밀관계가 어렵지만 일반적인 관계는 크게 어려움이 없었다. 남성다움 때문에 여성들과 친밀관계가 어렵기 때문에 치료자에게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2 6개월 째 받고 있다.

3 사람은 머리가 좋은 명석한 학생들이었다. A군은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 공부를 잘했다, 그러나 중학교 3학년 때 한 동료와 하교를 하는 도중에 이상하게 과거와 달리 그 친구와 관계가 불편하고 껄끄럽고 부자연스러워지면서 그의 문제가 표면화 되었고 그 문제에 빠져들어가면서 그는 동료들과 관계가 불편함 때문에 그의 집 인근에 신경정신과를 찾았고 불안장애 약물을 처방 받았으나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최신 대형 종합병원의 신경정신과 과장 님에게 찾아가서 호소해서 7년 동안 약물을 처방 받아서 복용해 오고 있었지만 그는 약물로서 그의 문제가 40%만 작동을 하고 나머지 60%는 자아가 작동을 하지 않는다라는 것을 고등학교 시절부터 알고 있었다고 했다.

B군은 초, 중학교 시절에는 학급에서 상위권 학생으로 공부에 신경을 많이 쓰지 않고 있다가 중학교 3학년 때 스파르타 학원의 원장님이 카이스트 출신으로 휴대폰과 음악 듣기를 금지시키고 공부 시간에 잡담을 하는 수업 방해 학생들에게 가차 없이 뺨을 갈기고 머리를 쥐어박아 처벌을 하는 공부 방식에 호감을 느껴서 집중적으로 공부를 해서 전교에서 1등을 한번 했고 반에서 1 2등을 유지하고 전교에서 20등 이내에 들어갔기 때문에 고교 시절에 공부를 잘 했던 학생이었다.

C군은 초, 중학교 시절에는 학급에서 상위권 학생으로 공부에는 신경을 쓰지 않다가 고교생이 되면서 집중적으로 전교에서 몇 등 안에 반에서 항상 1 2등으로 공부를 잘 해서 서울에 명문 대학에 진학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위의 3 사람의 공통점은 어머니가 맞벌이로 직접 양육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A군은 외할머니가 4살 때까지 양육을 했다. 5살 때 1년간은 이웃집에 아주머니에게 식사와 돌봄을 받았다고 했다. 어머니는 명문 대학을 졸업한 사람으로 회사의 잦은 해외 출장으로 고급 장난감들을 사주어서 혼자서 늘 장난감으로 놀기를 좋아했다고 토로 했다. 부모님은 A군을 순둥이 별명을 붙여주었다고 했다. 착하고 말썽을 부리지 않는 아들로 2살 아래의 여동생이 있었다. B 군은 어린 시절은 기억나지 않는데 외할머니가 양육을 하다가 엄마가 양육을 한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임신한 이모가 출산을 하면서 1년 동안 B군의 집에 같이 살면서 B군을 돌보아준 것이 기억에 남고 그 이모의 사랑을 많이 받아서 그 이모가 1년 후에 집을 떠날 때 서운했던 감정을 털어 놓았다. 6살 아래의 여동생이 있었다. C군은 출생 직후에 중년 아주머니의 돌봄을 받았으나 이후에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돌봄으로 받고 성장을 했다고 했다. 2살 아래의 여동생이 있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맞벌이로 출산 직후에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위의 3 사람을 분석 치료를 하면서 어린 시절의 발달 단계를 분석하면서 증세의 본격적인 등장은 A군은 중학교 3학년 시점이었고 이후에 7년 동안 약물로 치료를 받았고 B군은 초등학교 2학년 시점에서 컴퓨터에 빠져서 생활한 것이 특징이었으나 지금까지 정신과를 찾는 적은 없었다. 그러나 초등학교 시절에 심한 컴퓨터 때문에 눈이 좋지 않아서 도수가 높은 안경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중학교 시절부터 여드름과 곱슬 머리카락의 열등감 때문에 동료들로부터 어울리는데 힘들었다고 토로 했다. C군은 어머니와 아버지의 갈등 때문에 어머니를 동일시해서 여자 어린이들과 잘 어울리고 같이 놀다가 초등학교 4학년의 사춘기 시쯤에서 남자 어린이들과 어울리는데 어려움 때문에 남자 동료들과 갈등 때문에 힘들었던 시절을 하소연을 했다.

치료자가 위의 3 사람을 분석하면서 공통점은 유치원 시절과 초등학교 시절부터 동료들과 어울리는데 어려움을 가지고 있었지만 부모님들은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는 점이다. 특별히 위의 3 사람은 어린 시절부터 머리가 명석해서 자신들의 문제를 직시하고 있었다. 그러한 것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부모님 몰래 혼자서 고민하고 각종 다양한 심리적인 방법들을 채택을 한 것들이 분석으로 밝혀졌다.

A군은 중학교 3학년 때 친한 친구와 방과 후에 하교를 하다가 갑자기 친구와 관계가 불편해지고 껄끄러워지면서 자신의 자아를 의식하게 되었고 이 시점에서 가족들과 특별히 어머니와 관계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A군은 치료자와 약 10시간 정도 분석 치료가 진행되면서 치료자에게 자신의 심리적인 고통들을 이야기를 한 내용을 100%로 본다면 어머니에게 얼마나 자신의 고통을 이야기를 했는지?를 물어 보았을 때 어머니에게 20% 정도를 이야기를 했다고 털어 놓았다. 대신에 아버지와 관계를 물어 보았을 때 아버지와 관계는 30%로 약간 높은 것에 치료자가 놀랬다. 대부분이 자녀들이 어머니와 관계가 아버지 관계보다 좋은데 A군은 어머니와 관계가 어렵고 아버지의 관계가 약간 편하다고 털어 놓았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끊임없이 부부 싸움으로 서로 방을 갈라서 사용한지가 7년이 넘어간다고 했다.

B군은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대인관계의 어려움을 경험하고 있었다고 털어 놓았다. 이것을 컴퓨터의 게임으로 게임에 몰두해서 대인관계의 어려움을 해소시켰다고 스스로 고백을 했다. 그러나 스스로 게임 중독으로는 보지 않고 있었다. 전자 오락의 초반기 게임은 스타그래프로 한번 시작하면 4시간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 게임인데 대부분이 치료자 한데서 심리치료를 받은 학생들은 어린 시절에 스타그래프로 전자 오락을 많이 한 학생들이었다. 그러나 B군은 스타그래프는 하지 않았고 한 게임에 1시간 혹은 2시간씩 하는 바람의 나라의 게임을 많이 했는데 게임 마니(게임에서 통용되는 돈)를 많이 저축하고 아이템을 사고 파는 것을 많이 했고 지금도 가끔씩 하고 있다고 고백을 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어머니가 컴퓨터 게임을 제한했기 때문에 2시간 혹은 3시간 이상을 할 수 없었지만 방학 때가 되면 부모님의 맞벌이로 직장에 가고 없는 여름 방학과 겨울 방학에는 하루에 10시간씩 전자 오락을 했다고 고백을 했다.

 B군의 부모님 역시 부부 관계가 좋지 않아서 어머니와 아버지는 늘 부부 싸움을 많이 했다고 B군의 어머니가 치료자에게 스스로 털어 놓았다. B군의 어머니는 B군의 여동생이 중학교 2학년 때 동료들과 관계가 좋지 않아서 치료자에게 의뢰를 해서 6개월 간 치료를 받았던 관계로 B군의 어머니와는 잘 아는 사이로 중간에 한번씩 연락이 있었다. 어머니가 아들의 심리치료를 치료자에게 의뢰하게 되어 2018 6월 초순에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받게 되었다. 5년 전에 치료를 받았던 B군의 여동생은 그 이후에 잘 적응을 해서 지금은 우리나라의 최고 여성 대학에서 경영학과 3학년이라고 했다. 치료자가 B군의 어머니에게 아들의 어떤 문제 때문에 심리치료를 요청했는지?를 물어 보았을 때(자녀의 심리적인 문제를 얼마나 잘 알고 있는가?를 체크하기 위해서) 어머니는 아들이 늘 행복해 보이지 않고 불행해 보이는 것에 마음이 아파서 아들을 치료를 부탁하게 되었으니 아들을 신사로 만들어 달라고 부탁을 했다.

C군은 어린 시절에 아버지와 어머니의 부부 갈등으로 심하게 상처를 받았다고 스스로 털어 놓았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C군이 중학교 1학년 이후부터 같은 방에서 잠을 자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고 털어 놓았다. 그는 어머니가 늘 늦게 귀가 하는 아버지에 대한 비난, 비판과 분노 때문에 아버지를 미워해서 아버지를 동일시하지 않고 어머니를 동일시 했다고 털어 놓았다. 이것이 사춘기로 접어들면서 남자다움과 남성다움에서 동료들과 관계가 어려웠다고 고백을 했다.

여기에서 이 제목의 핵심인 새로운 정신장애의 등장으로 들어가 보자. 심리적인 문제를 가진 사람들은 항상 자신들의 심리적인 어려움을 직감을 하고 스스로 그 의문점을 파악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서 끊임없는 노력을 하게 된다. 즉 자아가 위기에 내 몰리면 살아남기 위해서 온갖 방법들을 동원하게 된다 즉 자아 방어가 등장하게 된다. 이 자아 방어는 살아 남는 데는 도움을 주었지만 이후에 이것이 자아의 성장에 걸림돌이 된다는 것을 본인들을 모른다는데 있다. 분석가는 분석의 과정에서 이 자아 방어를 분석해서 찾아내고 이것이 자아의 속임수임을 알고 건강한 자아의 관계 방식을 새로 배우도록 해야 한다.

A군은 자신이 대인관계에서 어려움을 감지하고 이것을 해결하지 위해서 백방으로 심리학 서적들과 정신의학 서적들을 들추어 보기 시작했다고 털어 놓았다. 특별히 처세술과 관계된 책들로부터 뽑아낸 경구들을 약 300개를 외우기 시작했다. 동료들과 관계에서 이 경구들을 사용해서 자신의 문제 해결을 시도한 것이 분석으로 밝혀졌다. 즉 동료들과 관계를 할 때 유머를 사용해서 주의 관심을 그 자신에게 집중하도록 하고 동료들의 단점들과 약점들을 피한다. 절대로 자신의 단점과 약점을 보여주지 않는다. 내가 대인관계가 잘 되지 않는다는 것을 상대 방이 알면 상대방은 나를 버리고 떠날 것이니 항상 웃음으로 유머로 분위기 메이커가 되면 인기를 회복할 수 있다고 확신을 하고 그렇게 대인관계를 했다. 효과가 좋았다. 동료들은 유머가 있다고 칭찬을 하고 분위기 메이커라고 좋아했다. 그런데 문제는 초반기의 효과는 최대 40%를 넘어가지 않았다고 고백을 했다(약물의 복용과 함께한 효과). 여기에서 항상 대인관계를 할 때 내가 잘 하고 있는가? 친구들이 나를 이상하게 보지 않는가? 친구들이 기분이 좋은가? 라는 것을 직감하는데 천재적이 되어갔다. 즉 과도하게 예민해서 항상 상대의 눈치, 비위를 맞추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는 모르고 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정상이고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하는 것처럼 그렇게 대인관계를 할 것이라고 확신을 하고 있었다. 이것이 시간이 갈수록 삐걱거리게 되었다. 여기에 어려움이 생기는 것을 직감하고 이번에는 술이 등장하게 되었다. 대학에 입학해서 첫 O.T (오리엔테이선 모임), M.T(미팅 모임)에 가지 직전에 소수 한 병을 마시고 갔다. 약간 술의 힘을 빌리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것이 늘어나서 주량이 소주 2병 정도라고 했다. 친구들과 모이면 항상 2차 혹은 3차를 가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치료자에게 40시간의 분석이 진행되면서 A군은 알코올 중독의 지름길로 가고 있음이 분석되어졌다.

결과적으로 A군은 항상 자신이 잘 하고 있는가?를 관찰하는 버릇으로 발전해서 이제는 스스로 항상 유머를 해야 하고 분위기 메이커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증적인 상황으로 발전을 했다는 것을 스스로는 모르고 있었다. 여기에서 자아의식 강박증이 등장하게 된다. 대인관계를 할 때 항상 잘 하고 있는지?의 초반기 시작 때의 자아가 등장을 해서 그 자아가 대인관계를 하고 있는 A군의 전체 자아를 관찰하고 있다는 것이다(우리는 자아가 여러 개다- 프로이트의 3 개의 자아(원초자아, 초자아, 자아(ego)와 인사이트 아웃 영화의 5개의 감정적 자아를 보라). 바로 이것은 자아 관찰이 시작되면서 긴장이 유발되고 부자연스러움과 껄끄러움이 동반되어지면서 대인관계는 파괴되어버리게 된다.

B군은 중학교 시절부터 여드름과 곱슬머리와 도수 높은 안경으로 스스로 열등감에서 여학생들과의 시선과 비난, 비판에 과도하게 예민해져서 대인관계를 피하게 되었다. B군은 자신의 대인관계의 문제가 근본적으로 신체적인 열등감에서 비롯되었다고 판단을 스스로 했다. 고로 신체적인 열등감을 해소하기 위해서 모든 에너지를 집중화 시켰다. 고교 시절에는 공부를 반에서 1, 2등을 했기 때문에 대인관계에서는 좋아진 것을 느꼈다. 친구들이 그에게 접근하고 친하게 지내내려고 다가왔기 때문에 큰 어려움을 없었다. 대입에 실패하고 1년간 재수를 하면서 대인관계의 어려움과 공부의 어려움(머리에 입력의 어려움)을 실감하게 되었다.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기념으로 라식 수술로 도수 높은 눈 문제는 해결이 되었다. 그는 외모적으로는 키도 크고 홀쭉이로 미남형이었지만 그의 자아는 자신의 신체적인 문제를 열등감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군복무 후에 대학 3학년 때 휴학을 하고 고시 준비에 들어갔다. 고시 학원에 다니면서 아침에 학원에 갈 때는 그는 매일 아침 거울 앞에서 곱슬머리를 고대 기구를 동원해서 펴고 남성 화장품을 사용해서 얼굴의 마사지를 하고 외모를 단장하고 나면 자신감이 올라가서 기분이 좋지만 저녁 때가 되면 얼굴에 땀과 화장품으로 피부의 윤기가 빠지면 우울해지고 공부에 집중이 되지 않는다고 치료 회기에서 자신의 고민을 토로 했다. 그는 매일 같이 인터넷 남성들의 전용 홈페이지인 xxx 동호회에 들어가서 어떻게 여성들과 관계를 하고 여성들에게 미력적인 남자가 되는가?의 글들을 읽으면서 그가 이성관계에서 친밀감의 형성이 어려운 것을 외형적인 신체적인 단점에서 찾고 있었다. 신체적인 단점이 해결되면 이성과의 친밀관계가 해결되어질 것이라고 확신을 하고 있다는 것을 분석으로 밝혀낼 수 있다. 그는 몇 년 전부터 코의 성형수술을 고집에서 코를 수술할 것이라고 결심을 하고 스스로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으고 있음을 고백을 했다. 외형적으로 친구들이 B군의 코를 보고 복코라고 칭찬을 해준다고 하면서도 그는 코의 양쪽 볼을 조금 줄이고 코를 약간 높이고 콧대를 바르게 하려고 작정을 하고 이미 강남에서 유명한 성형외과에 가서 컨설팅을 받고 코 수술에 들어갈 것이라고 결심을 하고 있었다. 또 한가지는 B군이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어서 명품 옷들을 사서 몇 달 입다가 그것을 다시 팔면 약 5만원 정도의 손해를 보지만 명품 옷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것을 품절로 사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되팔아서 수익을 내는 일을 오래 전부터 하고 있다고 소개를 했다. 고로 그는 수 백만 원짜리 남성 옷과 화장품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치료자가 대학생활 4년 정도의 기간에 친밀한 연인관계의 여자 친구가 있었는가? 라고 물었을 때 B군은 군복무 후에 같은 대학의 후배로써 매력 있고 인기 있는 한 후배와 서로 사랑으로 사귀다가 1달 후에 결별했다고 털어 놓았다.  여기에서 특징은 B군은 인간관계가 마음을 열고 대화를 통해서 감정을 나누는 것에 결함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C군은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대인관계의 어려움을 역시 자신의 신체적인 매력 부족 즉 남자다움의 부족에서 친구들이 그를 계집아이 라고 놀리는 바람에 열등감으로 남성다워지면 동료들 관계가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해서 자신의 신체적 결함과 다른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는데 주의 관심을 집중을 했다. 관계를 할 때 상대를 빨리 파악해서 그들의 원하는 것을 감지해서 그들에게 알맞게 맞추어주려고 노력을 하다가 보니까 인간관계가 어려워지고 힘들어져서 관계하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다고 털어 놓았다. 문제는 사람들마다 다 다르고 관계의 방식도 천차만별이어서 어떻게 그들에게 맞추어야 할지를 모르겠다고 치료의 초반기에 하소연을 했다.

위의 3명의 대학생들은 사회 생활을 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지만(대인관계 자체가 되지 않아서 두문불출하는 하끼코모리-방안에 콕 쳐 박혀서 외출을 하지 않는 사람) 대인관계를 하는데 고통으로 그리고 친밀관계의 형성이 어렵다는 점이다, 특별히 이들은 대인관계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죽을 힘을 대해서 포기하지 않고 힘겨루기를 하는 사람으로써 대인관계 그 자체가 고역으로 대도록 피하고 싶지만 죽기살기로 헤쳐나가려고 하는 사람들로써 대인관계 그 자체 직면을 하면 예민해져서 과도하게 긴장으로 신체적인 긴장도가 한계점을 넘어가면서 신체적인 어려움들을 많이 호소를 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A군은 중학교 시절부터 소화성 장애와 잦은 설사로 고통을 받고 있었다. 내과에 자주 방문을 해서 소화성 약물을 함께 복용하고 있었다. 그는 어린 시절에 늘 위와 장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체질적으로 그렇다고 이상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B군은 역시 심한 경우에는 하루에 5번 이상 화장실에 드나들면서 설사가 잦다고 했다. 특별히 음식과 관계되어 있지 않다는 것으로 그는 전날에 새벽 3시까지 잠이 들지 않는 날에는 그 다음 날에 화장실에 자주 드나들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여기에 더 붙여서 그는 틱 장애를 몇 가지 가지고 있었다. 눈 깜박이로 어머니로부터 주의를 받았고 호흡을 함께 들어 쉬는 호흡 내쉬기로 그리고 스스로 귀를 깜박거리게 하는 행동을 하는 것을 심한 불안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80%정도로 반복하고 낮은 불안 때는 20% 정도가 된다고 고백을 했다. C군은 1 6개월의 치료 과정에서 새롭게 등장한 원형 탈모증 때문에 약 10개월 동안 그것의 원인을 찾고 분석하면서 그의 지나친 신체적인 긴장의 의식이 문제의 핵심으로 그리고 자세와 운동의 방식 등의 문제점을 분석하면서 지금은 거의 회복 단계에 있다.

 문제는 위의 3 사람의 공통점이 신체적으로 과도한 긴장으로 정상인들 보다 긴장의 수준이 너무 높아서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있고 휴식 상태에 있다고 해도 즉 방학 때나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는 휴가 상태에서도 너무 높은 긴장으로 습관화되어 있어서 약간의 불안과 긴장과 스트레스가 신체적인 긴장 상황을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고 간다는 것을 밝혀냈다. 더욱 더 문제가 되는 것을 마음이 부실하다 라는 것 즉 자아가 잘 통합되어져 있지 않다는 점이다.

치료자는 위의 3 사람과 같은 사람들을 분석 치료를 하는 과정에서 얻은 경험의 일환으로 이것을 치료 기법에 도입을 해서 일반적으로 심리치료는 1시간인 40분 혹은 50분을 1회 치료 회기로 가지는데 비해서 치료자는 반드시 2시간으로 치료 회기를 사용하는 것은 바로 위와 같은 신체적 긴장을 해소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여러 번 글에서 밝혔다.

치료자와 함께 2시간 동안 분석치료를 받으면서 분석을 받는 사람은 스스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의 고민과 갈등을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서로의 공감적인 관계가 마음의 문을 열게 하면서 긴장이 방출되고 편안한 관계가 형성된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다.

치료자와 약 10시간 정도의 치료 회기를 가지게 될 때(1주일에 1 2시간이면 약 한달 정도 경과) 치료자가 그들에게 물어 보게 된다. 당신은 치료자와 2시간 분석 상담을 하는 동안에 긴장감, 불안감 그리고 불편함과 껄끄러움을 100%, 50%, 0%로 표현을 한다면 얼마 정도로 느끼고 있습니까? 라고 물어볼 때 그들은 대부분이 0%로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다고 대답을 한다. 2시간이 마치 20분 혹은 30분으로 금방 지나가버린다고 이야기를 한다. 치료자가 지금까지 물어본 사람들 중에서 최고로 많이 불편함을 느낀다고 한 사람들이 30% 정도라고 대답을 했다. 물론 시간이 더 진행되면서 그들도 불편함과 긴장이 내려 가는 것을 보고할 것이 틀림이 없다. 치료자는 그들에게 대인관계 즉 개인적인 친밀감의 수준이 지금 치료사와 치료를 받는 사람과 관계처럼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편안하게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이 대인관계의 모델임을 내가 시범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치료자가 그들에게 치료사와 그가 이야기를 하고 있는 내용의 이야기들의 특징을 이야기해 보라고 했을 때 그들의 이야기의 90%가 그들의 내면의 이야기들 즉 고민, 갈등, 어려움, 힘들었던 것, 과거의 상처들, 부모님들과 관계의 어려움과 그리고 친구들과의 갈등들이라고 대답을 한다. 치료자는 바로 다른 사람들과 관계에서 내 이야기를 하게 되면 내가 감추고 숨기고 좋게 보이려고 하지 않고 방어를 하는데 에너지가 집중화 되지 않기 때문에 긴장을 할 필요가 없어진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즉 단점을 숨기려고 하고 좋게 보이려고 하면 할수록 긴장하고 조심하고 예민해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고로 내가 숨길 것이 없다면 긴장할 필요가 없다는 생리학적인 원리를 이야기를 해주게 될 때 물론 그들이 100%가 다 치료사의 이야기를 수용하고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지금까지 단점을 숨기고 장점을 이야기한 습관들 대로 그렇게 단점을 이야기를 하면 상대방에게 약점이 잡히고 뒷담의 대상이 되어 다른 사람들에게 나의 단점들이 까발려지게 되면서 친구들이 떠나갈 것이라고 항의를 한다. 치료자는 당연하다고 인정을 하면서 단점을 숨기는 것은 과거의 상처 때문에 멸시, 조롱, 수치심, 부끄러움이 깔려 있기 때문에 그 과거의 상처들을 이야기를 해 나가면서 부끄러움과 수치심의 상처를 다루게 되면 완화되어지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대인관계에서 결정적인 의사소통과 감정 표현과 문제 해결 등이 치료 기법들이 동원되어지게 되는 것이다. 물론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은 당연하다.

치료자가 21세기의 새로운 정신장애를 보고 하는 것은 그것이 하버드 대학의 정신과 교수이자 정신분석 학자인 건드슨(Gunderson)이 말한 자아의 장애라는 것이다.

자아 장애자는 외형적으로 눈에 띄는 특별한 증세 즉 공황장애, 강박증 등은 없을 수도 있다. 겉으로 보면 멀쩡하게 보인다.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고립감, 공허감으로 가득차 있어서 외톨이가 된다. 대상에 의존하려고 하지만 애착이 자아 상실을 위협하기 때문에 자아 장애를 가진 사람을 놀라게 한다. 개인은 감정 철회, 감정적 고립으로써 자아의 불안정한 면을 보호하려고 한다. 감정적으로 의미 깊은 관계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삶이 무의미하고 목적 의식이 없음을 느낀다. 속을 털어 놓는 친밀한 친구가 없다, 수줍어하고 괴팍하다. 이런 성격이 사회 활동을 위축시킨다. 사회성이 있는 것 같이 보이지만, 관계를 하고 있는 것 같이 보이지만, 역할을 하고 있지만은 충분한 관계를 하고 있지 않다. 피상적인 관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자아 장애가 어느 한쪽 면을 우세하게 보이게 되면 분류되어진 각종 성격장애자가 된다.

보드라인으로 정신분석 치료가 옮겨지면서 이제는 신경증 치료보다 자아 장애의 환자들이 기하 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나라 부모님들은 이러한 심리적인 문제들에 대해서 너무나 잘 모르고 있기 때문에 자녀들이 이러한 것을 호소를 해도 계속해서 치료의 지원을 해주지 않고 최대로 6개월 치료를 받고 나면 치료를 지속하도록 지원을 해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치료자가 자아 문제를 다루게 되면 시간이 걸리고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할 수 있다고 설명을 재 주지만 부모님은 자녀가 한 사람 뿐이 아니고 다른 자녀도 있기 때문에 한 자녀 한데서만 계속 지원을 해 줄 수 없다고 하는 부모님들이 많다. 그래도 치료자 한데 와서 자녀의 문제들을 듣고 이해를 하려고 하는데 비해서 다른 부모님들은 아예 치료자의 면담 요구에 거부로 회복된 것이 눈에 띄지 않는다고 자녀가 치료를 호소하는데도 치료 비용을 지원해주지 않아서 치료를 6개월로 끝나는 안타까움을 보면서 가슴 아픈 이야기를 더 붙이고자 한다.

A군은 6개월 치료 계약에서 1주일에 2회로 4시간씩 치료를 받아서 48시간을 지나가면서 스스로 1%의 자아 작동이 80%의 자아 작동으로 회복을 할 수 있었다. 나머지 20%의 회복을 위해서 다시 6개월의 치료 계약을 하고 싶다고 호소를 했지만 부모님을 그의 호소를 일축하게 되자 스스로 아르바이트를 해서 치료를 받아서 나머지 20%회복 하겠다고 치료를 종결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B군인 이제 20시간 정도의 치료를 통과하고 있고 C군은 2 6개월의 치료 과정을 거치면서 정상이 눈앞에 보인다고 기뻐하고 있다.

이제 정리를 해 보자, 선진국에서는 이미 21세기로 접어들면서 신경증 치료에서 보드라인 장애로 이동을 했다. 다양한 증세 신경증의 치료에서 대인관계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인격과 성격장애로 정신분석가들의 치료의 초점이 옮겨졌다는 것은 이미 치료자의 많은 글에서 밝힌다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이제 TV와 신문 등의 언론 매체들의 덕분에 우울증에 대한 이해는 많이 개선되었다. 여기에 최근에 공황장애가 대서 특필로 보도된 것에서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지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인격장애, 성격장애 등에는 약물이 잘 듣지 않는다는 점에서 신경정신과 의사들로부터 냉대를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치료자는 36년 동안 다양한 정신장애들을 치료를 해 오면서 특별히 최근에 새롭게 보드라인 장애로부터 벗어나는 자아 장애자들을 자주 보게 된다. 보드라인이 심한 경우에는 전혀 대인관계가 되지 않아서 직장생활과 결혼 생활을 할 수 없는 심각한 장애들은 눈에 잘 띄는데 위와 같은 자아 장애는 과도한 긴장과 예민함으로 그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고 시도하는 과정에서 전체 마음의 에너지가 3분의 2가 그 증세들에 흡수당해서 실제 현실에서 다른 일을 추진해 나가는데 주의 집중력이 낮아져서 일의 능률이 오르지 않게 된다. 이러한 자아 장애는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것으로 생각 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를 가진 본인이나 가족들이 세심하게 주의와 관심을 가지고 스스로 치료를 받지 않으면 삶에서 고통을 평생 동안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경고하면서 다음과 같은 어려움에 잘 주목해주기 바란다.

1)  과거에 한 때(, , 고시절) 능력을 인정을 받았으나 지금은 정체되어 자신의 능력이 발휘가 되지 않는다고 느껴지는 사람

2)  공부 혹은 일을 하는데 죽기살기로 하고 있는 사람들

3)  숙면이 어렵고 항상 피곤해서 에너지가 고갈됨을 느끼는 사람들

4)  신체적인 고통을 달고 다니는 사람 틱 장애들(다양한), 원형 탈모증, 천식, 비염, 요통, 두통, 소화성 장애, 아토피 등의 사소한 질병들 중에 1 개 혹은 2개를 가지고 있는 사람

5)  대인관계 즉 연인 관계와 친밀한 관계에서 갈등이나 단절이 심한 사람

위와 같은 사람들은 한번쯤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생각해 보라고 권유하고 싶다. 일찍이 니체는 인간의 삶 중에서 가장 귀중한 보물은 자신의 자아를 찾는 것이고 자아를 찾는 것은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이야기를 했다. 프로이트는 생전에 7번이나 이태리를 여행을 했다. 그는 그리스의 델피의 아폴로 신전에 새겨져 있는 유명한 글귀인 너 자신을 알아라라고 한 글귀를 암송하기를 좋아했다.

 우리가 살아 가면서 자신의 자아에 투자를 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투자라는 말로써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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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참고: 헨리 엘렌버그(Henri Ellenberger, 1970). 무의식의 발견: 역동적 정신의학의 진화와 역사

          : 어네스트 존(Ernest Jones)의 프로이트의 삶과 업적 제 Ⅰ 권(1953), 제 Ⅱ 권(1955), 제 Ⅲ권(1957)

         : 롤로 메이(Rollo May, 1999). 불안의 시대

         : 프란시스 투스틴(Frances Tustin)의 자폐증과 어린 시절의 정신증(19072), 신경증환자들 안에서 자폐증적인 장애물(1986)

         : 존 건드슨(John G. Gunderson)의 보드라인 환자들의 치료 사례 집(1987), 보드라인 환자를 위한 집중적 심리치료(1987), 보드라인 성격장애(1984), 보드라인 환자: 치료 안내서(2001)

         : 오토 컨버그(Otto Kernberg)의 내면의 세계와 외부의 세계(1987), 대상관계 이론과 임상적 정신분석(1976), 보드라인 환자와 병적인 나르시즘(1975), 보드라인 환자의 치료 제한을 확대(2000), 보드라인 환자를 위한 전이 중심 심리치료(2001), 보드라인 환자에 대한 심리역동적 치료(1978), 성격장애 안에서 공격과 변태성욕(1992)

위의 저서 들은 치료자가 우리나라 말로써 번역되어 소장하고 있으니 치료자의 전문서적 안내의 홈 페이지에 들어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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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치료 사례는 B군는 치료자의 홈페이지에서 K군으로 소개되어져 있다.

카우치에 누워서 정신분석 치료를 받고 있는 사람과 분석가

대상: 고시 2년 차로 집중이 되지 않음을 호소하는 25세의 K

증세: 외모 열등감과 인간 관계의 어려움으로 혼자서 투쟁

진단: 외모 콤플렉스, 자아 장애

연결: 5년 전에 중학교 2학년 딸의 치료를 받도록 도와주었던 어머니가 아들이 늘 행복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치료자에게 아들의 치료를 호소하게 되었음

치료 기간: 아래의 치료 회기는 6개월 치료 계약 이후 제 1 2시간의 치료 결과를 요약한 것임

치료 결과: K군은 현재 xx 고시에 2년째 준비 중이었고 지난 주일에 시험을 끝내고 어머니의 소개로 치료자를 찾아오게 되었음. 대인관계의 어려움을 외모 탓으로 얼굴 성형 수술을 준비하고 있다고 털어 놓았음. 근본적인 문제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시작된 인간관계가 껄끄럽고 어려움을 느껴서 관계가 어려움을 분석으로 드러나게 되었음

 

치료의 과정  

 이번 주일 첫 치료 회기에서 K군은 오후 5-7시에 치료 시간 약속을 했다. 첫날 초행이어서 5 30분에 도착을 했다. 치료자는 7시가 치료 마감인데 뒤에 치료를 받는 손님이 없기 때문에 7 30분까지 해도 되겠느냐?라는 질문에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을 하고 치료를 시작을 했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 보라고 했을 때 K군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자신은 아침에 일어나서 컨디션 조절이 좋으면 어느정도 잘 해 나가는데 컨디션 조절이 잘 안 되면 우울해지고 불안해지게되며 특별히 오후가 되면 심하게 에너지 고갈과 피곤해지고 심하면 일을 제대로 하기 어렵다고 호소했다. 언제부터 그렇게 되었느냐?라고 물었을 때 어린 시절부터 그렇게 되었다고 했다.

 지금 현재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물었을 때 K군은 지금은 대학 3학년에 재학 중에 1년 전에 휴학계를 제출해서 휴학 중이고 xx 고시를 2년 째 준비하고 있는데 지난 주일에 시험이 끝나고 이번 주일에 어머니와 의논해서 치료자에게 오게 되었다고 했다. xx 고시가 어떤 시험인지 물어 보았을 때 사법, 행정 고시가 아니고 xx 고시라고 했다. 시험 과목은 4 과목이라고 했다.

  시험은 2년전부터 준비를 해 오다가 xx 고시의 전문 학원이 가까운 곳에서 고시원에서 방을 얻어서 1년 동안 열심히 공부를 했는데 시험에 자신도 없어지고 머리에 집중이 어려웠다고 털어 놓았다. 치료자는  K군이 고시 공부를 하면서 머리 속에 어떤 생각들이 들어 오는지? 공부의 집중 정도를 간섭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분석하면서 K군이 얼굴 즉 외모 콤플렉스가 있다는 것을 밝혀낼 수 있었다.

 스스로 외모 콤플렉스라고 밝힌 K군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를 물어 보았을 때 중학교 시절부터 시작된 것 같다고 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크게 어려움은 없었진 그 시점에서는 수학만 시험을 쳤기 때문에 수학은 성적이 좋았는데 반에서 몇등을 했기 때문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고 했다.

 중학교 시절에는 공부에 신경을 쓰지 않았으나 40명 정원에서 14등정도로 유지해 오다가 중학교 3학년 시점에서 공부를 시작하면서 고교 시절에는 스파르타 학원에서 공부를 하면서 원장 선생님이 학생들이 말을 듣지 않으면 뺨을 때리고 군대식으로 공부를시키는 것에서 통쾌함을 느껴다고 했다. 그 원장 선생님의 다그침 덕분에 반에서 1 2등을 유지했고 전교 6등까지 올라가서 고등학교 3년은 공부를 잘 했기 때문에 학생들이 K군의 주변으로 몰려들고 그에게 관심과 흥미를 보여주여서 스스로 결국은 어떤 장점을 가지고 있어야 동료들에게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했다.

 대학에서 전공을 xxx 학과로써 재수를 해서 대학에 들어갔다고 했다. 1학년을 끝내고 2학년 시작 때 군에 입대해서 2년 복무를 하고 2학년에 복학을 해서 1년 후에 고시 공부를 시작하면서 작년에 휴학계를 내고 대학은 휴학중이라고 했다.

 대학에 입학 하면서 외모 콤플렉스에 집중해서 얼굴에 화장도 하고 특별히 곱쓸머리 때문에 놀림을 받았던 것을 미장원에 자주 드나들면서 머리를 손질하고 최근에는 고대기를 사서 집에서 머리카락을 손질하면서 화장품과 화장을 많이 신경쓴다고 했다. 중학교 시절에 심한 난시 때문에 눈이 좋지 않아서 도수 높은 두꺼운 안경을 쓰도 다니다가 대학에 들어와서 어머니에게 졸라서 라식 수술을 받아서 안경을 쓰지 않게 되었다고 했다.

 K군은 키도 크고(스스로 180Cm)고 외모도 핸섬해 보여서 미남자로 보였지만 정작 K군 자신은 키도 많이 크지도 않고 얼굴도 잘 생기지 않다고 열굴 열등감 때문에 조만간에 엄마에게 부탁을 해서 코를 높이고 얼굴 성형 수술을 받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지난 주일에 시험이 끝났기 때문에 이제 특별한 일이 없어서 피부 성형외과에 가서 코를 약간 높일 예정이라고 했다.

 다시 중학교 시절의 외모 콤플렉스로 되돌아갔다. 어떻게 중학교 시절에 힘이 들었는지?를 이야기를 해 보라고 했을 때 K군은 중학교 시절에 여드름, 도수 높은 안경, 그리고 심한 곱쓸머리로 친구들에게 별명으로 여드름쟁애, 곱쓸머리 등으로 얼굴에 대한 별명으로 놀리면 주죽이 들어서 한마디로 하지 못했다고 실토를 했다.

 그런데 K군이 학교에 오게 되면 아침에 거울을 쳐다 보면서 내 눈, 곱쓸머니를 쳐다보고 기분이 좋지 않아서 심하게 열등감에 사로집히면 학교에 와서 얼굴 외모에 대한 생각 때문에 하루 종일 공부 시간에 머리에 선생님의 가르침이 들어오지 않고 얼굴에만 신경을 썼다고 토로 했다. 치료자가 몇 % 정도로 머리 속에서 얼굴 열등감에 사로잡혔는지?를 물어 보았을 때 아주 심한 경우에는 거의 100%정도라고 했다.보통은 약 80%가 얼굴 생각 때문에 머리에 공부가 들어 오지 않았다고 했다.

 기분이 약간 좋을 때는 약 20% 혹은 30%의 생각이 얼굴 열등감으로 차지 했는데 이것이 주로 아침에 기분이 좋으면 비율이 많이 낮아진다고 했다. 치료자가 전체 퍼센트를 100%, 중간을 50%, 최저를 0%로 계산하면 중, , 대학 시절에 외모 콤플렉스가 전체 생활에서 몇 %를 차지 했느냐?라는 질문에 30% 정도가 된다고 했다.

 다시 여자 친구들과 관계의 문제로 돌아가서 사춘기가 시작되는 중학교 시절에는 남녀 공학으로 알고 있는데 여자 친구와 사귄 적이 있는지? 물어 보았을 때 K군은 학급에서 남자와 여자가 같이 한번에 섞여서 생활했는데 서로 친하게 좋아하면서 사귄 것은 없으나 큰 어려움은 없었는데 중학교 시절에 학원에서 좀 튀는 여학생들이 뒤에서 앉아서 수군수군 거리는 것에 대해서 자신의 흉을 보거나 자신의 외모 콤플렉스에 비난, 비웃음, 냉소 등에 신경이 쓰이게 되면서 계속 뒤에 여학생들의 수다에 신경을 쓰다가 어느 날에 자신의 한 쪽 귀를 실룩실룩하게 되는 것을 발견했다고 했다. 그리고 이어서 다른 한쪽 귀는 한 개로써는 실룩거리는 것을 마음대로 조절이 안되는데 두 개의 귀를 다 실룩실룩하게 만드는 것을 발견했다고 털어 놓았다. 치료실에서 치료자에게 그의 귀를 언제든지 안면 근육신경을 조절해서 실룩실룩하게 만드는 것을 보어주었다.

 언제부터 그렇게 컨트롤하게 되었는지? 물어 보았을 때 중학교 2학년 시점에서 학원에서 잘 나가는 여학생들에게 뒤담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신경을 쓰다 보니까 그렇게 되었다고 했다. 고교 시절에는 남녀 공학이었으나 서로 완전히 분리되어 공부를 했기 대문에 1층은 여학생, 2 층은 남학생으로 구분되어져서 서로 떨어져 지냈기 때문에 사귄 여학생은 없었다고 했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이성관계 혹은 여자 친구를 사귄 것을 물어 보았을 때 K군은 대학 때 한 여학생과 1.5개월을 사귀다가 헤어졌다고 했다. 소상하게 이야기를 해 보라고 했을 때 K군은 군복무 후에 인물과 스펙이 좋은 2살 아래의 후배와 사귀다가 헤어졌다고 했다. 그녀에 대해서 아는데로 이야기를 해 보라고 했을 때 K군은 그녀는 2년 동안 캐나다에 이민을 갔다고 되돌아 온 학생으로 너무 좌파적이고 비판적인 사고 방식으로 그리고 그녀가 K군이 잘 알고 있는 동료로써 강남에 살고 있는 남학생으로 플레이보이 기질이 있는 학생인데 그와 조금 사귀다가 헤어진 것을 알고 그녀에게 접근해서 서로 좋아한다고 고백을 하고 1.5개월간 만나게 되면 계속 싸우는 바람에 그녀가 동료들 앞에서 헤어지자는 공포로 그녀와 헤어지게 되었다고 고백을 했다.

 치료자는 K군에게 대인관계 즉 친구들과 사귀는 것에서 어려움을 느껴보지 못했는가?라는 질문에 K군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대인관계가 껄끄럽고 불편해서 힘들었다고 실토를 했다.

 치료자는 근본적인 문제는 어떻게 대인관계를 해야 하느냐?가 문제인데 이것을 외모 콤플렉스 때문으로 돌이고 얼굴과 신체적인 열등감 때문에 친구들이 자신에게 접근하지 않는다? 친구들이 K군을 피하고 인간 관계가 되지 않는다고 자아 방어를 한 것을 분석으로 밝혀낼 수 있었다.

 다음 주일에는 월요일 2-4시로 시간예약을 하고 K군은 첫 치료 회기를 끝낼 수 있었다.

 K군의 어머니가 치료 후에 즉각 전화를 걸어와서 아들 K군에 대한 치료 상담을 소상하게 물어 보았을 때 치료자가 어머니는 아들 K군에 대해서 어떤 점이 어려움을 가지고 있는지? 물어 보았을 때 어머니는 남편과 갈등 때문에 대화가 별로 없었고 K군이 중학교 시절에 고민과 열등감에 대해서 내면적인 K군의 심리에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어머니는 K군이 치료를 받기 위해서 출발했을 때 치료자에게 신사로 만들어달라고 부탁을 했다.

 저녁에 전화 통화에서 K군의 어머니는 아들이 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고 불행해보였다고 고백을 했다. 그것이 아들의 문제였는데 치료자가 근본적인 문제는 대인관계의 어려움인데 아드님은 외모 콤플렉스로 자신의 얼굴 가꾸기에 에너지를 집중하고 있다고 분석을 이야기를 했을 때 어머니는 아들이 코 성형 수술을 받겠다고 졸라대면서 어머니를 닥달하고 있다고 고통스럽다고 호소를 했다.

 다음의 홈 페이지에서는 K군이 초, 중학교 시절에 게임에 빠졌다는 것과 게임에 빠진 근본적인 동기는 외로움과 슬픔이라고 털어 놓았다. 가장 행복한 시절은 K군이 반에서 1 2 등 그리고 전교에서 20등 이내에 공부를 잘 했던 시절이 아니고, 중학교 시절에 친구들과 잘 지냈고 그리고 반 여학생들과 큰 어려움이없었던 중학교 시절이라는말에 치료자가 K군의 핵심인 친밀관계에서 시작되어 게임, 고시 공부 실패, 그리고 외모에 집중적인 열등감으로 확대된 것을 다루고 있다. 다음의 홈 페이지에 들어가 보세요.

https://blog.naver.com/psychclinic/221323880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