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실에서 자연스럽게 분석 상담을 받고 있는 모습(영화 속에서 인용) 

 

 환청과 환각보다 무서운 것?

 

환청, 환각조현병의 진단에서 가장 눈에 띄는 핵심 증세들이다. 조현병 환자들의 70%환각과 환청을 가지고 있다고 보고되고 있다(Bernheim, 1979). 정신건강 전문가들(정신건강의학 전문의, 정신분석가, 심리치료사, 그리고 심리상담사)들은 이구동성으로 조현병 환자결혼생활, 직장생활 그리고 사회생활어렵다고 이야기를 한다. 치료를 받는다고 해도 22%는 반복되는 재발로 병원을 들락날락해야 하고 그리고 18%는 정신병원에서 평생을 보내야 한다(60%는 치료)라는 연구보고서가 있었다. 이 연구보고서는 조현병에 대한 14년 동안의 연구결과로 1911년정신분열증이라는 공식적인 이름으로 그리고 이 질병이 뇌의 질병으로 보기보다 오히려 다양한 원인, 신체적 원인(), 심리적 원인, 환경적 요인으로 등장한 정신병이고 그리고 한 종류만 있는 것이 아니고 여러가지 종류의 정신장애(균열성유형, 편집증유형, 사춘기유형, 기타의 4가지) 분류된다 라고 발표를 해서 세계적인 정신분열증(우리나라에서는 2011년에 조현병으로 개칭) 연구의 전설적인 인물이 된 사람이다. 그는 신경정신의학, 역동적정신의학 그리고 정신분석학통합한 최초의 학자로써 그가 20세기 첫 현대적 정신병원인 스위스의 부르고졸리(Burgholzli)대학정신병원의 5대 총장으로 30년 동안 헌신유진 블루러(Eugen Bleuler)이다. 그의 연구로서 확실하게 정신분열증의 실체가 명확하게 드러나게 된다(Ellenberger, 1970). 그의 연구 이후, 55년이 지난 1966년에 정신과의사이자 정신분석가인 (Wing)40명의 여성 정신분열증 환자들을 40년 동안 추적 연구한 결과 치료를 받은 환자들 중에서 26%가 반복된 재발로 정신병원을 들락거리고 7%는 영구적으로 병원에 입원(67%가 치료)을 한 연구 조사가 발표되면서 유진 블루러의 연구가 얼마나 정확한가? 에 탄복하게 된다(Stone, 1983, 정신분열증 치료: 정신분석인 접근을 보라).

 환청과 환각은 그 환자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구성원에게도 엄청난 공포와 충격을 가져다준다. 환자들은 처음에는 자신들의 귀에 들리는 소리, 눈에 보이는 장면들을 정상적인 것으로 본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들리지 않고 그리고 보이지 않는다 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공포에 떨게 된다. 이 시점에서 대부분이 정신병원에 입원을 하게 된다.

환청과 환각은 조현병 약물(도파민 감소약으로 약 23종의 약물이 있다(Bernheim, 1979: 정신분열: 환자, 원인, 증세들, 치료들 보라))복용하면 대부분이 즉각 사라진다 그러나 이것은 치료가 된 것이 아니고 억제한 것이기 때문에 약물 복용을 중단하면 언제든지 다시 등장하게 된다. 정신장애들을 약물로 치료를 하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신경정신과 의사들)와 달리 약물 치료가 아닌 대화로써 치료를 하는 역동적정신의학의 창설자프로이트환청과 환각을 어린시절의 심리적 상처로써 무의식 속에 기억의 흔적으로 남아 있다자아가 약해지면 등장하는 것(꿈의 형성과 같은 맥락)으로 분석치료 과정에서 어린시절의 상처를 찾아내어 환자가 그 원인을 깨닫게 되면 즉각 사라진다 라는 것을 밝혀냈다. 역동학적인 심리치료에서 실제로 환각과 환청은 약물이 아닌 분석 치료로써 쉽게 제거되어진다(필자의 블로그에서 환청과 환각의 분석을 보라).

 역동적 정신의학의 전문가들(정신분석가, 심리치료사 그리고 심리상담사)은 이구동성으로 조현병을 치료할 수 있는 전문가들을 모든 정신장애를 치료할 수 있다 라고 말하고 있다. 조현병이 정신장애들 중에서 가장 치료하기 어려운 병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치료자(필자)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공부를 해 왔다. 필자는 미국에서 10년 동안 공부를 하고 귀국하면서 정신의학 서적들을 (책을 구입하기 위해서 다시 미국에 올 수 없다(아마존 등장 이전에)) 필자가 공부한 5개 대학들(CSULB, CSULA, UCLA, CFSC(가족치료전문 대학원). 남가주 정신분석학교)의 도서관에서 대출해서 복사한(1권의 구입비용으로 6권을 복사: 한페이지에 1센트의 비용으로 제록스에 복사) 430여권의 정신의학 전문서적들을 가지고 귀국을 했다. 이후에 아마존의 등장으로 300여권의 저서들 그리고 필자가 대학과 대학원, 전문의대학원에서 공부한 정신의학 교과사들(모두 보관)을 합쳐서 약 1000여권의 저명한 학자들의 치료와 연구의 서적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 5년 동안에 필자가 가지고 있는 저서들 중에서 정신분열증이라는 제목의 이름이 붙은 정신의학 저서들을 전부 읽고 연구를 하기로 작정하고 그들을 정리를 하게 되었다. 지난 5년 동안에 11권 그리고 5년 전에 읽었던 정신분열증이라는 이룸이 붙은 저서들 1324(책들의 이름은 아래의 참고를 보라)의 조현병에 저서들을 읽고 정리한 것으로 어떤 장애들이든지(자폐증은 제외) 치료를 할 자신이 있다고 스스로 믿어왔다. 그런데 3년 전에 새로운 학자들의 저서를 읽게 되면서 그것이 잘못된 착각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 정신장애가 가장 늦게 등장(공식적인 이름으로 등장한 것은 조현병 등장 이후에 84년후에 등장)하고 그리고 조현병의 시작이 이 장애로써 시작된다 그리고 치료하기 어려운 장애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외형적으로는 쉽게 치료되어질 수 있는 정신병으로 인식되어져 있다 그러나 실제로 치료의 기간치료의 성공비율 등을 비교해 볼 때 조현병보다 실패의 확률이 높고 치료 시간도 많이 걸린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번 블로그애서는 이 장애에 대한 이야기가 전개되어질 것이다. 이제 그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도대체 어떤 정신장애가 조현병의 첫 시발점이고 그리고 조현병보다 치료의 실패 확률이 높고 그리고 치료의 시간도 많이 걸린 단 말인가? 그 정신장애가 최초의 등장 시점 그리고 그 등장의 과정의 순서로 내용이 전개되어질 것이다.

 이 장애는 불안장애에 소속되어 있다(그 장애의 이름은 아래에서 보라). 불안장애 환자들결혼생활, 직장 생활 그리고 사회생활을 잘 한다 고로 대부분의 정신건강 전문가들은 불안증은 큰, 심각한 장애로 보지 않는다. 필자가 중 고교, 대학시절에 유행한 유행어가 노이로제에 걸린다 라는 말이었다. 노이로제는 신경증(neurosis)의 독일어로 노이로제(영어로는 뉴로시스)로 지칭이 된다. 노이로제는 누구나 잘 걸리는 것으로 별 것 아니다, 죽지 않는다 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불안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정신건강 의학과에 가면 약물을 처방해준다. 그런데 이 약물들은 처음에는 열심히 복용하다가 그 효과가 신통하지 않다 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복용하다가 말다가 하게 된다. 다시 한의사들을 찾게 된다. 한약물과 침술에도 별고 효과가 없게 되면서 절망하게 된다.

역동적 정신의학의 전문가들약물정신장애의 치료세가 아니고 컨트롤제로 본다. 뉴욕 알배니(Albany) 주립 의과대학 정신과 교수이자 인지행동치료 전문가인 데이비드 바알로우(David Barlow, 2001)뉴욕 불안장애 치료센터 소장으로 불안과 불안장애, 공황장애와 공포증의 저서들 안에서 약물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노트하고 있다.

 역동학적 심리치료에서는 약물들을 좋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정신의학의 약물들은 치료제가 아니고 컨트롤제 약물이기 때문에 치료효과에서 약물과 심리치료의 효과가 혼합되어 심리치료를 방해한다 라고 본다, 심리치료에서는 조현병의 경우에도 약물을 복용하지 않으면 컨설팅 룸에 나오지 않기 때문에 약물을 컨설팅 룸에 나오는데 보조로 사용한다(Karon, 1981: 정신분열증 환자의 치료를 보라). 가장 많이 사용되는 약물이 바비츄레이트(Barbiturates), 벤죠디아제핀(Benzodiazepines), 그리고 이미프라민(Imipramine)(삼환제) 등을 처방약물로써 노트하고 있다. 바비츄레이트는 알코올 냄새가 없는 알코올로써 수면제의 효과로 각광을 받았으나 이 약물이 중독성이 강하다 라는 평가 때문에 초반기에 인기가 있었으나 시들해졌다(Acocella et al., 1980, 이상심리학 p. 247-249를 보라). 특별히 이들 약물들의 부작용에 경고를 하고 있다. 입이 마르고, 구토, 어지러움, 기억상실, 변비, 짜증, 좌불안석, 현기증, 졸음, 충동, 내구성(초반기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약물을 더 많이 복용)등이 특징으로 소개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프로포플Propofol)은 정맥주사가 우유 빛으로 우유약으로 부린다. 수면제. 진통제, 마취제로 마약류로 분류되어 의사의 처방이 필요한 약물로써 유명인들이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그들이 심리치료를 받아보지만 증세 호전은 도움이 되는데 장기 치료가 되면서 치료가 제자리 걸음을 하게 되고 진전이 없게 되면서 실망하고 치료사에 불만족으로 갈등을 유발하고 치료를 떠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치료 비율이 낮다. 실제로 불안증 환자들은 적당한 도움을 받을 만한 곳이 별로 없다 고로 종교에 의존하는 경우들이 많다(특별히 최근에 등장하고 있는 사이비 종교 단체들이 이러한 불안증 환자들의 심리적인 약점을 이용하고 있다).

조현병 환자들은 환청과 환각이 들리게 되면 정신병원에 입원을 한다, 최소 1주일에서 최대 3개월(국립 정신병원은 최대의 입원기간이 3개월이다. 그 이상의 입원은 불허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줄을 서서 입원을 대기하는 환자들 때문에 3개월 이후에는 다른 정신병원으로 옮겨야 한다라는 것은 환자들의 입을 통해서 알게 됨) 동안 병원에 입원을 해서 도움을 받게 된다. 약물과 주사로써 긴장을 줄이고 환청과 환각을 다루면서 심리적인 안정을 얻을 수 있다. 반면에 불안증 환자들은 입원을 할 수가 없다. 병원에서도 단순한 불안증(다른 정신장애들과 복잡질병의 경우가 아닌)은 입원을 시켜주지 않는다. 간단하게 약물처방으로 끝나게 된다.

 실제로 불안증 환자들은 그들이 받는 심리적인 고통은 조현병 못지 않다. 그들의 고통을 프로이트가 핵심으로 기술하고 있다. 이해가 되지 않는 것들은 반복해서 유령처럼 등장하게 된다. 신비가 해결되고 주술이 풀리지 않으면 휴식을 가질 수가 없다 라는 명언은 최고의 걸작품으로 불안장애의 핵심을 정곡으로 찔렀다. 불안증의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휴식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누적된 긴장은 신체적인 건장을 갉아먹게 된다. 불안장애 환자들은 자신의 긴장도가 정상적인 사람의 1만배가 된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4년 동안 치료자에게 심리치료를 받는 한 환자의 말을 인용) 그들은 자신들의 긴장이 다른 사람들과 비슷하다고 스스로 알고 있다. 치료의 과정에서 이러한 것이 밝혀지고 깨닫고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몇 년을 심리치료를 받고 있다고 해도 치료의 효과가 초반기는 눈에 띄지만 점점 효과가 줄어들게 된다. 다시 말해서 대부분의 불안증 환자들은 자신의 긴장도가 얼마나 높은지를 모르고 있다. 왜냐하면 늘 그러한 긴장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그것이 정상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치료실 안에서 120분간(치료자의 경우)동안에 긴장이 내려가지면 컨설팅 이후에 치료실 밖으로 나가면 원위치로 되돌아가버린다. 그것은 신체 조직이 그것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신체가 평소에 자신의 신체적 흐름을 유지하기 위해서이다.

이것이 바로 하버드 대학의 실험생리학자인 월터 캐논(Walter Cannon)자체균형유지(homeostasis) 이론이라고 부른다. 우리 말로 향상성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한번 이러한 신체적인 조건에 우리의 몸이 익숙하게 되면 우리의 인체는 비정상을 정상으로 유지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치료를 하는 과정의 방법적인 면으로 보면 위의 비정상적인 과정을 어떻게 정상적인 과정으로 되돌리는가? 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정신건강전문 의사들(신경정신과 의사)은 이러한 내면의 장기간 신체 조직의 작동의 결과로 등장한 호르몬과 신경전달 물질을 정상으로 되돌이기 위해서 정신과 약물들로써 치료를 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역동의학적 심리치료는 이러한 변화의 초반기 심리적인 원인에 초점이 맞추어진 치료로 원인을 찾아내서 인식하게 하고 긴장을 풀어내고 사회적 적응 기능을 습득하고 자아 결함을 수정해 나가는 것으로 인식을 하면 신경정신과의사들과 역동학적 치료사들은 서로서로 상호보완적으로 치료를 하고 있는 것이다 라는 이해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불안증의 분류 항목에는 가장 심각한 장애들이 많다는 것을 이미 여러 번 밝혔다. 우울증가벼운 우울증, 심한 우울증(멜랑꼴리아), 그리고 조울증(양극성장애)이다(계절성우울증, 순환 우울증이 있지만 보통은 위의 3가지가 주로 분류), 조현병균열성 조현병, 편집증 조현병, 사춘기 조현병 그리고 기타 조현병으로 분류되지만 2013년에 DSM-Ⅴ에서 조현병 하나로 통합되었다. 왜냐하면 조현병의 약물을 23가지 종류가 있으나 모두가 도파민 신경전달 물질의 감소 약이기 때문에 세부적으로 분류의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반면에 불안장애 안에서는 범 불안장애로 만사가 불안한 사람들이다. 자녀가 학교에 가면 혹시 등 하교 때 자동차 사고가? 혹은 남편이 직장에 출퇴근할 때 혹시 사고가? 인친척이 혹시 사고가? 다음 달에 사업이 망하게 되면? 등등으로 매사에 불안한 사람들이다. 광장공포증외출이 어려운 사람들이다(특별히 넓은 공간, 교회, 식당, 극장 등에 가면 돌발 사고가(헬로윈 데이 참사)일어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 여기에 강박사고 강박행동 장애(병균의 오염을 막기 위한 청결과 정리정돈의 결백증), 여기에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전쟁 후유증, 성폭행 후유증), 공황장애(심장마비로 사망의 위험에 두려움), 대인공포증(아래의 설명을 보라), 그리고 급성 스트레스 장애 등으로 7가 소속되어 있다. 2013DSM-Ⅴ에서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강박사고 강박행동 장애는 불안장애가 너무 많고 광범위해서 독립해서 떨어져 나가게 되었다. 불안장애가 가장 세부적인 심각한 장애들이 많다 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말이다.

불안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또 한가지 특징은 그들이 심리신체질병들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귀에 소리가 들리는 이명, 심각한 두통인 편두통, 손에 땀이 나는 다한증, 글을 읽고 이해가 되지 않는 난독증, 충동적인 행동으로 좌불안석인 ADHD, ()와 장()의 장애들로 과민성 대장염, 국소성 소장염, 크론병(천공(위에 구멍이 뚫리는)), 뼈가 녹아내리는 류마티스 관절염, 아토피 피부염, 기관지 천식, 비염, 손이 떨리는 수전증 등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은 보통 일반의사들, 내과의사, 피부과의사, 이비인후과 의사들에게 가서 약물을 처방받아서 복용을 한다. 그러나 효과가 미미해서 고질병이라고 부르는 질병들이다. 심리치료사들은 이들을 신체적인 질병으로 보고 치료에서 제외시킨다 그러나 최근에 이러한 신체적인 질병들이 심리적인 원인으로 이 심리적인 원인을 제거하면 사라진다 라는 연구 결과들이 보고되어지면서 심리신체의학 혹은 메디컬 심리학 혹은 행동의학 등으로 심인성질환의 치료가 각광을 받게 되었다(필자의 블로그에서 심인정질환을 보라).

프로이트는 평생동안 불안장애를 연구하고 치료를 했다 라는 것은 여러 번 지적을 했다. 프로이트는 1900년에 불후의 명작인 꿈들의 분석으로 세상의 주목을 받아서 20세기를 선도할 3명의 인물에 포함되었다. 정신분석가 프로이트, 철학자 니체, 그리고 공산주의 이론가인 마르크스이다. 프로이트는 꿈 해석을 발표하기 이전에 이미 10년 동안 환자들을 꿈분석을 통해서 치료를 했다. 꿈들의 해석을 읽고 다시 정리를 하면서 필자가 놀랜 것은 프로이트심리신경증이라는 용어로써 심리치료를 최초로 시작했다 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히스테리아 신경증, 강박행동 신경증, 전쟁 신경증(1차 세계대전 이후에), 섹스 신경증(변태성욕). 신경쇠약 신경증 그리고 불안 신경증이라는 이름들로써 신경증들을 치료를 했다. 그는 정신분석은 심각한 성격장애 그리고 정신증(편집증, 조울증, 정신분열증)에는 적합하지 않으니 치료를 하지 말라고 했다 라는 말은 필자가 수없이 블로그에서 기술을 했다.

프로이트의 우울증에 대한 논문은 단지 한 개의 논문으로 1917년에 애도와 멜랑꼴리아 라는 논문에서 대상(object)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했다 그리고 가벼운 우울증심각한 우울증의 원인과 조증의 발발 원인들을 명쾌하게 설명한 불후의 명작으로 우울증의 논문에서 프로이트의 논문을 능가할 논문이 아직도 없다고 토마스 오가덴(Thomas Ogden, 1986, 마음의 모체를 보라)이 극찬하고 있다(필자의 홈페이지에 애도와 맬랑꼴리아를 보라).

프로이트는 불안 신경증의 치료에서 불안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한 사람으로써 그가 사용한 독일어의 angst는 그러한 용어가 영어에는 없었다(Balint, 1999, 기초적인 결함을 보라). 영국에서 프로이트의 독일어 정신분석을 번역을 하면서 영어로 불안anxiety이로 사용하게 되었다. 독일어의 angst두려움이 강한 용어인데 이것이 영어의 anxiety로 번역되면서 불안이 강한 용어로 옥스포드 사전에 불안증으로 정의가 된 것이다(Balint, 1999, p 156를 보라). 프로이트는 지금의 불안장애(anxiety disorder)를 처음으로 불안 신경증이라는 이름으로 치료를 했다. 그는 불안 신경증불안 히스테리아를 구분을 했다. 불안 신경증과 불안 히스테리아의 차이는 후자가 불안 공격을 받기 때문으로 구분을 했다. 미국에서는 1967년에 DSM-에서 불안 신경증으로 분류되었다가 1980년에 DSM-에서 불안장애(Anxiety Disorder)로 최종적으로 확정이 되었다. 동시에 불안 히스테리아불안 공격은 갑자기 심장이 뛰고 호흡이 빨라져서 현기증, 메스꺼움, 두려움, 죽음의 공포를 느낀다(심장마비), 심각한 경우에 기절하거나 졸도로 주저 앉게 된다. 이러한 현상을 불안 공격으로 불렀다.

이 장애는 이미 1891년에 미국의 남북 전쟁 때 300여명의 군인들이 심장이 뛰고 가슴이 터질 것 같은, 호흡 곤란, 기절, 질식, 구토, 현기증 등의 환자들을 보고한 미국의 군의관 다코스타(Dacosta)신경순환쇠약증, 심장박동항진증, 혈관움직임신경증으로 불리어 오다가 이 장애가 1980년의 DSM-에서 공황장애(Panic Disorder)로 분리되어져서 불안장애 안에 소속되어 지게 되었다. 공황(panic) 이라는 말은 그리스 신화에서 유래한 말로써 인물이 너무 못나서 추물이라는 멸시, 조롱 때문에 가시덤불 속에서 살고 있는 펜(Pan)이라는 신(God)이 잠을 자는데 그를 놀라게 하는 사람들을 공포에 떨어 죽게 했다 라는 그리스 신화의 이름에서 팬의 병(Panic Disorder)으로 이름이 유래하게 된 것이다(Barlow, 1988).

 프로이트는 독일의 나치의 추방 명령으로 영국에서 2년간 살다가 제 2차 세계 대전 1주일 전에 1939, 9, 23일에 사망을 했다. 그가 죽은 후에 30년의 세월이 흘러간 1967년남아공 출신의 이삭 마크(Isaac Marks)런던 의과대학 정신과를 졸업하고 영국의 최고의 정신병원인 무드셀라(Maudsley) 병원에서 레지던트 과정을 가치면서 그가 불안장애와 다른 또 한 개의 장애를 보고하면서 정식으로 등장하게 된다.

이것을 사회적 불안장애(Social Anxiety Disorder)로 이름을 붙였다. 이 장애가 1980년의 DSM-Ⅲ에서 사회적 불안장애로 등장하게 되었다. 그런데 1987년에 DSM--R에서 사회적 불안장애가 성격장애의 10개 중에서 회피적 성격장애와 유사하다는 것이 밝혀져서 서로 교체로 사용해오다가 1994년 DSM-에서 이름이 사회 공포증(Social Phobia)으로 변경되게 되었다. 이 장애가 바로 대인공포증이다. 이제 그 실체가 밝혀진 것이다. 장애가 조현병의 시작이고 치료하기가 어렵다 라는 이유로 공황장애와 비교해서 설명해보기로 한다. 사회적 공포증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잘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에 필자는 대인 공포증으로 불리고 있다.

공황장애 대인공포증불안장애 안에서도 가장 심각한 장애로 그리고 둘 다 비슷한 장애로써 불안장애에 속되어져 있다. 그러나 대인공포증(1994)공황장애(1890)보다 공식적인 이름은 100년 늦게 등장하게 된다. 둘 다 불안장애 소속으로 공황장애와 대인공포증은 갑자기 놀래서 등장하는 불안 공격은 둘 다 똑 같다. 심장이 뛰고 호흡이 빨라지고, 질식, 기절, 구토, 현기증 그리고 심장마비로 사망의 공포를 느끼는 것은 유사하다, 공황 장애는 옆에 사람이 있으면 O.K, 로 별문제가 없다. 쓰러지거나 기절하면 옆에 있는 사람들이 도와줄 수 있기 때문에 안심하기 때문이다. 고로 외출을 할 때 반드시 다른 사람들 즉 의존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거나 혹은 인근에 약국, 병원이 있는가? 를 체크하게 된다. 그가 기절할 때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때는 불안이 심각하지 않다, 조용하다. 반대로 대인 공포증은 옆에 사람이 있으면 불안공격이 온다. 고로 혼자 있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혼자 있으면 지루하고 심심하기 때문에 휴대론, 게임, 영화, 전자오락, 음악 등에 심취하기 때문에 게임중독 환자들이 거의 대부분이다. 필자의 치료 과정에서 조현병 환자들이 초, , 고교 시절에 게임중독이 아닌 사람들을 한사람도 본 적이 없다. 조현병 환자가 최초의 시발점이 이미 유치원 시절에 동료들과 어울림에서 외톨이가 되거나 혹은 폭력적이고 난폭한 충동적인 사람들이 많았다. 이들이 사춘기를 통과하면서(13-25) 대부분이 조현병 진단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공황장애 환자들은 사람들과 함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상당한 친밀관계는 유지할 수가 있다 반대로 대인 공포증 환자들은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불편하기 때문에 친밀관계가 형성되기 어렵다는 점이 치료에서 더욱 더 시간이 많이 걸리고 이 기초 결함을 수정하는데 몇배의 치료 기간이 걸리는 이유이다.

필자의 40년 동안의 치료 경험에 의하면 대인 공포증을 가진 모든 사람들이 조현병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조현병을 가진 모든 사람들은 대인공포증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현상들을 필자는 이미 8년 전에 필자의 홈 페이지에서 치료 사례들을 노트를 했다(2016년에 필자의 블로그에서 대인공포증의 모든 것 1 번에서 5번까지로 이 장애가 조현병, 성격장애, 정신증의 핵심이다 라는 블로그의 글을 보라).

지난 6년 동안 8명의 조현병 환자들의 치료에서 1명은 약물을 다시 복용하고 치료를 그만 두었기 때문에 실패했다 또 한 명은 10년 동안 조현병으로 3번의 정신병원에 입원한 28세의 조현병 남자 환자심리치료 6개월의 치료과정을 잘 견디고 그리고 한 친한 친구와 6시간 동안 편안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수준으로 진전을 했지만 치료 비용문제로 치료를 종결했기 때문에 치료의 목적에 실패한 2의 환자를 제외하고 6명은 약물 복용을 중단하거나 혹은 약물을 3년 이상 장기간 복용을 한 경우에는 조금씩 약물을 줄이면서 약물 없이 조현병의 치료에 성공한 사례들은 일부 지난 블로그에서 소개가 되었다. 반면에 조현병이 아니지만 심각하게 불안한 대인공포증을 가진 회피적 성격장애가 강한 환자들(보드라인 혹은 경계선 성격장애자들)6년 동안 치료를 받은 한 대학생, 3년 동안 치료를 받은 20대 중반의 한 여성환자, 16개월의 치료를 받은 한 공익근무자, 1년의 치료를 받은 28세의 동성애 젊은이, 6개월의 치료를 받은 한 동성애 직장인, 그리고 13년 동안 치료를 받은 30대의 남자 중에서 마지막 사례를 제외하고 모두가 치료의 목적에 실패를 한 사례의 이야기는 죽은 엄마 증후군에서 소상하게 노트를 했다. 치료의 기간으로 보면 조변형의 평균 치료 기간이 1이었다 반대로 대인공포증 환자의 치료 기간은 조현병 보다 몇배가 길었지만 초반기에 성공적인 치료의 과정은 후반기로 가면서 점점 불평과 불안족이 커지면서 치료를 떠나면서 치료에 실패한 것이었다.

그 원인을 살펴보자 이 장애의 등장은 정신장애들 중에서 가장 늦게 등장한 이야기(1994년에 공식적인 이름을 부여받았다)는 이미 기술되었다. 이미 여러 번 밝혔지만 다시 말하면 정신장애는 문명의 발달과 비례한다. 우울증을 제외모든 정신장애는 산업혁명 이후인 19세기 말기에 등장했다. 농경시대에는 정신장애가 없었다. 문명화 되면서 농촌의 인구들이 도시에 밀려들어오면서 대도시가 형성되면서 생겨난 것이 바로 신경증들이었다 라는 것은 여러 번 밝혔다.

대인공포증부부의 맞벌이, 핵가족의 붕괴 등의 부산물로 등장한 것이다. 출산 이후에 엄마들이 3개월의 기간 동안에 몸이 회복이 된 이후에 직장에 복귀하면자녀들이 조부모 혹은 유아원 혹은 영아원으로 옮겨지면서 유아들의 양육이 엄마의 손을 떠나게 되면서 시작되었다는 것은 여러 번 밝혔다. 여기에 전업주부들의 경우에도 엄마의 심각하게 불안한 사람들이 그 불안이 거울 반사로 유아들에게 흘러가면서 유아들의 심리적 영역이 침해되는 경우엄마와 관계가 불편한 것이 기초결함으로 작동한 것이다 라는 것은 죽은 엄마 증후군에서 소상하게 밝힌 바 있다.

이러한 심리적인 현상을 눈에 보이지 않는다 고로 엄마들이 유아들에게 먹여주고 입혀주고 대소변을 갈아주고 아픈 경우에 병원에 입원해서 자녀들의 신체 건강에 초점이 맞춰지게 되면서 자녀들은 신체적인 면에서는 어려움이 없이 성장을 한다 유치원, , 중 고교를 다니면서 학교에 보내주고 원하는 장난감을 제공하고 그리고 다양한 학원 과외를 보내주고 ---- 등등의 모든 것을 자녀가 원하는 대로 다 해주면 부모의 역할이 끝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녀들과 함께하는 심리적 영역이 문제가 생기면서 등장한 장애가 바로 사람들과 만나면 혹은 사람들과 함께 하면 불편하고 혼자 있으면 편안해서 이러한 현상으로 등장한 장애가 바로 대인공포증이라는 것이다. 인간 관계 자체가 불편한다. 특별히 어른들과 관계는 어려움이 없다. 벙어리가 아닌 이상, 어른들이 말을 하는 것에는 대답을 잘 한다, 나쁜 짓을 하지 않고 착하고 정직하면 문제가 없다 라고 부모들이 생각하게 되면서 심리적인 과정이 결함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어려움은 바로 동료들과 어울림과 선후배의 사이에서 불편함과 갈등을 해결할 능력의 결여로써 혼자 있게 되면서 점점 외톨이전자 오락, 게임, 영화, 음악 등에 빠지게 되면서 이러한 것들이 장기화되면서 생겨난 현상이 바로 가장 늦게 등장한 대인공포증, 인간과 관계가 불편한 특별히 친밀관계가 어려운 정신장애가 바로 대인공포증이다.

대인공포증 환자는 혼자 있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부모들 혹은 보호자들은 자녀들이 점점 혼자 있게 되면서 전자 오락, 음악, 영화, 게임에 빠지게 되면서 사회성이 결여되어가는 것을 알게 되면서 자녀들에게 강압을 하게 되면서 이러한 갈등들이 결국은 조현병으로 환청과 환각과 의심, 도청의 문제들이 끼어들게 된다는 것이다. 일부 부모님들은 그냥 내버려두면 언젠가는 철이 들어서 자신의 일을 스스로 찾아서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해서 방치하는 경우에는 이러한 자녀들이 나이 들어가면서 성숙해지는 것이 아니고 점점 사회생활에 어려움으로 사회 적응 기능이 부족하게 되면서 심각하게 외톨이가 되어가는 것을 보게 된다. 중년이 되어가면서 스스로 성숙으로 이러한 어려움들을 저절로 해결되어 지지 않기 때문에 가족 갈등들과 마찰들이 결국은 파행으로 심각하게 되는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

이러한 사람은 죽은 엄마 증후군에 해당하는 사람들로 어린시절에 과도한 불안 때문에 주변 환경의 탐색이 두려워서 자아가 위축되어 내면의 빈 공간에 죽음의 공포로 인해서 마약 중독, 게임 중독, 알코올 중독 등등의 물질들을 채워 넣게 된 사람들로써 빈 공간의 허무감, 무력감을 채어 넣으려고 하기 때문에 중독자들이 많다 라는 것은 이미 여러 번 노트를 했다.

필자가 최근에 다시 깨닫게 된 것은 이러한 환자들의 치료 사례들을 연구한 학자들을 통해서이다. 그들은 이미 죽은 엄마 증후군에서 밝힌 죽음 엄마 중후군의 저자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인 앙드레 그린(Andre Green, 2005)의 저서들 즉 죽은 엄마 증후군, 사적인 미침, 에로스의 체인들을 통해서, 그리고 뉴욕대학원 박사후 정신분석, 심리치료 학과의 교수인 제프리 세인필드(Jeffery Seinfeld, 1991)핵심이 텅 빈 자아, 동대학원의 교수이자 뉴욕 알렌 하이트 정신분석학교 교수인 필립 블룸버그(Philip Bromberg, 1998)의 저서인 상처와 해리, 그리고 같은 대학과 정신분석 학교의 동료인 도넬 스턴(Donnel Stern, 1997)의 저서인 해리에서 상상까지의 저서들 그리고 영국의 대상관계 이론을 창립한 마이켈 벨린드(Michael Balint, 1999)기본 결함을 통해서 그리고 필자의 40년간 치료와 연구의 경험에 의해서 새롭게 인식을 하게 된 것이다.

이제 이야기의 방향을 돌려서 불안의 근본적인 시작을 살펴보기로 하자. 불안이 언제 등장하게 되었는가? 불안을 과학적으로 연구하고 치료를 시작한 사람 그리고 불안(anxiety)이라는 용어를 정신의학적으로 처음으로 사용한 사람은 프로이트이다 라는 것은 언급을 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불안은 인간의 탄생과 함께 시작되었다(Barlow, 2001의 불안과 불안장애를 보라).

최초의 인간은 원시인으로써 48천년 전에 등장한 직립 보행 인간인 호모사스피언(Homo Sapiens)크로마뇽인(Cro-Magnon men)이다. 1868년에 프랑스의 도르도뉴 지방에서 고고학자들에 의해서 구석기 시대의 현생 인류의 지금 유럽인의 조상이 발견되었다(Modell, 1985의 대상사랑과 현실을 보라). 유사한 기간에 독일의 네안덴탈(Neanderthals)에서 고고학자들에 의해서 발굴된 네안덴탈인엄마의 자궁보다 태아의 머리가 너무 커서 4만전 전에 멸종된 것으로 보고 있다.

원시인들은 동굴 속에서 살았다. 외부의 위험과 위협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서였다. 그 시점에서 원시인들은 동굴 속에 그림들을 그렸다. 벽화들을 현대인들은 그들의 예술작품으로 보고 있으나 하버드 대학의 정신과의사로 그리고 정신분석간인 아놀드 모델(Arnold Modell, 1985)은 그의 저서 대상사랑과 현실에서 원시인들의 동굴벽화는 단순한 그들의 생활의 예술이 아니고 샤마니즘(shamanism)(무속신앙)으로 원시적인 종교로 본다. 종교의 기원으로 보고 있다.

모델(Modell)라스코우스(Lascaux)의 석회암 동굴의 천정에 그려진 벽화의 그림들을 분석학 고고학자들의 연구들을 분석으로 인용하면서 그들이 그린 그림들은 모두가 동물들이었다. 그 동물들이 식용을 위한 동물들과 그리고 위험한 동물들로 구분이 되었다. 위험한 동물들이 바로 동물숭배 신앙의 샤마니즘으로 연결된다. 원시적인 종교의 분명한 흔적으로 본다. 이것은 프로이트가 고고학자들과 인류학자들의 문헌들을 연구해서 쓴 1923년에 쓴 토템과 터부(Totem and taboo)에서 기술되어지고 있다(프로이트의 모든 논문들은 그 학자들의 저서의 인용 페이지를 노트하고 있다. 그가 상상으로 글을 쓴 글이 아니고 과학자의 관점에서 쓴 글들이다).

사실은 힘이나 체격으로 볼 때 원시인들은 동물들 중에서 가장 취약한 동물들이었다. 그래서 그들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동굴속에서 살았다 그러나 그들이 생각하고 기억하고 예견하고 회상할 수 있는 대뇌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원시인들은 구석기와 신석기 그리고 청동기 시대를 거치면서 지혜를 사용했다. 파스칼(Pascal (1623-1662) 1670에 사망 이후에 파스칼의 글 묶음인 팡세 (생각)에서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이다 즉 인간은 연약해서 바림에도 흔들리지만 그러나 생각의 힘으로 자연을 정복하기 시작했다 라는 말이 아닌가? 현대 심리학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데카르트(Descartes)(1536- 1650)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라는 말로써 생각의 힘을 노트를 했다. 뇌의 사고의 원리를 지적한 명언들(마음의 원리)이 아닌가! 원시인들이 불을 발견하고 그리고 각종 연장들을 발견하고 발명함으로써 동굴 밖으로 나올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들은 자연의 동물들 중에서 가장 강한 동물들 , 호랑이, 독수리 등을 신으로 숭배를 했다. 이것은 자신의 연약함을 전지전능한 신의 힘으로 마술적 사고로써 착각의 힘을 빌린 것이다 라고 모델은 기술하고 있다. 프로이트는 토템과 터부에서 모든 인간의 종족들은 그들 자신들의 토템을 가지고 있었다 라고 기술한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이미 국사 시간에 배운 단군신화이다. 하늘의 신 환인이 아들 환웅이 지상에 내려가서 널리 인간을 유익하게 할 것(홍익인간)을 간청을 해서 허락을 받아서 백두산 신단수에 내려왔다. 그 때 곰과 호랑이가 그에게 찾아와서 인간이 되기를 간청했을 때 쑥과 마늘을 주면서 동굴 속에서 100일 기도를 하면 인간이 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수행을 했으나 호랑이는 참을 수 없어서 동굴 밖으로 뛰쳐나갔고 곰은 참고 견디어 내어 여성으로 환생을 했다. 그가 환웅과 결혼을 해서 태어난 아들이 단군이다(2023 1, 14: 다음 백과 참조).

우리나라 사람들의 기질이 은근함끈기이다 로 표현한 고교 교과서에 실린 어떤 학자의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곰의 힘과 참을성을 마술적으로 얻으려고 한 것이 아닌가? 그런데 원시인들은 이러한 토템들을 결국에는 잡아먹었다. 왜 신(God)을 잡아먹었는가? 라는 것에 대해서 프로이트는 신을 잡아먹은 것은 그 신의 힘이 그들의 몸안으로 들어와서 그 신처럼 강하게 된다 라는 마술적 사고 때문이로 노트하고 있다. 프로이트는 이것을 동일시라고 불렀다.

문화 인류학자들이 남태평양의 원시부족들과 함께 살면서 보고한 연구 보고서에 의하면 그들의 추장이 죽었을 때 그를 화장해서 그의 뼈를 갈아서 그 부족들이 음식에 넣어서 먹는 것을 보고 그들에게 왜 추장을 화장해서 그 뼈가루를 음식에 넣어서 먹는가? 라고 물어보았을 때 그들 종족의 추장처럼 강하고 용맹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그렇게 한다고 대답을 했다(Herdt, Stoller, 1990, 친밀한 커뮤니케이션에서 남태평야의 뉴기니아 섬에서 삼비아족의 문화를 보라).

인간은 자신의 나약함을 자연의 신으로부터 빌려와서 강하게 되려고 전지전능함의 힘을 빌리려고 하는 것은 우리의 농경문화 속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거대한 큰 것과 웅장한 사물들에 대해서 우리 조상들은 그들의 힘을 두려워하고 동일시하려고 했다. 거대한 바위, 나무, 거대한 산에 제사를 지내고 절을 하고 그들은 함부로 파괴하거나 훼손하지 않았다. 이것은 긍정적인 전지전능함부정적 전지전능함으로써 전자는 무제한의 선으로 후자는 무제한의 보복과 파괴로 보았다(Modell. 1985).

예를 들어서 땅에는 지신, 나무에는 목신, 산에는 산신, 바다에는 용왕, 바위에는 석신 등으로 그들 앞에서 절을 하고 경외심을 가지는 것을 범신론(모든 자연의 거대하고 큰 것에는 신이 숨이 있다)이 아닌가? 모델은(Modell)은 이러한 심리적 현상을 자연을 컨트롤 할 수 없는 인간의 무기력함의 방어로써 그들의 힘들 빌려서 연약함을 보호하려는 심리적 기재로 보았다.

이러한 토템사상들은 인간들이 군집으로 문화를 이루면서 점차적으로 변화되어간다. 이집트의 문화에서는 자연신과 마술의 결합이었다. 고로 이집트인들은 자연신과 동물들을 함께 숭배하는 다신교였다. 여러 신들을 모시는 다양한 자연신들의 종교들이 번창을 했다(Modell, 1985).

오디프스에 나오는 스핑크스여자의 얼굴사자의 몸뚱이독수리의 발톱을 혼합한 신이었다.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맞추는 사람이 테베의 공석(빈 자리)이 된 왕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 만약에 수수께끼를 맞추지 못하면 목숨을 내 놓아야 한다 라는 길거리에 공고를 보고 오디프스가 도전하게 된다. 그 수수께끼가 바로 초기에는 4 그리고 이후에는 2 그리고 마지막에는 3발을 가진 것이 무엇인가? 라는 말에 오디프스가 인간이다. 인간은 어린시절에 4발로 기어 다니고 어른이 되어서 두개의 발로 서서 다니고 그리고 노년에는 지팡이에 의존해서 3개의 발로 걸어 다니는 것이 아닌가? 오디프스가 그 수수께끼를 맞췄다 라는 것은 테베 라는 나라를 이끌어갈 수 있는 힘이 신의 힘을 능가하는 것으로 목숨을 걸고 도전할 수 있는 용기의 힘을 가진 사람이 왕이 되어 나라를 이끌고 나갈 수 있다 라는 것(지혜의 힘)을 인정해준다는 것이 아닌가?

프로이트는 모세유태인이 아니고 이집트의 귀족으로써 그가 유일신을 제창했기 때문에 이집트 문화에 위배되어 갈등을 초래하게 되자 이집트에서 자신의 지지사들을 이끌고 추방된 것으로 보았다(프로이트, 1939: 프로이트의 마지막 논문인 모세와 유일신을 보라). 유태인들아브라함, 이삭, 야곱, 그리고 모세의 예언자들의 개인적인 인격을 신으로 삼아서 그들을 동일시하려고 했다. 고로 자연신이 아니고 유일신이다. 유태인들은 예수를 예언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유태교는 구약성서로 사용한다 카톨릭구약과 신약을 성서로 사용한다 실제로 그들은 유일신을 믿는다는 것으로 볼 때 그들은 사실은 한 뿌리이다.

 이후 중세의 1천년(A.D. 500-1500년까지) 로마 카톨릭이 전 유럽을 통지하고 지배하게 된다. 유일신으로 절대적인 힘과 권위를 가진 로마 카톨릭의 교리는 삼위일체성자, 성부, 성신으로 그리고 성모 마리아를 성녀로 그리고 신부와 수녀를 결혼 금지, 섹스는 수요일 금요일 일요일 그리고 부활절과 크리스마스 기간 동안에 섹스를 금지하는 엄격한 교리를 만든 신학자는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신학대전이다(Money, 1993, 사랑의 지도를 보라). 중세의 천년 동안에 로마 카톨릭의 교황이 유럽의 왕들을 지배하게 된다. 로마의 황제들이 교황 앞에서 무릎을 꿇고 신에게 로마 교황의 교리(하느님의 교리)를 실천할 것을 선서로써 약속을 하고 교황이 황제들에게 왕관을 씌워주었다. 이러한 황제를 신성 로마 제국으로 지칭이 된다(필자가 미국에서 이수한 중세 문학과 역사에서 참고).

 카톨릭 교황이 유럽의 왕들에게 예루살렘의 성지의 회복을 위해십자군(Crusades)의 원정을 요청하게 된다. 각국의 왕들이 십자군을 조직에서 7회에 걸쳐서 원정을 하게 된다. 1차 원정(1101)은 예루살렘의 회복에 성공을 했으나 얼마 후에 샐쭉(Seljuk) 터키에 의해서 빼앗기게 되면서 이후에 제 7차까지 십자군의 원정을 실패하게 된다. 로마 카톨릭의 이러한 시도에 재정적 어려움이 등장하면서 면죄부 사건이 터지게 된다. 이러한 교황청의 부패에 반기를 들고 종교 개혁이 등장하게 된다. 독일의 신부로써 마틴 루터(Martin Luther)(1483-1546)가 면제부와 섹스 금기에 반기를 들었다. 성서의 어디에서도 섹스 금지가 없다 그는 수녀 보라(Bora)와 결혼을 했다.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을 했다. 이것이 바로 개신교의 등장으로 투터교 (Luther)가 된다. 26년 후에 프랑스의 신부인 존 칼빈(John Calvin)(1509=1564)제네바에서 종교 개혁을 주장하면서 칼빈 교회가 된다. 그는 역시 미망인과 결혼을 했다. 칼빈 교회는 이후에 영국의 웨일즈지방에서 통합교회 장로교회로 이어진다(2023, 1, 15: 위키피아 참고).

 필자가 개신교의 역사를 소개한 것심리학의 등장과 관계 있기 때문이다. 심리과학이 등장한 것은 개신교 목사의 아들들에 의해서 등장하게 된다. 실험실에서 감각을 수학적으로 측정함으로써 심리과학을 탄생시킨 빌헬름 분트(Wilhelm Wundt (1832–1920)는 독일의 가장 오래진 대학인 하이델베르크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독일의 물리학계를 창설한 허먼 헤몰츠(Hermon Ven Helmholtz)(독일의 생리학자, 물리학자, 심리학, 철학자)조수로 있다가 의사가 적성에 맞지 않아서 라이프지크(Leipzig) 대학에서 철학교수가 되었다. 그의 아버지는 청교도 루터교회의 목사였다. 그는 1879년에 심리과학을 탄생시키고 심리학 박사학위를 배출하기 시작했다. 1875-1919까지 44년 동안 184명의 심리학 박사를 배출 했다 그 중에서 70명이 외국인(러시아-23, 미국-18, 폴란드, 동부 유럽)이었다. 그의 스승은 구스타브 페크너(Gustave Theodor Fechner)(1801-1887)(독일의 물리학자, 심리학자, 철학자)로서 그의 아버지는 목사였다. 그는 법과 대학을 졸업하고 적성에 맞지 않아서 포기하고 그 다음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역시 포기를 했다 마지막으로 물리학을 전공해서 철저한 실험물리학자가 되었다. 그가 10년 동안 수학으로 그는 몸과 마음의 공식 즉 몸/마음은 ∆R/R = K로써 그의 스승인 웨버(Web)의 이름을 따서 웨버의 법칙(Weber law)으로 명명했다. 그의 아버지 역시 목사였다. 그는 심리물리학이라는 저서를 출판을 했다. 페크너의 스승은 어네스트 웨버 (Ernest Heinrich Weber (1785-1878)(독일의 물리학자, 생리학자, 철학자)로 역시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사직을 포기하고 철학자가 되었다. 그의 아버지 역시 목사로써 위텐베르그(Wittenberg )대학 신학 교수였다. 그는 심리생물학이라는 책을 저술을 했다. 위의 세 사람은 모두가 라이프지그(Leipzig)대학에서 철학교수로써 3대에 걸쳐서 심리과학이 탄생하게 된다. 왜 개신교 목사의 아들들이 심리과학을 탄생시키게 되었는가? 에 대한 의문은 그 당시에 가장 지식인들이 바로 목사들이었다. 그들의 아들들은 어린시절부터 많은 책들을 읽고 의과대학에서 공부를 한 사람들이었다. 그렇다면 왜 카톨릭에서는 심리과학자들이 탄생하지 않았는가? 그것을 신부들을 결혼을 할 수 없었고 자녀들을 낳지 못했기 때문이다. 교황은 신부들 중에서 가장 명망 있는 사람이 교황이 되는 것이 아닌가?

 다시 불안의 연구로 되돌아가보자. 마음의 불안의 현상을 최초로 연구를 한 학자가 바로 목사이다. 그가 바로 덴마크의 코펜하겐대학 신학과를 졸업한 소렌 키에르키에골(Soren Kierkegaard (1813-1855)이다 그는 루트란 교회의 목사가 되었다 그러나 목사직을 포기하고 철학자가 된 사람이다. 그가 바로 실존 철학의 아버지이다. 그는 니체의 등장 40년 전에 그리고 프로이트의 등장 50년 전에 먼저 등장을 했다. 인간의 존재를 연구실존주의 (Being in the world)는 그에 의해서 탄생하게 된다. 프로이트는 독일의 염세주의 철학자인 쇼펜하우엘과 철학자 니체의 영향을 받았지만 키에르키에골은 접촉이 없었다(May, 1996: 주㈜: 참고). 키에르키에골은 신생아는 출생시에 백지상태로 태어난다. 빈 공간으로 아무 것도 없이 태어난다(Nothing). 이후에 경험들이 머리 속에서 새겨진다 이것이 통합되어 자아가 된다. 자아는 스스로 자신을 의식하는 자아의식(self-conscious)으로 독일어의 자신감(self-confidence)를 말한다. 자아를 의식하고 자신을 찾을수록 자신감은 상승한다는 말이다. 인간은 자신을 관찰하여 볼 수 있는 자아가 있기 때문에 과거, 현재를 회상할 수 있고 그리고 미래를 예견할 수 있다. 원시인들처럼 유아는 부모의 보호아래서 전지전능한 마술적인 착각으로 세상을 탐색하게 된다. 이러한 자아 경험이 확실하게 자리를 잡을 때 세상의 두려움과 불안을 이겨낼 수 있게 된다. 마술적인 힘이 자아의 힘으로 성장하게 된다. 그의 존재의 이유, 인간존재에 대한 연구는 40년 이후에 철학자 니체로 연결되어진다.

프레데릭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1844-1900)20세기의 초반기에 30년 동안 유럽의 지식층을 열광시킨 현대심리학의 아버지로 불린다(May, 1995: 실존 치료를 보라). 그는 1900년에 정신병원에서 사망했지만 사망 후에 10년동안 20세기 유럽을 인도하는 견인차로 대표되었다. 니체는 24세에 스위스의 바셀(Basel)대학에서 최연소 교수가 된 사람이다. 그는 그리스어의 고전언어학(Philology) 교수였다. 이후에 그는 키에르키에골, 쇼핀하우엘 등의 철학자들의 영향으로 철학자가 된 사람이다. 니체의 아버지는 루터교회 목사였다. 니체의 대명사신은 죽었다 이다. 그가 신이 없다 라는 것을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니고 신을 죽인 사람들이 바로 인간이라 라고 천명한 사람이다.

필자는 니체에 대한 한 개의 우화가 니체를 묘사하기 위해서 유명인이 만들어낸 것으로 보았으나 그 우화를 바로 니체가 스스로 만들 것을 알고 니체의 천재성에 탄복을 했다. 그의 우화를 소개한다.

미친 인간이 마을 광장에 뛰어 들어서 신이 어디에 있는가?”라고 소리치료 다닌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신을 믿지 않았다. 그들은 웃으면서 신은 이민을 갔다, 신이 항해를 가고 없다.고 했다. 미친 사람은 소리를 질렀다. “우리가 신을 죽였다, 내가 어떻게 신을 죽였는지 말해주겠다, 누가 지평선을 없애버렸는가? 누가 태양과 지구를 떼어 놓았는가? 누가 우리를 사방으로 넘어지게 움직이게 만들었는가? 발 밑에 공허감을 느끼지 못하는가? 암 흙 속으로 내려가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가? 신은 죽었다. 우리가 신을 죽였다.” 모두들 침묵으로 미친 사람을 바라다보았다. 사람들이 그를 바라보다 내가 너무 일찍 왔나?” 고 그들에게 말했다. “거대한 이벤트는 지금도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May, 1996, 불안의 의미에서 인용)

니체는 과학이 공장이 되어가고 있음을 경고했다. 윤리와 자아의 이해가 없는 기술을 발달니힐리즘으로 갈 것이라고 예언했다. 20세기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를 내다보았다. 그는 신은 죽었다로 썼다. 그는 독재자의 출현과 대재앙예고했다 그것이 14년 이후에 제 1차 세계 대전 그리고 30년 이후에 나치정권 그리고 40년 이후에 제 2차 세계대전이다.

 니체는 신의 믿음으로 되돌아가서 중세의 기독교 교리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고 자아의 주체성을 강조했다. 자아 감각의 상실 인간의 존엄성의 상실이다. 니체는 개인이 무리에 의해서 삼켜질 때 우리는 노예 도덕에 사는 것과 같다.”라고 했다. 개인이 서로서로를 알게 하는 것이 커뮤니케이션이다, 커뮤니케이션의 상실은 자아의 상실로 이어진다. 니체는 사람은 자신의 스타일에 의해서 알려지게 된다고 했다. 그의 활동이 다른 사람과 구분되고 주체성 밑에는 독특한 패턴이 있다고 했다. 나 자신이 자아에 의해서 내가 되는 것이다. 남과 다른 내가 확고하게 자리를 잡아야 불안에 잡아 먹히지 않는다. 니체는 본능과 승화를 강조했다. 그는 충동, 긴장이 자아 밖으로 방출되어지지 않으면 인간의 내면으로 향하는 죄의식으로 자아 처벌이 된다 라는 명언을 썼다. 프로이트가 바로 이러한 니체의 영향을 받았다 라는 것은 이미 여러 번 기술을 했다.

어떤 사람들은 니체가 신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신에게 저주를 받아서 만년에 정신병원에서 죽었다 라고 말을 한다(어느 목사님의 강연). 그러나 니체는 그의 자서전에서 그가 20대 초반에 매춘부집에 간 것을 고백을 했다 그 때 매독에 감염되었다. 매독의 3기에 매독균이 뇌의 세포막을 뚫고 들어가서 뇌세포를 파괴시키기 때문에 정신이상자가 된다. 500년 동안 매독은 수많은 천재들을 불구로 만들었다. 대표적인 사람이 베토벤이다 그는 만역에 장님, 귀머거리가 되었다.

정신의학에서 정신병이 매독처럼 병균에 의해서 감염이 아닌가? 라고 의심하고 연구를 했지만 정신병은 병균에 의해서가 아님이 밝혀지면서 매독은 정신병의 역사에게 사라지게 된다. 매독은 고대에는 없었다 중세 때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면서 아메리카 인디언(병균을 가진 숙주는 무사하다, 만약에 숙주가 죽는다면 병균 자제가 사라지게 된다)에 의해서 감염되었고 매독을 전파한 사람이 바로 콜럼버스였다 그는 5회에 걸쳐서 아메리카 대륙을 탐험을 했지만 마르크 폴로의 동방견문록에서 주장한 금관, 금목걸이, 금수저, 금팔찌 등의 노다지 금들은 발견하지 못했다. 그는 만연에 매독 3기로 길거리에서 행려병자로 사망했(2023, 1, 15: 위키피아). 매독은 1909년에 독일의 세균학자 파울 에들리히(Paul Ehrlich)(그는 1908년에 이미 노벨의학성을 받았다)에 의해서 매독균이 발견됨으로써 치료약인 살바르산(Salvarsan)이 등장해서 매독은 불치병에서 사라졌다. 1983년에 섹스에 의한 새로운 불치병인 에이즈(AIDS)가 등장했다. 에이즈는 그 병균 자체가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고 이 바이러스가 면역기능 세포인 T세포와 결합해서 T세포를 파괴시키기 때문에 마지막에는 면역기능의 파괴로 모든 병에 취약해서 죽게 된다. 매독균과 에이즈균들은 탯줄을 타고 태아에게 전달된다. 태어난 어린이들은 선천성 매독 혹은 선천성 에이즈 환자가 된다.

다시 불안으로 되돌아가보자. 불안이라는 용어를 사용해서 불안 신경증을 치료한 사람이 프로이트이다 라는 것은 이미 앞에서 밝혔다. 프로이트는 평생을 불안 신경증을 연구하고 치료를 하면서 불안의 원인과 특징들을 물리, 화학적으로 규명을 하는데 보냈다. 그는 불안의 핵심3-5세의 오디프스 콤플렉스의 기간 동안에 아들이 엄마를 딸이 아버지를 포기하고 오디프스의 갈등을 극복하게 되면 정상적인 사람으로 오디프스 갈등에 굴복하면 신경증 환자가 된다 라고 가설화 했다. 그는 불안은 그 시점에서 거세불안에 의해서 창조되어진다 이후에 그는 거세불안, 분리불안, 침투불안, 수행불안, 기대불안, 예견불안, 죽음 불안 등으로 수많은 불안의 원인들을 규명하면서 평생불안증의 치료와 연구로 보냈다 라는 것은 필자가 수없이 노트를 했다.

프로이트의 죽음이후에 6년 만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이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기에 투하한 핵무기에 의해서 전 세계가 불명확한 불안 즉 심리적인 불안으로부터 명확한 불안으로 공포에 사로잡히게 된다. 동시에 2차 세계대전 직전에 미국에서 이미 경제 대공황으로 기업들이 무너지고 경제가 파괴되는 디플레이션으로 경제대공황사회적인 불안 몰고 왔다.

그 시점에서 이미 예술가, 작가들이 과학의 문명으로 인간의 심성이 파괴되어가면서 불안의 시대를 예고를 했다. 정상적인 사람들은 5감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예술가들은 특이하게 보통사람들이 느끼지 못하는 것을 보고 느끼기 때문에 6감각을 가지고 있다고 말을 한다. 그들이 불안의 시대를 예고한 작가와 예술가들이다.

미국 문학의 20세기 초반기에 대표적인 소설가로 토마스 울프(Thomas Wolf)는 그의 작품인 고향을 돌아보라, 천사여!고향을 잃고 떠돌이로 부평초의 신세가 된 현대인을 묘사를 했다. 핵폭탄의 폭발 이후에 미국의 작가로서 영국에 귀화해서 옥스포드 데학에서 시()문학 교수가 된 오든(W.H. Auden)불안의 시대(The Age of Anxiety)(1947년에 퓰리처상)20세기 후반의 불안시대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는 사랑을 줄 수도 없고 사랑을 받을 수도 없는 획일화되어가는 인간의 존재를 상실해 가는 모습을 그렸다. 꺄뮤(Albert Camus)이방인에서 인간이 자신의 자아 안에서 서로 고립되어 소외되어가는 것을 묘사(자아의 분열)를 했다. 그는 17세기를 수학의 시대, 18세기를 물리학의 시대, 19세기를 생물학의 시대, 20세기를 불안과 두려움과 공포심리학의 시대로 기술을 했다.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의 소설 “The Castle”관료주의의 힘이 개인의 자치권, 의미 있는 대인관계를 파괴 시키는 거대한 전체주의 국가의 힘을 그리고 있다. 헤르만 헤세(Harman Jesse)고독과 불안으로 20세기의 기계화 문명을 노래하고 있다. 합리적인 이성의 힘, 억압된 감정, 비합리적인 욕구의 해방에서 외로움과 고립의 극복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May, 1953, 자아를 찾아서에서 인용).

 무엇보다도 20세기의 불안을 가장 적나라 하게 표현한 표현주의 화가로서 1896년에 그린 화가 에드와르 몽크(Edvard Munch))1863-1944)절규, 비명(The Scream)현대인의 불안을 한 장의 그림에서 절묘하게 묘사표현주의의 예술이다(Masterson, 1988).

 뉴욕 코넬 의과대학의 정신과 교수이자 정신분석가인 제임즈 마스트선(James Masterson)몽크의 삶과 그의 정신이상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그의 그림들은 분리, 공황, 버림받음의 우울증, 죽음, 그리고 애통 눈에 보이는 그림으로 표현을 가장 잘한 시각 예술이 대표자의 한 사람으로 꼽히고 있다. 그의 유명한 그림인 비명, 절규(The Scream)무기력함과 분리의 공황의 한 개가 드라마틱한 유발을 표현하고 있다. 그는 반복해서 상실의 느낌들을 그리고 죽음의 버림받음을 두고두고 반복해서 그렸다.

몽크는 노르웨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군의관으로 어머니보다 나이가 두배나 많았다. 몽크의 어머니는 몽크를 출산했을 때 이미 폐결핵으로 병들어 있었다. 그가 5살 때 어머니자 죽었다. 그는 이모네 집에서 성장을 했다. 그가 가장 가까운 사람은 누나였다. 누나 역시 그가 15살에 폐결핵으로 죽었다. 그는 어린시절의 상처로부터 평생동안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그는 45세의 나이에 알코올 중독으로 악화되어갔다. 그는 박해 망상들 그리고 환각들을 개발을 했다. 그는 8개월 동안 정신병원에 입원을 했다. “내 조건은 미침의 문턱에 와 있습니다.”라고 단언을 했다. 그는 81세로 사망할 때까지 5만여점의 그림을 남겨다. 죽은 엄마(1893), 죽은 엄마와 어린이(1897-1899), 죽음의 침대 옆에서(1893), 병실에서 죽음(1893-1894), 병든 어린이(1885-1899), 멜랑골리아(1891), 배의 조타실에서 죽음(1893) 등이다. 그는 스스로 말을 하기를 나는 여성을 사랑해 본 적이 없습니다.라고 말을 했다. 여성들이 결혼을 요구하면서 따라다니면 피해서 도망을 갔다. 그러나 그가 평생동안 정신병원에 갇혀서 삶을 마감하지 않았던 것은 그의 불굴의 정신으로 정신병과 싸우면서 그의 분노, 두려움, 공포를 예술로 승화를 시킨 사람이었기 때문이다(필자의 공황장애 홈페이지에서 인용)(Masterson의 저서 자아를 찾아서에서 인용).

20세기 후반의 불안의 시대로부터 우리나라의 현재의 상황으로 이야기의 초점을 이동시켜보자. 여기에서 문명정신이상에 대해서 약간 언급이 필요하다. 앞에서 이미 우울증을 제외한 모든 정신장애들은 산업혁명 이후에 등장한 정신병들로 정신장애들은 문명의 발달과 비래 한다는 말을 했다.

1차 세계 대전 이전은 유럽의 문명의 중심도시가 오스트리아의 수도 비엔나(Vienna)(독일어로 빈)였다. 오스트리아-헝가리는 합스부르크 가문(House of Habsburg)으로 유럽의 최대의 강국으로 가장 큰 영토를 지배하고 있었다. 1 차 세계 대전은 오스트리아의 황태자 부부가 세르비아의 청년에게 암살되면서 1914, 7, 28일에 발발했다. 오스트리아-헝가리독일 그리고 오스만 터키의 대제국들과 영국, 프랑스, 일본, 이태리의 연합국 사이에 일어난 대전쟁으로 나머지 국가들이 이합집산으로 양쪽의 어느 한쪽에 합류함으로써 일어난 세계 대전이었다. 4년간의 전쟁 결과 패전국이 된 오스트리아는 8분의 1로 축소되었다. 그 시점에서 세계 문명의 중심지비엔나로부터 1차 세계대전의 핵심 중심국가영국의 런던으로 이동하게 된다. 이후 25년 후에 등장한 2 차 세계대전(193991에 독일의 폴란드 공격으로 시작)독일, 일본, 이태리3국동맹과 미국, 영국, 러시아의 연합국과 전쟁으로 미국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미국은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일본 그리고 유럽(놀만디 상륙작전의 총사령관은 미국의 아이젠하워(Eisenhower)장군, 그는 이후에 34대 미국 대통령) 양쪽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2 차 세계대전의 연합국의 승리로 전쟁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승전국인 미국의 뉴욕으로 문명의 핵심 중심이 이동하게 된다.

프로이트가 죽고 나서 등장한 정신장애2개가 있다 한 개는 프로이트의 사망 이후에 4년 만에 등장1943존 홉킨스 의과대학 소아과 의사이자 정신분석가인 레오 캐너(Leo Kanner)가 보고한 11명의 이상한 어린이자폐증이다, 미국 질병 통제국에서 2012년에 88명중의 1명이 6년 후에 2018년에 44명 중에 1명으로 자폐증은 증가하고 있다 라고 보고를 했다 그리고 프로이트의 죽음 이후에 55년 후에 등장한 사회적 불안장애이다.

문명이 발달하면서 정신장애가 급증하는 것은 이러한 증거들이 보여주고 있지 않는가? 2차 세계대전 후에 런던에서 뉴욕으로 문명과 문화의 중심지가 이동한 미국에서 등장하게 되는 정신장애에 대해서 언급해보자.

1940년에 태어난 미국인이 40세가 되는 1980 즉 제 1차 세계 대전 40년 후에 미국의 정신장애에 대한 기초 골격이 형성되어 지게 된다 그것이 바로 DSM-Ⅲ 이다. 미국 정신의학회에서 정신장애에 대한 진단과 통계 지침서인 DSM-Ⅲ에서 정신장애들에 대한 체계적인 정리들은 그 이후에는 몇 개의 첨가와 삭제를 제외하면 크게 변화된 것이 없다는 점이다. 이 시점에서 불안장애의 편집과 정리를 한 핵심 인물이 뉴욕 주립대학 알배니 의과대학 정신과교수이자 뉴욕의 불안장애 치료 센터 소장인 데이비드 바알로우 (David Barlow, 1988)이다. 여기에서 또 한가지는 10개의 성격장애의 분류와 정리가 완료되어진다 이것을 주도한 학자가 바로 하버드 의과대학의 정신과의사이자 정신분석가존 건드슨(John Gunderson)으로 그는 10년 동안 성격장애의 연구로써 보드라인 연구의 아버지 불리게 된다(2023, 1, 21, 위키피아 참고).

 필자는 1982, 8, 3일에 미국에 유학을 갔다 그 때 필자가 본 미국의 문명과 문화는 오늘 날 우리나라의 현재의 상황과 유사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손에 생수병을 들고 다닌다, 애완동물들이 인간의 가족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자녀는 1명 혹은 2으로 출산 이후에 자녀들이 유아원, 영아원의 돌봄으로 맡겨지게 된다. 거대한 슈퍼마켓에 승용차로 1주일 혹은 1달의 생활필수품들을 사서 큰 냉장고에 보관한다. 현금을 사용하지 않고 신용카드로 결제, 하숙이 없고 혼자서 요리하는 것을 배워야 했다(요즘은 한국 유학생들의 수자가 많아 지면서 홈 스테이(Home Stay)(하숙)가 늘고 있다), 대졸 여성의 76%가 직장 생활을 한다. 가족이 해체되어 이혼비율이 급증한다. 특별히 필자가 L.A. 국제 공황에서 내려서 롱비치 대학으로 가기 위해서 대학에서 보내 준 안내지도를 보면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을 때 버스들의 운전석 위에 거대한 전광판(목적지와 경유지를 표현)이 눈에 띄었다. 필자가 탄 거대한 버스(우리나라의 고속버스)2-3명이 승객이 타고 목적지까지 간 것은 충격적이었다. 필자가 교사로 11년 동안 근무하면서 교사들이 학교를 지키기 위해서 순번대로 당직(숙직)을 한다. 그런데 미국에 도착했을 때 세이콤(예를 들어서, 전자 방법 장치)의 전자 장치로 숙직, 당직이 없었다.

 언제부터 미국인들의 생활이 그렇게 시작되었는지? 를 필자는 모른다. 그런데 필자의 귀국 이후에 40년이 흘러갔다. 오늘날 우리나라는 세계의 11번쩨 선진국으로 그리고 9번째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했다고 언론들이 보도를 하고 있다. 지금 현재의 우리나라의 문명과 문화의 수준이 그 당시 필자가 본 미국과 유사하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이제는 각 가정에 승용차가 최소 1대 혹은 2씩 가지고 있다. 대형 슈퍼마켓에서 승용차로 1주일 혹은 1달분의 식품을 자서 대형 냉장고고 보관, 원룸이 유행, 자녀들은 1명 혹은 2으로 출산 후에 3개월의 시점에서 엄마가 몸이 회복되는 맞벌이로 직장에 나가고 자녀들은 유아원, 영아원으로 보내진다. 방범 전자상치로 당직(숙직)이 사라졌다. 생수병을 손에 들고 다닌다. 애완동물들이 유행을 타고 있다. 버스의 윗부분에 대형 전광판에서 목적지와 경유지들이 표시된다. 현금을 가지고 다니지 않고 신용카드 결제, 이혼비율이 폭증하고, 결혼을 하겠다는 젊은 남자는 55,8% 그리고 여성은 44.3% 절반의 젊은이들이 결혼을 하지 않겠다 라는 비율은 필자가 1992년에 대학에서 강의를 할 때 우리나라 사람들의 98%가 결혼을 하게 된다 라고 말한 한 것과 대조가 된다. 40년 후에 우리나라가 선진국에 도달하게 되면서 생긴 문명의 후유증이 아닌가? 

 문명의 발달은 정신병과 비례한다는 말을 다시 생각해보자. 우리나라의 정신장애들의 현주소를 요약해보자. 이것은 필자의 추측이 아니고 언론과 TV에서 보도하는 것을 인용한 것이다. 건강평가원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수면 장애 환자가 70만명이다, 2년마다 10만명식 증가하고 있다(2022, 12, 31. 헬스조선).

수면 장애는 불안장애 즉 불안증의 핵심이다. 불안한 사람들은 생각이 많아서 생각이 생각에 꼬리를 물고 연상이 되면 잠을 자기 어렵다. 수면은 뇌가 쉴 때 잠을 자게 된다 고로 생각이 많은 사람들 즉 고민과 갈등이 많은 사람들은 특별히 숙면이 어렵다 라는 것은 여러 번 노트를 했다. 우리가 잠을 잘 때 의식은 잠을 자지만 무의식 득 ego는 잠을 자지 않는다. 프로이트는 꿈의 해석에서 우리가 잠을 잘 때 꿈 속에서 ego는 활동을 한다. 갈등을 조정하고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고로 심각한 고민과 갈등이 많은 사람들은 잠을 많이 잔다고 해도 ego가 문제 해결을 하기 위해서 뇌를 가동시키기 때문에 숙면이 어렵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또 한가지는 영국의 BBC 방송에서 특집으로 한국 사람들의 수면에 대해서 방송한 것에서 우리나라의 수면 중독 환자가 10 명이고 그리고 수면 산업이 3조원이 넘는다 라는 보고를 했다, BBC 방송은 강남의 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A씨가 하루 밤에 20알의 수면제를 처방을 하는 사람이 있다 라고 실토를 한 것을 보도했다((2022, 4, 6. 세계일보). 수면 중독이라는 말은 수면제의 약물의 도움이 없이는 잠을 잘 수 없는 사람들을 말한다. 수면제들이 중독성이 강하기 때문에 쉽게 중독된다(앞에서 언급한 바비츄웨이트는 알코올 냄새가 없은 알코올). 그리고 내구성으로 초반기 약효를 얻기 위해서는 약물이 증가되어야 한다. 치료자에게 컨설팅을 받은 40세의 한 남자는 6년전부터 수면제가 없으면 잠을 잘 수 없기 때문에 매일저녁 수면제를 복용을 해야 잠을 잘 수 있다고 호소를 했다.

더 붙여서 우리나라의 불안장애2017년에서 2021년의 4년 동안에 32.3%로 증가했다(2022, 6, 26, 아시아 경제). 여기에서 특별히 최근에 10대의 마약 사범 환자가 3배 증가20대가 31.2%로 가장 많이 차지했다(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2 신년사에서 젊은 층에서 마약사범이 급증하는  마약범죄의 양상이 매우 우려할 만한 상황이라고 밝혔다)(2023, 1, 3, 서울신문). 앞에서 언급한 죽은 엄마 증후군에서 주변 환경에 대한 두려움으로 환경탐색으로 내면에 쌓인 경험의 공간이 텅 빈, 자아분열 환자들은 죽음의 불안, 빈 공간 안에 공허감보다는 알코올, 마약, 게임, 음악, 영화 등으로 채워 넣는다 라는 지적을 했었다.

마지막으로 정리를 해 보자, 환청과 환각은 조현병의 특징이다 조현병 환자는 약물을 복용하면 환청과 환각은 사라진다 그리고 심각한 경우에는 병원에 입원에서 휴식을 회복할 수 있다 그런데 불안장애 환자들은 일상생활을 할 수 있지만 그들의 긴장과 과도한 불안으로 제대로 휴식을 가질 수가 없다는 점에서 의사들을 찾아가보지만 약물이 불안증의 해소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음을 발견하고 절망속에서 평생을 보내야 한. 이들의 심리치료의 치료 비율도 낮다. 그들의 핵심 불안이 감소되어 지 않아서 장기간 치료세서 불평과 불안으로 치료를 떠나는 사람들이 많다.

심각하게 불안한 환자들은 심리신체장애들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이명, 편두통, 다한증, 수전증, 위와 장의 장애들, 특별히 과민성 대장염, 십이지궤양(젊은층), ADHD, 난독증, 루마티스 관절염, 액취증(겨드랑이 냄새), 본태성 고혈압 등등의 질병 등은 고질병으로 약물에 작 반응하지 않아서 평생동안 달고 다녀야 한다. 이들이 심리신체장애로써 밝혀 짐에 따라서 심리적 원인을 제거하면 고질병도 료되어질 수 있다 라는 점에서 최근에 메디컬 심리학, 행동의학 등이 우세로 등장하고 있다. 지난 5년 안에 약물없이 필자에게 1년 동안 심리치료를 받은 50대의 남성30년 동안 달고 다니던 이명(귀 울림)사라졌다, 6년동안 치료를 받은 40대의 부인이 40년동안 달고 다니던 편두통의 제거, 16개월 동안 치료를 받은 남자 대학생이 비염난독증의 제거를, 1년 동안 치료를 받은 고 2 남학생의 과민성 대장염의 사라짐, 6개월 동안 치료를 받은 초등 5학년생의 아토피의 제거, 이들의 치료를 통해서 심리신체의 고질병의 약물없이 치료가 가능하다는 것을 실감을 했다 그들은 고질병 때문에 치료를 받으려 온 것이 아니고 대인공포증 때문에 치료를 받으면서 부수적으로 그들의 고질병들이 등장해서 함께 치료를 받은 사람들이었다.

불안장애 중에서 그리고 정신장애 중에서 가장 늦게 등장한 사회 공포증, 대인공포증(social phobia)인간관계를 두려워하고 혼자 있는 것이 편안해서 친밀관계가 망가지게 되면서 조현병으로 그리고 히키코모리(일본어)심각한 사회문제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여기에서 문명의 발달이 정신병을 양산한다 라는 말은 우리가 과거의 원시문명으로 되돌아가자 라는 말은 아니다. 니체의 명언인 우리가 심연(싶은 물속)을 쳐다보고 있으면 심연 역시 우리를 쳐다보고 있다.”라는 말은 우리가 문명을 누리고 편리하게 잘 살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우리가 문명에 의해서 거꾸로 잡아 먹힐 수 있다 라는 말이다. 정신병 환자들은 고도로 발달한 과학 문명에 의해서 포로로 잡힌 사람들이다. 한 작가의 작품에서 분업으로 노동자들이 줄지어 서서 벨트 위에서 부품들이 이동을 할 때 그것을 각자가 조립해서 옆으로 이동시키는 작업을 하면서 한번 실수로 놓치게 되면 계속 이어져 밀리는 고통으로 기계야! 기계야! 제발 멈춰다오라고 울부짖는 현대인의 생활에서 기계에 컨트롤 당하는 현태인의 고통을 기술한 한 작가의 글이 생각이 난다. 니체는 신은 죽었다 라고 말을 하면서 다시 중세의 기독교 시대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것이 아니고 자아의 의식, 내가 내 삶을 되돌아보고 내가 누구인가? 내가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를 인식하지 못하고 기계적으로 살아가면 나가 없다, 나를 잃어버리게 된다 라는 말이다. 인간의 심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부모들은 돈을 많이 벌어서 자녀들이 원하는 것을 제공해주고 학원에 보내주고, 학교에 보내주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제공해주면 된다 라는 생각을 가진 부모들자녀가 성장해 가면서 받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심리적인 고민과 갈등으로 평생을 보내야 하는 정신적인 문제들을 지금 이 시점에서 자녀들과 함께 고민해볼 때가 되었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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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전에 조현병(정신분열증) 관계된 정리된 서적들

1.     Steinberg(2001). 분열장애: 다중성격

2.   Freddricke(1995). 분리된 자아의 치료

3.     Moskoritz(1996). 거울 속에 상실. 사라짐

4.     Meissner(1986). 편집증의 과정

5.     Seinfeld(1995). 텅 빈 자아: 자아분열

6.    Rosenbaum(1970). 미침의 의미

7.     Stone(1983). 정신분열증의 정신분석 치료

8.     Ogden(1998). 분석의 주체: 3의 분석

9.     Grotstein(1981). 분열과 투사 동일시

10.   Volkan(1982). 정신분열증, 보드라인 그리고 나르시즘 환자의 치료 연구

11.   Volkan(1984). 당신이 민들레와 장미를 교배 시키면 무엇을 얻겠는가?(정신분열증 환자이 치료 사례연구

12.   Tustin(1986). 자폐증과 어린이 정신증

13.  Boyer(1985). 반전이와 퇴행

14.   Boyer(1989). 퇴행 환자들

15.   Rosenfeld(1987). 정신증, 보드라인 그리고 신경증 정신분석 치료

16.   Giovacchini(1989). 반전이의 승리와 재난들

17.   Giovacchini(1990). 퇴행환자를 치료하는데 숙련된 치료사들

18.   Giovacchini(1980). 정신분열증 보드라인 그리고 성격장애 정신분석 치료

19.   Stoller(1997). 분열: 여성의 남성화 치료 사례

20.   Ogden(1994). 원시적 벼랑끝 경험

21.   Searles(1999). 정신분열증 환자의 경험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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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년 동안에 조현병(신분열증)관계된 정리되어진 서적들

1.     절단된 영혼(Stean, 1990)

2.     정신분열증: 오디팔 이전 조건의 치료(Spotnitz, 1976)

3.     정신분열증 환자의 현대적 정신분석(Spotnitz, 2004)

4.     정신분열증의 심리치료(Strauss, 1980)

5.     정신분열증 환자: 증세들, 원인들, 치료들(1979)

6.     정신분열증 환자의 사무실치료(Seemman & Grehen., 1990)

7.     정신분열증 환자의 치료(Karon, 1981)

8.     정신분열증 환자의 치료 작업(Selzer et al., 1989)

9.    정신병원에서 미침(Minuchin & Elizur,  1992).

10.   정신분열증 환자의 가족(Lidz, 1983)

11.   정신분열증 환자의 가족 돌봄(Fallon et al.,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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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합 =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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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정신분열증(조현병)에 대한 블로그의 글들(올린 년도와 이 글을 읽어본 사람들의 숫자)

1.     최근에 조현병 환자의 성공적인 치료 사례 – 2020, 10, 17 – 1,777

2.     빙의 대(vs) 조현병 – 2020, 4, 4 – 467

3.     조현병과 가족 – 2019, 12, 22 – 1767

4.     영화 조크와 조현병 – 2019, 12, 25 – 136

5.     조현병(정신분열증)과 심리치료 – 2019, 11, 4 – 3,391

6.     다시 보는 조현병 – 2019, 9, 8 – 669

7.     환각, 환청 분석   -- 2019, 3, 31 – 5,349

8.     정신분석 심리치료 과정에서 꿈 분석: 조현병 – 2018, 11, 12 – 1, 318

9.     조현병 vs 정신분열증 -  2018, 7, 29 – 809

10.   조현병을 정신분석으로 치료할 수 있나요? 3– 2017, 11, 4 – 404

11.   조현병을 정신분석으로 완치한 경험이 있습니까? – 2-17, 9, 10 - 2,752

12.   조현병을 정신분석으로 치료할 수 있나요? – 2017, 8, 22 – 148

13.   조현병이 정신분석으로 치료될 수 있나요? – 2017, 7, 25 -1,167

14.   조현병의 정신분석 심리치료 과정 소개 – 2017, 5, 15 – 1,102

15.   정신분열증(조현병)을 치료할 수 있나요? – 2017, 4, 11 – 849

16.   정신분열증(조현병)을 치료할 수 있나요? – 2017, 4, 4 – 144

17.   정신분열증(조현병)을 치료할 수 있나요? – 2017, 3, 23 – 677

18.   대인공포증의 모든 것: 정신분열증으로 – 2016, 6, 17 - 5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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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참고

베른헤임(Bernheim, 1979). 정신분열증 환자, 원인, 증세들, 치료들

세인필드(Seinfeld, 1991). 텅 빈 핵심: 대상관계 이론의 접근, 자아 분열성격장애 치료

바알로우(Barlow, 2001). 불안과 불안장애(2001), 공황장애와 공포증(1989)

메이(May). 불안의 의미(1996), 자아를 찾아서(1953), 실존 치료(1995)

윌슨(Wilson et al., 1989). 심리신체 의학

웨이너(Wiener, 1989). 심리생리학과 인간의 질병

오가덴(Ogden). 투사동일시의 치료 기법(1982), 마음의 모체(1986), 경험의 원시적 끝지점(1989), 분석의 주체(1994), 몽상과 해석(1987), 꿈 원천에서 대화(2001), 정신분석과 예술(2005)

브롬베르그(Bromberg, 1998). 공간에 서다: 상처와 해리의 과정

스턴(Stern, 1997). 공식화되어 지지 않은 경험: 정신분석에서 해리와 상실까지

스톤(Stone, 1983). 정신분열증 치료: 분석 치료적인 접근

모델(Modell). 사적인 자아(1996), 다른 시간 다른 현실(1996), 상상과 의미깊은 뇌(2006), 맥락 안에서 정신분석(1984), 대상 사랑과 현실: 정신분석 대상관계 소개(1985)

윌슨과 민츠(Wilson & Mintz, 1989). 심인성질환 증세들

알렉산더(Alexander, 1949). 심인성질환: 원인과 응용

로젠필드(Rosenfeld, 2003). 치료 답보와 해석

마스트슨(Masterson). 보드라인 환자의 심리치료(1976), 참자아를 찾아서(1988), 나르시즘과 보드라인(1998), 자아장애들(1995), 청소년의 현대적 딜레마(1967).

페니첼(Fenichel, 1976). 신경증의 정신분석 이론

건드선(Gunderson). 치료되는 자아(보드라인 환자의 치료 효과)(1989), 보드라인 환자의 치료 안내(1994), 보드라인 성격장애(1984), 보드라인 환자의 치료 안내서(2001)

위치텔(Wachtel, 1997). 치료 커뮤니케이션

스테인필드(Seinfeld, 1991). 자아분열 성격

알렉산더(Alexander). 심인성질환(1949). 심리신체의학의 연구(1945)

윌슨과 민츠(Wilson & Mints). 심인성질환 증세들

웨이너(Weiner, 1977). 심리생리학과 인간의 질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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