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은 늙어가는 것이 아니고 현명해져 가는 것이다 

 

 이 말은 스위스의 정신분석가인 융(Jung)의 명언으로 오늘 날 우리 나라의 노인 시대에 어떻게 준비를 하고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하는가? 100년 전에 예견을 한 유명한 경구이다. 융에 대해서는 이미 앞서 여러 개의 글들에서 밝힌바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의 삶의 발자취를 한번 살펴보고 융이 노인의 시대에 대한 그의 예측 진단을 통해서 지금 현재의 우리 나라의 노인 문제들의 심각함을 치료 사례를 통해서 기술하고자 한다.

 융의 본명은 칼 구스타브 융(Carl Gustav Jung)으로 그의 이름은 그의 할아버지가 바셀 대학 총장을 지냈고 정박아 아동을 위한 시설을 설립해서 사회에 공헌한 인물로 널리 알려진 칼 구스타스 융(Carl Gustav Jung)인 그의 할아버지의 이름을 그대로 따서 지은 것으로 역동적 정신의학의 역사에서 엘렌버그(Ellenberger, 1970 주㈜: 참고)가 제 Ⅷ 장 융의 삶과 업적에서 밝히고 있다.

 치료자(필자)는 엘렌버그의 융(Jung) 편과 어네스트 존(Ernest Jones 주㈜: 참고)프로이트의 삶과 업적에서 프로이트와 융(Jung)과 관계에 대한 글들을 읽으면서 융과 정신분석학 그리고 그가 창조한 분석 심리학에 대해서 잠깐 소개를 하고자 한다.

 융은 스위스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개신교 목사였고 할아버지는 위에서 밝힌 것처럼 바셀 대학 총장을 역임한 사람으로 융이 유명한 학자였던 할아버지를 닮도록 이름을 할아버지의 이름 그대로 지었다고 밝히고 있다. 융은 어린 시절에 아버지와 종교적인 갈등으로 사이가 좋지 못했다. 그의 집 인근에서 정신병원이 있었고 이것이 융이 정신과 의사가 되는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

 융은 어린 시절부터 약했고 동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해서 불행한 초, 중학교 시절을 보냈는데 특별히 중학교 1학년 때 한 동료와 싸움으로 기절한 사건이 있었고 이후에 융은 6개월 동안 학교에 가지 않았다. 아버지가 그의 집을 방문한 친구에게 아들의 장래가 걱정된다는 이야기를 엿듣고 나서 정신을 차려서 학교에 다시 다니게 되었고 고등학교 시절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그 사건은 융에게 마음의 상처로 남았고 그가 프로이트와 결별 후에 6년 동안 칩거 생활에서 자신의 꿈을 그림으로 그려서 그의 무의식 세계를 분석하면서 그를 평생 동안 따라다니던 어린 시절의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다.

 융은 스위스에서 명문대학인 바셀 대학 의학부에 들어가서 5년의 의대생활을 마치고 정신과 의사가 되었다. 바셀 대학은 니체가 21세 때 그 대학에서 교수로 강의를 한 대학으로 정평이 나 있었던 대학이었다. 융은 대학생 때부터 특별히 초능력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그의 어린 시절에 그의 먼 인척이었던 한 누나가 염력으로 물건을 들어 올리는 것을 보면서 신기해 했던 것에 대한 연구를 대학생 때 특별 연구를 발표를 해서 관심을 끌었고 이것은 이후에 융이 프로이트와 결별하고 신화와 전설과 종교와 상징주의와 초능력 심리학 등의 연구로 이어지게 된 단초가 된 것으로 보고 있다.

 융은 바셀 의대 정신과를 졸업하고 스위스의 쥬리히에서 유럽의 최초이고 세계에서 처음으로 설립된 부르고졸리(Burgholzli) 대학정신 병원에 레지던트 과정을 밟으면서 9년 동안 근무를 했고 치료 국장으로 재직하다가 정신분석 학회에 가입하면서 사직을 했다. 부르고졸리 대학 정신병원은 유럽의 정신과 의사로써 전설적인 인물인 유진 블루러(Eugen Bleuler)가 총장으로 있었다. 유진 블루러는 그의 정신병원에서 조발성 치매 환자들(정신분열증)15년 동안 연구한 조발성 치매가 젊은이들의 치매가 아니고 정신분열증(Schizophrenia)라는 신조어를 만들어서 1911년에 발표함으로써 처음으로 정신분열증 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게 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최근에 2010년에 조현병이라는 이름으로 개정(2018, 2, 3, 위키 백과 참고)이 되었다.

 융은 프로이트 보다 19살 연하이고 에들러(Adler) 보다 5살 연하이다. 프로이트가 1900년에 꿈의 해석을 출판하면서 세계적인 명사가 되었을 때 융이 꿈 해석을 읽고 감동을 받아서 프로이트에게 편지를 보냄으로써 두 사람은 서로 연결이 되었고 융이 부르고졸리 대학병원에서 유진 블루러의 권유로 단어 연상법을 개발해서 정신과 환자들의 심리 검사용으로 만든 것을 프로이트에게 보내면서 서로 만나기 이전부터 이미 돈독한 관계가 되어 있었다. 1907 2월에 융이 비엔나의 프로이트를 찾아가서 만나게 되었고 첫 만남에서 13시간 동안 대화를 나눈 것을 유명한 일화로 남아 있다. 그 해 9월 달에 정신분석학회 회원으로 등록을 하면서 5년 동안 프로이트와 돈독한 밀월 관계를 유지하면서 1909년에 프로이와 함께 미국의 마사츄세트 주의 클라크 대학 20주년 기념식에 초빙 연사로 두 사람이 공동 초빙으로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하게 된다. 그는 쥬리히에서 정신분석 학회를 창립하고 쥬리히 대학에서 정신분석학을 강의를 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의 회원들은 거의 모두가 유태인이었으나(4명이 유태인이 아님) 융이 유태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리고 프로이트가 이미 수제자로써 점 찍어 놓았기 때문에 이후에 1910년부터 국제정신분석 학회의 회장으로 3년 동안 정신분석을 대표하는 국제적인 인물로 활동을 했다.

 그러나 프로이트가 융을 그의 뒤를 이어줄 수제자로 점 찍어 놓았던 것과 반대로 융은 프로이트 밑에서 정신분석을 이어나갈 사람은 아니었다. 프로이트를 만나기 이전에 그는 이미 그의 독자적인 분야를 개척하고 있었다고 엘렌버그(Ellenberger, 1970)는 밝히고 있다. 그는 프로이트의 오디프스 콤플렉스와 리비도 이론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고 그가 신화, 전설, 종교 등으로 정신분석을 확대해 나가고 있었기 때문에 결별의 수순은 이미 예정되어져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1911년에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 너도 나도 정신분석을 하고 다니는 사이비 분석가들 때문에 프로이트는야생 분석이라는 논물을 통해서 정신분석은 섹스심리학(psychosexual)이라고 밝히면서 전문적인 공부를 해야 함을 밝혔다. 정신분석은 프로이트가 신경증의 연구로 태어난 것이기 때문에 프로이트는 엄격하게 정신분석이 신경증의 연구에 국한 한다고 밝혔기 때문에 프로이트의 제자들이 융이 정신분석의 범위를 벗어나서 경고를 해야 한다고 불평을 하는 것 등등이 서로 갈등을 일으킴으로써 융은 스스로 국제 정신분석학회 회장과 정신분석 학회 회원에서 탈퇴하고 그의 스위스의 정신분석 학회를 해산 그리고 쥬리히 대학에서 정신분석 강의를 철회하고 스스로 정신분석과 단절하고 칩거해버렸다. 융은 이미 부르고졸리의 총장이었던 유진 블루러와 이미 몇 년 전에 결별했고 프로이트와 결별에서 그 당시 정신분석학적인 세계에서 영구적으로 사라져버렸다.

 이후 6년 동안 융은 자신의 환각, 환영의 경험인 어린 시절의 악몽의 분석으로 들어갔다. 그는 그의 악몽들을 그림으로 그리면서 무의식의 근거를 찾아 나갔다. 어느 날 그의 꿈 속에서 늙은 여성과 대화를 하는 꿈을 분석하면서 융은 그 늙은 노파를 그 자신의 여성적인 자아로서 애니마(Anima)로써 이름을 붙이고 반대되는 남성상을 에니무스(Animus)라고 명명을 했다. 우리의 마음 속에서 존재하는 여성상은 니체가 이미 오래 전에 우리의 어머니의 이미지가 우리의 여성상으로 그 여성상이 외부에 투사되어져서 여성들에 대한 친밀감 혹은 적대 감정의 근원이 된다고 주장을 했었다. 융은 특별히 무의식적인 환각들을 분석을 할 때 특별히 현실에 발을 담그고 분석을 할 것을 경고를 했다. 현실 감각을 상실하게 되면 환각 속에 빨려 들어가서 정신증이 될 수 있음을 경고를 했다. 6년 후에 1921년에 그가 칩거해서 사회로 복귀 하면서 성격의 유형을 발표 하면서 그는 우리의 마음 속에서 여성상과 남성상을 외향성과 내향성으로 그리고 생각과 느낌, 직관과 감성으로 8개의 유형으로 분류를 해서 이후에 성격심리에 연구에 공헌을 했다.

 특별히 프로이트가 나치로부터 박해를 받아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서적들이 독일에서 불태워지고 박해를 받게 되면서 융이 나치에 의해서 독일 인들의 아리안 심리학과 정신분석의 차이점을 연구하는 학회의 회장으로 부임하게 되면서 이후에 프로이트의 제자들로부터 프로이트를 보호하지 않고 박해자로 공격을 받았던 것에 대해사 융은 그가 그 직책을 맡을 때 그러한 유형을 모르고 맡았다가 즉각 사임을 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융은 부르고졸리 정신병원에서 정신분열증 환자들 즉 조현병 환자들을 연구하고 치료를 하는 정신과 의사로써 출발을 했으나 그는 조현병이 심리적인 독극물에 의해서 발병을 하는 생리적인 근거로 인식을 했기 때문에 결국은 정신증의 연구를 포기하고 신경증을 치료하는 심리학자로 변신을 했다.

그는 우리의 마음 속에 여러 개의 ego 들의 통합을 통해서 한층 더 성숙한 사람으로 성장해 나가는 것을 자아(self)로 지칭하고 이러한 자아를 목적으로 한 삶의 과정을 개인화로 불렀다. 즉 사람의 성숙하고 통합된 지혜로운 자아, 현명한 자아로 성장해가는 것으로 이러한 통합된 자아의 성장에 걸림돌이 되는 장애물들을 제거해서 끝까지 성장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심리치료의 목적이라고 정의를 했다. 융은 우리의 마음 속에 숨겨진 그림자인 단점들이 많아질수록 악인의 가능성이 많아진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마음의 문을 열어서 햇볕이 들어오도록 소통의 역할을 강조 했다. 독일의 저명한 작가인 헤르만 헤스가 융으로부터 2년 동안 분석 치료를 받았고 그의 대표작인 데미안의 주인공은 융의 삶을 모델로 한 것으로 젊은이가 갱단에 가입해서 불행한 젊음을 개인화 과정을 통해서 한층 더 현명한 사람으로 변모해 나가는 것으로 평론가들은 논평을 하고 있다. 또한 융으로부터 알코올 중독으로 2년 동안 분석치료를 받은 로랜드(Roland)라는 의사가 이후에 재발하면서 다시 융을 찾아갔을 때 융이 옥스포드 그룹 치료에 가압을 추천해서 그가 이 그룹에서 치료를 받다가 에디(Eddy)를 만나서 두 사람이 이후에 알코올 중독이라는 모임인 AA(익명의 알코올 중독자 모임) 치료 모임을 만들게 된 것이 융의 조언으로 시작된 것임이 최근에 밝혀졌다.

융은 프로이트와 결별 이후에 정신분석이라는 호칭을 사용하지 않았고 그는 자신의 심리학을 분석적 심리학(Analytic Psychology) 혹은 콤플렉스 심리학(Complex Psychology) 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융의 업적을 후세의 평론가들은 신화와, 전설, 종교, 철학, 문학, 예술, 신비주의, 연금술의 분야들로 이들을 심리과학으로 해석을 하는 철학자로 변신해 갔다. 후세의 평론가들은 융을 신화와 종교 그리고 자연주의 철학의 연구의 중간에 인간의 영혼을 과학적으로 연구한 심리학자로 평가를 하고 있다.

 이제 융이 노인들은 늙어가는 것이 아니고 지혜로워서 간다, 현명해져 간다는 말의 의미를 통해서 우리 사회에서 노년을 미리 준비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지금의 노인들 문제로 되돌아가 보자.

 우리의 주변에서 발생하고 있는 노인들의 심각한 문제점들을 보라! 황혼 이혼이 젊은이들을 결혼 초반기의 이혼 비율을 초과했다는 소식은 이미 오래 전에 TV와 신문 방송을 통해서 보도가 되었다. 예를 들어서 2017 4월에 연금 분할 부부가 2만 명을 넘어 섰다는 신문 기사가 그것을 증명해주고 있다(늘어나는 황혼 이혼으로 연금 수급마저 서러운 노인 남성들에 대한 신문보도, 2017, 4, 11일 서울 신문).

어디 그것뿐이랴! 노년기에 부부 싸움으로 남편이 부인을 살해하거나 부인이 남편을 살해하는 사건들이 연일 터져 나오고 가족들의 부담감으로 이제 갈 곳이 없는 노인들이 요양원으로 내 몰리면서 손과 발이 묶여 있는 노인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에 밀양의 요양원 화재(2018,1, 26) 사건으로 결국은 40(2018, 2, 4)의 노인들이 질식해서 숨지는 사건(손과 발이 묶인 노인이 포함)을 보면서 노인 치매 역시 노년의 심각한 문제가 아닌가!

 옛날에 인간의 수명을 60세로 환갑이라는 이름으로 60세를 넘어가면 자신의 나이가 아닌 남의 나이를 먹어간다는 뜻으로 축화를 해 주었지만 지금은 의학과 과학의 발달 덕분으로 평균 수명이 80세로 증가하면서 20년 간의 공백이 생기게 된 것이다. 여기에서 연장된 수명의 여유가 준비가 되지 않는 노인들에게는 악몽으로 지옥으로 변모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노년의 심리적인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 와 있음을 직감하고 치료자(필자 역시 노인으로 71)에게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받고 있는 두 사람의 사례를 통해서 그들의 부모님의 심각한 심리적인 문제들을 분석으로 다루면서 노인들의 심리적인 문제에 경종을 울리고자 하니 부디 노인들이 이 글을 읽고 각성하고 깨달음을 얻어서 지혜로워지기 바란다.

 첫 번째의 젊은이 A 씨는 치료자에서 11년 동안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받고 있는 젊은이로 그를 통해서 치료자는 그의 부모님을 잘 알고 있다. 심리치료는 문제를 가진 사람과 부모님의 상호작용으로 그들의 다자관계를 분석으로 다루면서 그가 어떻게 영향을 받고 영향을 주는지가 분석으로 드러나게 되어있다. 그의 어려움은 그가 한번씩 설과 추석, 부모님의 생신, 기제사 등으로 부모님과 만나고 나면 A 씨는 몇 일 동안 불안함 때문에 잠을 자지 못하거나 마음의 안정을 취하지 못해서 안절부절 못하는 상황들을 분석을 통해서 그가 부모님과 상호작용의 영향력의 결과임이 밝혀짐을 통해서 치료자가 그의 부모님을 저절로 알게 된 것이었다.

 그의 부모님은 둘 다 사범학교를 나온 재원들로 고교시절에 미술동아리 모임에서 서로 만나게 되어 연애 결혼을 한 부모로써 신 세대 부모님으로 어머니는 IMF씨까지 교사생활을 했고 아버지는 교사로써 시작했다가 그 당시 교사들의 박봉과 인기 없는 직업이어서 교사 직을 포기하고 공무원 시험으로 서울의 중앙청에서 고급 공무원이 되었다가 그의 형님이 일본에서 북송선을 타는 바람에 연좌제에 묶여 미래가 불투명해지자 세무 공무원으로 이동을 해서 정년 퇴직 이후에 세무사로 4명의 직원들을 데리고 10년 동안 세무사로 일하다가 은퇴한 사람으로 부모님은 젊은 시절부터 철저한 노후 준비를 해서 경제적으로 풍족한 삶을 누리고 있는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철저한 건강 관리로 치아를 닦을 때 칫솔질 이후에 실로 이빨의 구석구석을 닦으면서 관리한 덕분에 70세의 후반의 나이에도 단 1개의 이빨을 제외하면(최근에 치과 병원에서 치료받음) 아무런 이상이 없을 정도로 그리고 아버지는 국선도로 10년 전까지 철저한 건강 관리를 한 것으로 아들 A씨의 입을 통해서 밝혀졌다.

 문제는 모든 일에서 은퇴 이후에 잠에 잠이 오지 않아서 잠을 이루기 위해서 시작한 술이 알코올 중독으로 변질 되면서 부모님의 삶에서 먹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젊은 시절부터 하루에 탁주 2병을 매일 같이 마셔오다가 중년의 나이에 담배(하루에 1.5 )와 술을 마시면 건강에 좋지 않다는 의사의 경고로 10년 동안 술과 담배를 끊었다가 불면증을 앓게 되면서 시작을 했다는 것이었다.

 가족들의 불평에 대해서 아버지는 탁주는 술이 아니고 곡주이기 때문에 음식과 같다, 하루에 2병은 문제가 없다, 아버지의 아버지와 할아버지 즉 고조 할아버지, 증조 할아버지가 모두 매일 같이 식사 때 반주로써 음료수로써 술을 마셔온 사람들로써 조상 때부터 술과는 인연을 끊을 수 없는 가문의 전통으로 탁주 예찬가가 되었다. 그는 다른 술들은 입에 대지 않고 오로지 탁주만 마시는 사람이었다.

 이미 아버지는 술을 마시고 길거리에서 넘어져서 구급차에 실려서 응급실에서 머리의 찢어짐 때문에 몇 바늘을 꿰매는 사건이 4번이나 있었다, 술을 마시면 골목길의 구석진 곳에서 아무데나 쓰러져 잠을 자는 버릇으로 온 가족들이 비상이 걸려 있는 상황이었다.

 문제는 어머니가 이것을 말리게 되면서 부부싸움으로 변질되면서 하루가 멀다 하고 온 가족들에게 비상이 걸리는 것이 일상화 되었다. 아버지는 이미 알코올 중독으로 알코올 중독 병원에 2번이나 2개월씩 입원을 해 보았으나 효과가 없었다. A씨의 가족은 장남인 A(미혼)와 세 명의 여동생들은 모두 출가를 해서 집에는 부모님만 거주를 했다.

 11년 전에 A씨는 자살 직전의 막다른 골목에서 치료자의 저서인 ”(정신분석학적인 관점에서 본 자아의 성장과 발달)을 읽고 치료자의 홈 페이지에 접촉한 결과로 치료자에게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받게 되면서 치료자가 부모님과의 상호관계를 분석하면서 A씨의 문제가 가족들의 영향력이 심각한 것을 알고 A씨를 독립에서 본가에서 나오도록 해서 지금은 고시원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제 아버지의 음주 에피소드와 어머니의 갈등 관계로 이야기를 옮겨보자.

에피소드 1: 몇 년 전에 A씨를 제외한 온 가족들이 사위와 손자들을 포함해서 강원도에 2 3일로 가족여행을 갔을 때 아버지가 술에 취해서 이웃집 대문을 발로 차는 바람에 경찰이 출동하는 사고가 나서 온 가족은 여행을 취소하고 되돌아 온 사건이 있었다.

에피소드 2: 몇 년 전에 추석 때 온 가족들이 모였을 때(사위들과 손자 손녀들) 아버지가 술에 취해서 화장실이 방인 줄 알고 화장실에서 잠을 자겠다고 하면서 화장실에 드러누워있는 아버지를 사위들이 모셔내서 방으로 옮겼다.

에피소드 3: 작년 설날에 온 가족이 모였을 때 아버지는 술에 취해서 거실에서 화장실처럼 바지를 내리고 소변을 찌리는 바람에 온 가족이 대경실색하는 사건이 터졌다. 손자들과 사위들이 보는 앞에서 거실에서 오줌을 싸려고 하다가 저지 당하고 옷에 그리고 거실에 오줌을 흘리게 된 것이다.

 여러 번의 가족 회의에서 A씨를 통해서 알코올 중독 병원에 입원을 해야 한다는 결정이 내려져 있는 상황에서 이미 아들 A씨와 어머니가 강제 입원 동의서를 서명해서 보관하고 있던 중에 위와 같은 에피소드 사건이 발생한 것이었다.

알코올 중독 병원 입원 1: 그 시점에서 A씨의 분석 상담을 통해서 아버지가 알코올 중독 병원에 입원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으로 A씨는 인터넷에서 알코올 중독 병원을 체크해서 그 병원과 연락해서 어머니와 A씨의 동의로써 이미 2 장의 강제 입원 동의서를 어머니가 소지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2017 3 1일 날에 12시간 동안 부부 싸움을 밤새도록 하고 나서 어머니가 구급차를 불러서 xx 알코올 중독 병원에 입원을 시켰다.

 문제는 알코올 중독 병원에 입원한 후에 아버지의 행동이었다. A씨를 통해서 (1주일에 1 2시간 분석 상담) 가족의 면회 때 아버지는 병원의 남자 간호사로부터 담배를 몰수 당하고(하루에 1개피만 허용) 그리고 병원의 룰에 따라야 한다는 병원 규칙에 대한 정면 반발을 하기 시작했다. 병원에서 옷을 발가벗고 다니거나 복도에서 오줌을 찌리거나 하는 것은 물론이고 병원의 치료 프로그램에 참가하지 않고 밤에 오줌을 싸고 샤워를 하지 않아서 냄새 때문에 가족이 간병인을 고용하게 되었다. 면화를 가면 가족들에게 이곳은 병원이 아니고 감옥이다, 자유를 구속하는 감옥이지 치료를 하는 병원이 아니라고 분노하고 적대감정을 드러냈다. 매일 같이 어머니와 가족들에게 전화를 해서 퇴원시켜달라고 수십 번의 전화로 보채는 바람에 어머니는 아예 휴대폰을 꺼버렸다. 3개월 프로그램을 끝내지 못하고 2개월 만에 퇴원해서 집으로 돌아와서는 그 동안에 금지 당했던 탁주를 24시간 마셔 되고 온 가족이 비상이 걸리는 바람에 가족구성원들이 몸살을 앓고 있었다.

알코올 중독 병원 입원 2: 퇴원 후에 1주일을 견디지 못하고 어머니는 다시 비슷한 알코올 중독 병원에 아버지를 강제로 입원을 시켰으나 첫 번째 입원과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 병원 측에서는 아버지의 알코올 중독은 병원의 치료 프로그램에 협조하지 않기 때문에 금주 효과만 있을 뿐 치료 효과가 없다는 것으로 입원 2개월 만에 퇴원해서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최근의 사건들: 병원에서 종합 검진 결과 아버지는 금주를 하지 않으면 치매의 현상이 빨리 진행될 수 있는 경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하루에 최소한 탁주 2병을 마셔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다. 어머니는 의사들을 통해서 술을 마시게 되면 치매가 빨리 올 수 있다는 경고에 아버지가 술을 한 방울만 마시면 뇌세포가 파괴된다고 절대로 입에 술을 대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외출을 하려고 하는 아버지와 외출을 하면 술을 마시게 되고 술을 마시면 구석진 곳에 쓰러져 잠을 자거나(몇 번 순찰차에 발견되어 집으로 호송) 옷에 오줌을 찌리거나 넘어져서 머리가 4번이나 터져서 응급실에 입원한 사건들 때문에 어머니는 아버지의 바지 자락을 잡고 울면서 외출을 막으려고 하는 두 사람의 부부 싸움이 터질 때마다 어머니는 자녀들에게 호출 비상을 걸어서 온 가족 구성원들이 집으로 달려오는 사건들이 비일비재 했다. 치료자는 A씨의 입을 통해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갈등 관계를 다음과 같이 분석할 수가 있었다.

분석 1: 아버지는 80대 초반으로 부부 싸움에서 한번도 어머니를 구타하거나 폭력을 행사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단지 매일 같이 탁주 2병 이상을 마셔대는 것 때문에 어머니와 갈등을 일으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었다. 치료자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부부로써 남편과 부인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어머니(부인)와 아들(남편)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분석을 할 수 있었다. 아버지의 음주 행동은 A씨의 입을 통해서 나온 행동들을 분석한 결과 아버지는 분노하게 되면 술을 마심으로써 어머니에게 보복을 하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아버지가 기분이 좋을 때는 탁주를 2병에서 그치는데 아버지가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3병 이상으로 심하게 기분이 나쁜 때는 밤과 낮이 없이 24시간 마신다는 것이었다. 밤에 잠이 오지 않으면 새벽 2시 혹은 3시에도 편의점(24시간)에 가서 탁주를 사셔 마셔 되는 행동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 엄마와 아들 관계의 첫 번째 이유였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의사 소통을 분석해 본 결과 어머니의 남편에 대한 대화 스타일이 유치원,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하는 대화 스타일이라는 점이 두 번째 이유였다. 예를 들어서 어머니는 항상 아버지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고 감시하고 이래라 저래라 명령하고 지시하고 컨트롤하려고 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아버지는 컨트롤과 명령, 지시, 강압을 싫어하는 혐오하는 사람으로 그의 어머니(A씨의 친 할머니)로부터 어린 시절에 착한 아들 효자 아들로써 성장한 과정이 그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아버지는 화가 나면 술로써 보복을 한다는 것으로 아버지는 무의식적으로 사춘기의 아들이 부모님의 간섭과 명령과 처벌에 반발해서 부모님이 가장 싫어하는 행동을 유발해서 부모님을 처벌하는 사춘기 소년의 행동과 유사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약물과 식사와 위험한 도발 행동 때문에 아버지를 챙기기 위해서 아버지 곁을 떠날 수 없는 유아기의 어린이들을 돌보는 엄마의 역할을 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결국은 이러한 관계가 서로를 밀착시켜서 물고 물리는 관계로 변하면서 아버지가 질식을 느낄 때마다 아버지는 술로써 분노한 행동으로써 어머니가 가장 싫어하는 흡연(하루에 담배 1.5갑을 피우기 때문에 온 아파트에서 금연 경고문을 붙이고 이웃 사람들이 노골적으로 불평하는 것에 어머니가 기겁하고 있다는 사실)와 음주로써 폭행과 폭력을 하지 않고 어머니가 가장 싫어하는 행동으로 보복을 하고 있다는 것은 아버지 자신도 어머니 자신도 모르고 서로 물고 물려 있다는 것을 치료자는 전문 용어로써 부부의 무의식적인 공모라고 부른다(정신분석적인 용어로는 투사 동일시 상대방의 무의식적인 소망을 감지하고 상대가 원하는 대로 행동을 하는 것). 가족 치료 학에서는 밀착된 물귀신 작전(enmeshment – 질식 관계, 밀착된 관계의 전문 용어)으로 이러한 관계를 하고 있는 친밀한 관계의 과도한 밀착 관계는 결국은 서로의 파괴와 파멸로 결과 한다는 전문가들의 연구 결과이다.

분석 2: 치료자는 아버지의 제 1 차 알코올 중독 병원에 입원 후에 2주일 후에 아버지의 면회를 마치고 온 A씨의 입을 통해서 밝혀진 아버지 이상 행동을 분석하면서 틀림없이 아버지는 병원의 룰에 치료 프로그램이 참가하지 않고 꺼꾸로 행동을 할 것이라고 예견을 했다. 여기에서 치료자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부부싸움을 이제 지금부터는 과거에는 소모적인 전쟁이라면 지금부터는 핵전쟁으로 변질 것이라고 이야기를 해 주었다. 왜냐하면 병원에 남자 간호사에 대한 분노와 알코올 중독 프로그램에 대한 분노가 누적되면서 그리고 또 한가지는 어머니가 강제로 아버지를 병원이라기 보다 감옥소에 감금시키고 퇴원을 외면하는 것에 대한 분노 때문에 퇴원 후에 24시간 술로써 어머니를 보복할 것이라고 예언을 했다. 그 결과는 정확했다. 아버지는 퇴원 즉시 24시간 술로써 세월을 보내면서 온 가족이 다시 비상이 걸리는 사태로 발전한 것이었다. A씨는 치료자의 이러한 분석에 처음에는 반신반의로 80% 만 인정을 했으나 퇴원 후에 아버지와 어머니의 핵전쟁이 100% 정확하다고 혀를 내 둘렀다.

 증거 1: 아버지가 첫 번째 알코올 중독 병원에 입원을 했을 때 2주일 후에 면화를 간 A씨의 입을 통해서 아버지가 병원의 강압과 명령과 지시에 분노해서 노발대발하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입원 첫날에 아버지는 가지고 갔던 2( 20여 개의 담배 갑)을 근육질의 남자 간호사로부터 압수당하고 하루에 1개피의 담배가 허용되어지는 바람에 아버지는 담배를 피우는 욕구를 참고 견딜 수가 없어서 1개의 담배를 피우고 나면 할 수 없이 병원의 휴게실에 버려진 담배 꽁초를 주워서 피우면서 내가 남의 피우다 버린 담배 꽁초를 주워서 피우는 처량한 신체, 비참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 되었다라고 노발대발하고 있다는 것과 병원의 규칙과 프로그램에 청개구리처럼 꺼꾸로 행동을 하면서 반항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 병원에 치료를 받기 위해서 입원하면서 집으로부터 어머니의 간섭으로부터 해방된 것으로 표면적으로는 보이지만 내면적으로는 아버지는 병원에 입원을 해서 사실은 남자 간호사로부터 어머니의 역할(간섭과 통제, 지시 명령)에 역시 질식을 하고 있다는 것으로 분석되어졌다.

증거2: 아버지의 면회를 가는 A씨와 여동생들의 입을 통해서 아버지는 나는 절대로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강압을 해도 나는 항복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자유로움을 원한다” “나는 간섭과 통제를 증오한다””나는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싶다”, “내가 젊은 시절에 열심히 노력해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없는데 왜 나가 마시고 싶은 탁주 2병마저 마시지 못하는가?” “탁주 2병은 불과 몇 천원의 비용으로 경제적인 부담을 지우지 않는다”, “원할 때 술을 마시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싶은데 나를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고 명령하고 지시하고 통제하면 할수록 나는 더욱 더 강해지고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아버지의 말들은 어머니의 질식에서 벗어나고 싶은 소망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증거 2: A씨의 간청으로 아버지와 어머니의 문제의 해결 방안을 탐색하면서 치료자는 어머니의 질식으로부터 아버지를 분리시켜서 해방시켜야 한다는 아이디어로 어머니를 약 3개월 동안 아버지로부터 분리시켜서 떼어내고 어머니의 그 자리에 A씨가 3개월간 집에서 아버지와 함께 있으면서 하루에 탁주 2병을 허용해주고 아버지와 대화의 상대가 되어서 아버지를 간접적으로 치료를 하는 보조 치료사 역할을 하도록 해서 A씨의 허락을 얻어내서 실행 직전에 어머니에게 이러한 문제 해결 방식을 이야기를 했을 때 어머니는 거부를 했다. 그 이유는 너의 아버지는 내가 없으면 하루도 살 수가 없다. 매일 같이 정해진 약물들을 제 시간에 맞추어서 복용하도록 하고 식사를 준비해주어야 하는데 만약에 내가 아버지로부터 조금 이라고 시간을 비우게 되면 아버지가 외출해서 술을 마시고 머리를 깨는 사고들이 4번이나 있었기 때문에 어떤 일이 벌이질 것인지 명약관화 한 이야기가 아닌가?라고 반대를 했다. 물론 A씨는 아버지에게 통제와 간섭과 지시와 명령을 하는 어머니로부터 분리해서 자유와 해방을 가지는 것이 어떠하겠는가?라고 타진을 했을 때 아버지는 너의 어머니가 그래도 나에게 잘 해준다.” “내가 어떻게 남자로써 장 바구니를 들고 부식을 사고 밥을 해 먹을 수가 있겠는가?”라고 반대를 했다.

 이것이 바로 부부의 무의식적인 공모 즉 자신들로 모르게 짜고 치는 고스톱이 아닌가? 이것이 바로 전문가들이 말하는 서로가 물고 물리어 있기 때문에 물귀신처럼 밀착해서 서로가 파멸로 가고 있음을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두 번째 사례는 치료자로부터 5년 전에 결혼 이전부터 결혼 이후 임신 7개월까지 총 4 6개월 동안 정신분석 치료를 받았다가 자녀의 출산으로 치료가 중단 되었다가 작년 7월 달에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재개해서 남편 문제와 자녀 문제들로 1년째 정신분석을 받고 있는 B부인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부부 관계의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부인 B씨는 6살의 아들과 4살의 딸을 둔 부인으로 작년 1월 달부터 다시 간호사로 재 취업을 해서 자녀 출산으로 중단된 간호사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다.

 B부인의 아버지는 시골에서 목사로 재직하고 있으면서 3명의 딸과 1명의 아들을 두고 있고 두 번째 딸이 바로 B부인이다. B부인은 어머니가 40대 중반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6개월 후에 아버지가 재혼을 해서 지금의 양모와 함께 약 15년 동안 살면서 아버지의 문제가 본격적으로 서서히 드러나게 되었다. 아버지는 이제 70세로 접어들면서 심각한 정신적인 장애문제로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이 드러났다.

 이미 5년 전에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으면서 친정 아버지의 문제를 고민 상담으로 이야기를 많이 했기 때문에 치료자는 해마다 봄철이 되면 아버지의 정신장애가 심각해서 대학 정신병원에서 1달 동안 입원을 반복하고 있는 아버지의 문제를 잘 알고 있었다. 아버지는 딸인 B씨의 요청으로 치료자와 2시간 컨설팅을 받은 적이 있었다. 아버지의 진단명은 심한 공황장애였다. 아버지는 치료를 받기를 원하는 가족들의 소망에 반대해서 경제적인 문제를 이유를 내세워 치료를 받지 않았다.

 아버지는 심한 정신과적인 문제로 목회 직책에서 은퇴했으나 양모가 신학을 공부해서 목사 자격을 따서 지금 아버지가 물러난 자리에 양모가 목사 직책을 맡아서 시골 교회를 그대로 운영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친모의 사망 이후에 양모와 재혼을 하게 되면서 아버지의 정신과 문제가 등장했다는 점에서 아버지와 양모 사이에 관계들이 B부인의 입을 통해서 분석되어질 수 있었다. 양모는 말이 많고 달변가여서 첫 결혼에서 40대 초반에 남편의 사망으로 이후에 아버지와 재혼을 하게 된 것이었다. 양모의 딸과 아들은 성장을 해서 출가해서 아버지와 재혼을 했을 때 이미 그들은 독립해서 살고 있기 때문에 명절에 되면 온 가족들이 다 모이게 되면 혼합 가족으로 껄끄러운 관계가 되어버린다는 것은 치료자가 오래 전부터 잘 알고 있었다.

 이벤트 1: 지난 달에 아버지는 xx 대학 정신병원으로부터 입원을 하라는 권유를 받고 경제적인 문제로 고민을 하고 있다는 전화를 양모로부터 받게 되었다. 아버지의 증세는 심각해서 다시 종합 검사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역시 간호사로 아버지의 지역 인근에서 종합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출가한 여동생이 아버지의 약물을 체크해 본 결과 아버지는 정신과 약물들 중에서 최고 높은 수준의 약물을 복용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B부인에게 연락이 와서 알게 되었다고 했다. 문제는 그렇게 과도한 약물이 효과가 없다는 것 때문에 다시 병원에 입원해서 정밀 진단을 받아 보자는 것이 대학병원의 제의였다.

이벤트 2: 얼마 전에 아버지와 양모가 부부 갈등으로 양모가 B부인에게 하소연을 한 것을 치료자에게 이야기를 해 주었다. 교회의 어떤 신도가 찾아오게 되자 목회자인 어머니가 아버지를 당신은 저쪽 방으로 자리를 피해주어야 하겠다는 말에 아버지가 노발대발해서 폭발을 했다는 것이었다.

이벤트 3: 양모는 아버지가 자주 내가 죽어야 한다”, “내가 없어져야 한다라고 말을 자주 하면서 어머니에게 적대 잠정을 드러내면서 눈에 살기를 띄는 것을 느끼기 때문에 양모가 이제는 부엌에 식칼이 보이지 않게 숨기게 된다고 B부인에게 호소를 한 것을 이야기를 해 주었다.

이벤트 4: 시골 교회의 열악한 경제적인 문제들 때문에 운영에 어려움뿐만 아니라 은행에서 대출받은 자금 때문에 매월 적자가 나오고 있다는 양모의 호소 때문에 아버지의 교회 은퇴 후에 4명의 B 부인의 가족과 2명의 양모의 가족들이 가족 회의를 통해서 한 가족이 20원씩 모두 120만원을 재작년부터 매월마다 지금까지 빠지지 않고 지원을 해 주고 있다고 B부인이 힘들어 하고 있는데 이번에 또 아버지의 병원 입원 비용을 호소하는 양모에 B부인이 분노하고 있었다.

이벤트 5: 친정 엄마는 40대 중반에 암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생명 보험 회사에서 약 1억 원의 보험금을 남기고 떠났다. 그 시점에서 세 명의 자녀들을 결혼으로 출가를 해서 독립을 한 상황이었으나 막내 남동생이 종합대학 입학을 해서 일학년 입학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친모가 사망 보험금으로 남긴 약 1억 원의 돈을 양모가 부동산 투사에 사용하면서 B부인의 분노를 일으켰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것에 대해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점점 말이 적어지고 양모가 모든 교회의 일들을 좌지우지하고 결정을 내리는 데로 아버지가 의존적으로 따라가고 있다는 것이 B부인의 불평이었다. 막내 동생은 부모님의 집에서 같이 사는 것을 싫어해서 독립해서 나오게 되었고 xx 종합 대학을 자퇴하고 인근의 전문대학에 들어가게 되면서 친모가 남긴 약 1억 원의 돈을 양모가 막내 남동생에게 가야 하는데 양모가 가로 챘다는 것에 대해서 B부인의 가족 구성원들 중에서 그 문제를 의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었다. 결국은 B부인이 아버지에게 왜 친모가 남긴 사망 보험금을 막내 동생에게 학자금으로 투자를 하지 않고 부동산 투사에 양모가 사용했는지?에 대해서 항의를 했을 때 아버지는 충격을 받아서 약 1주일 동안 혼란스러워했다고 양모가 분노해서 B부인에게 하소연을 한 사건이 있었다.

이벤트 6: 아버지는 한번씩 기억의 흔적이 가물가물해서 치매의 초반기가 온 것 같다고 B부인이 걱정을 했다. 양모가 이제 아버지의 행동과 언어 표현이 점점 치매 흔적을 나타내고 있다고 걱정하고 있다는 것과 그리고 B부인이 아버지의 병원 입원 소식에 놀래서 아버지와 통화를 했을 때 B부인이 아버지가 병원 입원을 앞두고 힘들어 하시는지?에 대해서 안부 전화를 했을 때 아버지가 이상 하게 과거와는 반대로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에서 힘들어 하시지 않는다는 말로써 딸의 말을 그대로 흉내를 내는 것에 대경실색을 했다고 털어 놓았다. 즉 아버지는 이제 언어 표현에서 치매가 오는 것 같다고 했다. 양모의 말에 의하면 아버지는 혼자서 옷을 입기가 어렵다고 한 말을 지적을 했다.

분석 1: 아버지는 양모와 결혼을 하고 나서 양모의 좌지우지에 눌려서 말이 없어지고 양모의 간섭과 지시에 의존적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은 이미 5년 전에 B부인의 입을 통해서 잘 알고 있었다. 아버지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부인의 좌지우지에 끌려가게 되면서 아버지는 점점 말이 줄어들고 분노가 쌓여가지만 그것을 말로써 표현을 하는 의사소통 능력에 결함이 있다는 것은 6년 전에 아버지의 컨설팅을 통해서 치료자가 잘 알고 있었고 B부인 역시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명절에 온 가족들이 같이 모이게 되면 항상 양모가 대변인 역할을 했다. 아버지는 말이 없어서 긴장된 표정으로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을 B부인이 여러 번 안타까움을 호소를 했다. 짧게 말하면 어머니의 자아는 점점 커지고 확대되어져서 남편을 좌지우지 하는 사람으로 그리고 남편의 자아는 부인의 간섭과 비난과 처벌 때문에 점점 작아져 가서 약 15년 이후에는 남편은 좌지우지 하는 엄마의 역할을 하고 있고 남편은 어린이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사례 A씨의 부모와 흡사했다.

분석 2: 그 증거로써 양모는 아버지와 결혼 후에 목사님의 사모님으로 존경을 받게 되었고 이후에 목회 학을 공부를 해서 목사 자격증을 따고 나서 아버지의 은퇴로 남편의 자리를 대신해서 목사님으로 존경을 받는 자리를 차지한 것이 아닌가!  지난 번에 인근의 신도가 목사님인 어머니를 찾아 왔을 때 어머니가 과거의 목사였던 아버지를 자리를 비켜 달라고 지시한 것이 아버지에게 분노의 폭발을 사게 된 것은 바로 아버지는 이제 목회자의 자리를 잃게 되자 뒷방늙은이로 전략했다는 증거가 아닌가? 여기에 대해서 B부인은 100^% 동의를 했다.

분석 3: B부인은 아버지가 정신과 약물의 최대치로 가속화 된 것은 아버지의 분노 조절의 어려움 때문에 감정의 폭발이 잦아지면서 어머니가 남편의 컨트롤이 어려워지자 아버지와 함께 xx 대학 정신병원에 중간 검진 때 함께 참석을 하면서 남편의 폭발적인 행동에 두려움을 느낀다고 호소를 하게 되는 빈도수가 늘어나서 정신과 의사에서 좀 더 강한 약물들을 주문하는 바람에 약물이 최대치료 증가된 것이 틀림없다고 스스로 분석을 했다. 치료자는 그녀의 분석이 정확하다고 칭찬을 해 주었다. B부인은 그 증거로써 얼마 전에 xx 대학병원 정신과에 검진 차 방문을 했을 때 아버지가 부인을 보고 내 혼자서 정신과 의사 선생님을 면담하고 싶으니 당신은 밖에서 나가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고 해서 양모가 밖에 기다리고 있었는데 정작 그 정신과 의사와 면담에서 아버지는 자신 지금 현재 아무런 문제가 없고 정신적인 문제가 없다고 해서 자신의 감정과 문제들을 숨기고 억압하고 있다고 양모가 B부인에게 호소한 것을 이야기를 해주었다.

 분석 4: 아버지의 정신과적인 장애들은 양모와 재혼 후에 아버지의 억압된 분노들과 적대감정들 그리고 신도들에 대한 분노들이 누적되어 무의식 속에서 갇혀 있는 것으로 분석이 되었다. 그 증거로써 6년 전에 아버지가 치료자와 2 시간 컨설팅 때 아버지가 머리 속에서 자꾸 욕설이 튀어나오려고 한다는 말에 어떤 욕설인지 말로써 표현을 해 보라고 했지만 아버지는 거부했다. 목사로써 욕설을 하라고 시키는 치료사 선생님에게 분노한다는 말을 B부인으로부터 전해 들었다.

 치료자는 욕설을 하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어떤 욕설과 분노가 누적되어져 갇혀 있는지?를 말로써 표현해 보라고 한 것을 아버지는 목사에게 욕설을 하라고 시키는 치료자를 오해를 한 것이 분명했다. 즉 아버지는 교회의 신도들에 대한 분노가 누적되어져서 마음 속에 억압되어져 있다는 것은 분명했다.

분석 5: 아버지는 이제 70세로써 정신적인 어려움 때문에 목회직책을 떠났지만 양모와 같이 살면서 시골 교회의 경제적인 어려움에서 그리고 스트레스적인 부부 생활에서 그리고 주변환경에서 해방된 것이 아니고 은퇴한지 약 2년이 되어가고 있지만 스트레스에서 해방된 것이 아니고 생활 환경은 옛날 그대로 바뀐 것이 없지 않는가? 양모는 교회의 경제적인 어려움과 은행 대출금의 연체 때문에 가지고 있는 부동산(값이 나가지 않은 야산과 노후의 아파트가 있음)처분하려고 하지만 팔리지 않음을 B부인에게 호소한 것을 치료자가 잘 알고 있었다.

해결책: 치료자는 B부인의 아버지 문제의 도움을 요청한 것에 대해서 위와 같이 분석을 하면서 아버지는 치료를 받으러 오지 않을 것을 잘 알기 때문에 대학병원에 입원을 해서 다시 알맞은 약물을 제공받는다고 해도 똑 같은 현상이 반복될 것임을 잘 알고 있다는 것과 그리고 아버지의 문제를 계속해서 방치를 하게 되면 적어도 몇 년 후에 아버지가 치매가 되면 양모는 아버지를 요야원에 입원시킬 것이 뻔하기 때문에 지금 조치를 취해야 할 적당한 시기임을 지적을 했다. 지금도 양모는 남편을 혹이라고 귀찮아 하는 기색이 엿보이는데 만역에 치매 기미가 보이면 즉각 양로원에 보낼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치료자는 부인의 호소에 부응해서 아버지를 어머니와 분리시켜서 기도원에 따로 보낼 것을 제의를 했다. 왜냐하면 어머니는 목회자 직책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아버지와 함께 기도원에 갈 수가 없고 어머니가 자주 아버지를 방문하지 못하게 아버지를 서울과 경기도 혹은 강원도의 먼 곳의 기도원을 물색을 해서 어머니와의 갈등과 그리고 주변 환경적인 스트레스로부터 해방을 시키고 아버지가 기독교 교인이기 때문에 통성 기도를 통해서 분노를 방출하고 서울에 살고 있는 큰 딸과 둘째 딸(B부인)이 한번씩 아버지의 문안으로 아버지의 감정을 지원해주면 아버지가 약물 치료 보다는 효과가 클 것이라고 조언을 해 주었다. 경제적인 문제는 이미 매월 120 만원씩 자식들이 지원해주고 있는 것이 양모가 아버지의 치료 비용에 사용하는 것이 아니고 생활 비용으로 쓰고 있다는 것에 분노해온 B부인은 매월 120만월 아버지의 기도원 생활 비용으로 전액을 사용하면 오히려 아버지의 치료 비용으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일거양득이 될 것이라고 즉각 실천으로 옮기기 위해서 가족구성원들과 의논하고 아버지와 양모를 설득시키겠다고 기뻐했다.

요약해서 정리를 해 보자, 노인은 늙어가는 것이 아니고 현명해지는 것이다. 지혜로워져 가는 것이다 라는 융의 경구는 의미 깊은 내용들이 숨이 있다. 인간이 유아기부터 성장과 발달을 해 나가면서 우리는 배우고 익히고 동일시를 통해서 자아가 점점 성숙해지고 성장하고 발달을 하는 것이 자연적인 발달이 아닌가? 그런데 중년기를 거처서 노년기에는 왜 계속해서 발달을 계속하지 못하는가? 그것은 경제적인 어려움과 일자리 상실로써 미래가 없어진 것에 희망을 상실하고 자녀들에 의존하게 되면서 과거의 좋지 못했던 부정적인 생각들에 휩싸이게 되면서 머리를 사용하지 많고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오늘 날 내 자신의 모습이 아닌가!

 노년기에 대한 준비와 기획을 젊은 시절부터 만들어 놓은 것을 권고하는 바이다. 젊음 시절에는 희망과 기획도 노력으로 살아 오면서 왜 노년의 기획은 생각해 보지 않았는가?  정신분석 학자인 융(Jung)와 에릭슨(Erikon)는 삶의 과정이 노년기에도 계속되면서 죽음의 순간까지 계속된다는 것을 강조를 했다. 성장은 죽을 때까지 계속된다는 말을 에릭슨이 남긴 말이다. 융은 우리의 ego는 계속해서 통합의 과정을 거치면서 개인화를 통해서 완성된 자아 쪽으로 죽을 때까지 진전하는 것을 개인화라는 말로써 표현을 했다. 우리는 책을 통해서 대인관계를 통해서 각종 정보들을 통해서 우리의 자아는 하루하루 성장해서 완성되어가는 과정이 아닌가? 라는 지적들에 깨달음을 얻어서 노년에 시간적인 여유가 생긴 것을 삶에 투자를 해서 지금까지 하지 못했던 일들을 기획하고 실천하면서 하루 하루가 반복되는 지루한 절망의 삶을 살 것이 아니고 하루하루가 새로운 어제와 오늘은 다른 발전된 삶으로 (치료자는 책을 읽고 공부를 하면서 어제보다 오늘은 한 페이지 한 개의 더 많은 정보를 그리고 한번 더 운동으로 몸의 건강이 나아져 가는 것으로 자아를 항상 성장시켜 나가고 있다) 기획하고 계획된 삶을 살아가도록 깨달음을 얻기 바란다.

 끝으로 치료자는 A씨의 부모님에 대해서 심리치료를 받을 것을 A씨에게 권유를 했다. 그들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정작 젊은 시절에 열심히 일한 개미처럼 노년에 경제적인 어려움이 없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부부싸움을 통해서 살고 있는 삶이 바로 노년의 준비와 기획의 부족으로 하루하루를 지옥으로 살고 있음을 아들 A씨를 통해서 깨닫게 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다.

주㈜: 참고에서 엘렌버그(Ellengerg, 1970)의 무의식의 발견: 역동적 정신의학의 진화와 역사의 900페이지의 서적과 에네스트 존(Ernest Jones)의 프로이트의 삶과 업적의 제 Ⅰ권(1953), 제 Ⅱ 권(1955), 제 Ⅲ 권(1957)의 총 약 1200페이지의 서적이 우리나라 말로 번역되어져 있으니 참고서적 안내에 들어가 보세요.

아래의 치료 사례는 최근의 A(사례에서는 Z씨로 표현)의 치료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대상: 심하게 불안한 32세의 남자 Z

증세:불안해서 물건을 사기 어렵고 어떤 결정을 내리는데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다른 사람들에게 말을 걸기가 어렵고 특히 부모님에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기 어렵다. 머리 속에 어린 시절에 상처 받은 잡다한 생각들 때문에 새벽 2-3시까지 잠을 잘 잘 수가 없음(처음 인터뷰 시에).  최근에 지난 주일에 찍은 단체 사진 안에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기 싫어서 책 속에다 꽂아 놓아 보이지 않게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하소연

접촉: 치료자의 저서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본 자아의 성장과 발달)을 보고 치료자의 홈페이지에 접촉한 후에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겠다고 연락이 옴

진단명: 심한 불안장애, 대인공포증, 자아가 너무 약한 자아 장애(첫 치료를 받으러 왔을 때의 그의 진단)

치료 기간: 1주일에 1 2시간씩 12년째 치료를 시작했음. 6 12 시간( 908 시간) 치료를 받고 있음

치료 결과:  추석 연후로 10일간 쉬면서 아버지는 마음의 안정을 되찾아서 술을 마시는 것이 절제되어지고 어머니가 아버지를 계속해서 화풀이 대상으로 갈아되지 않아서 소강 상태를 보이고 있는데 과거에 없던 특이한 것은 아버지가 TV 앞에서 "택시 운전사" "대조영"과 같은  과거의 영화, 연속극들을 반복해서 보면서 TV 앞에서 식사를 하고 TV 앞에서 영화를 보는 것에 취미가 생겨서 식사를 제때에 챙겨 먹고 술을 마시는 비율이 많이 줄어 들어서 다행히도 온 가족이 안정을 찾고 있다고 했음

치료의 과정 

 이번 주일 치료 회기에서 Z씨는 지난 주일에 서점에서 사고 싶었던 동물 그리기 책을 사려고 하다가 인터넷에서 사면 싸게 살 수 있다고 생각을 해서 집에 와서 인터넷에서 책을 사려고 검색을 해 보았으나 인터넷에 올라오지 않아서 다시 서점에 가서 그 책을 구입하면서 만화 부서를 둘러 보았더니 일본에서 수입된 만화로써 최근에 인기 있다고 판배되고 있는 한 개의 만화를 사서 내용을 읽어 보았더니 동화의 내용으로 어린이들이 보는 내용을 그림 동화 내용을 청년들과 성인 초기의 어른 들을 대상으로 그린 만화로써 최근의 유행을 알아 볼 수 있었다고 했다.

 그 만화를 사면서 만화 부서를 둘러 보았을 때 많은 만화들이 출판되어서 줄 지어 꽃혀 있는 것을 보면서 우리나라도 이제 만화를 출판하는 회사들이 제법 많이 늘어났구나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하면서 Z씨는 자신이 처음 만화를 할 때의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그가 대학 3학년 시점에서 약 3년 동안 만화를 그린 후에 자신의 만화를 단편으로 만들어서 한 만화 회사에 찾아 갔을 때 그 만화 담장자가 다른 사람에게 가지 말고 자신에게 오라고 하면서 자신의 Z씨의 만화를 돌보아주는 담당자가 되겠다고 약속을했다.

 그것이 무슨 뜻인지? 물어 보았을 때 Z씨는 그 만화 출판사에 책임 만화 담당자들이 몇 명이 있었는데 그들이 만화를 그리는 작가들을 서로 경쟁적으로 유치를 해서 그가 작품을 선발해서 출판을 하게 되면 자신의 인기가 올라가는 것으로 서로 줄을 잘 잡아야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을 은근히 하면서 자신에게 붙여야 앞으로 출판이 가능하다는 말을 했다.

 치료자가 그가 그 시점에서 출판사에 가지고 간 만화의 내용을 이야기를 해 보라고 했을 때 Z씨는 만화는 단편이 24페이지-25페이지 정도로써 한 페이지에 9개의 구역으로 나누는데 각 구역에 9편의 만화가 그려지면 총 216편의 그림들이 실리게 된다고 했다. 어떤 장에는 한 페이지에 한 개가 실리기도 하는데 대 강당에 학생들이 모여있고 교장 선생님이 훈화를 하면 한 개의 페이지에 한 장면이 실리게 된다고 부연설명을 했다.

 그 때 만화 출판사에 가지고 간 만화는 그 이야기가 다음과 같었다. 한 여자 고교 여학생이 그녀의 반에서 항상 2등을 하는 학생으로 1등을 하는 학생을 앞설 수가 없는 것에 고심하면서 죽자고 노력을 했으나 그녀는 추월할 수 없어서 질투와 시기심에 사로 잡히기 시작해서 죽자고 공부를 하면 할수록 성적이 점점 내려가자 어느날 그 1등을 하는 여학생을 아파트 옥상으로 불러 내어서 그녀가 보는 앞에서 옥상에서 뛰어내려서 자살을 하고 그 1 등을 하는 그 여학생은 그 충격으로 학교를 그만 두는 것으로 끝이 났다.

 이 내용의 만화를 읽어 본 그 만화가는 내용이 너무 비관적이어서 그러한 내용을 일반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으니 내용이 졸 밝은 것으로 그려 오라는 평가를 받고 그렇게 하겠다고 하고 집에 와서 열심히 만화를 그리는데 나중에 보니 그 만화 회사가 문을 닫아 버려서 그만 두게 되었다고 했다

 두 번째 그린 만화를 가지고 또 다른 만화 출판사에 찾아가서 그의 만화를 보여 주었더니 그 만화가는 아이디어의 스토리의 내용은 괜찮은데 주인공의 얼굴과 손 모양이 좀 서툴어 보이니 그것을 더 습작을 하면 좋겠다고 했다. 치료자가 두 번째 만화의 스토리를 물어 보았을 때 Z씨는 이번의 만화의 내용은 주인공이 꿈을  꾸는데 꿈 속에서 이상한 영혼들이 나와서 온갖 하소연을 하면서 꿈 속에서 영혼들과 이야기를 하는 것을 되풀이 하는데 어느 날 한 사람을 만나서 그와 함께 길을 가는데 그와 함께 길을 가는 그 사람이 꿈 속에서 보았던 그 길로 흡사해서 놀래서 그 사람에게 물어 보았더니 그는 죽은 영혼으로 그의 동생을찾아서 돌아다니고 있다고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사람은 이미 죽은지 100년이나 되는 죽은 영혼으로 나중에 그가 그의 동생의 영혼을 만나서 저승으로 가는 내용의 이야기였다고 했다. 그 만화를 손과 얼굴 표정을 습작을 하면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그 만화 회사가 부도가 나서 사라져 버렸다는 것을 알 게 되면서 허탈해졌다고 했다.

 그 후에 만화가 협회에서 전문 만화가 양성 1년 코스를 끝내고 그 시점에서 에니메이션 회사에 취업을 해서 약 10개월간 봉급을 받고 생활을 했다고 털어 놓았다. Z씨는 일본으로부터 에니메이션을 하청을 받아서 그것을 그려 주는 일을 하는 회사였는데 그람 한 장당 7원과 8원으로 한달 열심히 근무룰 해도 7만원 정도의 보수를 받는데 Z씨의 경우는 장애인 등록을 했기 때문에 장애인 복자연금으로 한달에 50만원이 나와서 한달에 총 57만원을 받았다고 했다. 그러나 장애인 복지 지원은 5개월만 지원이 되기 때문에 어머니에게 그렇게 이야기를 했을 때 어머니는 나중에 한달에 7만원을 받는다고 해도 계속 다닌다면 길이 열릴 것이라고 계속 다려라고 했으나 결국 그 에니메이션 회사가 10개월 만에 문을 닫아 버려 더 이상 다닐 수가 없었다.

 그 후에 Z씨는 안구를 만드는 개인의 가내 공업소 인데 장애인 센터로부터 소개를 받아서 그곳에서 개인 고객들에게 우편 발송을 하는 일이라고 해서 그곳에서 일을 하게 되었는데 대형 병원에 안과에 전화로 연락을 해서 안구 주문을 받는 일종의 텔레마켓팅이어서 2개월만 하고 그만 두었다고 했다. 보수가 얼마나 되었는지?를 물어 보았을 때 한달에 70만원을 받았느나 텔리마켓팅 그 자체가 힘들어서 그만 두었다고 했다.

 그 후에 아버지 어머니의 성화에 할 수 없이 사회 복지사 학원에 등록해서 약 1년 동안 공부를 하는 마지막 말에 치료자를 만나게 되어 심리치료를 받으러 오게 되었다고 했다.

 치료자가 Z씨가 대학 3학년 시점에서 먼화를 그려서 출판사를 찾아가서 자신의 만화 그림을 보여주면서 지도를 부탁했던 그 자아의 용기와 자신감과 최근의 삽회 전문가들이 Z씨의 그림을 보고 주문을 하려고 요구를 했을 때 자신의 그림이 비판을 받고 이것을 그림이라고 그렸느냐? 라는 비판을 두려워하는 그 자아와 비교를 하면서 치료자는 대학 3학년 때 만화를 그려고 있을 때의 자아의 자신감이 쵝근의 Z씨 자신의 그림을 보고 비판을 두려워하는 그 자아의 차이점을 어떻게 설명을 할 것인가?을 물어 보았다.

 Z씨는 그가 만화를 그려서 그 만화를 가지고 만화 회사에 가서 지도를 받게 되었다고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이야기를 했을 때 어머니는 너를 꼬드겨서 너의 재능을 이용해먹고 사기를 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네가 그들의 말을 믿고 따라가면 안된다라고 하면서 만화를 당장 그만두고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고 노발대발 했다. 아버지는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느냐? 만화를 그리는 것이 가장 어려운 작업으로 어슬픈 만화 그리기에 사로잡혀서 허송세월 보내지 말고 당장 사회 복지사 등록을 해서 자격증을 따고 취업을 하라고 대노했다.

 치료자는 Z씨가 에니메이션 회사에 10개월간 다닐 때는 그림을 그리는 일을 하는 회사인데 아버지와 어머니의 반응이 어떻했늕지?를 물어 보았을 때 에미메이션 회사에 취업을 해서 다닐 때는 돈은 얼마되지 않았지만 그림을 그리지 말라고 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즉 부모님을 일자리 그 자체를 원했지 그림을 그리는 것 그 자체는 간섭하지 않았다는 것을 새롭게 알 게 되었다.

 Z씨는 에니메시션 회사가 부도가 나고 나서 Z씨는 만화에 대한 부모님을 피하기 위해서 삽화를 그리게 되었고 그 삽화를 그리는 것을 삽화 학원에서 1년 동안 다녔고 그 후에 지금까지 삽회를 그리고 있다고 했다. 그는 만화가 아닌 삽회를 그리게 되면 부모님이 묵인해줄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그 이후에 그림 그리기 그자체를 그만두라고 해서 지금까지 서로 갈등을 빚어오고 있다고 실토를 했다.

 Z씨는 아버지가 원룸과 작은 백화점을 공동으로 투사를 해서 한 달에 180만원의 월세를 Z씨는 통장으로 불입해주고 있는데 그 시점이 언제인지?를 물어 보았을 때 Z 씨는 사회 복지사 공부를 하고 있을 동안에 아버지가 캐토릭 청년부에 가입을 해서 성당에 나가면 한달에 180만원씩 지원을 해 주겠다고 해서 나가게 되었고 복지사 공부가 거의 마지막 단계에서 치료자를 알 게 되었다고 했다.

 치료자는 Z씨가 아버지가 매월 180만원을 지원해주면서 그 돈에 조금씩 쌓여서 900만원이 되었을 때 어머니가 당장 돈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인출해 나고 그리고 또 다시 약 600만원의 돈이 모이게 되었을 때 또 아머니가 인출해 갔는데 그 후에 600만원의 돈이 모였을 때 치료자를 알 게 되었고 그 중에서 xxx을 인출해서 치료자에게 심리치료를 받으러 오게 된 것이 아닌가?라고 물었을 떼(치료자는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그는 그것이 아니고 그가 에니메이션 회사에 다닐 때 그 때 한달에 57만원씩 받은 돈을 저축해 두었은데 그 때 저축한 돈이 320만원 정도가 남아 있었기 때문에 그 돈을 남기고 자살을 하려고 하니 그 돈이 너무 아까워서 마지막으로 그 돈을 심리치료에다 쓰고나서 돈을 남기지 않고 자살을 하겠다고 심리치료사인 치료자를 찾아오게 되었다고 했다.

 Z씨는 서점에서 치료자의 저서 인 ""(정신분석학적인 관점에서 본 자아의 성장과 발달)을 사고 보고 나서 치료자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고 치료 사례들을 읽어 보고 나서 치료자에게 문의 메일과 전화를 하게 된 것이라고 이야기를 했다.

 치료자는 Z씨가 그린 만화 몇 편과 대학 졸업 시에 만화 전시외에 출품을 한 만화들의 내용을 읽어보았다는 아버지가 아들의 재능을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인데 왜 아버지는 Z씨의 그림 솜씨 만화의 그림 솜씨를 확인하려고 하지 않았는지? 그 이유를 유추해 보라고 했을 때 Z씨는 아버지가 자신의 만화 그림 자체를 보는 것조차 싫어해서 내용과 만화 그림 자체를 거들떠 보지 않았다고 했다.

 치료자는 Z씨가 몇 년 전에 40대 중반의 여성 누드 스켗치를 3분 만에 그린 그림을 아버지에게 생일 선물로 보냈을 때 아버지가 Z씨가 없는 데서 여동생들을 모아 놓고 "너의 오빠의 누드 스켓치가 전문가 수준이라고 칭찬을 한 것을 지적하면서 왜 여동생들 앞에서는 Z씨의 그림을 인정하면서 Z씨 앞에서는 그림을 인정하고 칭찬을 하지 않았는지?에 대해서 유추를 해 보라고 했을 때 Z씨는 아버지가 자존심이 센 사람으로 아버지가 세무 공무원을 정년 퇴직을 하고 세무사로 10년 동안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을 때 이웃 사람들이 세금 문제로 아버지를 찾아왔을 때 아버지가 그 사람들에게 대한 태도가 특별했다고 털어 놓았다.

 세무 상담을 하러 온 손님을 거실에 세워두고 아버지는 이빨 딱기를 한다고 10분 동안 이빨을 닦고 그리고 얼굴화장을 한다고 10분 동안 기다리게 하고 그리고 나서 거실에 앉아서 30분 동안 기다리고 있는 손님에게 서로를 받아서 손에 침을 묻혀서 천천히 거만하게 뽐내면서 이런 것들으 나에게 가지고 오는 것 자체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이것은 구청에 세무 과정에서 가서 하소연하면 된다는 식으로 서류를 던지듯이 왜 이 따위 서류를 나에게 가지고 오느냐?는 식으로 푸대접을 해서 쫓아내면서 박대를 하는 모습을 Z씨가 묘사를 하면서 아버지는 세무 공무원의 존재를 마음 껏 자랑하는 사람이라고 기술을 했다.

 치료자는 아버지가 심하게 열등감 때문에 자신의 우월성을 뽐내는 것이 분명하다고 지적을 하면서 아들 Z씨의 그림 솜씨와 재능과 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아버지는 자신은 그림을 그리겠다는 시도를 사범학교 졸업 반 때 그리고 결혼 후에 Z씨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 토, 일요일에 화구와 화판을 가지고 그림을 그리려고 야외로 나들이를 그리고 40대 중반게 그림을 그리겠다고 시도를 그리고 완전히 은퇴 이후에 몇 년 전에 홍익대학 평생교육원에서 그림을 배우려고 했다가 4변이나 시도를 했지만 실패한 열등감 때문에 아들을 질투하고 있음이 분명하다고 분석을 해 주었다.

http://blog.naver.com/psychclinic/2212006515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