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실에서 자연스럽게 분석 상담을 받고 있는 모습(영화 속에서 인용) 

   

  인지행동치료와 정신분석 사이에 유사점과 차이점

 

인지행동 치료인지치료행동치료합성어이다. 인지치료행동치료정신분석은 제 각각 그 뿌리가 다르다. 가장 먼저 등장한 인지치료철학에서 뿌리를 두고 있다. 두 번째로 등장한 행동치료심리과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 심리과학은 정신분석보다 16먼저 등장한다. 그러나 행동치료와는 무관하다. 심리과학인간의 행동과 심리적인 과정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다(미국 심리학회의 심리과학의 정의) 인간의 마음의 근본이치를 연구하는 학문으로 행동치료와 관계가 없다(행동치료정신분석보다 20늦게 등장한다 아래를 보라). 인지치료와 행동치료의식을 다룬다, 지금 현재를 중요시한다는 점에서 서로 유사하다, 반대로 정신분석무의식을 다룬다, 어린시절의 과거를 다룬다는 점에서 서로 반대이다. 그러나 인지치료, 행동치료 그리고 정신분석공통점약물치료가 아닌 대화치료이다. 대화치료는 1주일에 5회로 1회기 당 50분으로 프로이트에 의해서 개발되었다. 한 인간 개인의 내면의 심리적인 현상들의 탐색의 절묘한 기술로 등장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 바로 심리신경증(오디프스 콤플렉스)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핵가족의 해체 그리고 과학문화와 문명의 급속한 발달로 인해서 프로이트의 심리신경증이 드물어지고 대신에 상처 신경증의 홍수(van der Kolk, 1996; 상처적인 스트레스를 보라)정신병의 쓰나미가 몰려옴에 따라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의 수정과 변형의 불가피한 결과로 드디어 다양한 종류로 35개의 심리치료법 들이 등장하게 된다. 이 블로그에서는 철학에서 시작된 인지치료의 등장 과정 그리고 심리과학에서 시작된 행동치료의 등장 과정 그리고 인지- 행동 치료의 합성의 과정과 그들의 치료 기법들의 종류들정신분석의 유사점과 차이점으로 초점이 맞춰질 것이다.

 첫 번째로 인지 치료의 등장 과정을 논의해보다. 인지 치료는 계몽주의시대인 17세기 후반프랑스의 수학자, 철학자, 과학자인 데카르트(Rene Descartes: 1596-1650)에 의해서 등장하게 된다. 데카르트는 1살 때 엄마를 상실했다 그는 외할머니의 돌봄으로 성장을 했다. 10살 때 기숙사 학교에서 7년간 생활하면서 14살 때 할머니의 사망에 충격으로 멜랑꼴리아(심각한 우울증)의 증세에 시달렸다. 그는 예수회 대학에서 물리학, 수학을 전공한 수학자였다. 그는 인간의 마음을 물건으로 인식해서 대화의 방법 -명상, 숙고, 고찰의 철학적 원리, 주관적인 세계를 체계적으로 연구한 공로로 현대 철학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그는 몸과 마음을 분리시켜 철저한 감정보다 이성의 우위로 심사숙고인 이성이 감정을 지배하는 것으로 슬픈 생각으로부터 마음의 해방 행복을 만드는 것은 제 1 차적으로 내 자신에 달려 있다 라고 주장을 하면서 부정적 생각을 배제하고 긍정적 생각으로 자신의 우울증을 치유를 하게 된다 그리고 그는 보헤미안 공주인 엘리자베트의 우울증을 치료를 한 첫 번째 인지 치료사가 되었다. 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유명한 명언을 남겼다(Stolorow & Atwood, 2002, 경험의 세계를 보라).

 두 번째 심리과학과 행동 치료의 등장으로 이동해보자. 심리과학의 등장은 한 사람에 의해서 등장한 것이 아니고 세 사람의 공헌으로 등장하게 된다. 세 사람이 모두가 청교도 목사의 아들들로서 의과대학을 졸업한 사람들로 철학 교수가 된 사람들이다. 목사의 아들이라는 점은 마음과 관계한다 또한 의과대학을 졸업한 것은 몸과 마음에 관계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3사람 모두가 독일의 두 번째로 오래된 대학인 라이프지그(Leipzig)대학에서 등장하게 된다.

첫 번째가 어네스트 웨버(Ernst Weber)(1795-1898)이다. 그는 청교도목사의 아들로서 의학을 전공했으나 포기하고 라이프지그 대학철학 교수가 되었으나 마음에 관심이 많았다. 필자는 어린시절에 소풍(오늘 날 야외 학습)을 가면 동료들과 도시락을 까먹고 놀면서 장난을 친 것이 기억이 난다. 동료들이 놀고 있을 때 그들의 뒤에 몰래 숨어들어 가서 강아지풀을 뜯어서 한 친구의 귀 바퀴 뒤에 간들간들 간질일 때 한 친구는 재빨리 그것을 감지하는데 어떤 친구는 늦게 감지한다 그것을 두고 예민하다, 둔감하다 라고 장난을 친 것이 바로 웨버가 실험실에서 인간의 몸의 신체 구석구석에 감각의 지각을 측정한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그가 측정한 것이 감각이다 인간의 몸의 각 부분에 대한 감각을 측정해서 심리생물학이라는 저서를 출판을 했다.

두 번째로 그의 제자인 구스타브 페커너(Gustav Fechner)(1801-1887)는 역시 청교도 목사의 아들로 의과대학을 졸업했으나 포기하고 다시 라이프지그 대학에서 실험물리학을 전공하고 철저한 실험 물리학 교수가 되었다. 그는 시각과 색깔을 연구하다 눈을 다쳐서 교수직을 사임하고 (감각)과 마음(지각)에 공식을 수학적으로 10년 동안 측정을 시도해서 유명한 감각의 최저한계점(threshold) 라는 공식(감각분의 지각은 비례상수 K로 표현)으로 그의 스승의 이름을 붙여서 웨버의 법칙으로 이름을 붙였다. 그는 그의 실험을 심리물리학이라는 책으로 남겼다.

마지막으로 빌헬름 분트(Wilhem Wundt)(1832-1920)가 등장한다. 그는 역시 청교도 목사의 아들로 하이델베르크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물리학자이자 생리학자이나 내과의사인 허만 헤몰츠(Hermann Helmholtz)(독일 물리학회의 핵심 인물)조수로 있다가 리이프지그 대학에서 철학 교수가 되었다. 그는 마음을 수학적으로 측정한다 라는 것으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감각과 지각의 측정이었다. 그는 심리학의 원리라는 저서로써 1879년실험실에서 심리학 강의를 하면서 1919년까지 185명의 심리학 박사 학위자들을 배출을 했다. 그들 중에 70명이 독일 이외의 국가들23명이 러시아, 폴란드, 동부 유럽 출신이고 그리고 18명이 미국 출신이었다.

분트 밑에서 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고 1889년필라델피아 대학에 1호 심리학 교수제임즈 카델(James Cattell), 그리고 두 번째 심리학 교수가 옥스포드 대학 출신으로 라이프지그 대학에서 심리학 박사 학위를 가진 에드워더 티치너(Edward Titchener)1892년뉴욕에 코넬 대학에서 심리학 강의를 시작하고 박사 학위를 배출하기 시작했다. 세번째가 1896년라이터 위티머(Lightner Witmer)펜실베니아 대학에 심리 클리닉(psychology Clinic)최초로 설립한다 이후에 심리 클리닉은 1914년까지 미국의 26개 대학에서 설립되어진다. 심리치료소는 학생들의 학업과 행동의 문제들을 치료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1907년위티머치료 심리학 논문집을 창간했다.

여기에서 한가지 더 붙이는 것은 제임즈 카델이 미국의 제 1호 심리학 박사가 되었지만 미국에서 심리학을 최초로 강의한 사람하버드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학을 포기하고 10년 동안 방황하면서 전 세계를 여행하면서 정신증 직전에서 살아남은 윌리엄 제임즈(William James)이다. 그는 영국의 신경학자인 휴글링 잭슨, 프랑스의 내과의사로 세계적인 최면학자인 진 마틴 가르코트 정신분석을 창조한 지그문드 프로이트, 해리장애 즉 빔의 현상을 규명한 프랑스의 정신과 의사인 피에러 장(Pierre Janet) 등을 만나면서 스스로 자신의 마음의 분석과 심리적 현상을 연구하면서 10년간 인간의 마음을 체계적으로 연구를 해서 1890년심리학의 원리를 집필하고 하버드 대학에서 심리학을 강의한 미국의 심리학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사람이 바로 윌리엄 제임즈이다. 그는 하버드 대학에서 철학 교수의 직함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1호 심리학 교수는 아니었다. 제임즈의 10년 동안 정신증 직전에서 스스로 그의 문제를 극복한 것을 연구해서 잠재적 주체성(주체성 유보)이라는 이름을 붙인 사람이 바로 미국의 에고(ego) 심리학의 창설자에릭 에릭슨(Eric Erikson)이다(Erikson, 1968, 주체성 위기를 보라).

에릭슨은 인디언 마음에서 어린이들의 생활을 13년 동안 연구에서 1950년어린이와 사회의 저서를 출판함으로써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에 사회와 문화의 빠진 부분을 첨가해서 정신분석을 확대시긴 장본인이다(Erikson, 1950, 어린이와 사회를 보라). 그의 공로로 그는 하버드 대학에서 종신 교수가 되었다 그의 연구의 영향으로 미국에서 정신분석이 1950년대와 1960년대 ego 심리학의 전성가를 펼치게 된 장본인이다.

미국의 심리과학은 초반기 감각과 지각 심리학(현재 심리학의 16개의 분야들 중에서 한 개에 분야에 해당)측정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1905년러시아의 생리학자인 파블로프(Pavlov)개의 입의 침의 양과 위에 구멍으로 위액의 양을 측정하는 조건학습의 실험이다. 학습 즉 배움은 고기-침에 0.5초 이전에 빛(벨소리)을 비추고 고기를 주면 빛과 고기의 반복으로 빛을 보고 침을 흘린다 라는 원리이다. 고기에 새로운 연결로 빛에 침을 흘리게 된다. 즉 우리가 배우는 것은 뇌에서 고기에 새로운 회로가 빛으로 연결되어진 것으로 배우게 된다 즉 뇌의 신경세포들 사이에 새로운 연결이 생긴다 라는 것을 실험으로 학습의 원리를 증명한 것이다. 그는 이 실험을 1905년 세게 의학 총회에서 발표해서 노벨 의학상을 타게 된다.

조건학습이 미국으로 들어가서 S-R 심리학이 된다 즉 자극-반응 심리학, 학습 심리학이 된다. 이것이 감각과 지각 심리학에 통합되어져서 20세기 초반기 1950년대까지 미국의 실험심리학이 심리학을 지배하게 된다.

심리과학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순수 심리학으로 구조주의 심리학이 된다. 치료와 무관하다. 치료는 대학에 심리치료 클리닉(psychology clinic)이 설립되었지만 소수의 학생들의 학습과 행동 문제게 국한되었다. 본격적으로 행동 치료(behavior therapy)의 등장에 대해서 이야기를 이동해보자.

시키고 대학에서 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은 존 왓트슨(John Watson)1913년에 논문을 발표를 했다. “행동주의자가 본 심리학”(psychology as the behaviorist views it). 그 논문은 심리학이 과학이 되기 위해서는 관찰하고 측정하고 데이터화 한 것만 취급해야 한다 라는 핵심의 논문이었다 여기에서 처음으로 행동주의(behaviorism)라는 말이 등장한다. 이 신조어에서 시작된 치료가 행동 치료behavior therapy)가 된다.

그는 1920년컬럼비아 대학에서 9개월의 유아인 엘버트(Albert)에게 흰쥐를 보여주면서 막대기로 꽝 소리를 내면서 반복한 이후에 그 유아는 흰쥐를 두려워하고 흰 토기, 흰 강아지, 산타클로스의 흰 수염 등으로 두려움이 확대되었다(자극 일반화). 이것을 파블로프의 조건 학습으로 엘버트가 쥐에 공포증이 생긴 것을 조건학습으로 설명을 했다 이것이 유명한 리틀 엘버트(Little Albert) 실험이다. 공포증은 어린시절에 잘못 배운 결과이라 라는 것을 입증을 한 것이었다.

그런데 리틀 엘버트정신분석에서 처음으로 공포증 치료 결과를 발표한 이틀 한스(Little Hans)의 프로이트의 공포증에서 아이디어를 얻어서 이틀 엘버트의 조건학습 실험을 한 것으로 유추되어진다. 1909년5세의 한스가 말에 대한 공포증으로 집 밖에 나가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의 아버지가 프로이트 밑에서 정신분석을 공부하고 있었기 때문에 프로이트의 슈퍼비전으로 5세의 아들을 치료를 하게 되었다. 프로이트는 한스가 실제 말에 대한 두려움이 상징적으로 아버지의 페니스에 대한 두려움으로 엄마와 밀착 관계에서 아버지의 등장으로 오디프스 콤프렉스로 변형된 두려움으로 치료를 한 결과 한스의 공포증이 해결이 되었다 이것을 프로이트가 1909년에 논문집에 실어줌으로써 정신분석에서 최초의 공포증의 성공적인 치료로 발표된 것이었다. 다시 왔트슨의 실험으로 되돌아가 보자.

그 때 컬럼비아 사법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있던 마리 커브 존(Mary Cober Jones)이 왓트슨의 엘버트의 조건학습의 공포증에 흥미를 가지고 이것을 공포증 어린이 치료에 응용하게 된다. 그녀는 왓트슨에게 그녀의 아이디어를 논의하면서 왓트슨과 공동으로 그녀가 3살된 피터의 흰 토끼 공포증치료하게 된다 그녀는 흰 색깔에 두려움을 보이는 피터에게 사탕을 주면서 접근해갔다 그리고 여러 번 반복해서 사탕으로 두려움을 감소시키고 더 강한 흰색의 털옷, 흰 목화 등으로 사탕과 연결해서 마침내 12피트의 먼 거리에서 흰 토끼에 조금씩 과자를 주면서 점점 더 가까이에 접근으로 마침내 공포증을 제거하는데 성공을 했다. 탈조건학습을 이용한 것이었다. 1924년 그녀는 공포증의 실험실 연구: 리틀 피터(Little Peter)의 사례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녀는 이후에 버클리 대학 발달 심리학 교수가 되었다. 그녀의 탈조건화는 50년 후에 1980년에 점진적 감각박탈 기법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등장하게 된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미국 안에서 정신분석은 쏟아져 나오는 정신장애들을 감당할 수 없었다. 아버지가 직장에서 어머니는 집안 살림으로 자녀는 7-8명으로 구성된 정상적인 가정의 프로이트의 심리학은 이제 맞벌이 부부로, 핵가족의 붕괴로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자녀는 1명 혹은 2그리고 이혼 비율의 급증으로 재혼 3, 4 등으로 그리고 결혼 후에 10년 안에 이혼 비율이 45%자녀들이 10살 이전에 절반이 한쪽 부모를 앓게 되었다. 계부, 계모로부터 섹스 학대, 신체적 학대 그리고 제 2차 세계대전의 전투 재향군인들, 베트남 전쟁의 재향군인들, 홍수와 댐 붕괴로 살아남은 사람들, 납치, 강간, 인질, 화재로 살아남은 사람들, 교통사고로 살아남은 사람 등등으로 상처 신경증이 폭증하게 된다.

여기에서 프로이트의 심리신경증(오디프스 콤플렉스)상처 신경증에 대해서 언급해보기로 한다. 프로이트는 실제 상처 이론으로 시작을 했다. 프랑스의 최면학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진 마틴 가르코트(Jean-Martin Charcot)의 최면에 걸린 여성 환자들의 어린시절의 근친상간, 강간, 신체적 학대, 감정적 학대로 인한 히스테리아(모든 정신장애의 총칭)환자의 치료에서 최면에 걸린 환자들의 어린시절의 기억에서 상처 신경증으로 프로이트가 최면에 걸리지 않는 사람들에게 자유연상으로 과거의 기억을 찾아가는 정신분석의 탄생에서 상처로 인한 신경증의 이론으로 유혹 이론에서 시작을 했다. 그러나 프로이트는 성인들의 기억의 어린시절의 상처가 오리지널이 아니다 상처의 기억을 세월이 지나감에 따라서 변화되어진다 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의 대화 치료에서 환자들이 어린시절에 부모님과 관계에서 상상으로 인한 상처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정신분석이 과학이 되기 위해서는 기억의 원리에 근거해야 한다 라는 이론으로 기억이 변형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1900년꿈의 해석에서 오디프스 콤플렉스가 등장하게 된다 즉 상상의 상처로 생긴 신경증으로 보게 된다.

그런데 미국의 정신과의사인 아브라함 카디너(Abram Kardiner)프로이트 밑에서 정신분석을 공부하고 정신분석가가 된다 그는 제 1차 세계대전에 전투 재향 군인들의 치료에서 상상의 오디프스 콤플렉스의 의한 상처가 아니고 실제 상처 신경증이라는 용어를 들고 나왔다. 1941년에 그는 전쟁의 상처 신경증이라는 신조어로 저서를 출판하게 된다. 여기에서 역시 정신과의사로 정신분석가가 된 시카고 의과대학 정신과 학과장인 로이 그링크(Roy Granker)와 정신과의사인 존 스페이젤(John Spiegel)1946년에 공동으로 스트레스 하에 인간(Men under Stress)이라는 저서로써 실제 상처 신경증이론의 중요성을 들고 나왔다. 칸사스 시티에서 아버지와 두 명의 아들이 정신과 의사로써 설립한 메닝그 클리닉의 장남 월터 메닝거(Walter Menninger) 그리고 로렌스 콜버(Lawrence Kolb)가 현장 안에서 그리고 본국 안에서 전투 신경증들의 치료 안에서 능동적으로 관계를 했던 미국의 정신의학 안에서 몇몇 개척자들이 상처 신경증을 지지하고 나서게 된다.

이후에 1960년데-1970년대 동안에 미국의 베트남 전쟁 참가자들의 재향군인들 한데서 상처 신경증 환자들이 쏟아져 나오게 되었다. 여기에서 프로이트의 심리신경증상처 신경증이 분리되어 등장하게 된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의 나치의 집단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실제 상처의 연구(홀로코스트에 살아남은 사람들)들이 그리고 강간을 당한 여성들의 심리적 상처 연구가 보스턴 시립 병원의 정신과의사인 앤부르그네스린다 스톡홀롬 강간 상처 증후군 등으로 실제 상처 신경증의 특징들이 등장하게 된다.

상처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프로이트의 오디프스 콤플렉스의 증세들과 달리 간간히 과거의 상처가 직접 다시 재현으로 플레쉬백으로 그리고 악몽으로 등장한다. 과도하게 예민해서 경계심을 보인다 그리고 과도한 긴장으로 늘 불안하고 긴장상태에 있다. 에너지고갈로 피로감을 느낀다. 일반적인 조그만 스트레스를 오리지널 상처로 오인해서 늘 예민하게 대응한다. 일반적으로 무시하고 중요한 감정에만 집중하지 못하고 사소한 것들을 모두 에너지를 집중하게 됨으로써 정작 중요한 것에는 주의집중을 할 수가 없다. 쉽게 좌절하고 충동적이고 감정 조절이 어렵다 이러한 상처 신경증들은 프로이트의 오디프스 콤플렉스는 상처가 상징적으로 추상적으로 상상 속에서 변형으로 등장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러한 상처신경증 들이 위에서 언급한 나이트클럽 화재 사건, 홍수, 댐 붕괴로 메몰에서 살아남은 사람들, 오일 광구 붕괴, 탄광붕괴 사고 등으로 살아남은 사람들의 상처 연구가 쏟아져 나옴으로 상처신경증이 심리신경증을 압도하게 되었다. 1980년DSM-Ⅲ에서 상처신경증은 드디어 상처 후 스트레스 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등장하게 된다.

1980년대 이후에 1990년대까지 상처 신경증에 대한 연구하버드 의과대학 정신과의사이자 정신분석가인 주디스 허만(Judis Herman)의 제자들의 상처신경증 연구 스터디 그룹에서 밴 더 콜크(van der Kolk)의 주도로 뇌와 몸과 마음의 양전자 방출 단층 촬영을 도입에서 뇌의 영상 이미지 관찰과 상처의 관계를 실험실에서 연구하게 된다. UCLA의 역동정신의학과의 상처스트레스 연구 프로그램, 예일대학의 어린이 상처 연구팀, 메릴랜드 의과대학의 상처 연구팀 그리고 미국 재향군인 상처 연구팀 그리고 호주의 엘리자베스 대학병원 연구팀장맥팔라인(McFarlane) 이스라엘의 중동전쟁 재향군인 치료센터 팀장, 이태리 그리고 네덜란드에서 상처신경증의 연구사들과 함께 전 세계의 34개의 정신건강 전문가들의 논문집상처 스트레스1996년에 출판되어졌다.

여기에서 강조점은 상처로 인한 신체적인 증세증후군들이 심각한 보드라인 장애(경계선 장애)자아분열, 걸어 다니는 정신분열증, 그리고 정신분열증(조현병)으로 이어지면서 35개의 역동적 심리치료 기법들이 등장하게 된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서 인지치료의 진화로 연결해보자.

데카르트의 인지 치료1950년데의 미국의 정신장애의 쓰나미로 다시 등장하게 된다. 그 시점에서 인지혁명의 대명사가 된 사람이 바로 엘버드 엘리스(Albert Ellis)이다. 엘리스는 1982년미국과 캐나다 안에서 심리치료사들의 설문조사에서 심리치료에 영향을 미친 사람으로 칼 로저스가 1, 엘버트 엘리스가 2 그리고 프로이트가 3이다. 프로이트를 제외하고 엘리스만큼 인지행동 치료에 공헌한 사람이 없다 라고 심리학 잡지 (Psychology Today)가 노트를 했다(2024, 2, 18. 위키피디아).

엘리스컬럼비아 대학 치료심리학과 출신으로 뉴욕의 카렌 호르니(Karen Horney)정신분석 학교에서 초현실주의자로 정신분석가가 된 리처드 홀백(Richard Hulbeck)에게 개인 수련을 받아서 정신분석가가 되었다 그러나 프로이트의 정통 정신분석에 실망해서 스스로 이성 감정 행동 치료(REMT)라는 치료기법으로 1968년뉴욕에서 심리치료 학교를 설립하게 된다. 그는 인지 행동 치료의 개척자가 된다.

그의 바통을 이어받은 사람이 예일 의과대학을 졸업한 정신과의사인 아론 백(Aron Beck)이다. 그는 필라델피아정신분석학교에서 정신분석학을 완료할 시점에서 정신분석을 포기하고 인지치료 쪽으로 방향을 돌리게 된다. 그는 스스로 인지 치료가 우울증의 단기 치료에 효과적인 우울증 검사지의 개발로 이어지고 펜실베니아 대학에서 인지 치료 센터를 설립하고 여기에서 행동 치료를 통합해서 인지행동 치료가 태어나게 되었다.

위에서 언급한 왓트슨의 행동주의마리 커브 존에 의해서 등장한 탈조건화로 감각박탈의 기법으로 공포증 치료가 50년 후에 다시 남아공에서 정신과의사로서 정신분석가인 조셉 울프(Joseph Wolpe)재향군인들정신분석르로 치료를 하다가 실망해서 그는 효과적인 치료기법을 찾기 위해서 실험심리학 쪽에서 점진적 감각 박탈의 논문을 발견하고 이것을 치료에 적용함으로써 짧은 시간에 치료에 효과적임을 발견하게 된다 이후에 그는 포드재단의 장학금으로 스탠포드 대학의 행동과학 연구소에서 1년 동안 연구를 한 후에 남아공으로 되돌아갔다 그러나 다시1960년에 버지니아 대학 교수로써 정착하면서 행동치료 기법들을 개발하게 된다. 불안과 스트레스로 과도한 신체적 긴장긴장 이완 훈련양립을 할 수가 없다 이것을 응용해서 쌍방 억제 기업을 개발하게 된다. 조직적인 감각 박탈, 혐오자극, 강화이론 등등으로 그는 1982년에 행동 치료의 저서를 출판하게 된다.

행동치료에 또 한 사람이 바로 남아공에서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영국의 가장 큰 정신병원인 무드셀라 병원(Bethlem-Maudsley Hospital)에서 레지던트로 1964년사회적 불안장애라는 신조어로 기존의 불안장애와 다르다 라는 것을 발표한 이삭 마크(Isaac Marks)이다. 이 장애는 이후에 1994년 DSM-에서 사회 공포증(social phobia) 혹은 대인 공포증라는 이름으로 공식적으로 등장하게 된다. 사람들과 친밀관계를 두려워하고 그리고 게임, 영화 등의 전자 오락에 빠져 들어가서 사회생활에서 결함으로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일본에서 히키코모리 우리 나라에서는 은둔형 외톨이로 알려져서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등장하게 된다. 1964년에 그는 런던 의과대학 교수로써 2000년대까지 마크는 행동치료 안에서 비보요법(vivo) 혹은 홍수 요법 등을 개발한 행동주의 치료의 대명사가 된 정신과의사이다.

행동치료와 인지치료에서 공포증에 대한 더욱 더 상세한 내용의 글을 공포증의 행동 치료에 대해서 아래의 글들은 치료자의 공환 장애와 공포증의 홈 페이지에서 인용한 것이다(DePont, 1982: 주㈜: 참고).

공포증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한다. 그리스 시대에 처음으로 등장한 광장 공포증(agrophobia)이 그 예이다. 혼잡한 시장에 가는 것에 두려움을 보이는 사람들시장 공포증(agorphobia)이라고 불렀다. 그리스어로 "agor"는 시장이라는 뜻에다 공포증이라는 phobia 인 그리스 어가 붙어서 시장 공포증이 된 것이다. 시장 공포증은 사람들이 붐비는 혼잡한 시장뿐만 아니라 극장, 공연장과 같은 많은 사람들이 붐비는 곳을 피하기 때문에 시장이라는 말 대신에 "사람들이 붐비는 넓은 지역"이라는 말로 "광장 공포증"이라는 말이 대신하게 된 것이다.

  공포증의 발달은 문명의 발달과 함께 한다. 현대인의 생활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기술 산업의 발달과 연결되어 있다. 고층 건물의 등장으로 엘리베이터 공포증, 에스컬레이터 공포증, 고공 공포증이 등장을 했고 대형 쇼핑 몰과 백화점의 등장으로 광장 공포증, 비행기의 등장으로 비행 공포증, 각종 애완 동물들의 등장으로 고양이 공포증(고양이 털에 대한 공포), (개 털에 대한 공포), 공해 산업의 등장으로 오염 공포증, 세균 공포증, 병균 공포증, 고속 도로의 등장으로 고속도로 공포증, 자가용 승용차의 등장으로 운전 공포증, 인터뷰와 각종 자격증의 등장으로 수행 공포증(여러 사람들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에 대한 두려움), 시험 공포증, 각종 오디션의 등장으로 공연 공포증, 각종 스포츠의 등장으로 육상 경기 공포증, 공부와 학업의 강조로 등장한 수자 공포증, 특정 글자 공포증, 난독증(글을 읽은 내용에 대한 이해 공포증) 등이 현대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이것을 학자들은 "문명의 발달로 인해서 공포증적인 자극은 분명히 항상 생물학적으로 준비가 되지 않는 어떤 경험들을 우리가 직면을 하는 새로운 기술들과 연결이 되어 있다(DuPont, 1983)라고 표현을 하고 있다.

 공포증의 연구에 학문적인 등장은 역시 프로이트(Freud)와 함께 한다. 프로이트1909년에 리틀 한스(Little Hans)라는 논문을 발표를 해서 처음으로 공포증의 연구를 학계에 발표를 했다. 리틀 한스(Little Hans)5세의 어린 소년으로 말을 두려워해서 비엔나 거리에 나올 수가 없었다. 말이 그를 물어 뜯을 것이라고 두려워해서 집 안에서 길거리로 나올 수가 없었다. 프로이트(Freud)는 리틀 한스(Little Hans)의 말 공포증을 실제 말에 대한 공포증이 아니고 말이 상징화된 변형된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으로 해석을 했다. 리틀 한(Little Hans)어머니를 소유하고 싶은 오디팔 욕구 때문에 라이벌인 아버지의 처벌을 두려워한 것으로 해석하고 리틀 한스(Little Hans)를 치료를 하여 공포증으로부터 해방을 시켰다. 정신분석학적인 공포증에 대한 치료는 이후에 많은 학자들의 실망을 가져다 주었다. 공포증 환자들을 상징적인 무의식적인 상상에 근거를 둔 치료 결과들의 치료 효과가 미약해서 실망을 안겨주었다(DuPont, 1983).

 이후에 "행동과학" "행동의학"의 등장으로 1960년부터 대표적인 행동 과학자인 죠셉 울프(Joseph Wolpe)가 혁신 적인 공포증 치료 기법과 이론을 내 놓았다. 그가 내 놓은 치료 기법은 노출 치료(Vivo exposure) 혹은 조직적 감각 박탈 치료(Systematic Desensitization technique)라고 불리우는 치료 기법으로 공포증의 치료에 좋은 효과를 나타내었다(DuPont, 1983).

 미국에서 각종 공포증 치료에 획기적인 발전은 1979년에 뉴욕 화이트 플랜 병원(The White Plains Hospital Medical Center in New York)공포증 치료 센터(The Phobia Clinic)에서 제인(Zane) 박사의 감정 지원적 노출 치료 "맥락 분석 치료"(Contextual Analysis and Treatment)가 일반화하게 되면서 그리고 캘리포니아 멀로 팍(Menlo Poric in California)에서 아더 하디(Arthur Hardy) 박사에 의해서 개발된 TERRAP 치료 기법 TV나 각종 신문 매체들을 통해서 알려지게 되면서 획기적인 공포증 치료가 미국 전역으로 확대되었다(DuPont, 1983).

 공포증(phobia)불안장애에 소속이 된 한 개의 장애로써 미국의 정신장애에 대한 통계와 진단 분류 지침서인 DSM-(1967)에서 처음에는 불안 신경증(anxiety neurosis)이라는 이름에 소속되어 있었다. 그러나 불안 신경증이라는 용어가 너무 포괄적이고 광범위해서 명료하게 장애들을 기술해줄 수 없다는 학자들의 의견에 따라서 1980년에 DSM-( 3차 수정)에서 불안 장애(anxiety disorder)로 이름이 수정되었고 신경증(neurosis) 이라는 이름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이후에 DSM--R(1987) 4번째 수정 본인 DSM-(1994)를 거치면서 불안 장애는 공황장애, 특수 공포증, 공황 장애를 가진 광장 공포증, 대인 공포증,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급성 스트레스 장애, 강박사고 강박 행동 장애, 일반화된 불안 장애세분화되어진다.

 치료 쪽에서는 1979년에 뉴욕 화이트 플랜 병원의 공포증 치료 소에서 주도한 워싱턴과 뉴욕 지역의 공포증 치료 전문가 들의 공동 모임이 처음으로 뉴욕에서 개체 되었고 관심이 있는 공포증 치료사들이 모여들 게 되었다. 그 다음해 인 1980년에 처음으로 미국 공포증 전문가 협회가 창설되고 미국 전역과 캐나다에서 공포증 전문 치료사들이 모여 1 회 북미 공포증 연례 학술 회의가 개체 되었고 공포증 논문 집이 출간되기 시작하면서 미국 전역으로 공포증에 대한 연구와 논문들이 체계적으로 정비되어지기 시작을 했다(DuPont, 1983).

 1980년대부터 공포증 치료에 인기를 누리는 행동 치료 기법들을 사용 결과 행동 치료 효과가 치료 이후에 재발 비율이 높고 치료소나 치료 프로그램 운영 장소(병원 등)에서는 치료 효과가 뛰어났지만 일상 생활로 되돌아 와서 치료 효과가 반감된다는 주장들이 등장을 하게 되었다. 행동 치료는 단순 공포증의 경우에는 치료 효과가 뛰어나지만 복잡한 공포증인 경우 즉 우울증 혹은 성격장애 등을 함께 가진 복잡한 공포증의 경우에는 행동치료 기법 하나만으로는 치료 효과가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치료 결과 들이 보고되기 시작했다(Charney, 1982, Selan, 1982).

 최근에 미국에서 공포증 치료에서는 여러 개의 치료 기법들을 혼합한 통합적 심리치료, 선택적 심리치료 등의 치료 기법들이 공포증 치료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통합적 공포증 치료라는 말은 공포증의 치료에 행동 치료 기법인 감각 박탈 치료(Desensitization), 비보 노출 치료(Exposure in Vivo), 감정 지원 노출 치료(Supported Exposure Treatment) 등에다 병행해서 인지-행동치료(Cognitive-Behavior Therapy) 혹은 정신분석 치료에서 대상 관계 치료(Object Relational Therapy) 등이 복합적으로 병행해서 사용되어지게 되었다.

이제 인지행동 치료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어지는 치료기법으로 돌아가보자 이러한 기법들이 정신분석에서 사용하는 치료 기법과 유사점과 차이점으로 비교되어질 것이다.

행동치료의 대명사가 바로 체계적 둔감기법 혹은 조직적인 감각박탈이다. 이 치료기법은 공포증 치료에 효과적이고 짧은 기간에 좋은 치료결과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행동치료에서는 공포증두려움에 놀래서 그 대상을 피하려고 하는 것으로 잘못 배운 행동으로 본다(위에서 왓트슨의 주장). 모든 정신병은 잘못 배운 것의 결과이다 그것이 어떤 특정 사건에 놀래거나 혹은 압도적인 감정 때문에 이후에 피하게 된 것으로 본다 고로 그 공포적인 대상을 직면해서 그것에 대한 공포증을 제거해주는 것이 행동 치료의 목적이다. 이러한 공포증에 감각박탈과 유사한 경험들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가지고 있다.

필자는 고교시절에 부산으로 이사를 해서 고교시절과 대학시절을 보냈다 그 때 부산의 가장 번화가에 있는 xx 극장에 영화를 처음 보러 가게 되었을 때 처음에 극장이 어디에 있는가? 를 알아보고 그 주변을 빙빙 돌아보면서 사람들이 어디에서 표를 구입하고 어떻게 극장에 들어가는가? 몇 번을 관찰하면서 점점 더 그 매표소 입구에 접근을 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물어보기도 하면서 점점 그 극장의 주변 상황에 익숙하게 되고 그리고 마침내 극장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구해서 극장 안에서 좌석을 찾아갔던 기억이 있다.

한번 이러한 첫 번째 경험 이후에 그 다음에는 익숙하게 되어 바로 극장의 매표소에 가서 표를 구입해서 영화를 보게 된 것이다. 이러한 과정이 바로 조직적 감각 박탈에 해당된다. 그 목적지에 주변 상황을 여러 번 익숙하게 한 다음에 서서히 그 목적지에 도달하고 마침내 그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

조직적 감각 박탈이라는 말 자체는 불안을 조금씩 줄이면서 긴장을 완화시키고 최종적으로 그 목적, 대상에 접근한다 즉 행동 치료에서는 이것을 조직적으로 체계적으로 몇 개월이라는 목표를 정하고 가장 낮은 불안이 없는 상황에서 점점 그 대상에 가까이하도록 해서 그 대상을 피하지 않고 익숙하게 하는 것이다.

치료의 한가지 예는 필자가 부산교육대학원에서 상담대학원 학생들(대부분이 교사들)에게 가족 치료학과 그리고 상담실습을 담당하면서 각 대학원 학생들은 마지막 학기에 학생들의 행동 수정으로 졸업 논문을 쓰도록 지도를 하게 되었을 때 한 교사로 하여금 그녀의 반에 솔방울 공포증(산에 솔방울이 두려워서 산에 가기 않으려고 하는 학생) 조직적 감각박탈3개월 만에 치료를 한 경험을 소개하고자 한다.

초등학교 3학년 학생의 솔방물 공포증에 대한 치료 사례

 본 치료자는 1999년부터 2004년까지 5년 동안 부산 교육대학원에서 가족 치료와 상담 실습 과목을 담당했었다. 마지막 이수 과목인 "상담 실습" 과목에서 각 학생들(초등학교 교사들)은 마지막 학기에 한 학기 동안 자신의 반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심리적인 문제가 있는 학생을 한 사람 선택을 해서 그 학생을 한 학기( 3개월) 동안 상담 치료를 통해서 심리적인 문제 행동을 수정하도록 하는 상담 실습을 모두가 이수해서 이 과정을 통과를 하도록 지도를 하고 있었다.

참고로 각 상담자들은(초등학교 교사들) 내담자(문제 학생)의 선택의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주의 사항을 철칙으로 준수해야 한다.

 1. 자신의 반 어린이 중에서 심리적인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는 학생들을 후보자로 3명을 선정한다,

 2. 슈퍼바이져인 본 치료자논의를 통해서 각 상담자는 그 3 명 중에 가장 적당한 한 학생을 선정한다.

 3. 선정된 학생의 부모님에게 반드시 내담자로 한 학기 동안 문제 행동의 수정에 대한 내용을 알리고 반드시 허락을 얻는다.

 4. 만약에 부모님이 거부를 하면 위와 같은 똑같은 과정을 통해서 그 다음의 차선자로 내담자를 선정한다.

 5. 부모님이 허락을 하면 3개월 동안의 상담 과정에서 반드시 부모님의 적극적인 동참과 자녀의 문제 행동의 수정에 같이 참가한다는 확인을 받아 둔다.

부모님에게 자녀의 내담자 선정시에 다음과 같은 절차로써 허락을 받도록 한다.

 1. 내담자로 선정되는 것은 그 부모님의 자녀가 특별한 문제 아동이기 때문이 아니다. 인간은 모두가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고 그 내담자로 선정된 아동은 지금의 단점만 수정이 되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능력 있는 아동임을 강조한다.

2. 내담자로 선정된 그 아동은 상담 실습의 실험용으로 사용되어지는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상담에 사용되는 심리적인 기법들은 이미 수많은 학자들과 치료사들에 의해서 효과 검정된 이론들로써 시행착오로써 사용되어지는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3. 상담자인 담임 교사는 마음대로 시행착오 적인 상담 치료를 하는 것이 아니고 엄격한 훈련과 전문성을 갖춘 지도 감독을 하는 교수 밑에서 지도와 감독을 받는다. 지도 교수는 미국에서 전문 교육과 훈련을 받은 유능한 심리 치료사로써 대학에서 강의와 그리고 환자들을 직접 심리치료를 하고 있는 사람으로써 그 사람의 지도와 감독 아래서 내담자로 선정된 학생들의 단점들을 고치도록 도와주는 과정임을 강조한다.

4. 만약에 그 지도 교수인 치료사(치료자인 본인을 말함)에게 직접 상담 치료를 받게 되면 1시간에 xxx 치료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그러나 반드시 6개월의 치료 계약을 해야 하며, 6개월의 치료 계약으로 6개월의 총 치료 비용이 xxxx 라는 엉청난 큰 돈이 지불되어야 한다.

5. 상담 교사들은 1주일 동안 내담자와 상담한 내용과 상담 과정을 1주일에 1회씩 슈퍼바이져인 지도 교수와 만나서 2시간 동안 보고를 하고 그 다음 주일에 1주일 동안 내담자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를 지도를 받고 지도받은 내용을 점금하고 실행 결과들을 논의를 한다.

5. 내담자로 선정된 아동은 실제로 그 지도 교수인 슈버이져에게 치료를 받는 것과 같다. 그 지도 교수의 지도 아래서 모든 이론과 치료 기법들이 그 선정된 내담자에게 소개되어지기 때문에 직접 치료를 받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위와 같은 지도로써 학부모들은 서로 자신의 자녀를 내담자로 선정해 달라고 요구를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서 내담자의 선정에는 큰 어려움은 생기지 않았다.

 상담자(초등학교 교사)

 내담자가 고학년인 경우 4학년, 5학년, 6학년인 경우에는 한시간에 적어도 50 분 정도로 1주일에 2-3회 이상의 치료 회기를 가져야 한다.

 내담자가 저학년인 경우 1학년, 2학년, 3학년인 경우에는 한 시간에 30-40분 정도로 1주일에 적어도 4-5회 이상의 치료 회기를 가져야 한다.

위와 같은 상담 실습 후에 상담을 한 과정과 상담 결과를 본 치료자가 지도한 심리학의 논문의 서식에 맞추어서 졸업 논문으로 제출한다.

 아래의 사례 연구는 그 학기에서 우수 논문으로 선정된 논문으로 초등학교 3학년 학생이 야외 학습을 갔을 때 솔방울에 대한 공포증이 심각하다는 것을 안 담임 선생님이 그 학생의 부모님의 허락을 받아서 3개월 동안 그 학생의 공포증을 성공적으로 치료를 한 사례이다. 치료자는 그 상담자에게 행동 수정의 기법으로 "체계적 감각 박탈"(systemic desensitization)이라는 치료 기법을 사용해서 3개월 동안 공포증의 치료를 지도를 했고 그 치료 결과는 솔방울에 대한 공포증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할 수 있었다.

체계적 둔감법을 이용한 특수 공포증 어린이의 치료

xx초등학교 교사 xxx

 

서론

-일부 생략-

1. 문제의 발견

 2000426일 학교 현장학습 일이라 이동을 인솔하여 산을 오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산 중턱쯤에 이르러 아이들이 더 나아가지 못한 체 누군가를 둘러싸고 웅성대고 있었고 그 중안에는 K군이 큰소리로 울면서 서 있었다. 산길에 떨어져 있는 솔방울 때문에 도저히 걸어갈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상한 생각이 들긴 했지만, 아무리 설득해도 걸음을 때려고 하지 않아 솔방울을 다 치운 뒤에 걷게 했더니 그제서야 따라왔다. 하산한 뒤에 전화를 해서 아이와 솔방울에 대해서 물어보았으나 부모도 그 이유를 알지 못하고 그저 아이가 무서워한다는 것만 알고 있다고 했다. 상담 교사인 본인을 이 일로 몹시 당황했었지만 상담 연구 과정을 통해서 그것이 특수 공포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2. 행동 수정에 적용된 이론적 배경

행동주의의 이론에서 사용되고 있는 체계적 둔감법을 이용하였으며 그것은 처음 연상되는 것들을 떠올리게 한 후에 두려움의 원인이 되는 것을 small step으로 제거해 나가는 것이었다. 유의했던 것은 실물 접근도를 크게 잡은 것이 아니고 거리가 먼데서 가까운 곳으로 아주 조금씩 옮겨오게 한 뒤에 두려움을 거의 느끼지 않을 만큼 견딜 수 있을 때 더 가까이 오게 하였다작은 행동 하나 하나를 진행하면서 목표 행동에 이르지 못했을 때 다시 피드백 시켜서 학습이 이루어진 뒤에 다음 단계로 넘어가게 하는 기법이었다.

3. 특수 공포증의 진다

 미국 정신장애데 대한 진단과 통계 분류 DSM-에 의해서 특수 공포증에 대한 진단 항목으로 A. 어떤 특수한 문제나 특수한 물체의 예견으로 인하여 과도하게 이유 없이 지속적으로 두려움을 보인다. B. 공포적 자극에 노출은 즉각 불안 반응을 일으킨다. 공황 공격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 C. 본인은 두려움이 이유가 없고 과도하다 라는 것을 알고 있다. D. 집중적 불안 때문에 공포증 상황을 피하려고 한다. E. 회피, 불안의 예견, 두려운 상황에서 불쾌감 등이 그 사람의 일상생활이나. 학습 활동을 간섭한다. 18세 이하일 때는 지속 기간이 6개월 이상 된다. G 이 불안, 공황 공격은 다른 정신장애 즉 강박증, 후기 외상 스트레스 장애, 분리 불안, 대인 공포증, 광장 공포증 등과는 관계가 없다.

 

K군은 솔방울에 대해서 위의 항목 중에 모든 항 복에 해당함으로써 특수 공포증(솔방울 공포증)으로 진단 되었다.

4. K 군의 문제점 및 정보 수집

--생략

본론

1회 치료 회기에서 제 23회 치료 회기까지는 생략 ---

24회기

일시2000119

아침에 교실에 들어나니 아이들이 떠들썩거려 웬일인지를 물어보았더니 K군이 솔방울을 잡을 줄 안다고 말해 주었으며 교실에는 K군이 솔방울을 쥐고 의기 양양하게 앉아 있었다. 칭찬해 주면서 용감해진 이유를 물었더니 아빠의 지도가 있었고 가져갔던 솔방울을 아빠와 함께 만져보기 무섭지 않았다 라고 대답을 했다. 가족과 연계 지도가 효과적임을 절실히 알게 되었다.

25회기

일시-20001113

솔방울로 쌓아 올리기를 할 수 있겠느냐 하고 했더니 할 수 있겠다고 하며 쌓기 놀이를 했는데 공포증 증세는 아제 없는 것 같았고 두려움이 없이 솔방울을 자연스럽게 만질 수 있었다.

26회기

일시-20001115

정말 신기한 일은 K군이 송방울을 쥐고 돌아다니면서 스스로 아이들에게 솔방울을 가져다 데며 놀라게 하니 아이들이 웃으면서 놀라는 척하는 모습들이었다. 혼자 앉아서 친구 와도 잘 어울리지 않던 아동이 이제는 솔방울 공포증 치료 과정에서 친구들도 자기를 도왔다 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들과 친하게 된 것을 보면서 보람을 느꼈다.

. 논의 및 결론

생략

 

1.   잘된 점: K군은 솔방울을 쳐다보지도 못했고 솔방울이 떨어져 있는 곳을 자나가지 못한 만큼 공포증이 매우 심했다. 그래서 행동주의적 기법인 체계적 둔감법을 이용한 이미지 박탈기법을 적용해서 솔방울을 상상하는 그림을 그려보기 등의 과정에서 솔방울에 대한 공포가 점점 줄어들게 하였다. K군은 자신감을 잦게 되었고 솔방울을 멀리서 점점 가까운 곳으로 가져옴으로써 두려움에 대한 적응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체계적 둔감법이 결국에 솔방울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게 하여 자유자재로 만질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직접적인 공포증 치료 과정의 결과로 나타난 부수적인 소득은 학습활동에 소극적이었단 K군이 학습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태도로 나타났다. 수업 중엔 교사와 눈을 맞추려 하지도 않고 발표하는 것은 아예 생각도 못했는데 치료과정 이후에 종종 손을 들어 발표할 만큼 태도 변화가 확실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늘 혼자 책상에 엎드려 낙서 내지 그림 그리기를 했는데 솔방울을 듣고 친구들을 놀래 주는 장난을 하고 다닐 만큼 친구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게 되었다 라는 점이다. 급우들이 모든 자신을 도와주었다 라는 신뢰감에서 일어난 행동 변화라고 생각된다.

2.   아쉬운 점: 시간적 제약 때문에 솔방울 공포증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찾지 못한 점이다. 연상되는 것이 바퀴벌레, 옥수수 등인데 그것에 대한 치료를 하지 못한 점이다. 공포증이 생긴 원인까지 찾아냈더라면 더 개운한 치료가 되었 터인데 그러지 못한 것이 아쉽다.

3.   끝내면서 생략 ---

위의 사례에서 체계적 둔갑법, 조직적 감각박탈을 소상하게 설명되어졌다. 행동 치료의 장점은 정해진 기간에. 주로 3개월 동안, 조직적으로 체계적으로 접근한다 라는 점이다. 이것을 정신분석과 비교해보자. 정신분석에서는 초반기에 내담자로 하여금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보라고 유도한다, 환자는 자신의 고민과 갈등을 이야기를 하면서 점차적으로 시간이 지나가면서 자신의 내면 속에 깊은 이야기들로 또 한 심층의 핵심 문제들로 접근해 들어가게 된다. 이러한 과정은 치료자의 경우에는 최하 6개월 치료 계약으로 6개월 동안에 서서히 깊은 내면의 문제들로 진행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행동 치료의 핵심두려움과 불안에서 멀리 떨어져서 불안을 덜 느끼는 것에서 점차 그 대상 쪽으로 접근해가는 것과 유사하다. 그런데 정신분석에서는 치료 과정을 환자가 스스로 선택하게 한다. 행동치료에서는 상담사가 계획을 세우고 내담자는 그 계획에 따라서 진행하게 된다 고로 내담자를 수동적이고 상담자에 따라간다 그러나 정신분석에서는 환자가 주도권을 가지고 원하는 방향으로 진행하게 된다. 고로 환자의 자아의 성장에 핵심을 두기 때문에 치료자는 환자를 지원해서 스스로 주제를 결정하게 한다는 점이 차이점이다. 물론 6개월에서 원한다면 다시 6개월로 치료의 계약이 늘어나게 된다 그 결과 장기간의 시간이 소요되지만 환자의 자아를 점점 더 성장하게 되고 삶의 주도권을 스스로 가지게 하도록 도와준다는 점이 다르다.

두 번째로 행동 치료에서 많이 사용하는 기법이 홍수 요법이다. 가장 핵심적인 문제를 직면하게 해서 계속해서 그 문제를 다루다가 보면 그 문제에 익숙하게 된다. 초반기에 깜짝 놀래서 그 문제에 대한 접근을 피하려고 하지만 막상 그 문제에 빠지게 되면 결국에는 그 문제에 익숙해져서 불안과 긴장이 내려가게 된다. 이러한 치료 기법은 정신분석에서도 사용한다. 치료자는 환자가 핵심 문제를 주저하는 것을 느끼고 그녀에게 당신의 그 문제는 당신의 핵심 문제이기 때문에 그 문제를 다루지 않고 다른 문제들을 다루게 되면 변두리 주변 문제를 맴돌게 되는데 그 핵심 문제가 터져 나와야 한다 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그녀에게 그 문제를 어려워도 이야기를 하게 하는 것이다.

 아래의 치료 사례는 42세의 중년 부인으로 초등학교 시절의 그녀의 자아를 찾을 수 있는가? 라고 질문을 하면서 치료자에게 1년 동안 치료를 받은 사례이다. 꿈의 조각이 퍼즐처럼 뒤엉켜서 그것의 상징적 의미를 찾아내서 그것의 사고를 밝혀내어 원인을 찾아내는 것처럼 그녀의 실제 공포증의 그 원인은 그녀 자신은 모른다 이것을 분해해서 그것의 조각들을 연결해서 그 실제 상처의 원인을 찾아내는 분석의 과정이 잘 묘사되어져 있다(2011, 7, 4의 치료 사례 인용)

초등학교 시절의 자아를 되찾고 싶어요

대상:  42세의 전업 주부인 중년 부인

가족관계: 남편과 초등학교 6학년 아들이 있음

진단: 우울증

치료 기간: 1주일에 3회씩 1 2시간씩 1년동안 심리분석 치료를 받음

치료의 동기: 남편과 초등학교 6학년 아들이 있는 40대 초반의 한 여성이 치료자를 찾아왔다. 초등학교 시절의 자아를 회복할 수 있는가? 알고 싶어서 찾아왔다고 했다. 살고 싶은 의욕이 없고 의기 소침해서 우울하다고 했다. 부인은 옛날의 초등학교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지금의 자아는 진정한 자신의 자아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결혼해서 자녀가 한 명 있으나 결혼도 남편의 적극적 구혼 때문에 한 것이지 자신이 좋아서 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친구 관계도 끊어져서 친구가 없고 취미 생활도 없고 하는 일도 없이 집에서 전업 주부로 지내고 있다고 했다. 부인은 우울증이 분명했다. 지금까지 정신과 치료를 받은 적은 없으나 약물 치료는 하고 싶은 생각이 없고 심리분석 치료를 받고 싶다고 했다.

심리분석 치료의 초기 단계: 분석 치료 과정에서 문제의 핵심이 표면화되기까지 심리분석 치료의 초반기라고 부른다이 때까지 몇 개월에서 몇 년이 걸리기도 한다. 정신분석의 용어로는 치료 동맹이 형성되는 시기로 본다치료자와 환자 사이에 믿음과 신뢰 관계가 쌓이면서 환자는 치료자를 믿고 모든 자신의 비밀을 말하게 된다. 치료 동맹이 없으면 치료는 없다. 치료 동맹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치료자의 공감이 필수적이다치료자의 공감 반응에 의해서 환자는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이다치료자가 환자를 이해하고 수용하고 인정해 주게 될 때 환자는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수용하고 인정하기 시작한다. 치료자가 환자를 진실된 인간으로써 가치 있는 인간임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에서 치료는 시작이 된다치료자는 환자를 이 세상에서 가치 있는 인간으로써 무조건 긍정을 제공해줄 때 환자는 자신을 가치 있는 인간으로 수용하게 된다결국 환자 자신을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Carl Rogers의 공감 이론).

언제부터 우울했느냐? 라고 물었을 때 초등학교 시절에는 우울하지 않았고 초등학교 때의 자아를 되찾고 싶어 했다. 치료의 동기는 초등학교 시절의 자아를 되찾을 수 있는가? 였다. 부인은 지금의 자신의 자아를 싫어한다고 했다. 초등학교 시절에 어떠했는가? 를 이야기해 보라고 했다.

과거의 역사부인은 초등학교 1  6년까지 반장, 부반장을 했고 초등학교 6학년 때는 전교 부회장을 역임했다. 공부도 잘했고 선생님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다고 했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고 시험제도가 있던 고등학교 때는 명문여고를 다니고 있었지만 최악의 상태였다고 했다. 여고 2학년 때 자살 시도가 한번 있었고 변소 공포증이 있었다고 했다. 변소 공포증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었는지? 물었을 때 부인은 민망해했다. 대낮에 여고에서 변소에 가지 못해서 변소에 갈 때는 친구 몇 명의 호의를 받으면서 변소에 갔다고 했다. 정신과에 가 보았느냐고 물었을 때 정신과에는 가지 않았고 고등학교 상담 선생님에게 찾아가서 상담을 한 결교회에 다녀 보라고 해서 그 때부터 지금까지 그 교회에 다니고 있다고 했다. 변소 공포증은 그 후에 학교를 졸업함으로써 끝이 났다고 했다. 변소에 가면 무엇 때문에 무서웠는지? 물었을 때 귀신이 아니고 어떤 남성의 험악한 얼굴 모습이 떠 올라서 무서웠다고 했다. 얼굴의 남자가 누구인지 기억이 나느냐? 라고 물었을 때 전혀 기억이 없다고 했다. 왜 하필 변소에 가면 그 사람의 험상 굳은 얼굴이 떠 오르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고 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부인의 자살 시도는 더 이상 없었다. 어머니가 자신을 대신해서 죽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 결혼 전까지 직장 생활을 했다. 직장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동료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그 때 결혼 프로포즈를 많이 받았고 지금 생각하면 유능한 남자들의 구애가 많았으나 왜 자신이 거부를 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고 했다. 지금의 남편은 구혼 신청을 한 남자들에 비해서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으나 끈질긴 구애 때문에 할 수 없이 허락을 했고 결혼 이후부터 지금까지 삶은 자신이 원하는 방향과는 전혀 다른 자신이 싫어하는 자아로 만들어졌다고 했다. 부인은 특별이 초등학교 시절을 강조했다. 초등학교 시절의 자아가 그대로 지속 되었더라면 지금쯤은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초등학교 시절의 자아를 회복할 수 있는지를 알고 싶다고 했다.

초등학교 시절이 부인의 삶에서 전성기였으나 중학교 시절부터 내리막 길을 걷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치료자는 초등학교 시절에 틀림없이 어떤 일이 있었을 것이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생각나는 것이 없느냐? 고 물었다. 부인은 특별한 것이 생각나는 것이 없다고 했다. 치료자는 초등학교 5학년 6학년 때 어떤 일이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이벤트가 있었기 때문에 중학교 시절부터 내리막 길을 걸어간 것이 아니냐? 고 물었다. 그것이 부인의 우울증의 핵심이 될지 모른다고 했다. 그것이 앞으로 언젠가는 밝혀지겠지만 그것이 빨리 밝혀지면 질수록 치료의 진행 속도는 빨라질 것이고 그것이 늦게 밝혀지면 질수록 치료는 늦어질 것이다고 했다. 부인이 알고 있으나 말을 할 수 없는 것이라면 이야기하고 싶을 때 이야기하면 된다고 했다. 강제로 이야기하지 않아도 됨을 강조했다. 그것이 몇 주일 안에 밝혀질 것인지 몇 년 만에 밝혀질 것인지를 모른다. 그러나 빨리 밝혀질수록 좋다고 했다. 위의 분석은 치료가 시작 댄지 3개월 정도 지났을 때에 핵심 문제로 떠오른 것이었다.

부인은 몇 주일이 지나도록 특별히 기억 나는 것은 없다고 했다. 분석 치료는 계속해서 부인의 과거의 어린시절에 있었던 이야기로 흘러가면서 연결 고리를 찾으려고 자유 연상이 계속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부인은 초등학교 때 특별한 사건이 있었다고 고백을 했다. 지금까지 아무에게 이야기할 수 없었던 이벤트라고 했다. 부인은 초등학교 6학년 담임 선생님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것이었다. 그 때 전교 부회장이었고 학급 반장으로 공부도 제일 잘 했었고 키도 커서 성숙한 편이었다고 했다. 담임 선생님은 그 당시에 33살로 미혼이었고 과외 공부를 한다는 핑계로 담임 선생님 집에서 동료 몇 명과 공부를 하면서 자고 오기도 했다고 했다. 가족들은 담임 선생님이 공부를 무료로 가르쳐 준다고 하니까 의심을 하지 않고 믿었던 것이었다. 그 후에 담임은 방과 후에도 교실에 남게 해서 몸을 더듬거나 키스나 애무를 하는 일이 잦았다고 했다. 그 때 부인은 담임이 자신을 사랑해서 하는 행동으로 지금까지 알고 있었다. 그것이 성폭행인 줄 모르고 있었다. 담임은 그 때 미혼으로 5학년과 6학년을 연속해서 담임을 맡아 왔었다고 했다. 문제의 핵심은 밝혀졌다. 부인은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에게 성폭행을 당했고 그것이 부끄러워 아무에게 말을 한 적이 없었고 남편에게도 가족, 친구에게도 그 사실은 비밀로 해 왔음을 실토했다.

치료자는 부인의 성폭행 문제가 표면화됨으로써 부인의 여고 2년 때의 변소 공포증을 쉽게 설명할 수 있었다. 부인에게 변소에서 떠 오르는 험상 굳은 남자의 얼굴은 바로 부인을 성폭행한 그 담임 선생님의 얼굴이 아닌가? 라고 물었을 때 부인은 깜짝 놀랐다. 틀림없다는 것이었다. 만약 그 당시 여고 2학년 때 치료자에게 그 분석을 받았다면 부인의 변소 공포증은 사라졌을 것이다. 부인은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길거리에서 담임을 만날까 봐 늘 불안했고 담임을 피해 다녔다고 했다. 왜 하필 변소 공포증으로 나타난 것인가? 여기에 대한 대답은 어렵지 않다. 부인은 사춘기를 중 3 학년에서 고등학교 1학년 때 시작했다고 했다. 생리가 중 3 때 시작 되었고 고1, 2 때는 한창 사춘기를 지나가고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의 성폭행 사건을 까맣게 잊고 있지만 무의식적으로 신체는 성폭행의 상처를 기억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을 따라서 여관에 간 기억도 있었다. 담인 선생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많았지만 한 쪽에는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무엇인가 부끄러운 짓을 하고 있다양심을 목소리가 남아 있었다. 그 후에 부인은 담임을 피해 다녔고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부인은 괴로워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나는 처녀가 아니다, 내 몸은 더럽혀졌다. 나는 순결을 잃었다" 등의 생각 때문에 부인은 사춘기를 혼동 속에서 보냈다. 왜 하필 변소 공포증인가? 변소에 가면 옷을 벗고 성기가 노출 되지 않는가? 사건 자체는 잊어버렸지만 매일 같이 대, 소변을 볼 때에는 성기가 노출되니까? 무의식적으로 그 사건에 연결된 것이었다. 왜 집에서는 변소 공포증이 아니고 학교에서만 변소 공포증인가? 학교에서 성폭행을 당했으니까! 학교---담임--- 성기--- 성폭행--- 변소에서 성기 노출---얼마나 무의식의 정교한 연결인가!  우리는 과거를 잊었지만 과거는 우리를 잊지 않고 있다과거는 살아 있다는 명언이 이것을 대변해 주고 있지 않는가? 부인은 치료자의 해석에 탄복했다. 틀림없다는 것이었다. 부인은 사춘기 때 유사한 고통스러운 경험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치료에 급 진전이 이루어졌다. 부인은 언니와 함께 양철북 이라는 영화를 보다가 도중에서 뛰쳐  나왔다고 했다. 영화 양철북의 이야기는 성폭행 당해서 사생아로 태어난 어린이가 성장이 멈춰서 나치의 선전 도구로 이용되는 이야기이다. 성폭행이라는 단어 때문에 부인은 깜짝 놀랐고 그 고통을 감내할 수 없었다고 했다. 언니가 따라 나와서 왜 그러느냐고 물었지만 부인은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이 후에 명작 소설인 토마스 하아디 더브빌 가문의 테스 우리나라 번역 본으로 테스를 읽다가 책을 덮어버리고 말았다고 했다. 책의 내용이 성폭행을 당한 테스의 불행한 삶이 묘사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후에 부인은 성폭행이라는 말만 들어도 TV의 채널을 돌리거나 눈을 돌려왔다고 고백을 했다.

부인의 우울증의 핵심은 성폭행이었다. 이후부터 성폭행 상처의 치료가 시작되었다. 부인은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사랑을 독차지한 것으로 지금까지 알고 있었으나 담임이 부인을 교묘하게 이용한 것이었다. 분명히 부인은 성폭행 사건 이후에 지금까지 성폭행 상처의 후유증을 앓고 있음을 인정했다. 왜 부인의 삶이 엉망진창으로 변했는가? 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왜 우수한 결혼 후보자들을 거부 했는가?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에 지금의 남편보다도 우수한 결혼 구혼자들이 프로포즈를 했을 때 부인은 마음 속에 나는 처녀가 아니다, 나는 순결을 잃었다, 내가 결혼해서 신랑이 첫날 밤에 내가 처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같은 수많은 고통 때문에 그들을 거부했다고 했다. 겉으로는 그 사람이 내가 맞지 않은 상대라고 말했지만 속으로는 성폭행 때문이었음을 고백했다. 부인은 통곡을 했다. 그 동안 억압해 두었던 모든 분노, 적대감, 미움 들이 표면화되기 시작했다. 감정 정화가 시작되었다. 울고, 고함을 지르고 한탄을 하고 싶은 말을 싫도록 하게 했다.

부인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전교 부회장을 했으면서도 초등학교 친구들은 한 명도 깊이 사귀는 사람이 없음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왜 지금까지 친한 친구가 한 명도 없는지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친구를 깊이 사귀면 내 과거의 비밀이 노출될 것이기 때문에 친밀한 친구를 사귈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친구를 깊이 사귈수록 우리는 상대방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된다. 자연히 그 사람의 마음 속에 깊이 들어갈 수가 있게 된다. 성폭행 당한 사람의 공통점이 사람을 깊게 사귈 수 없다는 점이다. 자신의 비밀이 노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나온 방어 행동임을 부인은 이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담임 선생님이 초등학교 6학년 당시에 부인을 성폭행할 때 한 말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었다. 담임은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내 담임인 여자 선생님이 나를 가족 목욕탕에 데리고 가서 내 성기를 빨고 자신의 성기를 빨게 했다. 내 성기를 발기시켜서 자신의 성기에 집어넣게 하였다.는 말을 기억해 냈다.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들은 이후에 성장해서 다시 성폭행의 가해자가 된다는 것은 이미 많은 정신분석 학자들의 연구 결과들이 말해주고 있다. 담임은 성폭행의 피해자였다. 그래서 자신은 페도필리아(pedophilia)  어린이 성폭행 변태 성욕자가 된 것이다. 어린이를 성폭행의 대상으로 삼은 변태 성욕자들은 어른의 성기를 보면 성 관계가 안 된다. 어른의 성기를 보면 더럽다, 징그럽다 로 느껴져 성욕구가 사라진다. 대신에 어린이들의 성기를 보면 예쁘다, 귀엽다 로 성욕구가 치솟는다. 이유는 0  5세까지 어린시절에는 어린이들은 옷을 벗고 자란다. 남자 어린이, 여자 어린이들은 서로 성기를 보고 장난을 치면서 자란다. 어린이들의 성기는 익숙해져 있지만 어른의 성기를 보면 놀란다. 어른의 성기는 음모, 털이 나 있고 성기가 엄청 크기 때문에 어린이가 어린시절에 어른 성기를 보면 놀래서 성욕구가 상처를 입는다. 이 때 상처를 입은 어린이들은 어른이 되어서 성숙해진 후에 어른의 성기를 보면 어린시절에 본 상처 받은 욕구가 성장이 중지되어 그대로 머물러 있어서 어른 성기를 보고 놀라는 것이다. 어린이 성기는 깨끗하고 귀엽고 예쁘게 보이는 것이다. 이들이 어른이 되면 어린이들의 성기를 보면 흥분하지만 어른의 성기를 보면 성적 흥분이 사라진다. 그래서 성 욕구의 방출 대상으로 어린이들을 섹스 대상으로 찾는 것이다.

치료의 중반기: 문제의 핵심이 표면화되면 문제 해결을 위한 시도가 시작된다감정을 정화시키고, 문제를 직면하게 하고 문제를 하나 하나씩 뚫고 나가게 한다정면 돌파를 하는 것이다문제 뒤에 숨겨진 수치심, 분노, 적대감, 모욕을 받아들이고 느끼게 만들어 준다. 환자는 지금까지 자신의 감정을 두려워해서 감정을 대면하기를 피한 것임을 알게 된다. 자신의 상처 경험과 유사한 감정을 피해왔음을 알게 된다. 왜냐하면 유사한 상처가 주는 고통 때문에 고통을 피하기 위해서였다과거의 상처가 재 경험되는 것이 특징이다. 여기에다 새로운 경험이 첨가 된다단순한 과거의 상처만 재 경험하면 과거 상처의 단순한 반복이 된다. 단순한 과거의 반복은 문제를 악화 시킨다. 새로운 경험이 첨가되지 않으면 과거의 상처만 되풀이하는 꼴이 된다과거의 상처에 관계 된 부정적 경험과 부정적 인지 믿음을 긍정적 인지 믿음으로 바꾸는 것이다상처의 경험을 대면하여 그 감정에서 벗어나는 경험이 새로운 경험이 된다. 이후에 환자는 더 이상 과거의 유사한 경험을 피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부인은 담임 선생님이 자신을 사랑했기 때문에 자신과 성 관계를 했다는 잘못된 생각에서 벗어나자 사랑의 감정이 미움으로 변했다. 자신의 삶을 망가뜨린 담임을 용서할 수 없다고 했다. 부인은 자신의 삶이 뒤죽박죽이 된 것이 분명하고 이 상처 때문에 배우자 선택에서 자신을 비하시켰고 자신감이 망가졌음을 알게 된 것이다. 분노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담임에 대한 분노, 미움을 카타르시스 시키기 위해서 치료자는 초등학교 때 담임과 함께 찍은 사진이 있으면 가져 오라고 했다. 실물이 없으니까 사진을 보면 더욱 실감이 느껴져서 분노의 표현이 많아질 것을 감안한 것이었다. 다음 주에 치료실에 온 부인은 담임 선생님과 찍은 사진은 한 장도 남아있지 않았다고 했다. 일부러 사진을 모아서 불태우거나 찢어버리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사진을 한 장도 남아 있지 않았다. 부인은 담임 선생님에게 대한 무의식적인 분노와 미움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고 자신도 깜짝 놀랐다. 담임은 초등학교 5학년  6학년을 연달아서 담임을 했고 수학여행, 졸업 앨범, 학생회 행사 등에서 가장 사진이 많을 시기인데도 그 때 찍은 수 많은 사진들 중에 담임과 함께 찍은 사진을 한 장도 없이 사라진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이사를 다니면서 한 장씩 두 장씩 부인이 무의식적으로 없애버린 것이었다.

 분노, 미움, 적대감의 방출이 어느 정도 빠져 나가자 이제는 대인관계의 문제로 패턴을 바꾸었. 먼저 남편에게 성폭행을 사실을 알리느냐? 의 문제가 등장했다. 이 때 남편이 의심이 많거나 부인에 대한 불신이 많을 때는 남편에게 알리지 않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의심증이 많은 편집증적인 남편은 부인이 그러한 일이 없는 데에도 다른 남자와 관계가 있지 않았나 하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데 만약 이러한 일이 일어났다고 하면 걷잡을 수 없게 된다. 부인이 남편에게 영원히 비밀로 하면 남편과 부인 사이에 감정의 장벽은 영원히 남게 된다. 건강한 남편이라면 비밀을 알리고 남편의 이해와 용서를 구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래서 이후에는 감정의 벽이 흘리면 그 만큼 서로가 가까워지기 때문이다. 부인의 경우에 남편에 대한 타진을 해 본 결과 남편은 이해해 줄 수 있다는 부인의 판단에 따라서 남편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남편은 부인이 강간을 당한 것이 아니고 성폭행을 당했음을 이해하게 했다. 부인은 순결을 잃은 것이 아니고 성기에 폭행을 당한 것이다. 강제로 성 관계를 한 것이 아니라 성기에 폭력이 가해진 것으로 성 관계와는 상관이 없음을 이해하게 했다. 최근에 많은 정신 건강 전문가들의 연구 결과로 이제는 강간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눈에 폭행을 당했을 때 눈에 멍이 들고 한 달 두 달이 지나면 눈이 회복되면 눈이 더러워진 것이 아니고 눈은 순수한 것처럼 성기에 가해진 폭력은 시간이 흐르면 아물게 되고 성기는 더럽혀진 것이 아니고 순결한 것과 같다는 것을 남편이 이해하게 되었다. 남편과의 감정의 장벽이 헐어지면서 부인과 남편과의 관계는 더욱 가까워졌고 남편에게 이제는 못하는 말이 없는 비밀이 없는 부부관계로 발전을 했다.

치료의 후기 단계환자가 자신의 문제를 차고 나갈 수 있게 되 자아의 구조 변화를 가지게 한다내면의 자아 구조를 변화시켜야 한다. 이후에 유사한 문제나 대인관계에서 자신을 노출 시킬 수 있는가? 가 테스트를 받게 된다자신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단점을 수용하고 통합하고 자신을 사랑하게 만들어야 한다. 내 삶이 충만해지고 에너지가 넘치고 삶은 살아갈 가치가 있음을 느끼고 매사에 능동적으로 활동하게 한다.

부인으로 하여금 어린시절의 가족 구원성들과의 끊어진 관계를 다시 복원 시키게 했다. 자신의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성폭행 당한 사실을 가족 구성원들에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부인은 이제 동료들에게도 과거의 상처를 이야기할 수 있게 되어갔다. 언니 가족과 관계를 회복하고 오빠네 가족들과도 관계를 회복해 나갔다. 양철북의 비디오를 다시 빌려서 이제는 중간에서 중단하지 않고 전체를 다 볼 수 있게 되었다. 고등학교 때 읽다가 덮어버린 테스를 다시 읽기 시작했고 아무렇지 않고 테스를 독파할 수 있게 되었다. 친구들과 친밀관계를 가질 수 있게 되어 갔다.

상처에서 빠져나오면서 부인은 옛날에 하고 싶어했던 공부를 다시 계속하기 시작했다. 대학에 가고 싶었으나 가난해서 취직을 해야 했던 부끄러운 과거를 이제 다시 복원할 수 있게 되었다. 부인은 다시 방송 통신 대학에 진학해서 다시 새로운 적극적인 삶을 살아가기 시작했다. 오랫동안에 사장해 두었던 자신의 재능을 다시 가동시키기 시작한 것이었다. 방송 통신 대학에 합격을 했고 그 과정을 잘 따라갈 수가 있었다.

 부인은 자신의 경험을 살려서 전문 직종으로 상담 심리학을 공부하고 싶어했다. 특히 청소년들에게 성적인 문제를 상담해 주는 상담 심리전문가가 되겠다는 야심 찬 계획 하에서 열심히 상담 심리학을 공부하고 있으며 간혹 신앙 간증회나 청소년 모임 등에서 자신의 불행했던 과거 성폭행의 이야기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의 문제를 부끄러워하지 않게 되었다.

 부인은 과거 초등학교 6학년 담임 선생님을 만나서 양을 탈을 쓴 이리의 모습을 보고 자신 있게 당신의 성 욕구 충족의 대상물이 된 내가 지금 어떻게 어려운 삶을 살아 왔는가? 얼마나 당신이 다른 한 사람의 인생을 파멸 시켰는가? 내 삶이 얼마나 많이 망가졌는가?" 를 말하고 싶어했고 만날 수 있는 용기 생겨났다고 했다. 담임 선생님은 그 후에도 성폭행 사건이 몇 건 있었고 현직에서 쫓겨나서 어디에 살고 있는지 찾을 수가 없어 할 수 없어 포기 했다.

 부인은 이제 우울증에서 벗어나서 당당하게 열심히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자신이 일할 전문 분야를 다시 찾고 가족들과 화목을 다시 회복하고 자녀 교육에 열성을 보이고 친구들과 친교 관계를 다시 시작하고 친지들과 관계를 회복해서 서로 왕래가 잦아지고 삶에 대한 희망을 다시 가지게 되었다

 이제 비보 노출(vivo exposure) 로 이동해 보자.

우리는 상상 노출 혹은 비보 노출이전에 내담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설명을 제공한다. 아래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인지 행동 치료에서 로스바움(Rothbaum)과 포아(Foa)의 비보 노출을 요약해서 인용한 것이다(로스바움에모리(Emory) 의과대학 정신과 교수, 포아펜실베니아 의과대학 정신과 교수이다).

내가 그 상처의 기억들을 회상을 하도록 당신에게 질문을 하려고 합니다. 그것이 당신이 눈을 감고 당신이 주의관심이 흩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그리고 고로 당신은 당신의 마음의 눈 안에서 이들 이벤트들을 시각화 할 수 잇습니다. 내가 당신에게 질문을 해서 이들 고통스러운 기억들을 가능한 생생하게 회상을 하도록 해 보세요. 우리가 이것을 재연이라고 부릅니다. 내가 당신에게 원하지 않는 것은 과거의 감각으로 이 상처를 회상하지 말아주세요. 내가 당신이 하기를 원하는 것은 현재의 시재로 이 상처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눈을 감고 나에게 상처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를 나에게 이야기를 되도록 소상하게 이야기를 해주세요. 우리는 이것을 함께 작업을 할 것입니다. 만약에 당신이 너무 불편을 느낀다면 그리고 도망가고 싶거나 혹은 그 이미지를 떠남으로써 그것을 피하고 싶다면. 내가 당신을 그것에 머물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우리는 그 대화를 녹음을 해서 그리고 당신이 그 테이프를 집에 가지고 가서 그것을 다시 과제로 그것을 경청할 것입니다. 때때로 당신이 그 상처를 재-경험하고 있을 동안에, 내가 당신에게 당신의 불안의 수준을 0에서 100의 스케일로 질문을 할 것입니다 그 안에서 0은 불안이 없고 혹은 100은 불편함을 그것이 공황 수준의 불안을 의미합니다. 재빨리 대답을 하세요 그리고 그 이미지에서 떠나지 말아 주세요. 우리가 시작하기 이전에 어떤 질문이 있으면 이야기를 해 주세요.

우리가 전체 60분을 상상의 노출을 이해서 사용할 것을 추천한다. 만약에 내담자가 그 상처를 다시 생각을 하는데 15분이 걸린다면, 그 다음에 그 치료사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서 그리고 그것을 다시 통과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만약에 그것이 20분이 걸린다면, 그 내담자는 그것을 3번 이상 반복해야 한다 그리고 등등이다. 따라오는 설명들은 그 내담자를 노출 동안에 격려하는데 도움을 줄 것입니다. 당신은 잘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 이미지에 머물러 주세요,” “당신은 잘 하고 있습니다. 비록 당신이 대단히 두렵다고 할지라도 용기를 내서 그것에 매달리세요.”  이것이 어렵다 라는 것을 내가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대단히 잘 하고 있습니다.” “그 이미지에 머물러 있으세요, 여기는 당신에게 안전합니다.” “당신 자신에게 안전함을 느껴보세요. 그리고 그 느낌을 내보내세요.” 따라오는 질문들은 이미지 노출 동안에 두려움을 불러 일으키는 실마리들과 직면을 촉진시킬 수 있다. 당신이 무엇을 느낍니까?” “당신이 무엇을 생각합니까?” “당신이 어떤 신체적인 반응행동을 경험합니까? 그들을 기술하세요” “당신의 몸이 무엇을 느낍니까?” “당신이 무엇을 보고 있는 것/무엇의 냄새를 맞고 있는 것/무엇을 지금 하고 있습니까?” “당신의 몸 안에서 어디를 느낍니까?60분의 이미지 노출 이후에, 그 치료사는 환자에게 눈을 뜨라고 요청을 함으로써 이 연습을 종결해야 한다. 치료사와 내담자는 그 다음에 그 상처의 재경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야 한다. 그 내담자가 이전에 회상을 하지 못한 것을 기억을 했는가? 그것이 그 내담자가 생각을 했던 것보다 더욱 더 어려웠는가? 혹은 쉬웠는가? 거기에 그 치료사가 도와줄 수 있었던 어떤 것이 있었는가?

 그 치료사는 그 혹은 그녀가 다를 수 있다 라는 자신감을 표현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리고 그 내담자로 하여금 떠 오르는 것은 무엇이든지 간에 다룰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때때로 내담자들이 이미지 노출 동안에 그들이 기억을 한 것에 놀라는 것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재확신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것이 그들로 하여금 회상을 하도록 도와준다 그들이 기억을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간에, 그것이 일어났던 것은 변화지 않는다 혹은 그들이 살아 있다 라는 그 사실 그리고 그러므로 살아남기 위해서 올바른 일을 했다 우리는 아직도 그 이미지 노출 동안에 그 혹은 그녀가 대응할 수 없는 소상함을 기억을 했던 내담자들을 만난 것이 없었다. 우리의 내담자들 중에서 한 사람이 노출 치료 회기의 제 각각을 기술하면서 양파의 껍질을 벗기는 것처럼 그리고 몇 치료 회기 이후에, 당신이 중간 부분에서 매달리게 되고 그리고 그 다음에 그것이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습니다.”

정신분석학에서는 위와 같은 체계적인 방법을 사용하지 않지만 환자로 하여금 자신의 고통스러운 과거의 상처를 이야기를 하도록 유도한다. 환자는 스스로 그러한 과거의 상처들을 기억하고 있는 것을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하도록 한다는 점에서 그 상처를 이야기하고 그것을 분석해서 어디에서 잘못되었는가? 찾아내고 그 상처의 기원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가? 알게 됨으로써 그의 문제의 근원을 알게 된다. 인지행동 치료에서 주로 3개월 혹은 4개월 프로그램이지만 정신분석에서는 그 상처가 해결되어질 때까지 몇 년이고 계속된다 라는 점차이점이다.

그 다음에 인지 행동 치료에서 불안관리와 긴장 이완훈련이다. 불안관리 훈련은 불안을 낮추는 것이다 그리고 긴장 이완 훈련근육의 긴장을 풀고 복식 호흡을 통해서 긴장을 내리는 것이다. 긴장이완과 불안관리는 비슷하다.

눈을 감고 조용한 호수, 파도가 없는 잔잔한 바다를 생각해 보세요, 초록색 호수를 상상해 보세요, 눈 앞에 호수가 펼쳐진 이미지를 상상해보세요. 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내 마음 속에 모든 긴장이 내 팔과 다리를 통해서 빠져나감을 느낍니다, 내 머리가 시원해집니다 내 어깨와 팔이 시원해집니다 내 몸과 다리가 시원해집니다 ! -- 시원함이 내 몸 전체를 퍼져 나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다른 생각들이 이미지 속에 끼어들어오지 못하게 차단해야 한다. 내담자의 이미지 제시에 따라오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긴장을 낮추게 인위적으로 컨트롤하는 것이다. 인지행동 치료에서는 불안, 긴장과 긴장 이완은 서로 양립할 수가 없다 고로 서로 반대가 된다. 상처 스트레스를 상상하면 긴장과 불안이 증가한다 이 때 긴장이완, 불안관리를 해서 긴장을 낮추고 마음의 편안하게 한다 이것을 반복하면서 상처 이벤트에 접근해가는 것이다. 반복된 설명이지만 이것은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시간이 절약된다.

 정신분석에서는 치료의 과정이 긴장의 이완 훈련을 사용하지 않고 대화의 과정이 바로 긴장의 이완으로 연결된다. 치료자는 치료의 시작 때, “여기에는 예의범절이 없습니다. 치료자 앞에서 예의를 차리려고 하지 말d아 주세요, 자세를 편안하게 하세요, 다리를 소파에 올리고 몸을 비스듬하게 해서 이야기를 해도 됩니다. 말을 가려서 논리적으로 하지 말아주세요, 실수를 해도 관계없습니다. 자세를 편안하게 하세요. 눈을 감고 이야기를 해도 좋습니다. 그리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 보세요(프로이트는 환자를 카우치에 눈을 감고 눕게 하고 환자 뒤에서 노트를 한다. 환자와 눈을 맞추지 않는다. 이것은 환자가 분석가를 보고 긴장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라고 시작을 한다.

여기에서 치료자는 보통 50분 대신에 120분의 치료 회기를 사용한다 이 이유는 2시간 동안에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대화에 집중하기 때문에 자신의 불안을 잊어버린다 서로 주고 받은 이야기에 빠져들게 되면 자율신경의 교감신경 체제에서(불안과 긴장의 상황) 부교감 신경조직(긴장의 해제)으로 자신도 모르게 바뀌게 된다. 50분 동안을 사용하면 어느 정도 긴장이 풀리려고 하면 시간이 끝나기 때문에 긴장을 자연스럽게 낮추기 어렵다, 고로 120분 동안 정해진 이야기가 없이 환자가 하고 싶은 말들을 하도록 유도하면 자연스럽게 긴장이 자신도 모르고 풀리게 된다. 주로 대화의 비율은 환자가 80%치료자가 20% 이야기를 하게 된다. 어떤 특수한 조현병 환자d의 경우에는 기억이 없습니다.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라는 단답형의 환자들의 경우에는 초반기에 그 비율이 반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가면서 환자가 이야기를 많이 하도록 장려하게 된다. 치료자가 6개월의 치료 계약을 하는 것은 이렇게 약 30시간을 경과하면 환자의 긴장이 풀리고 불안이 낮아지게 되면서 환청, 환각, 망상이 줄어들게 됨을 환자가 스스로 느낄 수 있다. 10시간 정도에서 치료사가 환자에게 치료를 받을 때 마음이 편안 해지는가? 100%, 50% 0%로 표현해보세요r고 할 때 대부분이 20%라고 대답을 한다.

 이것은 인지행동 치료가 짧은 시간에 조직적으로 수행한다 라는 것과 대조적으로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긴장의 이완의 효과는 정신분석이 크다 인지행동 치료에서 부모에게 지시명령, 과도한 관섭에 시달린 내담자들은 치료자의 교육에 반발할 수 있다. 상담자가 내담자를 교육하는 것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신분석에서는 강압이나 강제가 없고 자연스럽게 대화를 통해서 유도하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효과가 높다. 환자가 6개월의 치료 과정에서 효과를 느끼고 더욱더 분석을 받고 싶다고 생각이 들면 다시 6개월의 치료계약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인지행동 치료에서는 스트레스 주입 훈련이 있다. 내담자는 과거의 상처의 기억이 고통스럽기 때문에 피하고 잊어버리려고 한다. 치료에서 과거의 상처를 상상으로 떠 올리게 한(비보 노출, 상상 노출 참고).

정신분석에서는 어린시절부터 환자가 고통스러운 상처 기억을 회상하게 한다. 기억이 내려가는 곳에서 주로 3-5세 혹은 유치원에서 초, , , 대학, 그리고 현재까지 상처받은 고통스러운 기억을 회상해서 이것을 치료 시간에 다룬다. 이것을 직면이라고 한다 혹은 과거의 상처의 재연(reenactment) 라고 부른다. 과거의 상처를 회상에서 그것을 다룰 때 그 시점에서 어떻게 다뤘는가? 를 분석해서 잘못된 것을 다시 고치고 재연으로 의사소통을 훈련시킨다. 그렇게 해서 대응해 나갈 수 있는 자아의 힘을 키우는 것이다.

인지 치료에서 많이 사용하는 자아 강화 훈련이 있다. 자신의 장점을 칭찬해서 자신의 기분을 들어올리는 것이다. 정신분석에서는 자아의 목소리를 내도록 장려한다. 이 세상은 (자아)에서 시작하도록 한다. 지금까지 환자는 부모님의 말씀에 부응하고 순응하고 복종한 것으로부터 이제 삶의 중심이 내가 된다 모든 것을 내가 중심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인지행동 치료에서 두려움의 접근조그만 것에서 점점 큰 핵심 공포 대상으로 확대하는 것은 이미 체계적 감각 박탈, 조직적인 둔감법에서 다루었다 정신분석에서는 양육에서 상처들을 찾아내서 엄마와 아빠와 관계를 먼저 다룬다. 양육의 상처를 재연해서 부모님과 갈등 관계에서 이것을 부모님에게 표현하게 한다. 부모님에게 대화를 할 때 “아버지 어머니 내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부모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내가 이야기를 하는 것을 중간에 가로막지 말고 끝까지 물어 주세요. 내 이야기가 끝나면 어머니, 아버지에게 시간을 드릴 터이니 그 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세요,라고 이야기를 하고 자신이 서운했던 것을 마음대로 이야기를 하도록 한다. 부모님에게 No라고 이야기를 하지 못하면 사회생활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No라고 이야기를 하지 못한다 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부모님 앞에서 마음대로 부모님의 두려움과 처벌이 없이 마음대로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부모님 앞에서 긴장과 불안이 사라진다. 여기에서 그 다음 단계로 과거에 갈등적인 친구들과 관계로 한 단계 상승하게 된다. 부모님은 자녀가 아는 이야기를 어떤 것이라고 들어줄 수 있다 왜냐하면 자녀는 부모님의 분신이고 핏줄이기 때문에 자녀의 문제가 회복된다고 하면 어떤 것이라고 들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인지 행동 치료 안에서 많이 사용하면 공포적인 대상을 피하지 않고 직면(confrontation) 하는 것이다. 모든 행동 치료에서 그 공포적인 대상들에 점진적으로 접근해서 결국은 지금까지 두려움과 공포증 때문에 피하고 도망친 것으로 가깝게 접근하는 것이 바로 그 공포적 대상에 마침내 접근하는 것이다. 반면에 정신분석에서는 그 장애물을 뚫고 나간다(working through)라는 용어가 바로 지금까지 피해온 대상을 마주해서 그 문제들을 극복하고 해결하는 것이다.

인지 행동 치료에서 많이 사용하는 사고 멈춤(Thought Stop)이 있다. 이것은 내담자가 자신이 잘못하고 있는 것을 스스로 견책하는 것으로 그렇게 하면 안돼! 잘못한 거야,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의 손바닥으로 엉덩이를 때리거나 혹은 자신의 손바닥을 고무줄로 퉁기는 것이다(어떤 사람은 자신의 뺨을 갈기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혐오적인 것은 금물).

정신분석에서는 자신의 상처를 분석해서 어디에서 잘못된 것인가? 를 스스로 깨닫게 한다. 그 잘못된 것의 원인을 알게 되면 스스로 그러한 것을 강압하지 않고 스스로 고칠 수 있다. 아래의 사례는 2012, 9, 5일에 치료를 시작해서 35개월 동안 치료사에게 심리치료를 받았다. 아래의 사례는 1주일에 2시간으로 시작했으나 그의 요청으로 3시간씩 치료를 하면서 제 1026시간의 치료 과정을 요약한 것이다.

인지행동치료에서 자주 사용하는 모델링(modelling)은 자신이 존경하는 혹은 좋아하는 사람들을 본보기로 그 사람처럼 되고 싶어하는 것으로 스스로 닮아 가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자녀들의 이름들 지을 때 유태인은 구약의 훌륭한 인물들의 이름을 지어주거나 예를 들어서 제이곱슨(Jacobson)(성서의 야곱), 조셉(Joseph)은 성서의 요셉) 등등 혹은 세례를 받을 때 카톨릭에서 김 마리아로 혹은 개신교에서 예수의 12제자들의 이름을 붙이는 경우다. 김요한, 박 바울 등의 이름에서 볼 수 있다. 그러나 인지행동 치료에서는 이름을 고치는 것이 아니고 그의 멘토 혹은 존경하는 인물로써 그 사람을 좋은 점을 닮으려고 하는 것이다.

정신분석에서는 이것을 동일시(identification)라고 부른다.  프로이트는 1913년에 그의 저서 토템과 터부에서 동일시를 명쾌하게 설명을 하고 있다. 원시시대 인간은 나약해서 동굴 속에서 살았다. 진화적으로 점점 동굴 밖으로 강가로 모여들어서 농사를 짖어서 식량을 비축하는 것으로 집단 생활을 하게 되었다(자아의 보호). 여기에서 인간은 힘이 세고 강력한 자연의 동물들을 신으로 숭배를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단군 신화에 나오는 , 호랑이이다. 하늘의 신의 아들인 환인 천재가 땅으로 내려가서 널이 인간을 이롭게 하겠다(홍익인간) 라는 허락을 받아서 백두산의 신단수에 내려왔다. 곰과 호랑이가 그를 찾아와서 자신도 인간이 되고 싶다고 요청을 했다. 환인은 숯과 마늘을 먹고 100일기도를 하면 인간이 되게 해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호랑이는 견디지 못하고 포기했고 이겨내고 여자가 되었다. 환인이 그녀와 결혼해서 낳은 아들이 우리의 조상인 단군 임금이다. 이러한 이야기 속에는 곰처럼 힘이 세고 인내심이 있고 싶어하는 소망이 숨어있다. 세계의 각지의 인종들은 그들 나름의 토템들을 가지고 있었다. 신으로 존경받던 토템들을 죽었을 때 인간들이 그를 잡아먹었다. 왜 그들의 신을 잡아먹었는가? 그것은 바로 그 강한 신의 힘이 그들의 몸 속에 들어와서 그들도 강하게 되고 싶다 라는 소망을 담고 있다. 문화 인류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남태평양의 고립된 섬에서 살고 있는 한 부족은 그들의 추장이 죽었을 때 그를 화장해서 그의 뼈를 갈아서 밥에 넣어서 먹는 것을 보고 그들에게 그 이유를 물었더니 그들이 추장의 힘이 그들의 몸 안에 들어와서 그들도 추장처럼 강하게 된다 라는 믿음에서 였다(UCLA 의과대학 정신과 교수이자 정신분석가인 스톨러(Stoller)와 시카고 대학 문화인류학자이자 정신분석가인 헤드터(Herdt)가 쓴 파푸아 뉴기니아의 삼비아족의 탐사 저서인 친밀한 커뮤니케이션(1990)을 보라), 정신분석학에서 동일시의 개념의 원천을 기술한 것이다.

인지행동 치료에서 사용하는 인지-재구성이라는 기법이 있다. 생각의 구조를 바꾸는 것이다. 단순히 부정적 생각을 고치는 것과 달리 사고의 구조를 통째로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잘못된 생각을 고치기 위해서 확신을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하버드 대학의 실험 생리학 교수인 월트 케논(Walter Cannon, 1932)의 저서 몸의 지혜에서 자체균형유지(homeostasis)의 신조어를 사용했다 즉 항상성이다, 신체는 오랫동안 부정적인 호르몬이 장기화되면 그 부정적인 상황이 정상으로 인식해서 그 부정적 호르몬의 상황을 유지하게 된다는 유명한 이론이다. 그리고 1956한스 셀리(Hans Shely)가 그의 저서 삶의 스트레스에일반화된 적응 증후군으로 인체의 호르몬은 불균형이 시정되어지지 않고 지속되면 비정상적인 불균형이 정상으로 인식되어져서 비정상이 정상이 된다 라는 케론과 일치되는 이론을 기술하고 있다. 여기에서 뉴턴의 제 1 법칙관성의 법칙이다. 필자가 중학교 시절에 과학에서 처음 배운 관성의 법칙은 정지한 물체는 계속해서 정지하려고 하고 운동하는 물체는 계속해서 운동하려고 한다 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의미를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그냥 제 1 법칙으로 외우고 있었다 그런데 정신분석을 공부하면서 그 관성이라는 영어가 inertia 라는 것을 알고 이것의 의미가 습관의 깬다 라는 의미를 알게 되면서 뉴턴의 제 1 법칙이 정지한 물체를 움직이게 하려고 하면 정지한 힘보다 더욱 더 큰 힘을 그리고 운동하는 물체를 정지시키려고 하면 운동하는 힘보다 더욱 더 큰 힘이 필요하다 라는 뜻을 알게 되었다. 이것을 치료를 받는 사람에게 확실하게 각인을 시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우울한 생각이 하루에 몇 번씩 어리 속에서 생각이 나는가? 라고 물었을 때 10번씩 난다고 하면 1달이면 300, 1년이면 3000, 10년이면 300,000이다(40세의 한 남자의 사례). 이것을 긍정적 생각으로 바꾸려고 하면 최소 3만번 이상을 노력을 해야 바꿀 수 있다 라는 것을 통계학적으로 인식시켜서 하루에 10번 이상을 자신의 자아에게 긍정적인 대화를 하도록 노력하게 하는 것이다. 인지행동 치료는 대부분이 3개월 혹은 4개월프로그램이다 혹은 훈련이다 라는 이름이 붙게 된다. 치료의 그 기간 동안에 증세가 해결되어진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항상성 혹은 뉴턴의 제 1 법칙관성의 법칙에 의하면 일시적 변화를 곧 치료가 끝나면 부정적인 생각이 정상적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에 이것을 인식시켜서 스스로 끝없이 노력을 하지 않으면 재발한다 라는 것을 인식시켜주는 것이다.

 정신분석에서는 치료의 목적이 증세들의 제거에 있는 것이 아니고 자아의 성장에 있기 때문에 스스로 자아가 삶의 중심이 되고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하고 판단하도록 도와주는 것이기 때문에 신경증의 치료가 3-4년의 시간이 걸리게 된다. 심각한 성격장애(보드라인)의 경우는 7년-8년의 시간이 걸린다 그 이유는 이 장기간의 치료 과정에서 계속된 대화를 통해서 부정적 생각이 정상인 된(항상성)은 장기간의 끝없는 수정과정을 통해서 정상적인 긍정적 생각으로 바뀌게 된다. 고로 치료가 끝났을 때 재발이 없게 된다. 마지막으로 인지행동 치료는 짧은 기간에 적은 비용으로 증세를 해결할 수 있다 대신에 정신분석은 시간이 많이 걸리고 비용이 많다.

 이러한 치료기법들의 장점과 단점을 인식하고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선택하는가? 혹은 인지행동 치료를 선택하는가? 소비자가 스스로 선택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어느 한가지 치료기법 즉 인지행동 혹은 정신분석 심리치료가 모든 정신장애를 다 고칠 수 있는 만병통치가 아니다. 정신건강 전문가들은 이러한 점을 명시하고 대도록 많은 치료기법들을 연구하고 수용을 해서 다양한 정신장애들을 치료할 수 있어야 한다. 치료자의 경우에는 대학에서 4년 동안은 실험심리학으로 그리고 대학원은 가족치료로 약 10년 동안 공부를 했다 그리고 나머지 30년 동안은 정신분석으로 공부를 했다. 5개의 정신분석 대상관계 정신분석, 코호트의 자아 심리학, 보드라인 치료 이론과 기법들의 대가들 컨버그(Kernberg)와 건드슨(Gunderson) 그리고 마스트슨(Masterson), 미아레(Mearles) 등의 치료기법들 그리고 아르에티(Arieti), 오가덴(Ogden)심각한 조현병 환자들의 치료기법들 그리고 게스탈트 치료의 빈 의자 기법 그리고 교류분석 그리고 벤 더 콜커(van der Kolk)인지행동 치료 등등을 통합해서 심리치료에 사용하고 있다.

 아래의 치료 사레는 2012, 9, 5일에 치료자에서 3년 6개월 동안 심리치료를 받은 30대 초반의 D씨의 치료사례이다. 이 치료 사례를 소개한 것은 부모로부터 무의식적으로 동일시가 D씨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를 세밀하게 보여준다.

 

7년동안 우울증에 시달려온 30대 초반의 회사원 D

대상: 30대 초반의 회사원 D

증세: 지난 7년 동안에 우울증으로 고통을 받아오면서 약물로써 견디어 오다가 초반기에 약물 효과에 비해서 점점 약물 효과가 떨어지는 것 같아서(약물은 내구성이 있기 때문에 초반기에 사용량은 시간이 지나갈수록 초반기 약물 효과가 줄어들 게 되어 약물을 지속해서 사용하게 되면 약물의 양을 높여야 똑 같은 효과를 얻게 된다신경 정신과 의사에게 이야기를 했으나 약물 과다 복용의 부작용을 우려해서 인지 신경을 써주지 않았음. 그래서 약물을 규칙적으로 복용하지 않았고 중간 중간에 복용 중에 있음

접촉: 인터넷에 우울증 홈페이지에서 치료자의 우울증에 대한 설명과 치료 사례를 읽고 종합적 심리 검사인 프로파일링을 요청해서 심리 검사에서 심한 우울증으로 먼저 자신의 분석을 해 보고 나서 치료를 결심하게 됨

진단: 심한 우울증

치료 기간: 6개월 간 치료 계약을 하고 1주일에 1회씩 (1회기에 1주일에 2시간) 치료 회기로 심리치료를 받다가 오고 가는 왕복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는 관계로 1주일에 1회기의 시간을 2시간에서 3시간으로 연장해서 치료를 받고 있음

치료 결과: 아래의 치료 과정은 D씨가 치료를 시작한지 10 회 치료 회기( 26시간)에서 드러난 그의 문제점들을 분석한 것이다.

치료의 과정:

 D씨는 며칠 전에 터진 여동생의 문제로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고 있다면서 머리가 아프니 진통제가 있으면 한 알 주었으면 좋겠다고 요구를 했다. 치료자는 마침 약물 보관함에 타이레놀이라는 진통제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D씨에게 한 알을 주면서 상세하게 그가 받고 있는 스트레스에 대해서 상세하게 요청을 했다.

 그는 결혼을 한 여동생에 대한 문제 때문에 과거에도 치료자와 한차례 의논을 한 적이 있었다. 여동생의 남편이 되는 매제가 가족 행사에는 전혀 얼굴을 내 밀지 않고 처가 쪽 식구들과 대화를 잘 하지 않고 늘 피하는 쪽이었다고 그에게 한마디 해야 하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그는 한 달 전에 어머니의 생신으로 누나 가족들과 그리고 D씨 가족 그리고 여동생의 가족들과 함께 모임에서 마침 참석을 한 매제에게 한마디를 하려고 하다가 어머니와 갈등 때문에 제대로 한 마디로 하지 못했다고 분개했다. 어머니가 가족 모임에 제 시간에 나타나지 않아서 염려 걱정으로 휴대 전화 통화를 시도를 했으나 통화 불통으로 화가 나가 어머니에게 전화 걸기를 수십차례 시도를 했으나 누나에게는 약속 시간에 곧 도착하겠다는 전화만 왔고 그에게는 몇 시간 전화 걸기를 시도해도 반응이 없었던 어머니를 직접 만나서 전화를 받지 않고 수십차례 전화에도 대답을 하지 않았던 어머니에 대한 분노를 말로써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성질을 부리면서 삐쳐서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노여워했다. 그 시점에서 만난 매제에게는 평소에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분노했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에 1개월이 지나가면서 어머니를 통해서 여동생의 결혼 생활에 문제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여동생이 이혼을 결심하고 이혼 소송을 준비중 이라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어머니로부터 전해 듣고 노발대발해서 여동생에게 확인을 한 결과 사실이라고 했다. 그제서야 여동생은 오빠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를 해주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고 했다. 여동생은 결혼을 한지 거의 1년이 되었고 결혼 전에 임신 8개월 때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서 유산을 하는 방법이 없겠느냐? 고 물어 왔다고 했다. 임신8개월 때까지 그들을 결혼식을 올리지 않고 있었다고 했다. 어머니는 유산을 하는 방법이 없으니 출산을 하는 수밖에 없다고 결혼을 하라고 일러주었고 여동생은 하는 수 없이 결혼식을 올렸다고 했다.

결혼을 한 여동생의 문제점: 여동생은 결혼 전에 몇 번 남편의 집을 방문을 해서 그 집에 5살 되는 남자 어린이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 아이가 누구인지 남편이 될 사람에게 물어 보았을 때 그 남자 어린이는 그 남자의 여동생의 아들로 여동생이 결혼에서 실패해서 아들만 집에 데려와서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지내고 있다는 말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했다. 여동생은 그 남편의 여동생에게 직접 물어 보았을 때 그녀는 그녀의 자식이다라고 이야기를 해 주어서 의심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결혼을 하고 난 다음에 시가집에 한번씩 가면 시부모들이 왜 그 5살된 어린이에게 차갑게 대하느냐라고 몇 번 빈잔과 비난을 주어서 왜 내가 그집에 시누이의 아들에게 신경을 써야 하느냐? 라고 반문을 하기도 했는데 결국은 나중에 알 게 된 것은 그 5살 된 남자 어린이가 남편의 아들 이다는 것을 알 게 되었다고 했다. 남편에게 다그친 결과 그 아들은 남편이 전처와 이혼을 한 후에 양육을 하고 있는 아이임을 알 게 되었고 남편은 이미 D씨의 여동생과 결혼 이전에 한번 결혼을 한 이혼남이라는 것을 알 게 되었다고 했다.

여기에 더 붙여서 남편은 직장에 다니는데 수입이 거의 없어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 직장에 다니고 있는 부인에게 대출을 부탁해서 이미 D씨의 여동생은 5천만원 정도의 대출을 빚으로 지고 있어서 남편을 버리고 빠져나올 수가 없게 되었다고 분노하고 있었다.

결혼 직후에 시가집에서 1달 살다가 전세 집으로 이사를 하면서 D씨의 여동생이 대출을 받았서 빚이 있고 그리고 이후에 남편의 보챔으로 대출을 받아서 지금은 약 5천만의 빚을 지고 있어서 집을 나오게 되면 고스란이 D씨의 여동생이 갚아야 할 빚이 되었다고 했다. 여동생은 출산한 아들이 8개월쯤 되는 아들이 있고 이혼을 하게 되면 위자료를 받을 수 있을지? 해서 시가 댁을 등기소에서 알아본 결과 이미 시부모님은 재산을 부모님의 이름으로부터 남편의 여동생으로 재산 등록을 해서 시부모님 이름으로 그리고 남편의 이름으로 된 재산이 아무 것도 없음을 발견하고 남편의 의도적으로 D씨의 여동생을 속이고 결혼을 해서 여동생이 떠나지 못하게 경제적으로 발을 묶어 놓았다는 것을 알 게 되었다고 했다.

여동생은 남편이 사기를 친 것을 알 게 되었고 남편 되는 사람은 경제적으로 무능력하고 이미 결혼을 해서 전처로부터 5살된 남자 아들이 있고 이것을 철저히 속이고 그리고 재난이 압류될 것이라는 것을 사전에 직감을 하고 재산을 이미 막내 딸의 이름으로 등기를 해 놓았고 그리고 D씨의 여동생에게 대출을 받으라고 보챔과 압력을 넣어서 5천만원 정도의 빚을 지게 했다는 것을 알 게 되었다고 했다. D씨의 여동생은 8개월된 아들을 안고 남편의 집을 나와서 친정 어머니와 함께 살기 위해서 집을 나오려고 이미 어머니가 전세 방을 구해 놓았다고 귀뜸을 해 주었다고 했다.

어머니와 여동생에 대한 D씨의 분노: D씨는 여동생과 어머니에게 분기탱천 했다. 이미 여동생은 결혼 하기 전에 임신 8개월 때 어머니에게 유산을 할 수 없겠느냐?고 이야기를 했을 때 그녀가 하려고 하는 결혼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발견을 했는데 장남인 오빠인 D씨에게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지금까지 비밀로 한 것에 분노했다.

또 한가지 알 게 된 것은 여동생이 결혼 후에 몇 개월 동안 남편이 혼인 신고를 하지 않고 있는 것에 화가 나서 D씨의 여동생이 직접 혼인 신고를 했는데 알고 보니 남편은 만약에 그의 사기 결혼이 알려지게 되면 이혼 소송으로 위자료 청구 등의 문제 때문에 아예 법적으로 부부가 아니라면 소송을 걸 수 없도록 하기 위함에서 혼인 신고를 하지 않고 미루고 있었다는 것을 알 게 되었다.

여동생은 변호사를 찾아가서 어떻게 하면 위자료를 받아낼 수 있는가? 를 알아 본 결과 결혼 전에 시부모와 여동생이 5살 된 그 남자 어린이가 남편의 여동생의 딸이라는 것을 확신을 줄 수 있는 증거를 확보해야 소송에서 이길 수 있다는 말에 시어머니와 시 누이에게 그 5살 된 남자 어린이가 시집의 막내 딸의 아들이라는 말을 직접 녹음을 해서 보관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이미 녹음을 해 주었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D씨의 여동생은 남편으로부터 이혼을 받아 낸다고 해도 위자료는 받아낼 수 없을 것이라는 절망에서 그냥 8개월 된 아들을 안고 집을 나와서 어머니와 함께 살려고 방까지 마련해 두었다고 한 것에 분노했다. 장남인 그에게 미리 이야기를 했다면 함께 머리를 대고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 중지를 모아야 했을 터 인데 이제 너무 늦어서 손을 쓸 수 없다고 분노했다. D씨는 치료자에게 이러한 골치 아픈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 나가야 할지를 조언을 요청했다.

 치료자는 D씨에게 먼저 여동생의 일을 어떻게 해결하려고 하고 있는지 D씨의 의견을 먼저 물어 보았다. 그는 한 달 후에 선원으로 해외에 나가 있던 매형이 귀국하는데 그 때까지 잠정적으로 미루었다고 매형이 귀국을 하면 함께 가족 회의를 열고 그리고 가족들이 함께 매제를 찾아가서 싫도록 화풀이를 하고 이혼을 시키고 위자료를 받도록 초치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그리고 여동생에게 남편과 함께 살고 있는 집을 아기를 데리고 나와서 어머니와 함께 방을 얻어서 사는 것을 중지하고 이혼이 합법적으로 이루어질 때까지 남편과 함께 살 게 하고 싶다고 했다.  

치료자는 1달 이후에 귀국하는 매형과 함께 매제를 찾아가서 무엇을 할 것이냐? 를 물어 보았다. 그는 화풀이를 하고 싶다고 했다. 어떻게 화풀이를 하고 싶으냐? 고 물었을 때 그는 욕을 하거나 때려 죽이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치료자는 매형이 올 때까지 1달 기다리지 말고 여동생에게 지금 준비하고 있는 이혼 소송을 승소할 수 있도록 확실히 하고 매제를 찾아가서 화풀이를 하려고 하는 것을 고려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매형과 가족들이 우우루 몰려 가서 시가댁에 식구들에게 사기꾼이 아니냐 사기 결혼을 한 장본인들이라고 폭언과 화풀이를 해서 분노를 표현한다고 해서 좋아질 것은 없고 사람들은 이미 사기꾼으로 딱지를 붙인 사람들이기 때문에 가족들이 우루루 몰려가서 화풀이를 하게 되면 오히려 순진한 D씨의 가족들이 다치고 화풀이를 하기는커녕 오히려 화풀이를 당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보라고 했다.

그들은 이미 사기꾼으로 이름이 난 사람들이기 때문에 가서 화풀이를 당하기 쉽상이고 오히려 분통만 터질 것이기 때문에 찾아가지 말고 법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조언을 했다. 시부모님과 시 누이를 사기죄형사 소송민사 소용을 병행할 수 있는지?를 변호사에게 알아 보고 그리고 여동생은 아기를 데리고 집을 나오지 말고 남편과 함께 생활을 하면서 남편과 갈등을 집적 피하지 말고 부디치면서 만약에 남편이 이혼을 하려는 여동생에게 손찌금이나 폭력을 행사하면 사진을 찍어서 남편을 폭력범으로 고소를 해서 법적으로 여러 개의 소송으로 남편 가족들의 코너로 몰아 놓고 궁지에 몰려 있는 남편 가족들에게 원하는 것을 받아 내는 것이 현명한 일이라고 귀띔을 해 주었다.

어머니에게 분노를 말로써 표현: 먼저 어머니에게 분노를 표현하도록 했다. 어머니가 1년 전에 임신 8개월의 여동생이 유산을 할 수 있겠느냐?로 물어 왔을 때 이것을 온 가족에게 알리고 대책을 숙의했으냐 했는데 문제 해결의 1차 기회를 놓졌다 는 것을 이야기를 하도록 했다. 그 때 이미 여동생은 그 집에 있는 5살 난 남자 어린이가 남편의 아들 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그 문제는 한층 더 해결하기가 쉬웠을 것이다.

임신 8개월은 유산은 할 수 없다고 할지라도 출산 직후에 입양을 하면 쉽게 해결이 될 수 있다. 미리 병원에 입양할 사람을 구하면 불임 부부들이 많고 또 그들은 출산 하자말자 바로 입양을 하기를 가장 좋아한다는 것이다. 출산 후에 몇 년 된 아기들 보다는 출산하자말자 입양을 원하는 불임 부부들이 많다는 것과 그리고 출산 비용을 입양부부들이 다 부담을 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아기의 얼굴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엄마는 아기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점 그리고 여동생은 결혼식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혼녀라는 꼬리표를 달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이후에 다른 남자와 사귀거나 결혼을 해도 과거의 출산 경험이 크게 흠으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었다 등이 장점이 될 수 있다.

어머니의 문제 해결 능력이 부재함을 엿볼 수 있다. 어머니는 딸이 유산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고 그리고 5살 된 남자 어린이가 있다는 것을 알고도 할 수 없어니 결혼을 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는 결정 때문에 결국은 결혼을 한번 했던 이혼녀라는 꼬리표를 평생 달고 다녀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어머니의 조언으로 여동생은 결혼식을 올렸고 출산을 했고 남편의 사기 결혼을 확인하게 되었고 시부모님은 이혼 소송에 대비해서 재산을 모두 막내 딸의 이름으로 이전을 해 놓았고 그리고 며느리가 쉽게 떠나지 못하게 5천만원의 대출금과 이자까지 물 게 해서 발에 족쇄를 채운 것으로 드러났다.

 옛날부터 즉 D씨가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가 아버지의 해외 노동자로 출국한 1년 동안에 외간 남자와 외도를 하는 것이 D씨의 누나와 D씨의 눈에 증거가 드러나자 어머니는 비밀로 하라고 D씨에게 입을 막아 버렸으나 누나는 엄마의 외도를 직면해서 엄마와 엄청나게 외도 문제로 싸웠던 것을 기억해 내고 어머니에게 분노했다. 어머니의 가르침으로 D씨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결함, 단점들을 성인이 된 지금도 감추고 일체 다른 사람 즉 부인에게도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기 이전에 감추어 왔다는 것은 이미 치료자가 밝혔다. D씨의 이러한 내면의 감추는 습관은 어린 시절에 엄마로부터 배운 행동임을 알 게 했고 D씨에게 이러한 것을 어머니에게 분노를 말로써 표현하게 했다.

 "어머니는 매사에 왜 모든 단점들을 숨기고비밀로 하려고 한 것입니까? 내가 어린 시절에 엄마의 외도를 목격했고 그 이후에도 엄마는 여러 번의 외도를 내가 모를 줄 아십니까? 왜 그러한 것들을 숨기고 일체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교육을 했나요?

여동생을 보세요. 여동생이 자신의 문제를 알 게 되었을 때 초반기에 가족들에게 모두 알리고 도움을 요청했다는 지금처럼 그렇게 문제가 커지지 않고 가족들도 스트레스를 덜 받았을 것입니다.

여동생도 문제가 농해터져서 해결할 수 없게 될 때까지 가족들에게 알리지 않고 혼자서 해결하려고 시도를 하다가 이 지경이 되지 않았습니까?

어머니가 여동생에게 제시한 문제 해결 방식도 잘못되었습니다. 임신 8개월 때 가족 회의를 했드라면 출산 직후에 입양을 했드라면 여동생은 결혼식을 하지 않고 이혼녀라는 딱지를 붙이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이제 여동생은 출산 후 8개월이되었기 때문에 아기가 엄마의 얼굴을 알아보는 시기가 되었기 때문에 (이 시점에서 아기는 낮 가림을 한다 -엄마의 얼굴 이미지가 아기의 마음 속에 생겼다는 뜻이다)

아기도 엄마를 떨어지지 싫어하고 엄마도 아기에게 정이 들어서 아기를 떼고 나오기 어렵게 되지 않았습니까? 아기는 엄마로부터 떨어져서 시가집에 맡겨지거나 고아원에 보낸다고 해도 아기에게는 평생 멍에를 지우게 되고 아기는 치명적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도 엄마는 여동생에게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여동생의 말에 의하면 아기를 시가집에 떼어 놓고 몸만 나오라는 말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또 엄마는 여동생을 당장 아기는 남편에게 주고 몸만 나오라고 오히려 엄마와 함께살자고 방까지 마련해 놓고 기다리고 있지 않습니까?

도대체 엄마는 여동생의 삶을 엄마처럼 평생동안 고통 속에서 살 게 하려고 할 작정입니까?"

 "어머니는 내가 아버지에게 폭행을 당할 때 어디에 있었습니까? 아버지의 폭행을 보고도 모른체 하고 외면하지 않았습니까? 왜 자신의 몸을 던져서 자식들을 막아주지 못했습니까? 왜 경찰에 신고를 해서 아버지의 폭력을 사전에 막지 못했나요?

어머니는 내가 폭행을 당할 때 도대체 어디에 있었습니까? 폭력을 행사하는 아버지보다 옆에서 방관하는 엄마가 더 미웠습니다.

그리고 왜 엄마는 아버지가 해외에 근로자로 나간 뒤에 아버지 몰래 외도를 하셨나요? 내가 그것을 모를 줄 알았습니까? 내가 그 때 초등학교 2학년 때로 지금도 내 머리 속에 그 기억이 생생합니다. 어머니는 작은 꼬마 어린이가 무엇을 알겠느냐? 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그러나 어머니가 아무리 속인다고 해도 나와 누나의 눈을 속일 수가 없었습니다.

누나가 엄마에게 외도가 잘못된 것임을 따지고 항의를 했기 때문에 엄청나게 엄마로부터 폭력을 당한 것을 내가 잘 알고 있습니다. 나는 엄마의 요구대로 일체 모르는체 했습니다. 그러나 내 마음 속에서는 그것을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어머니의 외도가 우리 자녀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모르실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여동생과 내가 가진 문제의 핵심이 되었습니다. 나와 여동생은 자신의 문제를 남에게 이야기를 하는 것은 나쁘다는 엄마가 심어준 인식 때문에 일제 다른 사람들에게 내 개인의 문제점들을 비밀로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되었고 나는 내가 대인관계에서 겪는 고통으로 우울증을 7년 동안 앓고 있으면서도 심지어는 내 부인에게 조차도 숨기고 이야기를 하지 않아서 부부 사이에 문제로 비하하게 되었고 내가 심리치료를 받게 되면서 이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부인에게 모든 이야기를 했습니다.

또 한가지 내가 엄마의 외도 때문에 영향을 치명적으로 받게 된 것은 내가 지금의 부인과 결혼을 하기 전에 먼저 임신을 했기 때문에 임신 3개월에 지금의 부인보다 더 내 마음에 드는 아가씨가 있었는데 나는 그녀와 결혼을 포기하고 임신 때문에 지금의 부인과 결혼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는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어린 시절에 엄마의 외도 때문에 내 섹스 욕구에 상처를 받아서 너무 일찍 섹스 자극을 받아서 내가 여자 친구와 결혼을 결정하지 않는 상태에서 임신을 하게 된 원인을 제공하게 되었다고 심리 전문가 선생님이 지적을 해 주었습니다.

여동생을 보세요.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면 혼전 섹스 그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동생이 임신을 하게 되었고 임신 8개월 만에 남편이 이혼남이라는 것과 남편이 전처의 아들이 5살 먹는 어린이가 있다는 것을 알 게 되었을 때는 이미 늦어 버려서 결국 족쇄에서 벗어날 수 없엇다는 것이 어린 시절에 엄마의 외도가 여동생에게도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증명해주지 않습니까? 혼전 섹스 그 자체는 현대의 젊은이들에게 문제는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부주의로 결혼 전에 임신을 했다는 것은 분명히 여동생과 나에게 족쇄, 멍애가 되어 결국 나와 여동생을 결혼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어 버린 것만은 사실입니다."

여동생에게 분노를 말로써 표현: D씨는 여동생에게 여동생의 행동에 대해서 분노를 표현하기 전에 여동생에게 죄를 지은 것이 있다면서 그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D씨는 초등학교 시절에 여동생에게 폭력을 행사했고 그리고 여동생에게 고통을 많이 주었던 것을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괴로워했다.

그는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부터 아버지로부터 받은 폭력을 여동생에게 화풀이로 대신하게 되었다.지금 생각하면 왜 여동생에게 그렇게 나쁜 짓을 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여동생을 울리고 여동생을 괴롭게 하고 놀리고 못살 게 했다고 했다.

그가 아버지로부터 받은 폭력을 고스란히 여동생에게 화풀이를 한 것이라고 고통스러워하고 그 고통이 여동생을 지금 이렇게 만든 것이라고 죄스러워 했다. 치료자는 여동생에게 먼저 분노를 말로써 표현을 한 후에 여동생에게 사죄하기로 했다.

여동생에게 문제들을 숨기고 지금까지 비밀로 한 것이 문제를 더 크게 만들고 문제가 해결하기 어렵게 꼬인 것임을 이야기를 하고 다음부터는 문제를 숨기지 말고 가족들에게 혹은 친구들에게 터 놓고 이야기를 해야 함을 강조를 했다.

그리고 여동생에게 과거에 어린 시절에 여동생을 괴롭힌 것은 오빠가 잘못했고 그 당시에는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몰랐던 것은 아버지의 폭력과 어머니와 아버지의 끊임없는 부부 싸움으로 가족들의 스트레스 때문에 여동생한데로 그 분노가 흘러갔던 것을 시인하고 여동생에게 사죄를 하고 용서를 빌 게 했다.

D씨에게 치료자는 8개월 된 아들을 시가집에 혹은 남편에게 맞길 것인지 혹은 여동생이 데리고 나와서 키울 것인지를 강요하지 말고(D씨와 어머니는 8개월 된 아들을 시집이나 남편에게 맡기고 홀 몸으로 나오기를 기대) 여동생의 권한으로 여동생에게 맡겨 주어야 함을 강조했다.

이유는 여동생에게 지금 그 아기를 빼앗아 버리면 여동생은 삶의 의미를 잃어 버릴 수 있을 것임을 지적을 했다. 여동생은 지금 모든 것이 잘못되어 버렸는데 아기와 정이 들어서 아기의 얼굴을 보면서 삶의 의미를 찾고 있을 지도 모르니 아기를 그녀 자신이 키우거나 남편에게 떼어주는 것은 전적으로 여동생에게 맡겨줄 것을 이야기를 했다.

엄마와 아기는 서로 애착이 생겨 버려서 이제 엄마가 아기를 빼앗기면 혼자서 살아갈 수 없거나 평생 동안 아기에게 죄의식으로 아기 얼굴이 떠 올라서 살기가 어려울 것임을 알 게 했다.

D씨와 어머니는 아기를 데리고 나오면 이혼녀에다 혹인 한 개 붙여서 평생 동안 따라다니면서 그녀는 괴롭히고 그녀의 재혼이나 앞으로 살아갈 미래에 짊이 될 것이 뻔하기 때문에 아기를 떼어 버리고 강한 마음을 먹고 남편의 집을 나오라고 강압을 하고 있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삶을 살아가는 것은 여동생이지 어머니가 오빠인 D씨가 대신 여동생의 삶을 살아줄 수가 없다는 것을 알 게 했다.

고로 아들을 데리고 양육을 하면서 살거나 아들을 떼어 남편에게 주는 것을 전적으로 여동생이 결정할 문제임 D씨가 알 게 했다.

여동생이 정이 들어서 얼굴이 익어 버린 애착이 생겨 버린 8개월의 아들을 떼어주고 나오면 삶의 희망이 사라지고 삶에서 즐거움을 잃어 버려서 스스로 삶을 마감할 수도 있고 또 아기를 데리고 나와서 삶에 희망으로 아기를 잘 키운다면 미래에 더욱 좋은 배우자를 만날 수 없다고 단정을 내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 게 했다.

혼자서 아기를 키우면서 건강하게 살아가는 여성들에게도 그것을 이해하고 자신의 자식으로 받아들이고 배우자로 선택을 하는 많은 좋은 남자들도 있다는 것을 알 게 했다.

문제는 여동생이 얼마나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올바른 삶을 살아가느냐? 에 전적으로 미래가 달려 있다는 것을 알도록 했다.

치료자는 D씨에게 여동생 문제는 여동생에게 맡기고 D씨는 자신의 문제로 되돌아가게 했다. 여동생 문제를 많이 걱정을 해준다고 해서 여동생이 걱정이 줄어지고 여동생의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어지지 않음을 알 게 했다. 지나친 걱정은 오히려 D씨을 고통스럽게 하고 여동생의 문제를 여동생의 걱정을 들어주지 않음을 알 게 했다. 여동생이 요구를 하면 조언이나 위로를 해주는 것은 좋지만 여동생 문제를 D씨가 붙잡고 씨름하지 말고 여동생에게 맡기고 여동생이 스스로 해결해 나가도록 했다.

 D씨에게 여동생의 모든 문제들을 부인에게 알렸느냐? 고 물어보았을 때 그는 여동생 문제를 부인과 의논해서 부인이 알고 서로 그 대책을 의논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이제는 부부 사이에 모든 이야기들을 서로 이야기를 하고 있고 그리고 직장에서 일어나는 문제들도 서로 이야기를 해서 소통을 하고 있음을 확인을 할 수 있었다.

그는 조만 간에 그의 직장에서 부서를 옮겨서 야간에 일을 하고 주관에 쉬는 부서로 옮기고 싶다고 신청을 해 놓았다고 했다. 그렇게 되면 D씨가 치료자에게 오는 오고 가는 많은 왕복 시간에 부담을 지지 않을 것이라고 기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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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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