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분석에 대해서

 

몇 년 전에 영화의 메카인 할리우드의 디즈니랜드사의 영화 감독인 피터 닥터(Peter Docter)가 자신의 딸의 비행행동을 영화로 만들겠다고 결심(2015)을 하고 버클리대학의 뇌 과학자들의 자문을 얻어서 5년의 계획으로 치밀한 준비를 해서 만든 영화 인사이드 아웃(Inside Out)(2020, 12, 5: 위키피아)이 우리나라에서 개봉 후에 300만 관객(중앙일보, 2015, 7, 25)을 동원했다 그리고 정신병환자의 미친 이야기, 조크(Joker) 영화2019, 10, 2에 개봉 후 28일 만에 우리나라에서 520만 관객을 동원했다는 언론과 TV 매체들의 보고가 있었다(osen, 하수정, 2019, 11, 6) 라는 사실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인간의 마음 즉 심리학 특별히 정신분석에 그리고 정신병에 대해서 우리나라 사람들의 흥미와 관심의 증가를 보여주고 있다는 의미에서 무척 고무적인 일이다.

인사이드 아웃은 뇌 안의 컨트롤 센트에서 5개의 감정들이 의인화 되어 뇌 속에서 그들의 행동과 실제 외부의 행동을 서로 연결해서 인간의 마음과 행동을 설명하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 만화 영화로 정신분석학자들의 자문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아니뇌와 신경과학자들의 자문을 얻어서 만들어진 영화이다 라는 점을 필자가 강조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

이 영화가 뇌와 신경 조직(뇌의 컨트롤 센트구슬들이 염주모양으로 연결되고 단절되는 신경조직) 그리고 행동을 연결해서 기쁨, 슬픔, 분노, 두려움, 역겨움(싫어함) 5개의 감정과 인간의 행동을 연결해서 설명한 영화로써 인간의 마음을 의인화로 설명하고 있는 독특한 애니메이션 영화로 남녀노소가 함께 시청할 수 있는 특별한 영화로써 치료자(필자)에게 치료를 받으러 오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이 영화를 온 가족이 함께 보고 오도록 권장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인간의 마음과 행동에 대한 이야기는 1923년에 프로이트(Freud) ego와 원초자아라는 논문으로 인간의 마음을 3개로 의인화 시켜서 3 마리의 말()이 마차()를 끌고 가는 삼두마차(자동차가 대량생산이 시작된 것은 1930년 이후, 자동차의 역사 참고(2020, 12, 5: 위키피아)라는 상징어로 인간의 마음을 타고나는 원초자아(욕구) 그리고 초자아(양심) 그리고 현실적 자아(ego)의인화로써 설명한 것이 100년이 지난 오늘 날에 뇌 과학자들에 의해서 증명이 되고 있고 그리고 전 세계의 사람들에 의해서 인구에 회자(널리퍼짐)되고 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치료자(필자)가 미국에 유학(1982,8, 3)을 간 것은 정신분석학을 공부하려고 간 것이 아니고 심리치료학정신 이상(정신병)을 공부하려고 간 것이었다. 4년 동안 대학에서 심리학을 그리고 2년 동안 대학원에서 가족 치료를 공부하고 귀국해서 2년간 대학 학생생활연구소(부산교육대학)에서 카운슬러로 2년간 대학생들을 상담하면서 이론으로 배운 것을 실습으로 무장(그 때 치료 사례의 연구 논문 3 , 한국심리학회지 제2권 제1(1989.pp. 105-118), 한국가족치료학회지 제3(1995,pp. 85-117) 그리고 부산시중고교 상담교사를 위한 연수자료집(1995,pp. 58-75) 논문집에 실려있다)을 하면서 인턴시험을 위한 준비를 단단히 했다. 다행히도 L.A.캘리포니아 가족 치료 학교(California Family Study Center)에서 20명의 인턴 모집에 응시해서 합격해서 2년 동안 인턴십 과정을 완료했다. 고로 4년의 심리학 그리고 6년의 가족 치료10년 동안 심리치료를 연구하고 공부한 후에 정신분석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왜 내가 심리치료 즉 가족 치료로부터 정신분석 쪽으로 방향을 돌리게 되었는가? 그리고 지금까지 28년 동( 38년의 경력 가운데 10년의 심리학과 가족치료를 제외: 지금 필자는 72) 정신분석을 연구하고 공부하고 치료를 하면서 정신분석이라는 학문과 치료가 참으로 어려운가를 절감하고 있다, 치료자의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정신분석 치료에 대한 흐름들과 그리고 미국 전역에 정신분석학교의 분포와 그 학교의 저명한 대학 교수들과 그들의 저서들 그리고 전 세계의 정신분석에 대한 관심과 정보를 제공하고 하는 것이 이 블로그의 핵심 주제이다.

치료자의 이러한 정보는 어떤 한 권의 책을 보고 알게 된 것이 아니고 분석가들의 저서들을 읽고 조금씩 알게 된 정보를 종합한 것으로써 정보가 정확하다라고 담보할 수 없다. 그러나 내 발자국을 따라오는 후배들에게 정신분석을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은 도움을 주고자 하는 마음에서 이다.

치료자(필자)가 미국 유학을 갈 때 정신분석에 대한 지식은 프로이트, 무의식 그리고 빙산(10분의 1이 의식, 10분의 9는 무의식)이라는 말 이외에는 아무 것도 몰랐다. 대학 4년 동안에 심리학과에서는 심리학의 역사(이론과 조직), 생리심리학, 발달심리학, 기억심리학, 감정심리학, 인지심리학, 행동심리학, 이상심리, 상담과 치료심리학, 측정과 검사심리. 심리학의 윤리 등의 과목들에 대해서 4년 동안 공부를 하게 된다. 정신분석에 대한 내용은 단지 상담과 치료심리학에서 만이 프로이트와 정신분석에 대해서 몇 페이지가 고작이었다. 교과목을 따라가느라고 그리고 대학원을 염두에 두고 공부를 해야 했기 때문에 학점 관리에 정신이 없었고 또한 정신분석학교가 어디에 있는지? 를 알아 보려고 할 틈새가 없었다. 진도에 맞춰서 따라가는 것도 힘들었다. 지금도 같은 생각이지만 외국 유학에서 가장 힘든 공부가 심리치료학 이다 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제 2 외국어를 사용하는 학생으로써 심리학은 형체가 없는 학문이다, 더욱 더 상담의 과정은 의사소통에도 힘든데 그 말 속에 뒤에 숨겨진 의미를 찾아낸다는 것은 영어를 제 2 외국어로 배운 학생들에게는 가장 힘든 과업이었다.

치료자가 10년 동안 미국에서 공부를 할 때 각 교과목마다 외국인 학생은 치료자가 유일했다. 모든 학생들은 나이에 관계없이 모두 미국인이었다. 특별히 치료심리학은 법과대학, 의과대학 수준의 경쟁이었다(최하 27 1에서 최고 45 1: APA 1999년 기준). 그 이유는 치료실, 상담실을 운영해서 노후에 까지 생활할 수 있다는 이점 때문에 인기가 높았다(상세한 것은 치료자의 홈 페이지에 실린 아래의 글을 보라).

치료자는 미국 유학을 가서 공부를 하겠다는 꿈은 초등학교 시절에 가지고 있었다. 그 당시에는 영어를 중학교 시절에서 배우게 되었다 그래서 치료자는 중, 고교 시절에 영어는 항상 최상위권에 있었다. 치료자는 교사가 되어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미국 유학 10개년 계획을 세웠다. 영어에 도전은 계속되었다(토플 시험). 7년 만에 캘리포니아 주립 대학의 3개 대학에서 입학 허가를 받았다. 그러나 경제적인 준비 때문에 3년을 더 연장한 후에 10년 만에 학교에 사표를 쓰고 유학 길에 올랐다. 3만 단어의 영어와 어떤 영어책도 마음대로 막힘이 없이 읽어야 한다는 것을 목표로 공부를 하면서 전과목의 교양과목을 영어로 읽어가면서 가장 재미있는 과목을 전공을 하기로 결심을 했다. 유학출발 3년 전쯤에 전공을 치료 심리학으로 결정을 했다(10개년 계획의 7년 만에 전공이 결정).

치료자가 전공을 영어영문학(문학 평론가)에서 심리치료학으로 전공을 바꾼 결정적인 동기는 현대문학의 주제가 정신이상이라는 것에서 소설 속의 주인공의 분석보다 실제 인간의 정신이상을 분석해서 치료하겠다는 생각에서였다.

미국과 영국의 작가들 중에서 인간의 내면의 세계를 묘사한 작가들이 많았다. 특별히 에밀리 디킨슨(Emily Dickinson)(1830-1886)은 할아버지가 마사츄세트 주에서 유명한 명문 대학인 엠네스트(Amherst) 대학의 창설자로 아버지와 오빠가 70년 동안 그 대학의 재무이사와 재무담당으로 근무한 사람으로 아버지가 보스톤과 워싱턴 D.C에서 사회활동 때문에 그녀의 어린시절에 아버지는 집에 거의 없었다. 그녀는 사춘기 이후에는 그녀의 집의 다락방에서 나오지 않고 갇혀서 창문으로 본 세상을 시로 썼다(자아분열, 대인기피증). 그녀의 시들은 미국의 서정시인인 월터 위트만(Walt Whitman) 그리고 에드가 알렌 포우(Edgar Allan Poe)와 함께 3대 서정시인으로 추대되고 있다. 그녀는 인간의 내면의 마음을 그렸다. 그녀의 1890이라는 시의 제목에서 그녀는 자신의 죽음을 보고 있다. “나는 내 머리 안에서 장례식을 느낀다. 애도를 하는 사람들이 오가고, 발자국 소리가 들리고 감각이 깨어지고 흩어진다. ---- 내 관이 땅 속으로 내려지고 내 영혼이 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천국의 종소리처럼 조종이 울리고 ---난파된 고독이 여기에 --- 이성의 판이 깨어지고 나는 쓰러지고 그리고 가라앉고 세상이 강타되어 깨어지고 아는 것이 모두 사라진다 – 1891!그녀의 시는 죽음, 사랑, 아름다움, 그리고 불멸을 노래하고 있다(McMichael(Eds.), 1980, 미국문학의 작품집에서 에밀리 디킨슨 편)

그 다음에 테네시 윌리암(Tennessee Williams, 1911–1983)의 작품들로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 유리동물원 등의 작품으로 그는 어린시절에 친구가 없었다, 겁이 많고 소심하고 내성적이었다. 부모님은 끝없이 싸웠다, 아버지는 아들을 어머니가 계집애 같이 키운다고 비난을 했다. 그의 작품들은 정신적으로 살아남기 위한 인간의 투쟁을 그의 어린시절의 가족 환경을 배경으로 심리적인 이상행동들을 그렸다(McMichael(Eds.), 1980).

또 한 사람은 남부 문학의 대표자로 1949년에 노벨 문학상을 받는 윌리암 포커너(William Faulker, 1897-1962)음향과 분노(the Sound and Fury, 1929)이다. 이 작품은 의식의 흐름의 기법(미국 심리학의 아버지 윌리엄 제임즈(William James)의 의식의 정의에서 그의 동생인 소설가 헨리 제임즈(Henry James)의 소설 기법으로 유명)으로 남부의 한 귀족 가문의 가족 해체를 다루고 있다. 재정적 파탄과 그리고 종교적인 믿음의 상실 그리고 소도시의 이웃 사람들의 존경을 잃어버린 한 가족의 3의 구성원들을 시대 순서로 그리고 있다. 첫 번째 주인공 33세의 아들은 정박아로 대화의 어눌함과 어려움, 두 번째 장남인 아들은 비상한 머리를 가졌지만 심리적인 갈등으로 자살로 그리고 세 번째의 막내의 전지전능한 나르시즘적인 행동을 다루고 있다(McMichael(Eds.), 1980).

또 한 사람은 영국의 작가인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lf, 1882-1941)이다. 그녀의 작품들은 내면의 깊숙한 곳에서 울려퍼지는 심리적인 묘사에 탁월한 작가로써 여성운동과 여성인권의 개척자로써 그리고 20세기의 모드니스트(modernist) 작가의 한 사람으로 의식의 흐름의 기법을 사용한 사람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첫 결혼에서 1명의 자녀와 어머니의 첫 번째 결혼해서 3명의 자녀를 가진 부모들의 재혼으로 4명의 자녀들이 태어나면서 7번째 자녀가 그녀가 되었다. 3명은 아버지가 다른(씨가 다른) 언니들과 1명의 이복(배가 다른) 언니를 둔 혼합가족으로 그녀가 12살 때 어머니의 사망2년 후에 어머니와 같았던 이복 언니의 사망으로 첫 번째 정신적인 붕괴 그리고 그 이후에 아버지의 사망 후에 두 번째 정신적 붕괴 이후에 그녀는 여러 번 조울증으로 정신병원에 입원 경력을 가졌다. 남편과 결혼 후에 호가리스 (Hograth)출판사를 설립하면서 그녀의 작품을 출판하게 된다. 호가리스 출판사는 이후에 프로이트의 독일어 정신분석을 영어로 번역한 제임즈 스트라취(James Strachey)정신분석의 영문번역 출판을 독점하게 된다. 그녀는 59세(1941) 자신의 옷에 돌들을 집어넣고 강물에 투신 자살하게 된다. 그녀의 사후에 울프는 1970년대 페미니스트 비평 운동의 중심 주제 중 하나가 되었고, 그녀의 작품은 그 후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녀의 작품은 "우수한 페미니즘"에 대한 광범위한 논평을 얻었다. 그녀의 작품은 5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그녀는 연극, 소설, 영화의 소재(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 1966년 영화, 엘리자베스 테일러, 리차드버튼 주연 영화)가 되었다. 울프는 런던 대학교에 그녀의 동상으로 기념되어지고 있다(2020, 12, 5. 위키피아 인용).

현대문학의 정신이상, 미침, 섹스, 폭력에 대한 관심은 영문학에서 심리학 쪽으로 방향을 바꾸게 했다. 영문학을 전공했다가 심리학자가 된 사람들이 많다. 대표적인 사람이 하버드 대학의 심리학교수인 비 에스키너(B.F. Skinner)이다. 그는 하버드대학 영문과 출신이었다. 그가 시인이 되기 위해서 시를 써서 그 당시에 유명한 시인으로 4번이나 풀리처 상을 받은 유일한 시인으로 케네디 대통령 취임식 때 시를 낭송한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그의 시눈 오는 날 저녁에 숲 속에 서서는 필자가 고등학교 때 영어 교과서에 실린 시이다)에게 그의 시를 보내서 그가 시인의 소질이 있는지?를 자문을 구했다. 프로스트는 스키너에게 시인의 소질이 없어 보이니 다른 전공을 찾아보라 라는 말에서 그는 그 당시에 실험 심리학으로 행동주의자(Behaviorist) 가 본 심리학이라는 논문으로 행동심리학이라는 말을 신조어로 만든 존 비 와트(John B. Watson)실험 심리학과 심리학자인 에드워드 숀다이(Edward Thorndike)시행착오설을 바탕으로 한 동물실험 심리학으로 강화이론강화 스케줄행동심리학의 대부(代父)가 되었다.

또 한 사람은 하버드 대학 영문과 출신의 도날드 스펜(Donald Spence)로써 그는 심리치료에 대한 관심으로 영문학에서 심리학으로 바꾸었다. 그는 컬럼비아 대학 치료심리학과를 졸업하고 그 대학의 정신분석학교에서 공부한 후에 정신분석가로 락터대학(뉴저지주립대학) 교수가 되었다(그의 저서는 역사적 진실과 서술적 진실(1982)을 보라).

또 다른 사람은 뉴욕의과대학 정신과 교수이자 정신분석가인 센골드(Shengold)가 있다. 그는 그의 저서 영혼의 살인(1989)에서 작품과 작가들의 정신이상을 분석으로 다루고 있다. 그의 작가와 작품의 분석에서 버지니아 올프의 작품인 달로웨이 부인(Mrs. Dalloway)(1925)에 대한 분석을 소개하고 있다. 달로웨어 부인은 다른 분석가들에 의해서 정신분석에서 자주 다루어지고 있다. 1 차 세계대전에서 사망한 한 전우의 망상(외상 후 스트레스장애)에 시달리면서 공원의 벤치에 앉아서 내면의 세계에 사로잡혀 있다. 그는 사회로부터 고립되어 적응하지 못하고 있고 그의 옆에 앉은 부인과도 고립되어져 있다. 달로웨어 부인은 51세의 제 1 차 세계 대전 이후의 영국의 상류사회의 여성으로 그녀는 그날의 저녁 파티를 준비하면서 과거의 회상에 사로잡혀 있다. 그녀가 가까웠던 남자 친구 대신에 지금의 남자 친구와 결혼하게 되었는가? 라는 과거 회상에 사로잡히면서 저녁 파티 직전에 그 노병의 자살소식을 듣게 된다.

위의 작가들은 어린시절의 상처들과 그 상처들로 인해서 고통받은 자신들의 내면의 삶을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킨 작가들이고 그리고 그들의 정신적인 고통들과 정신장애들로써 사회에서 소외되고 고통받는 작품들의 주인공에 대한 접촉에서 치료자(필자)는 실제 현실적인 정신이상자의 치료와 연구로 방향을 돌리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영문학에서 심리치료 학으로 전공이 바뀌되 되었다.

미국대학에서 심리학을 공부를 하면서 대학원의 진학에 관심을 두게 되면 반드시 필수적으로 참고해야 할 서적이 바로 심리학 전공을 위한 대학원 안내(Graduate study of psychology)이다. 이 책은 매년마다 갱신되는 심리학 전공의 안내서로 미국과 캐나다의 전국 종합 대학들 안에서 심리학과들의 소개와 그리고 심리학의 석사와 박사의 학과목의 모집 인원 그리고 세부분류로 각 학과마다 응시자 그리고 합격자 숫자, 경쟁 비율 그리고 각 대학에서 응시생들에게 강조하고 핵심 과목의 비중의 중점들(예를 들어서 심리학에서 4.3 이상. GPA에서 4.0 이상, 통계학 과목에 B+ 학점 이상, 연구방법론에서 B학점 이상 등등)그리고 학비와 기숙사 그리고 그 학교에 교수들 숫자들(전임교수 숫자들과 시간 강사 숫자들)과 그들의 출신학교 그리고 그들의 전화 번호 등이 세밀하게 소개되어져서 매년 출판되어지고 있다(그 당시에는 인터넷이 등장하기 이전). 그런데 그 안내서의 어디에도 정신분석에 대한 정보는 없었다(정신분석에 대한 강의가 아니고 정신분석학과가 없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은 정신분석학과는 미국의 종합 대학에서는 개설 되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유일하게 종합 대학교 안에 정신분석학과가 개설된 대학교가 뉴욕대학교의 대학원과 컬럼비아 대학의 대학원에 박사 후 정신분석과 심리치료 학과(박사학위를 가진 사람이 정신분석과 심리치료를 공부하기 위해서 응시가 가능)가 개설된 것이 유일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 전공을 영문학에서 심리 치료학으로 바꾼 이야기에 이어서 치료자가 10년 동안 심리치료와 가족 치료를 공부하면서 인턴의 마지막 시점에서 정신분석으로 방향을 돌리게 된 이유들 중에서 한가지는 좀더 깊이 있는 치료의 공부와 연구의 필요성 때문이었다. 정신장애자들을 치료 하면서 가장 듣기 어려운 고통스러운 말이 바로 치료를 받는 환자들의 입에서 치료에 효과가 별로이다. 돈과 시간이 아깝다 라는 말들을 듣는 것이다. 이 말은 바로 치료사의 능력을 평가하는 말이 아닌가? 시간당 치료 비용을 지불했는데 효과가 없다는 것은 바로 그 치료사의 무능력을 지적하는 말이 아닌가? 환자들 특별히 보드라인 환자(경계선 성격장애)은 치료사를 맹공격하는 것이 보통이다. 치료사에게 선생님은 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내가 돈을 지불하고 왔지만 돈이 아깝습니다.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라고 말을 듣게 될 때 치료사는 쥐구멍을 찾고 싶어진다. 치료에서 무능함이 탄로 날 때가 가장 고통스럽게 된다.

이러한 사례들이 비일비재하면서 치료자는 10년 동안의 심리치료와 가족치료에는 어느 정도 어떤 책을 보아도 읽고 이해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다는 생각에서 그리고 더욱 더 깊은 심층적인 심리치료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하면서 귀국 이전에 정신분석학에 대한 정보를 수습한 끝에 겨우 캘리포니아 정신분석 학교의 주소를 알게 되었고 그 학교에서 연구원으로 등록하고 그들의 커리큘럼과 그들이 사용하는 교과과정에서 교과목들을 복사해서 정신분석 서적들을 복사하기 시작을 했다. 10년간의 공부로 에너지 고갈과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계속해서 공부를 수행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이제는 저서들만 있으면 혼자서 공부해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시작되었다.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롱비치 대학도서관, 로스안젤리스 대학원도서관, 가족치료 학교도서관, UCLA 의과대학 도서관에 연구원으로 등록해서 생물의학도서관(심리학 서적들이 보관), 그리고 남가주 정신분석학교 도서관에서 정신분석과 심리치료에 대한 이름난 학자들의 저서들을 대출 받아서 제록스 복사기에 1페이에 1센트의 비용으로 복사를 했다. 책을 구입한다는 것은 가격과 비용 때문에 복사를 선택한 것이다. 1권의 책값으로 복사를 하면 6권을 복사할 수 있었다. 책의 구입 때문에 다시 미국으로 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내 손으로 복사를 하기 시작해서 1년 동안에 약 300권의 도서를 복사해서 한국으로 가지고 올 수 있었다. 그 이후에 인터넷과 노트북의 등장으로 아마존에서 약 300권의 서적들을 구입해서 전문서적 문제는 해결이 되었다. 위의 서적들을 지금도 읽고 연구하고 치료에 응용하고 있다.

이제 정신분석학이 어려운가? 하는 주제로 방향을 돌려 보자. 치료자가 지금 현재 38년 동안의 심리치료를 하면서 10년 동안은 심리치료학과 가족치료 그리고 지금까지 28년 동안은 정신분석을 공부하고 있다. 치료자는 지금의 정신분석 치료의 흐름이 프로이트의 신경증 치료에서 성격장애 치료로 그리고 정신증(조울증, 편집증, 정신분열증(조현병)) 쪽으로 옮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응용 정신분석학 쪽으로 집중적으로 공부를 했다. 세상이 급변하고 과학화 되면서 사람들의 내면 생활을 점점 복잡해지고 다른 사람들과 관계에서 부딪치는 관계의 어려움이 정신분석의 초점이 되면서 관계정신분석, 대인관계 정신분석, 대상관계들 정신분석 등의 인기 용어들이 유행을 타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쪽으로 방향을 잡아서 공부를 계속하고 있다. 하루에 최소 5시간, 최대 10시간씩 지금도 책을 읽고 연구를 하고 치료를 하루에 1명 혹은 2명을 하고 있다. 치료 시간 이외에는 공부하는 시간이다. 그런데 정신분석에 대한 공부는 갈수록 어려워진다는 느낌이다. 28년 정도 했으니 어떤 정신분석 서적들도 마음대로 쉽게 읽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오판이었다.

치료자가 미국에서 귀국에서 부산의 부경대학(과거에 수산대학)에서 20년 동안 파트타임으로 심리학을 강의하면서 정신분석을 주로 강의를 했다. 특별히 섹스심리학의 변태성욕의 강의는 인기가 있었다(치료자는 강의 때 앞으로 세월이 흘러가면서 섹스 문제가 봇물처럼 쏟아져나올 것이라고 늘 이야기를 했다. 명퇴 12년 후에 얼마 전에 터져 나온 N변방의 인터넷 섹스 사건들은 우리나라에서 섹스학의 학문의 부재로 젊은이들이 섹스의 덫에 걸린 것으로 본다). 치료자는 38년 전에 미국에서 섹스학 강의(대학에서는 인간의 섹스학(교양) 그리고 대학원에서 섹스심리학 강의(전공과목으로 섹스 치료학)를 들었던 것을 강의 시간에 학생들에게 이야기를 하면서 학생들이 듣고 싶어하는 최고의 강의였다고 부경대학신문에 실린 적이 있다. 몇 명의 다른 대학 학생들이 도둑 강의를 들었다고 마지막 시간에 정직하게 교수평가지에 고백을 한 사건이 몇 명 있었다. 입소문으로 치료자의 강의가 학생들에게 알려지게 되면서 대형 강의실(최신 극장형 강의실)에서 100명의 수용 학생들을 대상으로 마이크로 강의를 했다. 교양과목이었기 때문에 학생들은 필수과목이 아니었다. 그러나 4학년 3학년 2학년 순서로 등록을 했기 때문에 100명의 인원이 마감이 되어 2학년, 1학년들이 강의를 듣고 싶다고 해서 교수의 사인으로 10명 정도 추가 지원으로 110명 정도가 강의를 듣게 되었다. 지금은 대학에서 명퇴로 물러난지 12년이 흘러갔다.

대학의 강의 시간 중간에 강의시간이 비게 될 때 대학 휴게실에서 교수들이 자신의 강의 시간을 기다리면서 서로 농담으로 장난을 칠 때가 있다. 한 교수가 나에게 교수님은 무슨 과목을 강의를 하십니까? 라고 물어서 치료자가 심리학에서 정신분석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라고 대답을 했을 때 그는 정신분석은 프로이트가 100 년 전에 만든 것으로 지금은 고물이 되어 고물점에 간 학문이 아닙니까?  혹은 다른 교수들이 농담으로 자주 정신분석은 프로이트가 머리 속에서 소설적으로 쓴 학문으로 비과학적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지금 21세기에 과학의 시대에 비과학적인 과목이 학생들에게 인기가 있습니까? 라고 웃으면서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내 강의실은 한 학기게 3 학급을 강의했기 때문에 1과목에 100명씩 3학급에 300명의 학생들이 수강을 하고 있었다. 고로 내가 3학급에 300명의 출석부를 보여주면 그는 의아해 한다. 또 다른 한 철학의 원로 교수가 치료자에게 농담 조로 프로이트는 변태성욕자이고 그리고 그의 정신분석은 섹스에만 집중이 된 것으로 섹스중독자라고 하는 데 맞습니까? 라고 질문을 자주 받는다.

물론 서로 농담으로 웃으면서 하는 장난인 것을 알고 있지만 난감할 때가 많다. 그러나 치료자(필자)정신분석의 진가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흔들림이 없었고 그 진가는 학생들의 강의에서 100명의 학생들이 숨소리가 나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들었고 그들로부터 매 학기 마다 교수의 강의평가에서 평점 4.5 만점에 4.35 받을 만큼 인기가 있었고 20년 동안 강의를 하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다. 그러나 대학강의를 하면서 심리치료를 병행했기 때문에 심리치료를 소홀히 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1999 3 29일에 TIME 잡지 표지 모델 1900-1999년의 20세기 100년 동안 인간에게 가장 위대한 공적을 남긴, 과학자, 사상가들 중에서 누가 가장 인간에게 유익한 공헌을 했는가? 라는 질문지를 세계의 석학들에게 물어본 결과 프로이트가 1 그리고 아인슈타인이 2위로 선정되었다는 TIME 표지에서 의사인 프로이트가 환자로 카우치에 누워서 치료를 받고 있는 만화 그림이 실리게 되면서 결정적으로 치료자가 반박을 할 수 있는 자료가 등장한 것이다. 치료자는 TIME 잡기를 들고 다니면서 강의를 듣는 학생들에게 프로이트라는 사람과 정신분석을 소개하면서 20세기 100년에 가장 위대한 공적을 남긴 사람이 바로 프로이트이다 라고 소개를 하면서 강의를 시작하게 된다. 그렇게 시작된 정신분석에 대한 이야기는 명퇴로 대학에서 물러난 이후에 12년 후 2015, 7 월에 인사이드 아웃 그리고 2019, 10월에 조커의 영화로써 이제 우리나라 사람들의 심리학과 정신분석에 대한 그리고 정신병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이어서 프로이트가 정신분석의 핵심인 꿈해석(1900)를 출판하면서 하루아침에 세계적인 명사가 된 것은 여러 번 밝혔다. 그 책을 읽어본 사람들이 프로이트 한데로 몰려들게 된다. 맨 먼저 연락이 혼 사람이 에들러(Adler)였다. 그는 비엔나 의과대학 졸업 후에 의사로써 병원에서 치료를 하고 있었다. 그와 또 한 사람인 의사인 윌헬름 스타켈(Wilhelm Stekel), 의사인 막스 카하네(Max Kahane)그리고 루돌프 레이틀러(RudolReitler)였다. 4명의 의사들이 수요일 저녁에 프로이트의 집에 모여서 토론으로 공부를 하게 되면서 정신분석학회의 모체가 탄생하게 된다. 1908년에  살츠버러그(Salzberg)에서 국제정신분석학회가 열리게 된다. 3년 후에 에들러와 스타겔은 1911년에 프로이트와 갈등으로 정신분석학회를 탈퇴하게 된다. 이후에 유럽의 각처에서 프로이트에게 정신분석을 공부하려고 모여들게 되면서 국제정신분석학회가 조직되면서 프로이트는 세계적인 명사로 위치가 굳어졌다.

프로이트는 최면학을 포기하고 정신분석으로 새로운 치료 이론들을 개발해 나가게 된다. 그런데 그는 이전에 쓴 논문들과 그가 계속해서 연구하는 논문들의 모순과 갈등을 신경 쓰지 않고 계속해서 연구를 해 나갔다. 최면에 걸리지 않는 환자들이 어린시절의 상처를 찾아내기 카우치에 누워서 과거의 기억을 찾아가는 자유연상은 그대로 계속하면서 최면을 포기하고 양육의 과정에서 유아의 욕구 충족의 발달 단계들0세-1(구순기), 1세-3(항문기), 3세-5(오디팔기), 6세-12(잠재기), 13세-19(사춘기)의 끝으로 5 단계의 발달 단계의 과정에서 욕구충족과 강압과 처벌과 박탈의 결과로 신경증의 상처 이론으로 끊임없이 수정해 나갔다. 그리고 1923년에 ego와 원초자아로써 마음의 3두 마차ego심리학이 탄생하게 된다라는 것을 여러 차례 기술을 했다.

그런데 프로이트는 제자들에게 카우치에 누워서 자유연상을 한다는 것은 논문으로 그리고 강의로 토론으로 논의를 했지만 실제 자신의 치료를 하는 장면을 실습으로 관찰하고 매뉴얼로 만들어서 교육을 하지 않았다. 고로 정신분석의 제 1 세대들은 카우치에 누워서 자유연상으로 과거의 상처 기억 그리고 발달의 5단계를 거치면서 치료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어떻게 치료를 한는가?를 눈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에 1 세대 분석가들은 자신들이 스스로 모델로 만들어서 각자가 치료를 했다. (Jung)의 제시로 정신분석학교가 설립이 되었다. 그러나 학교 졸업 이후에는 자신의 스승에게 4년 혹은 5년 동안 분석의 과정을 거치면서 정식으로 분석가가 되었다 고로 통일된 실습이 없다는 점이다. 각 개인은 그 자신의 스승으로부터 분석을 받아서 정신분석가가 되는 전통이 만들어졌다. 예를 들어서 치료자가 캘리포니아 가족 치료학교에서는 각 인턴들은 일면경(one way mirror)으로 치료사와 환자가 상담을 하는 과정을 벽으로 된 거울 뒤쪽에서 보고 듣는다. 물론 환자는 자신의 상담 장면을 거울 뒷면에서 관찰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치료실 안에는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신경을 쓰지 않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100시간 혹은 200시간의 실습을 거친 후에 인턴은 직접 환자를 치료하게 되면서 그 치료의 과정을 슈퍼바이져에게 이야기를 해서 지시감독을 받게 된다. 그러한 과정을 시간으로 카운터를 해서 1000시간의 과정을 거치면서 응시자격이 주어지고 시험에 합격해서 자격증이 주어진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이 정신분석에서는 없다는 것이다. 프로이트 시절에는 일면 경(거울)이 없었다. 이러한 점들 때문에 정신분석이 공부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그러한 어려움의 단점이 있지만 장점들이 있다. 각각의 분석가가 다 다르기 때문에 수많은 스타일이 개발되고 치료의 폭이 넓어지게 된 것으로 사료되어진다.

여기에서 우리나라와 일본은 3월의 새 학기가 시작되는 것과 대조적으로 서양에서는 9월에 새 학기가 시작된다. 고로 5월과 6월에 졸업이 시작된다, 6월, 7, 8월이 여름방학이 된다. 프로이트는 여름에 휴가를 갔다. 3개월 동안 그가 좋아했던 그리스와 이태리의 고고학답사와 그리스시대의 신화의 유적지를 찾기를 즐겼다 프로이트가 이태리에 여행을 7이나 했다. 그리스와 로마의 골동품 수집이 취미였다. 제자들에게 골동품을 선물로 보내기도 했다. 3 개월의 휴가 동안에 분석 치료는 쉬었지만 치료 비용은 청구를 했다. 그 이유는 아직도 치료가 끝나지 않고 계속되기 때문이었다. 전통을 따라서 분석가 혹은 치료사들이 여름 휴가로 보통 1달을 휴가를 가면서 치료비용을 청구하는 전통이 생겨나게 되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 인기를 얻으면서 유럽각지에서 정신분석가들을 자칭하고 분석가들이 쏟아져 나왔다(프로이트가 그들을 경고한 것이 1911년에 의과대학을 졸업하지 않는 일반 분석가(lay analysis)는 경고 논문이 출판되었다). 그래서 정신분석학교를 설립하게 되면서 정식으로 학교에서 과목들을 이수하고 학점을 받도록 하는 정신분석학교가 세워지게 된다. 프로이트는 정신분석학교에 반드시 의과대학을 졸업한 의사들 만이 응시지원 자격이 주어져야 한다는 규정에 반대를 했다. 굳지 해부학적인 지식 보다는 대학에서 다양한 분야들 문학. 예술학, 고고학, 인류학, 역사학, 신화와 종교학 등의 전문분야의 지식인들이 지원을 하도록 문을 열어놓았다. 문학가, 작가, 미술가, 조각가 등의 예술가들이 그리고 인문사회과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많이 정신분석 학교에 지원을 해서 정신분석가들이 배출되었다.

그들 중에서 대표적인 사람들이 어네스트 크리스(Ernest Kris)이다 그는 비엔나 대학에서 예술 역사를 전공했다가 의과대학에서 정신과 의사가 되었다. 정신분석학회에 가입하고 정신분석가가 되었다. 그의 부인 역시 일반분석가로써 정신분석가가 되었다. 프로이트의 요청으로 이마고(Imago)잡지와 논문집의 편집인과 비엔나 정신분석학교에 교수가 되었다. 그들이 나치를 피해서 영국에 건너가서, 런던 정신분석학교 교수와 훈련생들의 슈퍼바이져가 되었다. 이후에 그들은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뉴욕정신분석 학교에서 교수로 많은 정신분석 논문을 쓰고 ego 심리학에 공헌을 했다.

루돌프 로웬스테인(Rudolph Loewenstein) 은 폴랜드 출신의 유태인 의사로 반유태인 박해를 피해서 스위스에서 유진 블루러 신경학으로 부르고졸리 대학병원에서 융으로부터 정신분석을 소개받고 비엔나로 와서 정신분석에 매혹해서 정신분석가가 되었다. 그는 정신분석가가 된 이후에 프로이트의 권유로 프랑스에 가서 프랑스정신분석학교를 세우고 정신분석학회를 조직했다. 나치점령 이후에 미국으로 망명해서 뉴욕 정신분석학교의 교수가 되었다.

 프로이트의 제 1 세대 분석가로써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정신분석에 매혹되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회에 가입한 한스 샤크(Hanns Sachs)가 있다. 그는 의사가 아닌 변호사로써 정신분석가가 제 1 세대 정신분석가로써 프로이트의 핵심 5인 방의 한 사람이다. 그는 나치의 박해로 미국에 이민을 가서 보스톤 정신분석학교 창립의 멤버가 되었다. 그는 특별히 동성애의 연구 논문으로 동성애 연구의 세계적인 학자인 찰스 소카로이드(Charles Socarides)가 동성애 치료의 연구에서 핵심으로 인용되어지고 있다.

 프로이트의 핵심 5일방 중에서 일반 분석가로써 유명인이 바로 오토 랭크(Otto Rank)는 프로이트 수요 모임의 첫 멤버로써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회의 창립멤버이자 프로이트의 가문의 집사로 그리고 정신분석학회 초대 회계담당으로 유일하게 프로이트로부터 봉급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조울증으로 프로이트와 정신분석학회를 떠났다. 이후에 그는 비엔나 대학을 졸업하고 파리에 솔본 대학에서 강의를 하다가 미국으로 망명해서 하버드, 예일, 버클리 대학에서 강의를 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에서 벗어나서 과거의 강조보다 지금 현재의 강조로 그의 저서인 의지치료로써 인본주의 심리학자로 인간중심 심리치료를 개발한 칼 로저스 그리고 실존주의 정신분석가인 롤로 메이(Roro May: 주㈜: 참고) 그리고 가족치료사인 칼 휘티거(Karl Whitaker: 주㈜:참고)에 영향을 미쳤다.

 오그스트 하치혼(August Aichhon)초등학교 교사로 있다가 안나 프로이트의 권유로 정신분석학교를 졸업하고 제 1차 세계 대전 후에 패전국인 오스트리아의 청소년들의 비행청소년을 위해서 비엔나 정신분석학교의 어린이 가이던스 센터를 설립해서 청소년 분석치료사가 되었다. 그는 정신분석을 학교 교육에 접촉시켜서 청소년 분석가로써 공헌을 했다. 그의 분석을 받은 사람이 자아 심리학으로 유명한 헤인즈 코호트(Heinz Kohut)가 있다.

 또 한 사람은 비엔나 대학에서 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은 데오도어 레익(Theodor Reik)이 있다. 그는 의과대학을 나오지 않고 심리학 박사로써 정신분석학교를 졸업하고 칼 아브라함으로부터 개인 분석을 받아서 정신분석가가 되어 비엔나에서 환자들을 치료를 했다. 비엔나 의료국에서 의사가 아닌 사람이 치료를 하는 것에 대한 금지령 때문에 레익의 환자였던 사람으로 소송을 당했다. 프로이트의 지원으로 그 문제를 해결이 되었다.

 레익이 미국으로 이민을 갔을 때 뉴욕 정신분석학회 회장인 아브라함 브릴(Abraham Brill)이 의사가 아닌 사람은 정신분석학교에 입학을 금지시켰다. 고로 그는 뉴욕에서 의사가 아닌 심리학자들을 위한 정신분석 학교를 세웠다. 또한 정신분석을 위한 미국 심리학회를 설립했다. 그리고 뉴욕 정신분석학회에 소송으로 맞섰다. 결국 법원에서 의사가 아닌 사람들 즉 심리학자, 사회복지학자 그리고 5년 이상 정신간호학을 전공한 간호대학 졸업자와 의사들이 정신분석학교에 지원할 수 있는 자격을 허용하게 되었다. 여기에 레익의 공헌이 한몫을 했다.

 또 한 사람의 일반 분석가는 비엔나 대학에서 교육학 박사학위를 가진 세이그프레이드 번스필드(Siegfried Bernfeld)이다. 그는 정신분석에 매혹되어 비엔나 정신분석학회의 핵심 멤버가 되었다. 비엔나 정신분석학교와 베를린정신분석학교에서 교수로 그리고 환자들을 치료를 했다. 미국에 이민으로 샌프란시스코에서 심리학자로 교육가로 활동을 했다. 그는 사회학, 심리학, 생물학 등의 전문분야를 정신분석학에 접목 시켜서 교육이론정신분석 이론과 치료를 학교의 학생들의 교육에 접목시켰다. 이후에 프로이트와 마르크스 이론의 통합으로 형성된 철학의 한 관점의 탄생(Freudo-Marxism)에 기여했다. 프로이트와 마르크스는 둘 다 유태인으로 무신론자로써 종교를 비판을 했다. 프랑스의 정신분석가이자 언어 철학자인 파울 리코르(Paul Ricoeur)프로이트와 철학: 해석의 논문에서의심의 해석학으로 니체와 프로이트를 비교를 했다. 일부 철학자들은 프로이트의 섹스 페티시즘(섹스심리학에 강조)에 비추어서 마르크스의 물질 페티시즘(유물론의 강조)의 개념으로 비교를 하고 있다.

미국과 대조적으로 영국에서는 의사출신이 아닌 다양한 전문가들이 정신분석학교에서 허용을 받았다. 여성분석가의 대모 역할을 한 영국의 분석가 조안 리비에(Joan Riviere), 독일어 정신분석을 영어로 번역한 제임즈 스트라취(James Strachey)작가로 글을 쓰는 언론인으로 프로이트에게 2년 동안 공부를 하고 나서 제 1 세대 정신분석가가 되었다. 영국의 여성정신분석가들 중에 의사가 아닌 일반 분석가로 유명한 마가레트 리틀(Margaret Little)은 분석을 받을 때 그녀의 스승으로부터 받은 느낌을 연구해서 반전이 논문으로 유명인사가 되었다. 교사였다가 정신분석가가 된 슈잔 이삭(Susan Isaacs) 등이 조안 리비에 한데서 분석을 받고 정신분석가가 된 사람들이다.

 실제로 유럽에서는 의사출신이 아닌 일반 분석가들이 전체 정신분석가들의 40% 를 차지한다고 프로이트의 삶과 업적에서 에너스트 존(Ernest Jones, 1953, 1955, 1957)이 노트하고 있다.

 프로이트가 기대했던 대로 정신분석수 많은 분야의 전문가들을 흡수해서 그들이 자신의 전문분야와 정신분석을 통합해서 결국은 , 소설, 희곡을 포함한 문학, 예술(음악, 미술, 체육), 사회학, 철학, 언어학, 법학, 범죄학 그리고 과학 등의 모든 학문의 영역에 영향으로 뻗쳐나가서 정신분석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 곳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으로 사료되어진다.

 이제 미국을 중심으로 해서 정신분석 학교가 어떻게 분포되어져 있는가? 그리고 전세계적으로 정신분석 학교들이 어느 정도로 확대되어져 있는가? 를 살펴 보도록 하자.

 미국에서 제일 먼저 정신분석학교가 세워진 것은 1911년뉴욕 정신분석학교이다. 이 학교는 아브라함 브릴(Abraham Brill)에 의해서 세워졌다. 그는 유태인으로 25센트 미국에 이민을 와서 컬럼비아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정신과 의사가 되었다. 그는 그 당시에 세계에서 처음으로 세워진 스위스의 쥬리히에 현대적인 정신병원인 부르고졸리(Burgholzli) 대학정신병원에서 레지던트로 훈련을 받고 있으면서 융(Jung)과 칼 아브라함(Karl Abraham)들을 알게 되었다. 그들과 함께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회에 가입하고 정신분석가의 제 1 세대가 된다.

 좀 더 세부적으로 이야기를 해 보자. 1910 3 30, 31 2일 동안 제 2회 국제정신분석 학회 총회가 누렌베르그(Nuremberg)에서 개최 되었다. 융이 국제정신분석학회 회장으로 연임되었다. 그 총회 이후에 각 지역 학회들이 등록을 했다. 3월 달에 베를린 학회가 칼 아브라함이 회장으로 막스 에팅곤(Max Etingon) 9명의 멤버로, 4월 달에 비엔나 학회가 에들러가 회장으로 스타켈과 함께 21명의 멤버로, 6월 달에 쥬리히 학회가 융의 제자인 번스윙그(Binswanger)가 회장으로 19명으로 조직이 되었다. 1911 5월에 러시아 학회가 조직이 되었다. 1911 2월에 어네스트 존과 아브라함 브릴이 함께 뉴욕정신분석학회를 조직해서 브릴이 회장으로 20명의 멤버로 구성이 되었다.  뉴욕 밖에서는 5월에 볼티모어에서 푸트남과 아돌프 메이어(Adolph Meyer)8명의 멤버로 조직이 되었다. 그 시점에서 에네스트 존은 캐나다 토론토 대학에서 교수 초빙을 받았다 그와 푸트남이 미국정신분석학회를 조직을 했다. 1912년에 항가리 정신분석학회가 설립되고 샌도르 프랜치가 회장으로, 1913년에 어네스트 존에 의해서 존이 회장으로 9명으로 런던 정신분석학회가 조직되었다, 그리고 그 중에 4명이 정신분석 치료의 개업을 했다(Ernest Jones, 1955).

  브릴은 1909년에 마사츄세트주의 클라크(Clark) 대학의 총장인 미국 심리학 박사 1호 그리고 미국 심리학회 초대 회장을 역임한 스탠리 홀(Stanly Hall)프로이트와 융을 대학 20주년 개교 기념행사로 초대해서 정신분석에 대한 특강을 부탁했을 때 프로이트와 융 그리고 프로이트가 수제자로 대동한 항가리 정신분석학회 회장인 샌드로 프랜치(Sandor Ferenczi)의 세 사람이 배를 타고(그 당시에는 비행기가 없었다) 그들이 여객선 죠지 워싱턴 호를 타고 8 일 만에 뉴욕에 도착했을 때 영국의 신경학자로 프로이트의 제자가 된 어네스트 존(Ernest Jones)과 함께 브릴이 부두에 나가서 그들을 응접해서 호텔로 모시고 갔다. 두 사람은 프로이트를 모시고 뉴욕관광을 마치고 기차를 타고 마사츄세츠 주의 클라크 대학으로 안내하고 그들이 미국의 방문을 마치고 귀국할 때까지 그들을 안내한 사람이다(Ernest Jones, 1955).

프로이트가 1주일 동안에 5번의 정신분석에 대한 특별한 강의를 했다. 정신분석의 소개와 신경증 이론과 그리고 치료의 과정과 무의식과 꿈 분석에 대한 치료 등을 소개를 했다. 프로이트가 해외에서 처음으로 명예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인정함으로써 미국에서 정신분석의 씨앗이 뿌려진 것에 대해서 흐뭇해 했다(Ernest Jones, 1955).

미국의 클라크 대학에서 정신분석을 소개할 때 참석한 유명한 사람들이 있다. 하버드대학에서 신경학자이자 정신과 의사제임즈 푸트남(James Putman)이 이후에 프로이트의 이론을 대학에서 그리고 논문집으로 전파시키는 장본인이 되었다. 또한 사람은 은퇴한 노년의 미국심리학의 아버지 윌리암 제임즈(William James)이다. 푸트남은 프로이트 일행이 클라크 대학에서 강연을 끝내고 4일 동안 산속에 호수가 있는 푸트남의 별장에서 휴식을 가질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해주었다(Ernest Jones, 1955).

프로이트의 미국 방문 이후 2년 만에 미국에서 가장 먼저 아브라함 브릴뉴욕 정신분석학교설립하게 된다. 그런데 그는 유럽의 정신분석학회와 달라 유일하게 의사들만 정신분석학회에 응시할 수 있도록 뉴욕 정신분석학회의 규정을 만들었다. 이것이 국제정신분석학 총회에서 문제로 등장하게 된다. 유럽의 정신분석학교들 즉 비엔나 정신분석학교, 베를린 정신분석학교, 런던 정신분석학교, 항가리 정신분석학교, 스위스 정신분석학교, 프랑스 정신분석학교 등에서는 의과대학 출신의 정신분석가와 그리고 의과대학 졸업이 아닌 일반인 분석가를 함께 배출하는데 왜 뉴욕만 의사들만 입학 자격으로 제한하는가? 에 대한 격론이 벌어졌다. 브릴은 분석가의 질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으로 물러서지 않았다. 프로이트는 여기에 대해서 간섭하지 않았다. 그것은 각 지역 학회에서 결정할 권리를 가진 것으로 인정을 하고 각 지부학회가 결정을 하도록 했다. 결국 비엔나 대학 심리학 박사 출신으로 분석가가 된 레익(Reik)에 의해서 법적인 소송 문제로 이어져서 브릴로부터 항복을 받아내게 된다. 법원은 의사가 아닌 심리학, 임상사회복지학, 5년 이상 정신병원에서 경험이 있는 간호대학 출신들에게 의사와 똑 같이 지원 응시 자격을 부여 하도록 판결을 했다.

뉴욕 정신분석학교 교수들은 명망 있는 교수들이 많다. 가장 널리 알려진 사람이 마가레트 몰러(Margaret Mahler)(프로이트의 이론을 4명의 유아들을 3년 동안 실험실에서 직접 관찰해서 분리-개인화 이론을 만든 장본인), 헤인즈 하트만(Heinz Hartmann)(ego self의 정의로 서로 구분 그리고 ego 이론의 개척자), 어네스트 크리스(Ernest Kris)(예술의 역사와 정신의학전공), 루돌프 로엔스테인(Rudolph Loewenstein)(프랑스의 정신분석학교 창설자) 그리고 에디스 제이곱슨(Edith Jacobson) 등이 있다. 제이곱슨은 독일의 하이델베르그 의과대학을 졸업한 유태인 의사로써 정신분석가가 되었다. 그녀는 나치의 박해로 독일에서 3년간 감옥에서 수감생활을 하면서 죄수들과 간수들의 심리분석의 논문을 썼다. 석방 후에 미국에 이민을 와서 뉴욕정신분석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치료와 연구를 병행해서 그녀가 프로이트의 욕구 이론과 메라니 크레인(Melanie Klein)대상관계 이론통합해서 정립한 분석가로써 공헌을 남겼다. 보드라인 그룹이라는 신조어를 만든 컨버그(Kernberg)의 저서들과 대상관계 이론에서 제이곱슨의 논문이 자주 인용되어지는 핵심 정신분석가이다. 그녀가 80회 생일 때 그녀에게 영향을 받는 대상관계 이론가들이 그녀의 이론을 현실 치료에 적용한 논문집 자아와 대상: 발달학적인 접근(Tuttman (Eds.), 1981: 주㈜: 참고)이 있다. 그녀의 연구 논물들이 프로이트의 욕구 이론영국의 대상관계 이론을 연결하는 다리를 제공한 분석가로 공로를 인정받고 있다. 여성 분석가로써 또 한 사람은 필리스 그린에이크(Phyllis Greenacre, 주㈜: 참고)로 그녀가 시카고 의과대학 졸업 후에 미국 정신의학의 대부(代父)인 아돌프 메이어(Adolf Mayer)(미국정신의학회 제 1 대 회장, DSM-Ⅰ을 만든 장본인) 밑에서 실험 심리학을 연구하다가 정신분석가가 되어 우울증연구로 공헌한 남긴 사람이다. 또 한 사람이 독일에서 의과대학을 그리고 다시 미국에 와서 컬럼비아 내과외과 대학에서 신경학을 전공한 스포트니츠(Spotnitz, 1976, 2001: 주㈜: 참고)가 있다. 그는 정신분열증의 정신분석 치료를 미국에서 시도한 첫 번째 정신분석가이다.

미국 안에서 두 번째로 정신분석학교가 설립된 곳은 시카고 정신분석학교이다. 항가리의 부다페스트 의과대학 출신으로 정신분석가가 된 세 명의 유태인 의사들이 있다 그들이 바로 센도르 프랜치, 프랜츠 알렉산더(Franz Alexander), 그리고 샌도르 라도(Sandor Rado)가 그들이다. 2세대 출신인 알렉산더가 미국에 이민으로 와서 1930년에 시카고 정신분석 학교를 설립을 했다.

시카고 정신분석 학교 교수들로써 유명한 사람들이 바로 시카고 대학의 정신과 교수인 헤인즈 코호트(Heinz Kohut)이다. 그는 프로이트가 정신분석을 신경증 환자에게만 적용하라고 한 것을 그의 이론과 기법을 수정 보완해서 나르시즘 성격장애의 치료로 확대시킨 장본인으로 공감이론을 확립시켜서 정신분석에서 치료불가라고 공인된 나르시즘의 치료에 개가를 올렸다. 그가 창설한 정신분석이 한 갈래가 자아 심리학(self psychology) 이다. 시카고 의과대학 출신들 그리고 시카고 정신분석학교 출신들이 자아 심리학자들이 많다 그 중에 대표적인 사람이 시카고 의과대학 교수이자 정신분석가로 자아 이론을 치료에 적용해서 치료되는 자아라는 저서로써 코호트의 이론을 확대 시킨 어네스트 울프(Ernest Wolf, 1988: 주㈜: 참고)가 있다. 일리노이 대학의 정신과 교수이자 정신분석학인 피터 지오나치니(Peter Giovacchini, 1972, 1977, 1978, 1986, 1990, 1993: 주㈜: 참고). 시카고 정신분석학 교수인 모르톤 질(Morton Gill, 1982: 주㈜: 참고)의 저서 전이가 있다.

미국에서 세 번째 정신분석 학교가 역시 프란츠 알렉산더와 프로이트의 제 1 세대 분석가인 변호사 출신의 분석가 한스 사크(Hanns Sachs)에 의해서 1931년에 보스톤 정신분석학교가 설립이 된다. 보스톤 정신분석학교 교수들로써 하버드 의과대학 교수인 아놀드 모델(Arnold Model, 1984, 1996, 2003: 주㈜: 참고). 헬렌 도이취(Helene Deutsch)가 있다. 도이취는 폴랜드의 유태인으로 비엔나 의과대학 정신과의사 출신으로 최초의 여성 정신분석가가 되어 프로이트의 조수를 역임을 했다. 그녀는 칼 아브라함과 에팅곤과 함께 베를린 정신분석학교를 설립 했다. 나치를 피해서 미국에 이민으로 보스톤에 정착해서 보스톤 정신분석학교 교수가 되었다. 그녀의 유명한 논문은 성격장애자를 지칭하는 마치의 성격(as if personality)신조어를 만든 분석가이다. 그 다음에 여성 분석가로써 유명한 에리자베드 제트젤(Elizabeth, Zetzel)이 있다. 그녀는 변호사의 딸로 뉴욕에서 태어나서 스미스대학 졸업 후에 영국으로 건너가서 런던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사가 되었다 그 때 정신분석학에 흥미를 가지게 되어 런던 정신분석학교를 졸업하고 정신분석가 에네스트 존에게 분석을 받았다. 그녀는 멜라니 크레인 학파인 조안 리비에, 수잔 이삭(Susan Isaacs) 그리고 도날드 위니코트에 의해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녀가 미국에 돌아와서 보스톤 정신분석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치료와 연구에 전념했다. 그녀는 유명한 치료 동맹(therapeutic alliance)라는 신조어를 만든 장본인 이다. 보스톤 정신분석학교 교수로써 유명한 또 한 사람이 하버드 의과대학 맥클린 정신병원(심리치료 전문가들이 200 )의 치료국장인 존 건드선(John Gunderson, 1984,1987, 2001: 주㈜: 참고)이 있다. 그는 하버드 의과대학과 보스톤 정신분석학교를 졸업 후 체스트낫 롯지(Chestnut- Lodge)정신병원(미국에서 최초로 정신분열증의 정신분석치료가 시작된 120 그루의 밤나무들이 있는 병원)에서 그리고 국립정신건강연구소에서 정신분열증 연구를 했다. 그 후에 그는 15년 동안 성격장애의 치료와 연구로써 마사츄세트 종합병원에서 보드라인 성격장애의 아버지라는 별칭을 얻었다. 그의 성경장애 연구의 결과는 1980 DSM-에서 처음으로 12개의 성격장애의 진단 분류로 등장하게 된다.

미국에서 네 번째로 정신분석학교가 세워진 것은 1919년에 캔사스 시티 토페카(Topeka)에서 정신과의사의 3부자가 세운 메닝그 치료소(The Menninger Clinic)에서 부설로써 1936년에 세워진 토페카 정신분석학교이다. 아버지인 찰스 메닝거(Charles Menninger)와 그의 두 아들인 하버드 의과대학 정신과 출신의 칼 메닝거(Karl Menninger)(그가 1930년에 쓴 인간의 마음의 저서는 초반기 의과대학 정신과 교과서로 사용)와 그의 남동생으로 코넬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정신과 의사가 된 육군준장 출신의 군 정신과의사인 윌리암 메닝거(William Menninger)가 있다. 그들이 힘을 합쳐서 정신의학 재단을 세워서 청소년 치료를 하게 된 것이 1919년의 메닝거 크리닉이었다. 1936년에 프로이트의 제자인 어네스트 심멜(Ernest Simmel)토페가 정신분석학교의 치료 국장이 되면서 미국의 중부지역에서 처음으로 정신분석학교를 세워서 정신분석과 심리치료에 시작을 했다. 1946년부터 메닝거 정신의학학교는 이후에 많은 인제들을 배출하게 된다. 컨버그가 칠례에서 의과대학과 정신분석학교를 졸업 후에 미국으로 와서 메닝거 크리닉에서 치료 국장으로 있다가 코넬 의과대학으로 이전을 했다. 시카고 의과대학 출신의 모르톤 질이 메닝그 크리닉곳에서 레지던트 수련을 했다. 또 한 사람으로 유명한 분석가가 된 글렌 가바드(Glen Gabbard, 2000: 주㈜: 참고)있다. 그는 시카고에서 의과대학 졸업 후에 토페카 정신분석학교를 졸업하고 26년 동안 메닝커 병원의 치료 국장으로 그리고 메닝거 재단이 휴스톤 베일어 의과대학과 통합해서 휴스톤으로 가서 휴스톤 베일러 의과대학 정신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메닝거 재단은 2005년에 세계적인 종합병원으로 연구와 치료의 명성을 가지고 있는 텍사스에 휴스턴의 베일러(Baylor) 의과대학과 통합으로 토페카에서 텍사스로 이동하게 된다. 메닝거 재단은 이름을 보유하면서 정신과 치료와 정신분석과 심리치료사를 배출한 재단으로 그리고 베일러 의과대학은 의사들의 교육과 환자 치료 분야를 담당하게 되었다(2020, 12, 6: 위키피아).

다섯 번째로 1943에 뉴욕에서 신프로이트 학파의 대부인 하리 스탁 셀리번(Harry Stack Sullivan)과 에릭 프롬(Eric Fromm), 프리다 프롬-레이크만(Fried From-Reickmann) 그리고 클라라 톰슨(Clara Thompson)뉴욕에 윌리암 알슨 하이트 학교(정신분석)를 설립하게 된다. 그들이 바로 대인관계 정신분석 학파를 탄생시킨 장본인 들이다. 이 학교는 뉴욕 의과대학의 정신분석 학교로 지정 받아서 그들의 교수들이 뉴욕 의과대학 정신과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월리엄 알슨 하이트 정신분석학교를 졸업하고 이 학교에 교수가 사람이 두 명이 있다. 한 사람이 브롬베르그(Bromberg, 1998: 주㈜: 참고) 그리고 도넬 스턴(Donnel Stern, 1997: 주㈜ 참고)이 있다. 그들은 역시 뉴욕대학 대학원 박사 후 정신분석과 심리치료 학과의 교수로 있다.

여섯 번째 정신분석학교는 정신분석의 제 2 세대인 샌도르 라도(Sandor Rado)가 미국에 이민을 오면서 1945에 설립하게 된 뉴욕의 컬럼비아 대학 정신분석학교이다. 라도(Rado)는 항가리의 부다페스트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정신분석에 매혹되어 프로이트에게 그리고 칼 아브라함에게 분석을 받아서 정신분석가가 되었다. 그에게 분석치료를 받는 사람들이 빌헬름 레이크(Wilhelm  Reicke)와 헤인즈 하트만이 있다. 항가리가 볼세비키 혁명으로 공산화가 되자 그는 미국으로 이민을 와서 컬럼비아 대학에 훈련과 연구를 위한 정신분석학교를 설립하게 된다. 컬럼비아 대학의 정신분석학 교수들은 컬럼비아 의과대학 정신과 교수들이다. 그들 중에 유명인사들이 많다. 오토 컨버그(Otto Kernberg)가 있다. 그는 신경증 그룹, 정신증 그룹으로 그 사이에 보드라인 그룹의 구분을 한 최초의 분석가이다. 그는 코넬 의과대학에서 보드라인 치료 국장으로 보드라인 연구에 많은 업적을 남겼다, 컬럼비아 의과대학교수로써 언어 정신분석가로, 런던 대학에서 첫 프로이트 기념 특강을 1년 동안 강의를 한 유명한 로이 샤프(Roy Schafer: 주㈜: 참고)가 있다, 또 한 사람으로 엄마와 아기 관계의 첫 6개월을 16mm영화 촬영기로 관찰해서 정신분석학을 실험실에서 실험 연구한 다니엘 스턴(Daniel Stern: 주㈜: 참고)이 있다. 그는 코넬 의과대학 교수로 그리고 스위스 제네바 대학에 교수로 있었다, 코넬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프로이트 밑에서 정신분석을 1년 동안 공부하고 돌아와서 제 2 차 세계 대전에서 군인들의 포탄 쇼크를 치료하고 연구하면서 1941년에 전쟁신경증이라는 저서를 출판에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개척자가 된 아브라함 카디너(Abram Kardiner)가 있다.

일곱 번째로 시카고 정신분석학교와 중부지역의 토페카 정신분석학교의 지원으로 서부의 캘리포니아의 샌프란시스코에서 1943년에 캘리포니아 정신분석학교가 설립되었다. 이후에 1946년에 샌프란시스코 정신분석학교로스엔젤리스 정신분석학교로 분리되었다.

샌프란시스코 정신분석학교 교수로 에릭슨(Erik Erikson, 1963, 1968: 주㈜: 참고)이 있다. 그는 1939년에 예일대학을 떠나서 인디언 보호구역에 있는 사우스 다코다의 시눅스(Sioux) 인디언 어린이 연구와 유커(Yurok) 인디언 어린이 연구를 위해서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으로 옮기면서 그리고 버클리 대학의 장기 어린이발달 연구 팀에 참가 했다. 그의 연구 결과는 1963년에 어린이와 사회로 출판되었다.

샌프란시스코 정신분석학교의 교수들은 캘리포니아 주립 샌프란시스코 대학(의과대학 1개로 된 종합대학)교수들이 많다. 대표적인 사람이 예일의과대학 출신으로 영국의 타비스톡 정신분석학교에서 교수를 지난 토마스 오가댄(Thomas Ogden, 1982, 1986, 1989, 1994, 1997, 2001, 2005)이 샌프란시스코 의과대학 교수로써 심각한 정신분열증 환자의 치료에 많은 서술을 남겼다. 두 번째 정신과 의사이자 정신분석가인 브라이스 보이어(Bryce Boyer, 1983, 1998)로 그는 정신분열증 환자의 치료에 대한 저서 퇴행 환자들과 반전이와 퇴행이 있다. 또 한 사람으로써 에릭 번(Eric Berne)이 있다. 그는 캐나다 태생으로 정신과의사로써 샌프란시스코 정신분석학교에서 에릭슨으로부터 개인 분석을 받았다. 이후에 그는 정신분석에서 교류분석으로 방향 바꾸었다.

L.A. 정신분석학교는 토페카 정신분석학교에서 치료 국장으로 있던 정신분석 제 2 세대인 어네스트 심멜이 L.A. 정신분석학교 창설에 기여를 했다. 1950년에 시카고 정신분석학교 창설과 보스톤 정신분석학교 창설에 공헌을 한 프렌츠 알렉산더가 남 캘리포니아 의과대학 정신과 교수로 오면서 L.A. 정신분석학교남 캘리포니아 정신분석학교분열 되었다. 일반 정신분석가(비의대출신)와 의사 출신의 정신분석가 분열이 재연되었다. L.A.정신분석학교는 의과대학을 졸업한 사람들과 일반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이 정신분석학교에 입학이 허용된 반면에 남 캘리포니아(남가주) 정신분석학교는 의대졸업생만 수용을 하게 된 것이었다.

남가주 정신분석학교의 유명 인사로는 랄프 그린슨(Ralp Greenson)이 있다. 그는 뉴욕의 컬럼비아 대학 졸업 후에 유태인에게 의과대학 입학이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스위스에 가서 베른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정신분석가로써 제 1세대인 빌헬름 스타켈(Wilhelm Stekel)에 의해서 그리고 오토 페니첼(Otto Fenichel)에게 분석 치료를 받고 미국에 귀환해서 UCLA의과대학 교수로써 분석치료를 했다. 그는 헐리우드의 배우들의 치료를 전담을 했다. 그에게 치료를 받는 헐리우드 스타들이 많다. 헐리우드의 케네디 대통령과 염문설로 유명한 여배우 마라린 몬로, 가수인자 영화배우인 프랭크 시나트라, 미남 배우인 토니 커티스 그리고 여배우인 베비안 리(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주역배우로 2번이나 아카데미 최우수 여우주연상)들을 치료를 했다. 그의 명성은 의사 캡틴 뉴먼이라는 소설과 영화(그레고리 펙 주연)의 모델 인물이 바로 그린슨이다. 그의 저서로 정신분석의 탐색(1978)과 정신분석학의 기법과 치료(1967)이 있다. 그는 정신분석 치료에서 환자와 분석가 사이에 신뢰관계를 작업 동맹(working alliance)이라는 신조어를 만든 장본인 이다.

L.A.정신분석학교에서는 창설 공로자로 오토 페니첼(Otto Fenichel, 1945: 주㈜:참고)이 있다. 그의 저서인 신경증에 대한 정신분석 이론은 의과대학의 교재로 유명했다. 그는 비엔나 의과대학 시절에 프로이트의 강의를 듣고 정신분석가가 되었다. 그는 베를린으로 가서 사회주의 정신분석가 그룹에 일원이 되었다. 그의 그룹들이 세이크필드 벤스필드(Siegfried Bernfeld), 에릭 프롬(Erich Fromm), 빌헬름 레이크(Wilhelm Reich)(그는 비엔나 의과대학 졸업 후에 정신분석가가 되어 최초의 성격장애라는 책을 출판하고 성격장애를 치료한 개척자고 그리고 과격한 혁신주의자로 나치를 피해서 미국에 이민 후에 뉴욕에서 사회주의 정신분석가로 혁명적인 활동을 하다가 공산주의 퇴출에 앞장선 멕카시즘 열풍에 투옥되어 감옥에서 죽었다), 어네스트 심멜(Ernest Simmel) 그리고 프란시스 델리(Frances Deri)(칼 아브라함과 한스 샤크에게 분석치료를 받은 일반분석가) 등이 L.A.정신분석학교를 세운 공로자들이다(2020, 12, 13: 위키피아). 아울러 심리학 박사로써 정신분석가가 된 로버트 스트롤러(Robert Stolorow, 주㈜: 참고)가 있다. 그는 UCLA의과대학 교수로써 정신분석 치료에서 상호주관의 기법을 창조한 분석가이자 철학자이다. 또 한 사람은 UCLA 의과대학 정신과 교수이자 정신분석가인 로버트 스톨러(Robert Stoller: 1975, 1973, 1979, 1991, 1990, 1985: 주㈜: 참고)이다 그는 변태성욕과 섹스 장애의 40년 동안 치료 연구와 세계적인 권위자이다. 역시 UCLA 의과대학 교수로써 정신분석가인 제임즈 그로스테인(James Grotstein, 1981: 주㈜: 참고)이 있다. 그는 영국의 대상관계 이론가인 멜라니 크레인과 윌프레스 비용(Wilfred Bion)의 이론의 지지로써 그의 저서인 쪼갬과 투사동일시(1981), 내가 우주를 흔들었나 (1981) 누가 꿈꾼 사람이고 누가 꿈을 꾸는가? (2000) 등의 저서가 있다.

이제 이야기의 방향을 돌려서 미국 전체와 전 세계의 정신분석 학교에 대해서 알아 보자. 인터넷에서 정신분석 학교의 전 세계 리스트(The List of School of Psychoanalysis)를 검색하면 다음과 같이 노트되어진다(2020, 12, 12, 위키피아).

미국에 등록된 정신분석학교가 28개였다. 그들의 리스트 들 중에는 치료가가 소유하고 있는 유명한 정신분석가의 저서들 중에 일부의 정신분석학교가 3 군데가 빠져 있었다. 뉴욕주립 대학 다운스테이트 의과대학의 교수인 랭스(Langs, 1976)가 소속된 다운스테이트 정신분석학교, 그리고 프라울리(Frawley, 1994)의 저서 어린시절에 섹스 학대를 당한 어른의 치료의 저자로 그녀가 소속된 만하탄 정싱분석학교가 빠져 있다 그리고 대상과 자아(1981)의 저자인 뉴욕의과대학 정신과 교수이자 정신분석학자인 듀트맨(Tuttman, 1981)이 소속된 연구와 훈련을 위한 뉴욕 정신분석학교가 빠져 있었다.

다시 정리를 하면 미국이 28, 영국 2, 캐나다 4, 프랑스 6, 스페인 2, 이태리 2개 스웨덴 1, 놀웨이 1, 폴투갈 1, 브라질 11, 아르헨티나 4, 페루 1, 멕시코 1, 칠레 1, 레바논 1개 등으로 등록되어있다. 그러나 아시아의 나라들은 등록된 정신분석학교가 한 개도 없다.

이제 정리를 해 보자.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름난 저명한 정신분석가들이 미국의 종합 대학에 포진해있다. 그들은 대학에서 정신분석학을 강의를 한다 그러나 그들이 정신분석가를 탄생시키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종합대학에서는 정신분석학과가 없다(뉴욕대학, 컬럼비아대학은 제외).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정신분석가들이 항상 그 지역의 정신분석학교에 소속되어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프로이트의 전통에 따른 것이다. 프로이트는 의과대학을 졸업한 의사들을 교육시켜서 정신분석가들을 탄생시켰다.  고로 대학에서 다양한 심리치료학들 예를 들어서 행동치료학, 인지치료학, 가족치료학, 최면치료학 등을 배운 사람들이 정신분석학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정신분석학교에 가야 한다는 뜻이다.

뉴욕의 컬럼비아 대학의 훈련과 분석을 위한 정신분석학교박사학위를 가진 정신과 레지던트들, 혹은 치료 심리학 인턴들이 지원할 수 있고 그리고 학업은 평균 5(7년까지 연장이 가능)으로 과목 이수, 실제 분석치료, 관찰 그리고 스승에게 개인분석의 과정을 이수하게 된다(2020, 12, 6: 위키피아).

치료자가 남 캘리포니아 정신분석학교에서 구입한 1992-1993년의 입학 안내서를 소개하고자 한다. 2년 코스3명-4명의 소규모의 슈퍼비전으로 이 학교에서 자격증이 제공된다. 학기를 10월에 시작된다. 년간 20회의 2시간씩 슈퍼비전이 계획되어져 있다. 입학 자격은 의과대학의 레지던트 1년을 수료한 사람이 응시할 수 있다. 프로그램 내용은 역동적정신의학 안에서 교육이 이루어진다. 등록되어 소개된 교수들(정신과의사들) 52명이다.

교육 내용은

1년 차

1학기 (저녁 7:15-8: 30)

 정신분석학적인 사상의 기초, 치료적인 장애 (신경증), (히스테리아, 강박증, 공포증), (우울증, 조증 그리고 감정들), (보드라인과 나르시즘 장애), (심리신체 조건들), (중독들)

2학기(저녁 8:45-10:00)

 기법 Ⅰ(전체 소개), (정신분석적인 경청), (초반기 인터뷰와 역동학의 공식), (저항, 전이, 반전이와 해석), (꿈 분석), (간단한 역동적 치료들)

 

2년 차

 

1학기(저녁 7:15-8: 30)

치료장애들 Ⅶ(섹스의 문제들), (정신증들), 발달 Ⅰ(소개와 어른들과 관계들), (유아기), (오디팔과 잠재기),(청소년기), (성인기의 역동적 문제들)

2학기(저녁 8:45-10:00)

 마음의 모델 Ⅰ(대상관계들), (크레인과 비용),  (위니코트와 다른 사람들). (자아-심리학), 기법(보드라인과 나르시즘성격들), (심리치료 안에서 문제들), (치료 종결)

 

남 캘리포니아 정신분석학교

주소(전화): (310) 267-2455)

 

Southern California Psychoanalytic Institute

9024 Olympic Boulevard

Beverly Hills, California 90211

U. S.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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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 가족 치료 학교

주소(전화): (818) 509-5959

 

California Family Study Center

5433 Laurel Canyon Blvd.

North Hollywood, California 91607-2139

U. S. A.

 

캘리포니아 심리전문학교

주소(전화(: (800) 457-1273

 

California School of Professional Psychology

2749 Hyde street San Francisco

California 94109

U. S. A

 

프로이트는 100년 전에 정신분석을 창조하면서 정신분석이 굳이 정신의학 심리치료에만 국한 시켜서는 안 된다 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고로 유럽에서는 의사가 아닌 일반 분석가들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다양한 분야들 즉 문학, 심리, 교육, 예술, 철학, 역사, 인류학, 고고학, 종교학 등의 전문가들이 정신분석가가 됨으로써 그들의 분야와 정신분석이 통합되어 일반생활로 확대되어져 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프로이트는 알고 있었다. 이제 프로이트가 예견한 대로 사회 곳곳에서 이러한 현상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바로 프로이트의 천재성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이제 이야기의 방향을 돌려서 정신분석이 영향을 미친 또 하나의 핵심 분야가 있다. 바로 범죄심리학이다. 우리가 어린시절에 즐겨 읽었던 그리고 지금도 드라마로 상영되어지고 있는 영국의 작가인 코난 도일(Conan Doyle)사일록 홈스(Sherlock Holmes)의 이야기로써 홈스와 왓트슨(Dr.Watson) 박사가 콤비로 과학적으로 범죄수사를 하는 단편 소설로써 인기가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소설이다.

그런데 뉴욕에서 실제로 유사한 문제가 등장하게 된다. 1950년에 뉴욕의 경찰청의 수사국장이 골머리를 앓게 된다. 범죄인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그들의 검거에서 문제가 생기게 되었다. 수사관들이 범죄인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저인망수사 방식으로는 범죄인을 체포하는데 문제가 생기게 된 것이다. 과거에는 원한, 복수, 적개심 때문에 살인을 하는 범죄자들이 많았지만 그 시점에서 불특정 다수 즉 아무런 원한 관계가 없는 사람들을 살해하는 연쇄살인범들이 등장하게 되면서 수사관들이 골머리를 앓게 되었다. 예를 들어서 한 범죄인(윌리암 하이렌스)은 살해 후 희생자의 벽에 낙서로써 내가 더 많은 사람을 죽이기 전에 제발 나를 붙잡아 주세요, 내가 내 자신을 억제할 수 없습니다라고 쓴 낙서가 수사관 들을 조롱을 했다. 특별히 1956년 뉴욕에서 8년 동안 미친 폭파범으로 32개의 폭발물을 남긴 범인을 찾을 수가 없었다. 수사국장은 골머리를 앓게 되었다. 그는 한가지 아이디어를 생각을 했다. 바로 정신분석가를 찾는 것이었다.

정신분석가들은 환자를 수년 동안 치료를 하면서 그들의 증세의 흔적을 찾아간다, 어린시절에 양육의 과정과 학대, 박탈, 착취 등의 상처를 받아서 그들의 성격이 삐뚤어지고 파괴되어진 것들이 환자들의 치료 과정에서 드러나게 된다. 이것을 착안해서 수사국장은 뉴욕에서 이름난 정신분석가인 제임즈 브러셀 박사를 찾아갔다.

그에게 지금까지 증거들을 보여주면서 이 범인이 어떤 인간인가? 를 분석을 요청을 했다. 그 분석가는 증거들을 면밀하게 검토한 결과 그는 그 범인이 40대 초반으로 그의 글씨에서 W자의 끝이 꾸부러진 것으로 보아서 엄마의 유방에 애착을 가진 백인 남자로 아버지를 싫어하고 엄마와 함께 살고 있는 사람으로 이민을 온 사람으로 깔끔한 더블재킷을 입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분석을 했다. 그것을 바탕으로 수사를 해서 그 범인이 체포 되었을 때 그 분석가가 기술한 내용이 그가 어머니가 아닌 누나와 함께 살고 있다는 것 이외에 98%가 정확했다. 체포되었을 때 그는 정말로 더블재킷을 입고 있었다(Ressler, 1993: 주㈜: 참고).

그 분석가의 분석에 감탄하게 된 수사국장은 바로 정신분석적인 과정을 수사에 도입하게 된다. 그래서 FBI에 행동분석 연구실을 설치하고 범인의 행동의 연구에 돌입하게 된다. 여기에서 탄생한 제 1 세대가 바로 FBI에서 30년을 근무하고 은퇴한 로버트 레슬러(Robert Ressler) 1993년에 쓴 괴물과 싸우는 사람들이다. 이 책은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우리나라에서 1994년에 미래사에서 번역으로 FBI 심리분석관) 그리고 그의 후배인 존 더글러서(John Douglas, 1995: 주㈜: 참고)가 은퇴하면서 쓴 마음의 사낭꾼”(Mindhunter)(우리나라에서 1999년에 김영사에서 번역한 마음의 사냥꾼)가 있다.

레슬러는 정신분석가들의 기법을 응용을 해서 미국의 연방교도소, 혹은 주 교도소에 수감되어져 있는 사형수 혹은 종신형의 죄수들의 심리분석에 들어갔다. 그는 각 교도소를 찾아 다니면서 흉악범들의 인터뷰를 시작했다. 그들의 어린시절의 학대, 박탈, 착취 등을 분석해서 컴퓨터로 범죄인의 유형을 분류하는 작업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감옥소에 들어갈 때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고 했다. 그들을 면회할 때 무기를 소지하고 들어갈 수가 없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환자들을 어떻게 마음을 다독거리고 인터뷰에서 그들의 어린시절의 성장과정을 토해내게 하는가? 에 올인을 했다. 그는 죄수들에게 그가 원하는 교도소로 보내주는 조건으로 그리고 그들에게 특별한 대우를 제시하는 방법으로 드디어 전국의 교도소에서 약 100명의 사형수와 종신형을 받은 죄수들을 면담으로 인터뷰를 진행을 했다. 그들의 어린시절을 분석하면서 레슽러는 깜짝 놀랬다. 레슬러는 그의 저서에서 그들이 어린시절에 사랑을 받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고 노트를 했다. 대부분이 빈곤한 가정과는 달리 수입이 안정된 가정에서 그리고 지능이 높고 IQ 120 이상인 법대생도 몇 명 있었다. 겉보기에는 정상적인 가정으로 보였지만 모두가 가정에 문제가 있었다. 부모의 70%가 알코올과 마약 중독자였고 50%가 부모가 범죄에 관련되어있었다, 그들의 공통점이 어린시절에 감정적인 학대, 폭력, 착취를 당했고 연쇄살인범의 70%가 변태성욕자로 섹스 기능에 문제(프로이트의 섹스 이론이 드디어 인정)가 있었다. 희생자의 신체적 훼손은 섹스적인 암시를 가진 것으로 분석되었다. 특별히 그는 어린시절에 심리적인 학대와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 그들의 증오, 적대감, 분노외부의 세계로 향할 때교도소를 들락날락하는 범죄자가 되고 반면에 그들의 적대감정이 내면의 자아로 향하게 될 때 정신병원에 들락날락하는 정신병자가 된다라는 정신분석가들의 이론을 입증을 했다(김종만 정신분석학적인 관점에서 본 자아의 성장과 발달, 2 장 변태성욕자와 연쇄살인범, 1999, pp. 219-236).

레슬러는 이 자료를 바탕으로 정신분석 기법을 꺼꾸로 해서 증거, 흔적, 남긴 행동들의 특징 들을 모아서 그 범인의 성격, 인격을 찾아내는 프로파일(profile) 작업을 했다. 이것을 프로파일링이라고 부르고 이것을 하는 전문가가 프로파일러이다. 그들은 범죄 현상에 제일 먼저 가서 범죄인들이 남긴 흔적, 증거, 행동 특징들을 모아서 범인의 프로파일을 만들어서 수사관들에게 넘겨주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범죄 현장에서 증거들에 신경을 쓰지 않는 경우에는 정신병환자로 그리고 증거 인멸을 한 경우에는 정상인으로 분류 작업을 해 나갔다. 그리고 심리학에서 사용하는 인터뷰 기법어린시절의 양육과정과 부모와 자녀의 관계들을 분석해서 범죄인의 행동과 심리적인 특징을 분류해서 조직화 했다. 그가 바로 범죄인들이 원한과 복수와 관계없이 불특정 다수를 살해하는 범죄인 즉 연쇄 살인범(serial killer)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낸 장본인이다.

레슬러의 연구팀이 이러한 작업을 완료함에 따라서 FBI가 버지니아 대학원에 범죄 심리학과(심리학+법학)를 창설하고 요원을 양성하기 시작을 했다. 이것이 바로 FBI의 심리분석관들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레슬러가 30년 동안 범죄심리 분석관에서 은퇴하고 쓴 베스트셀러가 된 저서 괴물과 싸우는 사람들을 본 영화제작자들과 감독들이 찾아와서 자문을 구한 영화가 바로 양들의 침묵, CSI 영화(라스베가스, 뉴욕, 마이애미), 크리미널 마인드(Criminal Mind) 등이 그들이다. 그러나 영화와 달리 심리분석관들은 제일 먼저 범죄현장에 가서 증거를 수집해서 그것을 바탕으로 범인의 인상(성격, 인격)분석을 수사관들에게 제출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그들이 직접 수사를 하지 않는다고 노트하고 있다. 드디어 FBI 안에서 이들에 의해서 30년 동안의 과학적인 범죄 수사가 정상적인 괘도에 오르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직접 정신분석가가 교도소에 뛰어들어가게 된다 그가 바로 하버드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컬럼비아 대학의 정신분석학교를 졸업하고 정신분석가가 된 제임즈 겔리간(James Gilligan, 1996: 주㈜: 참고)이다. 그는 교도소에서 30년간 죄수들의 심리치료와 그들의 심리를 연구했다. 그는 4권의 저서를 냈다 그 저서들은 모두가 폭력(violence)이라는 제목으로 출판을 했다. 그는 저서에서 어린시절에 상처들은 나이가 어린시절 일수록 심각도는 커다. 1살 때 상처와 7살 때 상처는 1살 때 상처가 몇 배가 크다는 정신분석의 이론을 확인을 했다. 범죄인들의 특징이 충동적이고 좌절에 참을 수 없는 폭발적인 행동으로 그들은 어린시절에 받은 수치심과 모욕과 분노에 찌들린 사람들로 평소에는 억압되어져 무의식 속에서 남아 있다가 어느 한 순간에 그것에 도화선으로 연결되어져서 모욕, 수치심이 폭발하게 된다고 그들의 특징들을 노트를 했다. 이것을 정신분석에서는 acting out 이라고 부른다. 언어구사력이 저조하고 은유적 능력의 부재로 추상적인 사고 능력의 결함으로 보고 있다. 그와 같은 범죄학자들에 의해서 소시오패스 (sociopath)(반사회적 성격장애) 그리고 사이코패스(psychopath)(정신병범죄자)라는 용어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또 한 사람의 범죄심리학자가 된 정신분석가는 치료사가 자주 인용하는 무의식의 탄생: 역동적 정신의학의 진화와 역사를 저술한 엘렌베르그(Ellenberger, 1970)가 미국에 이민으로 메닝거 클리닉에서 교수로 재직하다가 캐나다의 몬트리올 대학으로 이전 후에 범죄심리학자가 되었다(2020, 12, 19: 위키피아).

치료자(필자)가 미국에서 10년 동안 공부를 끝내고 귀국해서 부산의 수산대학에서 심리학 개론을 강의를 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심리학 개론 서적들이 주로 실험과 이론의 중심이기 때문에 심리학을 소개 받는 학생들의 호기심과 흥미를 불러일으키기 어렵다는 것을 인식하고 학생들에게 특별하게 심리학의 실험과 이론에다 정신분석을 접목시키기로 했다.

강의를 듣는 학생들은 두 가지 중에서 선택하도록 했다. 첫 번째는 치료자의 강의를 듣고 노트를 해서 필기시험을 치는 일반적인 과정이다. 두 번째는 필기시험 대신에 자신의 자아를 분석하는 것이다. 어느 것을 선택하는가? 하는 것은 학생들의 몫이다. 자아의 분석은 프로이트의 꿈 해석이라는 저서를 읽고 스스로 자신의 무의식의 분석을 해 오는 것이다(self study). 강의시간에 1시간 정도 꿈 해석과 자아 분석을 다루는 것을 설명하고 끝난다. 학생들은 스스로 그 책을 읽고 혼자서 분석을 해서 중간고사를 대신하는 것이다. 꿈 해석은 대학생들이 꼭 읽어야 하는 교양 100에 포함되어있는 책이다. 이 책을 읽어보고 자신의 꿈을 분석해서 무의식을 찾아내는 것이다. 치료자는 꿈 해석에 대해서 간단하게 설명을 한다. 이 책은 1900년에 프로이트가 출판한 100년 전의 책으로 지금 읽어도 손색이 없는 최고의 걸작품이다. 어떻게 꿈을 분석하는가? 는 강의시간에 다루지 않는다. 이 리포트를 선택하는 학생들은 이 책이 며칠 만에 읽어낼 수 있는 책이 아니다. 정독으로 하루에 몇 페이지씩 꾸준히 읽어가야 한다. 이 책의 4분의 1의 초반부에는 프로이트가 꿈을 연구한 학자들의 논문 분석을 소개한 것으로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그 부분은 정독하지 않고 그냥 읽고 통과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 프로이트가 자신의 꿈을 분석한 일마(Ilma)의 주사 꿈부터 정독을 한다. 여기에서 그 다음 프로이트가 꿈을 분석하는 것을 정도그로 잘 읽어보면 학생들이 어떻게 자신의 꿈을 분석할 것인가?를 알게 될 것이다. 수면의 한 사이클은 90분으로 새벽에 주로 꿈을 꾼다. 꿈을 꿀 때는 얕은 잠이기 때문에 쉽게 일어날 수 있다. 꿈을 꾼 이후에 재빨리 일어나서 꿈을 기록해 놓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꿈의 내용은 날아가버리고 몇 조각만 남는다. 고로 잠들기 전에 머리 맡에 연필과 노트를 준비해 둔다. 꿈은 자아의 무의식의 활동 퍼즐처럼 조각조각으로 뒤죽박죽이다. 이것을 꿈 자극(꿈꾸지 몇 일 전의 현실의 자극)을 찾아내서 꿈 조각들을 연결 시켜서 무의식의 기억 속에 저장된 꿈 사고를 찾아내야 한다. 반드시 프로이트의 꿈 해석을 읽어보고 자신의 꿈을 분석해 와야 한다. 꿈 해몽은 0점 처리한다. 더 붙여서 2시간 특강으로 논술 쓰기를 지도한다. 서론, 본론, 결론을 어떻게 만들어서 연구물 보고서(리포트)를 작성하는가?을 강의한다. 필자가 미국에서 울면서 배운 2년 동안의 논술 습작을 학생들에게 소개를 한다. 논술은 짜집기를 하면 안 된다. 자신이 읽은 내용들을 완전히 이해를 해서 자신의 글로 써야 한다(내용을 보고 쓰지 않고 혼자서 머리 속에 이해된 것으로 써 나간다). 서론은 본론에서 전개되어질 내용의 목적과 전개 과정을 소개하는 글이다(전체 논술의 4분의 1정도). 본론은 연구한 내용을 기술하는 글이다(전체의 4분의 3). 결론은 연구한 내용의 핵심을 요약하는 것이다(전체의 4분의 1정도).

채점에서 필기시험은 100점 만점이 최고점수이다. 대신에  꿈분석은 자신의 무의식을 정확하게 찾아낸 사람들은 100이다. 여기에 서론, 본론, 결론과 분석의 내용이 뛰어난 작품에는 보너스 5점의 가산점을 부여한다. 고로 최고점이 105이다. 프로이트의 꿈 해석의 번역판은 우리나라에서 7개 정도인데 내용을 읽어보고 자신에게 가장 알맞은 번역서를 선택하도록 한다. 리포트는 A4 용지로 글자 크기 10으로 10페이지-15페이지의 분량으로 10페이지 이하는 받지 않는다는 조건이 붙어있다.

학생들의 호기심은 폭발을 했다. 90% 학생들이 자신의 꿈분석에 도전을 했다. 그러나 꿈 해석이라는 어려움 때문에 절반의 학생들이 꿈분석을 포기하고 필기 시험을 선택을 했다. 에피소드가 속출했다. 평소에는 꿈을 잘 꾸었던 학생들이 정작 꿈해석을 정독하고 프로이트의 꿈분석에 자신이 생겨서 정작 자신의 꿈을 분석하려고 시도를 할 때 꿈이 꾸어지지 않는다는 호소였다. 할 수없이 엄마의 꿈 혹은 친구의 꿈을 분석해와도 좋다고 했다. 일부 학생들은 인터넷에서 혹은 동료들 한데서 꿈을 삽니다 라고 유머를 퍼뜨리기도 했다. 이러한 시행착오를 그치면서 치료자는 그 다음 학기부터 첫 강의시간에 미리 꿈을 꾼 것을 노트해 가면서 꿈 해석을 읽게 했다. 꿈을 여러 개 노트해서 나중에 분석을 할 때 그것을 한 개 혹은 두 개 혹은 여러 개를 선택해서 분석하도록 했다.

기말 고사는 필기시험을 선택하든지 혹은 중간고사에서 필기 시험을 친 학생들이 꿈 분석을 해 올 수 있다. 중간고사에서 꿈분석을 한 학생들은 기말고사에서는 작품, 영화, 연쇄살인범의 분석 3개 중에서 한가지를 선택해서 주인공의 심리를 분석해 오는 것이다.

작품의 분석으로는 신의 아그네스(어린시절에 알코올 중독자인 엄마로부터 섹스 학대로 수녀원에 보내진 주인공이 임신으로 출산한 아기를 살해한 사건으로 미쳐버린 정신분열증 환자를 정신분석가가 치료를 통해서 원인을 밝혀내는 과정), 에쿠우(쇠꼬챙이로 6마리의 말의 눈을 찔러 실명시킨 17세의 소년(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의 정신분열증을 치료하는 정신분석가)이다. 이 두 작품들은 서울에서 연극 무대에서 오랫동안 공연한 작품들이다. 그 다음에 한 작품은2004년에 노벨 문학상을 받은 오스트리아의 작가인 알프리데 젤리네트(Elfriede Jelinek)의 소설 피아노를 치는 여자이다. 이 작품은 작가의 어린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작품으로 현대 젊은이의 초상화로 불리는 작품이다. 경제적인 능력이 없는 무능한 아버지, 피아노 교습으로 살아가는 어머니와 딸의 성장과정으로 아버지의 사망 후에 어머니의 혹독한 피아노 훈련과정에서 학대와 박탈(청소년기)를 당한 주인공이 어른이 되어서 사랑을 할 수 없는 변태성욕자로 전락하는 과정을 그린 것이다.

이 작품은 변태성욕의 5개의 장애들이 등장한다. 만약에 이 작품이 노벨 문학상을 받지 않았다면 학생들로부터 고소를 당했을 것이다. 변태성욕 책을 학생들에게 소개한 죄로 신문과 TV방송에서 난리가 났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이 노벨 문학상을 받았고 독일의 대학원에서 이 작품이 다루어진다는 것을 번역가가 소개하고 있기 때문에 학생들은 불평불만이 없었다. 이 책은 프로이트가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라는 질문에 사랑하고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한 말이 증명된 책이다. 주인공을 사랑을 할 수 없다. 만나는 남자들이 모두 떠나갔다. 어린시절에 대학의 피아노 교수가 꿈이었던 주인공은 지금은 평범한 피아노 교습으로 어머니의 뒤를 이어가고 있다. 그녀는 피아노 교습을 받고 있는10살 아래의 공과대학생을 사랑하게 되었으나 버림받아서 자신의 칼로 어깨를 찌르고 울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마지막 장면이다.

그녀의 변태성욕적인 행동들이 적나라 하게 묘사되어져 있다. 연인에게 그녀 자신을 수건으로 묶고 매질하고 폭언을 하라고 요구하는 마소키즘적인(피학성변태성욕) 행동을 보인다. 작가인 엘리네크는 노벨상 시상식에 나오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녀는 심각한 광장공포증(넓은 장소에 나갈 수가 없는 불안장애) 그리고 대인공포증으로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2020, 12, 19: 위키피아).

두 번째 선택은 영화 속의 주인공의 심리분석이다. 실화로써 유명한 아름다움 마음(beautiful mind)(2001년 상영)(정신분열증 환자로써 1994년에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존 내시의 영화)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샤인(Shine)으로 호주의 천재 피아니스트 데이비드 핵프갓의 이야기로 실화이다. 그는 어린시절에 아버지의 대리만족의 대상이 되어 아버지의 꿈인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피아노 곡인 러시아의 작곡가의 작품인 라흐마니프 제 2악장을 배워야 한다고 강압으로 청소년기를 박탈당한 천재 피아니스트로써 영국왕림음대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기절해서 정신병원에서 15년 동안 보낸 이후에 회복의 과정을 그린 영화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2007년의 영화인 세비지 그레이스(Savage Grace)이다. 이 영화 역시 실화로 플라스틱으로 백만장자가 된 베이클랜드 가문이 손자로써 어린시절에 어머니로부터 분리되어 개인화에 실패로 정신분열증 환자가 되어 어머니를 살해하고 외할머니를 살해 미수로 감옥에 감금되어 있다가 스스로 자살한 사건이다. 위의 세 작품 중에서 한가지를 선택해서 분석해 오는 것이다.

세 번째 선택은 연쇄살인범의 범죄인 심리분석이다. 우리나라에서 첫 연쇄살인범들로 지존파의 6이다. 그들은 한결같이 어린시절에 부모로부터 학대로 버려진 청소년들로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와 증오심과 복수를 사회 탓으로 돌려서 오랜지족(재벌 3세들)과 돈 많은 부자들을 모두 살인하자는 계획을 세우고 고급 승용차를 다고 가던 한 중소기업 부부를 살해하고 인육을 먹은 살인범으로 체포되어 사형을 당한 범죄인들 이다. 그 중에 두목격인 K군은 죽으면서 3살 때 자신을 고아원에 버리고 간 어머니를 죽이지 못하고 가는 것이 한이 맺힌다고 말을 했다(여성 증오범). 두 번째로 화성연쇄 살인사건이었다. 13명의 여성들 즉 어린 여학생으로부터 노인까지 살해한 연쇄살인 범의 범죄인 인상분석이었다. 한 학생이 그의 리포트에서 이 범인은 틀림없이 지금 교도소에 있을 것이다라고 결론을 내린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의 분석은 뛰어났다. 그 범인은 최근에 밝혀져서 화재가 되고 있는 L씨로 그 시점에서 그는 교도소에서 복역하고 있었다. 세 번째 2007, 4, 16미국 버지니아 공대의 기관총 난사사건으로 32여명의 학생들이 총격으로 사망한 우리나라에서 이민간 조성희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노무현 대통령이 사과문을 전달했던 사건이다. 그가 가족과 함께 미국 이민을 떠난 초등학교 시절에 그는 대인공포증으로 동료들과 어울리는데 문제가 있었다. 그가 어떻게 살인범이 되었는지?를 분석해오는 범인 인상분석 보고서였다.

학생들의 흥미가 최고조에 달랬다. 그들이 입소문으로 교양선택 과목인 심리학 개론 수업에 몰려들었다. 치료자가 그 대학에서 20년 동안 강의를 하면서 최대의 극장 강의실에서 100명의 정원을 넘어서 110명으로 강의실을 매웠다. 치료자의 강의를 들었던 학생들 중에서 3명이 앞으로 심리학 쪽으로 전공을 바꾸겠다고 찾아온 학생들이 있었다 한 사람은 일본에 유학해서 발달심리학을 전공하고 있다는 편지와 그가 연구논문의 준비로써 설문조사를 부탁을 해서 치료자가 강의를 듣고 있는 100명의 학생들에게 설문조사를 해서 도와준 일이 있었다. 나머지 두 사람은 심리치료학으로 전공을 바꾸겠다고 치료자의 강의 노트과 서적을 구입해 갔다. 치료자에게 4년 동안 심리치료를 받은 4명의 대학생들이 전공을 심리학으로 복수 전공으로 바꾸었다. 명문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하는 한 학생이 심리학 복수전공으로 그리고 또 한 사람은 역시 명문대학 역사를 전공하는 학생으로 심리학 복수 전공으로 바꾸었다. 그들이 정신분석을 전공하겠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한 사람은 학교상담 교사가 되기를 결정하고 대학원진학으로 공부를 하고 있다고 연락이 왔었다. 그리고 나머지 한 사람은 5년 전에 1년 동안 심리치료를 받았던 사람으로 얼마 전에 전화로 그가 정신분석에 도전하겠다고 알려왔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심리적인 문제들부부 문제, 섹스문제, 폭력문제, 정신병, 범죄 등에서 심리학에 대한 요구들이 급증하고 있다. 치료자가 공부를 했던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50년 전인 1969년에 벌써 이러한 심리적인 문제들에 대한 대책으로 캘리포니아 주()의 심리학회가 매년마다 캘리포니아 주() 안에서 종합대학에서 배출해내는 치료심리학, 상담심리학의 전문 박사들이 50명이 안 된다는 것에서 이것에 대한 대책으로 캘리포니아주의 정부의 지원으로 샌프란스시코, 로스안젤리스, 샌디아고 그리고 프레스노의 4군데에 심리전문학교를 설립을 했다. 그들이 바로 캘리포니아 심리전문학교이다(California School of professional Psychology)(CSPP). 여기에서 매년 100명의 심리전문가들이 배출되고 있다. 각각의 학교에서는 교수진이 전임과 강사들을 포함해서 100명 이상의 교수진으로 구성되어져 있다.

1991년도에 소개된 프로그램에서 CSPP는 임상심리학(치료), 상담 심리학 그리고 산업과 조직심리학(심리학 + 경영학)의 박사과정을 모집하는데 학업기간은 심리학 박사(psy. D.) 4년 과정으로 그리고 철학박사(Ph.D) 5년 과정으로 이들 학교들 안에서 지금 1000여명이 재학 중이고 이 대학에 응시생들은 반드시 대학원에서 심리학 석사 과정을 완료한 사람들이다(교육심리학, 카운슬링 심리학,  행동분석과 치료, 재활 심리학, 사회심리학, 실험 심리학) 그리고 심리학 준비를 위한 대학원 GRE 점수 혹은 대학의 심리학 GRE(평균 3.0-4.0 이상)가 적당해야 한다고 소개를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정리를 해 보자, 정신분석은 고물전에 있는 학문이 아니다. 전 세계의 곳곳에서 확대되어져 가는 것을 보면 충분히 이해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나라에서는 몇몇 분석가들을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아직도 깜깜한가? 왜 유행을 타지 않는가? 하는 이유는 이 분야가 너무 어렵고 정신분석가가 되는 것이 너무 오랜 기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도전자가 많이 없다는 것이라고 본다. 정신분석가들 중에서 유태인들이 많은 것은 그들의 탈무드 교육이 우리나라처럼 부모가 학력을 중시한다는 것과 그리고 한 분야에 끈질기게 도전하라고 가르치는 정신이라고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 속담에 우물을 파거든 한 우물을 파라고 한 말이 생각이 난다.

흔히들 정신분석이 비과학적이다. 혹은 섹스에 너무 치중해 있다, 혹은 소설적이다 라는 비판들을 많이 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한번씩 정신분석 전문 서적들을 읽어보고 너무 어렵고 난해해서 몇 개의 서적들을 읽고 나서 정신분석은 너무 오래된 것이어서 실용가치가 없다라고 비난을 하는 사람들로 보여진다. 즉 프로이트가 방어이론에서 이솝 우화를 따와서 설명한 명언이 생각난다. 여우가 포도 나무에 열린 포도를 따먹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했지만 결국은 따먹지 못하고 돌아가면서 하는 말이 저 포도는 씬 포도여서 먹을 수가 없다. 주어도 먹지 않겠다라고 말을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본다.

정신분석은 앞으로 도전해볼 만한 학문이다. 심리치료 혹은 심리상담을 10년 동안 하고 나면 정신분석을 찾게 될 것이다. 더욱 더 깊은 분석이 환자들의 치료에 요구 되어지기 때문이다. 필자는 총 38년 중에서 28년을 정신분석에 올린 하고도 쩔쩔매고 있는 내 자신을 보면서 내 발자국을 따라오는 사람들에게 정신분석에 대한 위와 같은 정보를 제공하면서 도전해볼 것을 권유한다. 정신분석은 앞으로 계속해서 전 세계에 있는 수 많은 학자들에 의해서 끝없이 개발되어지고 치료에 응용되어지게 될 것이라고 확신을 한다 그 이유는 과학이 발달 하면 할수록 정신이상자가 늘어나고 치료가 점점 어려워지게 되어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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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프(Schafer). 깨달음과 해석(2003), 분석적 태도(1983), 나쁜 느낌(2003), 내면화의 과정(1968), 정신분석을 위한 새로운 언어(1976), 다시 이야기하는 삶(1992)

그린슨(Greenson). 정신분석의 기법(1968), 정신분석의 탐색(1978)

스트롤러(Stolorow). 정신분석 치료에서 상호주관(1978), 존재와 맥락(1992), 경험의 세계(2002), 구름 속에 얼굴(1978)

스톨러(Stoller). 변태성욕(1975), 쪼갬: 여성의 남성상 치료(1973), 섹스의 흥분(1979), 열정과 고통(1991), 친밀한커뮤니케이션(1990), 에로틱한 상상의 관찰(1985).

크로트스테인(Grotstein). 쪼갬과 투사동일시(1981), 누가 꿈을 꾸고 누가 꿈꾼 사람인가?(2000), 내가 세상을 흔들었나?(1990)

페니첼(Fenichel, 1945). 신경증에 대한 정신분석이론

랑스(Langs, 1976). 두 사람 분야

보이어(Boyer). 퇴행환자(1989), 반전이와 퇴행(1998)

에릭슨(Erikson). 어린시절과 사회(1963), 주체성 위기(1968)

스포트니츠(Spotnitz). 정신분열증환자의 현대적 정신분석(2001), 정신분열증, 심한 성격장애 치료(1976)

길리간(Gilligan, 1996).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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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전문가들의 저서들은 치료자가 우리나라 말로 번역해서 소장하고 있으니 치료자의 홈 페이지에서 전문서적 안내에 들어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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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오늘날 환자가 카우치에 누워서 정신분석 치료를 받는치료를 받고 있는 현대적인 모습

 

아래의 홈페이지는 심리치료 혹은 심리상담에 대한 미국 대학에서 경쟁비율과 심리치료, 심리상담 그리고 정신분석과 정신건강의학(신경정신과)과 의사들의 차이의 글들을 치료사의 홈페이지에 소개된 것을 인용한 것이다.

 http://www.goldenbellman.pe.kr/images/newfile3_html_smartbutton1.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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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리상담과 심리치료는 정확한 구분은 없습니다. 심리상담은 영어로 counseling 이라고 부르고 심리상담을 하는 사람은 카운셀러로 영어로는 counselor라고 부릅니다. 대신에 심리치료는 영어로 psychotherapy라고 부르고 심리치료를 하는 사람을 치료자 즉 therapist라고 부릅니다. 정신분석은 후자 쪽에 가까우며 영어로 psychoanalysis라고 부르고 치료자 대신에 정신 분석가 혹은 분석 치료자로써 psychoanalyist라고 부릅니다. 하는 분야는 구분이 없지만 용어가 다른 만큼 교육을 받는 과정이 다르고 치료를 하는 대상이 다릅니다.

심리상담인 카운셀링(counseling)과 심리상담가인 카운셀러(counselor)

 심리 상담을 전공하는 사람들은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교육 대학원에서 2-3년의 교육을 받고 2-3년의 인턴 과정을 거침니다. 고로 공부하는 기간을 합치면 약 5년의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교육 대학원 소속으로 주로 학교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카운셀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어떤 대학에서는 학교 상담 혹은 학교 카운셀러로써 school counseling 혹은 학교 심리학 school psychology라고 부릅니다. 우리나라에도 이제는 대 규모 대학에서는 대부분이 학교 상담 혹은 상담 심리학이 개설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교실에서 이론은 많이 배우는데 비해서 상담 실무가 미흡한 점이 단점입니다. 직접 학생들을 상담해서 문제를 해결해 나가도록 도와주는 실무에서 부족함이 많은 실정입니다.

 카운셀러들이 다루는 문제들은 치료를 요하는 문제들이라기 보다도 주로 건강한 학생들이 문제를 가지게 될 때 이들을 대상으로 상담해서 조기에 문제를 발견하고 심한 문제를 가진 학생들을 가려 내어 부모님들에게 알리고 전문가의 치료나 도움을 받도록 알선해 주는 것이 주요 임무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제는 초, , 고등학교에 상담 전담 카운셀러를 배치해서 학생들의 문제 해결에 전문적인 도움을 제공하려고 교육 자원부에서 제출한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어 조만간에 각 학교별로 상담을 전담하는 전문 카운셀러가 배치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카운셀러들은 몇 번의 상담으로 학생들의 문제가 대충 어떤 것인지를 알고 문제가 더 확대되지 않도록 도와주고 부모님에게 학생의 문제 해결을 도와주도록 협력을 구하는 일이 대부분입니다. 학생의 문제 행동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학생들에게 몇 회의 상담으로 조언을 해 주는 것이 보통입니다. 몇 개월 동안 문제의 발생 원인을 찾고 분석해서 학생의 문제 행동의 뿌리를 찾아서 해결해 주는 단계로 까지 발전하려면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아집니다.

 미국의  경우는 교육대학원에 소속되어 있지만 인턴 과정을 적어도 3년 이상으로 밟도록 되어 있고 직접 내담자를 상담하는 인턴 이수 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상담의 대상을 학교 학생들에게만 국한 시키지는 않습니다. 대부분이 카운셀러들이 학교 밖에서 상담실을 차리고 일반인을 대상으로 청소년 상담, 성인 상담으로 상담을 하고 있으서 치료에 가깝습니다. 그 만큼 많은 훈련이 필요하고 또 상담을 공부하다가 보면 자연적으로 치료 쪽으로 방향이 흘러가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계속 전문 과정을 공부하다가 보면 카운셀러가 시험을 쳐서 심리치료자가 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심리치료(psychotherapy)와 심리치료사(psychotherapist)

 심리치료는 대학에서 심리학을 4년 동안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치료 심리학을 공부한 사람들을 말합니다.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과 박사 과정을 이수하고 2 3년 과정의 인턴을 수료한 사람들로써 공부하는 기간이 최하 10년이 넘습니다. 또 상담하는 대상이 주로 일반적으로 말하는 환자들이고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고로 치료자는 상담은 물론 포함되고 나아가서 치료도 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대학원에 치료 심리학과가 개설된 학교가 고려 대학교 대학원 하나로 알고 있습니다. 최근에(2012 3월 현재) 서울에 있는 몇몇 대학에서 상담 심리, 임상 심리학과가 개설되어 있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미국에서는 심리학 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학과로써 평균 경쟁 비율이 최하가 20 1이고 최고 50 1인 대학도 있습니다. 이러한 경쟁 비율은 미국인들에게 해당되는 것이고 외국인은 제외되어 있습니다. 이유는 졸업 후에 일반 의사들처럼 개업이 가능하기 때문이고 또 실제로 치료 심리학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도 높아서 하늘을 찌를 듯합니다. 인간의 내면에 대한 흥미와 관심이 그 만큼 높아진 것이 그 이유이겠지요. 의과대학에서 신경 정신과는 계통이 좀 다릅니다. 신경 정신과 혹은 정신과는 우리나라에서는 의과대학 6년 과정을 미국에서는 대학원 과정으로 8년을 마치면 전공을 선택하게 될 때 내과, 외과, 정신과 등으로 갈리게 됩니다. 우리나라 의과대학생들 중에서도 정신과의 경쟁 비율이 5 1이라는 정보를 들었습니다. 그만큼 정신과에 대한 비중이 커 졌다는 뜻이겠지요. 신경 정신과는 치료 심리학과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신경 정신과에서는 정신 치료가 주로 약물 치료입니다. 뇌에서 생긴 문제로 봅니다. 그러나 치료 심리학에서는 뇌의 문제로 보기 보다는 양육의 과정에서 생긴 문제로 봅니다. 서로 견해가 많이 다릅니다. 그러나 둘 다 어느 쪽이 맞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약물 치료도 필요로 합니다. 심한 정신증 환자의 경우에는 약물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서 정신분열증, 조울증, 심한 우울증의 경우에는 약물 없이는 치료에 시간이 많이 걸리고 치료가 어렵습니다. 미국에서는 약물 치료와 심리치료를 병행해서 치료 효과를 높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미국에서는 큰 대학에는 대부분이 심리학과가 개설되어 있고 여기에 치료 심리학(임상 심리학과)가 개설되어 있습니다. 미국에서 치료 심리학에 관련되는 학과들을 모두 합치면 약 230여개가 됩니다. 그래도 늘어나는 수요를 감당할 수 없어서 큰 대 도시 즉 로스앤젤리스샌프란시스코, 시카코, 샌디에고 등에서는 심리치료 전문의 학교 즉 school of professional psychology 라는 대학원 전문 학교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1999년에 미국의 심리학과에서 치료 심리학의 박사 과정 경쟁 비율을 소개 합니다(APA, 1999).

 

   학교 이름           응시자             입학 허가               경쟁 비율

 알라바마 대학교       181               6                        30: 1

 아리조나 대학교       305               8                        38: 1

 조지아 대학교          329              12                       27: 1

 U.C. 버클리 대학교   360              13                       28: 1

 하와이 대학교          270             6                         45: 1

 미시건 대학교          340              9                         38: 1

 노스케롤라이나 대학교  439           12                       37: 1

 

 위의 경쟁 비율을 보면 대충 그 실상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들어간다고 해도 공부하기가 어렵습니다. 환자들의 말을 알아듣는 것을 넘어가서 그 말을 뒷면에 깔린 무의식을 찾아내는 과정이야 말로 언어 장벽 때문에 또 외국인들에게 제한되어 있다는 것 때문에 우리 나라 사람들이 미국에서 치료 심리학을 공부한 사람들이 매우 드문 이유입니다. 미국에서 영주권을 따서 공부한 한국계 미국인들은 상당히 있습니다.그러나 그들은 미국에서 개업해서 심리치료를 하고 있는 사람들로써 우리에게 관심이 없습니다.

 미국에서는 모든 전문 과정이 대학원으로 제도화 되어 있습니다. 치료 심리학의 박사 과정을 거치면 다시 전문 학교에 들어가게 됩니다. 가족 치료학교, 정신분석 학교, 최면 치료 학교, 행동 치료 학교, 게스탈트 학교 등으로 세분 되는데 그곳에서 또 3 - 5년 정도 공부를 하게 됩니다. 고로 자연적으로 평생동안 공부를 하게 되는 셈이지요. 전문인이란 이렇게 해서 탄생하는 것입니다. 하루 아침에 전문가가 된다면 대한민국에 누가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있겠습니까?. 이 과정이 어렵지 않으면 모든 사람들이 하려고 할 것입니다. 공부하는 과정이 너무 어렵기 때문에 이 분야가 비어 있다는 말입니다.

 치료 심리학은 주로 환자들을 대상으로 치료를 합니다. 심리치료는 몇 개월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장기 치료입니다. 상담 심리는 단기 치료과정이고 심리치료는 장기 치료 과정이 특징입니다. 고로 최하 6개월 이상이고 보통이 4 - 5년 정도 됩니다. 모든 일상 생활 문제들을 다 다룹니다즉 성격까지를 다 포함해서 다루기 때문입니다. 가장 쉬운 용어로 말하면 "인생을 바꾸는 것이지요, 팔자를 고치는 것입니다". 성격장애는 7 - 8년 정도가 보통입니다.

 미국에서는 치료 심리학이 일반화 되어 있어서 일반 의사들처럼 곳곳에 심리치료 센터가 개설되어 있습니다. 가족 치료 센터, 부부 치료 센터, 정신분석 치료 센터, 청소년 치료 센터, 섹스치료 센터 등으로 전문화 되어 있어서 소비자들이 자신의 입맛에 맞게 선택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심리상담과 심리치료에 대해서 알고 싶어 문의한 사람들의 메일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안녕하세요!!

보낸날짜

2003 06 11일 수요일, 3 00 47 +0900 (KST)

보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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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는이

<jongmankim@hanmail.net>

 

안녕하세요!!

익명이라는 것이 참 좋군요

저는 35살의 두아이의 엄마입니다.  

이 나이 되도록 나의 전문분야하나 없는 것이 부끄럽군요..

현재는 회계관련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대학은 나오지 않았구요

평생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전문적인 직업 또는 직장

을 찾고 있는데 요즘 평생직장이 드물잖아요.

이 일이 적성에 맞는다 싶었는데 요즘은 통 일에도 전념할 수가 없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육아문제로 심리치료를 받고 있는데 받다 보니

그렇지 않아도 관심있던 심리치료에 더욱 많은 관심이 가게되고

어려서 어렴풋이 정신과의사가 되고 싶었거든요

사정상 그리고 공부도 그리 썩 잘하지 못해서 꿈을 접게 되었는데요

늦게 나마 의과대학에 가지 않고도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면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많이 알고 계신 것 같아서요

어떤 반대 급부도 없이 힘드시겠지만 도움을 주시면

매우 감사하겠습니다.

 

수고하세요  

 

문의

보낸날짜

2003 08 27일 수요일, 오전 10 30 45 +0900

보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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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는이

<jongmankim@hanmail.net>

안녕하세요
홈피 보고 문의 드립니다.

저도 심리 치료가 필요 할거 같아서요
그런데 심리 치료 센타는 거의 찾아 볼수가 없군요

홈피를 봐도 거의 서울에 있고요...
그래서 가까운 정신과 의원으로 가볼까도 생각합니다.

그런데 정신과 치료랑 심리 치료랑 도대체 어떻게 다른지 정말 궁금합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웬지 심리치료하면 좀 괜찮을거 같고 정신과 치료하면 좀 인식이 그렇게 좋진 않죠
이만...

 

교수님, 정말 고맙습니다.

보낸날짜

2003 01 21일 화요일, 저녁 8 34 14 +0900 (KST)

보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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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는이

"김종만" <jongmankim@hanmail.net>

소속기관

xxx대학교

고개숙여 감사드립니다. 정말 자세하게 알게되어 기분이 좋습니다.

예전에 고등학교 담임선생님께 xxx대학 심리과를 가고싶다고 말씀드렸다가

반대하시는 바람에 속상했던 기억이 납니다.

사실 저는 중학교때 부모님이 이혼하셔서 어머니와 함께 삽니다.

그때는 지금처럼 이혼하는 가정이 거의 없던 시기라 매우부끄러워 했고

가족끼리 어디 놀러라도 가는 친구를 보면 무척 부러워 했지요.

대학에오고 나서 자유가 생기고 여러종류의 친구들이 생기니까

적응도 안되고 고민하던 사이에 교수님 강의를 듣게 되어 희망도 얻게

되었고 요즘도 가끔 안경쓰시고 수집하신 신문기사 내용을 읽어주시던

기억이 납니다.

아직은 무엇을 할것인지 확실하게 정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저의 적성에 맞추어 심리학을 공부하게 된다면

대학원 졸업후 꼭 교수님 찾아뵙겠습니다.

교수님,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보낸날짜

2003 09 16일 화요일, 저녁 7 29 32 +0900 (KST)

보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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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는이

<jongmankim@hanmail.net>

소속기관

xx 중학교

 

 

안녕하세요 김종만 선생님...

저는 xx에 살고있는 xxx 라는 중학생 입니다..

저희 학교 도덕과교육 중에 자신이 가지고 싶은 직업에 대해 조사하는 것이 있어

이렇게 메일은 보냅니다..

선생님께서 쓰신 "" 라는 책 너무너무 재미있었어요

그 책을 통해 저도 선생님 처럼 상담가가 되고 싶어 졌어요

주변 사람들이 상담가가 되려면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한다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어떻게 공부를 해야하는지....

상담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선생님은 이미 상담가 이시니 잘 아시리라 믿고 이 편지를 보냅니다..

공부방법과 함께 선생님이 상담가를 선택하게 된 동기와 상담원 들이 하는일, 월수입...

여러가지를 구체적으로 함께 적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 메일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답장 부탁드려요...

심리치료를 더욱 더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은 정신분석 심리치료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정신분석 심리치료의 갈래에 들어가 보세요.

상담 심리, 학교 심리, 혹은 심리 치료에 대해서 흥미를 가지고 계시거나 공부를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분은 개인교수를 하고 있습니다. 개인 교수를 받고 싶은 분은 심리치료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개인 교수를 원하시는 분에 들어가 보세요. 개인교수를 원하는 과목들이 있습니다.

개인 교수를 받지 않고 혼자서 정신분석이나, 심리치료에 관련된 전문 서적을 공부하고 싶은 분은 심리치료 홈페이지의 전문 서적 안내에 들어가 보시면 전문 서적이 간략하게 설명되어 있고 또 그 전문 서적을 구매하실 수도 있습니다.

참고문헌

APA (1999). Graduate Study in Psychology. Washington, DC: American Psychology Association.

 

 

http://www.psytherapist.pe.kr/images/newfile21_html_smartbutton2.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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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행 피해자, 폭력과 학대, 방기의 피해자들은 성인이 되어서

삶에서 즐거움을 박탈당하고

다른 사람을 돌보아주거나,

다른 사람들을 사랑할 수 없고

자신을 사랑할 수 없다

마음의 불구자가 된다

--뉴욕의과대학 교수 아놀드 센골드

 

 심리 치료나 정신분석 치료가 신경 정신과 치료와 같은 점은 정신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치료 한다는 점에서는 같습니다. 그러나 전문가가 되는 과정이나 환자를 보는 시각이나 치료를 하는 방법이 완전히 다릅니다.

 먼저 신경 정신과나 정신과 의사들은 의과대학의 6년 과정(예과 2년과 본과 4년 과정) 혹은 8년 과정(대학 4년과 대학원 4년 과정)을 마치고 인턴 과정에서 내과, 외과, 신경정신과--- 등으로 전공이 나누어집니다. 그리고 레지던트 과정을 마치면 10년 정도가 걸리고 그 결과 그 분야에 전문가 자격을 얻게되는 것이지요. 신경 정신과 의사들은 해부학적인 풍부한 지식과 뇌에 대한 지식을 상세하게 전문적으로 다루는 전문가입니다. 특히 환자의 뇌에 대해서 상세하게 공부를 하게 됩니다. 신경 정신과 의사들은 심리적인 문제나 정신적인 문제를 뇌의 질병으로 봅니다. 신경 조직은 실처럼 일직선으로 연결되어있는 것이 아니고 독립된 신경 세포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신경 세포와 신경 세포가 서로 연결이 되어 있고 이 연결 지점을 신경연접이라고 부릅니다. 신경 세포에서 정보가 다음 신경 세포로 전달되는 이 신경 연접에서는 화학물질이 나옵니다. 즉 신경 축을 타고 가는 정보의 전기적 흐름이 신경연접에서는 화학적 흐름으로 바뀌는 것이지요.

 신경 연접은 우리가 말하는 징검다리와 같습니다. 이 징검 다리를 정보가 건너간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화학 물질을 신경전달물질(neurotransmitters)이라고 부릅니다. 지금까지 밝혀진 신경전달물질은 대략 9가지 정도가 됩니다. 대표적인 것이 세로토닌(serotonin), 도파민(dopamine), 에피네피린(epinephrine), 놀에피네피린norepinephine), 아세칠콜린(acetylcholine), 카테콜라민(catecholamine), 엔돌핀(endorphin), 가바(GABA), 글리신(glycine) 등입니다. 이 신경전달물질이 과다생산되거나 과소생산되면 정보의 전달이 억제되거나 과잉전달이 되는 현상으로 나타나는 것이 정신이상으로 봅니다. 즉 정신 이상자 한데서 신경전달물질을 조사연구해 보니 정신분열증 환자는 도파민이 과대 생산되었다는 것이 밝혀진 것입니다. 도파민 과다생산은 이 도파민을 놀에피네피린으로 전환 시켜주는 효소가 결핍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밝혀진 것입니다. 또 우울증 환자한데서는 세로토닌 과소생산으로 부족하고 조증 환자한데서는 세로토닌이 과대생산이 되었다는 것이 밝혀지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연구에 기초를 두고 우울증이나 정신분열증 환자에게 합당한 약물을 처방해주는 것입니다. 물론 지금 설명한 것은 간단하게 설명한 것으로 이것보다 복잡하고 세부적인 공부를 주로 전문적으로 하시는 분들이 신경 정신과 의사들입니다. 정신 이상의 원인을 생리적인 것으로 보고 생리적인 관점에서 그 원인에 합당한 약물을 사용해서 병을 치료하는 전문가들이 바로 신경 정신과 의사들입니다.

심리치료 전문가들은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후에 대학원에서 심리 치료학 과정의 석사와 박사 과정을 마치게 되면 10년 정도가 걸립니다. 공부를 하는 과정과 내용도 신경 정신과 의사들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뇌와 신경학은 전공으로 다룹니다. 그 이외에 몸의 해부학적 지식은 기초만 다루고 의과대학에서 다루는 것처럼 인체 해부학을 세부적으로 공부하지는 않습니다. 대신에 환자와 어떻게 대화를 해나가느냐에 집중적인 공부를 합니다. 대화 치료 기법을 주로 배웁니다.

 약물은 사용하지 않습니다. 공부하는 내용도 생리적인 것이 아니고 심리적인 것을 주로 다룹니다. 정신 이상을 생물학적인 것으로 보지 않고 주로 환경적 영향으로 봅니다. 환자를 보는 관점이 신경 정신과 의사들과 정 반대로 봅니다. 물론 생물학적 유전적 요소를 전혀 무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유전적인 요소는 환경적 요소와 상호작용으로 보는 것입니다. 환경적 요소가 좋으면 유전적 요소는 잠재적으로 묻혀져서 발병하지 않는 것으로 봅니다. 주로 발달과 양육의 과정을 주로 다룹니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 관계를 다룹다. 동료들과의 관계 그리고 어린 시절의 어떤 상처가 이후에 발달 과정에 영향을 미쳤는가를 분석합니다. 고로 세부적으로 전문적인 공부를 하는 과정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정신분석치료 전문가들은 심리치료 전문가나 신경정신과 의사들과는 다릅니다. 정신과 의사들이 전 교육의 과정을 마치고 의사 자격증을 딴 후에 또 심리치료 전문가들이 전 교육 과정을 마치고 전문 자격증을 딴 후에 정신분석학교에 다시 들어가서 4년에서 5년 정도의 정신분석 치료 과정과 실습을 마치게 되면 정신분석치료 전문가의 자격증을 받게 됩니다. 의사 자격증을 가지고 정신분석 전문가 과정을 마치면 정신과 의사이자 정신분석치료 전문가가 되는 것입니다. 신경정신과 의사이자 정신분석치료 전문가들은 약물 처방도 할 수 있고 심리치료도 할 수 있는 셈입니다.

 정신분석 치료는 심리치료와 유사하지만 똑 같지는 않습니다. 정신분석 치료의 과정은 주로 환자들이 경험한 것 중에서 환자들의 모르는 무의식적인 과정을 주로 다룹니다. 주로 0세에서 6세까지의 발달 과정을 많이 다룹니다. 이것은 성격의 형성이 0-6세 사이에 뼈대가 이루어진다는 정신분석적 이론에 바탕을 둔 것입니다. 어린 시절에 엄마와 관계와 아빠 관계가 대인관계의 핵심으로 봅니다. 심층의 심리를 주로 다룬다는 점에서 심리치료 전문가와 약간 다릅니다. 주로 상상의 내용을 다룹니다. 꿈을 분석해서 치료에 자료로 사용합니다. 구순기(0-1), 항문기(1-3), 오디팔기(3-5) 등과 사춘기를 다룹니다. 이것을 정신분석학의 발달 이론이라고 부릅니다. 정신분석 발달 이론에는 고착 이론, 애착 이론, 자아 이론 등의 세부적인 많은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정신분석 치료 전문가 과정과 유사하게 미국에서는 수 많은 전문 치료 학교들이 있습니다. 일단 전문가의 자격증을 가지고 3-5년 과정의 행동 치료 학교에 들어가서 과정을 마치면 행동 치료 전문가가 되고 가족 치료 학교를 마치게 되면 가족 치료 전문가가 되고 최면 학교에 들어가서 그 과정을 마치면 최면 치료 전문가가 되고 게스탈트 학교에 들어가서 그 과정을 마치면 게스탈트 치료 전문가가 것입니다. 고로 다양하게 전문 분야의 치료 과정이 세분화 되어있어서 다양한 수 많은 전문가가 배출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전문가 과정이 아직 없습니다. 지금까지 이야기 한 것은 미국에서 전문가 과정의 배출 과정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이 어렵고 경쟁 비율이 치열하기 때문에 미국인 학생들에게만 해당 되어있기 때문에 외국인들이 그 과정을 이수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게 되어있습니다. 미국들이 서로 심하게 경쟁하다가 보니까 외국인들은 뒤전이 된 것이지요. 그리고 공부를 하는 과정이 대화이고 환자가 말로써 표현하지 않는 내용들을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분석하는 것이기 때문에 언어에서 우선 밀리게 되고 공부를 하는 과정이 힘들다는 점도 중요한 요소로 작용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이런 전문가들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미국에서 심리치료학을 공부하려고 하면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알고 싶으신 분은 다음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보세요. 치료 심리학에서 경쟁비율이 데이터로 제시되어있습니다.

 신경 정신과 의사들은 환자들이 치료를 받으러 오면 심리검사를 합니다. 그래서 환자의 병명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분류하는 것이 일차적인 과정입니다. 그 분류의 결과에 따라서 불안증, 우울증, 정신분열증 등으로 분류되어져야 그 장애에 따른 적당한 약물을 처방할 수가 있기 때문이지요. 나쁜 점은 환자에게 병명이라는 꼬리표를 붙이는 것입니다. 그 꼬리표는 평생 그 환자를 따라다니게 됩니다.

 심리치료 전문가들은 심리검사를 위주로 치료를 시작하지 않습니다. 이유는 약물을 처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고로 불안증이나 우울증이나 병명의 분류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심리적인 원인을 찾아서 그 원인을 제거해주면 증세는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신경 정신과 의사들은 주로 5분에서 많으면 10분 정도로 약물의 부작용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다음 주일의 약물을 처방해주기 때문에 환자와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 몇분에서 몇 십분에 불과합니다.

 대신에 심리 치료 전문가들은 1시간 동안 (주로 50분 동안) 혹은 2시간 동안 환자와 이야기를 해나갑니다. 환자의 이야기를 듣고 어디에서 문제가 발생했나를 치료자의 마음 속에서 나온 정보들을 분석해 나가면서 환자에게 그 원인을 설명해서 그 문제를 극복해나갈 수 있게 도와줍니다.

 심리치료는 증세를 위주로 다루지만 정신분석 치료 전문가들은 증세를 위주로 다루지 않고 근본 원인을 제거해주는 것을 주로 다루기 때문에 시간이 심리치료 전문가보다 몇 배가 더 많이 소요되는 것이 약간 다릅니다. 심리치료는 주로 최하 6개월에서 2-3년정도로 보지만 정신분석 치료에서는 주로 3-6년으로 성격 장애 치료는 6-8년정도로 치료를 하는데 시간이 많이 소요됩니다.

 신경 정신과 의사들은 환자에게 약물을 복용하는 시간을 정해주고 환자에게 이렇게 하세요, 저렇게 하세요, 이런 것을 하지 마세요 등으로 환자에게 지시를 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환자는 치료자의 지시에 따라가는 것입니다. 치료에 대한 정보는 의사가 가지고 있습니다. 환자는 의사에게 의존하게 됩니다. 이것을 메디칼 모델이라고 부릅니다.

 대신에 심리치료나 정신분석 치료에서는 정보는 환자가 가지고 있습니다. 치료자는 환자에게 정보를 얻어내기 위해서 대화를 통해서 환자의 마음 속에 숨겨진 정보를 빼내려고 합니다. 어떤 때에 환자는 저항을 하게 됩니다.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다고 반항을 할 수도 있습니다. 정신분석에서는 이것을 전이 저항이라고 부릅니다. 환자의 저항을 뚫고 나가는 치료 기법이 개발되어 나오게 된 것이지요. 이러한 치료 기법을 배우게 되는 것이 정신분석 과목에 들어있습니다.

 치료자와 환자의 관계를 중요시 합니다. 정신분석 치료에서 이것을 치료 동맹이라고 부릅니다. 치료 동맹이 형성되지 않으면 심리치료를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환자가 치료자를 믿고 자신의 내면 세계를 치료자에게 이야기를 해주게 되면서 자연스러운 관계가 형성되고 환자는 자신도 모르게 어린 시절에 부모와의 관계 패턴이 치료자와의 관계에서 재연되게 되지요. 이것을 정신분석적 용어로 전이라고 부릅니다. 전이 관계를 분석하게 되면 환자의 대인관계 패턴이 분석되어지게 됩니다. 환자와 치료자가 협력자로써 상호관계를 하는 것이지요.

 고로 환자들이 신경 정신과 의사들의 치료실에 들어가면 치료실 가운데 주로 큰 테이블 책상이 있고 그 뒤에 회전 의자에 정신과 의사가 앉아 있고 환자는 의사의 큰 테이블 앞에 조그만 의자에 앉아서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이야기를 합니다. 즉 의사의 권위가 존중되고 환자는 의사의 지시에 따르는 형태를 띄고 있다는 것입니다.

 대신에 심리치료 전문가나 정신분석 전문가의 치료실에 들어가면 서로 마주보고 대등한 관계에서 대화를 해나가는 것입니다치료자의 의자나 환자의 의자가 똑 같고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앉아서 대등관계에서 이야기를 해 나가는 것을 강조한 입니다. 쌍방관계가 중심이 되고 정보의 열쇠는 환자가 쥐고 있는 셈이됩니다. 치료자는 환자를 인격적으로 존중하고 환자의 자아를 분석해 나가게 됩니다. 환자에 대한 발달의 과정과 양육의 과정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해서 문제의 원인을 찾아내고 그것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 몇 개월에서 몇 년 동안 지속됩니다. 따라서 정신분석 치료나 심리치료에서는 어떻게 몇 개월이나 몇 년동안 환자를 이끌고 정보를 얻어서 분석해나가느냐를 배우는 것이 주된 교육 과정으로 되어있습니다.

 정신 장애를 가진 환자들에게 약물은 감기약처럼 약물을 복용하면 감기가 나아서 적어도 다음 감기에 걸릴 때까지는 회복되는 것이 아닙니다. 정신과 약물은 치료제가 아닙니다. 컨트롤제입니다. 순간적인 위기를 극복하게 도와주는 것입니다. 고로 약물을 복용하면 심하게 불안한 마음이 안정이 되고 기분이 좋아지고 자신감이 생깁니다. 그러나 약물은 금방 복용한다고 해서 약효가 금방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적어도 약효가 나타나기 위해서는 3개월-4개월이 걸립니다. 고로 병원에 입원한 정신과 환자들이 3개월-4개월이 지나면 자신감이 생기고 기분이 좋아져서 퇴원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약물에 의존하게 되는 것도 좋지 않은 점 중에 하나입니다. 약물을 끊어 버리면 다시 과거의 상태로 되돌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정신병원에서 입원한 환자들이 계속해서 정신병원을 전전하거나 반복해서 입원과 퇴원을 하고 있는 경우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약물이 무용지물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약물이 필요합니다. 심한 정신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약물 치료가 필수적입니다. 정신증 환자들 즉 정신분열증, 조울증, 편집증, 심한 우울증 등을 가진 환자들에게는 반드시 약물 치료가 필수적이고 동시에 심리치료가 병행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심리치료나 정신분석 치료에서는 환자의 대인관계 패턴을 주로 분석합니다. 어린 시절에 부모와의 관계에서 어떻게 관계 패턴이 형성되었는가?를 분석합니다. 지금 여기에서 동료들과 어떻게 관계를 하고 있는지를 분석합니다. 환자의 감정 패턴을 분석합니다. 환자가 어떤 특정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가? 예를 들어서 환자가 감정을 억압하는가? 감정을 말로써 표현하지 못하고 행동으로 표현을 하고 있는가? 갈등을 어떻게 대처해나가는가?를 분석합니다.

 환자는 자신의 문제가 어떻게 해서 발생하게 되었는지를 잘 모릅니다. 고로 불안하게 되는 것이지요. 치료자가 환자의 문제를 분석해서 원인을 설명해주면 환자는 이것이 이해가 될 경우에는 자신의 문제를 한가지씩 이해하게 되어가면서 불안이 감소되는 것이지요. 환자에게 문제가 명료화하게 되어지기 때문입니다. 생각이 어디에서 잘못되었는지를 분석합니다. 어떤 생각에 왜곡이 생겼는지, 생각의 왜곡이 언제 생기게 되었는지, 잘못된 생각 때문에 어떤 영향을 받고 있는지를 분석해서 환자가 알 게 만들어주게 됩니다. 치료의 과정에서 감정 표현 훈련을 합니다. 생각을 수정해나가는 훈련을 하게 됩니다. 대인관계를 어떻게 해야할찌를 배우게 됩니다. 내 마음 속의 속내를 상대에게 숨기지 말고 밝히는 것입니다.

 농경시대에는 생활과 삶이 단순했습니다. 그냥 농사를 짓는 방법만으로 충분했습니다. 삶의 방식이 동네와 부락 단위로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고 서로를 존중하고 서로를 다 알고 있었기 때문에 심리적인 문제가 적었습니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후기 산업화 시대로 잦은 이사, 수많은 직업 중에서 자신의 적성에 알맞는 것을 선택해야 하고, 수많은 가치관 속에서 자신에게 적당한 것을 취사선택 해야 하고, 부모님의 맞벌이로 양육에 문제가 생기면서 삶이 엄청나게 복잡하고 혼란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심리적 지식이 부모에게 필수적이 된 것이지요. 살아가면서 필요한 심리적인 지식과 심리적인 원리를 환자가 알 게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정신분석 치료에서는 심리치료가 다루지 않는 것들을 다룹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치료자에게 1년 동안 치료를 받고 있는 40대 초반의 남자 환자 A씨는 개인 사업을 하고 있는 사람으로 부부 갈등 문제와 개인적인 문제로 3번이나 이혼의 위기에 몰린 사람으로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으러 오게 된 사람이다. 지난 주일에 환자 A씨는 부인과 크게 싸우고 부인으로부터 이혼하자면서 신용 카드를 몰수 당하고 집안에서 내 쫓기게 되었다. 부인은 아침 7 30분에 회사로 출근을 해 버리고 초등학교 5학년 큰 딸과 1학년 작은 딸은 학교에 가 버리고 환자 A씨는 9시 경에 자신이 근무하는 근무처에서 하루 종일 심리적으로 갈등하다가 밤 12시 경에 아파트 현관문의 열쇠 번호를 눌렀으나 번호가 바뀐 것을 확인하고 휴대폰으로 부인에게 옷가지와 짐을 챙겨나갈 터이니 문을 열어달라고 애원을 한 후에 부인의 방에 들어가서 옷을 챙기는 체 하고 부인에게 오해가 있었음을 이야기했다. 3시간 후에 부인의 오해가 풀려서 그 문제는 해결이 되었다고 치료자에게 하소연을 했다.

 문제의 발단을 분석해본 결과 부인이 문제가 발생한 날 새벽 4시 경에 남편 A씨의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A씨의 메일 내용을 체크한 결과 A씨가 어떤 사람에게 보낸 메일 두 개가 의심을 받게된 것이었다. A씨는 그냥 대수롭지 않게 자신의 메일에서 외로움과 갈등을 사업자 관계인 여성에게 문자로 메시지를 보낸 것에 부인이 대노한 것이었습니다. 부인은 A씨에게 남자 이름으로 된 거래처 사람의 이름을 대면서 이 사람이 여자가 아닌가? 하고 물었다고 했다. A씨는 여자인 것을 시인하지 않고 머뭇거리며 대답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부인은 이 사람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확인해도 되겠느냐며 A씨를 다그쳤다. A씨는 확인해보라면서도 그 사람이 여자이고 그 사람에게 보낸 메일은 그냥 시적인 요소가 들어있는 단순한 메일임을 극구 부인에게 설명을 하지 못한 것이었다. 부인은 새벽 4시에 전화 번호를 눌러본 후에 받는 사람이 여자인 것을 알고는 말없이 전화를 끊어 버리고 A씨가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것으로 오해를 한 것이었다.

 A씨는 부인과 결혼 후에 13년 동안 6회에 걸쳐서 다른 여성과 외도를 한 적이 있었고 부인이 그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극구 부인을 해도 부인이 이해하여주지 않을 것이라고 짐작을 해서 포기한 것이라고 했다. 부인은 대노해서 절대로 외도를 하지 않겠다고 맹세를 해 놓고 또 여성에게 이런 메일을 보내면서 외도를 하고 있지 않느냐고 분통이 폭발한 것이었다. 결국 부인의 화가 폭발했고 남편 A씨는 집에서 쫓겨나게 된 것이었다.

 남편 A씨는 하루 종일 생각하면서 자신이 외도를 하지 않았는데 쫓겨내게되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치료자가 평소에 치료를 하면서 중도에서 포기하지 말고 끝나지 문제해결에 매진하라는 말에 용기를 얻어서 다시 집으로 들어가서 극구 설명을 하게 되었다. 남편 A씨는 10시 경에 메일을 보냈던 그 부인 사업자에게 전화를 걸어서 얼마 전에 보낸 메시지가 문제가 되었다고 솔찍하게 이야기를 하자 그 부인은 문제가 발생한 이런 아침에 9시 경에 A씨의 부인이 문제의 사업 관계에 있던 자신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서 자신에게 남편이 있는지, 자녀들이 있는지, 그 메시지를 받은 소감 등을 케물었다고 했다. 그 부인은 그 메시지가 별 것이 아니었고 남편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하자 A씨의 부인이 눈치를 채고 미안해하며 전화를 끊었다는 것을 그 부인으로부터 전해 듣고 알 게 되었고 부인이 오해를 한 것이 입증되었다고 믿고 밤 12시 경에 부인 방에 들어가서 극구 해명한 것과 다시 화해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치료자는 환자 A씨의 문제가 분석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다시 그 문제를 몇 주일 동안 다루기로 했다. A씨는 상대가 폭발적으로 화를 내면 그 상대에게 자신의 결백을 극구 설명하지 않고 그냥 관계를 끊어 버린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말을 해도 이해를 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절망을 느끼고 설득을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그 사람과 관계를 끊어 버린다고 했던 것을 치료자가 기억하고 있었다.

 치료자는 이미 A씨의 어린 시절을 다루면서 치료자는 그와 유사한 관계 패턴이 과거에도 몇 번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환자 A씨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엄마가 가출해서 영영 돌아오지 않았고 누나와 어린 여동생 3명과 함께 어렵게 생활해 왔음이 치료 과정에서 밝혀졌다. 아버지가 고물상, 행상으로 겨우 5남매를 먹여살리기에 역부족으로 A씨는 학교생활에서 학습 도구를 살 돈이 없어서 학업은 꼴지이고 공부에 흥미를 잃어 버렸고 동료들에게 소외되어 친구 사귀기를 포기해 버린 것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쉬는 시간에 A씨는 늘 학급 동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걸상을 끄덕거리면서 반복행동을 하고 자신의 소외당하고 있는 껄끄러움을 해소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 때 옆 반 여선생님이 A군의 의자 옆을 지나가다 발이 걸려서 넘어지게 되었고 속옷이 보이는 실수를 한 것이었다. 옆 반 선생님은 대노해서 A군이 일부러 선생님을 욕보이기 위해서 일부러 걸상을 끄덕거리면서 발을 걸었다고 오해를 한 것이었다. 옆 반 선생님은 A군을 심하게 처벌하면서 A군의 고의성을 질책했다. 그 때 A군는 변명을 하지 않고 선생님이 하는 말 그대로를 시인했다고 했다. 극구 결백을 설명해야 통할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두 번째 유사한 사건은 초등학교 5학년 때 학교에서 꼴찌를 하던 A군이 43등에서 33등으로 등수가 뛰어서 이것을 외삼촌에게 자랑하려고 외삼촌에게 성적표를 보인 결과 외삼촌을 "이것을 성적이라고 가져왔느냐 이 바보야!" 라고 A군을 심하게 질책했다고 했다. A군은 그 때 외삼촌에게 자신의 속내를 이야기하지 않고 질책을 그대로 받아들여서 자신은 바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했다.

 결정적인 또 하나의 사건은 A씨가 23세 정도가 되었을 때 가출한 엄마가 13년 만에 집으로 돌아온 것을 보고 너무나 분노해서 어머니에게 항의를 한 것이었다. "어머니가 우리에게 해 준 것이 무엇입니까?" 라는 항의에 어머니는 대성 통곡을 하면서 A씨의 윗 사츠를 갈갈히 찢어 버려고 온 동네 방네로 통곡을 하면서 자신을 집에서 쫓아 내려고 한다는 말을 큰 소리로 소문을 내면서 아들 A씨를 망신주면서 다녔다고 했다. A씨는 그대로 집을 나와서 자신이 활동을 하던 교회로 들어가 버렸다고 했다.

 이미 1년 동안 환자 A씨의 발달 과정과 치료 과정을 다루어오던 치료자는 위의 세 개의 사건과 지난 주일에 일어났던 사건이 맥을 같이한다는 것을 치료자가 발견을 한 것이었다. 환자 A씨는 이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왜 처음부터 끝까지 상대를 설득하지 못하고 억울해 하면서도 자신의 결백을 덮어쓰고 이후에 해명을 하지 않은 A씨의 행동 패턴이 바로 지난 주일에 일어난 부인과의 사건에서도 재연하고 있음을 분석해내게 된 것이었다. 유사한 패턴을 다시 재연하면서 A씨는 자신의 성격의 일부가 상대가 폭발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경우에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것을 포기하고 그대로 관계를 끊어온 것이 그 이외에도 많이 있다고 시인하면서 자신의 행동을 깨닫게 된 것에 무릎을 쳤다.

 A씨는 치료 초반기에 여러번의 사업 실패를 이야기하면서 결정적 단계에 들어가서 성공이 눈 앞에 보일 때마다 뒤로 슬그머니 꽁무늬를 빼어 사업을 망쳐 버렸다고 하소연을 한 것을 치료자가 기억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환자 A씨의 근본적인 원인을 한가지 밝혀낸 것이었다. 이것을 해석하면서 환자 자신의 행동을 다시는 되풀이 하지 않도록 재연을 3주일 동안 연습을 했다.

 환자 A씨는 과거에 어머니의 부당함을 항의 했다가 엄마에게 호되게 처벌을 받게 되자 엄마의 무의식저인 이미지가 머리 속에서 새겨져서 살아남기 위해서 엄마의 요구대로 따라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상대가 폭발적인 분노를 보이면 A씨는 더 이상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지 못하게 되고 그 사람과의 관계 단절로 감정 철회로 이어진 것을 치료자의 해석으로 알게된 것이다.

 이러한 환자 A의 대인관계 스타일을 그 이후에 다시 재발하지 않도록 그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치료의 동기가 되었던 것이다.

위의 사례를 더 구체적으로 다룬 것을 알고 싶으신 분은 다음의 홈페이지에 들어가시면 환자 A씨가 1년 동안 치료를 받으면서 분석한 사례의 내용을 알 수 있습니다.  

 심리치료나 정신분석 치료가 정신과 치료보다 우세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어느 한쪽이 다른 쪽에 비해서 우월하거나 능력이 우수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경 정신과의 약물 치료도 필요합니다. 심리 치료도 필요합니다. 문제는 소비자인 환자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한다는 점이지요. 어느 한쪽이 무용지물이라면 벌써 그 쪽의 치료 방법은 골동품 가게에나 가 있겠지요. 둘 다 치료에 필수적이고 서로 보완적이라는 말입니다. 한쪽 치료를 받아보고 효과가 적으면 다른 쪽의 치료를 받아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가족 치료가 정신과 치료와 다른 점을 구체적으로 설명한 글을 읽어보고 싶으신 분은 가족 치료가 신경 정신과 치료와 어떻게 다른가를 설명한 글을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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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 치료와 기존의 일반 정신과의 치료 즉 신경 정신과의 치료와는 여러 가지 점에서 다르다. 신경 정신과에서는 정신적인 문제를 정신병이라고 부르고 문제를 가진 환자를 정신질환자로 부르고 있다. 신체에서 생긴 결함으로 본다는 뜻이다. 고로 약물로 치료를 한다. 신체의 결함을 회복 시켜서 정신을 회복하려는 시도를 말한다. 그러나 가족 치료에서는 정신병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신체의 결함으로 생긴 문제로 보지 않는다. 잘못된 관계가 만들어낸 기능의 장애로 본다. 따라서 정신 질환자라고 부르지 않고 정신 장애자 혹은 정신 이상자, 정신 혼란자라고 부른다. 정신병으로 보지 않는다. 기능 부진 혹은 적응 부진으로 본다. 따라서 아주 심한 증세를 가진 사람이 아닌 경우에는 되도록 약물을 사용하지 않는다. 약물 사용을 줄이고 약물에 의존하게 하지 않도록 한다. 약물이 꼭 필요한 사람의 경우에는 약물과 심리치료를 병행해 가면서 약물을 점점 줄이는 방향으로 치료를 진행한다.

 신경 정신과에서는 증세가 심한 환자를 정신병원에 입원을 시켜 치료를 한다. 환자를 가족 구성원들로부터 떼어내서 겪리 시켜 치료를 하는 셈이다. 그러나 가족 치료에서는 입원한 환자를 퇴원 시켜 가족 구성원들한데로 되돌려 보내서 치료를 한다. 잘못된 가족 구조가 만들어낸 사람이 환자라고 보기 때문이다. 환자를 가족 구성원들과 함께 생활하도록 함으로써 가족 구성원들 사이에 상호 작용 관계를 관찰해서 잘못된 가족 구조나 가족 기능을 수정함으로써 환자를 치료하기 때문이다. 환자가 병원에 오래 입원해 있을수록 환자는 사회 적응이 어려워지고 회복이 늦어진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가족 치료에서는 환자가 가족 구성원들과의 생활에서 사회생활에 적응을 쉽게 빠르게 할 수 있게 도와준다.

 신경 정신과에서는 환자 한사람을 치료 한다. 환자 개인을 치료한다. 환자는 가족들에게 고통을 주는 사람으로 환자 한 사람만 없으면 가족들이 행복해질 수 있는 관점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가족 치료에서는 환자 한 사람을 치료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환자는 바로 가족이라는 유기체가 된다. 가족이라는 단위가 환자가 된다는 말이다. 전자는 치료 대상이 환자 한 사람이 되기 때문에 환자가 치료 회복의 책임을 지게 된다. 물론 치료 비용은 가족들이 부담을 하겠지만 근본적으로 환자는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 혼자서 고민하고 혼자서 회복해 나가야 한다. 그러나 가족 치료에서는 치료의 책임은 온 가족 구성원들이 지게 된다. 가족 구성원들이 환자의 책임을 각자 분담하게 되기 때문에 치료에서 부담감이 분산 된다. 모든 가족 구성원들이 환자를 만들어낸 책임을 같이 지게 된다.

 신경 정신과에서는 환자는 수동적이 된다. 치료자인 정신과 의사가 처방하는대로 약물을 복용하면 된다. 모든 정보의 제공은 의사가 한다. 이렇게 하세요. 저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는 지시에 따라서 환자는 움직이기만 하면 된다. 고로 자연적으로 환자는 자신의 의지보다 의사의 의지에 의존하게 된다. 반대로 가족 치료에서는 환자가 정보의 제공자가 된다. 환자의 이야기를 듣고 상담을 통해서 치료자는 환자가 문제를 가지게 된 배경에 대한 정보를 환자로부터 얻어내게 된다. 또한 가족 구성원들과의 상호작용의 과정을 관찰함으로써 정보를 수집하게 된다. 즉 정보의 제공자는 치료자가 아니고 환자나 환자의 가족 구성원들이 된다. 결국 치료의 대한 책임을 가족 구성원들과 치료자가 공동으로 책임을 지는 것이다.

 신경 정신과에서는 환자를 부정적 시각으로 본다. 문제를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치료의 대상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환자는 개인적인 신체 질환, 병을 가지게 된 것으로 보기 때문에 환자는 병원에 출입을 할 때마다 혹은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마다 자신을 병든 인간으로 보게 된다. 건강한 사람과는 다른 신체에 결함을 가진 이상한 사람으로 별종으로 보게 된다. 병원에 입원 경력이 오래된 사람일수록 부정적인 시각을 많이 가지게 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가족 치료에서는 환자는 가족 구성원들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고 있는 사람으로 보기 때문에 가족 구성원들의 짊을 스스로 자청해서 짊어진 사람으로 해석한다. 가족 구성원들 중에서 가장 예민한 사람이 환자라고 본다. 가족이라는 유기체가 위기에 직면해서 구성원들 중에서 가장 예민한 사람으로 하여금 잘못된 기능을 대신하게 만든 것으로 본다. 따라서 환자는 스스로 십자가를 진 희생양, 속죄양으로 보기 때문에 자신을 긍정적으로 보게 된다. 치료에서 이러한 인식의 변화는 엄청한 치료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다. 인지 변화 즉 생각의 변화가 치료의 시발점이 된다. 자신이 가족들을 위해서 헌신하고 가족들의 고통을 대신해서 스스로 고통을 자청해서 짊어진 사람으로 보기 때문에 온 가족들은 환자에게 감사해하고 환자는 자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게 된다. 따라서 치료를 시작하면서부터 긍정적 시각을 이미 심어 놓은 것이다.

 신경 정신과나 기존의 정신 치료에서는 환자를 가족들에게 스트레스를 제공하는 원천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시각이 가족 구성원들에게 환자만 없으면 온 가족이 행복해진다고 보는 이미지를 제공한다. 고로 환자를 떼어내서 병원에 입원 겪리 시키는 쪽으로 향하게 된다. 그러나 가족 치료에서는 환자는 전 가족 구성원들의 스트레스를 혼자서 흡수하는 피뢰침으로 본다는 점이다. 스스로 예민해짐으로써 가족들이 받을 스트레스를 혼자서 짊어짐으로써 자신의 개인적 발달을 담보로 저당잡히는 사람으로 본다.

 신경 정신과에서는 문제를 가진 사람을 환자 즉 영어로 patient로 부른다. 그러나 가족 치료에서는 가족이라는 유기체가 만들어낸 환자 혹은 표면에 드러난 환자라는 뜻으로 영어로 identified patient라고 부르고 약자로 IP라고 부른다. 사용하는 용어나 개념 자체가 완전히 서로 다르다.

 정신병원에 입원을 하거나 신경 정신과 의사를 방문하게 되면 환자는 진단을 받게 되고 그 결과로 우울증, 불안증 등의 병명을 붙이게 된다. 즉 꼬리표를 달 게 된다. 이 병명의 이름표가 평생을 따라다니게 된다. 이유는 정신과 의사는 약물로 치료를 하기 때문에 약물을 사용하려고 하면 우울증, 불안증, 강박증인지를 알아야 하고 또 병명이 다르면 치료 약도 달라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족 치료에서는 정신과 의사들이 붙여놓은 병명의 꼬리표를 떼어내는 일부터 시작하게 된다. 우울증이 아니고 가족들의 짊을 혼자서 지고 신음을 하고 있는 것으로, 가족들이 지워준 짊을 벗어날 방법을 몰라서 혼자서 고민하는 것으로, 가족 구조에 대해서 다른 구성원들은 입을 다물고 있는데 유독 환자는 부당한 편애나 부모들의 잘못된 강요나 처벌에 도전하는 사람으로 해석해서 환자에게 붙여진 꼬리표를 떼어낸다. 환자가 괴로워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우울증, 불안증, 강박증을 가족을 구원해 달라는 도움을 위한 울음으로 해석한다. 물론 이러한 해석을 마음대로 치료자가 같다 붙이는 것은 아니다. 환자와 가족 구성원들 사이에 상호작용 관계를 분석해서 환자가 하고 있는 역할을 찾아내어서 붙이게 된다. 이러한 치료 과정이 바로 가족치료 기법이다.

 위와 같은 차이점들은 일부러 환자의 시각을 바꾸기 위해서 전문가들이 지어낸 것이 아니다. 임의로 짜맞추기식으로 지어낸 말들이 아니다. 첨단 과학의 발달로 인간에 대한 실험이 가능해지면서 1960년대 이후에 나타난 각종 연구와 실험을 통해서 확정된 이론들이다. 즉 새로운 학문의 등장으로 생겨난 이론들과 실험 연구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존의 치료 기법이나 치료 방법들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학문과 치료기법의 등장이 바로 가족 치료이다.

 정신이상, 정신 혼란, 정신 장애에 대한 연구가 다 방면에서 다양한 각도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러나 기존의 신경정신과나 정신과를 부정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 만큼 정신 건강에 대한 연구가 다 각도에서 재 조명되어지고 있다는 것으로 연구가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이론적인 바탕을 제공한 학자들이나 치료자들은 대부분이 기존의 정신 치료를 해 온 정신과 의사들이 새로운 효과적인 치료 방법을 찾기 위해서 다양한 분야를 공부하게 됨으로써 생겨난 현상이다. 정신과 의사들이 새로운 학문으로 그리고 치료 기법으로 등장한 정신분석학이나 발달 심리학, 성격 심리학, 진화 생물학, 사회 생물학 그리고 신경 생리학 등으로 연구의 폭을 넓히면서 통합적인 학문으로 등장한 것이 가족 치료학이다.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을 치료하여 환자의 증세가 호전되어 퇴원을 해서 가족의 품으로 되돌아 가거나 병원에서 증세가 완화되어 퇴원을 준비하고 있는 도중에 가족 구성원들의 면회나 방문을 받고 나서 증세가 악화 되거나 증세가 재발되어 다시 병원에 재 입원하는 빈도수가 많아 짐으로써 치료자나 학자들이 틀림없이 가족 구성원들 사이에 문제가 있다는 쪽으로 치료의 방향을 돌리게 되면서 연구의 폭이 넓어지게 된 것이다. 실제로 치료실에서 아무리 환자의 생각을 바꾸고 환자의 감정을 방출 시키고 환자를 위로해서 용기를 가지도록 감정의 지원을 해 준다고 해도 환자가 집에 돌아가면 가족 구성원들 즉 부모나 형제들과 만나서 상호작용 관계를 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가족 구성원들이 환자에게 한 말 한마디가 환자를 분노하게 만들어서 치료실에서 했던 치료 효과는 무효로 돌아가 버린다는 것이다. 치료자는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서 있는 힘을 다하게 되고 가족 구성원들은 치료자의 치료 효과를 무산 시키는 일을 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가족의 구조가 바뀌지 않는다면 가족의 기능이 수정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열심히 치료를 해도 환자의 치료 효과는 무효화되거나 상쇄 된다는 점에 착안한 치료가 가족 치료이다. 가족 구성원들을 변화 시켜 그 가족 구조와 기능이 만들어내는 병든 역할을 수정하면 환자의 치료 효과가 배가 된다는 이론이 바로 가족 치료 이론이고 그 치료 기법이 가족 치료 기법이다. 이러한 가족 치료의 등장은 하루 아침에 등장한 것은 아니다. 1950년대 이후로 발달이 가속화 된 컴퓨터 이론이 몰고온 정보화 과정 이론과 발달 심리학과 정신분석학에서 파생된 대상관계 이론과 대인관계 이론 등에서 새로운 통합으로 등장한 새로운 학문이다.

 정신분석학과 대인관계 이론과 대상관계 이론을 더욱 상세히 알고 싶어신 분은 정신분석학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정신분석학의 역사나 정신분석학의 갈래나 정신분석 치료나 정신분석 발달 이론에 들어가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