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톤의 물리학이 정신분석에?

 

정신분석학은 프로이트의 상상으로 만든 소설로써 실험으로 증명되어질 수 없는 학문으로 비과학적(프로이트의 비판가들이 혹평)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사실은 프로이트 자신은 독일의 헤몰츠 학파의 전신인 비엔나 의과대학 교수들에 의해서 철저하게 훈련되고 무장되어진 과학도였다는 것은 치료자(필자)의 글들에서 여러 번 밝혔다. 프로이트는 의과대학 2학년 때 크라우스(Claus) 교수의 해양 생물학 연구소의 6개월 동안 연구 조교 생활로 철저한 현미경 해부학 교육을 받아서 그가 연구한 최초의 논문이 수놈 뱀장어의 성기 구조로 400여 마리의 뱀장어를 실험실에서 해부를 했고 그의 논문은 지도 교수의 추천으로 학회 연구 논문집에 실리게 된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그 다음에 그가 부케(Brucke)의 해부학 연구실에서 8년 동안 해부학을 철저하게 연구했다(그 당시 의과대학은 5년 째로 3년을 더 연구한 후에 졸업). 레지던트 시절에 5천명의 환자들을 수용할 수 있었던 비엔나 의대 부속 종합 병원에서 4년 동안 메이네트(Meynert)의 뇌 연구소에서 3년 동안 뇌 해부학을 연구했다(Ellenberger, 1970, Ernest Jones, 1953, 1955, 1957).

부케와 메이네트는의 연구 모임이 물리학자이자 생리학자인 헤몰츠(Helmholtz)의 가담으로 이후에 헤몰츠 학파로 확대되어 이 모임이 이후에 독일 물리학회가 되어 독일의 과학계의 모든 학자들의 대모(代母)로 독일의 과학이 세계를 지배하는 과학자들의 산실로 발전하게 되었다는 것은 앞에서 몇 차례 밝혔다(정신분석학이 비과학적인가?를 보라).

그가 레지던트 시절에 그의 선배이자 스승이자 후원자였던 비엔나 의과대학의 선배였던 브로이어(Breuer)가 프로이트에게 소개를 한 안나 오(Anna O)라는 유태인 백만 장자의 딸의 치료 과정을 소개를 받으면서 그 환자가 히스테리아(hysteria) 환자이고 생리학적으로 아무런 이상이 없는 환자로 최면으로 치료를 했다는 것을 알게 된 프로이트가 여기에서 그의 삶이 신체적인 질병을 고치는 의사에서 마음을 병을 연구하고 치료를 하는 심리학자로 변신하게 되는 첫 단초가 되었다. 그는 레지던트 4년 마지막 해에 비엔나 의대에서 처음으로 우수한 레지던트 수련의들 중에서 3명의 학생을 선발해서 6개월 간 해외 유학생으로 보내주게 된 첫 시행에서 프로이트가 3명의 장학생 중에 한 명으로 그 당시 히스테리아의 최면 연구로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고 있는 의과대학 내과 교수 출신으로 프랑스 파리의최면학의 나폴레옹이라고 불렀던 가르코트(Charcot) 밑에서 6개월 동안 최면학을 연구하게 된다. 가르코트가 화요일에는 직접 히스테리아 환자들에게 최면을 걸어서 치료를 하는 과정을 시범으로 보고 관찰을 했고 그리고 목요일에는 세계들의 명사들 앞에서 강연을 하는 것을 들으면서 최면에 걸린 여성 환자들의 기억 속에서 과거에 받았던 강간과 폭력의 상처들과 최면에서 깨어난 환자들이 기억을 하지 못하는 것을 눈으로 보고 관찰하고 강의를 들으면서 인간이 기억을 하지 못하는 세계 즉 무의식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이론으로 확대시킨 것이 바로 그의 무의식 이론이고 또 히스테리아 환자들의 어린 시절에 받은 심리적인 상처들 즉 근친상간, 강간, 폭력, 학대의 원인이 된 심리적인 상처가 이후에 프로이트의 이론의 대명사가 된 섹스심리학(psychosexual) 의 탄생의 시발점이 된 것이다(Ellenberger, 1970, Ernest Jones, 1953, 1955, 1957)라는 글들을 여러 번 밝혔다(프로이트에 대해서 우리가 지금까지 몰랐던 사실들 1-19편까지를 보라).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의 이론들 속에는 철저한 실험 물리 학자였다가 이후에 철저한 실험 심리학자가 된 프로이트의 전철을 밟은 독일의 라이프지그(Leipzig)대학의 교수였던 구스타브 페크너(Gustav Fechner)가 있다. 그는 신학과 법학을 전공했다가 의학으로 이후에 철저한 실험 물리학자가 된 사람으로 만년에 라이프지그 대학의 조교수 3년 만에 정신과적인 질병(조울증과 건강염려증)으로 3년 동안 두문불출한 이후에 세상에 나오면서 세상은 참으로 아름답다라는 말과 함께 10년 동안 몸과 마음의 법칙을 연구한 후에 신체의 기하급수에 마음은 산술 급수로 증가 한다는 유명한 그의 마음의 법칙인 ∆R/R=K 라는 유명한 공식을 발견을 해서 그의 스승의 이름으로 웨버(Weber)의 법칙으로 이름을 붙였다. 이 몸과 마음의 공식은 감각과 지각 심리학으로 심리학 개론의 교과서에서 지금도 사용하고 있고 일반적으로는 최저 감각 한계점으로 트레쉬홀드(threshold)라는 용어로 사용되어지고 있다. 이 용어에 대해서는 뉴톤의 물리학에서 상세하게 설명이 되어질 것이다.

그는 이후에 심리물리학이라는 저서를 출판을 했다. 그의 스승으로 의학을 공부했다가 해부학 실험에 질려서 생물학자가 된 웨버(Weber)가 신체의 감각적인 지각을 측정해서 이것을 수학적으로 데이터로 표현한 심리생물학에 버금가는 페커너의 심리물리학의 연구는 아직도 생물학과 물리학에서 심리학이 독립하지 못한 것으로 순수한 심리과학의 탄생은 그들의 세 번째 제자인 라이프지그 대학의 분트(Wundt)에 의해서 실험실에서 심리과학이 1879년에 탄생하는 계기가 된 것도 역시 앞에서 여러 번 글에서 밝혔다(라이프지그 대학에서 3대에 걸쳐서 심리과학의 탄생을 보라).

페크너의 심리물리학에서 프로이트가 많은 것을 인용해서 그가 없었다면 정신분석의 탄생이 어려웠을 것이라는 표현을 여러 번 했다(Ellengerg, 1970). 페크너의 쾌락의 원리””안정과 반복의 원리””유머와 위트의 이론은 프로이트의 즐거움의 원리를 넘어서””반복의 원리” “위트와 무의식이라는 논문 그리고 그의 의식, 전의식, 무의식의 마음의 위계 이론과 즐거움의 원리가 원초자아로, 불쾌감의 원리가 현실의 원리로 그리고 계수의 원리(마음의 에너지는 계수) 등이 페크너의 이론으로 탄생된 것이라는 것도 역시 앞의 글에서 밝혔다(김종만, 1999, “정신분석학적인 관점에서 본 자아의 성장과 발달, p 623).

이제 여기에서 정신분석의 실제 치료에서 뉴톤의 물리학이 어떻게 사용되어지고 있는가?를 살펴 보기로 하자. 뉴톤의 물리학의 제 1 법칙인 관성의 법칙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뉴톤의 제 1 법칙은 정지해 있는 물체는 정지해 있으려고 하고 움직이는 물체는 움직이려고 한다치료자(필자)가 중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배운 물리학에서 뉴톤의 관성의 법칙에서 정지한 물체는 계속해서 정지해 있으려고 하고 운동하는 물체는 계속해서 운동하려고 한다는 말의 뜻을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정지해 있는 물체는 정지해 있고 움직이는 물체는 움직이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되고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에 대해서 그것이 바로 힘의 원리라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이후에 치료자가 정신분석을 공부하면서 바로 이 관성의 법칙이 정신분석에서 어떻게 치료에서 활용되어지고 있는가?를 깨닫되 되면서 그 원리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즉 정지해 있는 물체를 움직이려고 하면 그 정지해 있는 힘보다 더 많은 힘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운동하고 있는 물체를 정지시키려고 하면 그 운동하고 있는 힘보다 더 많은 힘이 필요하다는 그 평범한 원리를 내가 정신분석을 공부하고 정신적인 장애들을 치료를 하면서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다. 이 관성의 법칙을 내가 깨닫게 되면서 정신과적인 치료에서 내가 사용하는 단골 치료 기법이 된 것을 설명하고자 한다.

치료자 한데서 강박증으로 5년 동안 치료를 받은 C 군의 치료 사례에서 그는 요도 감염 강박증으로 중학교 2학년 시절부터 성기의 요도가 병균에 감염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해서 전전긍긍하면서 10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군대 생활을 끝내고 더 이상 그의 강박증이 치료를 받지 않으면 빠져 나올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그의 병의 원인을 각종 정신과 적인 서적에서 그리고 심리학 서적에서 찾아 보다가 우연히 그가 뉴욕 의과대학 정신과(재활의학과) 교수이자 정신분석 학자인 존 사르로(John E. Sarno)가 쓴 통증 혁명”(우리나라에서 2006년에 번역되어 출판)이라는 책을 읽고 자신의 강박증이 심리적인 원인으로 심리신체 장애의 하나임을 깨닫게 되면서 인터넷에서 정신분석과 심인성질환(심리신체적인 질병)의 홈페이지를 보고 치료자에게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받게 된 21세의 청년(지금은 27)이었다.

그의 분석 치료에서 그의 실제 증세의 등장은 그가 초등학교 2학년과 3학년의 사이에 갑작스런 아버지의 교통사고 사망으로 자신의 입에 누가 독약을 넣을 것이라는 두려움(편집증)에서 시작되었고 이것이 음식 알레르기로 번지면서 초등학교 6학년까지 약 4년간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등을 먹게 되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육류에 대한 음식 알레르기로 번지면서 몸무게가 14kg이 감소하는 영양 실조로 그리고 밤에는 소화제를 먹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는 불면증으로 그리고 소화성 장애로 번지게 되면서 죽음의 그림자를 느끼게 되면서(C군의 표현)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밥을 먹을 때 100번씩 씹어서 먹으면서 4년 동안 그렇게 음식을 먹게 되면서(군 입대로써 음식 100번 씹어먹기는 포기) 소화성 문제가 해결되면서 몸무게가 정상을 회복하는 단계에서 새로운 증세의 등장으로 요도 감염 강박증이 나타나게 된 것이 분석으로 밝혀졌다.

여기에서 뉴톤의 제 1 법칙인 관성의 법칙이 어떻게 사용되느냐?에 국한 시키기로 한다. 그는 죽음의 그림자를 느끼면서 혹시 친구들의 입에서 나오는 침 혹은 먼지 혹은 과학실의 화학 물질 등이 입으로 들어와서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초등학교 3학년부터 6학년 때가지 입을 다물고 다녔고 침을 삼키지 못했다고 털어 놓았다. 이것이 소화성 문제가 해결되면서 다시 새로운 증세인 요도 감염 강박증으로 전환이 된 것이었다. 즉 길거리에 오염 혹은 쓰레기들 혹은 죽은 쥐의 시체 등을 보면 병균이 성기에 오염되어 성불구자가 될 것이라는 두려움과 불안으로 손을 4- 5회를 씻거나 팬티를 몇 개씩 갈아입거나 하는 심한 강박증의 증세로 3개월-4개월에 한번씩 비뇨기과에 가서 요도검사를 받는 심각한 강박증 환자였다.

치료자는 그의 사고 강박에서 하루에 몇 번씩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가?라고 분석을 해 본 결과 하루에 10번 정도로 죽을지도 모른다, 혹은 감염으로 성기가 불구가 될 것이다 라는 부정적인 생각들을 한다는 것을 밝혀졌다. 여기에서 치료자는 그의 예견된 불안이 그의 강박증의 사고에서 벗어날 수가 없게 만든다는 인지적인 문제를 발견을 하고 이것이 불안을 들어올리게 해서 생리적으로 심한 긴장 상태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일반 하루에 10번 이상의 부정적인 생각을 차단시키기 위해서 뉴톤의 관성의 법칙이 등장하게 된다. 즉 하루에 10번 이상의 부정적 사고를 긍정적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하루에 11번 이상으로 긍정적인 사고로 전환을 해서 습관화 된 부정적 사고 패턴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함으로써 그의 부정적인 생각을 차단시키는 것에 한가지의 사고의 문제에 브레이크를 걸게 된 것이었다.

심리치료와 정신분석에서 그 분석을 받는 사람이 자신의 증세의 원인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가? 어떤 과정을 거처서 문제가 시작되었는가?를 이해시키는 과정이 제 1 차적인 것으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은 먼저 깨달음을 통해서 시작된다는 깨달음 치료라는 것을 C군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깨달음 한가지 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는 것을 이미 정신분석가들이 치료의 과정에서 실감했기 때문에 프로이트의 신경증의 치료가 성격장애와 정신증(조울증, 편집증, 정신분열증(조현병)으로 확대 되어지면서 증세로 변하게 된 습관을 깨는 치료 기법으로 등장한 것이 관성의 법칙이 된 것이다.  C군은 이미 중학교 2학년 때 알레르기 음식의 회피가 영얄 실조로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고 음식 100번 씹어 먹기를 4년 혹은 5년 동안(중학교 2학년부터 고교조업과 대학 1학년 때까지) 한 결과 소화성 장애로부터 벗어난 것이 바로 그 예임을 지적하면서 하루에도 11번 이상의 습관의 틀을 깨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C군이 스스로 몸소 체험을 한 것을 근거로써 그가 이 습관을 깨야 한다는 것에 찬성을 하게 된 것이다.

두 번째 뉴톤의 제 3의 법칙인 작용-반 작용의 법칙이 역시 강박증 치료의 정신분석에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설명하고자 한다. 작용-반작용의 법칙은 압력의 힘을 말한다. 누르면 누를수록 튀어 오른다는 말로써 쉽게 설명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서 축구 공에 바람을 얻어서 압력을 증가 시킬수록 그 축구공은 더욱 더 많이 튀어 오른다. 즉 강박증의 특징이 감정의 억압에서 사고와 감정이 분리되어진 것에서 시작된다는 것은 프로이트가 강박 신경증의 연구에서 이미 19세기 말기에 발표를 했다. 프로이트는 그의 방어 이론에서 뉴톤의 제 3의 법칙인 작동-반대 작용의 법칙을 이름을 바꾸어서 반대행동형성(reaction-formation)으로 방어의 전문 용어로 설명을 하고 있다. 즉 억압된 욕구가 정반대의 증세로 등장하는 것이다. 미움의 극대화해서 그것이 거꾸로 사랑으로 둔갑되어지는 증세를 말한다. 여기에서는 강박증에 국한 시키기로 한다. C군은 사고에서 감정을 분리시켜서 감정을 억압해버리고 사고로써 세상의 두려움들과 불안들에 대처하고 있다는 것을 작용-반작용의 법칙으로 깨닫게 했다. 즉 그가 부정적 사고로써 심하게 억압을 하면 할수록 그의 강박사고의 힘을 강해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치료의 여러 가지 사례에서 치료자가 많이 사용하는 단골 치료 기법이다.

예를 들어서 치료자로부터 자위행위 강박증으로부터 고통을 받는 많은 젊은이들이 한번 자위행위를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게 되어 자위행위를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2, 3, 4, 5(치료자로부터 가장 심한 자위행위 강박증이 5번 자위행위)으로 연속해서 자위행위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자위행위 강박증) 즉 자위행위를 컨트롤할 수 없어 연속되는 자위행위 때문에 코피를 쏟고 현기증을 일으킨다는 것에서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자위행위를 하고 나면 그 상상들 즉 근친상간, 강간, 폭력의 사용 등등의 상상에 대한 죄의식으로 자위행위는 더러운, 해서는 안 된다는 즉 강압을 하면 할수록 더욱더 자위행위 강박의 힘이 강해져서 자위행위로부터 빠져 나올 수 없다는 물리학의 원리로 설명하게 되면서 그것의 해결은 자위행위를 하도록 허용해주는 자연적인 생리적인 현상으로 성기에서 생산되는 정자와 정액을 방출시키고 컨트롤하는 자연스러운 정액과 정자의 컨트롤을 하는 것이 자위행위라고 수용을 하도록 하면서 억압에서 해방되면 자위행위 강박증에서 해방되어질 수 있다는 치료의 원리를 적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치료 사례에서 자위행위 강박증은 쉽게 해결되어진 수 많은 사례들이 있다.

다시 C군의 강박증으로 되돌아가 보자. C군은 감정을 분리시켜 억압을 해버렸기 때문에 모든 것을 사고로써 불안을 컨트롤하려고 한다는 것을 지적을 했을 때 스스로 시인을 했다. 감정을 생각으로부터 분리시키면 반쯤은 성공하는 것이 아닌가? 즉 그 만큼 감정을 다루는 어려움이 감소하는 것이다. 고로 생각만 다루면 되는 것이다. C군은 이미 모든 실수들 즉 오염을 막으면 불안을 해결할 수 있다는 편리한 방어를 가동시키고 있는 것이다. 고로 그는 대단히 도덕적이고 철저한 세심하게 실수를 하지 않고 정확하게 하면 불안을 막을 수 있다고 스스로 자아가 그렇게 보호막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즉 강박사고-강박행동을 가진 사람들이 철저하게 기계적이고 도덕적이고 완벽주의자 들이라는 점은 강박증 환자들의 공통점이라는 것을 지적을 했을 때 C군은 100% 동의를 했다. 그는 실수를 하지 않고 완벽하게 모든 일을 하게 되면 심한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인간은 완벽해질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인간은 기계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C군은 스스로 로봇이 되려고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완벽주의는 결과적으로 더욱 더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노심초사하기 때문에 더욱 더 긴장을 하게 되고 더욱 더 신체적인 긴장 현상들을 불러 일으켜서 더욱 더 불안해서 불안의 소용돌이에서 빠져 나올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억압된 감정을 끄집어내는 치료를 통해서 사고와 감정을 통합하도록 하는 치료 과정이 필수적이 된다. 즉 감정인 두려움, 무서움, 염려, 걱정, 불안 등을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고(정신분석적인 전문 용어로 acting out – 손 씻기, 정리정돈, 팬티 갈아 입기, 체크하기 등등) 말로써 표현을 하도록 감정 표현 훈련이 포함되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또 한가지 물리학이 등장을 한다. 프로이트는 독일의 헤몰츠 학파들로부터 에너지 이론을 수용을 했다. 아인슈타인의 E = MC제곱의 공식에서 에너지는 물체의 크기와 빛의 제곱에 비례한다는 공식에서 마음의 에너지 이론이 도입되어져서 계수의 법칙이 된 것이다. 에너지는 불변으로 에너지는 여러 가지 형태로 전환되어진다. 마음은 에너지이고 그리고 감정은 역시 에너지가 아닌가! 감정의 억압은 감정 에너지의 억압으로 내면에 에너지가 쌓이면 이것이 목 졸린 감정이 되고 이것이 한계선을 넘게 되면 폭발해서 살인, 폭력으로 즉 묻지마 폭력의 원천이 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다 알고 있다. C군은 억압된 마음 속에의 분노, 짜증, , 노여움 등을 말로써 표현하는 치료의 과정을 5년 동안 거치면서 긴장과 불안이 감소되고 감각의 최전 한계점을 낮추도록 하는 치료의 과정을 거치되었다.

또 한가지 물리학적인 용어가 위에서 설명한 감각의 한계점인 트레쉬홀드(threshold) 이론이다. 감각의 한계점이 너무 높아서 C군은 그가 다른 일반 청년들보다 1000배의 불안이 높고 또 이것을 100배 예민하게 느낀다고 실토를 했다. 너무나 예민해서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완벽주의가 된다는 것은 위에서 이미 설명을 했다. 그런데 C군의 감각의 한계점이 너무 높아서 긴장과 긴장 이완의 차이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즉 건강한 사람들은 일을 할 때는 긴장 속에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일을 한다. 그러나 퇴근으로 일에서 벗어나면 집에서 긴장을 풀고(여러 가지 취미 생활 방법으로) 충분한 휴식으로 에너지를 충전해서 내일의 준비를 하는데 C군과 같은 심한 불안증을 가진 사람들은 휴식에서 긴장 이완이 충분히 내려가지 못하고 심각한 불안의 수준이 별로 차이가 나지 않아서 진실된 휴식을 가질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프로이트가 이미 100년 전해 불안증의 정리를 이해가 되어지지 않은 것은 반복해서 유령처럼 재 등장을 한다. 신비가 풀리고 주술에서 벗어날 때까지는 그 개인은 휴식을 취할 수 없다라는 명언에서 잘 드러나 있다.

 왜냐하면 늘 습관화 된 불안의 높은 수준 때문에 스스로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끊임없는 부정적인 생각들을 동원해서 불안을 오히려 들어 올려서 늘 익숙한 불안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을 했을 때 C군은 무릎을 쳤다. 이것이 바로 감각의 최저 한계점이 높다는 것과 그리고 그가 그것에 늘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불안이 낮아지거나 긴장의 이완이 되면 거꾸로 부정적인 생각으로 익숙하게 불안을 들어 올리기 위해서 불안한 생각들을 주문을 하고 불러 모은다는 것이 하루에 10번 이상의 부정적인 사고에 사로 잡히는 또 하나의 실마리가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또 한가지는 이번에는 생물학에서 따온 방어이론이다. 이미 앞의 글들에서 많은 방어 이론들을 치료 과정에서 어떻게 적용하는지?를 설명을 했다. 여기에서는 간단하게 C군의 치료에서 적용되어진 방어에 국한 시키고자 한다.

C군의 요도 감염의 불안은 자신의 자아가 살아 남기 위해서 방어로써 자아 보호로써 등장한 것으로 요도 감염에 불안은 편리하게 다른 고통을 피할 수 있도록 막아 주는 편리한 갑옷이 된 것을 분석으로 밝혀내면서 C군이 깨닫게 했다. 다시 말해서 C군은 아버지가 하루 아침에 교통 사고로 사망했기 때문에 어머니가 생활 전선으로 떠나면서 외부로부터 보호막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스스로 세상의 불안에서 자아를 보호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그는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부터 밤10-11가 되어야 어머니가 집에 돌아오는 것 때문에 늘 어머니가 사고로 사망하는 것이 아닌가? 고아가 되는 것이 아닌가?라는 불안한 생각에서 사로잡혀서 늘 어머니에게 어디에 있는지? 전화를 걸고 빨리 집에 오라고 해서 어머니로부터 엄청난 처벌을 받았다고 스스로 토로 했다. 고로 그는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야 할지를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친구들과 사귀는 것, 공부를 하는 것, 미래를 걱정하는 것, 가족 구성원들 즉 친척들과 관계를 하는 것 등등은 정해진 교본이 없고 배울 기회가 없었다(형제가 없었고 어린 시절에 동료들과 단절의 원인들이 0-3세의 분석 과정에서 밝혀짐). 그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에 입을 닫아버렸기 때문에(침을 삼키지 못하고 뱉어냈음) 친구들과 말을 하는 의사 소통을 배울 수가 없었고 대인관계를 어떻게 하는지?를 배울 수가 없었다.그런데 독극물 사망이 편리하게 대인관계를 필요하지 못하게 막아버리는 방어가 된 것을 C군은 스스로 모르고 있었다. 어떻게 친구들과 사귀어야 하는지? 학교에서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직면하게 되면 너무나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다는 것을 C군의 무의식이 이러한 공포, 두려움을 막기 위해서 입을 닫아버리고 말을 하지 않게 되면 얼마나 편리한가? 처음에 이것을 분석으로 지적을 했을 때 C군은 심한 저항을 했다. 이해할 수가 없다고 했다.

치료자는 C군에게 학교시절(, , , 대학)에 공부 시간에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분석해 본 결과 C군은 머리 속에서 입에 독약(, 중학교 시절)이 들어오지 못하게, 친구들의 침들, 연필을 깎을 때 연필의 흑연의 가루들, 교실에 먼지들이 입에 들어올까 봐서, 그리고 고교, 대학 시절에는 요도 감염의 생각들로 가득 차 있었다고 실토를 했다. 즉 선생님의 가르침, 교수의 강의들은 안중에 없었고 항상 부정적인 생각들로 가득 차 있었다고 고백을 했다. 치료자가 100%, 50%, 0%로 표현해 보라고 했을 때 그는 95%가 불안한 부정적 사고로 가득 차 있었다고 했다. 예를 들어 보라고 했을 때 그는 다음과 같이 말을 했다. “내가 요도 감염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내가 공부를 해도, 미래도, 내 삶은 없다. 이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내 모든 문제가 풀리게 될 것이다라고 생각해서 공부에 집중하려고 하는 의지가 없었다고 했다. C군은 교과서를 읽거나 책을 읽을 때 어려운 문제들(, , 고 교과서)이론적인 어려움들(대학 교과서)에 부딪치면 요도 감염 문제로 흘러가버려서 공부가 아예 머리 속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했다.

치료자는 C군의 공부 시간에 겨우 5%의 공부에 집중으로 고교, 대학에서 그대로 좋은 성적을 얻게 된 것을 C군의 머리가 좋은 사람으로 지금까지 5 %로써 세상을 살아온 것을 극구 칭찬을 해 주었다.  

여기에서 치료자는 C군에게 지금까지 몇 년 동안 치료자로부터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받고 있는데 만약에 예를 들어서 하루 아침에 요도 강박증이 해결된다고 가정하면 대인관계 문제, 경제적인 문제(일자리를 가지지 못하고 있음), 미래의 삶에 대한 기획들 즉 공부해서 전문적인 지식의 습득, 이성 문제(결혼) 등이 C군의 생각처럼 하루 아침에 해결되어질 수 있겠는가?라고 강조를 했을 때 C군은 불가능하다고 스스로 대답을 했다.

C군은 요도 감염 강박증이라는 편리한 자아 보호 갑옷으로 정작 중요한 문제들 대인관계, 직업과 일자리, 의사소통, 감정 표현 그리고 미래의 기획, 이성관계 등을 직접적으로 가르쳐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에 그들을 직면하는 것은 유령과 싸우는 것이기 때문에 죽음의 불안과 두려움을 피하기 위해서 요도 감정에 집착하는 것임을 지적을 했을 때 치료자의 분석에 100% 동의를 한다고 시인을 했다.

치료자는 강박증이라는 증세 그 자체를 다루는 것이 아니고 근본적인 자아 문제를 다룬다는 것은 치료 초반기에 C군이 치료자의 수 많은 분석 과정에서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성장과 발달의 과정에서 자아 결함을 다루고 자아가 배우지 못한 것을 새로 배우고 자아의 결함을 수정하고 그 자아가 다시 성장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한다는 치료의 방침 때문에 5년 동안 대인관계를 어떻게 하는가? 어떻게 의사 소통으로 갈등을 해결하는가? 어떻게 억압되어진 감정을 끄집어 내서 긴장을 풀고 분노, 짜증, , 노여움을 말로써 표현하는가?등을 5년 동안 다루면서 C군의 감각 한계점이 많이 낮아지고 일자리를 얻어서 과거에는 2개월, 3개월 이상을 일을 할 수 없던 것을 6개월, 10개월로 연장시키고 이것이 1년을 넘어가면서 경제적인 안정으로, 미래의 희망으로 그리고 대인관계의 갈등이 줄어들고 자아의 자신감이 증가하면서 과거에는 3개월-4개월 마다 비뇨기과에 드나들던 것이 10개월이 지나도록 비뇨기과를 찾지 않고 심한 불안의 소용돌이에서 빠져 나오고 있다고 스스로 실토를 했다.

여기에서 치료자가 늘 C군에게 강조를 하는 것은 방어는 자아를 보호하기 위해서 만든 속임수이기 때문에 방어에 의존하거나 따라가지 말도록 하고 요도 감염의 불안 속에서 휩싸일 때는 즉 95%의 몰입에 빠질 때 정작 내 자아가 무엇을 차단하고 막기 위해서 내가 무엇을 피하려고 하는가?를 보고 재빨리 그 문제에 직면하도록 했다. 지금까지 편리하게 자아의 속임수인 방어에 의존하게 된 것으로 이것을 벗겨내고 나이에 걸 맞는 건강한 자아 방어로 대체시키는 것이 바로 직면의 방어임을 깨닫고 현실적으로 고통 때문에 피하고 있는 것을 깨닫고 그 문제에 직면해 나가도록 습관화로 익숙해진 자아의 틀을 깨부수는 치료의 과정을 1주일에 1회의 치료회기로 2시간씩 분석치료 과정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

주㈜: 엘렌버그의 저서인 무의식의 발견과 존의 저서인 프로이트의 삶과 업적 제 Ⅰ권, Ⅱ권, Ⅲ권은 우리나라 말로 번역되어져서 치료자가 소장하고 있고 치료자의 저서인 ”(정신분석학적인 관점에서 본 자아의 성장과 발달)은 전문서적 안내에서 구입할 수 있으니 전문서적 안내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세요.

-------------------------------------------

다음의 치료 사례는 C군의 첫 치료 회기를 소개한 것이다.

대상: 군복무 후에 복학을 준비하는 대학생 C

증세: 초등학교 3학년 시절부터 입에서 냄새가 난다는 구취증, 초등학교 5학년 시절부터 소변이 너무 잦아서 스스로 빈뇨 증(구취증, 빈뇨증은 C군이 스스로 붙인 이름)

접촉: 어떤 학자가 쓴 "심인성 질환"이라는 서적에 감동되어 자신의 문제점이 심인성 질환으로 확신하고 인터넷에서 치료자심인성질환 홈페이지를 접하고 전화로 치료 문의를 해 왔음

진단: 심한 불안증, 대인공포증, 요도감염 강박증, 소화성 장애, 회피적 성격장애

치료 기간: 1회기에 2시간으로 6개월간의 치료 계약을 맺고 치료를 시작을 했음. 아래의 치료는 제 2 회 치료회기의 총 4시간의 치료 과정에서 B군의 심리적인 증세들을 분석한 것이다.

 

치료의 과정

 C군은 대학 1학년을 마치고 군에 입대해서 올 해 2월 달에 전역을 한 후에 1년을 휴학으로 쉬면서 실종 아동 찾아주기 기관에서 아르바이트로 일을 하고 있으며 내면 3월 달에 대학 2학년에 복학할 준비를 하고 있는 학생으로 xxx 대학에서 경영 정보학을 전공하고 있는 학생이었다.

 그는 어떤 학자가 쓴 "심인성 질환"이라는 책을 읽고 자신의 심리적인 증세들이 심인성 질환이 틀림없다고 확신을 한 후에 인터넷에서 심인성 질환이라는 자료를 검색하다가 치료자의 홈페이지에 접촉한 후에 치료를 받고 싶다고 휴대 전화로 연락을 해서 첫 시간부터 심리치료를 계약하고 6개월간의 심리치료에 들어가게 되었다.

 심리치료를 하려면 그 개인의 발달의 역사, 즉 성장 배경에 대한 정보가 필수적이다. 그의 양육의 역사, 그와 부모님과의 관계, 그리고 학교 시절에 동료들과의 관계, 지금 현재의 문제점(그가 지금 현재 가지고 있는 증세들), 그의 미래에 대한 비젼 즉 그가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가? 하는 기대, 소망들을 샅샅이 살펴 보아야 한다.

C군의 성장 배경: C군은 외아들로 현재는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초등학교 2학년 때 교통 사고로 돌아가셨다. 아버지의 갑작스런 사망 이전에는 큰 문제점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그의 유치원 시절에 대한 기억은 활발하고 적극적이고 외향적인 성격으로 유치원 시절에 활동을 활발하게 잘 했고 친구들과 사이도 좋아서 친구 집에 자주 놀러 갔었고 친구네 집에서 자주 놀았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초등학교 1학년 시절에는 학교에 가기를 좋아했고 친구 관계도 좋았다고 했다. 현재의 모든 문제는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 이후부터 시작되었다고 그가 털어 놓았다.

아버지가 교통 사고로 사망: 초등학교 2학년 때 어느날 그와 어머니는 밤 중에 전화 벨 소리에 깜짝 놀랐다고 했다. 한 경찰관으로부터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에 놀라서 병원으로 달려 갔을 때 병원의 영안실이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음주 운전을 하다가 경찰의 단속에 걸리게 되자 도망을 하게 되었고 경찰 순찰차의 추격으로 쫓기다가 과속으로 충돌 사고로 즉석에서 사망했다는 것이 그가 알고 있는 아버지에 대한 전부였다. 사고 직전에 아버지는 이모와 이모부가 운영하는 슈퍼마겟을 인수해서 8개월간 운영을 하다가 다른 사람에게 매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약 3분의 2 정도 매각이 진행된 상태에서 술을 잡수시고 음주 운전 단속에 걸리게 되자 도망치다가 운전 부주의의 사고로 사망을 했다는 것이었다. 더 붙여서 C군은 아버지가 사망 1주일 전에 둘 째 큰 아버지와 승용차를 바꾸어서 운전하다가 사고로 사망했다는 것에 대해서 어머니가 둘 째 큰 아버지와 대판 싸움을 벌린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지금도 둘 째 큰 아버지와는 그 앙금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가족의 대소사에는 서로 큰 갈등은 없다고 했다.

 C군은 아버지의 사망 후에 슈퍼마겟는 다른 사람에게 매각을 하고 전업 주부였던 어머니가 일을 하게 되면서 이모네 집에서 같이 살 게 되었다.이모부와 이모는 C군의 부모님에게 그들이 운영하던 슈퍼마겟을 매각하고 다른 슈퍼마겟을 시작해서 지금도 슈퍼마겟을 운명하고 있다고 했다. 아버지의 사망 후에 C군은 주변 사람들에 대한 극심한 공포증을 가졌었다고 했다. 주변 사람들이 자신의 입에다 독약을 넣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사람들을 극구 싫어하고 사람들을 피했다고 했다. 그는 이모네 가족 구성원들을 피했고 심지어는 어머니가 자신의 음식에 독약을 넣지 않을까? 두려워 했다고 했다. 심한 대인 기피증 때문에 어머니는 이모 가족과 1 6개월간 같이 살다가 집을 얻어서 C군과 함께 독립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에 그는 어머니가 죽지 않을까?두려움 속에 살았다고 했다. 치료자가 아버지에 대한 꿈을 꾼 적이 있는가?라고 물었을 때 그는  여러 번 아버지의 꿈을 꾸었다고 했다. 꿈 속에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같이 가는데 C군이 뒤에서 따라 가는 꿈들이었는데 꿈 속에서는 아버지가 반가웠으나 꿈을 깨고 난 다음에 그는 아버지가 자신을 데리고 저승으로 가는 저승 사자처럼 느껴져서 아버지를 따라가면 저승으로 가는 것일 지로 모른다고 두려워했다고 털어 놓았다.

 어린 시절에 아버지와 C군과의 관계를 이야기를 해 보라고 했을 때 C군은 아버지와의 갈등 관계는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아버지와 갈등 관계는 한번은 통 닭을 사 가지고 왔을 때 아버지가 통 닭을 먹기 전에 C군이 먼저 통 닭을 먹었다고 아버지는 그를 도어 문을 열고 내 쫓았다고 했다. 때리지는 않았는데 집 밖으로 내 쫓았다는 것을 기억을 했다. 그 당시에 그는 얼마나 그가 잘못했는지를 몰랐다고 했다. 두 번째 C 군이 맛있는 생선 요리에 너무 과식으로 음식을 많이 먹어서 속이 더부룩해서 토해내고 있는데 아버지는 전혀 무관심으로 일관해서 섭섭해 했다고 했다. 그 두 개의 이벤트 이외에는 아버지와 갈등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 이외에는 아버지는 C군에게 좋은 이미지로 항상 C군에 잘 대해 주었던 아버지로 남아 있었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에 C군은 주변의 사람들이 두려워지고 자신에게 독약을 넣지 않을까? 두려워했다는 그 공포증 이외에도 4학년 쯤에서 한 친구가 자신에게 입에서 냄새가 난다는 말에 깜짝 놀라서 그는 그의 구취증(그가 붙인 증세 이름)이 그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했다. 그 시쯤에서 그는 소화가 잘 되지 않아서 위와장이 약해서 위와 장에서 소화가 잘 되지 않은 탓으로 냄새가 날 것이라고 해서 육류(소고기 돼지 고기 증 찔긴 음식)는 초, , 고등학교 때까지 먹지 않고 있다고 지금은 육류는 잘 먹고 있다고 했다. 초등학교 3학년 시점에서 소화 불량으로 힘들어지면서 그는 어머니가 소개한 놀이 치료를 10개월 정도 받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 놀이 치료 선생님께서 일본으로 유학을 가 버리는 바람에 그는 놀이 치료를 그만 두었다고 했다. 그는 놀이 치료가 그에게 효과가 있었는지는 지금도 기억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놀이 치료가 약간 효과가 있었다고 이야기를 한다고 했다.

 초등학교 5학년이 되면서 소변이 잦은 빈뇨증(그가 붙인 증세 이름)으로 발전하게 되었다고 했다. , 고등학교 시절에는 빈 뇨증이 심했다고 했다. 치료자가 하루에 몇 번 화장실에 들락거리느냐? 물었을 때 그는 하루에 7-8회 정도 드나든다고 했다. 병원에 가서 종합 검사를 했을 때 신체적인 이상이 없다는 말에 그는 빈 뇨증의 원인이 그의 심한 자위행위 때문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다고 했다. 빈 뇨증은 지금도 심하다고 했다.

 입에서 심한 냄새가 난다는 구취증 때문에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에는 친구들과 관계를 일부러 피하게 되었다고 했다. 고로 친한 친구 관계가 끊어지면서 대인 공포증이 생겼다고 했다. 친구들과 함께 하면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자연히 친구들과 만나면 끌끄러워지면서 친구들을 피하게 되었다고 했다.

 공부는 이러한 증세들 때문에 주의 집중에 잘 되지 않아서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은 많은데 공부에 집중이 되지 않아서 성적이 좋지 못해서 대학에는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했다고 했다. 친구들이 그에게 그가 공부를 하는 시간에 비추어서 성적이 올라가지 않는다고 이야기를 해 준 친구가 있다고 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에 전업 주부로 있다가 일을 시작했고 보험 세일즈 혹은 다양한 직업을 가지게 되었고 지금은 역술학을 공부를 해서 역술인으로써 생활을 꾸려가고 있다고 했다. 심리치료에 대해서 어머니께서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물어보았을 때 C군은 어머니는 심리치료 보다는 약물 치료를 선호하고 있으나 C군은 약물 치료보다는 심리치료를 선호하게 되었고 어머니는 C군이 치료자에게 심리치료를 받는 것을 흔쾌히 허락해주시고 치료 비용을 부담해 주셨다고 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놀이 치료 이외에 정신과 치료나 심리치료를 받은 적이 있느냐?라는 물음에 C군은 고등학교 2학년 때 신경 정신과에 갔었으나 신경 정신과 선생님은 간단한 5분 정도의 이야기로 약물 치료를 처방해 주어서 약물을 약간 복용하다가 그만두었다고 했다. 이후에 인근에서 심리치료 센터에 가서 심리치료를 3개월 정도 받았으나 효과가 없는 것 같아서 그만 두었다고 했다. 치료자는 그 심리 치료사가 그의 병명이 무엇이라고 했느냐? 하는 물음에 병명은 이야기를 하지 않고 그냥 50분씩 상담만 하다가 효과가 없는 것 같아서 그만 두었다고 했다.

 군 복무 시에는 큰 어려움들은 없었으나 그가 근무를 하고 있던 해안 경비대에서 근무를 하면서 동료들과의 큰 어려움이 있었느냐?라는 치료자의 물음에 동료들과는 큰 어려움들은 없었다고 했다.

 C군은 자신은 기억을 하지 못하지만 그가 3- 4살 사이에 1년 동안 할아버지, 할어머니 집에서 1년간 같이 살았다고 어머니가 이야기를 해 주었다고 했다. 더 붙여서 아버지가 죽고 나서 어머니가 일을 하러 갔을 때 저녁 늦게 오시면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서 빨리 집에 돌아오라고 해서 어머니로부터 심한 처벌을 받은 적이 있다고 털어 놓았다.

 초등학교 시절에 공작 시간에 공작을 만들면서 그는 동료들이 만든 공작물이나 자신이 만든 공작들이 자신의 목구멍에 걸려서 혹시 질식해 죽는 것이 아니냐! 하는 두려움으로 떨었다고 했다. 지금도 그는 생선이나 뼈가 있는 음식을 절대로 먹지 않는다고 했다. 고개 뼈가 목에 걸려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 때문이라고 했다.

 그 이외의 신체적 증세들은 없다고 했다. , , 고등학교 시절에 소화가 잘 안되어서 소화 불량으로 초등학교 3학년부터 6학년까지 소화제를 매일 저녁 마다 한 알씩 먹었다고 했다. 소변 잦은 이외에는 다른 신체적 증세들은 없었다고 했다.

 가족 관계와 친척들과의 관계에 대해서 질문을 했을 때 외가 쪽에는 외할아버지는 공무원으로 외할머니는 전업 주부로 살림만 했으며 큰 외삼촌은 대학 시절에 법대을 졸업했으나 고시에 실패하고 결혼도 하지 못하고 지금은 직업도 없기 은퇴한 외 할아버지와 외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고 어머니의 언니인 이모 내외가 슈퍼마겟을 운명하며 살고 있고 어머니의 남동생인 외삼촌은 수재로써 국비 장학생으로 독일에 유학을 간 후에 외숙모는 같이 독일에 유학을 가지 못하고 이모네에 C군 가족이 살 때 같이 살았으면 이후에 C군의 가족이 독립해서 살 때 3개월 정도 같이 외숙모와 함께 살았다고 했다. 외숙모와 C군과의 관계도 좋지 않았다고 했다. 친족 관계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따로 살고 있고 큰 아버지는 대학에서 행정적으로 근무하고 있고 작은 큰 아버지 내외가 있고 아버지의 사망 직전에 작은 큰 아버지가 승용자를 바꾼 것 때문에 어머니와 작은 큰 아버지가 대판 싸운 것이 기억난다고 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있고 시집을 간 고모가 있다고 했다. 어린 시절에 외갓집에 큰집에 어느 쪽에 간 기억이 많으냐고 했을 때 외갓집에 자주 간 기억이 많다고 했다.

 현재까지의 증세들: 구취증(입 안에서 냄새가 난다는 공포증), 빈 뇨증(소변이 너무 잦아서 고통스럽다)은 지금 현재 그가 가장 해결하고 싶은 증세들이고 나머지 대인 공포증, 학습에 주의 집중 정도를 높이는 것이라고 했다.

 구취증에 대서 살펴 보자. 구취증이라는 증세의 이름은 C군이 스스로 붙인 이름이다. 그러나 자신의 몸에서 냄새가 난다거나 몸이 기형이라고 생각해서 자신의 몸에 대해서 지나치게 신경을 많은 쓰는 증세를 가진 장애가 있다. 정신의학에서 이것을 신체 기형 공포증이라고 불리운다. 치료자가 치료를 한 경험으로 20대 후반의 여성으로 자신의 항문에서 구린내(똥 냄새)가 난다는 아가씨로 대인 관계를 아예 피하고 두문불출하는 여성으로 그녀는 정신분열증으로 진단된 사람이었다. 실제로 자신의 얼굴이 기형이라고 수십차례 수술을 받아서 심한 기형적인 얼굴이 되어 TV에서 소개된 "선풍기 아주머니"와 같은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정신분열증으로 자신의 신체에 기형에 집착하게된 심한 환자에 속하는 경우이다. 그러나 C군은 심한 신체적 기형은 아니었다. 그러나 자신의 입에서 냄새가 난다는 것과 다른 사람들로부터 독약 투입에 대한 공포 때문에 대인관계를 피했다는 점은 심한 불안증으로 일반화된 불안 장애에 들어가는 것은 확실한데 입에서 냄새가 난다는 증세는 신체 기형 공포증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C군은 다른 사람이 자신의 입에 독약을 넣거나 음식에 독약을 탈 지 모른다는 불안 때문에 대인관계를 피하게 된 것은 편집증(다른 사람을 심하게 의심)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서 모든 것을 다른 사람의 잘못으로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리려는 성향은 아닌 것으로 보아서 편집증으로 이름을 붙일 수는 없다고 본다.

이론적 근거: 치료자는 C군에게 아버지의 죽음 이후에 여러 개의 증세가 시작된 것으로 볼 때 C군 자신은 증세들은 무엇 때문으로 보는가?라는 질문에 그는 아버지의 죽음이 그에게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하다고 인정을 하고 있었다. 그의 증세는 심한 불안증으로 그가 인정을 하고 있었지만 무엇 때문에 아버지의 죽음 이후에 다른 사람을 피하고 소화 불량으로 매일 저녁마다 소화제를 한 알씩 6학년 때까지 복용을 했으며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소변이 잦아지게 되었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이유는 그 자신도 유추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치료자는 C군과의 2시간 인터뷰 상담에서 아버지와 C군과의 관계를 찾았으나 유치원 시절 혹은 초등학교 1학년 시점에까지는 특별한 상처 경험이나 결함들을 발견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면 왜 아버지의 죽음 이후에 여러가기 증세가 폭발을 했는가?를 분석하면서 한가지 실마니를 찾을 수 있었다. 분명히 C군은 아버지와 죽음과 자신의 증세 발발과 관계가 있다는 것은 C군도 시인을 했고 누가 보아도 분명히 아버지의 죽음과 그의 증세 발발은 관계가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치료자는 그의 한 말 중에서 그가 기억을 하지 못하고 있지만 3-4살 사이에 친 할아버지, 할머니 집에서 1년간 아버지와 어머니와 떨어서 살았다는 것을 어머니로부터 들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것이 분리 불안으로 작동을 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C군은 기억을 하지 못하고 있지만 그리고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특별히 C군에게 잘 보살펴주고 사랑을 주었다는 기억은 확실하지만 어머니와 아버지로부터 분리에서 불안 심하게 가진 것은 분명했다. 그 이유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에 어머니가 직장을 가지게 되면서 C군이 저녁에 어머니를 집에 빨리 돌아오라고 보채는 것에서 볼 수 있다. C군이 심하게 어머니에게 집에 빨리 오라고 보채는 것 때문에 어머니로부터 심하게 처벌을 받았다고 이야기를 한 것에서 그가 분리 불안을 심하게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분명했다. 엄마가 옆에 없어서 심하게 불안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왜 그 분리 불안이 아버지의 죽음 이후에 심하게 나타났느냐? 하는 것이다. 그것은 아버지가 C군의 분리 불안을 막아주고 있다가 아버지가 사라지자 그 분리 불안이 C군을 엄습한 것이었다. 고로 어머니가 일을 하러 나갔을 때 C군은 불안에 휩싸여 공포 속에서 살 게 된 것이었다. 심리학자 듀폰(DuPont, 1982)은 공포증을 "어른의 분리불안"으로 보고 있다. C군은 아버지로부터 분리 불안으로 공포증(독살될지 모른다는 공포증) 속에 휩쓸려 가족, 친지들과 관계를 거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두 번째로 가족, 친지들 한데 왜 편집증적인 의심으로 독약을 넣어서 죽이게 할지 모른다는 의심으로 가족들과의 관계를 피했는가? 하는 것이다. 먼저 친족과 관계에서 작은 큰 아버지가 아버지와 자동자를 바꾼 이후에 아버지가 음주와 자동차 사고로 숨졌다고 어머니가 작은 큰 아버지와 대판 싸운 것에서 친가 가족 쪽에 분노와 원망이 있다는 것을 C군이 감지를 하고 있었다는 점이 있고 그리고 두 번째 이모와 이모부가 운명하는 슈퍼마겟을 인수를 받아서 8개월간 운명을 하다가 다시 다른 사람에게 매각을 하는 과정에서 아버지가 음주로 사고나 나서 사망했다는 것이다. 분명히 아버지가 인수를 받은 그 슈퍼마겟이 잘 운명이 되었으면 왜 8개월 후에 매각하려고 시도를 했겠느냐? 하는 것이다. 슈퍼마겟이 잘 되지 않아서 다시 팔겠다는 것이었고 아버지가 술을 마셨다는 것은 무엇인가? 불쾌감 화가 나서 술을 마셨을 것이라는 점이다. 경찰 순찰차에 걸리자 아버지는 도망을 쳤고 음주에다 아버지의 내면에 쌓인 분노는 그 경찰관들에 대한 분노로 방향이 바뀌어서 경찰관들에게 분노가 흘러가면서 도망과 "붙잡으려면 붙잡아보아라"라는 분노의 표현으로 방향이 바뀐 것으로 볼 수 있다. C 군은 이러한 무의식적인 것을 감지를 하고 있었고 아버지의 죽음 이후에 그는 친가와 외가쪽 가족 구성원들에게 감정 지원과 관계 자체를 거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것은 어머니가 그러한 사실을 인식하고 어머니의 내면의 마음이 C군에게 반사되어 흘러간 것으로 볼 수 있다.

 아울러서 C군이 아버지에 대한 죽음에 애도를 하지 못하고 내면의 마음 속에 갇힌 감정들이 소화 기관 쪽으로 흘러가서 심한 위와 장에 소화불량으로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다. C군은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아무런 감정의 표현이 거의 없었다는 말을 할아버지로부터 들었다고 했다. 그는 아버지의 죽음에서 애도의 과정을 충분히 거치지 못했다. 이 애통이 내면 마음 속에서 쌓여서 위와 장으로 흘러갔고 분노, 적대 감정이 가족 구성원들 친족 들 한데로 흘러가서 그들의 접촉을 막아 버린 것으로 보인다. C군은 아버지와 관계가 아버지의 죽음 이전까지는 좋았다는 점이 그것을 뒷받침해 준다.

 물론 이것은 C군의 첫 2시간 동안의 인터뷰에서 치료자가 분석한 것으로 이것은 이후에 치료에서 그것이 확실한지 아니면 다른 원인으로 나타날 것인지는 분석의 과정을 거치면서 드러날 것이다. 치료에서는 이러한 과정들이 하나씩 밝혀질 것이다. 치료의 과정에서 초점이 맞추어져야 하는 부분이 바로 그 애도의 과정을 다시 거치게 하고 마음 속에서 아버지에 대한 애정과 분노(가족을 버리고 먼저 떠나간 것에 대한 분노)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C군은 이후에 분석에서 심한 공포증임이 밝혀졌다. 그의 증세들은 그의 내면의 공포감으로 인한 두려움 때문에 자아 소멸을 방어하기 위해서 그의 증세들을 개발한 것으로 분석이 되었다. 그의 상세한 분석에 흥미가 있는 사람들은 다음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세요.

http://blog.naver.com/psychclinic/2212160079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