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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하늘보다도 넓다

뇌는 3 파운드밖에 안 되지만

뇌 세포의 수는 우주의 별보다도 많다

-노벨 생리학상 수상자  -제랄드 에델만-(Gerald Edelman)

 인간의 마음은 신비하다. 우리가 편리하게 사용하고 있는 고속철도(KTX), 컴퓨터, 비행기, 자동차 등 모든 문명의 산물들이 바로 사람의 머리 속에서 나온 아이디어의 산물이 아닌가? 그래서 교육학자들은 창의성을 강조한다. 새로운 편리한 물건들을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있는 것들이 다 사람의 마음 속에서 나온 산물들이 아닌가? 사람의 상상력이 수 많은 발명품들을 만들어낸 것이 아닌가? 자연히 이 창의적 상상력의 근원이 인간의 뇌가 된다. 신경 과학자들은 인간의 뇌를 우주에서 가장 신비로운 것 중의 하나로 보고 있다.

 뇌는 최근에 신경 과학자들에 의해서 그 신비의 배일이 많이 볏겨져가고 있다. 인간의 출생 시에 1000억개의 뇌 신경 세포를 가지고 태어나며 그 중에 300억 개가 대뇌(큰 골)에 집중되어 있고 신경 세포는 실처럼 일직선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신경세포와 신경 세포를 연결하고 있는 신경 연접이 있다. 신경 세포는 전기 화학적 방법으로 정보를 전달한다. 정보는 이 신경 연접이라는 징검다리를 통과해야 하는데 이 때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화학물질이 나오는데 이것을 신경 전달 물질(neurotransmitter)이라고 부른다. 이 신경 전달 물질이 다음 세포에 정보를 배달해주어서 정보가 전달이 되는 것이다(Edelman, 2002).

 지금까지 밝혀진 신경 전달 물질은 9가지 정도가 된다. 왼쪽 뇌와 오른쪽의 뇌는 뇌엽으로 서로 연결이 되어있는데 이 뇌엽을 정보가 통과하게 된다. 서로 정보를 주고 받는다. 좌뇌와 우뇌는 서로 정보를 교환한다. 뇌끼리 정보를 나누는 것이다. 이 뇌엽은 2억개의 신경 섬유 조직으로 이루어져 있음이 최근에 밝혀졌다. 출생 후에 약 몇 개월 사이에 뇌의 신경 세포 수가 빅뱅 현상으로 대 폭발을 하는데 24시간 360도에서 자극을 받아서 분열을 하게 된다. 시신경의 한 개의 세포가 2500개에서 18000개로 7배가 늘어났다. 이것을 전체 인체의 신경 세포를 고려하면 대 폭발에 비유가 된다. 고로 아기가 4살 때까지 신경 세포의 수는 어른의 신경 세포의 수보다 4배나 많다는 것이 최근에 밝혀졌다. 신경 세포를 사용하지 않으면 인체가 스스로 정보 교환에 방해가 되는 너무 많은 불필요한 신경 세포들을 없애기 위해서 가지치기를 하는데 이것을 "신경 세포의 가지치기"라고 부른다. 사용하지 않은 신경 세포를 죽여 버리는 것이다. 어린 시절에 이 가지치기로 신경 세포가 사라지는 것이 하루에 200만개 정도 되고 사춘기 이후에는 하루에 20만개 정도가 된다고 한다. 뇌의 신경 연접수를 계산하면 약 1000조개로 이것을 1초 동안에 한 개씩 계산하면 3천2백만년이 걸린다고 한다. 비록 인간의 뇌가 3파운드밖에 안되지만 우주의 별을 다 합친 것보다 그 수가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뇌가 신비롭다고 신경 과학자들은 입을 모은다(Edelman, 2002).

 마음은 뇌의 부산물인가? 아니면 뇌의 활동이 마음의 지배를 받는가? 하는 문제는 지금까지 학자들의 논쟁의 대상이 되어 왔다. 이 논쟁은 그리스 시대부터 시작된 논쟁이었다. 그리스의 철학자인 아리스토델레스는 몸과 마음이 하나로 된 것으로 분리될 수 없는 것으로 보았다. 대신에 데카르트는 몸과 마음을 분리 시켜 몸은 기계에 비유를 하고 마음은 고무 호스처럼 신경조직을 타고 몸으로 흘러다닌다고 보았다. 이 논쟁은 이후에 생리학자들과 심리학자들의 논쟁으로 발전해 왔다(Edelman, 2002).

 신경 생리학자들은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으로 존재를 인정할 수 없기 때문에 뇌의 활동 자체가 마음으로 보았다. 대신에 심리학자들은 마음이 뇌의 활동을 컨트롤하는 주인으로 마음이 엄연히 존재한다고 믿어왔다. 이러한 논쟁은 20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해결의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1950년대부터 발달하기 시작한 컴퓨터의 도움으로 사람의 뇌를 직접 쪼개어보지 않고도 뇌의 활동을 감지할 수 있는 기재들이 등장하게 되면서 인간의 머리에 62개의 바턴을 붙인 후에 뇌의 활동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고 컴퓨터 단층 촬영 기법인 CT 촬영으로 또 자기 공명 영상 장치인 MRI와 양전자 단층 촬영 기법인 PET 등이 뇌의 활동을 사진으로 찍을 수 있게 되면서 심리학과 생리학 사이에 연결 고리가 생기게 된 것이다(Edelman, 2002).

 뇌에 대한 연구가 급진전하게 된 것은 1960년대에 미국 켈리포니아 주립대학 버클리(켈리포니아주 버컬리 주립대학)에서 신경생리학 연구소의 연구진들에 의해서 발표된 일련의 연구 논문에서였다. 이 논문은 쥐들을 좋은 환경에서 양육한 쥐와 나쁜 환경에서 양육한 쥐의 뇌 신경 세포 수를 비교한 결과 장난감이 많이 있고 넓은 좋은 환경에서 좋은 음식을 먹고 자란 쥐가 나쁜 환경에서 자란 쥐보다 신경 세포 수가 20%나 많았다는 발표였다. 이전까지는 뇌 신경조직은 출생 후에 별로 변함이 없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이 연구 발표가 신경생리학자들의 관심을 끌었고 이후부터 인간의 뇌 신경 조직에 대한 연구가 박차를 받게 되었다(Edelman, 2002).

 인간의 지능 역시 태반의 자궁의 환경에 영향을 받으며 인간의 지능 역시 좋은 환경에서 자란 사람이 열악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보다 약 20%가 더 많았다는 연구보고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에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은 침팬지들의 뇌 세포가 축소 되어 있었고 아예 신경연접이 쪼그라들어 있었다는 연구들이 나오게 되었다. 1990년대부터 신경생리학은 생리학에서 독립된 학문으로 성장하여 이제 신경생리학으로 부르지 않고 신경 과학(neuroscience)으로 신경생리학자들은 신경 과학자로 불리우게 되었다(Edelman, 2002).

 뇌의 활동을 의식(consciousness)으로 보고 이것을 연구하기 시작한 최초의 과학자가 미국의 심리학의 아버지인 윌리엄 제임즈(William James)이다. 그는 뇌 속에 기억이 다시 회상으로 기억이 재생된 것을 의식으로 보았고 의식은 정지된 것이 아니고 흐름으로 보았다. 인간의 경험인 의식은 지속적이면서 다양한 변화에 적응하는 것에 대한 모순을 풀려고 평생동안 노력을 했으나 그 수수께끼의 매듭을 풀지 못했다. 즉 인간의 경험이 통합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인간성으로 사람의 인간성은 별로 변화지 않는다 본다. 즉 그 사람의 됨됨이인 성격은 언제나 그 사람의 특징을 나타내는 것으로 별로 변함이 없다. 반면에 인간은 계속해서 경험을 하게 됨으로 그 경험으로 인간이 변화되지 않으면 성장과 발달이 없다. 이 모순을 해결하지 못한 것이었다(Edelman, 2002).

 이 문제를 해결한 사람이 1970년대에 뇌 신경 세포의 다윈니즘(neural Darwinism) 즉 뇌 신경 세포 그룹의 적자생존 이론을 발표한 제랄드 에델드(Edeman, 2001)이다. 그는 신경 생리학으로 노벨상을 수상한 학자로써 신경 세포도 적자생존으로 진화를 거치면서 발전해왔음을 주장하게 되었다.

 인간의 뇌는 컴퓨터와 다르다. 컴퓨터는 주어진 회로만 선택하는데 인간의 뇌의 경험은 수 많은 경험의 분류 속에서 선택되어지는 것이다. 인간의 뇌는 구조상으로 한 순간에 한가지만 주의 집중을 하게 되어 있고 우리는 수많은 경험 중에서 가장 적합한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한다. 고로 그 수많은 경험 속에서 가장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어지는 것이 선택되게 된다. 이것이 기억의 적자생존이다(Edelman, 2002).

 여러 가치 중에서 가장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어지는 것을 선택하는 것은 바로 그 사람의 과거의 경험에 달려 있다. 인간의 경험은 뇌 속에 기억으로 저장이 되는데 이것을 선택하고 판단하는 것이 바로 자아이다. 즉 경험을 다루는 것이 자아이고 이 자아는 시간이 지나도 별로 변함이 없다. 그러나 계속해서 경험되는 것을 기억 속에 연결 시켜서 기억의 분류로 나누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어서 지속적인 경험이 저장이 되어지면서도 자아의 중심은 별로 변화되지 않는다는 것을 밝혀낸 것이다(Edelman, 2002).

 이것은 헤겔의 변증법의 원리를 바탕에 깔고 있다. 인간의 자아 주체성은 별로 변화되지 않는 것과 지속적으로 쌓이는 경험은 서로 반대로 모순이 된다. 이 모순은 반대가 아니고 서로 보완적으로 정(正)과 반(反)이 합(合)으로 하나로 통합이 되는 것이다. 이 모순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동전의 앞면과 뒷면은 서로 반대가 된다. 그러나 하나이다. 어느 한 개만으로는 존재할 수가 없다. 앞이 없이는 뒤가 없고 뒤가 없으면 앞이 없다.

 에델만의 뇌의 적자생존 이론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이론과 일치점이 많다. 프로이트는 어린 시절의 경험을 중요시 했고 어린 시절에 형성된 성격이 어른의 생활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았다. 환자의 치료에서 어린 시절에 부모와 관계가 치료자나 친밀관계를 하는 사람들에게 자신도 모르게 재 반복된다고 보았고 이것을 찾아내는 것을 전이 분석이라고 부른다. 정신분석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전이 분석이다. 자아는 존재하며 이 자아가 바로 이후에 에릭슨의 자아 주체성 이론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에델만은 인간의 기억은 저장이되지만 과거에 저장된 기억은 재생이 될 때 과거의 기억이 그대로 재생되는 것이 아니고 최근의 경험에 영향을 받아서 변화된다는 것을 밝혔다. 인간의 기억은 과거의 경험이 다시 재생되지만 항상 새로운 경험이 첨부된다. 고로 기억되어진 경험은 새로운 창조물이라고 주장한다. 이 이론도 프로이트의 이론가 일치 한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2.5세 때의 기억을 5세 때 한 기억과 사춘기 때 회상한 기억이 많이 달라 있음을 발견했고 기억은 자신의 상상에 영향을 받는 것으로 발표했다. 상상력이 기억을 왜곡시키는 것을 찾아내어서 이것을 바로잡아 주는 것이 정신분석 치료이다(Edelman, 2002).

 21세기는 마음이 뇌의 활동의 부산물이냐?, 뇌를 움직이는 주인이 마음이냐?라는 논쟁은 종지부를 찍을 것이다. 논쟁의 의미가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 한쪽이 100% 설명을 할 수 있다면 다른 쪽의 이론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서로 보완적이고 서로가 다른 쪽의 주장이 없으면 존재 가치가 없는 것이다. 이제 어느 쪽으로 설명을 하든지 간에 인간의 마음을 설명하는데 문제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