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실에서 자연스럽게 분석 상담을 받고 있는 모습(영화 속에서 인용) 

 

 공황장애 뿌리 뽑기?

 

20세기 후반에 가장 폭발적으로 증가한 정신장애는 공황장애(panic disorder)대인공포증(social phobia)이다. 공황장애와 대인공포증은 둘 다 불안장애, 불안증에 소속되어져 있다. 얼마나 폭발적인가? 2022, 6, 24일에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5년 동안에 불안장애가 32.3% 증가한 것으로 그리고 여자가 남자에 비해서 2가 많은 것으로 보고되었다(2022, 6, 24: 아시아경제). 2017년부터 단 5년 동안에 32.3%의 증가는 앞으로 더욱 더 증가할 것이지 감소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의 측면에서 본다면 이해가 될 것이다. 이번에 세상을 떠들썩하게 1가족 3인의 승용차로 자살한 xx양의 어머니체험학습을 떠나기 전인 지난 20224월과 5월에 한 차례씩 총 2회에 해당 의료기관에서 공황장애, 불면증 등의 이유로 진료를 받고 수면제를 처방받은 것으로 확신이 되었다(2022, 7, 1: 조선일보). 공황장애의 등장은 대인공포증보다 50년전에 먼저 등장을 했다. 대인공포증의 등장은 제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등장하게 된다. 위의 두개의 장애는 그 이전에는 의학계에 등장하지 않았다. 모든 정신장애는 우울증(그리스 시대에 등장)을 제외하고는 산업혁명이후에 등장하게 된다 라는 글을 여러 차례 필자가 블로그에서 소개를 했다. 산업혁명은 농경시대를 산업사회로 변화시켰다. 농민들이 대거 도시로 몰려들면서 도시가 비대해지고, 대가족이 핵가족으로 이사와 이동이 심해지고 자녀의 숫자가 1명혹은 2명으로 줄어들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등장한 것이 정신 장애들이다.

이번 블로그에서는 공황장애에 대해서 이 장애의 등장의 역사적 배경, 공황장애의 특징들 그리고 약물치료로 대증요법(증세만 제거하는 치료 기법: 다음백과)(공황 공격의 증세만 제거하는 치료 기법)으로 등장하게 되어 이후에 재발로 이어지게 된다는 점이다, 고로 근본적으로 그 뿌리를 어떻게 제거하는가? (재발의 제거로 근본적인 치료) 그리고 실제 치료사례를 통해서 14년전에 5년 동안 공황장애로 고통을 받아서 유서까지 서 놓은 37세의 B씨가 치료자에게 16개월의 심리치료 이후 2년이 지나가면서 공황 공격뿐만 아니라 불안을 수반하는 심각한 후유증들심층에 자리잡은 분노와 긴장이 더 이상 등장하지 않았던 치료 사례(추적 연구)를 소개하면서 공장장애의 정신분석 심리치료 소개하고자 한다.

치료자(필자)는 정신장애를 소개할 때 역사적인 면들을 항상 함께 소개를 한다. 그 이유는 정신장애들의 역사적 과정을 이해하면 머리속에 쉽게 저장되기 때문이다(연상의 법칙에 근거). 공황장애는 불안장애에 소속되어져 있다는 것은 위에서 언급을 했다. 불안장애라는 말은 프로이트에 의해서 등장하게 된다. 1896년에 프로이트가 불안 신경증이라는 말로써 의학계에 공식적으로 등장하게 된다(오토 페니첼(Otto Fenichel(1945)의 신경증에 대한 정신분석학적인 이론을 보라).

프로이트는 비엔나 의과대학 신경학과를 8년동안(그때는 5년제) 공부를 하고 4년동안 레지던트를 통과하게 된다 그는 신경학과를 전공했지만 사실은 신경학에 관계된 환자는 한 사람도 치료하지 않았다(Ellenberger, 1970). 그의 스승으로, 후원자로, 동료로, 친구의 역할을 한 비엔나의대 신경학과 출신의 14년 선배인 브로이어(Breuer)의 소개로 히스테리아(그 당시 정신병의 총체적인 이름) 환자인 안나 오(Anna O)라는 여성신체적인 이상이 없는 5개의 증세를 가진(오른쪽 손에 바늘로 찔러도 무감각, 모국어인 독일어를 한번씩 말을 하지 못한다(실어증) 대신에 영어로 말(그녀는 5개국어를 사용할 수 있었다), 오렌지주스를 마실 수 없다(구토와 메스꺼움), 한번씩 눈이 보이지 않는다, 오른 쪽 손이 5개의 머리를 가지 뱀으로 보이환각 증세를 가진 여성으로 그가 8년 동안 공부한 의학의 지식(신체적 이상이 없는)이 무용지물인 것을 알고 브로이어에게 어떻게 치료를 하고 있는가?를 물어 보았을 때 브로이어가 2년 동안 최면으로 치료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마침 그 때 그가 레지던트 4학년 때 의과대학에서 처음으로 3명의 우수한 학생을 선발해서 6개월 해외의 유학을 보내주는 제도에 3명 중의 한 사람으로 선발되어 프로이트가 1885, 10월에 히스테리아의 세계 최고의 치료사인 의과대학 내과 교수이자, 왕의 주치의인으로 최면사인 가르코트(Charcot)에게 최면학을 공부하기 위해서 프랑스의 살페트리에(Salpetriere) 병원으로 약혼자와 함께 유학길에 오르게 된다는 것을 수차례 소개를 했다(프로이트의 삶과 업적으로 프로이트의 전기를 쓴 영국의 신경학자이자 정신분석가로 40년 동안 프로이트를 지근(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모신 어네스트 존(Ernest Jones)의 저서 프로이트의 삼과 업적 제 1(1953), 2(1955), 3(1957)를 보라).

그가 최면을 공부를 해서 브로이어와 함께 1895년에 히스테리아에 대한 연구(Study on hysteria)라는 저서를 출판하게 된다. 여기에서 브로이어가 안나 오를 그리고 프로이트가 4명의 히스테리아 환자를 치료를 한 사례를 발표하게 된다 그런데 프로이트가 치료를 한 4명의 여성환자들 중에서 2명이 최면에 걸리지 않았기 때문에 프로이트가 최면화 유사한 방법으로 카우치에 눕게 하고 손으로 이마를 만지면서 기억이 날 것이다 라는 방법(최초의 방법)으로 머리 속에 떠오르는 생각이나 상상이나 사고 등을 자연스럽게 말을 하도록 하고 프로이트는 카우치 뒤에 의자에 앉아서 환자가 하는 이야기들을 노트를 하면서 무의식에서 감춰져 있는 원인을 찾아가는 방법을 사용한 것이 정신분석의 탄생이 되었다 라는 것은 수차례 소개를 했다.

이후에 프로이트는 최면학을 포기를 하게 된다 왜냐하면 최면에 걸리지 않는 환자에게는 사용할 수가 없는 최면학은 반쪽 치료이기 때문이다(위에서 소개한 공황장애 환자인 B씨 역시 최면치료사에게 최면치료를 받아서 첫 번째는 최면에 걸려서 울부짖으면서 감정이 폭발했다 그런데 두 번째 치료에서 최면에 걸리지 않아서 포기하게 된다는 것을 아래의 치료 사례를 읽어보라).

그 시점에서 히스테리아에 대한 연구들이 수많은 학자들에 의해서 해부되어지고 그것의 실체가 밝혀지게 된다. 특별히 가르코트의 수제자로써 가르코트의 후계자로 계승할 것으로 주목을 받게 된 조셉 바빈스키(Joseph Babinski)히스테리아는 실체가 없는 껍데기로 카타르시스의 효과 뿐이다 라는 연구를 발표하게 된다(Ellenberger, 1970를 보라). 비빈스키는 프랑스에서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가르코트 밑에서 실험실에서 연구를 하고 있었다. 가르코트가 히스테리아는 최면을 걸어서 최면사가 오른 손에 무감각을 명령을 한 후에 최면에서 깨어났을 때 바늘로 찔러도 감각이 없는 실험을 보여주면서(가르코트는 화요일에는 전 세계의 명사들이 모인 대강당에서 치료 시험을 보여주게 된다 그 때 여성 환자를 뒤에서 늘 부축해주는 사람이 바로 바빈스키였다 가르코트의 최면시범 사진 참고)(2022, 7, 2: 위키피아). 고로 가르코트는 히스테리아 = 최면이라고 정의를 했다. 그런데 의과대학 내과 교수로써 괴짜 의사(라보-Liebeault)가 낸시라는 곳에서 이상한 치료를 한다는 것에 호기심에서 라보를 방문하고 나서 그의 제자가 되어 최면학 교과서를 출판하게 된 히포리테 베른헤임(Hippolyte Bernheim)이 낸시 학교를 창설하게 된다. 프랑스가 세계에서 최초로 최면학교들을 설립하고 의학적인 치료를 하게 된다. 베른헤임은 히스테리아와 최면의 무감각은 다르다. 히스테리아는 정신병이고 그리고 최면은 최면사의 제시에 의해서 치료사와 환자의 하나됨의 감각에서 등장한 것으로 두개는 서로 다르다 라는 의견차이로 두사람은 결별하고 제각각 최면학교를 세우게 된다. 가르코트가 세운 학교가 살페트리에 학교 혹은 가르코트 학교(Charcot School) 그리고 베른헤임과 라보가 세운 학교가 낸시 학교(Nancy School)가 된다 이 두 학교가 쌍벽으로 프랑스에서 최면사들을 양성하게 된다.

프로이트가 1885, 10월에 가르코트 학교에 6개월 유학을 했다 그리고 4년 후에 1889년에 베른해임 학교를 방문하게 된다 그 때 베른헤임이 최면을 걸어서 치료를 한 이후에 그 환자에게 실마리를 주면서 기억을 회상하도록 했을 때 그 환자가 하는 것을 보고 기억을 프로이트가 최면에 걸리지 않는 사람을 대상으로 자유연상으로 무의식 속에서 기억을 찾아가는 치료기법을 개발하게 된다(Ellenberger, 1970).

바빈스키는 이후에 가르코트의 이론이 잘못된 것을 지적하고 낸시 학교의 이론이 옳다 라는 것을 발표를 했다. 최면은 최면사의 제시의 결과이고 히스테리아는 정신병이라는 것을 규명하게 된다. 스승에 대한 반론 때문에 가르코트가 죽고 나서 그는 살페트리에 병원의 후계자가 되지 못하고 프랑스로 되돌아가서 신경학 교수가 된다 바빈스키는 신생아들이 발바닥을 간질이는 건강한 어른들은 발바닥을 위로 펴는데 신생아들은 아래로 오므린다 라는 것을 밝혀냈다. 그리고 척추 환자들의 경우에 신생아처럼 발바닥을 아래로 편다 라는 것을 발표를 해서 이것을 바빈스키 반사로 불리게 된다(Ellenberger, 1970).

프로이트는 이러한 연구들과 히스테리아에 대한 최면의 한계점을 인식하고 최면학을 포기하게 된다. 여기에서 정신분석학의 핵심 리비도 이론과 오디프스 콤플렉스가 등장하는 섹스-심리학으로 이어지게 된다. 1905섹스에 대한 3개의 논문이 그 시발점이었다. 이 논문은 프로이트가 쓴 논문들 중에서 가장 애지중지하는 3개의 논문 중에 하나이다. 다른 한 개의 논문은 1900에 나온 꿈들의 해석, 그리고 또 다른 한 개는 고고학, 문화 인류학, 종교학에 관계된 논문으로 1913년에 나온 토템과 터부이다. 섹스에 대한 3개의 논문은 유아 성욕론(오디프스 이론) 그리고 사춘기의 섹스 그리고 변태성욕의 핵심들이 포함된 논문이다(Ernest Jones, 1953).

프로이트와 후계자들은 초반기에 섹스치료에 몰두를 했다. 대표적인 논문이 동성애에 대한 논문이었다. 1911에 독일의 연방대법원의 판사인 다니엘 스케레버(Daniel Schreber)가 정신병원에 2번이나 입원이후에 신경증 질병에 대한 나의 회고록에서 그가 태양에 의해서 여자로 변했다. 무능력한 인간들은 신에 의해서 인간이 모르는 신경언어로 그를 여자로 만들어서 세상을 멸망시키려고 한다라는 편집증 조발성 치매(정신분열증, 조현병)으로 진단받고 나서 그가 쓴 회고록이었다(Tuttman et al., 1982: 주㈜: 참고).

그 책을 읽은 프로이트가 편집증(의심증)원인은 동성애이다 라고 1911년에 발표한 논문은 이후에 동성애와 편집증 연구의 백미(걸작품)이 되었다. 1935년에 미국의 한 어머니가 프로이트에게 섹스에 이상함을 보이는 아들이 치료가 가능한가? 라는 편지의 질문에 대한 답장에서 프로이트가 어머니는 왜 동성애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은유적으로 표현을 하고 있는가? 동성애는 부끄러워해야 할 필요도 없고 치료를 받아야 하는 질병이 아니다, 플라톤,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도 동성애였다 라고 밝히면서 굳지 치료를 원한다면 치료가 가능하니 반드시 비엔나로 와야 한다.

이 편지는 이후에 1970년대 미국의 민권운동에 편성한 동성애자들의 운동에 의해서 동성애는 변태성욕에서 제외시키는 역사적 사건으로 연결된다(Ernest Jones의 프로이트의 삶과 업적, 1(1953, 2(1955). 3(1957)을 보라). 또 한가지는 프로이트가 변태성욕들의 치료 과정에서 변태성욕은 즐거움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치료의 결과가 좋지 않다. 만약에 변태성욕자들이 신경증을 함께 가진 경우에는 치료의 결과가 좋을 수 있다 그 이유는 고통을 수반하게 때문이다. 변태성욕자들은 고통이 아닌 즐거움을 동반하기 때문에 치료가 어렵다 라는 인정으로 이후에 정신분석가들이 섹스신경증에서 불안증의 치료로 방향이 바뀌게 된다(Fenichel, 1945, 주㈜: 참고). 1923년에 원초자아와 ego라는 논문으로 이전의 마음의 위계이론 즉 의식, 전의식, 무의식의 이론이 마음의 구조이론 즉 원초자아, 초자아 그리고 현실적 자아(ego) 이론으로 바뀌게 된다 그 결과로 자아 이론으로 그리고 자아결함 이론들이 속속 등장하게 된다.

프로이트는 평생동안 신경증의 연구에 헌신을 했다 그는 신경증 이외의 장애들을 나르시즘적이기 때문에 심리적 에너지가 너로 향하기 보다 나로, 나의 내면으로 흐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관계가 어렵다 라는 이유로 치료에서 제외시켰다. 즉 심한 성격장애와 정신증(편집증, 조울증, 정신분열증(조현병))은 치료사와 관계가 어렵다. 가우치에 누워서 자유연상이 어렵고 그리고 대화의 기능에 어려움 때문에 전의가 형성되어 지지 않는다고 천명했다 고로 치료가 되지 않으니 정신분석은 신경증에만 국한하다고 강조를 했다. 물론 이후에 그의 제자들에 의해서 특별히 어네스트 심멜(Ernes Simmel)에 의해서 정신병원에 입원한 정신증 환자 즉 정신분열증 환자를 치료하면서 카우치를 사용하지 않고 서로 마주보는 스타일로 그리고 대화 기법의 개발로써 성격장애와 정신분열증 환자의 치료로 확대되어 지게 된다(Stone, 1983: 정신분열증 치료: 정신분석학적인 접근을 보라).

이제 불안장애와 공황장애로 되돌아가 보자. 프로이트는 불안장애불안 신경증으로 불렀다. 그는 불안신경증, 강박행동 신경증(강박사고포함), 전쟁 신경증, 섹스 신경증으로 분류를 해서 그들을 치료를 했다. 이 시점에서 그는 불안의 공격을 받는 정신장애를 불안신경증과 구분을 해서 불안 히스테리아라고 불렀다.

프로이트가 1917년에 불안공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불안 공격은 혼자 있으면 불안하다는 느낌으로 구성되어져 있다(혼자 있지 않으려고 한다) 환자는 그 원인을 모른다, 삶의 소멸 혹은 한 개의 뇌졸중 혹은 미침의 위협에 가깝다. 불안의 느낌은 신체 기능의 한 개 혹은 그 이상의 혼란과 연결되어져 있다. 예를 들어서 호흡곤란, 심장박동이 항진, 혈관운동신경증 혹은 내분비 호르몬활동 등 이러한 혼합 들로부터 그 환자는 지금 또는 다른 요소를 끄집어낸다. 심장의 경련을 불평한다 호흡하기가 어렵다. 땀이 난다. 이러한 환자의 기술 안에서 불안의 느낌들은 종종 뒤의 배경으로 들어가버린다. 프로이트의 불안 공격 바로 공황 공격을 의미한다(Barlow, 1989, 주㈜: 참고).

물론 불안 공격으로 이름을 붙인 불안 히스테리아는 프로이트 이전에 이미 정신의학계에서 등장을 했다.

미국의 남북 전쟁 말기에 1871년에 정신과의사인 군의관 다코스타(Doscosta)군인들이 급증하는 심장박동, 호흡 곤란, 현기증, 졸도 등으로 죽음을 호소, 에너지 고갈 그리고 불면증. 식욕의 상실, 전투의욕의 상실 등을 호소하는 300여명의 군인들을 의학계에 보고를 하면서 그들을 심장이 화가 난 것, 심장이 짜증 것으로 보고를 했다. 이후에 1 차 세계대전에서 유사한 군인들의 증세가 등장하면서 영국의 신경과 의사인 레위스(Lewis)가 그들을 포탄 쇼크라고 이름을 붙였다. 군인들이 포탄에 놀래서 생긴 이상 행동으로 보았다. 이 때 등장한 치료가 전기쇼크 치료였다. 군에서는 비급자로 전쟁을 피하기 위한 꾀병으로 취급을 했다. 프로이트는 이들이 꾀병이 아니고 정신장애로 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로 전쟁신경증 환자로 이름을 붙였다(Barlow,1989, 2001: 공황장애와 공포증1989), 불안과 불안장애(2001)를 보라, 바알로우는 뉴욕주립대학 다운스테이트 의과대학 교수로 뉴욕 불안장애 치료센터 소장이다).

1 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오스트리아에 육군 소위인 한 군인이 전가쇼크로 상처를 받았기 때문에 고소를 한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이 사건의 심리가 열리면서 정신과의사로 처음으로 노벨상을 받은 와그너 쪼레그(Wanger-Jauregg)(프로이트의 비엔나 의과대학 신경과 후배로 그는 치매성 마비의 질병에 말라리아 약물의 접종의 공로로 노벨상을 받았다)가 추천한 전기쇼크와 프로이트가 추천한 정신분석 치료가 도마위에 오르게 된다(상세한 것은 블로그 치료하기 가장 어려운 정신장애를 보라).

이후에 2 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포탄 쇼크는 재등장하게 된다. 미국인 정신과의사로써 프로이트 밑에서 1년간 정신분석을 공부한 아브라함 카디너(Abram Kardiner) 1941년에 전쟁 신경증의 저서를 출판함으로써 전생신경증이 포탄 쇼크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후에 베트남 전쟁으로 전쟁신경증 환자의 연구와 치료가 급 물살을 타게 된다.

영국의 정신과 의사인 로스(Roth, 1959)135명의 환자들의 지각분석으로부터 이 증후군의 이름을 공포증 불안으로 붙이고 불안장애에서 분리시켰다. 여기에서 1972년대에 보스턴 시립병원의 정신과의사인 엔 부르게스(Ann Burgess)와 사회학자인 린다 홀스트롬(Lynda Holmstrom)이 강간을 당한 여성들의 강간 증후군이라는 논문에서 포탄 쇼크와 유사한 증세가 등장한다는 것을 보고를 했다 그 논문에서 강간의 피해자는 불면증, 메스꺼움, 구역질, 놀람 반응, 악몽과 해리, 무감각 증세를 느낀다고 발표했다. 강간의 피해자 증세는 전투 신경증의 증세와 유사 하였다. 이후에 전쟁신경증강간증후군이 함께 합쳐져서 1980년에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traumatic stress syndrome, PTSD))와 그리고 공황장애는 따로 분리되어진다.

공항장애그리스의 덤불의 신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놀라게 해서 심한 경우에는 사람을 죽일 수 있다 라는 (Pan)의 이름을 따서 공황장애(Panic disorder)로 그리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전쟁 신경증과 강간, 자연재난, 사고 등의 상처가 원인된다는 것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공식화되어진 것이다(Herman, 1997. 하버드 의과대학 정신과교수이자 정신분석가인 그녀의 저서, 상처와 회복을 보라).

 이제 불안 장애들 속에 속하는 모든 장애들이 정리가 되었다. 1980년에 DSM-Ⅲ에서 불안장애 속에는 공포증(고공공포증, 폐쇄공포증 등등) 공황장애, 대인공포증, 강박사고 강박행동장애, 광장 공포증(사람들이 붐비는 곳, 넓은 공간을 회피), 그리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6개의 장애를 포함하게 된다. 불안장애가 가장 심각한 장애들을 많이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다. 고로 너무 비대 해져서 2013DSM-에서는 강박사고 강박행동 장애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독립해서 떨어져 나가게 된다. 우울증가벼운 우울증, 심각한 우울증(멜랑꼴리아) 그리고 조증이다(조울증은 우울증과 조증의 혼합), 정신분열증(조현병)균열성 정신분열증, 편집증 정신분열증, 사춘기형 정신분열증, 위에 정신분열증에 소속되지 않는 정신분열증으로 4개로 나눠져 오다가 2013DSM-Ⅴ에서는 정신분열증 하나로 통합되었다. 정신분열증(조현병)은 도파민의 과다로 도파민을 줄이는 약물로써 약 23개의 종류의 약물들이 조현병의 치료약이다(Bernheim, 1979, 정신분열증환자, 원인, 증세들과 치료들을 보라: 주㈜: 참고). 고로 분류에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분리되어진다고 해도 약물을 도파민 감소약물 하나뿐이기 때문에 정신분열증(조현병)으로 통합된 것이었다. 성격장애는 하버드 대학의 컨드슨(Gunderson: 2001: 주㈜: 참고)10년 이상 연구한 성격장애의 연구가 수용되어 1980년에 10개의 성격장애로 분류되어지고 있다 그러나 정신분석학에서 그리고 정신건강 전문가들이 많이 사용하는 성격장애는 보드라인, 나르시즘 그리고 자아분열3가지이기 때문에 나머지들은 잘 사용되어 지지 않는다.

여기에서 불안장애는 6개의 거대한 장애들이 소속되어져 있다. 프로이트는 평생동안 신경증 환자들을 치료하고 연구를 했다. 신경증은 불안증우울증이다. 프로이트는 우울증에 대한 연구 논문은 몇 편뿐이다. 제자인 칼 아브라함이 1911년에 첫 우울증에 대한 정신분석 논문을 발표한 이후 6년 만에 1917에 프로이트가 애도와 멜랑꼴리아의 논문을 발표하게 된다. 샌프란시스코 의과대학의 정신과 교수이자 정신분석가인 토마스 오가덴(Thomas Ogden, 2001)우울증에 대한 지금까지 최고의 걸작품으로 그 논문에서 대상(object)라는 용어가 대상관계의 출발점으로 그리고 상실에서 오는 정상적 애도와 병적인 멜랑꼴리아로 전자는 상실에서 ego가 상처를 받지 않는 대상의 상실로 인한 가벼운 우울증 그리고 후자인 멜랑꼴리아는 상실에서 ego가 상처를 받는 심한 우울증으로 구분하면서 우울증의 심리적 해부를 한 지금까지 등장한 우울증에 최고의 논문으로 평가하고 있다(상세한 것은 필자의 홈 페이지인 정신분석 심리치료에서 우울증과 조증의 치료에 들어가보라).

 이제 공황장애의 특징들과 같은 불안장애 속에 소속되어 있으면서도 다양한 여러 개의 장애들이 서로 어떻게 다른가? 에 초점을 맞춰 보기로 하자.

 공황장애와 다른 5개의 불안장애들은 원인은 다르지만 신체적 증세들은 모두가 거의 비슷하다, 심장이 급발진으로 두근거린다. 호흡이 막힌다. 가슴에 통증으로, 심장마비가 아닌가? 죽음을 느끼게 된다, 식은 땀이 나고 현기증이 나고 메스꺼움과 구토를 느낀다. 어지러움을 느낀다. 심한 경우에는 기절, 졸도가 따라올 수 있다. 내가 아닌 것처럼, 그리고 현실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주변이 이상하게 보인다고 느껴진다. 머리속이 하얗게 느껴지고 순간적으로 기억이 연결되어 지지 않는다, 백지상황이 된다. 무감각, 감각 이상(손과 발 안에서 따끔거림), 죽음의 두려움컨트롤 상실이 특징이다. 다른 불안장애들도 위의 몇 가지만 차이가 있을 뿐 생리적인 증세들을 유사하다.

 차이점들은 공황장애옆에 사람이 있는 경우에 즉 보호자가 있는 경우에 안심이 된다 반대로 대인공포증사람이 없으면 편안해진다. 공황장애의 경우에는 광장 공포증과 함께 오는 경우에는 넓은 공간, 사람들이 붐비는 곳, 식당, 극장, 음악회 등에는 피하려고 한다. 혼란해서 사고가면 밟히거나 질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옆에서 한 두명의 보호자가 있으면, 그리고 약국, 병원이 있을 때는 공황장애가 오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대인공포증은 사람들과 관계가 불편해서 심리적으로 불안해지게 된다. 어떤 모임에서 3시간 이상이 되면 현기증, 고토, 어지러움 등으로 기절, 졸도할 수 있다 고로 사람들을 피하고 혼자 있으려고 한다. 강박사고 강박행동 장애감정에 놀란 사람들이 감정을 억압해서 없애 버리고 모든 것을 사고, 생각으로 전지전능하게 사고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모든 것을 완벽하게 행동하면 불안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병균에 오염으로 손 씻기, 청결의 반복행동 그리고 가스오븐, 창문을 반복해서 체크를 하는 행동으로 나타나게 된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어떤 자극 이벤트에 의해서 과거의 상처들 즉 전쟁의 장면 혹은 강간(성폭행)의 장면들의 재연으로 위와 같은 신체적인 감정적인 증세들에 휩싸이게 된다 예를 들어서 헬리콥터 소리에 벌벌 떨면서 책상 밑으로 숨거나 울거나 호흡 곤란을 일으킨다 과거의 전쟁터에서 경험한 것이 갑자기 등장한 것으로 느낀다 이것을 플레쉬백(flashback)이라고 무른다. 순간적으로 과거의 상처를 지금 현재에서 재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공포증은 높은 곳에 올라간 경우(고공 공포증) 그리고 폐쇄 공포증의 경우에 폐쇄된 공간안에서 호흡이 끊어지고 손과 발이 떨리고 어지럽고 떨리고 주저앉게 된다.

 모든 불안증은 과거의 상처의 경험들이다. 환자들은 그 원인을 모른다 고로 현실적 자아(ego)가 컨트롤을 상실해버리고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른다. 백지상태로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 상처에 항복하고 굴복해버린다. 그 환자의 고통의 그 순간은 공황장애가 가장 심각하다 환자는 생과 사의 삶과 죽음의 문제로 느끼지 때문이다. 대인공포증은 그 순간에 혼자 있으려 사람들을 피해서 도망친다 혼자 있으면 편안하고 문제가 없다, 외로움을 게임 혹은 휴대폰으로 메우게 된다. 광장 공포증, 공포증은 그 장소와 그 대상을 피하면 문제가 없다 그러나 높은 층에 사무를 볼 일이 있을 때는 올라가기가 어렵기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불편 함들이 따른다. 또한 공황장애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큰 어려움이 없기 때문에 직장생활을 잘 한다, 반대로 대인공포증 환자는 직장 생활을 피한다 여러 개의 직장을 옮겨 다닌다. 심한 경우에는 집 안에 걷혀서 외출하지 않고 밤과 낮이 바뀐다. 낯에는 잠을 자고 사람들(가족구성원들)을 패해서 밤에만 활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 외상 후 스트레스와 공포증은 그 대상한 피하면 큰 문제가 없기 때문에 사회생활에는 큰 문제가 없다. 그런데 불안장애의 공통점자아가 연약해서 다른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려고 하고 눈치가 빠르다. 의존적이로 자아 감각이 낮다. 예민하고 눈치가 100단인 사람들이 많다. 자기 주장이 약하다, 자아의 목소리가 없다. 비위를 맞추다가 한계점에 도달하면 관계를 단절하고 원수지간이 된다. 공황장애 환자가 심장이 급발진으로 심장마비의 두려움을 느낀다 그러나 실제 심장마비는 심근경색증으로 관상동맥경화증으로 불리운다. 심장에 혈액을 공급하는 관상동맥이 콜레스테롤에 이해서 좁아져서 심장에 혈액 공급에 이상이 생긴 것이다 고로 심장마비는 과격한 운동과 혈압이 높을 때 증세가 나타나는데 비해서 공황장애의 경우에는 휴식 혈압약화로 현기증과 메스꺼움이 특징이다.

 이제 공황장애의 치료 과정으로 들어가보자. 불안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한다. 원시시대에 구석기 시대 초반기에 인간은 외부의 야생동물로부터 늘 위협을 받았기 때문에 동굴 속에서 생활을 했다. 이후에 구석기 말기에서 신석기 시대로 접어들면서 불과 도구들을 연장으로 사용하게 되면서 동굴 밖으로 물가에서 집단생활을 하게 된다. 자연상태에서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 불안이 경고신호로써 등장하게 된다. 그러나 계몽주의시대와 산업혁명의 시대를 거지면서 야생동물의 위협은 사라졌지만 대신에 인간이 느끼는 위협은 사람들과의 관계로 이동하게 된다. 원시시대의 밀림의 정글산업혁명 이후에 도시의 정글로 바뀌게 된 것이다 그러나 외부 환경적인 변화는 바뀌었지만 신체적인 반응을 바뀌지 않고 남아 있다. 이것이 산업혁명 이후에 불안신경증 그리고 불안 장애로 병적인 치료를 받아야 하는 질병으로 바뀌게 된다(Barlow, 2001, 불안과 불안장애를 보라).

공황장애 환자들 심각한 불안이 누적되어져서 자아가 한계점에 도달했다 라는 증거로 본다. 벼랑 끝에서 선 자아가 도움을 호소하는 울음으로 본다.

신경학적으로 보면 중추신경조직말초신경조직으로 나눠지고 중추신경조직은 뇌신경조직척추신경 조직으로 나눠지고 말초신경 조직은 자율신경 조직뼈 근육신경 조직으로 나눠진다. 자율신경조직은 스스로 자동적으로 작동하는 신경조직으로 심장박동, 호흡, 맥박, 소화기능 등의 작동을 관리한다 뼈근육신경조직은 우리가 마음대로 움직이는 컨트롤하는 신경조직이다. 자율신경조직에는 교감신경조직부교감신경조직으로 나눠진다. 교감신경조직은 위기시에 작동하는 신경조직으로 살아남기 위해서 싸우거나 도망하는 행동이 여기에 포함된다. 부교감신경조직은 휴식으로 에너지 충전을 담당한다. 우리 몸은 교감신경 조직과 부교감 신경조직이 교대로 직장에서 스트레스시에는 교감신경조직이 집에서 휴식과 수면 동안에 부교감신경조직이 교대로 에너지 충전으로 몸을 회복하는 것이다. 정신분석에서는 불안장애는 이러한 리듬의 흐름이 깨어져서 직장에서 그리고 집에서 과도한 긴장과 불안의 연속으로 신체가 휴식을 충분히 가질 수 없기 때문에 에너지 고갈자아가 비명을 지르는 것으로 해석을 한다. 최근의 연구들은 교감신경 조직이 작동하는 위기시에 즉 과도한 스트레스시에는 평소의 혈액이 300배로 빠르게 이동한다는 것을 밝혀냈다(Carren et al., 1996, 몸과 마음과 건강: Acredolee & Goodwyn, 2000: 주㈜: 참고).

대부분이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처방된 양물에 의존하게 된다. 약물은 일시적으로 위협을 완화시켜준다. 잠을 자게 하고 쉬게 하도록 해서 심장박동과 혈압을 낮추게 해서 과도한 자율신경 조직을 완화하려고 하는 것이다. 약물은 병원 입원을 막아주고 위기를 넘기는 데는 도움을 준다 그러나 증세를 완화시켜주는 데는 도움을 주지만 공황의 원인과 근본의 뿌리는 제거해주지 않기 때문에 위기가 지나가면 다시 스트레스가 쌓이게 되고 다시 등장하는 안순환이 반복되는 것이 특징이다. 더 붙여서 공장장애를 가진 환자들은 순간적으로 약물을 복용했기 때문에 인심하고 신경을 쓰지 않게 된다 고로 이것이 실제 약물 그 자체가 신체에 주는 효과보다 단순히 안심하게 된다는 심리적 효과가 약물의 대부분의 효과이다(Barlow, 1989, 공황장애와 공포증을 보라).

대화의 치료는 약물을 사용해서 치료를 하는 것이 아니고 환자와 치료사가 서로 편안한 관계에서 주고받는 치료 동맹상호신뢰와 믿음으로 환자의 내면 속에 상처의 원인을 찾아가는 것이다. 고로 환자가 말을 하게 되면 1 차적으로 긴장이 해소되어진다. 고로 5개월혹은 6개월의 심점에서 긴장과 스트레스의 감소로 공황공격은 완화되어진다 그리고 이것이 치료의 끝은 아니다. Ego가 상실한 컨트롤 능력을 회복시켜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상처의 원인을 분석으로 밝혀내고 그 상처에 직면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상처의 시점까지 누적된 분노와 적대감정을 말로써 표현해서 털어 내야 한다 그리고 자아 감각을 길러서 자신감을 들어 올리고 삶에서 위기 대응 능력을 길러야 한다, 공황 장애 치료는 위에서 기술한 것처럼 복잡다난 하다 고로 시간이 많이 걸린다. 치료자는 6개월 이하의 치료를 수용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이유들 때문이다.

심리치료에서 다루는 과정과 그 치료 과정을 소개한 치료자의 홈페이지에서 2004년에 소개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대화 치료(talking cure)의 효과?

심리치료는 약물 치료가 아닌 대화 치료(talking cure)이다. 대화 치료가 어떤 점에서 효과가 있는가?

환자와 치료자가 서로 마주 보고 앉아서 이야기를 주고받거나 ""자 모양으로 옆에 앉아서 이야기를 해 나가는 대화 치료(talking cure)가 어떤 점에서 효과가 있는가?

 

1. 한 시간 혹은 두 시간 동안에 치료자와 환자가 서로 마주 앉아서 환자가 머리 속에 자주 떠오르는 이야기를 하다가 보면 환자는 그 자신이 스스로 긴장이 이완되어 짐을 본인 스스로는 깨닫지는 못하지만 집에 가서 환자 자신의 신체가 긴장에서 풀려남을 느끼게 된다.

 고등학교 2학년인 아들의 충동적이고 폭력적인 성격 문제로 치료를 받기 위해서 아들을 데리고 치료자에게 온 부모님이 치료자와 아들이 2시간 동안의 인터뷰 분석 상담이 끝난 후에 부모님이 집에 가면서 아들에게 선생님과 어떤 이야기를 했느냐고 물어보았더니 고 2 아들이 "그냥 선생님과 내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라는 말을 듣고 노발대발해서 치료자에게 항의성 전화를 걸어왔다. 부모님은 치료자에게 "선생님에게 치료를 받으러 갔지 선생님에게 이야기를 하러 간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아들에게 물어보니 선생님과 그냥 이야기를 했다고 하는데 그냥 이야기를 할 것 같으면 학교 선생님, 동네 나이 많은 어른들, 교회 목사님 등에게 이야기를 하는 것이나 무엇이 다릅니까? 왜 치료를 해주지 않고 그냥 이야기를 했습니까?" 라는 항의의 전화였다.

 한 아버지가 아들이 군대에 가서 군 복무를 하다가 정신장애로 진단되어 불명예 제대를 하게 되었는데 집으로 돌아오면 심리치료를 받게 하고 싶은데 정말로 심리 치료나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받으면 그의 아들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인지?  전화로 의문을 제기해 왔다.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으러 온 20대 후반의 한 여성은 신경 정신과 의사에게 치료를 받으러 가서 치료 시간에 그녀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다가 그녀의 이야기 도중에 그 신경 정신과 의사 선생님이 그녀의 말을 가로막으면서 그녀에게 "소설을 쓰고 있네----"라는 말에 그만 질겁을 하고 그 다음에 그 신경 정신과 의사 선생님에게 다시 찾아가지 않았다고 치료자에게 실토를 했다.

 위의 사례에서 자녀의 문제 때문에 전화를 한 부모님들과 그 여성 환자와 상담을 한 그 신경 정신과 의사는 공통적으로 환자가 하는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 혹은귀신 씨 나락 까먹는 소리" 혹은 "케케묵은 과거의 상상 혹은 망상 "을 이야기를 하는 것이 그 환자에게 과연 무슨 도움이 될까?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환자의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들을 듣고 한 시간 혹은 두 시간을 앉아 있는 것은 치료자에게도 아까운 시간 낭비가 아닌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그것은 심리치료의 원리를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오해이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이미 심리 치료사, 혹은 정신분석가에게 오게 될 시점에는 머리 속에 너무 많은 생각과 느낌, 지각, 상상 들 속에서 사로 잡혀서 머리가 터져 나가려고 하기 때문에 긴장되고 불안하고 혼란해 있다. 이유는 혼자서 각종 상상, 지각, 생각, 느낌들이 머리 속에 쌓이고 쌓이다가 보면 마음의 에너지는 방출이 되지 않고 머리 속에서 혹은 신체적으로 쌓여서 긴장, 불안, 두려움을 불러 일으키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환자가 치료자와 마주 앉아서 그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1시간 혹은 2시간 동안 싫도록 하게 되면 마음의 에너지가 환자 한데서 치료자 쪽으로 흘러가는 마음의 에너지의 방출 현상이 따라온다. 이것은 실컷 울고 나면 마음이 시원해지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친구나 동료들에게 자신의 억울함을 실컷 이야기를 하고 나면 마음이 후련해 지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환자는 이야기를 하고 있을 그 당시에는 스스로 깨닫지 못하지만 이야기가 끝나고 집에 오게 되면 몸의 긴장이 풀리게 됨을 스스로 느끼게 된다.

 사례 1: 치료자 한데서 2시간 동안 인터뷰 상담을 끝낸 후에 집에 돌아간 어느 여고 2학년 여학생이 치료자와 상담 이후에 집에 가서 3시간 동안 단잠을 자는 것을 보고 부모님은 심리치료의 효과에 대해서 깜짝 놀래서 치료자에게 6개월간 치료 계약을 하겠다고 전화를 걸어왔다. 여고 2학년 딸은 우울증으로 약물을 복용하고서도 깊은 잠을 자지 못해서 부모님이 안달복달을 하고 있었는데 정작 약물을 복용하지 않고서도 단잠을 자는 것을 보고 궁금했던 것이다.

 사례 2: 불면증 때문에 아무리 잠을 자려고 시도를 해도 잠을 자지 못한 한 여대생이 치료자와 2시간동안 치료 상담을 한 이후에 집에 가서 편안하게 잠을 잤다고 신기해 했다. 그녀는 잠을 자기 위해서 줄넘기를 500여회를 하고 몸을 피곤하게 만들면 잠이 올 것이다 라고 생각하고 실험을 해 보았으나 결국은 잠을 자지 못했다고 실토를 했다

 

2. 안절부절 못하는 환자와 마주 앉은 치료자는 환자의 불안에 미동도 하지 않고 태산 같이 안정된 마음과 안전한 치료 세트 안에서 1시간 혹은 2시간 동안 이야기를 하다가 보면 환자도 저절로 치료자에게 동화되어 마음의 안정과 안전을 흡수하게 된다. 환자의 이야기를 듣고 치료자는 환자의 현재의 불안, 두려움, 공포와 공황 등의 원인을 말로써 해석을 해 줄 때 환자는 자신의 문제의 원인과 치료의 방향을 알 게 됨으로써 마음의 안정을 얻게 된다.

 환자가 불안, 두려움, 공포스러운 마음의 소용돌이에 휩쓸리게 된 것은 가족 환경이 절대적 영향을 끼친 것을 환자는 모르고 있다. 가족들 특히 부모님의 혼란, 두려움, 공포가 환자에게 반사되어진 것을 모른다. 자연히 환자는 그의 가족들과 함께 하게 되면 불안, 두려움, 공포와 자아 소멸 위기를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을 모르고 있다.

 치료자는 이러한 환경을 그 환자의 어린 시절의 양육 과정에서 찾아서 분석해서 그 환자가 자신의 문제가 어떻게 형성되어 장애가 되었는가를 알 게 될 때 그의 불안, 공포, 두려움, 자아 소멸, 자아 해체의 위기에서 벗어남을 알 게 된다. 환자는 자신의 정신적인 고통의 원인을 알 게 되면 신체적 긴장이 풀리는 것과 함께 마음의 안정이 따라오게 된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사용하는 약물의 효과는 바로 약물로 긴장된 신체를 이완시키는 것이다. 신체적 긴장이 이완되면 마음 역시 이완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약물이 수면을 유도하기 때문에 신체가 나근해지고 잠이 오고 몸과 마음이 "김장을 하려고 절여 놓은 파와 김치"처럼 에너지가 빠지고 힘이 없어지고 나근해지고 잠이 오게 된다. 잠을 자고 나면 몸이 긴장이 풀리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잠을 깨고 나면 다시 복잡한 생각 때문에 몸이 원래대로 긴장 상태로 되돌아가게 된다. 이유는 생각을 고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걱정, 근심, 염려 걱정은 마음 속에 그대로 있기 때문이다. 고로 신체는 마음의 긴장을 따라가는 것이다. 잠을 깨고 다시 일상의 상태로 되돌아가면 몸은 긴장 상태의 원점으로 회기하는 것이다.

3. 긴장이 풀리게 되면서 기억의 연결이 일어나게 된다. 물론 이런 현상은 치료가 몇 개월로 흘러가면서 나타나는 현상(최소 치료 기간이 6개월 이상)이다. 기억의 회복이 따라온다.

 불안이 감소해서 "긴장이 이완되었을 때 기억력은 최대가 된다" 명언은 유명한 영국의 정신분석학자인 크리스토프 볼라스(Christop Bollas)의 말이다.

 프로이트(Freud)는 이미 100년 전에 불안한 상태가 되면 기억의 연결이 끊어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정신분석 치료의 과정에서 환자를 카우치에 눕게 하고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게 유도를 한 다음에 머리 속에서 떠오르는 생각, 상상, 지각, 느낌, 사고, 아이디어 등을 말로써 표현하게 하였다. 이러한 과정이 바로 긴장이 풀린 상태에서는 기억의 회상이 최대가 된다는 것을 치료에서 사용한 것이다. 이것을 자유 연상(free association)이라고 부른다.

자유 연상이라는 말은 상처를 받아서 끊어진 기억들을 자유롭게 연결시켜서 기억을 회복하는 것을 말한다. 프로이트(Freud)는 사람이 마음의 상처를 받으면 놀래서 그 상처를 기억에서 지워 버린다는 것을 밝혀냈다. 마음의 상처는 기억하지 않으려고 한다. 왜냐하면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기억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기억의 연결을 끊어 버리는 것이다. 고로 기억력이 감소한다. 즉 망각으로 나타난다. 어린 시절에 상처를 많이 받은 사람들은 어린 시절의 기억이 별로 없다는 공통점을 보인다. 불안한 환자들이 아무리 공부를 해도 공부의 성적이 올라가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내려 간다는 것이 이것을 말해준다. 그는 자신의 머리가 나빠지거나 뇌가 손상을 입었다고 생각을 하게 된다. 고로 더욱 더 불안하게 된다. 극도로 심한 심리적 상처는 즉각 그 부분에 대한 기억이 없다. 그 상처 상황을 마음인 자아가 놀래서 바로 기억하지 못하게 연결을 끊어버린 것이다.

 

4. 치료자의 일차 과업은 환자가 이야기를 하게 만들고 환자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다. 환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마음 대로 치료자의 눈치를 보지 않고 표현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과정이 장기화되면서(최소 치료 기간이 6개월 이상을 말한다환자는 자신의 생각, 느낌, 지각, 사고, 아이디어, 상상 등을 표현하는 능력을 기르게 된다.

 대부분의 심리치료를 받으러 오는 사람들은 어린 시절에 너무 착하게 자라나서 부모님의 말을 듣고 그냥 잘 따르는 사람들이 많다.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에 서툴다. 착한 자녀는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듣는 사람이다 라는 어린 시절의 부모님의 말씀에 따른 사람들이 많다.

 부모님은 자녀들이 자신의 생각, 느낌, 지각, 상상, 아이디어 등을 표현을 하게 되면 부모님의 말씀에 토를 단다 혹은 말대꾸를 한다. 부모님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할 것이지 왠 말이 그렇게 많으냐 등으로 자녀들의 입을 막아 버린다. 자녀들의 자기 의사 표현은 말대꾸, 반항적인 태도, 그리고 특히 부모님의 말에 토를 달면 "먹여주고 입혀주고 키워주었드니 이제는 부모님에게 눈을 딱 부라리고 달려들어?"라는 말을 듣게 된다. 고로 자녀들은 입을 다물어 버린다. 자기 표현을 하면 부모님으로부터 처벌을 받게 되기 때문임을 알기 때문이다. 고로 자연스럽게 말로써 표현하는 능력은 저하되기 마련이다.

 요즘의 부모님들은 대부분이 맞벌이로 직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옛날 부모님들보다 자녀들과 이야기를 할 시간이 점점 줄어들어서 대체로 시간이 부족한 부모님들은 자녀들에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등으로 명령적인 대화들이 많다. 자녀들은 자신의 생각, 느낌, 사고, 지각, 상상, 아이디어들을 표현할 시간적인 여유가 없어 자신이 자기 표현, 자기 주장이 줄어든 것이다.

 

5. 환자는 지금까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부모님 조차도 환자 자신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지 않았고 아무도 환자 자신에게 흥미와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치료를 받게 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환자 자신의 문제에 흥미를 가지고 환자 자신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 게 된다. 고로 치료자와 환자 사이에 자연스럽게 신뢰감, 믿음이 생기게 된다. 이것이 이후에 대인관계에서 믿음과 신뢰감을 만들어가는 싹이 된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부모님과 갈등들을 가지고 있다. 부모님이 자녀를 불안하게 믿지 못하는 것처럼 자녀들 역시 부모님을 믿지 못한다. 고로 부모님과 자녀 사이에 불신이 싹트게 되고 이것이 대인관계에서 다른 사람을 믿지 못하는 불신으로 자리잡게 된다. 고로 분석 치료 상담에서는 어린 시절에 양육을 핵심적으로 다룬다.

 치료자와 환자의 이러한 서로 간의 신뢰와 믿음이 치료를 전개해 나가는 핵심적인 연결 끈이 된다. 정신분석학에서 이것을 치료 동맹이라고 부른다. 치료 동맹이 형성되지 않으면 치료가 되지 않는다. 심리 치료는 치료 동맹의 형성에서 시작된다.

 프로이트 밑에서 공부를 한 정신분석 학자로 미국의 하버드 대학에서 종신 교수가 된 에릭슨(Erikson)은 프로이트(Freud)0-1살 사이에 구순기 단계를 어린 시절의 양육에서 부모님과 관계를 접목시켜 믿음 대 불신(trust vs distrust)이 생기는 단계로 이론화 했다대인관계의 신뢰, 믿음의 문제는 0세에서 1세 사이에 엄마와 아기 관계의 상호작용에서 시작된다는 말이다.

 어린 시절의 부모님과 관계는 이후에 어른이 되어서 대인관계의 바탕이 된다는 것이 최근에 인기를 끌고 있는 정신분석에서 대상관계 이론(object relation theory)의 바탕이 되고 있다.

 

6. 환자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치료자는 환자의 이야기를 듣고 그 환자의 어린 시절과 연결을 해서 환자에게 문제의 근본 원인을 분석해서 수정하고 수리하고 고치게 된다.

 

 a. 감정의 패턴을 분석

  환자의 감정 패턴을 분석해서 잘못된 감정 패턴을 수정하게 된다. 치료자는 치료의 과정에서 그 환자의 대인관계를 분석해서 감정이 자연스럽게 잘 흘러가는가를 분석한다. 건강한 사람일수록 한 대상에 대한 긍정적 감정 즉 사랑, 즐거움, 기쁨 등과 부정적 감정 즉 미움, 분노, 적대감정, 슬픔 등을 둘 다 자연스럽게 표현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환자들은 긍정적 감정과 부정적 감정이 쪼개져 있거나 아니면 감정적 자아가 미성숙하게 발달해서 감정 표현이 잘 되지 않고 부정적 감정이 억압, 억제 되어있다.

 어린 시절에 유아기 때는 긍정적 감정과 부정적 감정이 쪼개져서 분리되어 있다. 긍정적 감정과 부정적 감정은 서로 반대가 되는 감정으로 이것을 정신분석학에서는 양가 감정, 양면 감정으로 부른다. 유아들은 어머니에게 사랑과 미움을 함께 표현할 수가 없다. 사랑과 미움은 모순으로 서로 반대되는 감정이다. 고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미움을 표현하는 것은 어린이들에게는 어렵다. 감정을 쪼개서 표현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이것을 정신분석학적인 전문 용어로 쪼갬 방어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서 유아들은 엄마가 자신을 사랑하면 100% 자신을 사랑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다가 엄마가 자신을 처벌하면 100%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미워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감정 표현 방식은 유아기 나이 때는 정상이다. 그러나 3-5세 정도가 되면 이 모순적인 쪼개져 있던 감정이 통합이 된다. 이후에 성숙한 사람은 한 대상에게 사랑을 표현하다가 같은 대상에게 미움과 분노가 표현되어지는 것이 자연스럽게 된다.

 어린 시절에 부모가 어린이들의 부정적 감정을 흡수해주지 못하면, 어린이들의 자기 주장을 수용해서 받아들이지 못하면 양면 감정(긍정적 감정, 부정적인 감정)은 통합되지 못하고 분열된 채로 남게 된다. 특히 성격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이러 감정 분열적인 사람들이 많다.

 어린 시절에 감정적 자아가 고착이 되어 감정적 자아가 자라지 못하고 유아기 상태에 머물어 있는 사람이 어른이 되면 어떤 고통을 경험하게 되는지 또 대인관계에서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를 상세하고 알고 싶은 사람은 다음의 치료 사례의 홈 페이지에 들어가 보세요

 어린 시절에 긍정적 감정 즉 즐거움, 기쁨, 사랑과 부정적 감정 즉 슬픔, 미움, 분노 등의 두 감정 즉 양면 감정이 통 합이 되지 못하고 쪼개져 있는 사람이 어른이 되어서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를 상세하고 알고 싶은 사람은 다음의 홈 페이지에 있는 치료 사례에 들어가 보세요

 

 b. 지각의 패턴을 분석

 환자의 지각 패턴을 분석해서 잘못된 지각 패턴을 수정하게 된다. 우리는 눈으로 보는 것을 있는 그대로 지각하고 수용하는 것도 아니고, 또 내가 본 것이 모두가 객관적이라고 말 할 수 없다, 인간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자신이 보기 싫어하는 것은 보지 못한다. 이것은 프로이트(Freud)가 이미 100년 전에 밝혀낸 마음의 원리이다.

 마음의 보는 눈은 어린 시절에 부모와 관계에서 그 패턴이 형성이 된다. 고로 부모의 보는 시각이 자녀에게 대물림이 된다. 이것은 한 개의 사실이나 사건에 대해서 사람들의 보는 시각이 어떻게 다른가? 하는 것을 설명해준다. 예를 들어서 여당과 야당이 한 사건에 대해서 보는 시각이 완전히 정반대가 되는 것은 이것이 잘 설명해준다. 여당 국회 의원이나 야당 국회 의원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한 고급 엘리트들이다. 그들이 무식한 사람들이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지식인들이 한 이벤트를 보는 시각은 완전히 반대이다. 서로 반대로 본다는 점이다. 이것은 어린 시절에 성장 과정에서 사물을 보는 시각이 고정화된다는 것의 한가지 예이다.

 환자 자신은 아무리 전후좌우를 둘러보아도 자신이 보는 시각이 왜곡되어 있다는 것을 모른다. 이미 자신의 보는 눈이 고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고로 어떻게 보드라도 그 자신이 보는 눈은 그 자신의 보는 관점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다환자 자신은 혼자서 그 자신의 보는 시각을 그 스스로가 바로잡을 수가 없다. 이것이 왜 심리적인 문제는 환자가 혼자서 해결할 수가 없고 치료자가 필요로 하느냐 하는 이유이다.

 

 c. 사고의 패턴을 분석

  치료자는 환자의 생각의 패턴을 분석해서 잘못된 생각을 수정한다. 이것의 대표적인 것이 자기 패배적 사고 방식이다. 자아 처벌적이고 자기 학대적인 사고 방식이다.

 부정적 사고를 가진 사람들은 사회 생활에서 갈등을 더 많이 경험하게 된다. 갈등은 고통을 수반하게 된다. 내면 마음 속에서 원초 자아와 ego 사이에 갈등이나 초자아와 원초 자아 사이에 갈등처럼 내면 마음의 구조들 사이에 갈등 들이 신경증의 원인이 된다고 프로이트(Freud)는 말하고 있다. 너무 처벌적인 부모 밑에서 성장한 자녀들은 초자아가 너무 강하고 처벌적이어서 조그만한 실수도 자기 잘못으로 자기 처벌로 이어지는 것이 그 예이다. 또한 주변 환경과의 관계에서 즉 대인관계에서 외부 대상과의 갈등이 심한 사람들이 성격장애자 들이라고 ego 심리학의 대상관계에서는 말하고 있다. 후자의 사고 패턴을 가진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관계에서 갈등적이어서 직장에서 다툼이나 갈등 때문에 오래 견디지 못하고 이 직장 저 직장으로 옮겨 다니는 사람들이 많다.

 어느 쪽이 든지 간에 갈등 들은 마음의 에너지를 빨아먹는 암적인 존재이다. 갈등이 생기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모든 에너지가 그곳으로 흘러가기 때문에 정작 주의 집중력이 떨어지게 되고 마침내 하는 일에는 신경이 쓰이지 않고 에너지 고갈을 느끼게 된다. 치료자는 부정적 사고 패턴을 긍정적 사고 패턴으로 바꾸도록 도와준다.

  내면의 심리적 구조 안에서 그리고 대인관계에서 부정적 사고 패턴에서 오는 갈등이 자기 패배적인 자아 처벌로 자아 학대로 이어져서 자학이나 자신감의 상실로 이어진 사람의 치료 사례를 상세하게 보고 싶은 사람은 다음의 홈페이지의 사례에 들어가 보세요

 

7. 과거의 상처를 다룬다

  정신분석적 심리치료에서 과거의 상처를 다루는 것은 필수적이다. 이유는 과거의 상처를 다루지 않으면 항상 그 상처를 피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프로이트(Freud)는 우리는 상처받은 것을 피하려고 한다. 이유는 상처는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고로 그 상처와 연결을 끊어 버리고 억압해서 결국은 무의식 속에 넣어 버린다(기억에서 사라지게 한다). 그러나 이후에 어른이 되어서 ego가 약해졌을 때 그 상처와 유사한 상처를 만나게 되면 그 유사한 상처와 그 상처의 힘이 배가 되어 힘(에너지)을 얻게 되어 ego가 연약한 틈으로 밀고 올라오게 된다. 그 환자는 그것을 과거의 상처가 다시 뚫고 나와서 반복되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현재의 문제로만 생각하게 된다. 이것이 신경증의 증세이다 라고 100년 전에 설명을 했다

 우리는 어머니의 태아로 자궁에 있을 때부터 그리고 출생하여 지금까지 부모님과 상호작용의 경험으로부터 그리고 가족들과 동료들과 사회생활에서 오는 모든 경험들이 총합이 되어 우리의 자아(self)를 형성하고 있다. 즉 한마디로 말하면 모든 경험의 통합이 내 자아가 된다. 그러나 상처의 경험은 고통스럽기 때문에 기억 속에서 사라진다. 그리고 상처와 유사한 자극은 피하게 된다. 결국은 과거에 경험한 것들 중에서 상처들의 경험은 경험의 통합에서 제외되게 된다. 나무로 비유를 하면 상처를 받은 것은 죽은 가지 즉 삭정이가 된다는 말이다. 죽은 나무 가지인 삭정이가 많은 나무는 싱싱하지 못하다.

 어린 시절에 상처가 많은 사람은 쉽게 말해서 죽은 경험이 많은 사람이다. 쪼개져서 산산 조각이 나 있는 자아는 전체 자아에서 통합이 되지 못하고 분열이 되어 있. 고로 지금 현재에서 선택하고 판단하고 결정을 하는데 죽은 경험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가 해외 여행이나 배낭 여행이나 다양한 각종 경험을 얻고자 하는 것은 살아가는데 그 경험이 도움이 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그러나 상처 경험은 결국 우리의 의식 속에서 살아가는데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고 죽은 경험으로 무의식 속에 산산조각난 자아들로 묻혀 있어서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이 아니고 이것이 이후에 어린 시절의 상처와 유사한 자극을 받으면 전체의 통합된 자아의 응집력(자아의 연결의 힘)을 저하시키고 그 조각난 자아들이 전면에 등장해서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는 것이다.

 상처의 경험은 우리가 놀랜 경험이다. 즉 그 경험을 다루는 능력이 없다. 고통스럽기 때문에 피하려고 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 상처 경험을 직면하려고 하지 않는다. 상처와 유사한 경험은 모두 그 상처 경험으로 피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 상처 경험을 심리치료의 과정에서 다시 재 경험하게 하고 그 죽은 과거의 경험을 직면하게 하고 그 상처 경험을 마스터할 수 있게 뚫고 나갈 수 있게 한다. 그 때 직면하지 못했던 것을 직면하고 그 때 감정을 표현하지 못한 것들을 표현하게 하고 그 상처를 뚫고 나갈 수 있게 그 상처를 다루게 한다. ego가 다룰 능력이 없었던 것을 다시 다루게 해서 ego의 기능을 배양시킨다. 이후에 그 경험에 자신감을 가지고 그 경험과 유사한 경험을 직면해서 놀래지 않고 잘 컨트롤할 수 있게 한다.

 상처 경험은 고통스럽기 때문에 우리의 자아가 그 상처나 상처와 유사한 자극을 만나면 자아가 놀래서 피하게 된다. 이것은 쉽게 말해서 우리가 놀라게 되고 그 놀람은 긴장을 유발하게 되고 경직됨을 가져와서 심하면 몸이 마비가 되거나 다양한 심인성 질환을 불러 일으킨다

 상처를 직면해서 어떻게 그것을 뚫고 나갈 것인가?를 새로 배우게 된다. 그것을 지금 현재에서 재연해서 그것을 마스터하는 기술을 다시 배우게 된다. 그 상처가 마스터가 되면 그 상처는 그 사람자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오히려 그 그 사람에게 과거의 상처의 경험인 "자아의 부채"에서 지금은 "자아의 자산"으로 바뀌는 것이다. 이후에 통합된 경험에 다시 포함하게 되어진다. 내 자아의 경험은 통합 이전보다 더욱 응집력이 강하고(연결이 잘 되고) 자아의 능력이 증가하게 된다.

8. 자아 관찰 능력을 기른다.

  정신분석 심리치료의 과정에서 어떻게 내 마음이 작동하는가? 하는 것을 배우게 된다. 어떤 자극에 예민하고 어떤 자극에 놀래는가? 그 자극에 놀라서 내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가? 등을 알아 가는 과정이 정신분석 심리치료이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모르고 행동을 하고 있다. 직장 상사와 자주 부딪치거나 동료들과 자주 갈등을 일으키는 사람들은 그 상사나 그 동료가 잘못했기 때문에 갈등이나 문제가 생겼다고만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내 마음 속에서 내 자아가 어떻게 작동을 하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다. 그 상사나 그 동료가 부모님을 닮아 있는 사람인지 혹은 과거에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닮아 있다는 것인지 혹은 내가 싫어하는 내 형제나 자매를 닮아 있다든지 등은 모르고 있다.

그 사람과 내가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고 있는지를 분석해서 내가 반응행동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내가 수정하고 고쳐서 그 사람과 갈등에 걸려들지 않게 하고 내가 피해자가 되지 않게 한다.

 자아를 관찰하는 능력이 쌓이게 되면 다른 사람들과 갈등을 줄이고 그 갈등을 뚫고 나갈 수 있게 된다. 쉽게 말해서 어떻게 나에게 스트레스가 쌓이고 어떻게 방출이 되어지는가를 알 게 된다. 고통을 줄이고 갈등을 줄일 수 있게 된다.

9. 대인관계를 수정한다.

 잘못된 대인관계를 정신분석 심리치료의 과정에서 다시 재연해서 다루고 수정하게 된다. 최근에 선진국에서는 과거의 신경증 환자의 치료에서 21세기에는 성격장애를 다루는 쪽으로 방향이 바뀌고 있다. 성격장애의 특징이 성격에 결함 때문에 대인관계가 갈등을 일으키는 것이 핵심으로 되어있다.

 자녀들의 수가 줄어들고 부모님의 맞벌이가 늘어나고 양육이 엄마의 손을 떠나게 되면서 부모와 자녀들의 상호작용 시간이 줄어들면서 여기에다 어린이들은 각종 공부, 학습에 시달리게 된다. 여기에 기름을 붓는 꼴이 된 것이 컴퓨터 게임의 등장이다. 어린이들이 컴퓨터의 게임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아지게 되면서 인간 관계, 대인관계를 어떻게 하는지를 배우지 못하게 되고 그 어린이들이 어른이 되어서 대인관계를 어떻게 하는지를 습득하지 못하게 된다. 결국은 갈등이 생기면 피하려고 하고 각종 상상, 판타지의 영화, 소설, 게임에 빠지게 된다.

 사회생활이 어려워진 환자들은 반드시 그 내면에 대인관계 문제들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어린 시절에 부모님과 관계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을 본인들은 모르고 있다. 그래서 정신분석적 심리치료에서는 어린 시절에 부모님과 상호작용 관계를 반드시 다룬다. 어린 시절에 양육과 발달을 다룬다. 그 환자가 기억을 할 수 있는 곳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2, 3살에서 시작해서 엄마와 아기와 관계를 다루게 된다. 부모의 잘못된 양육 결함을 수정하고 고치게 된다.

 양육의 결함이 즉 부모와 상호작용의 결함이 성격 결함으로 연결되고 이것이 대인관계에 갈등과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을 분석해서 그 결함을 수정하고 그 문제를 뚫고 해결해 나가는 것이다

10. 커뮤니케이션을 다룬다.

 대화의 패턴을 분석해서 어떻게 커뮤니케이션을 하는가? 를 분석하고 잘못된 커뮤니케이션 즉 의사 소통을 바르게 고친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의사 소통을 하고 있는가를 잘 모르고 있다. 우리의 의사 소통 방식 즉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어린 시절에 부모님과 관계에서 무의식적으로 습득을 한 것이다. 부부 갈등에서 부모님의 대화 패턴을 우리도 모르게 배우게 된다. 갈등이 생기면 서로 그 갈등을 직면해서 말로써 즉 대화로써 그 갈등을 풀어가는가? 혹은 말로써 표현하지 않고 행동으로써 표현을 하고 있는가? 등을 분석한다.

 갈등을 말로써 그 내면에 쌓인 감정을 표현하지 않고 전후 좌우를 생각하지 않고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을 정신분석에서는 acting out이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서 화가 나면 문을 꽝하고 닫아 버리거나, 물건을 던지거나, 고함, 폭언을 사용하거나, 주먹을 휘두르거나, 욕질 부질 하거나 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 것은 말로써 자신의 의사를 정확하게 전달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행동으로 표현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유는 그것이 편하고 쉽기 때문이다. 그러한 행동을 통해서 빨리 내면의 긴장이 나쁜 감정들이 방출되어 지기 때문이다.

 acting out으로 표현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충동적이고 좌절에 참을성이 없어서 대인관계에서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자신의 의사를 정확하게 상대에게 전달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acting out 행동은 일시적으로는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되지만 즉 즉각 분노의 표현 부정적 감정의 방출 등으로 그러나 후유증을 남긴다. 상대에게 마음의 상처를 남기게 되고 이후에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고 자아를 비난하게 된다.

 우리는 흔히 "말로써 통하지 않으면 주먹이 올라간다"라고 말을 한다. 이것은 우리가 말로써 잘 설명이 되지 않으면 고성, 고함, 신체적 폭력, 언어 폭력으로 흘러가기 쉽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미국의 팔로알토(Palo Alto)의 국립 정신 건강 연구소에서 국가에서 특별 연구 자금을 받은 학자들의 그룹이 정신분열증 환자의 가족을 연구한 결과 정신분열증 환자의 가족들은 의사 소통에서 즉 커뮤니케이션에서 이중 구족, 이중 속박 double bind를 사용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의사 소통을 하는 데는 구두어(언어로 표현되는 말)와 표정어(얼굴 표정, 제스처, 몸짓 등)을 사용하는데 이것이 일치되지 않을 때 의사소통에 문제가 생긴다. 내면으로는 불쾌한데 겉으로 말로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을 표현하게 되면 표정어와 구두어가 일치하지 않게 된다. 이런 경우에는 관계가 껄끄럽고 부자연스럽게 된다. 우리는 의사 소통을 할 때 구두어가 30%이고 표정어가 70%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11. 부모로부터 물러 받은 잘못된 생각, 행동, 습관들을 수정하고 고쳐나간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와 상호작용으로 경험한 모든 것들이 머리 속에 입력이 되어서 이것이 통합되어 내 자아가 된다. 부모님도 신이 아닌 이상 장점들과 단점들을 가지고 있다. 부모님으로부터 물러 받은 내가 무의식적으로 습득한 좋지 않는 단점들을 분석해 내서 그것을 걷어내고 수정하고 고쳐 나간다.

 우리는 어른이 되면 "절대로 내 아버지처럼 살지 않을 것이다". "내 어머니처럼 살지 않을 것이다" 라고 다짐을 하면서 자란다. 그러나 내가 어른이 되고 나서 보면 나도 모르게 내 아버지처럼, 내 어머니처럼 행동하고 살고 있음을 발견하게 소스라치게 놀라게 된다.

 우리의 문제들은 대부분의 부모님의 문제들이 투영되고 반사되어진 것임을 부모님도 모르고 자녀들인 우리 자신도 모르고 있다. 고로 심리적 장애들이나 정신적인 문제들은 부모님으로부터 자녀들에게 대물림이 된다는 말이 이것을 표현하고 있는 말이 아닌가!

 한마디로 말해서 부모님은 어떤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다루고 컨트롤해야 할지 어린 시절에 그 부모님의 부모님(할아버지, 할머니)으로부터 배우지 못한 것이다. 컴퓨터로 말하면 경험이 입력되지 않는 것이다. 고로 자녀들을 양육할 때 이것을 무의식적으로 가르쳐줄 수가 없었던 것이다. 환자는 치료자 한데서 치료를 받으면서 이것을 다시 재 경험하고 다시 배우는 것이다

12. 어린 시절에 발달이 중지되거나 발달에 고착이 일어난 부분을 분석해서 그 발달을 재연시키고 그 부분을 다시 성장하게 만들어준다.

 우리의 욕구들 중에서 그 욕구들이 상처를 입어서 그 부분의 욕구들이 그 자리에서 성장을 멈춘 것발달 고착, 발달 중지라고 부른다. 발달 고착은 그 욕구의 부분이 더 이상 성장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어른이 되어서 그 부분이 어린이처럼 미성숙하고 유치해 보이고 현질에 맞지 않는 행동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 욕구를 다루지 않으면 그 욕구를 다루어서 수정하지 않으면 평생동안 가게 된다. 어린 시절인 3-5세 사이에 발달하는 섹스 욕구에 고착이 일어나서 어른이 되어서 섹스 관계에서 어린이처럼 유치한 행동을 반복하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변태성욕자들 아닌가! 

13. 자신의 심리적인 영역을 확보하게 한다.

 자신의 자아를 알고 자신의 심리적인 영역을 침해 당하거나 다른 사람의 심리적 영역을 침해했을 때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가를 알고 자신의 영역을 지키게 한다.

 어린 시절에 부모님으로부터 간섭이나 침투를 당한 사람들은 자치심이 부족하고 의존적인 사람이 된다. 어른이 되어서 항상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게 된다. 이것은 다른 사람 즉 부모와 유사한 사람으로부터 도움을 기대하게 되고 이것이 결국은 자신의 영역을 침해당하도록 만들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자신의 영역이 침해를 당하게 되면 자치심이 손상을 입게 되고 내 의사를 간섭받게 된다. 이러한 부분을 분석해서 수정하고 고쳐 나가게 된다.

14. 자신감을 들어 올린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자신감이다. 어떤 일에 자신감이 있을 때 우리는 그 일을 성공으로 이끌 수 있다. 어떤 일에 불안한 사람은 그 일에 자신감이 약한 사람이다. 하는 일에 자신감이 없으면 그 일에 자신이 없고 불안하다는 뜻이다. 그러한 일은 성공적으로 연결되어 지지 않는다. 이유는 이미 그 일을 할 때 자신감의 부족 즉 불안 때문에 몸과 마음이 긴장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고로 자신의 기량을 100% 발휘할 수가 없게 되기 때문이다.

 문제를 가진 사람들은 대부분이 자신감이 낮다. 자아 존중, 자아 신뢰, 자아 효능감이 낮다. 나아가서 자신감이 낮은 사람들은 자기 비난적이고 자아 처벌적이고 자아 학대적이 되기 쉽다. 모든 것을 자신의 잘못으로 돌리고 자신이 하는 일이 제대로 되지 않게 된다.

 자신감이 낮은 사람들은 대부분이 불안하고 무섭고 두려움 속에서 산다. 세상이 두렵고 무섭고 언제 잡아 먹힐지 모르는 두려움으로 불안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자신감을 길러서 세상을 당차게 자신 만만하게 살아 가도록 도와주는 것이 정신분석 심리치료이다.

15. 자신의 욕구들을 알고 그 욕구를 다룰 수 있고 그 욕구에 빠져서 파멸하지 않도록 하고 그 욕구를 충족시켜 나갈 수 있게 한다.

우리가 욕구들을 잘 알지 못하면 그 욕구에 노예가 되거나 그 욕구에 집착해서 파멸하게 된다. 어린 시절에 어떤 욕구들에 고착이 되어있는지를 알고 그 욕구를 현재에서 충족시키게 하고 그 욕구에 노예가 되지 않게 하고 그 욕구의 집착으로 내 삶을 파멸시키지 않게 한다. 그 욕구를 다룰 줄 알 게 한다.

 우리가 우리의 취약점을 잘 알지 못하면 우리는 언제 그 욕구에 잡아 먹히게 될지 모른다. 잘 나가던 유명 인사들이 하루 아침에 망신을 당하거나 삶을 망치게 되는 것들을 종종 보게 된다. 이것은 어린 시절의 내면의 욕구에 발목이 잡혀서 그 욕구 집착해서 파멸하게 된 사람들이다. 물론 그 당사자인 본인은 그것을 모르고 있다. 자신의 운명이 혹은 하루의 일일 운수가 불길해서 불행을 당한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자아를 몰랐기 때문에 우리의 취약점을 몰랐기 때문에 그 욕구에 발목이 잡힌 것임을 모르고 있다.

 정신분석 심리치료는 내 욕구의 취약점, 내 자아의 헛점, 내 맹점(내가 보지 못하는 것)을 알 게 만들어주고 내 자신이 그 욕구를 다룰 수 있게 한다.

 어린 시절에 부모님 특히 엄마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은 어른이 되어서 그 엄마의 사랑의 욕구에 목을 매게 된다. 결국은 그 욕구 때문에 파멸의 구덩이로 빠지게 된다.

16. 환자는 치료자를 동일시하게 된다. 치료자를 모델로 삼게 되고 자신도 모르게 치료자를 닮아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치료자는 그 환자에게 멘토(mentor)가 된다.

 치료자는 환자보다는 건강한 마음 즉 건강한 자아를 가진 사람이다. 심리적 어려움이 적은 사람이고 대인관계나 사회생활에서 큰 어려움이 없는 사람이다. 어떻게 마음을 다스리고 갈등을 해결하고 내 자신의 자아가 작동하고 있는가를 알고 있는 사람이다. 긍정적인 사고와 삶을 즐겁고 가치 있게 살고 있는 사람이다.

 어린 시절에 자녀들이 부모님을 모델로 닮아가는 것처럼 환자는 이제 치료자를 모델로 치료자의 생각, 행동, 문제 해결 능력, 대인관계 능력 등을 닮아가는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치료자를 닮아 가는 것이다

17. 자기 주장을 할 수 있게 한다.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게 한다.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한다. 나를 찾아서 내 자아를 튼튼하게 해서 내 목소리를 내고 누구 앞에서나 내 주장을 당당하게 펼칠 수 있게 한다.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듣고 토를 달지 않는 자녀는 착한 자녀이다 라는 말들은 농경시대에 적합한 말들이다. 산업 사회 특히 21세기와 같은 후기 산업사회에서는 자기 주장이 강하고 자기 의사 표현이 뚜렷한 사람들을 선호한다. 대 기업에서 사원을 선발할 때 이제는 성적 순으로 공부만 잘하는 사람을 뽑지 않게 된 것은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오래 전의 일이다. 직장 상사에게 상사와 다른 자신의 소신이나 자기 주장을 확고하게 하는 사람들을 선호하고 있다. 그래서 TV 광고에서 "모두가 No라고 해도 Yes라고 할 수 있는 사람, 모두가 Yes라고 해도 No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광고가 이것을 말해주고 있지 않는가!

 이제는 상사의 말에 무조건 Yes라고 대답하는 Yes man 즉 예스 맨들은 뽑지 않는다. 이 예스 맨들이 어린 시절에 부모님의 말에 무조건 복종한 사람들임을 본인들을 모르고 있다. 양육 과정에서 자아가 그렇게 적응을 한 것임을 모르고 있다. 부모님에게 No라고 말을 했을 때 부모님의 처벌을 피하려고 자아가 살아남기 위해서 그렇게 적응을 한 것임을 모르고 있다.

 예스 맨들은 대인관계에서도 상대의 눈치와 비위를 맞추려고 하는 사람들이다. 상대에게 부정적 감정을 이야기를 하면 상대가 자신을 싫어할 것이다 라고 생각해서 상대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상대의 눈치만 보는 사람들이. 이런 사람들은 대인관계가 갈등을 일으키고 관계가 끊어진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이것을 알고 수정하고 고치게 하는 것이 정신분석 심리치료이다. 부모님의 처벌 때문에 부모님의 눈치만 보고 비위를 맞추려고 하는 관계 패턴이 대인관계 특히 이성관계에서 등장한 사람의 치료 사례를 보고 싶은 사람은 다음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세요. 

18. 즐거운 삶, 보람있는 삶, 가치있는 삶을 살 게 도와준다.

 거짓 된 삶에서 벗어나서 참된 삶을 살 게 도와준다. 우리의 삶은 단지 한번 뿐이다. 연습을 할 수도 없고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가서 다시 삶을 새로 시작할 수도 없다. 그러나 지금 여기에서 내 삶의 방향을 바꿀 수 있고 지금부터는 과거와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

 치료자에게 2시간의 인터뷰 분석 상담을 끝낸 한 중학교 2학년 여학생이 치료실을 나가면서 부모님에게 "지금부터 나는 새로 태어난 새 사람으로 살아가겠습니다"라고 이야기를 했다.

 19. 장기적인 심리치료의 과정에서 어깨절림, 복통, 속 쓰림, 소화불량, 만성 설사, 변비 등의 여러 가지 신체적 증세들이 사라진다(이것은 적어도 1년 이상의 치료 시에 해당된다).

 신체적 긴장이 이완되어지면 부수적으로 심인성질환(본태성 고혈압, 신경성 두통과 편두통, 기관지 천식, 류마티스 관절염, 위궤양과 십이지 궤양, 과민성 대장염, 신경성 피부염) 완화가 따라오게 되고 지속적인 치료에서 심인성질환들은 사라진다

 심리치료는 몸과 마음의 치료 전체와 관계한다. 마음의 치료는 몸의 치료가 따라오게 된다. 이유는 몸은 마음이 방향을 정하는 대로 따라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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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치료 사례는 14년 전에 2008년에 치료자에게 5년 동안 공황장애에 시달리면서 유서까지 작성해 놓았던 37세의 고교 교사 B씨의 치료 사례이다. 그는 결혼해서 4살된 아들이 있었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약물치료에 실패, 한의사 한데서 치료를 받았으나 실패 그리고 최면 치료에서 첫 번째는 성공했으나 두 번째 최면에 걸리지 않게 되면서 실패 후에 절망의 벼랑 끝에서 인터넷에서 치료자의 홈 페이지를 보고 심리치료를 요청했다.

아래의 6개월 치료 회기는 증세의 등장 시점과 그 증세의 시작의 원인을 분석으로 찾고 있다. 모든 정신장애는 과거의 상처와 연결되어져 있다. 고로 증세 그 자체만 다루는 방식으로 약물의 복용은 근본적인 치료가 아니다. 심리치료는 약물의 사용을 사용하지 않고 대화 치료이다. 증세의 뿌리를 찾아내서 환자로 하여금 그것을 깨닫게 하고 그 원인을 알게 되면 그 증세는 사라진다 라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치료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그의 공황장애의 증세는 어린시절에 초등학교 5학년 때 할아버지가 암에 걸려서 4년 동안 사망할 때까지 할머니가 할아버지가 가장 사랑을 했던 손자를 할아버지 방에 함께 잠을 자도록 해서 할아버지를 위로하려고 한 것에서 시작이었다 다른 것을 밝혀냈다. 그 당시에 시골에서는 불치병에 진통제를 사용해서 고통을 들어준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이었다.

아래의 치료 과정에서 증세의 등장의 전후좌우 관계, 현재의 증세들의 특징들 그리고 증세들의 흔적들을 서로 연결해서 그 증세의 원인을 어떻게 찾아냈는가? 그리고 그 원인이 증세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를 유의해서 살펴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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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37세의 고등학교 교사인 B씨

증세: 숨이 막혀 질식해서 죽을 것만 같다고 두려움과 공포에 떨고 있음

접촉: 인터넷에서 치료자의 홈페이지를 보고 메일로 치료를 받고 싶다고 치료를 요청해 왔음

진단명: 공황 장애, 불안 장애

치료 기간: 첫 달에는 1주일에 2회씩 1회 당 2시간씩 분석치료를 받다가 3개월 이후부터 1주일에 1회씩 2시간으로 6개월 동안 치료를 받고 있음

치료의 결과: 치료 후에 한번도 공황장애는 나타나지 않았고 치료 6개월째 공황장애는 사라졌다.

 

치료의 과정

 B씨는 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고 있는 37세의 남자로 결혼 5년 정도 되는 사람으로 4살 된 아들을 두고 있었다. 그는 약 3년 전에 공황장애를 가지게 되었다고 했다. 갑자기 머리가 하얗게 아무런 생각이 없어지고 심장이 뻘떡뻘떡 뛰고 숨이 가퍼서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고 손과 발이 파르르 떨리고 다리에 힘이 없어지고 갑자기 주저 앉을 것 같아서 고통스러움을 호소했다. 이미 신경 정신과에 가서 약물을 복용해 보았으나 아무런 효과를 보지 못했고 정신과 의사는 신경성이니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라고 하면서 약물을 처방해 주었으나 효과는 별로 없었다.

이후에 1년 동안 아무리 노력해도 공황 공격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는 평소에 자주 드나들던 한의사에게 가서 한약을 몇 첩 복용해 보았으나 효과를 보지 못했다.

2년 동안 공황 공격에 시달리다가 최근에는 최면 치료를 하는 전문가에게 가서 최면 치료를 받아보았다고 했다. 처음에 최면에 걸려서 어린 시절에 상처를 이야기하면서 죽어가는 자신의 자아 옆에서 자신의 죽음을 보고 있는 절망감을 울면서 하소연하면서 최면 치료사가 자신의 손등을 할퀴어도 좋다는 제시를 받고 B씨가 최면사의 손등을 손톱으로 할퀼 정도로 격렬한 감정 반응을 보인 결과 최면에서 깨어나서 시원하고 마음이 안정되는 것 같아서 기뻐했다고 했다.

그러나 며칠 후에 공황공격은 여전했고 다시 최면 치료를 받아보라는 권고에 두 번째 최면에서는 최면이 걸리지 않고 잠을 자 버리게 되어 실패하고 최면 치료를 포기했다고 했다.

B씨는 점점 공황 공격이 심해지고 빈도수가 잦아지는 것을 느끼면서 절망감 때문에 속수무책으로 안전부절하면서 죽음만 기다리는 형국이 되었다. 어떻게 공황 공격을 피하거나 막을 길이 없다는 절망감 속에서 2년 동안을 죽음과 싸우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그는 치료자의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공황 장애에 대한 환자의 치료를 읽고 나서 치료자에게 메일로 치료를 받고 싶다는 메일을 보내왔고 치료자가 이것을 허용하면서 공황공격의 치료가 시작되었다.

 B씨는 공황 공격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그리고 공황 공격의 진행 과정소상하게 이야기해 달라는 치료자의 요구에 상세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공황 공격은 직장에서 퇴근해 집으로 오면서 자동차 안에서 처음으로 시작되었다고 했다. 처음에는 머리가 쨍하고 편두통이 오는 것 같더니 갑자기 팔다리에 힘이 없어지고 머리가 하얗게 생각이 없어지고 텅 비는 것 같아지면서 손과 발이 떨리면서 마비가 되는 것 같고 심장이 벌떡거리기 시작하고 침이 마르고 호흡이 끊어지는 것 같아서 "아하 이것이 죽는 것이로구나, 이제 나는 죽는가 보다"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간신히 4층에 있는 아파트로 올라와서 거실 소파에 쓰러지면서 부인에게 "이제 나는 죽는다, 내 좀 살려다오"라고 소리치자 부인과 4살된 아들이 놀래서 팔다리를 주무르고 야단을 쳤다고 했다. 조금 있다가 몸이 풀리면서 회복되어져서 이제 살았구나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고 했다. 그러나 이것이 마지막이 아니고 시작이었다고 했다. 그 후에 3년 동안 계속해서 공황공격을 받고 있다고 했다.

치료자는 B씨의 공황 공격이 있기 전에 어떤 기억 나는 이벤트가 있는지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B씨는 공황 공격 한 달 전에 부인의 어머니의 아버지 즉 외조부께서 사망해서 장례식 때 빈소에서 3일간 부인과 자녀와 함께 잠을 자면서 혹시 귀신이 붙지 않을까 두려워했다고 했다. 그리고 첫 공황 공격 시작 반달 전에 장모님께서 병원에 입원을 해서 걱정한 일이 있다고 했다. B씨는 이런 것이 자신의 공황공격에 관계가 있는지 의아해했다. 치료자는 B씨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음을 감지 수 있었다. 외조부의 빈소는 시신이 안치된 곳이 아니고 실제로 조문객들이 많아서 임시로 빈소로 마련한 곳으로 밤에 그곳에서 3일장을 치르는 동안에만 거주를 했다고 했다. 외조부의 죽음에 대한 공포와 장모님의 병원 입원은 죽음과 연결 되어있음을 알 수 있었다. B씨가 보이는 증세는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여서 자아가 컨트롤을 상실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치료가 약 3개월 정도 접어들면서 B씨에 대한 데이터 자료들이 하나씩 수집되어 연결되어져 갔다.

B씨는 죽음과 관계되는 어린 시절의 상처나 고통이 있는지 생각해보라는 치료자의 말에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중학교 1학년 때까지 4년 동안 할아버지의 병환 때문에 할아버지 옆에서 잠을 자면서 느낀 공포 감정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위암으로 불치병으로 죽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가정을 좌지우지했던 할머니는 무슨 이유인지 병원에 입원을 시키지 않고 할아버지를 그대로 죽어가게 방치를 했다. 그 당시에 B씨는 시골의 오지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병원에 입원을 시키거나 진통제로써 고통을 들어준다는 생각은 왜 할머니가 하지 못했는지 알 수가 없다고 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power가 없었고 모든 경제권과 가족의 일상생활을 할머니가 컨트롤을 하고 있었다. B씨는 어린시절부터 부모님과 할아버지 할머니가 함께 한 집에서 살고 있던 () 가족생활을 해 왔다고 했다.

할머니는 미신에 찌든 분으 B씨가 자라면서 귀신이 붙었다면서 대문을 세 번이나 고치고 시골의 초가집의 중추가 되는 상량(초가집이나 기와집에서 서까래들이 서로 맞물려 있는 가운데 핵심 축을 사투리로 상량이라고 부른다)을 뜯어고치는 바람에 비가오면 빗물이 방안에 새는 불편함을 겪어야 했지만 가족들은 불평을 할 수 없었다.

할머니는 B씨를 어린 시절부터 귀여워해서 사랑을 많이 주었다. 여러 명의 형제들 중에서 3번째 손자인 B씨를 가장 똑똑한 손자로 귀여워해서 할아버지가 고통스러운 투병생활에 조금은 위안이 되라고 손자를 할아버지와 할머니 사이에 잠을 가제 한 것이 화근의 뿌리였음 B씨는 모르고 있었다.

 

이론적 근거

 치료가 4개월 정도 지나면서 B씨의 공황 공격의 전모가 하나씩 드러나서 밝혀지게 되었다. B씨는 할아버지가 위암에 걸려서 3년 동안에 죽어가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할아버지의 죽음을 보게 된 것이었다. 할아버지의 죽음을 몸으로 감각으로 느낀 것이 B씨 자신의 죽음으로 지각하고 있다는 것을 분석해 낼 수 있었다.

B씨는 사실은 자신의 죽음을 본 적이 없다. 그러나 할아버지가 죽어가는 모습을 감각으로 느끼고 몸으로 직접 옆에서 체험을 한 것이었다. 사실은 B씨기 지금 지각하고 있는 죽음은 B씨 자신의 죽음 아니고 할아버지의 죽음을 B씨 자신의 죽음으로 대신 느끼고 있는 것을 B씨는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공황 공격이 있기 한달 전에 외조부의 죽음장모님의 병원 입원자극이 되어 B씨의 어린 시절의 상처인 옛날의 할아버지의 죽음을 끄집어 낸 것이었다.

그러면 왜 지금까지는 아무런 공황공격이나 장애가 없다가 하필이면 40세에 가까워지면서 그것이 등장하게 된 것이냐? 하는 의문이 생기게 된다.

이유는 어린 시절의 상처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청년기와 성인기를 지나게 되었고 B씨는 자신감이 높아져서 지금까지 잘 지내 왔으나 자아 감각 즉 직장 생활에서 외부의 스트레스들과 결혼해서 가족들을 부양하느라고 각종 스트레스에 시달리면서 받는 스트레스가 누적되면서 B씨의 자아 감각이 낮아졌다. 자신감이 떨어지면서 자아 즉 ego가 내면에 압력에 견딜 수 없게 되면서 외부의 자극으로 어린 시절의 상처가 들고 표면에 드러난 B씨의 공황장애였다.

공황 공격의 문제가 해결되고 나서 불안 장애 치료를 계속해서 받으면서 이것은 나중에 B씨가 알게 된 것으로 사실은 심한 스트레스와 불안 때문에 B씨의 ego는 위기 상황을 감지하고 이것을 공황 공격으로 신호를 보낸 것임을 알 수 있게 되었다.

B씨는 그 만큼 지금까지 너무나 많은 심리적 짊을 내면에서 지고 있었다. 분노, 적대 감정, 스트레스는 방출되지 않고 쌓여 감에 따라 생리적으로는 이상이 없었지만 심리적으로 벼랑 끝에 선 것을 공황장애가 B씨에게 알려준 것으로 결국 B씨는 치료자를 찾아오게 되었고 문제를 해결할 기회를 얻게 된 것이었다.

 B씨는 치료 1년에 접어들면서 공황 장애를 오히려 감사하게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이유는 만약에 공황 장애를 가지지 않고 계속해서 내면 심리가 그대로 방치되었더라면 B씨는 심장 마비나 뇌출혈과 같은 심인성 질환으로 급사했을 것이라고 스스로 인정을 했다. 그 만큼 불안 장애 치료를 해 가면서 자신의 내면에 너무나 많은 심리적인 짊을 지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후반기 치료에서 불안을 어떻게 줄여 나가고 자아를 어떻게 돌보아 주는가를 배워가고 있다. 여기에서는 초반기 치료에서 공황 공격을 치료하게 된 부분을 중점적으로 다루기로 한다.

치료의 단계

첫 번째 단계: B씨는 치료자의 위와 같은 분석의 설명에 동의를 했다. 그러나 그 원인을 깨닫는 것만으로는 치료가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니다. 먼저 공황 공격 때나 공황 공격이 오려고 할 때 B씨는 자신의 손과 발이 파르르 떨리는 현상에 대한 심층 분석에 들어갔다.

옛날 초등학교 4학년 때 할아버지 옆에서 잠을 잘 때 B씨는 몸을 자주 움직일 수가 없었다. 할아버지가 신음 소리를 내는 것에 괴로워서 B씨가 몸부림을 치면 할아버지가 "복이 나간다" 면서 즉 복이 이불 밖으로 도망을 간다고 하면서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할아버지가 발로 B씨의 몸을 내리눌렀기 때문에 움직이지 못하고 가만히 누워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손과 발이 저리고 나중에는 감각이 없어졌다고 했다. 잠을 잘 때 사람은 근육을 움직이면서 근육을 풀어주어야 한다. 그래서 잠을 자면서 몸부림을 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낮 시간에도 사람은 끊임없이 움직인다. 그래서 근육이 활동을 하는데 몸을 움직이지 않고 있으면 몸이 마비됨을 느끼고 고통스러워진다.

이것은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벌을 줄 때 손을 움직이지 못하게 책이나 노트를 들고 있게 하거나 걸상을 들 게 하거나 꼼짝 못하게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면 고통이 따라오는 데서 볼 수 있다. 물론 B씨가 몸을 전혀 움직이지 않지는 않았을 것이다. 잠이 들면 저절로 움직이게 되어있기 때문에 할아버지나 자신이 잠들 때까지는 의식적으로 몸을 움직이지 않으려고 해서 고통스러웠다는 B씨의 하소연이 그것을 말해준다.

고로 손과 발이 파르르 떨리는 것은 어린 시절에 할아버지가 B씨의 손과 발을 할아버지의 발로 꼭 눌리고 움직이지 못하게 한 것에서 오지 않았느냐? 의 해석에 B씨는 전적으로 동의를 했다. 이후부터는 B씨에게 공황 공격이 오려고 할 때 손과 발이 떨리는 현상은 사라졌다.

두 번째 단계: B씨는 공황 공격이나 심한 불안을 느낄 때면 명치 끝이 아프고 가슴이 저리고 온 몸이 아픈 통증을 느낀다고 했다. 여기에 대한 분석이 시작되었다.

B씨는 할아버지가 고통으로 신음을 하거나 할아버지가 한숨을 쉬면 손자로써 할아버지의 고통을 어떻게 할 수 없어 괴로워했다고 했다. B씨는 하느님에게 기도를 했다고 했다. "하느님 우리 할아버지를 살려주세요. 할아버지의 고통을 내가 대신 받게 해주세요. 할아버지를 살려주시고 나를 대신 데리고 가게 해 주세요!"라고 울면서 마음 속으로 빌었다고 했다. 이것을 3년 동안이나 계속했다고 했다.

잠을 잘 때 할아버지 옆에 누워서 B씨는 할아버지의 고통스러운 느낌들을 자신의 몸으로 감각을 느끼려고 했다 그래서 그 고통을 할아버지 대신에 자신이 대신해서 받으려고 했다. 그래야 할아버지의 고통을 줄여 들일 수 있다고 믿었다. B씨는 감각으로 느끼려고 했고 이것을 마음 속에 지각한 것이었다.

 치료자는 B씨에게 B씨가 느끼는 감각적 고통은 실제로 B씨가 지금 현재에 느끼고 있는 것이 아니고 옛날 할아버지의 죽음을 보면서 느낀 감각이 자신의 감각처럼 느껴지고 있다는 해석에 무릎을 쳤다. 틀림없다는 것이다. 이유는 공황 공격이 있고 나서 가슴이 찌르르 하거나 손과 발이 떨리거나 명치 끝이 아파서 종합 병원에 여러 번가서 검진을 해 보았으나 신체에는 이상이 없다고 했다. 의사들은 신경성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실제로 B씨가 그것을 감각으로 느끼고 있기 때문에 마음 속으로 몸에 이상이 없다고 아무리 자신에게 말을 해도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에 의사들을 원망했다고 했다. B씨는 어떤 사람에게 화가 나서 욕을 할 때 다른 욕보다 "공황장애에 걸려 버려라"고 욕을 하고 싶다고 했다. 공황 장애 환자들이 얼마나 고통속에 살고 있는지는 본인이 아니면 모른다고 푸념을 했다. 이후에 가슴이 찌르르 하거나 명치 끝이 통증이 오거나 하는 증세는 사라졌다.

세 번째 단계: B씨는 공황 공격이 오려고 하거나 왔을 때 심장이 뻘떡거리면서 심하게 뛴다고 했다. 실제로 손을 심장에 가져다 대면 심장이 뻘떡뻘떡 뛴다고 했다. 그래서 죽는 것이 아닌가 두려워한다고 했다. 병원에 가서 심장 검사를 최근에 해 보았으나 이상은 전혀 없다고 했다.

치료자는 B씨가 할아버지가 죽어갈 때의 그 시절로 다시 되돌아가서 할아버지 옆에서 잠을 잘 때 할아버지가 숨을 쉴 때 느낀 것이 있는지 회상해 보라고 했다. 할아버지는 가끔씩 숨을 쉬지 않는 것 같아서 B씨도 숨을 죽이고 할아버지가 죽은 것이 아닌가? 해서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고 했다. 한참 있다가 할아버지가 깊은 숨을 내쉬면 할아버지가 죽지 않았구나 하면서 안심을 한다고 했다.

여기에서 치료자는 B씨에게 할아버지가 숨을 쉬지 않을 때 B씨가 할아버지를 살리기 위해서 자신이 크게 숨을 내쉬면서 자신의 심장 박동을 느끼면서 자신의 심장 박동이 할아버지에게 전달되어서 할아버지가 살아나게 상상이나 느낌으로써 전달하려고 하지 않았는지 물어보았을 때 B씨는 무릎을 쳤다. 틀림없다는 것이다.

할아버지가 숨을 쉬지 않으면 B씨는 할아버지가 죽으면 어떻게 하지 당장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걱정을 많이 했다고 했다. 그래서 자신의 심장 박동 소리를 주의와 관심을 가지고 들었고 자신의 심장 박동이 크게 울려서 할아버지에게 전달이 되어 할아버지의 중지된 심장을 다시 뛰게 하려는 상상을 했다고 했다.

여기에서 B씨는 왜 심장 박동이 뻘떡뻘떡 뛰는 것이 죽음과 관계 있느냐고 의심적으로 질문을 했다. 치료자는 B씨는 무의식적으로 심장 박동을 뻘떡뻘떡 뛰게 해서 할아버지를 B씨 자신의 심장 박동으로 살리려고 한 것인데 본인은 스스로 그것을 죽음으로 연결시킨 것이라고 해석을 했다. 심장이 벌떡거리는 것은 할아버지의 죽음을 보면서 감각을 하게 된 것인데 사실은 그것은 다른 감각과 달리 할아버지를 살리려고 한 자신의 무의식적인 상상에서 온 것임을 알 게 하였다.

이후에 심장 박동이 뛰면 죽음이 아니고 할아버지를 살리려고 한 좋은 현상으로 해석하라는 것에 더 붙여서 사실은 심장이 벌떡거리는 것은 살아있는 증거가 아니냐, 만약 심장이 멈추어 버리면 사람은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 아니냐 고로 심장 박동이 벌떡거리는 것을 살아있음의 증거이지 죽음의 증거가 아님을 깨닫게 했다.

이후부터 B씨의 심장 박동이 벌떡거리는 현상을 사라졌다. 비록 심장이 벌떡거린다고 해도 B씨는 그것을 살아있는 증거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어서 심장 박동을 의식하지 않게 되었고 이후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사실은 B씨는 조그만 놀람에도 심장 박동을 걱정하게 되어 불안해지게 되고 심장 박동을 의식하게 되면서 더욱 문제가 크진 것임을 인정했다.

네 번째 단계: B씨는 공황 공격 때 머리 속이 하얗게 모든 생각들이 지워진다고 두려워했다. 이제 이부분만 제거되면 공황 공격은 해결될 것이라고 기뻐했다. 치료자는 B씨가 자신의 죽음을 보면서 그 순간에 모든 것의 컨트롤을 잃어버리는 현상으로 내 자아인 ego가 죽음에 항복을 한 것으로 해석해 주었다. 죽음이 온다고 생각되어지면 아무런 생각이나 느낌이 들지 않고 어떻게 해약할지를 모르고 머리 속에 하얗게 되어 버린다고 했다.

그것은 자신의 죽음을 보고 스스로 공황 공격에 ego가 항복을 해 버리면서 스스로를 포기하게 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설명을 했다. 즉 사실은 B씨는 자신의 죽음을 본 적이 없다. 왜냐하면 자신의 죽음을 보면 바로 사망이 되기 때문이다. 할아버지의 죽음을 보면서 죽음의 공포에 휩싸이면서 자아인 ego가 스스로 항복을 해 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으로 보았다.

어떻게 그 죽음의 순간을 피할까 하는 생각에 직면하게 되면 그 순간에 ego가 작동을 하는 사람들은 그 순간을 극복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ego가 생각해 내게 되고 위기를 넘길 수 있는데 B씨는 스스로 포기해 버리기 때문에 그 순간에는 아무런 생각이나 상상이나 느낌이 없어지는 것임을 알 게 했다.

고로 B씨가 할아버지의 죽음이지 자신의 죽음이 아니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 것이며 만약 두려움이 오거든 지레 겁을 먹고 항복하거나 포기해서는 안된다. 미리 포기나 항복 현상에서 생기는 것이 머리 속에 하얗게 질리는 것임을 깨닫게 했다. 이후에 이런 현상을 사라졌다.

치료의 결과: B씨는 치료를 시작한지 6개월 정도 되면서 더 이상 공황 공격에 대한 불안이나 두려움을 사라졌다. 치료 7개월째 B씨는 치료가 시작된 후에 한번도 공황 공격을 받은 적이 없고 또 공황 공격이 올 것 같다는 유사한 몇 번의 이벤트들을 분석해서 B씨 자신이 얼마나 불안에 휩싸여 살아왔고 분노와 적대 감정이 내면에 쌓여져 있는지를 깨닫게 되어갔다.

이 증거로써 위에서 치료자에게 한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들은 누구에게도 그 당시에 B씨의 가족들 즉 어머니와 아버지에게도 형제들에게도 결혼 후에 부인에게도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고 했다. 치료자의 권유로 내면에 불안이나 두려움을 쌓아 놓지 말아야 한다는 권유에 B씨는 부인에게 모든 이야기를 털어 놓을 수 있게 되었고 형제들에게도 이런 이야기들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감에 차 있었다.

그는 어린 시절의 그 상처 이외에도 그 이후에 아버지의 뇌 출혈로 인한 죽음 그리고 B씨 자신이 위궤양으로 고생했던 고통들 그리고 특별이 할머니에 대한 분노를 다루면서 자신의 내면에 쌓인 불안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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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씨는 두 번째 6개월의 치료 계약을 했다 그 이유는 내면에 쌓인 불안의 근본문제를 다루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아래의 다시 6개월 즉 1년의 분석 과정에서 공황장애는 더 이상 등장하지 않았지만 죽음의 공포는 계속해서 따라다녔다. 치료의 과정에서 결정적인 죽음에 대한 공포의 실마리는 꿈의 분석을 통해서 찾아낼 수 있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한데서 4명의 자녀들 중에서 B씨가 가장 똑똑했기 때문에 유일하게 xx대학 법과대학을 졸업했다. 대가족의 생활에서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아닌 할머니가 대가족을 좌지우지하게 되었고 할머니의 미신적인 죽음 공포를 동일시한 것이 분석으로 밝혀지게 되었다.

위의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 아래의 6개월의 치료 과정을 소상하게 살펴보기 바란다. 심리치료를 감정만 다루는 것이 아니다. 세부적인 공장장애의 뿌리를 찾아내기 위해서는 조그만 사소한 실머리를 찾아내서 연결해 가는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가? 를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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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37세의 고등학교 교사인 B씨

증세: 가 쓰리고 소화가 잘 안되고 더부룩하고 명치 끝이 아프고 목과 어깨 근육이 절리고 따끔거리고 두통이 있을 때는 머리가 하얗게 변하는 것 같고 호흡이 거칠고 심장이 빨리 뛰어 죽을 것 같다 라고 호소함

접촉: 인터넷에서 치료자의 홈페이지를 보고 메일로 치료를 받고 싶다고 치료를 요청해 왔음

진단명: 일반화된 불안 장애, 공황장애

치료 기간: B씨는 심한 공황장애로 6개월간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은 후에 공황장애는 사라졌으나 죽음 공포증은 사라지지 않고 계속해서 위와 같은 증세 즉 증세 부분에서 언급한 생리적 현상이 사라지지 않아서 다시 6개월간 치료를 계속하게 되었음

치료의 결과: 치료를 시작한지 1년 시점에 죽음 공포증이 다시 등장하지 않았고 또 위가 쓰리고 두통이 잦고 심장이 빨리 뛰고 목과 어깨가 절리고 따끔거리고 현기증이 나서 머리가 하얗게 되는 증세들이 점점 사라지게 되었다. 건강에 점차 자신감을 회복해 가고 있으며 지금은 일상생활 속에서 생기는 스트레스를 주로 다루어 가고 있음

 

치료의 과정

 B씨는 치료자에게 1년 동안 정신분석 치료를 받은 사람으로 1년 동안의 치료의 과정은 공황장애 파트에서 잘 설명 되어있음으로 참고하기 바란다. 공황장애는 치료가 시작된 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으나 계속되는 심한 불안증의 생리적 현상은 사라지지 않아서 계속해서 공황장애가 다시 재발하지 않을까? 해서 불안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치료 1년이 지나가면서 다시 뿌리를 뽑겠다고 6 개월의 치료 기간을 연장했다.

 B씨는 어느 날 치료자에게 자신의 꿈을 가지고 왔다. 그 꿈의 내용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B씨가 어느 상가 집(초상난 집)에 갔는데 영정 사진(죽은 사람의 초상화 사진과 위패가 모셔져있는 곳에)이 두 개가 있었다. B씨는 그 영정 사진을 얼핏 보았는데 한 개는 어른의 영정 사진으로 자신이 잘 모르는 낯선 사람이었고 나머지 다른 한 개의 영정 사진은 어린 소녀의 영정 사진이었다. 영정 사진을 처다보지 않으려고 하는데 그 소녀의 영정 사진에서 어떤 소녀가 나와서 B씨를 잡으려고 따라오기 시작했다. B씨는 비명을 지르면서 도망을 가다가 깨어난 꿈이었다.

꿈에서 깨어나서 시각을 보니 새벽 3시였다. B 씨는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자신이 죽을 것을 예언하는 꿈이 아닌가? 자신을 잡으러 오는 저승 사자가 아닌가? 하는 공포속에서 더 이상 잠을 잘 수가 없었다고 했다. B씨는 생각을 해 보았다.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은지 1년이 지나가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꿈을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 꿈은 저승 사자가 자신을 잡으러 오는 꿈이 아니고 틀림없이 어린 시절에 이 꿈과 연결되는 이벤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꼼꼼히 생각을 하느라고 더 이상 잠을 잘 수 없었다.

 치료실에서 어린 시절에 그 꿈과 연결되는 이벤트가 생각나는지 상상을 연결해보라고 했을 때 B씨는 잠에서 깨어나서 혼자서 생각을 해 보니 중학교 2학년 혹은 3학년 때 쯤에 할머니를 따라서 절에 불공을 드리려고 갔었는데 그 때 그 절에는 소녀의 영정 사진이 있었고 그 때 그 소녀가 예쁜 얼굴이어서 자신과 한번 사귀어보았으면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고 했다. 그 때 B씨는 사춘기의 소년이었다.

그 순간 그 소녀가 귀신이 되어서 자신을 따라다니면 어떻게 할까 하는 두려움이 머리를 스치며 지나갔고 갑자기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죽은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닌 무례를 범한 것 같아서 죄스러운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 생각을 하면서 절 마당으로 나오는데 그 생각에 잠겨서 앞을 보지 않고 큰 느티나무에 머리를 부딪치고 말았다고 했다. 머리 통을 얻어 맞고 나서 B씨는 자신의 부정한 생각 때문에 부처님이 그 생각을 알고 벌을 내린 것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라고 했다.

 B씨는 지금도 나이가 42세인 중년 어른이 되었는데도 상가집에 가면 절대로 영정 사진을 보지 않는다고 했다. 영정 사진을 보면 죽은 귀신이 자신을 따라와서 괴롭힐 것이라고 두려워한다고 했다. 영정에 관계된 상상들을 생각나는 데로 이야기해 보라고 했을 때 B씨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쯤에 같은 동네에 사는 6촌 형님이 동무들과 장난을 치다가 넘어져서 머리를 돌에 부딪쳐서 뇌를 다쳐서 1 6개월 동안 방안에 누워서 말라죽어 가는 모습을 본 것이 생각난다고 했다.

그 외에도 B씨는 중학교 1학년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1년 동안 위패와 영정 사진을 모셔놓은 빈소에서 아침 저녁으로 할아버지에게 밥을 올리는 것을 주로 어머니가 하나가 한번씩 B씨에게 밥을 갖다 놓으라고 심부름을 하면 할아버지의 영정 사진이 겁이나서 쳐다 보지 않으려고 했고 쳐다보면 등골이 오싹하게 두려움과 공포가 밀려왔음을 기억해 내었다.

이후에 1년 후에 탈상을 하고 빈소를 철거한 후에도 할아버지 영정 사진은 창고에 넣어 두었는데 한번씩 창고에 들어갈 때면 할아버지 영정 사진을 보고 놀라는 적이 많았다고 했다. 그 외에도 죽음 공포는 B 씨를 따라다녔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후에 공황장애 공격이 있기 1년 전 시점에 지금부터 약 4년 전에 B씨는 장모님의 아버지 즉 처의 외할아버지의 장례식 때 시신은 다른 곳에 모셔져 있으나 손님 접대 때문에 빈소를 마련한 곳에서 3일간 부인과 4살 아들과 같이 지내는 동안에 귀신이 따라붙지 않을까 두려워한 것을 기억해 냈다. 이후에 고향에서 친척이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었고 1달 후에 공황 공격을 받았다고 했다.

 공황공격을 받고 나서 1년 후에 시골에서 투병 생활을 하시던 할머니가 88세로 세상을 떠났고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위기 시에 몇 번이나 가족들을 불러 모아서 할머니의 죽음을 지켜보도록 호출을 당해서 서울에서 시골까지 8시간씩 자동차를 몰고 다녀온 것들을 기억해냈다.

이론적 근거

 B씨는 어린 시절에 초등학교 4학년 시절부터 암으로 죽어가는 할아버지 옆에서 3년 동안 할아버지의 죽음을 지켜보았고 중학교 2년동안에는 1년간 할아버지 위패가 모셔진 빈소에서 할아버지 영정 사진을 보면서 지냈고 중학교 3학년 쯤에 할머니를 따라서 절에 갔다가 죽은 소녀의 영정 사진을 보았고 또 다시 놀랬다. 고등학교 1학년 때는 6촌 형님이 죽어가는 모습을 본 것을 기억했다. 6촌 형님은 해골이 되어 수염을 깍지도 않고 뼈만 남아서 죽어가던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대학 때는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져 돌아가셨고 결혼 후에 4년 만에 39세의 나이로 처의 외할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석해서 3일 동안 빈소로 마련된 곳에서 B씨 가족이 잠을 자면서 죽은 귀신이 달라붙지 않을까 두려워했고 1달 후에 공황 공격을 받았다. 이후에 1년 동안 정신과 한의원과 최면 치료사 등을 찾아다니면서 자신의 공황장애를 치료하려고 하고 있던 중에 2년 전에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던 것이다. B씨는 지금까지 죽음의 연속에서 죽음 공포증에 휩싸여 살아온 것이 밝혀지게 되었다

 B씨는 위와 같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들을 지금까지 치료자 한데 오기 전까지는 아무에게도 말을 한 적이 없었다고 했다. 가족들 즉 아버지, 어머니 혹은 할머니나 형님이나 동생들 한데도 이러한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다고 했다. 결혼을 한 후에도 부인에게도 이러한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다고 했다.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으면서 그러한 고통과 두려움과 분노, 노여움, 적대 감정들을 가족들 특히 부인에게 하라고 했다. 부인에게 이런 어린 시절의 죽음 공포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하면서 공황 장애는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으나 심한 불안증세들은 감소되어가고 있었으나 계속해서 등장하면서 지금까지 오게된 것이었다.

 B씨의 꿈은 지금까지 1년 동안 B씨가 이야기하지 못했던 것을 다시 밝혀주게 된 것이었다. 치료자는 B씨가 지금까지 1년 동안 치료를 받으면서 치료자에게 그 영정 사진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지 않았으나? 고 했을 때 B씨는 그 꿈이 알려주기 전까지는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다고 했다.

치료가 1년이 지나가면서 B씨는 생리적 긴장이 많이 감소되어갔고 몸이 피곤하거나 조그만 스트레스에 몸이 직접 영향을 받는 현상이 밝혀지고 스트레스를 줄이고 긴장을 풀도록 매일 같이 운동을 해 온 것이 1년 정도 지나가면서 몸의 건강이 많이 회복되어 자신감도 찾아가고 있었으나 죽음에 대한 공포증은 자주 찾아오게 되어 무엇인가 아직도 뿌리가 빠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치료자도 B씨도 동감을 표현하고 계속해 6개월의 심리치료를 더 받기로 한 것이었다.

 B씨의 꿈은 이것을 밝히는 실마리를 제공해준 것이었다. 그 꿈이 있고 나서 B씨가 어린 시절에 잊어 버리고 무의식 속에 억압해 두었던 영정 사진이 등장하면서 어린 시절의 상처 기억들을 다시 다루어 가기 시작했다. 소녀의 영정 사진에서 받은 죽음 공포와 에로틱한 이미지 등을 말로써 표현하게 하고 할아버지 영정 사진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를 말로써 표현하게 하고 그 사촌 형님의 해골이 되어가면서 죽어가는 모습에서 받은 공포적 두려움 등을 말로써 표현하게 되면서 B씨는 죽음 공포증이 사라져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늘 1주일 후에 치료 시간에 오면 그 주일에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면서 조금만 몸이 깨운하지 않고 뻐근하면 내가 죽는 것이 아닌가? 지나가는 장의사 차를 보면 내가 오늘 죽음을 예견하는 것이 아닌가? 조그만 스트레스를 받으면 내가 오늘 죽을지도 모른다, 신문에 사고, 사망 기사들을 보면 오늘 내가 죽을 것이 아닌가? 등등의 죽음 공포증이 영정 사진에 대한 공포증을 이야기하면서 더 이상 B씨의 입에 달고 다니지 않는다는 것을 B씨가 인정을 하고 이제 죽음 공포증이 더 이상 등장하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치료 결과

 치료자는 B씨의 마음 속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증은 어린 시절부터 할머니 한데서 동일시된 것임을 B씨가 알 게 했다. 할머니는 어린 시절부터 5명의 손자들 중에서 B씨가 가장 영리하고 똘똘하다고 칭찬을 많이 했고 B씨는 할머니가 집안을 일으킨 장본인으로써 아버지와 어머니보다도 할머니를 더 존경하고 따랐다. 할머니는 심한 불안증으로 할머니가 죽음 공포증 속에서 살아온 것이 하나씩 치료 과정에서 밝혀졌다. 할머니는 B씨가 어린 시절에 가족들이 아프면 무당을 불러서 굿을 자주 했고 집에 상량(집의 핵심 대들보의 사투리)을 바꾸지 않으면 가족들에게 해가 온다고 몇 번이고 뜯어고쳐서 비가오면 지붕에서 비가 새고 대문을 여러 번 뜯어고쳐서 아버지가 경운기를 운전하다 대문에 부디쳐서 몸에 부상을 입은 적도 있고 할아버지의 죽음 이후에 할아버지가 무덤 옆에 포풀라 나무가 그늘이 져서 저승에서 괴로워한다고 밥중에 B씨를 깨워서 몇 일에 걸쳐서 그 큰 포풀라 나무르 베면서 기차가 기적 소리가 나면 넘어뜨리게 한 것들을 기억했다. 그 중에서도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에 죽음에 대한 공포증 때문에 어머니가 옆을 떠나면 두려워서 어머니를 꽉 붙잡고 다른 데로 가지 말고 할머니 옆에 있게 했다.

몇 일 전에 B씨는 자신이 직장에서 돌아와서 몸이 피곤해서 집에서 쉴 때 죽을 것만 같아서 부인이 운동을 하러 가지 말고 자신이 옆에 있어주었으면 하고 마음 속에서 생각을 했으나 결국은 말을 하지 못했다고 한 것을 치료자가 기억을 하고 B씨가 할머니가 한 행동과 유사함을 지적했을 때 B씨는 이것을 인정했다.

 B 씨는 할머니의 죽음 공포증과 심한 불안증(일반화된 불안장애)를 고스란히 그대로 동일시해서 B씨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음을 알도록 했다. 존경하는 할머니의 마음이 그대로 B씨에게 투사 동일시(할머니가 원하는 대로 B씨가 따라간 것으로 서로 무의식적으로 기대를 하고 그 기대에 부응하게 되는

심리적인 기재를 전문 용어로 투사 동일시라고 한다)를 한 것이었다. B씨는 이제야 할머니가 왜 그렇게 조그만 일에도 안전부절 못하고 늘 무당을 부르고 굿판을 벌리고 몸이 조그만 이상해도 온갖 종류의 약물을 복용했는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할머니의 죽음 공포증과 불안증이 B씨에게 대물림이 된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B씨는 나이가 40대 중반을 지나가는데도 불구하고 마음이 어린아이처럼 여리고 죽음과 두려움 속에 살고 있는 것은 B씨의 마음 속에 있는 어린 시절의 자아 즉 초등학교 시절과 중고등학교 시절의 자아가 두려움과 공포에 질려서 비명을 지르고 있는 것임을 알 게 되었다. 이러한 두려움과 공포를 누구에게도 한마디도 못하고 목이 졸려서 긴장이 한계점이 이르게 된 것이 공황장애였고 지금의 죽음 공포증이 된 것을 깨닫게 되었다.

 B씨는 이제 마음 속에 담아둔 어린 시절의 자아가 밖으로 자신의 느낌과 생각과 상상과 죽음 공포를 토해낼 수 있게 되었다. 부인에게 치료자에게 한 이야기들을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게 되면서 B씨의 생리적으로 쌓인 긴장이 풀어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 증거로써 B씨는 설날 연휴 때 1주일간 시골 고향에 차례를 지내려 갔다가 처가집을 들려서 쉬지 않고 자동차를 운전하고 난 이후에 휴가가 끝났을 때 몸이 아프다 거나 몸에 이상을 호소하지 않았다. 혼자서 시골까지 운전을 8시간씩 왕복으로 하고도 몸에 이상을 느끼지 않고 몸이 건강 해졌음에 안도의 숨을 내쉴 수 있었다.

치료자에게 1년 동안 치료를 받으면서 B씨는 치료 초반기에는 여름 휴가나 설, 명절에 고향에 다녀오면 반드시 1주일 동안 몸의 이상 때문에 후유증을 앓아온 것을 치료자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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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치료 회기는 1년 치료 이후에 B씨가 남아 있는 10%의 불안을 다루기로 하고 6개월 치료 계약을 다시 하게 되었다. 10%의 불안의 핵심은 할머니 밑에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가정부(식모)처럼 살아온 어머니의 고통아버지의 어머니(할머니)에게 분노의 반응행동으로써 청개구리가 된 아버지와 할머니의 힘겨루기 그리고 40대 중반에 사망한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죄의식이 핵심임을 밟혀낼 수 있었다.

16개월의 치료 과정에서 과거에 등장하지 않았는 새로운 폐쇄공포증이 등장하게 된다.

어떻게 폐쇄공포증의 등장의 실마리를 찾아내게 되었는가? 를 유심히 살펴보기를 바란다. 어린시절 동안에 누구에게도 말을 못하고 몸으로 신체적으로 표현해온 감정들이 세 번째 6개월의 치료 과정에서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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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37세의 고등학교 교사인 B씨

증세: 숨이 막혀 질식해서 죽을 것만 같다고 두려움과 공포에 떨고 있음

접촉: 인터넷에서 치료자의 홈페이지를 보고 메일로 치료를 받고 싶다고 치료를 요청해 왔음

진단명: 공황 장애, 불안 장애

치료 기간: 첫 달에는 1주일에 2회씩 1회 당 2시간씩 분석치료를 받다가 3개월 이후부터 1주일에 1회씩 2시간으로 1년 동안 치료를 받고 있었음-- 첫 6개월의 치료의 과정으로 치료Ⅰ에서 소개

아직도 불안이 약 10%정도 남아 있다고 다시 6개월더 치료를 받게 되었음--두 번째 6개월의 치료의 과정으로 치료 Ⅱ로써 소개되고 있다

치료의 결과: 총 치료는 1년 6개월로써 치료 이후에 한번도 공황장애는 나타나지 않았고 치료 6개월째 공황장애는 사라졌다. 10%의 불안의 원인은 밝혀지게 되었다.

이 치료의 과정에서 과거에 등장하지 않았던 새로운 증세인 폐쇄 공포증이 등장하고 심장이 갑자기 뛰거나 머리가 하얗게 되는 증세, 위가 자주 위염이 오는 증세는 년 개월의 치료 이후에 깨끗하게 사라졌다.

 

치료의 과정 

B씨의 공황 공격은 6개월의 치료 후에 거의 사라져 가끔 한번씩 등장할 것 같은 증세를 느낀다고 했으나 다시 재 등장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아직도 머리가 텅 빈 것 같이 하얗게 되고 심장이 두근거리면서 벌떡벌떡 뛰고 호흡이 빨라지고 손과 발이 저리고 위에 자주 위산과다가 생기는 것은 없어지지 않아서 치료는 6개월 더 계속이 되었다. 신체적 증세가 올 때마다 B 씨는 두려워서 자주 약물을 복용하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었다. 죽을까 바서 두려워서 약간만 신체적으로 이상이 오면 과거에 가지고 있던 신경 안정제나 위에 관련된 약물을 자주 복용했다. 치료의 과정에서 약물 복종을 중지시켰다.

폐쇄 공포증의 등장 ---새로운 증세의 발견

B씨는 얼마 후에 현장 학습 참가로 동료들과 함께 봉고차를 타고 가게 되었는데 자리가 없어서 봉고차의 제일 뒷편의 자리에 앉게 되었고 양쪽 옆에 두 사람의 동료가 앉아 꽉 끼여 앉아서 가게 되었다. 처음에는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으나 갑자기 숨이 막힐 것 같아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차를 세우게 하고 자신이 호흡이 멈출 것 같으니까 앞 좌석의 동료와 자리를 바꾸자고 했다. 자리를 바꾼 이후에는 진정이 되었고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때까지도 B씨는 그것에 대해서 별로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그냥 공황장애가 아닌가 의심을 했으나 그러나 그것은 분명히 공황공격과는 달랐다. 공황 공격은 현기증이 나면서 쓰러질 것 같고 의식을 잃을 것 같은 증세로써 늘 익숙해진 증세였으나 이번에는 그냥 숨이 막힐 것 같고 답답해서 가슴이 터지는 것 같아 과거의 공황공격과는 달랐으나 자리를 바꾼 후에는 곧 그 증세가 사라졌기 때문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러나 얼마 후에 교장, 교감, 교무 선생님과 함께 직원들의 저녁 회식 장소에 가면서 교무 선생님이 운전하는 에쿠우스 승용차의 뒷 자리에 앉아서 가게 되었는데 옆에 교감 선생님과 부장 선생님의 사이에 끼어 앉아가게 되었을 때 또 다시 숨이 막힐 것 같고 구역질이 나오려고 하고 가슴이 답답해서 터질 것 같아 어쩔줄 몰라 했으나 동료들에게는 내색을 전혀내지 않고 목적지까지 가느라고 참아야 했다. 다른 일이 없이 무사히 목적지까지 가게 되었으나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두 번째 당하는 고통으로 공황공격과는 분명히 달랐다. 가만히 생각해보았더니 얼마 전에 봉고차를 타고 가면서 가진 증세와 유사함을 알 게 되면서 그것이 폐쇄 공포증이라는 것을 알 게 되었다.

폐쇄공포증의 원인을 찾아서

B씨의 폐쇄 공포증은 과거에는 없었다고 했다. 공황 공격이 사라지면서 최근에 다시 등장한 증세였다. 다시 옛날로 되돌아가서 폐쇄 공포증에 관계되는 상처 경험을 스크린 하면서 어린 시절의 상처 기억이 떠 올랐다.

그가 초등학교 1학년-2학년 시절에 그는 형님과 아버지와 함께 시골에서 지어오던 농사일을 거들어주게 되면서

초여름에 논에 물이 부족해서 물을 끌어오기 위해서 비닐 호스를 도로 밑으로 뚫린 개구멍 크기만한 작은 수로를 논에 연결하기 위해서 이쪽 도로 끝에서 개구멍 크기의 구멍 속으로 비닐 호스를 가지고 들어가서 반대편 도로 쪽으로 가지고 나오라는 아버지의 엄명에 구멍 속으로 비닐 호스를 가지고 기어들어가게 되었다고 했다.

도로 밑으로 뚫린 개구멍 만한 배수로에 기어들어갔으나 중간 쯤에서 갑자기 무서움이 몰려 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구멍의 반대편은 멀리 있는 것 같았고 구멍은 몸을 움직일 수 없이 좁은 통로여서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고 힘이 빠져서 더 이상 나갈 수도 없고 도로 나갈 수도 없어서 두려움에서 울기 시작했다.

아버지와 형님을 부르면서 울기 시작했고 아버지와 형님이 놀래서 다시 도로 되돌아 나오라고 했으나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몸을 다시 돌려서 배수로 위로 쳐다보았으나 천장은 깜깜하고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고 숨이 막히는 것 같고 이제 죽는구나! 라는 생각이 스쳐지나 갔다고 했다.

어떻게 빠져나오게 되었는지는 자신도 모르겠다고 했다.

위의 이러한 어린 시절의 상처가 표면으로 드러나게 되면서 그 상처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재연하게 하였다. 다시 그 장면을 상상해 보라고 했을 때 몸을 부르르 떨면서 두려워했다. 소리를 내서 울거나 그 때 목이 졸린체 마음 속에 남아있는 감정을 토해내게 하면서 B씨는 그 장면을 처음에는 두려워서 직면하지 않으려고 했으나 계속 그 장면의 재등장에 익숙해져 가면서 마음 속에 갇힌 감정들이 빠져나가면서 몸의 안정을 다시 회복할 수 있었다.

이후에 다시 비슷한 상황을 치료실에서 재연해보았다. 치료자가 B씨의 의자에 끼어 앉으면서 몸을 밀착시키면서 다시 폐쇄 공포증과 유사한 증세를 느끼는지 시도를 해보았다. 그리고 폐쇄 공포증은 어린 시절의 배수로에 갇힌 사건에서 오는 것임을 알 게 하고 놀라지 않도록 인식을 하도록 했다. 이후에 그 증세는 다시 재 등장하지 않았다.

머리가 갑자기 하얗게 텅 비는 증세

B씨는 한번씩 갑자기 두통이 오는 것처럼 머리가 아프면서 머리 속의 생각이 텅 비는 것이 느껴지며 이 순간에는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두려워했다. 이부분을 치료하면서 B씨가 평소에 어떤 생각을 많이 하는지를 분석하게 되었다. 그는 늘 생각에 잠긴다고 했다. 생각이 너무 많아서 항상 머리 속이 복잡하다고 했다. 예를 들어 보라고 했더니 신문이나 방송 뉴스에게 어떤 피살자나 사고를 당한 사람들의 사건이 보도될 때마다 자신이 바로 그 피해자처럼 느껴져서 그 피해자가 받았을 고통을 스스로 느껴본다는 것이었다.

몇 개월 전에 젊은 남녀가 데이트로 조그만 고기 잡이 어선을 돈을 주고 빌려서 타고 바다로 나갔다가 그 어선의 주인이 강간자로 돌변해서 그 남자를 바다에 밀어넣어 죽이고 그 여성을 강간한 후에 바다에 떠밀어 살해를 했다는 보도죽은 젊은이들이 물 속에 잠겼을 때 얼마나 답답해 하면서 죽어갔을까? 하고 스스로 생각해 보면서 고통스러워 한다는 것이었다.

어린이 유괴범이 유치원 아동을 유괴해서 돈을 요구하면서 살해한 후에 붙잡힌 사건에서 그 어린이가 숨이 막혀 질식할 순간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하며 스스로 괴로워한다고 했다. B씨는 이것뿐만 아니라 자신이 하루에 적어도 2-3번씩 직장에서 집에 있는 부인에게 전화를 해서 내가 죽을 것 같아서 못 견디겠다고 전화를 해 왔으나 공황 공격이 사라진 이후에는 이제 전화는 하지 않는다고 했다.

결혼 생활 5년 정도 되면서 더 이상 참다 못한 부인이 울면서 B씨의 전화를 받고 고통을 호소하는 것에 너무나 괴로웠다고 했다. 지금도 가끔씩 B씨는 한번씩 몸에 이상이 오는 증세에 고통스러워 하면서 늘 머리 속에는 "죽을지도 모른다" 불안한 생각들이 생기고 자주 "이제 나 죽네"라고 입 밖에 소리가 자신도 모르게 나온다고 했다.

B씨가 치료를 받은 지 약 4개월 정도 되었을 때 부인이 두 번째 자녀인 딸을 출산하게 되었다. 출산 후에 병원에서 신생아가 면역 기능이 없는 것 같으니 몇 주일간 병원에 입원을 해서 면역 기능에 이상이 있는지 체크를 해보자고 한다고 했다. 그 당시에 B씨는 직장에서 건강 종합 검진을 받은 결과가 나왔고 신체적 이상이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했다. 그러나 심장이 갑자기 빨리 뛰고 손발이 저리고 호흡을 하기 어려운 증세가 느껴지는 바람에 병원에 심장, 폐의 정밀 검사를 원했고 검사 결과는 이상이 없다는 결과를 통보받았으나 위에 신체적 증세는 자주 등장을 했고 B씨는 이것이 다시 공황 공격이 오는 것이 아닌가 하고 늘 불안해했다.

B씨는 여름 휴가를 약 2주일간 맞아서 처가 댁과 시골에 있는 부모님 댁에 들리게 되었고 돌아온 후에 신체적 증세가 한동안 조용했던 것들이 다시 재 등장하면서 손발이 떨리고 가슴이 뛰는 증세가 자주 등장한다며 공황 장애의 재발을 염려하고 있었다. 직장에서 부장 선생님이 몸이 아파서 병원에 입원을 3개월간 하는 통에 B씨가 그 부장 선생님의 업무를 대신해서 맡게 되었고 이후에 위가 자주 위염이 생기고 전에 먹고 있던 위장 약물을 자주 복용한다고 했다. 불안을 달고 다니면서 하소연을 했다.

이론적 근거

B씨가 왜 신체적으로는 이상이 없는데 자주 신체적 증세를 호소하는가? 를 분석하면서 치료자는 B씨가 어린 시절부터 할머니가 심한 불안 장애를 가진 사람으로 자녀들에게 불안을 심어 주었음을 알 게 되었다. 지금까지 B씨는 할머니가 집안을 일으킨 구세주처럼 인식 되어있었음을 분석해 낼 수 있었다.

할머니는 B씨의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 가족으로 살면서 몇 년 전에 90세로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할머니는 어머니가 시집을 오면서 귀가 약간 안 들린다는 문제 때문에 어머니를 구박했고 살림은 할머니가 전적으로 책임을 지고 살아왔음이 밝혀졌다.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경제권을 주지 않았고 모든 집안 일들은 할머니가 좌지우지 했다고 했다.

할머니는 손자들을 키우는데 직접 간섭을 해서 정작 B씨의 형제들에게는 어머니는 뒤전으로 밀려나있었고 할머니가 어머니 역할을 했다는 것을 알 게 되었다. 아버지는 끝없이 어머니와 갈등을 일으켰다.

술과 도박을 일삼아서 늘 싸움이 그칠 날이 없었고 할아버지도 할머니에게 꼼짝 못했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농번기가 되면 자주 막걸리를 마시면서 일을 하다가 저녁 때가 되면 술에 취해 마루에 앉아서 손자들에게 "너희 할머니를 찾아오라, 내가 할 말이 있다"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쳤고 모든 식구들이 할아버지를 피해서 동네를 돌면서 할아버지가 잠들기를 기다려 할아버지가 잠이 들면 집안으로 들어와서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잠자리에 들면 11-12시가 되는 일이 빈번했다고 했다.

농한기 때 아버지가 도박과 술로 집을 비우면 할머니는 잠자는 손자들을 깨워서 앞 세우고 아버지가 도박을 하는 장소를 찾아 다녔다고 했다. 어떤 집에서 도박을 하고 있는 아버지를 찾아내면 할머니는 손자를 아버지 방에 내 보내어서 그것을 보게 하고 아버지를 끌어내 오도록 시켰다고 했다. 이런 일들은 늘 B씨가 많이 했다고 했다.

할머니가 늘 불안해서 몸이 아프면 미신을 믿어서 죽은 귀신이 집안을 해코지 한다면서 시골 집의 상량 (나무로 집을 지을 때 서까리들이 한 곳에 모이게 받쳐주는 집의 핵심 뼈대)을 여러번 교체하는 바람에 비만 오면 집에 물이 새던 일집의 대문을 여러번 바꾸는 사람에 아버지가 경운기 운전을 하다가 대문 안으로 들어오다가 교통 사고를 당한일 도 있었다. 할아버지가 위 암에 걸려서 3년 동안 죽어갈 때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병원에 입원시키거나 진통제를 투여하지 않고 죽을 때까지 고통속에서 그대로 내 버려 둔 것은 지금도 이해할 수가 없다고 했다.

아버지는 늘 "우리 집에서 할머니가 먼저 죽어야 한다"면서 입버릇처럼 말했다고 했다. 한번은 집에서 키우던 소를 아버지가 소 시장에서 팔아 돈을 가지고 왔는데 할머니가 소를 매매한 대금이 너무 적다면서 다시 그 돈을 되돌려 주고 소를 찾아오게 해서 아버지를 분노하게 했다고 했다. 할머니는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떤 사람의 설득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당시 아버지의 나이가 40대 중반이었는데도 할머니는 아버지의 자손심이나 권위는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아버지는 그 돈을 되돌려 주고 계약을 파기하고 소를 되찾아 왔다고 했다. 아버지는 망신을 당했고 아버지의 자존심은 먹칠을 한 결과가 되었다.

시골에 살았던 아버지는 동료들과 상조계를 모아서 서로 길, 흉사에 서로돕는 계모임에 가입해있었다. 동료들의 집에 부모들이 사망하면 가서 장례를 도와주는 계모임이었는데 할머니는 죽은 사람 집에 가면 귀신이 붙어 온다면서 아버지를 가지 못하게 했다고 했다. 아버지는 내가 가서 도와주지 않으면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누가 와서 장례식을 도와주겠느냐고 하소연을 했고 동료 계원들에게 배신을 당한다면서 참가하려고 했으나 할머니는 끝내 그 집에 가지 못하게 했고 아버지는 분노해서 술을 마시고 할머니와 싸우는 일이 허다했다했다.

할아버지의 사망 이후에 할머니는 할아버지 무덤 옆에 큰 포플러 나무가 세 그루 있어서 그 나무의 그들이 죽은 할아버지 무덤을 가려서 할아버지가 영혼이 가족들을 해코지한다고 하면서 한 밤중에 잠을 자는 손자인 B씨와 형님을 깨워서 동네 사람들이 모르게 살금살금 그 나무를 밤새도록 톱질을 해서 기차가 지나갈 시간에 그 나무를 넘어뜨리게 했다는 과거의 고통스러움을 호소했다.

B씨는 위로 6살이 많은 형님이 계시고 2살 많은 둘 째 형님이 계시고 2살 아래인 남동생이 있고 2살 아래는 막내 남동생이 있었다.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50대 후반에 뇌출혈과 사망했고 할머니가 할아버지, 아버지가 사망한 후에도 온 가족들을 이래라 저래라 좌지우지 하면서 장수해서 90세가 되어서 3년 전에 사망했다고 했다.

위의 형님과 아래로 3명의 남동생들은 지금도 결혼을 하지 못하고 있고 모두가 불안장애를 가지고 있음이 분석으로 밝혀졌다. 큰 형님은 고등학교 시절에 외지에서 공부를 한다고 집을 떠나 있었기 때문에 할머니의 영향을 비교적 덜 받았음이 밝혀졌다. 큰 형님은 그 당시에 대학에 진학해서 1학년을 다니다가가 자퇴하고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서 지금까지 공무원으로 결혼에서 고향의 인근 도시에서 살고 있고 나머지 형제들은 B씨를 제외하고는 고등학교나 중학교를 겨우 졸업한 정도로 살기가 어려운 형편이었다.

B씨는 중학교 때는 전교에서 일등을 할 정도로 성적이 좋았고 고등학교는 외지에서 집을 나와서 자취를 했다고 했다. 방학 때는 할머니의 등살에 집에 들어가기 싫었고 군 복무 시에는 휴가를 오면 집에 있기 싫어서 아예 책을 싸 들고 도서관에서 공부를 했다고 했다. B씨는 이후에 법대에 진학해서 졸업을 했고 고시 공부를 몇 년 하다가 교사가 되어 지금의 부인과 결혼해서 5살 된 아들과 몇 개월 전에 태어난 딸이 있었다.

치료의 단계

B씨는 어린 시절에 할머니가 가족들에게 심어준 불안함에 짓눌려서 살고 있음을 모르고 있었다. B씨는 치료를 받기 전에 어머니는 자녀들에게 큰 역할을 하지 못했고 아버지에 대한 인식을 대단히 나빠있었다. 도박과 술로 세상을 살아왔고할머니에게 대들고 갈등을 일으키면서 가족들에게 고통만 안겨주었다고 가족 구성원들이 생각하고 있었다. 할머니는 구세주로 우리 가문을 일으켜 세운 사람으로 인식 되어있었다.

어린 시절의 분석의 과정에서 지금 현재의 가족들의 고통들은 모두가 할머니가 만들어낸 것임을 알 게 되면서 B씨의 분노와 적대 감정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할머니에게 늘 학대를 받았고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친정에 어머니 자신의 엄마 장례식에도 갈 수 없었다고 했다. 이후에 B씨가 그 때 5-6세 쯤에 기억이 나는 것은 어머니를 따라서 외할머니 산소에 가서 통곡하고 우는 어머니의 모습을 기억해 냈다.

어머니는 장녀였고 큰 외삼촌이 아버지에게 자신의 누나를 학대하고 시집 살이를 너무 많이 시킨다고 폭행을 한 사건을 기억해 냈다. 가장 가슴 아픈 것은 어머니가 낳은 자식을 자기 자식처럼 키우지 못하고 할머니가 대부분 양육을 했다는 점이었다.

어머니는 대가족들의 빨래와 집안일을 도맡아서 해온 그야 말로 요즈음에 말하는 가정부와 같았다고 회상을 하면서 할머니에게 분기탱천했다. 어머니의 나이가 50대 중반 일 때도 할머니는 어머니가 잘못한다고 어머니의 몸을 꼬집는 할머니를 보고 "왜 엄마를 꼬집습니까? 말로 하세요"라고 항의를 한 적이 여러번 있었다고 회상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B씨의 마음 속에 쌓인 할머니에 대한 분노를 토해내도록 하는데 치료의 초점을 맞추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에서 생활을 하면서 25년 동안에 마음 속에 쌓인 상처를 치료자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한번도 하소연하거나 이야기를 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결혼을 한 후에도 부인에게 조차도 이런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해 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 B씨는 이제 중년기를 들어서고 있었다. 마음 속에 목이 졸려 질식에 있는 어린 시절의 자아를 끄집어 내서 옛날의 그 고통들을 재연하기로 했다.

어린 시절의 고통 속에는 할머니에 대한 극도의 분노들이 쌓여 있었고 그 분노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B씨는 지금까지 할머니가 늘 입버릇처럼 말해오던 "내가 아니었으면 이 집안은 벌써 망했을 것이다."라는 말과 할머니가 시키는 일을 하기 싫어하면 할머니는 늘 "이 일을 하지 않으면 우리 집이 망해도 좋겠느냐?" "너희들이 잘 살 게 하기 위해서 너희들이 복을 받게 하기 위해서 이 일을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기 때문에 거역하거나 싫어하는 내색을 할 수 없었고 또 실제로 할머니가 우리 집의 구세주라고 믿고 지금까지 왔으나 이제 우리 집의 모든 문제는 할머니 때문에 생긴 것임을 알고 노발대발했다.

할머니에게 하고 싶은 말들을 토해내게 했다. 할머니에 대한 분노를 말로써 이야기하도록 했다. 할머니의 불안증이 가족들 모두에게 대물림이 되어 온 가족들이 불안 증세를 보이고 있다고 했다. B씨는 지금까지 그 불안 증세 때문에 중년기 시작되는 시기인데도 죽음 공포에 휩싸여 있음을 알 게 되면서 그 원인이 할머니의 불안증에서 시작된 것임을 알 게 된 것이다.

치료의 결과

 B씨는 가끔씩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목이 뻐근하거나 복부에 통증이 오거나 머리에 두통이 오거나 하는 증세들이 하나씩 사라져가고 있음을 알 게 되었다. 계속해서 토해내는 분노의 감정이 몸에 쌓이 긴장감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직장에서나 가족 구성원들로부터 약간의 스트레스만 받아도 B씨는 신체에 이상이 오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다.

B씨는 어린 시절부터 할머니의 불안증에 대물림이 되었다. 쉽게 말해서 할머니가 불안함을 B씨에게 심어준 것이었다. B씨의 기억에는 어린 시절인 유치원 때부터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는 학교에서 코미디나 개그맨의 기질이 있어서 학급에 행사가 있으면 언제나 B씨가 앞에 나서서 웃기거나 유머로써 학급을 리더해 나가서 동료들로부터 커서 연예인이 될 소질을 타고 났다고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B씨 자신도 커서 연예인이 되겠다고 했을 정도로 외향적 성격이었다. 그러나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B씨는 점점 내성적으로 변해갔다고 회상했다. 원인은 할아버지의 위암으로 인한 할아버지의 죽음을 지켜보면서였다. 할아버지의 죽음을 몸의 감각으로 지각하면서 할아버지의 아픔을 대신하려고 했던 것이다.

고로 B씨의 ego(기능적 자아)는 약해져갔고 내성적으로 변해갔다. B씨는 초등학교 4학년, 5학년, 6학년때 오줌을 싸는 야뇨증이 있었다고 했다. 그 이전에는 야뇨증이 없었다고 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는 돈을 훔치는 도벽 있었다고 했다. 이러한 증세 행동은 B씨가 받은 불안함과 두려움, 공포를 마음 속에 억압해서 목이 졸려 내면에 갇혀 있었던 결과로 나타난 증세임을 이제 B씨도 알 게 되었다.

 B씨는 어른이 된 지금에도 조그만 스트레스를 마음으로 완화시키지 못하고 어린 시절부터 습관화된 행동으로 몸으로 표현하고 있음을 알 게 되었다. 직장에서 조그만 스트레스나 가족 구성원들로부터 또는 형제들 사이에서 오는 조그만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몸이 그것을 표현하고 있음을 알 게 되었다. 목이 뻐끈 하거나 어깨가 저리거나 복통이 오거나 위가 쓰리거나 손발이 절리거나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런 현상들은 몸에 이상이 있기 직전에 있었던 스트레스를 분석해 나가면서 그 스트레스를 몸으로 표현하고 있음을 밝혀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B씨는 일상생활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몸으로 대응해서 몸으로 표현하지 않고 이것을 마음으로 완화 시켜 대처에 나갈 수 있도록 자신감을 높이고 자신이 스트레스를 덜 받게 조정해 나가는 것을 배우게 되면서 점점 신체적 증세들은 감소되어 사라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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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를 해 보자,

 

공황장애(panic disorder)는 증세적으로 호흡곤란, 죽음, ()과 사()의 문턱을 왔다 갔다 하는 삶의 위기감의 느낌 속에서 그 내면의 무의식 속에서는 어떻게 어린시절의 상처들이 뱀처럼 똬리를 틀고 있는가? 를 분석 치료 과정에서 드러난 것을 잘 보기 바란다.

 

B씨의 38년 동안에 심리적 상처들을 잘 들여다보자.

 할머니의 미신적인 대물림의 동일시, 아버지와 어머니의 한 맺힌 고통과 절규들, 그리고 폐쇄 공포증의 현실적인 삶에서 실제 상처들과 이들 자극들이 촉진제가 된 것을 잘 들여다보아야 한다.

 

공황장애 환자는 복잡한 심리적인 그물들이 얼마나 복잡하게 뒤엉켜 있는가?를 풀어 내야 진실로 공황장애의 뿌리를 뽑을 수가 있다 라는 것을 증명해주는 한 개의 성공적인 치료 사례였다. 즉 이러한 상처들이 분석으로 드러나고 그들의 원천을 깨닫고 그리고 그들을 닦아내고 마음의 정화의 단계를 통과해야 한다 그 결과로 그 환자는 심리적 고통속에서 해방되어질 수 있다.

 무의식의 기억 속에서 숨어 있는 과거의 상처들이 터져 나와야 뿌리를 뽑아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공황장애의 정신분석 심리 치료의 핵심, 골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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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 종결 후에 2년이 지나갔다.

 2010 4 19일 저녁 8 50분에 치료자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그 전화의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통화 시간은 05 08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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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치료자): 여보 세요.

P(xxx): 선생님 저 아시겠습니까? 2년 전에 선생님에게 치료를 받았던 XXX 입니다.

T: 내 기억이 납니다. 그 동안 어떻게 지냈습니까?

P: 선생님은 과연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명의(名醫) 십니다.

T: 고맙습니다.

P: 저는 치료 종결 이후 2년 동안 공황 장애는 없었습니다. 지금은 그 당시에 제가 가지고 있던 여러 가지 증세들도 사라졌습니다. 약간 불안 함이 있기는 하지만 모두가 가지고 있는 정도의 불안으로 걱정이 되지는 않습니다.

T: 축하합니다.

P: 선생님에게 인사가 늦어서 죄송합니다. 언젠가는 선생님에게 술 한잔을 대접하고 싶습니다.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T: 그 때 태어난 따님은 잘 자라고 있나요?

P: , 벌써 4살이 되었습니다. 이제 조금 있으면 새로 청약한 아파트에 들어가게 됩니다.

T: 전화 주어서 고맙습니다.

P: 선생님이 책을 쓰신다고 늘 말을 해 왔었는데 그 책이 지금 나왔습니까?

T: 그 후에 정리된 내용들을 "정신분석"이라는 홈페이지를 한개 만들어 올려 놓았습니다.  그러나 제본된 책은 아직 쓰지 않고 있습니다.

P: 선생님의 책이 나오면 꼭 연락 주세요.

T: 그렇게 하겠습니다.

P: 선생님 만수무강하십시요. 또 시간 있으면 전화 드리겠습니다.

T: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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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 종결 후에 2년이 지나갔다. 그는 이제 공황 장애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것을 확인을 할 수 있었다. 2년 동안에 불안증의 재발은 없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치료자는 그 당시에 그가 고통스러워 하면서 치료자에게 왔던 초반기 치료 시절을 회상하면서 삶에서 정신 의학을 공부한 보람을 느낄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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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참고

페니첼(Fenichel, 1945). 신경증의 정신분석학적인 이론

엘렌베르그(Ellenberger, 1970). 역동적 정신의학의 진화와 발달: 무의식의 역사

에네스트 존(Ernest Jones). 프로이트의 삶과 업적: 제Ⅰ권(1953), 제Ⅱ권(1955), 제Ⅲ권(1957)

듀트맨(Tuttman et al., 1981). 대상과 자아

바알로우(Barlow), 불안과 불안장애(2001), 공황장애와 공포증(1989)

허만(Herman, 1997). 상처와 회복

건드선(Gunderson). 치료되는 자아(보드라인 환자의 치료 효과)(1989), 보드라인 환자의 치료 안내(1994), 보드라인 성격장애(1984), 보드라인 환자의 치료 안내서(2001)

오가덴(Ogden). 투사동일시의 치료 기법(1982), 마음의 모체(1986), 경험의 원시적 끝지점(1989), 분석의 주체(1994), 몽상과 해석(1987), 꿈 원천에서 대화(2001), 정신분석과 예술(2005)

아크돌레와 굳윈(Acredolee & Goodwyn, 2000). 유아의 마음

카렌(Carren et al., 1996). 몸과 마음과 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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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naver.com/psychclinic/222828026931

 

위의 저서들은 우리나라 말로 번역되어져 있으니 치료사의 페이지에 있는 전문서적 안내에 들어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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