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치료 속에 숨겨진 심리적인 원리(조현병 치료)

 

심리치료는 치료를 받는 사람이 앉거나 혹은 카우치에 누워서 (치료자에게 2명이 누워서 치료를 받고 있음) 1시간 동안(치료자는 2시간) 치료를 하는 사람과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물론 이 이야기는 일반 사람들의 이야기와는 다르다 고로 이것을 치료대화 혹은 대화치료라고 부른다. 치료를 하는 사람과 치료를 받는 사람 사이에 매개체약물이 아닌 대화이다. 그렇다면 정신병과 대화가 무슨 관계가 있는가? 정신장애 중에서 가장 심각한 정신병인 조현병(정신분열증)이 대화로써 어떻게 치료되어지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이 글의 핵심 주제이다.

일반적으로 신체적 질병은 우리 모두에게 잘 알려져 있다. 환자는 병원을 찾는다. 종합검사가 이루어지고 몸의 어떤 부위에 어떤 문제가 생겼는지? 를 알게 되고 심각한 경우에는 병원에 입원해서 수술이 이루어지고 몸의 파괴된 조직을 떼어내거나 수리를 받아서 회복되어지면 약물은 더 이상 필요가 없어지고(고질병은 제외) 조직은 원상복귀가 되어 환자는 병들기 이전의 건강한 상태로 회복되어 평범한 일상의 생활로 돌아간다.

정신과적인 문제들도 역시 유사하다 그러나 많은 차이가 있다. 여기에서는 조현병에 대한 병원 치료에 초점을 맞춘다. 조현병은 사춘기 후반과 성인 초반기에 발생하는 가장 심각한 정신병이다. 나이별로 15 45세 사이에서 발병하는 정신장애로써 젊은이들의 발병비율이 가장 높다(25세 이전), 첫 병원 입원의 비율이 30세 이전에 대부분 시작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남자의 경우에는 25, 여성의 경우에는 32세가 가장 많았다(Falloon et al., 1984: : 참고).

신체적인 발달은 정상적이다 그러나 정신적인 문제 때문에 병원을 찾게 된다. 청년기에 접어들면서 가족의 울타리로부터 사회로 나가는 준비의 과정에서 혼란스러움에 빠지게 된다. 사회에 나가기 위한 준비로써 직업(전문분야)을 선택하고, 이성과 관계를 하고, 진로를 결정하고 친구들과 관계하고 그리고 일자리를 찾아야 하는 등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점에서 혼란에 빠지게 된다.

외부의 많은 자극의 홍수에 빠지게 되어(불필요한 자극을 선별적으로 걸러내지 못하고) 생각이 많아지고 잠을 이루지 못하게(불면증)되고, 에너지 고갈이 온다, 휴식이 사라지게 되면서 짜증적이고 폭력적인 행동이 잦아지게 되어 가족들이 더 이상 감당을 할 수 없는 시점에서 증세들이 본격화 되어지기 시작하게 된다.

병들기 이전에 늘 익숙했던 일들에 무관심하게 되고, 대인관계에서 철회와 가족구성원과 접촉을 회피 그리고 대화의 기피, 내면 속으로 철회로써 혼자만의 세계에 빠지게 된다. 특별히 게임에 몰두하거나 밤과 낮이 거꾸로 된다. 정상으로 돌아오게 하려는 가족들과의 갈등이 증폭 되고 가족들은 고통 속에 빠지게 된다. 가족들이 공통으로 호소하는 말들은 칼날 위를 걷는 기분”, “모든 신경을 곤두세우고 살고 있는”,  증세들의 폭발로 언제 터질 지 모르는 시한 폭탄”, “대응할 수 없는 충동적인 행동등을 호소를 한다. 환자는 특별히 이상한 행동들(망상)을 하거나 소리를 듣거나(환청) 그리고 이상 것을 보게 된다(환각).

이 시점에서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된다. 병원에서는 종합 검사가 이루어진다. 뇌파검사, MRI, PET(양전자 단층촬영), CAT등의 신체적인 종합검사들이 이루어진다. 대부분의 이런 신체적 이상 유무의 검사들은 이상이 없는 정상으로 나타난다. 아울러 종합심리검사를 받게 된다. 이들은 주로 566 문항(MMPI-1오리지널) 혹은 338 문항(MMPI-2 수정본)으로 된 검사를 받아서 병명이 확정된다. 조현병의 경우에 항정신증 약물들( 24 종류)인 신경이완제들(neuroleptic)이 투여되어진다. 이 약물은 급성 에피소드들(망상들, 환각들, 환청들) 75%정도 제거하거나 완화가 되어진다. 가족들은 안심하게 된다. 환자는 조용해지고 안정을 얻게 되면서 병이 완치되었다고 기뻐하게 된다. 퇴원이 이루어지고 환자는 가족들의 품으로 되돌아온다(약물의 덕분에 최근에 미국에서 병원 입원은 10-21평균적으로 짧아지고 있다)(Falloon et al., 1984).

 1주일 혹은 2주일에 한번씩 신경 정신과 의사선생님을 방문하고 2분 혹은 3분 동안 대화를 통해서 약물의 지속적 복용 혹은 부작용들을 체크 받게 된다. 발병 이후에 시간이 5개월 6개월이 흘러가면서 분명히 급성 에피소드들은 사라졌지만 그러나 사소한 문제들은 별로 나아진 것이 없다, 즉 지루함, 신경질적임, 주의집중이 안됨, 정신이 우둔해지는 느낌, 생각이 느려지는 느낌 등을 환자들은 여전이 호소를 하게 된다. 부모님은 약물의 부족 때문이 아닌가? 의심하게 된다. 분명히 큰 증세들은 완화되고 사라졌기 때문에 약물을 더 강하게 처방을 해 달라고 요청을 하게 된다. 약물이 더욱 더 강하게 처방되어지면서 이번에는 신체적 긴장의 증가, 파킨슨병 증세들(손발의 떨림, 다리를 질질 끌거나, 말이 어눌해지고, 가면얼굴 등), 정좌불능(휴식이 없고 앉거나 누워있지 못하고 안절부절), 운동장애, 운동불능 등의 후유증이 따라온다. 깜짝 놀랜 환자와 가족들이 신경정신과 의사선생님에게 호소해서 다른 약물로 교체하거나 약물을 줄이면서 쉽게 사라진다. 이 시점에서 초반기에 약물을 규칙적으로 복용하던 환자는 약물이 그의 모든 증세들을 완화시켜서 병들기 이전의 건강한 상황으로 되돌려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나서 약물에 대한 불신을 하게 된다. 피곤하고 기가 빠지고 머리가 깨끗해지지 않는다. 게임을 계속하게 되고 친구들과 관계는 회복되지 않고 가족과의 관계 갈등은 여전이 남게 된다. 참을 수 없는 환자나 혹은 가족 구성원들이 신경정신과 의사 선생님에게 찾아가서 현재의 어려움들을 호소를 하면서 눈치를 보던 과거와 달리 분노와 항의로써 다음과 같은 질문을 직선적으로 하게 된다.

선생님! 약물을 언제까지 복용해야 합니까? 여기에 대해서 경험이 많고 유능한 신경정신과 의사 선생님은 솔직하게 이야기를 하게 된다(치료자에게 치료를 받고 있는 A군의 경우), 평생동안 복용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더 이상 좋아지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까? 완치되어지지 않는다는 말입니까? 그렇다면 왜 이 약물을 계속해서 복용해야 합니까? 이 말에 대해서 신경정신과 의사선생님은 그렇습니다. 그러나 복용하지 않으면 재발하게 됩니다”. “망상들, 환각들, 환청들이 되돌아옵니다. 다시 병원에 입원을 해야 합니다.” 이 말을 들은 환자 혹은 가족들은 ! 하고 경악하게 된다. 이 시점에서 환자와 가족들은 항정신증 약물들정신장애의 치료제가 아니고 컨트롤 약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순간적인 위기를 넘기게 도와주고 재발과 입원을 막아주는 약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시점에 이르기까지는 시간이 이미 수 개월 혹은 몇 년이 흘러갈 수도 있다.

깜짝 놀란 환자와 가족구성원들은 다른 방법이 없는가?를 지인들로부터 물어 보고 혹은 인터넷을 통해서 찾아보게 된다. 그런데 이것은 또 무슨 일인가? 인터넷에 소개된 치료들을 너무나 많아서 혼란스럽다. 인지-행동 치료(생각과 행동에 초점), 최면치료(최면으로 과거의 기억의 회복과 치료), 게스탈트 치료(정신분석가이던 독일의 피츠 펄(Fritz Perls)이 남아공화국으로 이민을 가서 새로운 치료법으로 만든 치료: 너무 시간이 많이 걸리는 정신분석에 반대해서 단기 치료의 형식으로 감정표현에 초점을 맞추어서 신문지로 분노한 대상을 때리거나 베개를 주먹으로 치거나. 빈 의자에 앉아있다고 가상한 그 대상에 대해서 감정을 행동으로 표현하고 말을 하도록 하는 치료 기법), 가족 치료(가족구성원과 상호관계의 일탈의 파악과 관계에 초점), 정신분석(어린시절 과 과거의 상처에 초점) 등으로 치료의 방법들이 천차만별 이다 라는 것에 놀랜다. 약물 치료는 큰 병원이거나 작은 병원 이거나 간에 거의 비슷하다. 그런데 심리치료는 너무나 다르고 치료를 하는 과정이 천차만별이다. 그런데 똑 같은 공통점이 하나가 있다. 40분 혹은 50동안(최면 치료의 경우는 2시간, 3시간 가능)로써 대화치료를 하는 것이다. 치료비용은 전문가들(대학에서 심리학, 상담심리학을 공부하고 대학원과정을 마치고 수련까지 약 10년의 과정을 완료한 사람들)의 경우는 보통 1시간에 10만원(나에게 치료를 받으러 온 사람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심리치료의 훈련생으로 1만원 혹은 다른 전문가들은 저렴하게 5만원, 8만원)의 상담료를 받는다는 것이다. 1주일에 1회로 1달이면 40만원 2달이면 80만원 3달이면 120만이 된다. 천문학적인 액수에 놀라게 된다(선진국에도 마찬가지, 미국의 경우에는 저명하다고 이름난 유명인들은 50분에 1천 달러, 혹은 5백 달러).

왜 신체적인 질병의 치료와 달리 정신장애의 치료제들은 치료제약물이 아니고 컨트롤적인 약물인가?에 대한 약간의 설명을 첨가해보자.

조현병은 20세기의 산업사회의 산물이다(1911년에 공식적으로 학계에 등장), 복잡한 사회현상 때문에 등장한 정신병이다(상세한 것은 빙의 대 조현병을 보라). 뇌의 질병으로 등장을 했고 1950년 대까지는 약물이 없었다. 1911년부터 1950년대까지는 어떻게 치료를 했는가? 대형병원에 감금을 했다. 가족들과 이웃들에게 위협적인 존재로 인식을 해서 병원에 입원이 고작이었다. 거대한 대형병원들이 등장하게 된다. 1935년에 동물들에게 전기 쇼크로 혈청의 연구를 하던 실험실의 기법이 조현병 환자들에게 도입되어 전기쇼크 치료가 처음으로 등장하게 된다(Bernheim, 1979: 주㈜: 참고). 뇌에 전류를 통해서 5-10분 동안 경련을 일으켜서 충격을 주어 무의식 상태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 특별한 이론적인 것은 없었다. 단순히 고장 난 라디오를 손으로 치면 소리가 나는 것에 비유된다. 1주일에 2-3회로 총 25-30회의 치료가 이루어졌다. 비슷한 시기에 인슐린쇼크 치료가 등장을 했다. 또한 심리수술이 등장을 했다. 뇌의 전두엽의 절제였다. 다른 치료들이 실패해서 더 이상 다른 방법이 없을 때 마지막으로 이 심리수술이 고용이 되었다.

그런데 1955년에 항정신증의 첫 번째 약물이 등장하게 된다. 이 약물이 바로 클로르프롬마진(Chlorpromazine)이라는 약물이다. 이 약물은 상품명이 토라진(Thorazine)이다. 이 약물은 유럽에서 이전에 이미 심장복개수술에서 저체온을 위해서 사용하던 라르카틸(Largactil) 이라는 마취제로 사용하던 약물이었다. 조현병에 이 약물은 48시간 안에 진정효과를 가져왔다 즉 조현병에 망상과 환각과 환청을 완화시키거나 제거한다는 것이 밝혀지게 되면서 신비의 약물로 등장하게 된다. 이 약물은 뇌의 도파민 이라는 신경전달 물질을 감소시키는 것이 밝혀지면서 페노티아진(phenothiazine)(항정신증 삼환계 약물)이라는 약물로 등장하게 된다. 이후에 도파민의 가설이 등장하게 되면서 유사한 신경이완제들의 약물들이 속속 등장하게 된다. 모두가 도파민을 감소시키는 약물들이다. 이들 신경이완제들은 신경안정제로 혹은 항정신증 약물로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약물들은 뇌의 도파민 감소뿐만 아니라 심장혈관 계통, 근육신경 계통, 소화기 계통, 내분비호르몬 계통 등에 영향을 미치는 약물이지만 뇌의 도파민에 초점이 맞추어진 것이다. 이후에 유사한 상표의 약물 즉 스텔라진(stelazine), 나반(Navane), 하리페라돌(Haloperidol)(하돌), 멜라릴(Mellaril), 트리라폰(trilafon) 등을 비롯해서 약 24종류가 등장하게 된다. 이들은 주사제 약물인 플루페나진(Fluphenazine)을 제외하면 구강으로 복용하는 알약들로 모두가 도파민을 감소시키는 약물로써 도파민이 얼마나 빨리 용해되어 효과를 발휘하느냐? 의 차이의 약물들이다. 예를 들어서 토라진 100mg와 하돌 2mg이 약효가 비슷하다. 하돌은 급성 에피소드에 빠른 효과가 있다(Falloon, et al., 1987). 이후에 도파민 가설은 이론이 되지 못하고 가설로 남게 되었다.

이들 항정신증 약물들이 조현병의 치료제가 아니다 라는 것이 밝혀지고 급성 에피소드를 완화시키거나 제거하는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약물들의 효과는 엄청났다. 미국의 전국에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이 1955년에 559,000명이던 환자들이 1974년에 216,000으로 약 50%의 감소 비율을 보여주었다, 아울러 재입원의 비율을 50% 감소시킨다. 10년 동안 조현병 환자들의 약물 복용을 추적 연구한 결과 10년 이상 약물의 복용이 62%였고 5년 이상의 약물 복용이 39% 였다. 퇴원후에 6개월 만에 약물 복용을 중단한 경우가 45%였다. 약물 복용 중단은 70%가 재발로 이어졌다(Bernheim, 1979).

조현병의 첫 번째 초기 단계에서 제 1 차 효과는 확실했다, 급성 에피소드들을 제거하는 데는 효과가 인정을 받았다 그러나 조현병 그 자체를 제거하지는 못했다. 자아 개념과 대인관계들 혹은 심리학적인 취약점은 내면의 심층에 아직도 남아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들이 밝혀지면서 약물 치료를 주로 하는 신경정신과 혹은 정신병원에서는 재활 치료를 도입에서 스트레스에 적응, 간단한 직업 훈련, 동료들과 집단 상담으로 대인관계 훈련 그리고 조현병 환자들의 가족들의 조현병에 대한 돌봄과 교육 프로그램을 병행하고 있다(Falloon, et al., 1989).

이제 왜 정신병이 대화와 관계되어져 있는가? 하는 쪽으로 이야기의 방향을 돌려보자. 신체적인 질병과 달리 정신병은 대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조현병은 뇌의 질병으로 불치병으로 본 것과 달리 이후에 정신분석가들에 의해서 도전을 받게 되면서 이 병이 복잡한 산업사회의 사회환경에 적응실패라는 이론들에 의해서 도전을 받게 된다. 그 이유 중에 하나는 고대와 중세에는 조현병이 없었다(빙의와 조현병은 다르다: 빙의 대 조현병을 보라). 조현병은 산업사회의 등장으로 정신병들이 쏟아지는 것과 관계되어져 있다. 불안증, 강박증, 공포증 등은 조현병 보다 약 50년 먼저 등장한 정신장애들이다. 이 시점에서 정신과학이 등장하게 된다. 신경학이 등장한 이후(프로이트는 신경과 의사)에 정신의학이 따라오게 된다(정신과의 등장은 120년 정도). 신경학자들이 불안증, 공포증과 강박증 등을 연구하던 그 바통을 이어받아서 정신과 의사들이 등장하게 된다. 실제로 조현병이 가장 뒤늦게 등장을 했다(1943년에 등장한 자폐증은 제외). 이것이 사회적 급격한 변화와 관계 있다. 농경시대에는 정신장애들이 거의 없었다. 직업은 농사(농업)를 짓는 것 혹은 고기(어업)를 잡는 것으로 단순했다. 자녀들이 평균 6명에서 7명들이고 대가족 사회에서 자녀양육과 대인관계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인간관계, 대인관계는 많은 형제들과 가족들과 관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산업사회가 되면서 자녀들은 1-2명이고 맞벌이 부부로 자녀들이 엄마의 품을 떠나서 조부모 혹은 이웃 아주머니 혹은 영아원, 유아원에 맡겨지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은 여러 번 언급을 했다(21세기의 정신장애의 유형을 보라).

치료의 과정에서 등장한 예들로 설명해보자. 오래 전에 한 엄마가 치료자에게 전화를 해서 그녀의 고1학년 아들인 B군이 심각한 폭력과 게임중독 그리고 한번씩 게임 중독이라는 목소리의 환청을 듣고 있으니 치료를 받고자 한다고 했다. 치료자는 6개월 치료 계약을 한다는 것과 6개월 이하는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1주일에 1회로 2시간 분석 상담을 진행한다는 것을 소상하게 설명을 하고 먼저 컨설팅으로 2시간 상담을 받아본 이후에 6개월 치료를 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B군의 어머니가 2시간 컨설팅을 받아보기로 결정을 하고 시간 예약을 했다.

치료 시간에 부모님과 고1학년 아들인 B군과 함께 치료실에 들어왔다. 부모님은 간단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치료실 밖으로 나가고 B군과 1시간 30분 동안 분석상담이 이어졌다. 그는 게임중독으로 밤에는 게임을 하고 학교에 등교를 해서는 반쯤은 졸게 된다고 했다. 언제부터 그렇게 되었느냐? 라는 질문에 B군은 초등학교 5학년부터 게임에 빠지게 되었다고 했다. 게임에 얼마나 빠지게 되었는가? 라는 질문에 3년 동안 하루에 8시간에서 10시간으로 몰입을 했다고 했다. 그는 친구가 거의 없었다. 학교에서 오전에는 밤에 잠을 자지 못했기 때문에 졸음으로 수업에 집주할 수가 없었고 공부에 흥미가 떨어지면서 성적은 최하위로 떨어지게 된 것이었다. 게임을 하면 어떠한가? 라고 질문을 했을 때 그는 게임 속에 들어가면 살아있는 기분이 들게 된다고 했다. 게임을 잘하기 때문에 하루에 8시간 혹은 10시간(방학) 투자를 3년 동안 집중적으로 했기 때문에 게임으로 들어가면 자신을 고수로 인정을 해 준다고 했다. 그 자신이 게임의 세계에서 30%의 이내에 들어간다고 스스로 고백을 했다. 그 속에 들어가면 동료들이 존경으로 인사를 한다고 했다. 인정받고 존경을 받아서 살아 있는 기분이 들게 된다고 했다. 그런데 현실에 나오면 무기력해지고 재미가 없다고 했다. 자아가 죽은 기분이라고 했다. 그는 최근에 분노가 치밀어 올라서 어떤 사람들을 죽이고 싶은 생각이 든다고 했다. 얼마 전에 길가던 낯선 사람과 시비가 붙여서 폭력으로 이어져서 파출소에 연행되어 훈계로 석방되었다고 했다. 자신도 조만간에 폭력범죄로 전략할 것이 두려워서 그리고 한번씩 게임중독” “바보, 멍청이라는 목소리를 듣게 되어 스스로 어머니에게 치료를 받고 싶다고 했다. 먼저 신경정신과에서 약물 치료를 받아 보았으나 환청은 사라진 것 같은데 게임은 멈출 수가 없었다, 그는 약물의 치료가 효과가 없다는 것을 실감하고 어머니에게 심리치료를 받고 싶다고 요청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친한 친구들이 있느냐? 라는 질문에 친구들이 없다고 했다. 친구들이 자신을 멀리하고 따돌리는 것에 화가 나서 분노를 참을 수 없다고 했다. 외동아들로 부모님의 관심의 초점이 된 것이 부담스럽다고 했다. 부모님은 대학을 졸업한 맞벌이 부부로 둘 다 공무원으로 그에게 모든 것을 투자를 해주는데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호소를 했다.

치료자가 B군에게 오늘 1시간 30분 동안 치료자와 이야기를 하면서 느낀 것을 말해 보라고 했을 때 B군은 편안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는 것과 그리고 치료 시간이 지겹지 않고 기분이 좋게 느껴진다고 하면서 치료를 받고 싶다고 했다. 치료의 시간이 종료되어 나머지 30분은 부모님을 모시고 B군의 1시간 30분의 상담 내용에 대해서 브리핑을 해 주었다.

B군이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동료들과 관계가 차단되면서 외로움을 게임으로 대체시켜서 스스로 고립을 자초한 것이 게임중독적인 상황에 이르게 되었고 이것을 스스로를 컨트롤을 할 수 없다는 것과 밤에는 잠이 오지 않아서 게임을 하게 된 것이 새벽 4시 혹은 5시까지 게임에 빠지게 되어 밤과 낮이 꺼꾸로 된 것이 벌써 3년이 지나가면서 습관화 되고 있다고 설명을 해주었다. 이어서 마지막으로 정신분석 치료는 증세 자체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고 자아를 바로 세우는 치료이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것과 6개월의 치료 계약을 한다는 것을 설명하면서 B군이 치료를 받고 싶다고 하니 부모님은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었을 때 부모님은 O.K 로 승낙을 하고 치료 비용은 미리 온라인으로 입금을 하기로 약속하고 다음 주일에 xx 요일에 오후 5-7시로 치료 기간을 예약을 하고 30분 동안 브리핑으로 컨설팅이 종결되었다.

몇 일 후에 어머니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어머니는 노발대발해서 치료자에게 항의를 했다. 선생님에게 시간 당 15만원으로 2시간 30만원의 상담료를 지불했는데 왜 아들에게 일상적인 이야기를 했는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어머니는 자신도 대학 때 상담학을 약간 공부를 했는데 게임중독과 폭력에 속수무책인 아들에게 어떻게 게임을 하지 않도록 하는지? 그리고 잠을 잘 자도록 하는지? 그리고 학업에 몰두하도록 이야기를 해주어야 하는데? 그러한 이야기를 해주지 않고 왜 일상생활의 이야기들을 해주었는가? 라고 항의를 했다. 어머니는 승용차를 타고 귀가 하면서 그녀의 아들에게 1시간 30분 동안에 어떤 이야기를 주고 받았는가? 라고 물어 보았을 때 아들 B군은 그냥 게임에 대해서 선생님이 물어보았다고 했다. 몇 시에 게임을 하고 몇 시에 끝나는가? 하루에 몇 시간 하는가? 등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고 하는 말을 듣고 나서 그냥 일상적인 잡담 식으로 1시간 30분을 낭비해서 30만원의 돈을 허비한 것이라고 분기탱천했다. 치료자가 상담한 내용을 설명을 하면서 어떤 내용을 다루었는지? 를 소상하게 이야기를 해주려고 했지만 그 어머니는 분노로써 맹공으로 질타한 이후에 전화를 끊어버렸다.

몇 시간 후에 B군의 아버지가 전화로써 치료사가 xx 대학에 강의를 했다고 했는데 그곳에 전화를 한 결과 그곳에는 심리학과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했다고 했는데 어느 대학을 졸업했는지?(컨설팅 시간에 치료자의 학력과 경력이 기록된 명함을 부모님에게 제공) 이야기를 하라고 다그쳤다. 자신이 직접 확인을 하겠다고 했다. 치료자는 부경대학에서 20년 강의를 했는데 그곳에는 심리학과가 있는 것이 아니고 교양과목으로 심리학을 강의를 한 것이고 그리고 대학에서 명퇴를 해서 10년이 다되었기 때문에 대학에 전화를 해서 김종만 교수님이 있는가? 라고 물어보면 그들은 모른다고 할 것이니 그렇게 하지 말고 다시 전화로 부산 부경대학의 수산교육학과(10년 전에는 그렇게 호칭) 전화를 해서 그 학과의 조교를 연결해서 그곳에서 10년 전에 김종만 교수가 심리학 강의를 한 경력이 있는지? 컴퓨터에서 체크를 해 보면 알게 될 것이니 그곳에 전화를 해보라고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 이후에 B군의 아버지는 전화가 없었다.

그 다음 주일에 치료의 약속 기간이 가까워지면서 치료자가 B군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어머니가 전화를 받자 말자 치료를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라고 약속 취소를 한다고 하면서 전화를 끊어버렸다. 치료자가 전화를 걸었던 것은 치료를 하라고 한 것이 아니고 의심스러우면 치료를 할 수 없으니 치료약속을 취소한다는 말을 하려고 전화를 한 것인데 어머니는 아예 이야기를 듣지도 않고 전화를 끊어버린 것이었다.

이 간단한 에피소드를 가지고 조현병과 대화가 어떻게 서로 연결되어있는가?를 가단하게 설명을 해보자.

첫 번째, 어머니와 아버지의 대화의 스타일을 살펴보자, 일반적으로 우리는 궁금한 것이 있을 때 예를 들어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들(왜 치료에서 6개월 이상을 하는가? 왜 치료 비용을 선불로 받는가? 왜 다른 사람들은 50분을 하는데 2시간을 치료를 하는가? 왜 약물 치료를 하지 않고 대화 치료를 하는가?)등등의 궁금증이 생기는 것은 정상적인 의문들이다. 이러한 궁금증이 생기면 치료자에게 전화를 해서 소상하게 물어보고 이해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치료자의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컨설팅 혹은 치료를 받지 않게 되는 것이 보통인데 B군의 어머니는 컨설팅을 받고 나서 그 시점에서는 질문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후에 아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궁금증이 생긴 것이다. 그녀는 그녀 자신이 치료자에 대한 의문을 이해를 하지 못하는 것을 그녀의 자신의 생각과 견해로써 해석을 해서 공격적으로 대화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지 않고 모든 것이 그녀 자신의 생각이 옳다라고 해서 분노를 공격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B군의 아버지는 역시 어머니와 유사하다. 그래서 부부동색, 유유상종(부부는 서로 유사한 사람끼리 만난다)이라는 말처럼 부부가 서로 생각과 행동이 유사하다는 점이다. 그들은 먼저 궁금한 것을 상대방에게 물어 보고 확인하고 난 다음에 자신의 의문점을 조목조목으로 이야기를 하지 않고 자신의 주장만 강하게 주장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하지 않는다. 치료자가 설명을 하려고 했을 때 필요 없다고 대화를 거부했다.

두 번째, 어머니의 주장은 100% 틀린 것은 아니다. 1% 혹은 2%는 맞다(프로이트가 이것을 일말의 진실”, “진실의 껍질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80%는 잘못된 것이다). 어머니가 분노한 것은 1시간 30분 동안에 왜 쓸데없는 시간 낭비를 했는가? 30만원의 비용을 낭비한 것에 대한 분노이다. 어머니가 주장한 것은 왜 게임 중독인 아들에게 게임을 어떻게 중지하는지? 어떻게 공부에 집중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일찍 잠을 자도록 하는지? 와 같은 이야기를 하지 않고 게임을 얼마나 많이 하고 있는가? 그리고 학교에 가서 무엇을 하는가?  폭력에 어떻게 관계하게 되었는가? 등의 이야기한 했다. 즉 문제 해결을 가르쳐주지 않고 게임이야기, 폭력에 대한 이야기만 했으니? 그것은 어떻게 해서 게임을 하지 않도록 하라는 말이 없지 않는가? 라고 항의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머니의 말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만약에 1시간 30분 동안에 치료자가 B군에게 게임을 하면 시간낭비가 되고 공부를 하지 못하게 되니 백해무익한 것이 아닌가? 폭력을 사용하면 범죄자가 될 것이니 폭력을 사용하면 안 된다. 일찍 잠을 하고 일찍 일어나고 친구들과 잘 어울려야 한다는 말을 1시간 30분 동안에 했다고 하면 그것은 이미 B군도 부모님도 세상 사람들도 모두가 다 알고 있는 대답으로 굳이 전문가에게 와서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겠는가?  B군은 스스로가 통제가 되지 않고 자신이 스스로 컨트롤 할 수 없기 때문에 전문가를 만나게 해 달라고 어머니에게 요청을 한 것이 아닌가? 치료자가 이러한 이야기를 어머니에게 해주려고 했지만 어머니는 듣지 않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세 번째, B군의 어머니와 아버지의 대화 스타일을 분석해보자. 어머니는 치료자와의 대화에서 자신의 이야기만 주장을 했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다. 이것은 어머니의 대화의 스타일이다 아들인 B군의 이야기를 소상하게 들어주지 않는다는 말이 아닌가? 어머니의 습관화된 패턴이 치료자와 사이에서 등장한 것이다. 이것을 정신분석에서는 전이라고 부른다. 평소에 습관화된 스타일이다. 어머니는 그러한 자신의 스타일을 모르고 있다. 이러한 대화의 스타일은 부부 사이에도 비슷하다, 만약에 B군의 아버지가 어머니의 스타일과 유사하지 않다고 하면 부인에게 치료가가 한 말을 전달해서 다시 한번 치료사의 설명을 들어보고 이해하도록 하지 않고 두 사람이 치료사를 사이비로 공격을 하고 있는 대화의 패턴을 보면 이것이 지금까지 1학년 아들에게 약 16(7살에 초등학교 입학, 초등 6, 중학교 3)동안 살아오면서 아들이 무의식적으로 보고 배운 것이 아닌가? 아들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보고 소상하게 설명을 하도록 해주지 않고 부모님은 지시, 명령, 훈계가 그들의 대화의 스타일이다. 벙어리가 아닌 이상 어른들의 말에 따르고 순종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다. 조현병 환자는 어른들과 관계에서는 큰 문제가 없다, 모두가 동료들과 친밀관계가 어려운 것이 핵심이다. B군이 동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게 된 것은 사춘기가 시작되는 초등학교 5학년 시점에서 동료들과 관계에서 서로 이이기를 들어주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공감대(상대를 이해하고 수용하는 공감능력)를 형성하는데 어려움 때문이다. 그는 동료들과 갈등이 생기면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고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자신의 주장만 분노로 공격, 공격적인 대화(어머니의 대화 스타일) 하고 있기 때문에 친구를 사귀기 어렵다는 것이다. B군은 이미 지나가는 사람과 갈등에서 폭력으로 대응해서 파출소에 폭력혐의로 붙잡혀갔다는 것이 증명해주고 있지 않는가?

네 번째, 어머니가 치료실에서 상담을 끝내고 집에 가면서 승용차 안에서 치료사 선생님과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가? 라고 물었을 때 아들 B군이 그냥 게임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게임을 얼마나 하는지? 어떻게 하는지? 등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이 말에 어머니가 발끈하게 되었다고 전화 통화 때 이야기를 했다. 여기에서 또 한가지는 아들은 치료자와 1시간 30분의 이야기를 소상하게 전하지 못하고 전체의 이야기 그냥 게임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라고 표현한 것이 바로 대화를 소상하게 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닌가? (B군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조현병 환자) 부모님이 어린시절부터 지금까지 B군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주고 경청하는 습관을 길러주지 않았기 때문에 B군은 치료자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해는 했지만 정작 그것을 소상하게 부모님에게 표현을 하는데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고로 B군은 이미 동료들과 관계에서 그리고 지나가는 사람들과 시비가 폭력으로 이어진다는 것으로 그는 어머니의 대화의 결함 그대로 배웠기 때문에 그의 대인관계가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지 않는가?

다섯 번째, 어머니와 아버지는 치료자에게 게임과 폭력의 문제 해결을 가르쳐주지 않고 쓸데없는 시간을 낭비했다고 분노하는데 실제로 정신과 환자의 모든 정보는 치료자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고(신체적 질병과 정반대, 환자는 의사의 말대로 따라가면 된다. 모든 질병에 대한 정보는 의사가 가지고 있다)모든 정보는 환자의 머리 속에 있는 것이 아닌가? 부모님으로부터 게임에 중독, 폭력으로 폭발 위험에 있다는 정보는 치료자가 이미 컨설팅 이전에 전해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B군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들이 정확한 정보이기 때문에 B군이 말을 하도록 해서 B군의 현재의 실제 상황을 소상하게 알아야 정확한 진단을 하고 그리고 치료의 계획 즉 가설이 형성되는 것이 순서가 아닌가? 신체적인 질병들은 종합검사를 통해서 내시경, X-, CAT 등의 검사들을 통해서 혹은 약물들의 반응검사를 통해서 어디에서 어떤 곳이 잘못되었는가?를 밝혀낼 수 있다. 그러나 정신적인 문제들은 MRI,PET, 뇌파 검사 등에서는 신체적으로 이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난다. 고로 환자의 머리 속에서 생각, 상상과 지각과 기억 등을 분석으로 밝혀내기 위해서는 이야기를 통해서 대화를 통해서 머리 속에서 정보를 끄집어내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또 한가지의 아래와 같은 문제점이 발생하게 된다.

 치료자에게 인턴쉽을 받게 된 한 젊은이가 그의 친구를 소개해서 6개월 동안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받게 되었다. 그 젊은이는 그의 친구가 치료실 안에서 치료를 받고 있을 때 옆에서 의자에 앉아서 어떻게 치료자와 환자가 서로 대화를 주고 받는지 혹은 어떻게 반응행동을 하는지?를 관찰하면서 배우게 된다. 2시간의 치료 회기가 끝나면 환자는 치료실을 나가서 집으로 돌아가고 인턴은 2시간 치료자와 환자와 나눈 이야기들 본 것과 관찰한 것을 서로 나누고 문제점들과 느끼고 배운 것들을 토론을 하게 된다. 이러한 인턴쉽 과정은 환자의 전체 치료시간인 48시간 동안의 치료 과정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반복해서 치료에 참가하게 된다.

 이 토론에서 그 인턴은 2시간 동안의 치료자의 이야기들이 4분의 3은 했던 반복되는 이야기로써 너무 중복이 많다고 술회를 했다. 그는 관찰한 느낌을 토로 하면서 만약에 치료자가 반복하는 중복된 시간을 줄이게 되면 50분의 시간으로 시간도 절약하고 그리고 환자의 비용을 절약하게 되면 서로 일거양득이 아닌가? 라고 술회를 했다. 그의 이야기는 절반은 정확하다 그러나 정신분석치료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인턴이 지적한 것은 정보의 획득이다. 왜 지난 시간에 했던 이야기들을 반복하면서 나머지 4분의 1의 시간 만으로 새로운 내용들이 전개되는가? 하는 것에서 인턴은 정보를 습득하면 시간이 줄일 수 있다는 것의 지적은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신분석 심리치료에서는 정보의 수집이 제 1 차적인 것이 아니다. 1 차적인 것은 환자가 지루하지 않고 즐겁게 그리고 자신도 모르고 이야기를 하도록 만들어내는 치료의 기술이다. 심리치료에서 정보는 환자의 머리 속에 있기 때문에 이 정보를 알아야 치료의 진단과 치료의 초점이 맞추어지는 것은 틀린 말이 아니다. 그래서 인지-행동 치료에서는 3개월 혹은 4개월 프로그램에서 정보의 수집을 위해서 설문지로 원하는 질문지에 환자가 답을 쓰게 하거나 질문으로 대답을 주고 받게 한다. 그래서 정보를 습득하게 된다. 그런데 정신분석에서는 환자와 치료자 관계의 신뢰가 첫 번째 이다. 이것을 치료 동맹 혹은 작업 동맹 혹은 레포(rapport)라고 부른다. 치료 회기 즉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는 것이 지루하지 않고 즐겁고 시간이 가는 줄을 모르고 불편함이 없어야 한다. 치료를 받는 사람이 마음 편하게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다. 여기에서 딱딱한 질문의 형식으로 원하는 정보를 얻으려고 하면 환자는 몇 주일은 모르지만 몇 개월 이상은 나오지 않는다. 재미가 없다, 딱딱하게, 지루하다, 계속 질문만 해서 경찰 수사관이 범죄자를 심문, 조사를 받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등등 이다.

  이러한 치료자의 설명에 이해를 하게 된 그 인턴은 실제로 환자인 그의 친구에게 치료 회기의 2시간이 지루하지 않았는가? 라고 물어보았을 때 그의 친구인 환자는 아니야? 지루하게 느껴지지않고 편안하고 부담이 느껴지지 않아서 실제 2시간의 치료 시간이 30분 정도로 느껴졌다라고 대답을 했기 때문에 그 인턴은 스스로 정신분석에서 대화의 기술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고 치료사에게 실토를 했다.

 이러한 치료의 기법들은 정신분석이 시작되고 나서 100년이 흘러가면서 수 많은 분석가들에 의해서 연구되고 치료되어지면서 실험 증명이 된 치료 기법들이다. 사람의 마음에 대한 심리적인 원리를 알고 있기 때문에 치료 회기 시간에 분석가는 환자를 어떻게 인도해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다, 고로 환자가 눈치채지 못하게 이야기를 하는데 지루함이 없이 스스로 정보를 내어 놓도록 이야기를 진행하는 것이다. 환자가 느끼지 못하게 이러한 이야기를 조금씩 조금씩 서로 밀접하게 연결시켜 놓았기 때문에 환자는 이야기가 끊어지지 않고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있다고 느끼게 된다(정신분석의 기법, Greenson(1968)를 보라).

최면치료에서 치료사가 환자의 마음을 유도해서 미세하게 조금씩 이어 따라오도록 해서 그 순간에 자신을 의식하지 않고 치료사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최면기법에서 프로이트가 최면을 버리고 자유연상의 기법을 도입인 것이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치료 회기가 끝나고 나서 그 다음 치료 회기가 시작 될 때 지난 시간에서 다루었던 이야기를 반복해서 재연으로 소상하게 이야기를 이끌어내서 그 다음의 기억으로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연결됨의 봉합지점이 느껴지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하는 기법이 숨어있다. 고로 항상 기억 속에 묻힌 새로운 기억이 샘물처럼 솟아오르게 된다(Greenson, 1968, 1978: 주㈜: 참고). 치료자가 13년 동안 치료를 한 Z씨의 경우에는 13년 동안 치료를 해도 매번 새로운 실마리들이 솟아나오는 것에 치료자 자신도 그리고 Z씨도 그 스스로 탄복을 하면서 즐겁게 치료를 한 경우가 있다. 치료자와 환자 사이에서 정보의 수집이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니고 치료적 신뢰감이 대화의 제 1 차 목적이고 그 다음에 정보의 수집이 제 2차 목적이 된다는 말이다.

두 번째 사례의 경우로 넘어가 보자. 40대 중반의 아버지가 치료자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아버지는 자신의 대학 1학년 딸이 조현병으로 학교를 휴학하게 되었다고 했다.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치료자의 정신분열증 심리치료 라는 홈페이지를 보고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치료자는 6개월의 치료 계약을 한다는 것과 1주일에 1회로 2시간씩 분석 상담을 한다는 것을 설명하면서 2시간 컨설팅을 받고 나서 딸이 치료사와 호흡이 맞아서 치료를 받겠다고 하면 6개월 치료 계약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컨설팅 비용은 1시간당 15만원으로 2시간 30만원을 준비해 오면 된다고 했다. 만약에 6개월 치료 계약이 이루지면 시간당 15만원이 아니고 48시간에 50%를 활인을 해서 6개월의 치료 비용이 xxx 원이라고 이야기를 해주었다. 아버지는 시간 약속을 하고 xx 일에 12-2시로 시간 약속을 했다.

약속 시간에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딸인 C양이 치료실에 도착을 했다. 치료자는 부모님에게 양해를 구하고 1시간 당 15만원으로 2시간 컨설팅 비용을 이야기를 하면서 컨설팅 비용을 먼저 받게 되는 것을 이해하도록 하면서 비용을 지불하도록 요청을 했다. 이 때 어머니가 발끈 했다. 이야기를 하는데 비용을 받는가? 하는 질문이었다. 치료자는 시간의 사용료를 받는 것이라고 설명을 하면서 아버지에게 소상하게 미리 이야기를 했는데 아버지로부터 이야기를 듣지 못했는가? 라고 이야기를 했을 때 어머니는 그러한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고 했다. 어머니는 할 수 없다는 태도로 30만원을 지불하고 컨설팅이 시작되었다. 치료자가 부모님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하라고 하고나서 몇 분 후에 부모님이 치료실 밖을 나가고 C양과 대화치료가 시작되었다. C양은 xx 대학 1학년으로 환청이 들리면서 학교를 휴학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언제 어떻게 어떤 환청이 들리게 되었는가? 로 이야기가 이어져가려고 하는데 밖에서 초인종이 울렸다.

치료자가 C양에게 잠깐 기다리게 하고(치료자는 간호사를 고용하지 않는다) 도어문을 열고 나갔을 때 어머니와 아버지가 서 있었다. 어머니는 단도직입적으로 치료실 안에서는 선생님과 딸이 두 사람이 앉아서 2시간 동안 이야기를 하는가? 라고 물었다. 치료자가 그렇다고 했을 때 어머니는 깜짝 놀랬다. 어떻게 남자와 성인인 딸 아이가 두 사람이 한 방에서(치료실)에서 이야기를 하도록 부모가 놓아둘 수 있는가? 혹시 나쁜 짓이 일어나면 어떻게 하는가? 라고 엉뚱하게 이야기를 했다. 그 시간이 밤이 아니고 낮 12시쯤이고 치료자는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사람인데 믿을 수가 없느냐? 라는 이야기를 했을 때 어머니는 펄쩍 뛰었다. 이 세상에 믿을 사람이 누가 있는가? 대학 교수를 어떻게 믿는가? 어머니는 순간적으로 휴대폰으로 그녀의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의 언니에게 심리치료를 하는 사람과 딸이 한 방에서 상담치료를 하는데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 라고 이야기를 했을 때 전화기 속에서 그녀의 언니가 하는 말소리가 들렸다. “그렇고 말고 이 세상에 누구를 믿을 수 있는가?” 라고 맞장구를 치는 소리를 들으면서 치료자는 컨설팅 비용을 되돌려주었다. 치료자는 치료실에 돌아와서 C양에게 어머니가 상담실에 두 사람이 함께 있는 것을 허용해줄 수 없다고 하니 치료비용을 환불 했다고 이야기를 했을 때 C양은 말이 없이 치료실 밖으로 나갔다.

물론 이러한 이벤트는 치료자의 그때까지 30년 동안의 치료의 과정에서 처음으로 일어난 것이다. 여기에서 어떻게 조현병이 대화와 연결되어져 있는가? 를 살펴 보도록 하자.

첫 번째, 아버지와 어머니의 관계를 살펴보자, 아버지는 치료자와 그의 조현병의 딸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치료자가 소상하게 아버지에게 모든 것을 설명해주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컨설팅 비용과 진행과정을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 분명했다. 컨설팅 비용을 요청했을 때 어머니는 깜짝 놀랬고 아버지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치료자가 이미 아버지에게 소상하게 이야기를 했는데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이야기를 하지 않았는가? 확인을 했을 때 아버지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어머니가 치료실 밖으로 나가서 다시 초인종을 누르고 치료자가 혼자서 치료실 안에서 딸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라고 항의를 했을 때 아버지는 어머니 옆에서 서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부부 사이에 대화는 끊어져 있었다, 아버지는 무기력하고 부인의 좌지우지에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두 사람 사이에 관계는 아버지의 의견 혹은 목소리가 없었다. 모든 것은 어머니가 좌우했다. 다시 말해서 어머니의 말에 제동이나 브레이크를 걸어주는 아버지가 없었다.

두 번째 어머니가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믿을 수 없다고 한 말을 들어보면서 사람을 믿지 못하고 불신을 하는 어머니의 삶의 태도 혹은 관계의 방식은 하루 아침에 형성된 것은 아니다. 대학 1학년이 딸은 적어도 19세 혹은 20세가 되었을 것이다. 20년 동안 어머니의 인간에 대한 불신은 딸에게 심어졌다는 것이 아닌가? C양은 친구가 없다고 했다(아버지와 컨설팅 이전의 통화). , 중학교 시절에는 공부를 잘했다고 했다, 고교 시절에는 친구가 없어서 외톨이가 되면서 소외감으로 대학에 들어갔지만 친구를 사귀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 이 세상에 아무도 믿지 말라 라고 하는 것에서 C양은 동료들과 관계를 가질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세 번째 부부 사이에 대화가 없고 어머니의 일방통행이 부부 사이에 대화와 토론으로 문제 해결의 모델이 없었다는 것이다. C양은 어떻게 대화를 하고 갈등을 해결하는가? 가족 관계에서 배울 수가 없었다. 가족이라는 좁을 울타리에서 배운 대화의 스타일과 문제 해결방식과 대인관계 방식은 학동기가 되고 초, 중학교,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동료들과 관계를 통한 피드백 안에서 C양은 자신의 부모님의 가족이 동료들의 가족들과 무엇이 다른가? 어떤 점이 다른가? 라는 피드백을 통해서 자신의 부모님의 가족이 다른 가족들과 다르다라는 것을 배우지 못하고 자신의 부모님과 가족 생활이 이 세상에서 표준이고 모든 다른 사람들의 가족이 똑 같이 자신의 가족과 같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사춘기에 진입하면서 동료들과 관계가 좋은 자녀들은 부모님의 가족이 파괴적이라고 해도 동료들과 관계가 좋으면 조현병에서 빠져나올 수가 있다는 것은 수많은 분석가들의 치료 사례에서 보고되어지고 있다, 치료자 역시 이러한 것을 뼈저리게 경험하고 있다. C양은 가족 밖의 세계는 그녀 자신의 세계와 너무나 다르다라는 것에 혼란하게 된 것이다. 바깥 세상은 너무나 위험하고 믿지 말라 라는 어머니의 교훈이 그녀의 발을 묶어버린 것이다. 결국 그녀는 바깥 세상으로 나가지 못하고 내면의 세계 속에서 살게 된 것이 바로 그녀를 비롯한 조현병 환자들이다.

네 번째 어머니가 그녀 자신의 언니와 나누는 대화에서 치료사와 딸이 한 방에서 대화를 한다고 하는데 이것을 믿을 수 있는가? 라고 조언을 구했을 때 어머니의 언니가 하는 말은 믿을 수가 없다”, “큰일 날 수 있다”. 이 세상에 누구를 믿는단 말인가? 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에서 어머니의 친정은 어린시절부터 자라나면서 부모로부터 이 세상에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라고 교육되어진 것이 분명하다. 어머니의 대인관계 패턴전이로써 치료자의 눈에 비치게 된 것이다. 고로 C양은 사람들을 신뢰할 수 없기 때문에 관계를 만들어갈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갈등이 생기면 무조건 피하고 불신으로 도망을 가버리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대화를 하고 갈등을 풀고 관계를 바르게 고치는 것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것이다.

에릭슨(Erikson, 1950)은 출생 후에 0-1세의 기간에 대인관계의 기초가 되는 믿음 대(vs) 불신의 관계가 형성되는 기간으로 이 단계를 통과해서 갈등을 해결하게 되면 변증법적인 결과로 더욱더 큰 자아의 확대와 성장으로 그 다음의 단계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 단계에서 실패는 믿음, 신뢰의 관계는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게 된다고 노트하고 있다. 이것이 다른 사람을 의심하고 믿지 않고 신뢰하지 않고 끝없이 다른 사람의 잘못된 결함을 파헤쳐서 남의 탓으로 돌리는 편집증 조현병(편집증 + 조현병)의 특징이 바로 C양의 조현병이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여기에서 어떻게 대화치료가 등장했는가?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40분 혹은 50분 동안에 치료사와 환자가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는 대화치료는 프로이트가 개발한 것이다. 그렇다면 프로이트 이전에는 심리치료가 없었다는 말인가? 라고 질문을 하게 된다. 그 대답은그렇다이다. 정신분석에 유사한 말로써 심리치료가 등장하게 된다. 심리치료라는 말은 1893년 제 3회 국제 심리학 총회에서 등장한 말이다. 프로이트는 심리치료라는 말과 구분으로 정신분석이라는 말을 사용하게 된다, 고로 프로이트와 유사한 시점에서 심리치료가 등장한다(Ellenberger(1970)의 무의식의 역사, 어네스트 존(Ernest Jones)(1953, 1955, 1958)의 프로이트의 삶과 업적(프로이트의 전기)를 보라).

 그렇다면 고대와 중세와 근대에는 정신병이 없었던 말인가? 라는 질문이 나오게 된다. 고대, 중대, 근대(17세기까지)는 정신병이 아니고 빙의(憑依) 현상으로 존재 했다. 빙의 현상은 그리스 시대를 제외(의학의 아버지인 히포크라테스가 히스테리아(hysteria)라는 이름으로 정신병의 치료)하면 고대와 중세와 근대는 귀신이 붙었거나 영혼을 상실한 사람으로써 보았다. 치료를 하는 사람들은 샤만(shaman, 무당)이 귀신을 쫓아내는 굿(exorcism)으로 퇴마의식을 했다. 그 시점에서는 농경시대로 단순하고 농사와 어업과 목축업 등의 직업이 전부이고 마을을 이루고 공동체로 살았기 때문에 한 명 혹은 두 명의 빙의 현상들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중세는 기독교 시대로 그리스의 마음, 심리(psych)가 영혼으로 바뀌게 된다. 영혼이 병든 것을 악마, 악귀, 악령이 침범한 것으로 보았다. 그래서 그들을 치료하는 것이 캐토릭에서 신부가 퇴마의식(exorcism)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영화들이 바로 오멘(Omen)(2006년에 개봉)과 같은 영화들이다.

빙의 현상은 인간의 마음을 현상학적(눈에 보이는 현상으로 이해) 이해했기 때문이다.  건강한 사람이 어느 한 순간에 이상한 말을 하거나, 이상한 행동을 하게 되면서 병들기 이전의 사람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행동하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이상해진 것은 다른 영혼이 침입해서 그 사람의 마음 속에 들어오게 된 것으로 본 것이었다.

인간의 마음에 대한 연구는 17세기의 프랑스의 철학자인 데카르트(Descartes)(1596-1650)에서 시작된다. 그는 마음을 몸에서 분리해서 생각에 초점을 맞춘 사람이다. 그의 명언인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언을 남겼다(Stolorow & Atwood, 1987, 1992,2002a, 2002b: 주㈜: 참고).

영국의 물리학자인 뉴턴(1642-1727)의 만류인력이 등장하고 전기와 자장이론의 등장으로 과학의 발달이 시작되었고, 18세기의 계몽주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중세의 무지, 미신으로부터 깨어나는 이성과 과학의 시대로 발전하게 되면서 의과대학의 의사인 메즈머(Mesmer)가 빙의는 귀신에 씌인 것이 아니고 정신병, 즉 정신이 병든 것이고 치료를 자석으로 치료를 하게 된 것이 정신치료의 시작이었다.

그는 그의 유체 이론을 뉴턴의 만류인력에 버금가는 획기적인 발견이라고 스스로 주장을 했다. 그는 자석이론으로 그리고 자장과 전기 저장들(라이덴 병)을 기초로 상당한 과학적인 이론으로 무장을 해서 인간의 마음이 연약하게 되면 정신이 병들게 되는데 이 때 건강한 사람의 마음을 구리 막대기(레포라는 이름을 가진)를 통해서 환자에게 전달해서 건강한 마음으로 채워넣을 수 있다는 동물자장이론으로 무장을 했다. 오스트리아에서 그는 17세의 장님 소녀의 눈을 뜨게 한다고 큰 소리를 쳤다(만병통치로 착각)가 실패하는 바람에 인기가 시들해져서 프랑스로 갔다, 그는 프랑스에서 그의 저서와 실제 치료시범을 통해서 귀신병 환자의 치료를 보여주면서 인기가 폭발하면서 모두가 그의 이론과 과학을 배우려고 하는 소동이 폭발을 했다. 결과적으로 프랑스 정부가 과학자들과 의사들 그리고 변호사들로 구성된 특별 조사팀을 구성해서 정말로 뉴턴에 버금가는 발견을 한 것인지를 조사하게 했다. 그 결과 그가 주장하는 유체가 건강한 사람으로부터 병든 사람으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그는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상세한 것은 치료자의 홈 페이지를, 심리치료의 진실과 거짓 Ⅰ를 보라).

메즈머는 제자들을 양성하지 않고 자신의 이론을 배우려고 하거나 유사한 치료를 하는 사람들을 고소하고 고발을 했다 고로 그의 후계자가 등장하지 않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저서들을 보면서 이것을 연구한 사람이 바로 프랑스의 포병연대장인 푸이세이그(Puysegur)의 삼 형제들이었다. 푸이세이그 집안은 대대로 귀족가문의 명문가로써 이름난 인물들이 배출된 가문이었다. 장남인 푸이세이그는 충분한 시간적인 여유를 물리학 실험실을 만들어서 연구를 한 사람이었다. 어느날 그의 부하가 연병장의 사열식에서 기절한 것을 그가 도와주면서 메즈머의 자석 치료의 기법으로 그와 대화를 하게 되어, 점점 자석치료에 호기심으로 빠져들어갔다. 그는 마침내 그의 치료 과정을 소개하고 제자들을 양성해서 본격적인 연구를 하게 되었다, 그는 메즈머의 자석치료를 자석의 힘 때문이 아니고 심리적인 힘이라는 것을 밝혀내고 이름을 자석치료에서 인공잠(artificial sleeping)으로 바꾸었다. 학회에 보고하고 사례들을 연구를 했다. 200명의 제자들이 등장했다. 그들은 돈을 받지 않고 환자들을 직접 방문을 해서 무료로 치료를 해 주었다.

프랑스 혁명으로 귀족들이 몰락하게 된다. 그는 박애적인 사업의 공로를 인정받아서 감옥에서 석방되었고 이후에 그 지역의 시장이 되었다. 그는 인공잠을 계속해서 연구를 해서 사례 보고서를 작성하고 치료의 근거들을 보관하도록 했다. 이후에 귀족들을 대신한 중상류층의 부르주아들이 등장해서 돈을 받고 환자를 직접 방문해서 치료를 하는 것으로 발전하게 된다. 그러나 그들의 치료는 대화치료와 달랐다. 환자를 방문해서 치료를 했지만 50분으로 혹은 한 시간으로 정해진 것이 없었다.

인공감은 프랑스에서 확대되어 펴져나갔다. 1843년에 영국의 외과 의사인 브레이드(Braid)가 이것을 최면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리스의 잠의 여신인 히포노(Hypnos)라는 말에서 최면(hypnosis)(催眠: 암시에 의해서 인위적으로 조작된 잠의 상태: 다음백과)라는 말로 바뀌게 된다. 히스테리아의 정신병의 치료에 최면치료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된다. 1882년에 신경학자이자 의과대학 내과 교수인 가르코트(Charcot)가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에 3번이나 거부당한 후에 4번째 수락으로 몽유병에 대한 최면 치료 연구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하게 되었다.

프랑스의 과학계가 최면학을 과학으로 인정해주면서 1883-1893년까지 10년 동안 의과대학과 프랑스 전역에서 최면치료가 실시되었다. 프랑스에서 두 개의 최면학교가 설립되었다. 가르코트 학교와 낸시 학교였다. 가르코트는 히스테리아의 나폴레옹으로 이름이 붙었다. 히스테리아의 최면 치료는 세계적인 관심과 주목을 모으게 되었다(상세한 것을 치료자의 홈 페이지를 보라).

이 시점에서 비엔나 의과대학 레지던트 4학년이었던 프로이트가 최고 우수한 레지던트 3명에게 해외 유학 장학금을 주게 되는 첫 시행에서 프로이트가 합격해서 카르코트 밑에서 6개월간 최면을 연구하게 된다.

프로이트의 아버지는 40대에 2번째 결혼(부인의 사망)으로 20대의 프로이트의 엄마와 결혼을 해서 장남으로 프로이트가 태어났다. 아버지는 첫 결혼에서 이미 21세와 17세의 두 아들이 있었고 큰 아들 엠마누엘은 21세로 결혼을 해서 아들이 태어났다(프로이트보다 1살 위), 어머니와 둘째 형님 필립 사이에 관계에서 오디프스 이론이 태어난 것으로 학자들은 노트를 하고 있다. 프로이트가 3살 때 출생지인 체코슬라바키아의 모라비아(그 당시에는 오스트리아 제국의 영토)에서 비엔나()으로 이사하게 되면서 이복 형님들은 영국의 만체스터로 이민을 갔다. 그들의 사이는 좋았다. 프로이트가 고등학교 학생 때 만체스터를 방문했고 그는 유태인 차별이 없는 영국을 동경했다(나치의 박해로 그는 영국으로 추방되어 2년 후에 사망했고 그는 영국 땅에 묻히게 된다). 프로이트가 의과대학생 때 아버지는 60대로 노동력을 상실했다. 그래서 그는 일찍이 대학 2학년 때 부케의 해부학 연구실에 연구 조교로써 학비를 보태야 했다. 부케는 독일의 해부학자이자 물리학자인 헤몰츠와 절친한 친구였다. 그들의 몇몇 동료들이 모여서 헤몰츠 그룹을 만들고 그들이 철저하게 물리와 화학과 수학으로 모든 학문을 연구한다는 약속으로 태어난 것이 독일의 물리학회가 된다. 이후에 독일이 과학계를 선점하게 된다(Ernest Jones, 1953, 1955, 1958).

프로이트는 부케 밑에서 철저하게 과학적으로 의학을 공부를 하게 된다. 프로이트는 의사보다 대학에서 교수로 남고 싶어 했다. 그러나 부케는 이미 선배들이 만원으로 차 있었기 때문에 교수가 어렵다고 프로이트를 설득해서 의사로 나가게 했다. 그 당시에 5년째의 의과대학에서 8년 동안 해부학 연구 조교로 있던 프로이트는 메이너트(Meynert)의 뇌 연구소에서 연구 조교로 자리를 옮겼다. 해부학자, 신경병리학자 그리고 정신과의사인 세계적인 뇌 과학자 밑에서 뇌를 연구하게 되었다.

이 시점에서 프로이트에게는 아버지, 동료 그리고 후견인 역할을 했던 비엔나 의과대학의 선배인 브로이어(Breuer)를 만나게 된다. 그는 14살의 선배로써 프로이트에게 학비와 생활비용을 틈틈이 지원해주었다. 그는 이미 유명한 의사가 되어있었다. 그를 자주 방문해서 서로 의학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가 안나 오(Anna O)라는 유태인 백만장자의 딸을 치료하고 있다는 소개를 받게 된다. 그녀가 히스테리아 환자로 최면으로 치료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프로이트에게 새로운 삶의 전환점이 된다.

1885 10월에 프로이트가 살페트리에(Salpetriere) 가르코트 학교를 방문하게 되고 그곳에서 최면학을 연구하게 된다. 이후에 프로이트의 삶은 신경과 의사에서 최면사로 히스트레아를 연구하는 사람으로 바뀌게 된다. 그는 10년 동안 히스테리아, 불안신경증, 강박신경증, 신겨쇠약증 등을 연구를 하게 된다. 1895년에 브로이어와 프로이트가 공동 저서로 히스테리아 연구라는 책이 출판되고 그 책에서 프로이트가 5명의 여성들 중에서 최면에 걸리지 않는 2명의 여성들을 최면과 유사한 방법으로 자유연상의 기법으로 치료를 하게 된다. 이것이 정신분석의 탄생이 된다는 것을 여러 차례 밝혔다.

브로이어는 메즈머의 50년 그리고 최면의 50년의 역사에서 최면의 실체가 카타르시스 라는 것을 밝혀냈다. 최면의 신비가 19세기 말에 밝혀지고 최면에 걸리지 않는 사람에 대한 근본적인 연구의 필요성이 프로이트가 간파하게 되면서 정신분석이 탄생하게 된다.

브로이어가 안나 오(Anna O)양을 최면으로 치료를 하면서 안나 오 양이 어느날 치료 시간에 그녀가 브로이어의 아기를 임신했다(상상 임신)고 고백을 하게 되면서 깜짝 놀래서 그는 안나 오양을 프로이트에게 맡기고 부인과 함께 금혼여행을 떠났다. 프로이트는 이미 최면을 포기했기 때문에 안나 오를 카우치에 눕게 하고 마음 속에 떠 오르는 것을 말로써 표현하게 했다. 안나 오양이 최면을 사용하지 않고 생각, 느낌, 감각, 지각과 감정들을 자유롭게 이야기를 하라고 하는 것에서 그녀가 선생님 이것은 이야기로써 치료를 하는 대화치료(talking cure)가 아닙니까?”라고 말을 한 것에서 대화치료가 등장하게 된다. 계속해서 그녀는 프로이트가 감정을 토해내고 울분을 토해내는 것(카타르시스 기법)을 보고 선생님 이것은 바로 굴뚝청소와 같은 것이 아닙니까? 라고 한 것이 정신분석에서 마음의 정화(abreaction)이라는 말이 등장하게 된다.

프로이트가 카우치에서 1주일에 5일 동안 하루에 1시간(50)으로 치료를 하게 되면서 대화 치료가 태어나게 된 것이다. 이전에 최면치료에서 치료사가 환자를 방문한 왕진 치료가 이번에는 반대로 환자가 치료사를 방문해서 40분 혹은 50분으로 1시간 동안 대화로 치료를 하는 대화치료가 프로이트에 의해서 등장하게 된 것이다.

정신분석에서는 대화치료(talking cure)라는 일반적인 용어 대신에 대화(conversion)이라는 말로 사용한다(라틴어의 cum(모여서 의미를 가진다) versus는 논, 밭에서 나누는 이야기의 조합으로 대화라는 용어가 등장을 했다)(Ogden, 1994, 주㈜: 참고), 다이아로그(dialogue)라는 말로써(dia는 그리스어로 두 사람으로 logue는 말하는 것) 두 사람이 주고 받는 말로 대화로써 사용하고 있다. 또한 담화(discourse)라는 용어로, 그리고 언어학에서 말로써 기술을 하는 서술(narrative) 이라는 용어를, 그리고 최근에 심리학에서 주로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이라는 용어들로 학자들에 따라서 다르게 사용된다. 커뮤니케이션은 해리티지 백과사전에서 두 사람이 생각, 느낌, 행동을 서로교환 하는 것으로 정의되어지고 있다(Falloon et al., 1984). 치료자가 이들을 모두 대화치료 혹은 치료대화로 번역해서 사용한다.

이제 이 대화가 치료사와 환자 사이에 어떤 역할을 하는? 를 살펴보도록 하자. 프로이트가 쓴 대화라는 용어는 환자가 말을 한 대화치료(talking cure)라는 말에서 시작했지만, 프로이트는 이미 그 시대에 과학적인 이야기를 대화치료의 근거로써 그의 대화 이론을 개발한 것이 밝혀지고 있다. 말을 하는 대화는 바로 언어가 아닌가? 언어로써 우리는 서로 소통을 한다, 소통이 바로 대화가 아닌가? 이 소통을 연구한 언어학자들의 연구를 프로이트가 읽고 그들을 정신분석에서 언어 즉 서로 말을 주고 받는 대화로써 만들어낸 것이다 라는 것이 정신분석학자들의 프로이트의 연구에서 그의 논문들을 통해서 하나씩 밝혀지게 된다(Bromberg, 1998, Stern, 1997: 주㈜: 참고)

프로이트가 정신분석을 창조한 이면에는 말로써 환자와 이야기를 하면서 심리적인 상처의 근원을 찾아가게 된다. 이것은 최면에서 어린시절의 상처가 기억 속에서 저장되어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최면으로 치료하는 것이 아니고 의식에서 무의식으로 자유연상으로 어린시절의 상처를 찾아가는 것이 자유연상이 아닌가?  

프로이트는 우리의 의식(기억하고 생각하는 것)은 빙산의 물 위에 떠 있는 10분의 1이고 물 속에 가라앉은 10분의 9가 무의식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고로 그는 종래의 인간의 의지 즉 의식이 우리의 마음이고 인간은 자유로운 의지에 의해서 우리의 몸의 주인으로 몸을 지배를 한다고 주장한 것에 반대로 인간은 무의식에 의해서 좌우되는 불쌍한 존재이다 라고 발표함으로써 세상을 뒤집어 놓았다.

인간은 하느님이 창조한 신성한 사람으로 동물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라고 한 기존의 창조론에서 다윈이 유인원이, 원시적인 동물의 자손으로 인간 역시 동물과 별로 다른점이 없다는 진화론이 세상 사람들에게 준 충격과 마찬가지다, 또 한가지의 충격적으로 인간의 자존심에 충격을 준 사건은 바로 중세에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고 태양이 지구를 돌고 있다는 천동설에 반대로 지구가 움직이고 돌고 있다는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세상에 충격을 준 것과 비교되어지고 있다.

의식의 10분의 1이 인간을 움직이고 있다 라기보다 10분의 9인 무의식에 의해서 좌지우지되는 것이 인간이다 라는 말로써 세상을 뒤집어 놓은 것이다. 우리는 엄마의 배속에서부터 지금까지 우리의 머리 속에 기억으로 저장된 경험은 우리가 알 수 없지만 무의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무의식에 접근하는 유일한 길이 꿈이다, 그는 1900년에 꿈 분석이라는 저서로써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환자는 어린시절의 상처를 기억할 수 없다 고로 꿈들의 분석과 상상과 말을 실수와 착오 등을 분석으로 다루어서 상처 기억을 회복시켜서 그 상처가 지금 현재 그 환자의 삶에서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를 깨닫게 해서 의식의 범위를 확대시켜 나가는 것이 정신분석의 핵심이다. 실제로 심리적인 상처를 많이 받은 사람들은 과거의 기억이 거의 없다. 고통스럽기 때문에 억압으로 무의식 속에 밀어 넣어버린 것이다(상처와 유사한 이야기를 들으면 고개를 흔들고 듣기 싫어하는 것이 바로 그 증거로 세월이 흘러가면 잊어버리게 된다), 그러나 잊어버린 것은 뇌의 경험에서 지워진 것은 아니다, 경험들이 무의식적으로 인간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 그것을 해석해서 깨닫게 해주고 그것의 영향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것이 초반기 정신분석의 핵심이었다.

정신분석은 분석가의 이러한 해석에 근거를 두고 있다. 성서의 해석학에서 유래를 했다. 성서의 구절들을 해석을 해서 사람들이 깨닫고 행동과 생각을 바로 고치게 하는 것에서 시작된 이 해석학은 학문으로 등장하게 되는 것이 바로 독일의 철학자인 하이데거(Heidegger)(1889-1976)가 주장한 존재론, 현상학, 실존철학에서 근거를 두고 있다. 여기에서 첨가되어져서 프랑스의 언어 학자소슈르(Saussure)(1857-1913)에 의해서 구조주의 언어학이 등장하게 된다. 고로 해석학과 구조주의 언어학이 정신분석에 포함되어져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자 한다.

치료자가 미국 유학 이전에 우리나라의 대학에서 한 국어과 교수가 언어학을 강의하면서 프랑스의 언어학자인 소슈르와 구조주의 언어학을 설명하면서 통시적(通時的) 언어공시적(共時的) 어를 소개한 것에서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 당시에 치료자가 아무리 생각을 해도 공시적 언어와 통시적 언어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후에 정신분석가들의 저서에서 철학에서 자주 사용하는 계통발생학(phylogeny)과 개체발생학(ontogeny)을 알게 되면서 이것이 서로 언어학과 서로 비슷한 개념인 것을 알게 되었다.

정신분석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정신분석이 과거를 다루고 그리고 어린시절의 상처들을 다룬다는 것에 대해서 혹독한 비판을 한다. 우리는 과거로 되돌아갈 수가 없다 그런데 왜 과거를 중요시하는가? 지금 현재와 미래를 중요시해서 살아가는 것도 힘든데 과거를 다루면서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있는가? 라고 맹공을 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과거의 중요성은 정신분석학자가 주장하기 이전에 이미 언어학자들의 연구와 주장에서 나온 것임을 치료자가 최근에 알게 되었다. 소슈르의 구조주의 언어학은 이후에 독일의  언어학자인 하베마르스(Habermas)(1926-)와 프랑스의 리코어(Ricoeur)(1913-2005)와 그리고 가다머(Gadamer)(1900-2002) 등의 언어학자들에 의해서 구조주의 혹은 구성주의 언어학으로 이것이 정신분석가이자 언어학자인 하베르마스에 의해서 정신분석에 도입되어지게 된다(Stern, 1997).

구조주의 언어학자들이 주장하는 언어는 우리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언어가 바로 대화이다. 대화는 지금 현재에 우리가 나누고 있지만 대화는 이전까지의 경험의 총집합 위에서 언어로써 표현되어진다. 고로 우리는 과거와 단절할 수가 없다.

예를 들어서 이것을 천(직물)을 짤 때 방직 공장의 기계들 혹은 배틀(우리 조상들의 직물을 짜던 초반기 기구)에는 씨줄이 먼저 걸리어져 있다. 이 씨줄에 지금의 날줄이 좌우로 들락거리면서 천 조각이 짜여지게 된다. 이 씨줄은 경험인 과거이고 날줄은 현재로써 씨줄과 날줄이 서로 엉키면서 현재의 천 조각이 짜여지게 된다. 고로 과거는 현재에서 분리될 수가 없, 과거는 우리의 경험으로 주어진 것이고 그 바탕 위에서 우리는 현재를 만들어가면서 지금의 현재가 천 조각으로 새롭게 등장하는 것이다(Stern, 1997).

이런 언어학자들에 의한 언어 이론이 정신분석가들에 의해서 도입 되어지면서 언어 정신분석가들이 대거 등장하게 되면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이론을 언어학 쪽으로 학대시켜 놓았다. 언어는 인간 존재의 기본이다, 언어가 없이는 인간은 존재할 수가 없다, “언어인 대화는 자신의 본성을 길들이고 자유롭게 하려는 인간의 쉬지 않는 노력을 반영하는 행동이다. 인간의 욕구 중에서 대화의 욕구만큼 강한 욕구는 없다. 언어는 두 사람 사이에서 시작되고 그리고 대화는 엄마와 아기 사이에서 시작된다. 엄마와 아기의 놀이에서 아기의 내면의 자아가 성장하기 시작하는데 이것이 대화에서 시작된다”(Ogden, 1986, 마음의 모체에서 인용). 커뮤니케이션(대화)의 수준이 어느 정도 이하로 떨어지게 되면 인간성은 시들어지게 된다(Stolorow & Atwood, 2002; Moor, 1999: 주㈜: 참고).

인간관계는 언어로써 시작(엄마 품에서 아기와 엄마의 대화)되고 언어로써 끝난다(마지막 죽음의 가족과 이별). 인간관계에서 대화의 단절과 소통의 단절로 고립된 내면의 세계 속으로 철거해서 내면의 세계 속에서 숨어서 살게 되는 사람들이 자폐와 조현병이다. 자폐아는 여기에서 제외하고 조현병의 치료에서 어떻게 대화가 연결되어져 있는지? 로 돌아가보자.

인간이 7개월-9개월 때 분리불안으로 최초로 정신장애가 등장하게 된다. 이 시점에서 엄마를 알아보고 엄마를 찾게 된다. 엄마의 얼굴을 알아보게 된다. 이 시점을 낯가림이라고 부른다. 아기의 머리 속에 엄마의 얼굴의 이미지가 기억으로 입력이 되어서 엄마의 얼굴과 낯선 사람의 얼굴을 구분하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엄마가 옆에 없으면 불안하게 된다. 심각한 분리불안을 가진 어린이는 불안으로부터 자아를 보고하기 위해서 자아의 방어막(방어기재)을 형성하게 된다. 스스로 전지전능하게 된다. 이 세상에서 최고가 된다. 그래야 자아를 보호할 수가 있는 것이다.

우리가 배우는 것은 새로움을 알게 되는 것이다 라고 언어학자들은 주장하게 된다. 새로움은 낯선 것들이다. 낯선 것은 불안을 몰고 온다.  여기에서 물리학자들(독일의 양자역학의 이론가인 하이젠베르그(Heisenberg)(1901-1976)의 불확실함의 이론)이 주장이 첨가하게 된다. 새로운 것은 불확실하다, 불확실함은 역시 애매한 것이다, 그래서 불확실함에서 확실한 것을 찾아지게 되면 안정을 얻게 된다. 고로 애매한 것은 역시 불안을 몰고 온다. 우리는 애매함, 불확실함 그리고 새로움에서 창의적인 것이 나오게 된다는 말이 아닌가?

고로 물리학자들은 카오스의 무질서, 불확실함, 애매함에서 창의성이 탄생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즉 애매한 것을 확실히 알기 위해서 계속 흥미를 가지고 파고들어가는 것에서 새로운 창의적인 발명과 발견이 등장하게 된다. 모든 인간의 발명과 발견은 3파운드의 뇌 안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끝없는 호기심은 애매함과 불확실함에서 나온 것으로 지적을 하고 있다. 불안한 애매함을 이끌고 나가는 것이 호기심이다.

조현병 환자들은 애매한 것에 불안해한다, 새로운 것에 불안해한다, 자아 소멸을 느끼기 때문에 안정된 안전한 자신의 누에고치 속에서 갇혀 살게 된 것이다. 외부의 새로운 자극을 극도로 두려워해서 안정된 장막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자폐증의 특징). 정신분열증이 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낸 유진 블루러(Eugen Bleuler, 1911)정신분열증의 4개의 특징(4 A) 중에서 내면세계로 철수를 자폐증적인 상황으로 분류한 것은 이미 여러 번 지적을 했다. 조현병 환자들은 자신의 안전, 안정의 유지하기 위해서 새로운 것을 차단해버린 사람들이다. 애매하고 불확실하게 되면 불안에 휩쓸려 들어가서 소멸을 느끼게 된다. 고로 밖으로 나오려고 하지 않는다. 갈등은 불안을 일으킨다, 갈등을 피하기 위해서 외부접촉을 차단해버린 것이다. 여기에 갈등을 해결하고 설명하고 상대방을 이해하도록 만들어주는 매개체가 바로 대화, 언어이다.

조현병 환자의 언어 세계로 들어가보자. 조현병은 사고 장애가 특징인 사람들이다, 감정장애가 특징인 조울증과 다르다. 조울증은 조증과 우울증으로 DSM-Ⅲ에서 양극성 장애로 이름이 바뀌었다. 우울증에서 조증으로 두 개의 양극의 감정 사이로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조현병은 사고의 혼란과 이상한 낱말들을 신조어로 만들어 쓴다고 해서 언어 샐러드 라고 이름을 붙였다(Arieti, 1970: 주㈜: 참고). 그들의 언어들은 상징어가 거의 없고 추상적인 생각이 결여된 사람들로써 은유적 표현이 거의 없다. 조현병 환자의 언어는 콘크리트 하다는 것이 특징이다.

아기가 태어나면 엄마의 젖꼭지에서 시작한다. 엄마의 품에서 아기는 엄마의 눈빛을 통해서 언어를 습득하는 것을 배우게 된다. 유아의 옹알이는 원시적인 언어라고 에딘버러 대학의 신경생리학자, 발달학자인 트레바덴(Travarthen)은 노트를 하고 있다. 신체적인 욕구들은 말을 통해서 언어를 통해서 대화를 통해서 본능이 다루어지고 신체적인 내면의 욕구들은 말로써 표현되어지면서 내 몸을 내가 마음대로 조정하는 것을 배우게 된다. 3-5세가 되면 어린이들은 수 많은 상징어들을 배우게 된다 특별이 놀이를 통해서 그들은 왕자가 되고 공주가 되고 영웅이 되거나 악마가 되거나 마술적인 전지전능한 사람이 될 수 있다. 놀이 안에서는 어떤 것도 가능하다 고로 어린이들은 놀이를 통해서 생각을 생각하는 것을 배우게 된다. 최초의 놀이는 엄마의 젖가슴 속에서 혀로 입으로 하는 놀이에서 시작된다. 엄마는 아기의 놀이를 확대시켜서 아기와 언어를 주고 받는 것을 배우게 한다. 점점 아기는 언어가 유창해지고 마음대로 자신의 상상의 세계를 펼칠 수가 있게 된다. 이것이 유치원으로 동료들과 놀이에서 점점 확대되어간다(Meares(2012)의 대화 모델을 보라).

 농경시대와 달리 금세기는 점점 엄마와 아기의 관계가 엄마의 맞벌이로 엄마와 함께 하는 시간이 줄어들게 되고 먹고 입고 대소변을 갈아주는 관계가 많아지게 되면서 놀이가 점점 줄어들어가게 된 것이다. 고로 언어적인 표현이 상징적인 추상적인 발달로 이어지게 되는데 장애물이 생기게 된다.

 학동기가 되어 학교에 입학하게 되면서 어린이들은 동료들과 관계를 통해서 점점 더 넓은 세계로 책과 공부와 동료들과 관계를 통해서 사회생활이 확대되어가게 된다. 이 과정에서 동료들과 관계에서 잘 어울리지 못하는 어린이들은 외톨이가 된다. 자신의 집 안에서 배운 언어의 기술은 동료들과 크게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되면서 불안이 엄습하고 불편함을 초래하게 된다는 것이다. 갈등이 생길 때 추상적인 언어 능력으로 이것을 해체 나가는 언어 기술의 부족으로 갈등을 피하고 도망치거나 폭력으로 말이 아닌 행동으로 이어지게 됨으로써 점점 외톨이가 되어가는 것이다. 가족이라는 조그만 울타리 안에서 배운 언어적 표현 기능은 사춘기가 되면서 넓은 세상으로 나가려고 할 때 수많은 사람들과 수많은 직업들과 수많은 이성들과의 제 각각의 갈등들을 뚫어낼 수가 없다. 수 많은 사람들과 갈등을 뚫어내는 수단이 언어인 대화가 아닌? 대화의 기능으로 서로 다른 수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통해서 갈등을 풀고 관계를 바로 세우는데 이미 결함으로 그들과 관계에서 갈등으로 인한 불안을 해쳐나갈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결국 가장 안전한 자기 보호의 수단으로 내면의 세계 속에서 갇히게 되고 자아를 보호하기 위해서 스스로 고립을 선택한 것이 조현병 환자이다. 고립은 외로움과 고통을 수반하게 된다. 이것을 완화 시키기 위해서 게임 속에 빠져들게 된다. 게임은 상상의 세계로 외부 현실세계와 동떨어진 세계이다. 외부세계와 단절된 상상의 세계에 빠져들어가면서 현실 세계와는 점점 멀어지게 된다.

이제 조현병에 치료에서 실제로 대화치료가 어떻게 사용되어지고 있는가? 에 초점을 맞추어보자. 프로이트의 제자들은 대부분이 정신분석으로 신경증 환자를 치료하다가 점점 이론과 치료가 개선되어져 가면서 프로이트의 경고(정신분석은 신경증에 국한)를 무시하고 정신분석학을 수정하고 보완을 해서 성격장애와 걸어다니는 정신분열증(자아분열 장애들)의 치료로 확대시켜 나갔다. 그런데 용감하게 정신분석가가 된 직후부터 조현병 치료에 뛰어들어가서 연구와 개척을 시작한 사람들이 있다.

영국에서 멜라니 크레인(Melanie Klein) 밑에서 정신분열증의 연구에 한 팀으로 뛰어들어간 3인 방이 있다. 폴란드 출신의 의사로 정신분석가 된 한나 세갈(Hanna Segal 1991), 독일에서 정신과의사가 되었으나 나치가 아리안 계통만 전문직에 종사할 수 있다 라는 법령으로 영국으로 망명해서 정신분석가가 된 허버트 로젠필드(Herbert Rosenfeld, 1989)), 그리고 외과 의사였다가 정신분석가가 된 윌프레드 비용(Wilfred Bion)이 그들이다.

그러나 그들 이전에 이미 스코틀랜드의 에딘버러에서 혼자서 독자적으로 정신분석을 연구한 로날드 페비안(Donald Fairbarin)이 있었다. 그는 프로이트의 정통파에서 많이 벗어나있었다. 프로이트의 현실적 자아인 ego는 욕구를 만족시켜주는 것 때문에 엄마를 찾게 된다라는 것에 반대해서 신생아는 출생 시에 엄마를 찾게 된다 라는 이론을 내 놓았다(이 이론은 영국의 정신분석가인 볼비(Bowlby)에 의해서 애착이론으로 발전). 또한 프로이트의 ego 1-3세에 등장한다는 것에 반대해서 ego는 이미 1살 이전에 등장한다는 이론을 전개한 크레인과 합류하게 된다. 페비안은 걸어다니는 정신분열증(자아분열성격장애)을 치료하면서 그의 이론을 탄생시켰다. 자아분열 성격장애는 대인관계를 할 의사가 전혀 없다는 특징 때문에 대인공포증(대인관계를 갈구)과 구분이 된다. DSM-(2013)자아분열 성격장애는 정신분열증에 동시에 성격장애의 분류에도 포함되어있다. 자아분열 성격은 거의 조현병에 가깝기 때문에 걸어다니는 정신분열증으로 한때 이름이 붙여졌다. 페비안의 자아분열은 크레인의 편집증과 통합되어져서 영국의 대상관계 이론이 등장하게 된다. 영국에서 대상관계 이론이 위의 3인 방에 의해서 조현병의 치료에 밑거름이 된다.

반면에 미국에서는 처음부터 정신분열증 환자들이 입원한 병원에서 정신분석학으로 치료에 도전한 사람들이 바로 신프로이트학파들(Neo-Freudian) 이다(메릴랜드의 체스트낫 롯지(Chestnut Lodge: 밤나무골 병원)에서 정신분열증 환자의 치료를 보라). 그들 중에 대표자가 하리 스틱 셀리번(Harry Stack Sullivan)이다. 셀리번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에 사회문화적인 요소가 빠져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대인관계의 중요성을 이론으로 개척한 대인관계 정신분석을 창조한 사람이다. 셀리번, 프리다 프롬-레이크만(Frieda From-Reichmann), 에릭 프롬(Erick Fromm) 그리고 클라라 톰슨(Clara Thompson) 등이 함께 1943년에 뉴욕에 정신분석과 심리치료를 위한 윌리함 알슨 화이트 정신분석학교(William Alanson White Institute)를 설립을 했다. 이 학교에서 대인관계 정신분석 학파의 이론들이 정신분열증 치료에 응용되고 치료되어지게 되는 시발점이 되었다.

이 학교 졸업생으로 그 학교에 교수가 되었고 그리고 아울러 컬럼비아대학원 박사후 정신분석과 심리치료 프로그램의 교수를 겸직하고 있는 두 사람의 저서를 최근에 치료자가 읽고 연구를 한 조현병 치료의 핵심을 소개하고자 한다(Bromberg, 1998, Stern, 1997): 주㈜: 참고).

프로이트의 이론의 핵심은 무의식이론이다. 경험의 10분의 9를 차지하는 무의식은 의식과 단절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꿈과 상상, 말의 실수 등을 통해서 접근할 수가 있다 다시 말해서 프로이트의 무의식은 절대적 무의식이다. 의식에서 활용되어질 수가 없다. 그러나 우리가 모르는 무의식에 의해서 컨트롤할 수 없는 행동으로 변장되어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의식은 10분의 1로써 현실에서 기억할 수 있는 것이다. 정신과환자들 중에서 조현병은 가장 심각한 정신장애로 과거 어린시절의 기억이 보통사람들보다 약하다. 심한 경우에는 초등학교의 기억들도 거의 없었다(조현병으로 10년 동안 만성이 된 C군의 경우). 우리가 살아가면서 삶에서 의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의식을 확대시키는 것이 프로이트의 치료의 골격이다. 증세들이 왜 어떻게 시작되고 어떻게 형성되어 지금 나에게 영향을 미치는가?를 정신과 환자들은 모르다. 자유연상을 통해서 어린시절의 상처에 접근을 해서 그들의 상처의 원인을 찾아서 환자들이 이해하고 깨닫게 해서 의식의 범위를 학대시켜서 현실의 삶에서 어려움을 해결하도록 자아를 확대시키고 자아의 힘 키우게 하는 것이 정신분석의 치료이다라는 것을 여러 번 강조를 했다.

그런데 대인관계의 정신분석가들은 주로 언어를 강조하는 언어 정신분석가들이다. 그들은 의식의 범위를 한층 더 좁게 해석한다.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의식이다 그러나 좀더 좁게 해석해서 여기에서 언어로 표현되어지는 것만 의식으로 본다. 상상과 느낌과 감정은 일반적으로 기억할 수 있는 것으로 의식으로 본다 그러나 조현병 치료를 하는 대인관계 정신분석가들은 상상과 느낌과 감각들을 말로써 표현하지 못하면 무의식으로 본다. 기억을 한다고 해도 실제로 말로써 표현하지 못하면 현실에서 사용할 수가 없는 것이 아닌가? 조현병 환자들이 언어가 빈약해서 콘크리트 한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이 대상관계 이론가들에 의해서 밝혀졌다.

구조주의(구성주의) 언어 학자들은 말로써 표현할 수 없는 것은 무의식으로 본다. 아울러 알고 있는 것을 알지 않으려고 하는 것을 무의식(영국의 정신분석가인 Bollas)으로 본다. 두 사람관계에서 소통인 언어는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고 자신의 생각과 느낌이 다른 것을 상대방에게 정확하게 전달을 해서 서로 공감대를 형성하게 되면서 소통이 이루어진다(대화가 형성된다), 고로 대화를 서로의 동의된 객관성, 혹은 합의된 타당성(셀리번의 핵심 용어)이 된다.

고전적 정신분석에서는 분석가가 환자의 무의식적인 행동을 해석으로써 설명해서 증세의 원인들과 현재의 증세들을 연결 시켜서 이해하도록 하는 깨달음(하아! 경험)이 강조되어진다. 이 깨달을 통해서 의식이 확대되어져서 분석을 받는 사람은 그러한 깨달음의 의식을 무장해서 어려움환경을 뚫고 나가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대인관계의 정신분석에서는 분석가와 분석을 받는 사람이 서로 동의, 합의되어지지 않는 것은 바로 소통의 단절로 연결되어진다는 것을 강조한다. 분석가가 아무리 정확한 이론과 해석으로 분석을 받는 사람에게 깨달음을 주려고 해도 분석을 받는 사람이 수용하지 않고 거부하면 그것은 무용지물이 된다. 고로 두 사람 사이에 관계가 최우선이 된다. 깨달음 보다 관계의 중요성이 등장하게 된다. 여기에서 등장한 것이 바로 대상관계 이론과 대인관계 이론이다. 두 사람 심리학이 등장하고 그리고 공감대(상호공감 이론: 코호트의 자아 심리학 역시 심한 성격장애치료(나르시즘장애)에서 등장)의 형성이 더욱 더 중요하다는 것이 조현병 환자들의 치료를 통해서 등장하게 된다.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제 1차적인 과제이다. 이것을 치료동맹, 작업 동맹이 왜 중요한가 라는 것이 여기에서도 강조되어진다.

이러한 이론들은 언어 정신분석가들에 의해서 등장하게 된다. 두 사람 사이에서 공감대가 형성되어 서로를 신뢰하고 믿게 될 때 마음의 문이 열리게 된다. 그 다음에 서로가 소통(대화)이 비로소 이루어지게 된다.

조현병 환자들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 데는 천재적이다. 다시 말해서 눈치가 100단이다. 비위와 눈치를 보는데 귀신 같은 사람이다 그들은 어린시절에 추상적인 언어의 빈곤으로 상상적인 은유의 결핍이 심각한 사람들이다, 조현병 환자들을 간단하게 체크를 하는 정신과적인 기법이 바로 구르는 돌에 이끼가 끼지 않는다라는 말을 조현병 환자에게 무슨 뜻인가? 를 물어보는 것이 유행이 되었다. 대부분의 조현병 환자들이 이 금언에 해석을 하지 못하는 것은 상징어, 은유적인 의미를 개발하지 못했다고 보는 것이다.

은유적 표현은 어린시절에 엄마와 아기의 놀이에서 시작된다, 그 다음에 동료들과 놀이를 하면서 어린이들은 천사가 되고, 슈퍼맨이 되고 악마가 되고 악당이 되고 날아가는 영웅이 된다 그런데 그들의 놀이에서는 잘못된 이상한 것이 전혀 없다. 모든 이야기들을 서로 이해되고 서로 소통이 가능하다. 그들이 엄마가 되고 아빠가 되고 그리고 아기가 되어서 어떤 내용의 이야기들도 이상한 것이 없다. 여기에서 상상력이 생각에서 다시 생각을 하는 추상적인 능력이 자라라게 된다. 그들이 이러한 무궁무진한 상상력과 은유들은 이후에 청소년이 되어 그리고 어른이 되어서 사회에 나가서 생각과 느낌과 행동이 다른 수많은 사람들과 갈등을 해쳐나가는데 언어적인 도구가 된다. 즉 대화의 기술이 된다. 어떤 이상한 사람들이 자신과 다른 이상한 말을 한다고 해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대화의 능력으로 다른 사람들과 갈등을 뚫고 나가는 대화의 기술이 아닌가? 그런데 20세기로 그리고 21세로 과학의 문명이 급속소로 발전하면서 부모의 맞벌이 때문에 어린이들은 엄마의 손에서 멀어지는 시간이 많아지고 그리고 동료들과 놀이가 적어지고 배움에 학습에 올인 하게 된다. 유치원생들은 학습지, 각종 학원으로 배움이 우선이 된다. 어떻게 놀이를 하면서 언어 표현을 배우는 것이 뒷전이 된다는 것을 지적을 한다(Meares(2005)의 놀이와 은유를 보라).

상상과 감정인 머리 속의 의식이 현실에서 대화로 소통으로 표현되어지지 않으면 관계에서 무용지물이라는 예를 들어보자.

D군은 28세의 청년으로 조현병으로 치료자에게 심리치료를 받고 있다. 그는 4세 때부터 엄마와 아빠의 잦은 부부싸움 때문에 D군이 엄마와 아빠의 가운데 잠을 자게 된 것(완충지대 형성) 23세 때까지 계속 되었다(그는 그것이 비정상이라는 것을 치료자와 치료에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는 스스로 친한 친구가 없다고 실토를 했다. 그런데 한가지 특이한 사실은 아버지가 조루(어머니의 말)로 페니스의 발기의 어려움(치료자는 발기부전으로 진단) 때문에 결혼 후에 고통 때문에 4살 때부터 아들의 페니스를 자극을 했다. 아버지는 아들이 23세가 되어 대학으로 떠날 때까지 시도 때도 없이 거실에서 쉴 때 그리고 잠을 잘 때 관계없이 아들의 페니스를 마사지를 했다. D군은 거부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거부하면 아버지와 어머니의 부부싸움으로 번져간다는 것을 알고 스스로 부모님을 위해서 참았다고 실토를 했다. 그는 조현병에다 동성애가 되었다. 그는 조현병과 동성애 치료를 받기 위해서 치료자를 찾아온 것이었다. 컨설팅 시간에 아버지가 아들의 페니스를 발기를 시킨 것이 잘못되어 동성애로 발전했다. 에로틱 경험의 신경 회로가 남자 쪽으로 연결된 것을 지적을 했을 때 D군이 깜짝 놀랬다 그는 그것이 잘못된 줄을 모르고 있었다(동료들과 관계의 단절로 피드백을 받아서 수정의 기회가 차단). D군이 동성애라는 커밍아웃은 이미 치료시작 이전에 치료자의 블로그 글을 읽고 나서 부모님에게 고백하고 치료를 받게 되었다.

D군이 아버지에게 아버지가 시도 때도 없이 페니스를 자극했기 때문에 동성애의 원인이 되었다 라고 아버지에게 이야기를 했을 때 아버지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이 세상의 모든 부모들이 다 자식의 페니스를 만지는 것이 아닌가? 그것이 왜 그것이 잘못되었는가라고 대답을 한 것을 치료시간에 이야기를 하면서 치료자가 알게 되었다. D군은 부모님의 가운데 누워 잠을 잘 때 아버지가 D군을 페니시를 마사지할 때 어머니가 아버지를 막으려고 하면 아버지가 내 자식의 꼬치를 부모가 만지는데 무엇이 잘못되었는가?”라고 폭언에 어머니가 포기를 했다고 털어 놓았다. 치료자는 1-3세 정도의 시점에서 부모가 어린이의 페니스를 만지면서 꼬치가 맵다”, “꼬치가 크다라고 자녀와 놀이로써 칭찬하는 것은 정상이다 그러나 초등학교에 들어가거나 사춘기에 진입하는 자녀의 페니스를 만지는 부모가 이 세상에 어디에 있는가?라고 강력하게 이야기를 해서 아버지에게 다시 한번 아버지의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해서 확인을 해보라고 일러 주었다.

그러나 D군은 6개월의 치료 계약이 끝나고 두 번째 6개월의 치료계약이 시작되어 약 54시간의 치료 회기가 흘러가도록 아버지에게 아버지의 친구들에게 사춘기가 지난 아들의 페니스를 마사지하는 부모가 있는가? 라고 물어보지 않았다는 것을 치료자가 알고 나서 D군에게 강력하게 아버지에게 아버지의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해보라고 권유를 했다. 그런데 마침 아버지의 고향 친구가 D군의 집을 방문을 하게 되었을 때 D군이 아버지에게 아버지! 친한 고향 친구가 집을 방문을 했으니 이번에 아버지의 친구에게 그 친구 자신도 사춘기의 아들의 페니스를 만지는지 물어 보아주세요라고 요청을 했고 아버지가 수용을 했다. 아버지가 그 친구에게 그 이야기를 했을 때 친구가 깜짝 놀라면서 0-3세 정도의 어린이의 경우를 제외하면 자녀의 페니스를 만지거나 발기를 시키는 부모가 이 세상에 어디에 있는가? 라고 대답을 하는 것에 아버지가 얼굴이 경직되었다(D군의 표현). 친구가 가고 나서 아버지는 내가 잘못 생각해서 미안하다라고 사과를 했다고 했다.

여기에서 60대의 아버지는 아들의 페니스를 마사지 시키는 것은 자신의 페니스의 발기 문제를 반복하지 말라는 뜻으로 발기를 시켰다 라는 말은 치료의 초반기에 치료자가 D군으로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기억으로 알고 있었다, 상상과 생각 속에서 의식으로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입으로 소통으로 동료들에게 이야기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즉 말로써 입 밖으로 표현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잘못된 지식을 고칠 수가 없었다. 이것이 바로 조현병 치료에서 생각과 느낌과 상상을 말로써 직접 표현하지 않으면 무의식으로 현실에서 사용하지 못하게 된다는 한 개의 예로써 말로써 표현하는 것의 중요성을 지적한 것이다.

다시 조현병 환자의 뇌의 문제로 잠깐 되돌아가보자. 뇌는 좌뇌와 우뇌의 2개이다. 인사이드 아웃에서는 5개의 감정이 의인화 되어 서로 대화를 한다(치료자는 2015 7월 달에 우리나라에서 3백만 관객을 동원한 인사이드아웃을 반드시 보라고 권장한다). 프로이트는 3개의 자아를 이야기를 했다. 프로이트가 1895년에 정신분석을 탄생시켰을 때 프로이트는 상처의 기억을 무의식 속에서 자유연상으로 찾아서 그 환자가 그의 증세의 원인을 깨닫게 하는 치료로써 주로 3개월의 단기 치료였다, 그러나 1923년에 ego와 원초자아의 발표로써 마음의 3두 마차인 구조주의 모델이 등장하면서 증세 자체의 제거가 아니고 현실적 자아인 ego의 기능을 개선하는 쪽으로 치료가 바뀌면서 장기적인 치료 즉 신경증의 치료가 3-5년의 치료로 바뀌게 된다는 것은 여러 번 지적을 했다(Stater, 1996: 주㈜: 참고). 원초자아(id)는 타고나는 욕구들로 본능적이다, 초자아(superego) 3-5세에 부모님의 목소리를 입사해서 선(착함) 과 악(나쁨)을 구분을 한다. 그러나 현실적 자아인 ego 19이 걸린다(법적인 성인의 나이) 부모님의 보조로써 자아가 성장과 발달을 하게 된다. 판단하고 선택하고 결정하고, 적응하고, 조정하고, 방어하고, 학습하는 기능들은 모두가 ego의 기능이다. 삶에서 핵심 기능이 아닌가? ego의 기능의 결함이 정신장애로 보게 되면서 증세 자체의 제거가 목적이 아니고 자아의 치료가 목적이 된 것이다.

인사이트 아웃에서 5개의 감정은 단지 감정만 인간화로써 다룬 것이다. 그런데 프로이트의 3개의 자아는 제 각각이 생각, 사고, 상상 등의 인격을 갖춘 사람들이다. 단지 욕구만족에 혹은 잘 잘못의 구분이 강조되는 것이지만 모두가 한 개의 인격체이다. 인사이드 아웃에서는 그들이 뇌의 컨트롤 센트 안에 거주하고 있다. 프로이트의 3개의 인격체도 역시 뇌 안에서 거주하고 있지만 프로이트가 뇌의 전문 용어 대신에 자아()로써 표현 한 것이다. 프로이트가 생리학과 신경해부학을 심리적인 용어로써 설명을 한 것이 바로 정신분석학이다.

그런데 건강한 사람들 2개의 뇌, 5개의 감정들, 그리고 3명의 사람들이 잘 통합되어져 있기 때문에 한 사람으로 보인다. 그런데 조현병 환자들은 서로 분열되어져 있기 때문에 통합된 자아의 모습보다 들쭉날쭉으로 머리 속에서 끊임없이 서로 갈등하고 다툰다. 끝없는 전쟁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서로 대화를 해서 갈등을 해결하고 조화를 이루게 하는 것이 프로이트의 신경증 치료가 아닌가? 그런데 조현병 환자들의 치료의 경우에는 이 범위를 넘어가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다시 말해서 고전적 정신분석에서는 분석가는 인간의 마음의 원리, 심리적인 원리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분석 치료에서 분석가는 환자에게 내가 설명한 마음의 원리가 이해가 됩니까?”라고 질문을 자주 한다. 환자가 이해하고 깨달았음을 확인하려고 한다. 그런데 대인관계 정신분석가로 조현병 치료에 전문가인 브롬버그(Bromberg, 1998)는 그것을 다르게 꺼꾸로 환자의 숨겨진 자아가 분석가게 호소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분석가 선생님! 내 자아가 알아 듣도록 이야기를 해 주세요라고 요청을 한다. 이것은 자아가 서로 분열되어 서로 다투고 있는 것에서 가장 상처를 많이 받는 심각한 자아일수록 내면 속에 깊숙이 숨어있다. 고로 그 숨어 있는 감추어진 자아를 밖으로 나오게 끄집어 내기 위해서는 숨어 있는 그 자아에게 대화의 세트로 나오게 하지 않으면 치료를 효과가 없고 제자리 걸음으로 변질된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그래서 그 깊은 내면 속에 감추어진 자아가 이해를 하도록 언어로써 연결을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조현병 환자의 치료의 핵심을 지적한 명언이다.

 정신분석의 비평가들은 과거를 다룬다고 무슨 소용이 있는가? 과거를 이미 지나간 것으로 다시 되돌아갈 수 없다라고 강조한다 그런데 치료실에서 분석가와 분석을 받는 사람이 대화로 하는 이야기 혹에서 어떤 변화가 있는가?를 들어다 보자. 분석실에서 과거의 상처기억의 회복으로 그 상처를 재연으로 다룰 때 그 상처에 관계된 집중적인 에너지가 완화되어진다(지금까지 치료자가 카타르시스로 설명) 그러나 여기에서는 좀 더 과학적인 이론이 첨가되어진다(Stern, 1997).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의 유명한 공식 즉 E=MC제곱(에너지는 질량의 빛의 속도에 제곱)은 인간에게도 적용이 된다 즉 인간은 에너지의 덩어리가 아닌가? 과거의 상처의 이야기를 대화를 하면서 상처의 집착에 몰린 에너지가 완화되어진다. 치료 시간이 끝나면 속이 시원하고 후련하다고 이야기를 한다. 치료자는 반드시 집에 가서 부모님에게 치료시간에 했던 이야기들을 하도록 한다(대부분이 부모는 자녀의 상처를 모르고 있다) 그리고 부모님과 대화 다음으로 친구들에게 자신의 과거의 고통을 이야기를 하도록 권장한다. 이 과정에서 점점 과거의 상처의 짊으로 묶여져 있는 에너지가 완화되어 감소되어져 간다. 상처의 짐에서 해방된 에너지를 의식에서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로 변하게 된다(행동치료에서 감각박탈). 치료자는 자신의 단점과 과거의 상처를 친구들에게 이야기로 소통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치료 회복의 기준으로 본다, 고로 치료자는 치료 회기의 과정을 인터넷에 올린다. 자신의 이야기가 인터넷에서 올라온 것에 거부감 혹은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을 치료의 기준으로 본다. 지금까지 단지 2명의 환자들이 자신의 인터넷에 올라온 치료 사례들을 내려달라고 요청을 했다. 물론 그들의 요청은 수용을 한다 그리고 그들은 친구들과 관계가 개선 되어지지 않고 치료를 뚫고 나가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측 치료의 실패를 의미한다. 두 사람 다 치료를 중단한 사람들이었다.

 심리치료 실에서 분석을 받는 사람의 마음 속에서 상처의 자리에 함께 머물고 있던 에너지가 빠져 나간 빈 자리에는 새로운 경험이 들어차게 된다. 즉 분석가와 환자가 대화치료 안에서 이야기를 할 때 그것이 앞에서 언급한 과거의 경험인 씨줄과 현재의 날줄이 서로 상호작용으로 새로운 천 조각이 짜여지는 것처럼 새로운 경험이 창조되는 것이다. 새로운 경험의 창조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 분석을 받는 사람은 치료 회기 동안에 치료자의 모든 것들을 눈으로 보고 배운다 즉 동일시가 일어나게 된다.

 영국의 소아과 의사로써 세계적인 정신분석가가 된 위니코트(Winnicott)대화치료를 놀이로써 표현을 했다. 숨바꼭질을 하는 어린이의 놀이에 비유를 했다. 한 사람은 숨고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은 숨어 있는 것을 찾는 사람이다. 이러한 치료의 과정에서 어떤 내용의 이야기를 해도 가능하다. 그곳에는 못할 이야기가 없다. 어떤 이야기도 가능하다. 즉 망상, 환각, 환청의 이야기들이 가능하게 표현이 되어지고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어린이들의 놀이의 과정참고). 이러한 과정이 몇 년을 계속하게 되면 환자는 치료자가 그의 이야기를 어떤 내용이라고 수용한다는 것을 알고 마음이 편하게 되고 어떤 이야기를 해도 이상한 것이 없게 되는 그 대화의 과정이 자연스럽게 몸에 익혀지게 된다. 대화치료의 이런 과정에서 그 환자는 머리 속에 분류가 일어나서 생각이 정리가 되고 머리 속이 안정을 취하게 된다. 갈등을 어떻게 해결하는가? 하는 것이 이야기로써 다루어지고 자신의 느낌과 생각과 감각을 말로써 표현하도록 한다(상상과 느낌과 감정을 말로 표현의 중요성 참고), 이것이 동료들과 관계로 이어지면서 그는 어떤 내용이든지 말로써 표현하게 될 수 있게 될 때 사람들과 갈등 관계를 해결할 수 있는 자아의 능력이 배양되어지게 된다. 여기에서 또 한 개의 명언이 등장하게 된다. 대화는 단순한 정보의 전달이 아니고 감각과 감정의 표현이 초점이 된다(Stolorow & Atwood, 2002a).

 물론 이러한 과정은 시간이 많이 걸린다. 몇 개월로써 해결되어지는 것은 아니다. 수년의 시간이 걸린다. 고로 분석가들은 이러한 치료를 자아에 투자로 부른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값진 투자는 내 자아에 투자를 하는 것이 아닌가? 재물에 투자는 사라질 수도 있다 그러나 내 마음 속에 자아에 투자를 영원하다. 죽을 때까지 가지고 간다.

 치료자에게 13년의 치료를 받는 Z씨는 자신의 자아를 찾았다고 기뻐했다. 치료실 안에서 다룬 대화의 기법들이 세상을 마음대로 살아갈 용기를 주었다고 감사해 했다. 치료자에게 6년간 분석 치료를 받고 있는 K부인은 결혼 전에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았던 사람이다 결혼 후에 임신 7개월 동안 치료를 받았다. 두 명의 자녀들이 유치원 생이 된 이후에 5년 만에 다시 치료자에게 심리치료를 재개를 했다. 그녀는 젊은 시절에 자신의 자아를 찾게 된 것에 감사함을 전하고 있다. 치료자에게 4년 동안 치료를 받고 있는 J군은 그의 친구가 사귀는 남자와 3번째 헤어지는 것을 보면서 심리치료에서 대인관계를 배우는 것의 중요성을 스스로 깨닫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분석치료를 장기간 받는 것은 아니다. 일부는 치료자의 인터넷 홈페이지를 보고 부모님에게 치료를 받게 해 달라고 요청을 하지만 부모님의 거부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반면에 부모님이 인터넷에서 치료자의 치료 사례를 읽고 나서 자녀들에게 치료를 받으라고 권유를 했지만 자녀의 거부로 치료가 무산되는 경우도 많았다. 앞에서 초반기의 예에서처럼 자녀들을 부모님의 영역 안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고로 부모님의 사고방식의 틀 속에서 갇혀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사춘기의 시점에서 가족의 울타리 속에서 갇혀버려서 내면의 세계 속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사람들이 바로 조현병 환자라는 것을 절감을 했다.

마지막으로 약물의 복용은 대화를 하는 것, 말을 하는 것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어떻게 대화를 하는지를 가르쳐주지 않는다. 대화를 하는 것을 배우는 과정이 정신분석치료의 과정이다. 정신분석은 대화치료로써 조현병을 치료를 한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그리고 죽을 때까지 대화로써 살아간다, 대화는 인간의 삶에서 알파(시작)요 오메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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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참고

스토롤로우(Stolorow & Atwood). 상호주관의 맥락들(1992), 경험의 세계들(2002), 발달 고착의 정신분석(1980)

롤룬(Falloon, 1984). 정신분열증 환자의 가족 돌봄

베른헤임(Bernheim, 1979). 정신분열증의 원인들, 증세들, 치료들

엘렌베르그(Ellenberger, 1970). 무의식의 세계: 역동적 정신의학의 진화와 역사

어네스트 존(Ernest Jones): 프로이트의 삶과 업적 제 1권(195) 제 2권(1955), 제 3권(1957)

오가덴(Ogden). 투사도일시의 기법(1980), 마음의 모체(1986), 경험의 원시적인 끝지점(1989), 분석의 주체(1994), 몽상과 해석(1987), 꿈 원천에서 대화(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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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턴(Stern, 1997). 공식화 되어지지 않는 경험

미아레(Meares). 절망과 고립(2002), 보드라인 성격장애의 해리모델(2012), 보드라인 성격장애의 대화 모델(2012), 놀이와 은유(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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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에티(Arieti). 정신분석의 해석(1976), 심각한 우울증과 온건한 우울증(1979), 정신분열증의 이해와 가족(1999)

세갈(Segal). 멜라니 크레인(1989), 꿈과 상상과 예술(1991),

로젠필드(Rosenfeld, 1987). 치료의 답보상태와 해석

스타데르트(Stadter, 1986). 대상관계 단기치료

그린슨(Greenson). 정신분석의 기법(1968), 정신분석의 탐색 연구(1978)

에릭슨(Erikson, 1950). 어린이와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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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저서들은 치료자가 우리나라 말로 번역되어져 있으니 치료자의 정신분석 홈 페이지전문서적 안내에 들어가 보세요

아래의 치료 사례는 29 Y양이 환각 증세로 휴그(하늘 나라로 승천)를 한다고 외치면서 사람들을 구원하려고 전도를 하다가 아버지와 남동생이 그녀를 병원에 입원시키려고 하는 것에 놀래서 4 층 창문에서 뛰어내린 여성이었다. 그녀는 병원의 골절치료와 폐쇄 병동에서 입원 후에 퇴원해서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아서 회복된 사례이다.

카우치에 누워서 정신분석 치료를 받고 있는 사람과 분석가

대상: 29세의 물리치료사 Y

증세: 7년 동안 불안증과 가벼운 우울증에 시달림

진단: 불안증, 대인공포증, 조울증

연결: 심리적 문제로 고통을 받고 있던 중에 여성의 전화에 전화 상담을 하면서 그 상담원으로부터 치료자를 소개 받고 치료를 받으러 찾아오게 되었음

치료 기간: 1주일에 1회로 2시간씩 2 6개월 동안 심리분석 치료를 받음

치료 결과: 처음에는 정신분열증으로 진단을 받았으나 나중에 조울증으로 판명이 났고 치료자의 치료 결과 조울증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파트 타임으로 일하던 것을 풀 타임으로 일하게 되었고 동료들과의 갈등이 줄어들어 사회생활에 잘 적응해나가게 되었음

 

치료의 과정

치료의 초반기: Y양은 대학을 졸업 후 3년 동안에 직장을 무려 6번이나 옮겨 다니고 있었고 한 직장에서 일한 기간은 불과 2개월 3개월에 불과 했다. 가장 많이 근무한 기간이 고작 8개월이었다. 직장은 풀 타임 직장으로 하루 8시간을 근무한 것이 아니고 파트 타임 직장으로 하루에 3시간 4시간 정도로 오전이나 오후에 근무를 해 온 것이었다. 중간에 직장 생활에서 지속적인 근무를 할 수 없게 되자 몇 개월씩 일을 하지 않고 쉬었다가 또 근무를 했다가 를 반복하고 있었다.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게 되면서 직장에 근무할 수 없게 된 동기들이 하나씩 밝혀지기 시작했다.

Y양의 생육사: Y양은 초, 중등학교 시절에 전교에서 1 2 등을 다투어 온 수재였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어머니가 학교를 드나들며 Y양의 교육에 관심을 보이는 바람에 Y양은 학급에서 지도 위원을 역임했고 성적도 언제나 1등을 차지 했다. 친구들도 많아 어려움이 없었다. 문제는 어머니가 과도하게 Y양에게 공부를 강요하면서 고학년에 올라갈수록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되면서 문제가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중학교 때 Y양이 전교에서 3등을 했으나 어머니는 친구의 딸이 전교에서 2등을 한 것을 보고 너는 왜 1등을 하지 못했느냐?고 비교를 당하고 3등에 만족하지 않는 어머니의 성격에 심한 상처를 입었다고 Y양은 그 때의 고통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문제는 아버지와 어머니와의 갈등에서 항상 집안에 바람 잘 날이 없었다는 점이었다. 부부 싸움에서 자주 구타가 있었고 어머니의 불평과 불만은 점점 쌓여 갔다. 공무원이었던 아버지는 어머니가 조용하게 집안에서 살림만 하고 바깥에 출입을 자주하는 것을 싫어했고 어머니는 집안에서 조용하게 있는 것을 싫어하는 스타일로 끝임 없이 치마 바람을 일으키며 Y양의 학교 일에 열성을 보이면서 Y양의 공부에 간섭하는 것을 아버지는 못 마땅하게 생각했다. 어머니는 살림을 하는 스타일이 아니고 사회 활동을 왕성하게 해야 하는 스타일이었다고 회상 했다. Y양은 어린시절에 아버지에게 심한 구타를 당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고 기억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의 폭행으로 옷을 발가벗기고 집에서 매를 맞고 쫓겨난 것을 기억하고 가슴 아파하고 있었다. 중학교 2학년 때 아버지와 어머니는 심하게 싸운 후에 어머니의 가출로 가정은 박살이 났다. 어머니는 그 후에 다시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어머니의 공백으로 Y양이 2명의 남동생에게 어머니의 역할을, 아버지에게는 부인의 역할을 해 왔음이 밝혀졌다. 발을 짓고, 빨래를 하고, 동생들을 챙기는 일을 하나 둘씩 맡게 되면서 Y양의 학업 성적이 곤두박질치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학교 공부에 전념해야 하는데 정신 집중이 되지 않았다. 내면에 억압되어 있던 불안이 서서히 표면화 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시험에 지나치게 불안함을 보이기 시작했고 그 때부터 성적은 아무리 공부를 해도 올라가지 않게 되었다. Y양의 공부가 밀리면서 동료들과의 관계가 소원해지기 시작했다. 중학교 2학년 때까지는 가만히 있어도 친구들이 서로 접근을 하며 몰려 왔으나 성적이 하락하면서 동료들을 피하기 시작했고 친구들이 Y양의 성적하락을 수군거리는 모습에 자존심이 상했고 또 어머니의 가출을 친구들이 알게 될까 봐서 일부러 친구들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모든 문제는 그 때부터 서서히 시작된 것이었음이 분석 결과 밝혀졌다. 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 아버지의 결벽증에 시달리면서 성적을 점점 하락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식사에서부터 집안 청소, 빨래에 이르기까지 자녀들을 못살게 했다. 조그만 일에도 간섭을 했고 항상 방안이나 부엌이 깨끗하게 않으면 잔소리가 흘러 나왔다. 행주를 매일 뜨거운 물에 삶아서 소독을 해야 하였고 책상 위에는 항상 정리 정돈이 되어 있어야 야단을 면할 수 있었다. 공부에 신경 쓰랴, 가정 일에 신경을 쓰랴, 동생들을 신경 쓰랴, 있는 힘을 다해서 노력을 해도 아버지의 마음에는 차지 못했다. 결국 고등학교 성적은 상위권이었으나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는 갈 수가 없었고 1년 동안 재수를 해야 했다.

아버지와 면담: 아버지와 4시간 동안 면담이 있었다. Y양을 위해서 치료자가 아버지와의 면담을 요청했고 아버지는 기꺼이 응해 주었다. 아버지는 어린시절에 홀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형님과 자신이 외롭게 자랐다고 했다. 어머니가 헌신적으로 아버지를 뒷바라지를 해 주었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서 일찍이 사회에 나왔다고 했다. 아버지는 고등학교 때 눈을 다쳐 한쪽 눈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부인을 중매로 만나고 결혼을 하면서 서로간에 갈등 때문에 부부 생활에 바람잘 날이 없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틈틈이 부동산을 하면서 상당한 돈을 모았다고 했다. 직장에서는 동료들이 직업이 공무원인지 부동산인지 빈정대는 일도 여러 번 있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이러한 돈을 사업한다고 치마바람을 일으켜 다 날려 버렸다고 아쉬워했다. 부인은 통이 크고 동료들에게 과시적이어서 항상 돈이 많은 사람으로 행세했고 학교에서도 육성회 이사 등으로 남편과 늘 마찰을 일으켰다. 남편의 불안증과 강박증 즉 결벽증이 부인을 더욱 어렵게 한 것이 틀림없었다. 결국 잦은 마찰은 부인이 남편과 더 이상 같이 살 수 없다며 집을 나가면서 끝이 난 것이었다. 이후 이혼으로 법정까지 갔고 남편은 이혼을 해 주지 않았다고 했다. 남편의 반대로 지금까지고 법적으로 이혼은 되지 않고 있었다. 아버지는 지금도 어머니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 오기를 기대하고 있었으나 어머니는 그 후에 다시는 집에 연락이 없었다고 했다.

분석 및 해결 과정

조울증의 발발: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으러 오면서 Y양은 가벼운 우울증의 상태에 있었다. 사회 생활의 출발에서 삐끄덕거리기 시작했고 직장 생활을 할 수 없었고 아버지와 동생들과의 마찰도 심각했다. 대인관계에 문제가 있었다. 직장에서 자꾸만 자아를 意識하기 때문에 상대방이 자신에게 욕을 한다거나 상대방이 자신을 비웃는다거나 자신을 해코지 한다는 생각 때문에 대인관계를 해 나갈 수가 없었다. 자연히 미래가 우울해지고 과거의 화려 했던 초, 중등학교 시절이 대비되어 과거 속에서 살게  되어갔다. 과거에 상처 받은 생각에 몰입이 잦고 현재가 발이 묶이고 미래가 암담하게 느껴지면서 점점 우울증으로 빠져들어가고 있었다. 치료 3개월 만에 Y양이 어느날부터 이상한 소리를 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갑자기 자신감이 회복되어졌다고 기뻐했다. 이제는 회복되었으니 치료를 받을 필요성이 없어졌다며 하느님의 계시를 받은 것 같다고 했다. Y양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어머니의 가출 직후부터 친구들의 소개로 가족 구성원들 중에서 유일하게 교회에 다니고 있었다. 치료자는 치료를 계속할 것을 권유했으나 회복되었다는 말을 남기고 더 이상 치료실에 나타나지 않았다. 치료가 중단 되었다. 그 후에 1달이 지나면서 Y양의 아버지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Y양이 이상한 행동을 한다는 것이었다. 치료자가 Y양의 집을 방문한 결과 Y양은 조증 상태를 보이고 있었다. 흥분해서 안절부절 하면서도 자신은 내일 하늘로 승천하는 휴거를 한다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제 곁에 오지 마세요! 불에 타 죽습니다. 선생님 저는 내일 저녁 9시에 하늘 나라로 휴거를 합니다. 예수님이 저에게 내가 이 나라 백성들을 구제하라고 하는 계시를 들었습니다. 그것에 나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지금 내가 밖에 나가서 사람들을 구원해서 내일 휴거 할 때 데리고 가야 합니다. 나를 집 밖으로 나가게 해 주세요! Y양은 가족들이 자신을 집안에 감금하는 통에 심하게 몸싸움을 하고 있었다. 치료자는 Y양이 계속 저런 행동을 보이면 내일 병원에 입원 시키는 것이 좋겠다고 아버지에게 이야기를 하고 동생들에게는 누나가 밖에 나돌아 다니지 못하게 하고 방안에서 휴식을 취하도록 했다. 그날 저녁 10시 경에 동생으로부터 치료자에게 전화가 왔다. 누나가 3층에서 문을 열고 탈출하려고 뛰어내려 골절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을 했다고 했다. 다음 날 치료자가 병원을 방문했을 때 Y양은 기부스를 하고 정신병원의 폐쇄 병동에 입원을 해 있었다. 약물을 투입하면서 Y양은 곧 안정을 되찾았다. 그 후에 병원에서 3개월 동안 입원해 있다가 퇴원을 하면서 본격적인 심리 분석 치료가 시작되었다.

치료의 중반기

 Y양은 약물을 복용하면서 심리분석 치료를 받게 되었다. 병원에서 퇴원 후에 정신과 의사들 그리고 대학병원의 저명한 교수들을 면담하고 조울증에 대해서 상상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아는 것 만으로 행동을 바꾸기는 어렵다는 치료자의 말에 수긍을 했다. 원인을 찾아서 제거하고 마음 속에 쌓인 적대감정에서 빠져 나와야 하고,성격의 결함을 수정해야 함에 동의를 하고 치료를 다시 재개 하였다. 우울증에서 조증으로 넘어가는 과정이 분석 되어졌다. Y양은 어느날 갑자기 자신이 대학생 이었을 때 친구의 소개로 미팅을 하여 만난 파트너의 얼굴이 떠 올랐고 그 후에 자주 만나서 차를 마셨던 생각이 떠올랐다고 했다. 교회에서 자주 그 남자를 만났고 그 남자는 결혼을 해서 xx시에서 살고 있는 것이 생각이 나면서 갑자기 그 남자의 부인이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연결 되었다고 했다. 이유는 이것이 하느님의 계시이다 라는 생각이 나면서 그 남자를 만나서 자신이 부인이 되어야 한다는 하느님의 계시를 말하면 그 남자가 자신을 인정하고 수용해줄 것이다라는 생각에 집착하게 되었고 그 남자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전형적인 조증의 증세가 나타난 것이었다. 그 남자 친구는 Y양의 전화를 받고 행설 수설 하는 전화에 놀라서 전화를 끊어버리고 말았다고 했다. 당장 Y양은 다급해져서 그 남자를 찾아가야겠다고 생각을 했고 이것이 하느님의 계시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직장에 출근하지 않고 그 남자가 살고 있는 xx시로 가는 기차를 집어 탔다. 기차는 xx시로 가는 기차가 아니었으나 하느님이 시키는 계시라고 생각해서 그 곳에 가면 다시 xx시로 가는 길을 인도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무작정 기차를 탔다고 했다. 종착역에 내려서 다시 xx시로 가는 기차를 물었고 택시를 타고 가면서 택시 기사와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택시 기사가 Y양이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것을 알고 Y양의 집 전화 번화를 물었고 아버지에게 연락이 된 것이었다. 아버지가 택시 기사에게 집으로 데려다 달라는 요청에 무사히 집에 도착하게 된 것이었다. 치료자의 방문 후에 Y양은 밖으로 나가서 자신이 휴거 하는 것을 세상에 알리고 믿는 사람들과 함께 휴거 하겠다는 생각에서 밖으로 나가려다가 동생과 아버지가 현관 문을 지키고 있는 통에 창문을 열고 탈출하려고 시도했다는 것이었다. Y양은 왜 자신이 그러한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를 자신도 모르겠다고 했다.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어 심리로써 반대행동 형성이 된 것임을 알게 했다. 마술적인 생각에서 오는 즐거움에 빠져들었던 것이다. 그러한 생각을 차단 시키는 인지치료를 병행 하기로 했다. 자신의 병든 자아에 그러한 마술적인 생각이 떠 오르면 그 생각을 차단 시키는 훈련을 하면서 과거의 상처를 하나씩 들추어 내어 재연을 하기 시작했다. 어린시절에 아버지에게 옷을 발가벗기고 집에서 쫓겨난 장면을 다시 회상하도록 했다. 그 때 느낀 수치심과 분노를 표현하도록 했다. Y양은 울면서 아버지에게 하소연을 했다. 빈 의자에 아버지가 앉아 있다고 생각하고 아버지에게 분노를 표현하게 했다. 아버지 이럴 수가 있습니까? 초등학교 4학년인 저를 옷을 발가벗길 수 있습니까? 아버지에게 받은 수치심으로 제가 얼마나 고통을 받고 있는 줄을 아버지는 모르실 것입니다. 아무리 아버지의 딸이라고 해도 이럴 수는 없습니다. 제가 무엇을 그렇게 잘못했습니까? 아버지 너무 하십니다. 그냥 잘못을 이야기를 해 주면 제가 알아들을 수 있을 덴대 왜 옷을 발가벗기는지요? 울면서 Y양은 하소연을 했다. 아버지를 죽이고 싶다고 했다. 수없이 그 장면을 되풀이 하게 했다. Y양은 분석 과정에서 아버지 앞에만 서면 벌벌 떨고 말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증세가 그 사건 이후에 생긴 것임을 알게 되었다. 이제 아버지에게 NO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버지 앞에서 NO라고 말을 못하면 다른 사람 앞에서도 NO라고 말을 못한다는 것을 알게 했다. 직장에서 상대방이 자신에게 비웃거나 멸시를 하면 당당하게 자신의 의사 표현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것을 위해서는 먼저 아버지에게 자신의 의사 표현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직장에서 상대에게 무시를 당하거나 강압을 당하는 그 순간에 Y양은 아버지 앞에 서 있는 자신의 모습으로 되돌아 가는 것임을 알게 했다. 자신의 자아에게 이야기하는 자아와 대화의 훈련이 첨가 되었다. 나는 이제 초등학교 4학년 어린이가 아니냐, 지금 나는 대학을 졸업한 성인이야, 내가 어린이처럼 아버지 앞에 서 있어서는 안 돼! 나는 어른이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해라고 자신의 자아에게 이야기하게 했다. 내가 지금 대면하고 있는 이 사람은 내 아버지가 아니야! 옛날의 초등학교 4학년이 아니야!를 수없이 스스로 반복하게 됨으로써 Y양은 점차로 다른 사람들 즉 직장 동료들과의 관계에서 자기 표현이 늘어가면서 대인관계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 앞에서 당당해지기 시작했다. 치료를 시작한지 1년이 지나가면서 Y양은 파트 타임에서 풀 타임으로 하루 8시간 정상 근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직장 생활에서 대인관계에 자신감이 생기면서 자기 주장 훈련이 첨가 되었다. Y양이 치료자에게 오기 몇 년 전에 아버지에게 말대꾸를 하다가 아버지에게 머리채를 잡히고 벽에 쥐어 박힌 기억이 떠 올랐고 다시 그 장면이 재연 되었다. 이제 아버지에게 자신의 욕구와 자신의 소망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되어 갔다. 아버지 이제 저는 어린이가 아니에요. 아버지 저는 이제 성인이 되었어요. 제가 하는 이야기도 들어 주세요. 저를 치료하는 선생님이 아버지 앞에서 자신 있게 말을 못하면 다른 사람 앞에서도 말을 못한다고 했습니다. 제 이야기도 들어 주세요. 제 이야기를 들고 난 다음에 아버지의 의견을 말해 주세요. 저를 어른으로 대우해 주세요. 수 많은 연습과 훈련이 치료실에서 재개 되었다. 아버지, 제가 다른 사람 앞에서 주눅이 들어서 말한 마디 하지 못하고 비웃음을 당하거나 무시를 당하는 것을 보고 기분이 좋으세요? 아버지, 제가 당당하게 내 의사 표시를 하는 것을 보고 싶으면 아버지 앞에서 이야기할 수 있게 해 주세요. Y양은 울면서 아버지에게 말할 수 있을 때까지 6개월 정도 훈련을 하면서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조용하게 아버지에게 이야기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론적 근거

아버지로부터 분리 독립: 치료의 후반기로 접어들면서 Y양은 이제 아버지가 무섭지 않게 되어갔다. 아버지 앞에서 자신의 의견을 솔직하게 불안해 하지 않고 이야기 할 수 있게 되어갔다. Y양은 지금까지 직장 생활에서 봉급을 타면 모두 아버지에게 갖다 드리고 자신은 아버지가 주는 최소한의 용돈으로 생활을 해나간다고 했다. 항상 차비 정도만 주기 때문에 돈이 궁하면 가끔씩 아버지의 지갑에서 몇 만원을 살짝 끄집어 내 쓴다는 것이었다. 그 때 Y양은 자신에게 이것은 내 돈이야, 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내 돈이야 라면서 자신의 양심을 달랜다는 것이었다. 풀 타임의 직장생활을 하면서 경제적 어려움도 하나씩 해소되어 갔다. 이제 아버지로부터 분리, 독립할 수 있게 된 시점이 왔음을 Y양이 알게 했다.  처음에 Y양은 그것을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아버지의 허락보다도 자신이 혼자서 살아갈 수 없을 것이라고 자신감이 없었다. 방을 전세로 얻으려면 몇 천만원이 필요할 터인데 돈도 아버지가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신은 용돈 박에 없다고 했다. 치료자는 아버지로부터 독립하는 것을 아버지와 관계를 단절하는 것이 아님을 강조했다. 큰 대학교 주변에 있는 자치를 할 수 있는 방은 한 달에 20만원 30만원 정도이고 Y양이 직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나와서 독립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학기말에 되면 큰 대학교 주변에 가서 스스로 방을 찾아 보라고 했다. Y양은 드디어 자신이 괜찮은 방을 찾았고 한 달에 23만원을 주기로 하고 방을 예약해 놓았다고 했다. 이제 아버지에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게 준비를 하나씩 해 나갔다. 아버지 저도 이제는 어린이가 아닙니다. 저의 삶은 제가 책임을 지겠습니다. 언제까지나 아버지 밑에서 어린이 취급을 받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홀로서기를 해야 할 나이가 넘었습니다. 방을 얻어서 자취 생활을 하게해 주십시오. 이 말에 아버지는 더 이상 딸을 강제로 붙잡지는 않았다. 결혼 자금으로 저축을 해 주겠다며 매월 월급을 아버지에게 갖다 달라고 처음에는 딸을 설득하려고 하였으나 딸이 완강하게 나오자 아버지는 딸을 내 보내면서 어려우면 언제든지 집으로 다시 돌아 오너라고 위로해 주었다. Y양은 이제 아버지의 눈치를 보지 않은 자유인이 되었다. 대인관계도 눈에 띄게 좋아졌고 직장에서 갈등이 점점 줄어들어 갔다. 치료의 중간 단계에서 어머니에 대한 분노를 표현하면서 대학울 졸업한 후에 어머니가 한번 찾아와서 다방에서 만난 적이 있었다고 했다. 그 때 어머니는 어느 절에서 식사를 도와주는 생활을 하고 있다고 했다. 다시는 아버지와 결합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자식들을 버리고 갈 수 있었느냐는 말에 어머니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고 했다. Y양이 병원에서 퇴원해서 심리치료를 받고 혼자서 독립해서 집을 나와서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어머니가 Y양에게 같이 살면 어떻겠느냐? 고 연락을 해 왔으나 다시는 아버지도 어머니도 자신들의 삶에 간섭하지 말고 부모님의 삶에 휩쓸리지 않겠다고 대답했다고 했다. 부모님의 문제는 부모님이 스스로 해결하는 것이 좋을 것임을 강조 했다.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어머니의 문제에 끌려들어가고 싶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그러나 부모님과 연락은 끊지 말도록 했다.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지고 스스로 홀로서기를 할 수 있는 길 만이 재발을 막을 수 있는 길임을 깨닫게 했다. 근무 시간 이외에 남는 시간을 자아 개발에 투자 하도록 했다. 자신이 하고 싶어하던 영어 회화를 공부하기 위해서 영어 학원에 등록을 하고 학원에서 친구들을 사귀기 시작하였다. 동료들과 모임에도 참석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옛날에 끊어졌던 친구들과 관계도 회복하기 시작했다. 치료를 시작한지 2 6개월 만에 치료는 종결이 되었다. 아직도 남자 친구들과 친밀관계를 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었으나 혼자서 독립해서 살아가는 것에는 크게 문제가 없었다. 아버지의 집에서 나온 이후로 아버지를 받아들이고 아버지를 이해하는 치료가 더 붙여 졌음은 말할 나이도 없다. 치료는 끊어진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다. 가족 구성원들과의 관계나 동료들과의 관계를 연결 시켜서 환자의 삶이 풍부해지도록 도와주는 것임을 알게 했다. 2 6개월 동안에 조울증이 재발은 없었다. 환자는 조울증을 글자 그대로 좋아졌다가 우울해지는 병으로 잘못 알고 있었다. 간호원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즐거움을 가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치료자가 알게 되었고 이것이 잘못된 생각임을 고치게 하였다. 우울증은 스스로 즐거움을 만들지 못하는 사람들이 가지는 장애임을 깨닫게 하고 망상적인 생각이 떠오르면 단호하게 차단시키게 했다. 삶에서 스스로 즐거움을 느끼는 것은 정상이고 이것은 망상적 생각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했다. 가족들과 함께 하면서 가지는 즐거움, 직장에서 동료들과 함께 하면서 가지는 즐거움, 자신의 친구들과 함께 하면서 가지는 즐거움 그리고 삶을 살아가면서 희망을 성취하고 성장해 가는 즐거움이 삶에서 필수적임을 알게 하고 스스로 그러한 즐거움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알게 했다.

치료 결과

치료 종결 1년 후에 치료자에게 한번 크리스마스 때 고맙다는 안부 전화가 왔었고 치료 종결 2년 후에 2년 동안 다니던 병원을 그만 두고 다른 병원으로 옮긴다는 전화가 왔었다. 병원이 문을 닫게 되어 다른 병원으로 옮긴다고 했다. 약간 불안을 느낀다는 말에 치료자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면 누구나 3개월 정도 적응기간이 걸린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새로운 환경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이이라고 위로해 주면서 Y양이 잘 해 나갈 것이라고 확신한다는 말을 해 주었고 만약 문제가 생기면 다시 찾아 오라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그 후에 Y양은 더 이상 전화가 없었고 새로운 직장에서 잘 적응해 나가고 있다는 메일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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