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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42세의 직장 남성

문제점:삶에서 연속된 실패와 부부 문제까지 겹쳐서 이혼 직전의 위기 상황

연결: 상담을 하는 친한 친구로부터 치료자를 소개 받게 됨

치료 기간: 첫 3개월 동안은 1주일에 2회로 1회에 2시간씩 심리치료를 받았고 이후에는                1주일에 1회로 2시간씩 1년 동안 치료를 받고 있음

치료 결과: 직장에서 다시 재기하여 안정을 되찾아가고 있고 부부 관계도 많이 개선됨

 

치료의 과정

중년의 남성인 D씨는 상담을 하는 D씨의 친한 친구로부터 치료자를 소개 받아서 치료자에게 심리치료를 받으러 오게 되었다. 사업을 하다가 법적인 문제 때문에 구치소에 40일간 수감되어 있다가 출소하는 그날로 심리치료를 받으러 오게 되었다. 삶에서 벼랑끝에 선 심정으로 부인으로부터 이번에도 승산이 없으면 이혼 하겠다는 최후의 통첩을 받아 놓고 있었다. D씨는 결심이 대단했다. 이번에 실패하면 자살하겠다는 말을 여러번 했다. D씨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제대로 성공을 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늘 성공이 눈 앞에 보이다가 정상에 가면 슬며시 용기가 없어지고 꽁무늬를 뺀다고 했다. 자신은 이것을 "잠수를 한다"로 표현했다. 이번에는 성공할 수 있겠다고 생각이 들 때가 되면 자신도 모르고 자신감이 달아나 버리고 실패로 곤두박질 친다며 그 이유를 알고 싶어했다. 부인과 결혼은 13년 째로 슬하에 초등학교 5학년이 된 큰 딸과 이번에 초등학교 1학년에 들어가는 둘째 딸이 있다고 했다. 치료자에게 무릎을 꿇고 제발 살려달라고 애원을 하기도 했다. 그 동안 부인과는 많은 갈등이 있었고 부인으로부터 벌써 3번째 이혼을 하겠다는 통고를 받았으며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했다. 이번에도 문제 해결이 안 되면 부인은 이혼을 하겠다고 이번 심리치료가 마지막 희망이라고 했다. D씨의 어린 시절을 분석하면서 D씨의 문제점들이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이러한 자신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아무 한데도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부인한데도 어린 시절의 암울했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고 했다. D씨는 어린 시절에 3살 위인 누나와 쌍둥이 두 여동생이 있었다. 어머니는 D씨가 초등학교 2학년 때 가출해서 집을 나가 버렸고 아버지는 6.25때 단신으로 월남한 사람으로 6.25 때 군인으로 복무하여 그 때까지 장기 군 복무로 있다가 어머니의 가출로 인해서 군에서 제대하면서 D씨의 어려움이 시작되었다고 했다. D씨는 아버지가 행상, 엿장수, 아이스케키 장수, 고물 장수 등 안해본 장사가 없을 정도로 삶에서 쪼들리게 자랐고 먹을 것이 없어서 항상 아버지가 얻어온 누룽지를 삶은 죽을 먹고 자랐다고 했다. 반찬이라고는 양념도 없는 뿌연 싱그운 배추 김치와 깻잎이 고작이었다고 했다. 하루는 집에서 식사를 하려고 반찬을 뒤적이다가 깻잎 속에 구데기가 기어다니는 것을 걷어내고 그 깻잎은 먹지 않을 수 없었다고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는 늘 어디에서 얻어온 것인지 몰랐지만 반쯤 상한 고등어를 가져와서 무우잎과 함께 끓인 국을 거의 매일같이 먹었고 여러번 식중독으로 고생을 했기 때문에 지금도 깻잎과 고등어를 쳐다보지 않고 먹지 않는다고 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는 어머니가 옆에서 보살펴주었으나 어머니의 가출로 학교 생활도 억망이 되어 버렸다. 학교에는 학습 도구가 없어서 언제나 빈손이었고 아버지에게 사 달라고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생활고 때문에 허름한 빈 집에서 잠잘 곳이 없어서 아버지와 누나와 여동생은 한 방에서 자고 D씨는 마구간에서 아버지가 마구간 가운데에 매달아 놓은 널빤지 위에 올라가서 누워자다가 떨어진적이 한두 번이 아니고 초등학교 4학년 때 추운 겨울에 난방이 없어서 아버지가 뜨거운 물을 탄약 상자에 넣어서 안고 자다가 뜨거운 물이 새는 바람에 허벅지에 데여서 병균에 감염되어 2년 동안을 고통속에 지내다가 외할머니가 D씨의 허벅지가 고름이나오는 것을 보고 엄마한데 연락을 해서 어머니가 처음으로 D군을 병원에 데리고 가서 수술을 받고 나서야 완치되었다고 했다. D씨는 이 상처 때문에 아버지에게 약을 사 달라고 말을 하지 못했다고 했다. 할 수 없어 자신이 돈을 벌어서 약을 사야겠다고 신문 배달을 약 2년 동안 하면서 약간의 돈으로 소독약과 고약을 사서 발랐으나 회복되지 않고 계속 2년 동안 고통 속에 살았다고 했다. 심하게 고름이 나오고 살이 썩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여름이 되면 물집에서 고름이 나오고 겨울에는 상처에서 나오는 진물이 옷에 붙여서 늘 아파었고 그래도 신문 배달을 하면서 다리를 쩔둑거리고 다니던 시절을 회고하면서 그 때 받은 돈으로 처음으로 과학 백과 사전을 사서 열심히 공부했던 시절을 회상하면서 눈시울을 적셨다. D씨는 엄마의 정을 받아본 적이 없다고 했다. 엄마는 차갑고 옆에 있어도 따뜻한 정이 느껴지지 않는 사람이라고 했다. 엄마에 대한 분노와 적대감정이 엄청나서 자신은 절대로 자신의 가족들을 버리고 혼자서 잘 살겠다고 떠난 엄마를 용서할 수 없다고 했다. D씨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자신을 바보라고 자신을 인정하면서 항상 바보 짓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학교 공부는 항상 꼴지에서 맴돌았다고 했다. 학용품을 살 돈이 없어서 공부를 할 수가 없었고 숙제를 할 도구가 없었다고 했다. 옷도 항상 떨어져서 아버지가 손으로 기운 옷을 입고 다녔기 때문에 학급 동료들은 D씨를 거지라고 불렀다고 했다. 그러나 동료들에게 자신의 고통이나 자신의 처지를 절대로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했다. 자신의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린 것이었다. 친구들이 없었고 자신은 늘 혼자였고 집에서 놀 때도 상상 속에서 현실의 고통을 잊어 버리려고 했다고 했다. 혼자 뒤산에서 상상 속에서 파묻혀있을 때가 제일 행복했다고 했다. 점심 시간은 언제나 고통이었다. 다른 동료들은 집에서 맛있는 반찬으로 점심 도시락을 가지고 와서 식사를 하는데 자신은 혼자서 운동장을 걸어면서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라는 노래를 부르며 배고픔을 잊어 버리려고 했다고 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한번은 학급 친구가 자신의 생일 파티에 초대를 해서 친구 집에 갔드니 그 친구는 이층 양옥집에서 자신의 공부 방을 가지고 있었고 식사를 하는데 너무 맛있는 음식이 나와서 손으로 집어 먹는데 친구의 어머니가 D씨를 보고 부엌으로 데리고 가서 물을 따뜻하게 데워서 때묻은 손을 비누로 씻어주면서 깨끗하게 하라고 하는 바람에 그 다음부터는 그 친구와 관계를 끊어 버렸다고 했다. 친구 엄마에게 미안하고 수치스럽고 죄송해서 자신의 입장을 한마디도 말을 할 수 없었다고 했다. 자신은 어머니가 가출하고 집에서 아버지가 행상으로 먹고 살기가 어려워서 목욕을 할 수 없고 손발을 씻을 따뜻한 물이 없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5학년 때 시험을 쳤는데 2등을 한 것 때문에 아이들이 신기해서 호기심으로 다가왔으나 자신을 믿지 못하고 친구들을 피해 버렸다고 했다. 외삼촌한데 시험친 것을 자랑하다가 바보라고 처벌을 받은 이후로는 자신은 공부를 못하는 바보라고 스스로 결론을 내려 버렸다고 했다. 초등학교 고학년과 중학교 때는 늘 공부 시간에 졸음으로 졸고 있는 학생으로 낙인이 찍혔고 선생님이 설명을 하는데 무슨말을 하는지 앞과 뒤가 연결이 안되어 선생님의 설명을 듣는 것보다 참고서를 보고 읽어서 이해하는 편이 훨씬 편했다고 했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공부가 잘 되어 성적이 향상되어갔고 고등학교는 이름이 있는 명문 공업고등학교에 들어가서 장학금을 받게 되었으나 공업학교 실습 때문에 실습 도구를 돈으로 사야하는 부담 때문에 학교를 2학년 때 그만 두고 자퇴하고 검정 고시로 고등학교 자격증을 땄다고 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다니기 시작한 교회의 도움으로 D씨는 교회 활동을 하면서 기독교 사상에 눈을 뜨기시작했다고 했다. 고등학교 때 청년부의 회장직을 맡으면서 사회활동을 준비하게 되었고 고등학교 자퇴 후에 여름 방학에 삶의 밑바닥까지 가보자는 생각으로 다른 지방의 대도시에 가서 노숙을 하면서 교회 근처에서 노숙하면서 식사를 얻어먹으면서 한달을 지내다가 이러한 생활은 다시는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고 다시 고향으로 되돌아오게 되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항상 술만 잡수시면 혼자서 다락방으로 가서 "엄마! 엄마!"하고 통곡하는 모습을 보고 아버지가 세 살 먹는 어린이처럼 느껴져서 불쌍해보였다고 했다. 아버지는 북한에서 철도 고등학교까지 마친 인테리였으나 6.25 전쟁으로 단신으로 월남해서 항상 추석이나 설 명절이 되면 북한에 두고 온 부모님을 생각하면 눈물을 흘리는 나약한 분이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군입대로 장기군 복무자로 생활하다가 어머니를 만났고 외할머니가 강요해서 어머니와 결혼을 했으나 어머니는 아버지의 의처증과 생활의 무능력 때문에 같이 살 수 없다고 가출해서 혼자서 다방 마담을 하면서 난잡한 섹스 생활을 하는 것이 자라는 D씨의 모습에 수치심으로 각인되어 있었다. 누나는 엄마의 가출 이후에 어머니 역할과 동생들을 키우다가 중학교 2학년 때 가출해서 술집에서 생활하면서 성적으로 난잡한 생활로 세 번이나 결혼했으나 실패하고 지금은 혼자서 고통스럽게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교회에서 청년부을 맡아서 활동하면서 인정을 받게 되었고 전국 청년부 연합 대회에서 지금의 부인을 만나게 되었다고 했다. 부인은 명문 대학 약학대학을 나온 재원으로 지금은 병원에 약사로 일하고 있으며 D씨의 가족의 생계를 도맡아서 해 왔다고 했다. D씨는 결혼 후에 교회에서 탈퇴해서 독자적인 길을 걸어왔으나 생활을 해나갈 능력의 결여로 지금까지 사회에 적응하는데 수많은 어려움을 가지게 되었다고 했다. 결혼 13년동안 제대로 돈을 벌어서 봉급을 탓다고 부인에게 월급 봉투를 건넨 적이 없다고 했다. 자녀들의 양육도 부인이 맡아서 하게 되면서 부인은 경제적인 부담과 양육 부담과 남편의 뒷바라지 등에 지쳐서 이제는 이혼하고 싶으니 마지막으로 상담 치료를 받아보고 효과가 없으면 이혼하겠다고 여러번 이야기를 한 것이었다.

분석 및 해결 과정

치료자는 D씨에게 자신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치료자에게 한 것처럼 부인에게도 집에 가서 하도록 권장했다. 부인은 D씨의 어린 시절을 소상하게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 의사 소통이 없고 감정 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었다. 치료자에게 한 이야기의 내용을 부인과 규칙적인 대화 시간을 마련해서 그대로 이야기하도록 했다. 그 결과 부인으로부터 D씨의 행동에 대한 이해와 감정 지원을 얻게되었고 부인과의 관계가 조금씩 개선되어가기 시작했다. 부부 사이에 의사 소통에 통로가 생긴 것이었다. D씨는 결혼 후에 부인과 친밀관계를 제대로 만들지 못했다. 부인에게 자신의 어린 시절은 좋지 않는 일로써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대도록이면 숨겨온 것이었다. 고로 서로가 상대의 내면 속을 잘 알지 못하게 되었고 서로 거리감이 생긴 것이었다. 자신이 어린 시절에 어떻게 자라났고 어떻게 생활 했는가를 이야기하면서 D씨의 감정에 쌓인 원한들이 많이 해소되어갔다. 엄마에 대한 적대 감정이 쌓여서 부인에게로 흘러가고 있음을 D씨가 알 게 되었다. 여성에 대한 복수심은 엄마로부터 야기된 것이었다. 이 분노와 적개심은 엄마의 가출 이후에 누나와 늘 싸움으로 일관했다는 것에서 알 수 있었다. 지금은 누나의 불행은 엄마의 가출로 인해서 가정이 기울어지면서 누나가 엄마 역할을 하게 되었고 어린 나이에 이중 삼중으로 누나는 어린 쌍둥이 여동생들을 키우랴, 밥하고 빨래하면서 살림을 도맡아서 하랴, 학교에서 공부하랴, 얼마나 힘들었으면 가출해서 살아남기 위해 탈출했겠는가를 이해하게 되었다며 D씨는 누나의 지금 불행이 엄마의 가출과 아버지의 무능으로 인한 것임을 이해하면서 가슴 아파했다. 자신의 불행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를 알 게 되면서 D씨는 자신의 내면을 보는 눈이 생기게 되었다. 치료자는 D씨의 어린 시절에 상처를 한가지씩 재연하면서 그 때의 감정을 표현하는 훈련을 병행하였다. 친구의 어머니에게 하지 못했던 말을 하도록 했다. "xx 친구 어머니 고맙습니다. 저는 엄마가 초등학교 2학년 때 가출해서 지금은 엄마 없이 아빠가 행상으로 겨우 살아가고 있습니다. xx 친구가 저를 친구로 초대해준 것에 감사합니다. 저는 목욕을 할 돈도 없어서 목욕을 하지 못하고 있고 손발을 씻을 따뜻한 물로 없어서 손발을 깨끗하게 씻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머니에게 너무 부끄럽습니다. 나는 친구 xx가 너무 부럽습니다. 이렇게 좋은 집에 공부방에 좋은 음식을 먹는 것을 보니 정망로 xx가 행복해보입니다. 저는 엄마가 너무 보고 싶습니다. 엄마가 우리를 버리고 떠난 것 때문에 엄마가 밉습니다. 친구 어머니께서 저의 손발을 씻어줄 때 저는 엄마의 따뜻한 정을 느꼈습니다." 이러한 표현을 직접하게 하였다. 만약 그 당시에 이러한 표현을 했드라면 그 친구에게 자신의 집 이야기를 소상하게 정직하게 있는 그대로 했드라면 친구 어머니의 도움을 많이 받았을 것이라는 치료자의 해석에 시인을 했다. 학급 동료들에게 또는 학급 담임 선생님에게 자신의 내면 속의 이야기를 했드라면 그렇게 학교 생활이 어렵지 않았을 것임을 지적했다. 이것은 자신을 처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처지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정직하게 인간 관계를 했드라면 D씨는 친구들로부터 거지나 이상한 아이로 취급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D씨는 머리가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 주변의 환경이 그렇게 자신을 바보로 만든 것이었다. D씨가 자신이 바보가 아닌 것을 알게된 것이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였다고 했다. D씨는 친구 관계를 단절하면서 감정도 단절 시켜 버렸다. 인간관계를 끊어 버린 것이었다. 현실의 고통을 피하기 위해서 항상 상상 속에서 살았다. 비현실적인 것을 마음 속에 그리면서 초등학교 고학년 때는 집에 오면 늘 뒤산에 가서 혼자서 각종 상상을 해서 자신이 지어낸 이야기를 나이 어린 동네 꼬마들에게 이야기를 하면 정말인 것처럼 좋아했다고 했다. 동료들과의 관계를 끊어 버리고 동네 꼬마들에게 이야기를 하면서 늘 지냈다고 했다. 치료자는 D씨가 치료자에게 이야기를 하도록 장려하면서 치료자와 대화를 하는 기술을 배우도록 했다. 자신의 감정을 직접 상대에게 정확하게 전달하는 커뮤니케이션에 초점을 맞추었다. D씨의 대인관계는 감정을 정확하게 이야기하지 못하고 자신의 내면의 이야기를 상대에게 소상하게 이야기하지 않아서 생기는 오해가 많았다. D씨는 결혼 후에 부인 몰래 7명의 여성들과 복잡한 섹스 관계를 이야기 했다. 부인에게 이러한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고 했다. D씨의 여자 관계를 분석해본 결과 D씨는 엄마의 정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에 받지 못한 따뜻한 엄마의 정을 여성들로부터 받으려고 하고 있음을 알 게 하였다. D씨는 지금까지 여성들과 사업 파트너로 생긴 문제가 대부분이었다. 처음에는 여성들이 사업 파트너로 인정하고 자금을 제공해주었으나 나중에는 배신자로 변해서 D씨를 고발하거나 D씨와 적대 관계가 되어 서로 원수처럼 원한 관계로 변하는 것을 분석해낼 수 있었다. 치료자는 D씨가 자신의 대인관계 패턴을 잘 보도록 했다. 이후에는 이러한 관계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자신을 잘 비추어 보도록 하는 것을 강조했다.

 

이론적 근거

D씨의 결정적인 문제는 어린 시절에 엄마의 가출로 어머니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마음의 문은 닫아 버려서 친구관계가 되질 않았고 이후에 학교 생활에 부적응하면서 낙오자로 낙인이 찍혀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이것이 이후에 어른기까지 연장되었다는 점이었다. 엄마와 친밀관계에서 애착 회피로 대인관계 회피로 이어진 것이었다. 문제는 과거의 어린 시절을 분석하면서 D씨가 어디에게 잘못되어 문제가 확대되었는지를 스스로 깨닫게 하는 과정이었다. 단순히 과거의 잘못된 부분을 이야기하는 것이 치료가 아니다. 치료는 잘못된 결함이 지금 현재 반복하고 있는 것을 알고 과거를 재 반복하지 않도록 하는데 있다. D씨는 어린 시절에 사랑에 고착이 생겨서 이것을 지금 여기에서 여성들로부터 받으려고 하고 있기 때문에 여성들에게 의존하게 되고 어린이처럼 행동하게 되어 처음에는 좋은 관계로 출발하였으나 나중에는 파트너에게 의존하고 자신의 행동이 미성숙하게 되면서 파트너에게 자신이 싫어하는 것에 No라고 말을 하지 못하고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정확하게 커뮤니케이션하지 못하고 상대의 눈치를 살피며 비위만 맞추려고 하였고 상대를 조작하려고 한 것 때문에 상대 여성들이 질식하게 되고 D씨의 매달리는 행동에 환멸을 느껴서 도망가려고 한 것을 D씨가 알고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상대에게 정확하게 커뮤니케이션하는 훈련에서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게 하였다. 이러한 치료자의 분석에 D씨는 정확하다고 맞장구를 쳤다. 자신은 항상 마음이 따뜻한 여성들을 어머니처럼 느낀다고 했다. 문제는 D씨가 이러한 어머니처럼 느껴지는 감정에 의존하게 되면 족쇄가 되어 부매랑으로 되돌아온다는 것을 알 게 했다. 어린 시절에 엄마의 정을 여성들로부터 받으려는 것이 바로 함정임을 알 게 했다. 여성들에게 의존하려고 하지 말고 만약 의존적인 마음이 생기면 함정임을 자신이 깨닫도록 했다. 스스로 자신감을 기르고 당당하게 파트너에게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게하고 상대의 눈치를 보지 말고 상대에게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을 No라고 말할 수 있게 하였다. D씨는 초등, 중등, 고등학교 시절에 항상 문제를 피하고 고통을 피하려고 상상 속에서 안주했기 때무에 현실 감각이 부족하고 문제를 정면으로 부디치면서 돌파해서 뚫고나가는 것이 부족함을 알 게 하였다. 고통스러운 일이나 복잡한 문제에 부딪치면 정면 돌파를 시도하지 않고 슬그머니 뒤 꽁무늬를 빼는 것은 어린 시절에 고통을 받아들이고 직면하지 않고 상상 속에서 동료들과의 관계를 끊어 버린 것에서 찾을 수 있었다. 사춘기로 접어들면서 D씨는 아버지로부터 무능력을 배운 것이었다. 아버지는 북한에 있을 때 부유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서 과잉보호 속에서 자라다가 철도 고등학교라는 수재들이 다니는 학교를 졸업했으나 6.25 전쟁으로 독신으로 월남하면서 삶에서 자신감을 잃어 버리고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 살아온 것이 분명했다. 자녀들 때문에 군에서 전역을 하게 되면서 봉급 생활에서 행상이나 각종 장사를 했지만 모두 실패하고 삶에서 자신감을 잃어 버리고 하는 일마다 제대로 된 일이 없었다고 했다. 차라리 군에서 머물면서 봉급으로 자녀들을 제대로 뒷바라지를 했드라면 D씨의 삶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했다. 아버지로부터 배운 것은 삶은 고통스럽고 어떻게 살아가야할지를 모르고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삶에서 방향 감각을 놓쳐 버린 것이었다. 자신의 꿈을 설계하고 미래의 비젼을 설계해야할 사춘기가 현실 도피 속에서 삶의 밑바닥을 헤매고 있었던 시절이 D씨의 사춘기였다. D씨는 늘 어린 시절부터 자살하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난 적이없다고 했다. D씨가 결혼 후에 몇 번의 사업에서 성공의 문턱에서 무너진 것을 분석해보자. D씨는 그것을 두고 자신을 "잠수를 한다"고 표현을 했다. 사업에서 일이 잘되고 성공의 문턱에 가면 D씨는 자신감을 잃어 버린다고 했다. 문제는 파트너와의 관계에서 파트너와 어떻게 관계를 해야할지를 모른다는 점이 드러났다. 그래서 파트너의 눈치를 보고 비위를 맞추려고 하는 것에다 또 자신은 늘 무능력하다 바보라고 어린시절부터 자신에게 최면을 걸어왔기 때문에 자신의 능력을 믿지 못한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D씨는 이것을 인정했다. 어린 시절부터 가까운 다른 사람들로부터 능력을 인정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자신의 마음의 심층에 심어져있는 무능력하다는 것이 결정적 순간에 꿈틀거리고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이 때 자신감을 잃어 버리게 되고 겁이나고 숨고싶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슬그머니 꽁무늬를 빼어 버리자 파트너나 주변 사람들이 "당신은 늘 잘해 오다가 왜 그 모양이냐?"고 이해를 할 수 없다는 말을 자주 해 왔다고 했다. 아버지의 무능력은 먹는 것에서도 들어났다. 아버지는 정직하게 이웃 사람들에게 자신의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남아서 버리는 부식이나 반찬을 주면 자식들과 잘 먹겠다고 이야기를 했다면 먹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D씨가 자라던 60년대 70년대는 6.25의 전쟁의 시대가 아니고 그 때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한창 개발 도상국에서 도약을 하던 시대로 그렇게 먹는 것 때문에 힘들어하던 시대가 아니었다. 아버지는 이웃 사람들에게 자신의 처지를 부끄럽게 생각하고 자존심 때문에 굶으면서도 체면 때문에 아무런 어려움이 없는 척 했다는 것이 틀림없었다. D씨가 어린 시절에 늘 먹었던 김치는 이웃에서 얻은 것고 아니고 돈을 주고 산 것도 아니고 이웃이 버린 것을 주워온 것이 틀림없었다. 김치를 담글 때 양념 김치는 장독 아래에 넣고 맨 위에 입구를 덮은 김치가 양념이 없는 뿌연 김치가 아닌가 맛도 없고 싱그운 그 김치가 만약 아버지가 이웃 사람들에게 얻어온 것이라면 누가 이웃 사람들이 그런 김치를 D씨의 아버지에게 주었겠는가! D씨가 식중독으로 질린 상한 고등어도 돈을 주고 산 것이 아니고 생선 장사가 상해서 동물 사료용으로 버린 고등어를 아버지가 주어서 온 것이 틀림없었다는 치료자의 지적에 D씨도 동의를 했다. 아버지의 이러한 겉으로는 고통을 숨기고 속으로는 곪아터진 마음 속의 아픔을 바로 D씨가 고스란히 대물림해서 물러받은 것을 분석했을 때 D씨는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가를 깨닫게 되었다고 기쁘했다. D씨는 학교에서 선생님이 이야기하는 것은 이해가 안 되고 앞과 뒤가 연결이 안되었고 차라리 참고서를 보면 한층 이해가 빨라서 책을 읽는 것 더 좋았고 공부 시간에는 늘 잠을 잤다고 했다. 이것을 분석하면서 치료자는 학교 수업 시간에 적응이 부족해서 항상 선생님이 하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혼자서 각종 상상을 하는 바람에 선생님의 이야기 내용을 놓치고 연결하지 못해서 선생님의 설명을 따라가지 못하고 이 때문에 그 다음에 선생님의 설명이 이해가 안 되고 수업에 흥미를 놓치고 그래서 더욱 더 상상 속에 빠지게 되어 수업에 흥미를 잃고 수업 시간에 잠만 자는 아이로 동료들에게 낙인을 찍힌 것이 아닌가라는 치료자의 분석에 맞다고 무릎을 쳤다. D씨가 학교 공부에 적응을 잘 해 나갔더라면 아마 선생님과 동료들에게 자신의 능력을 인정을 받고 학급 동료들과 친한 친구관계를 만들어 나갔더라면 엄마 없는 설움이나 가난한 어려움 등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고 부끄러움으로 남지 않고 인생이 달라졌을 것이다는 지적에 수긍을 했다.

치료 종결

D씨는 현재 열심히 자신을 알아가고 자아를 찾아가고 있다. 아직도 분석은 끝나지 않고 있다. D씨는 최근에 가족들의 소중함을 깨닫고 이제 부인과 자녀들과 대화를 하기 시작했고 가족들이 오손도손 일요일에 야외로 나들이를 가기도 해서 자녀들이 좋아하고 부인도 D씨에 믿음이 생긴다고 말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 여름에는 D씨는 자신이 하는 일에서 대단한 성과를 올렸고 이것이 회사에서 인정을 받아서 승진을 했고 보너스도 두둑이 받아서 지금까지 부인에게 진 빚을 다 갚았다고 했다. 부인이 자신에게 빌려준 돈을 다 갚을 수 있었고 이제 부인에게 약 300만원을 플러스로 주었다고 기뻐했다. 처음으로 남편으로써 가정의 가장으로써 체면을 지킬 수 있었다고 했다. D씨는 심리치료에서 대인관계에 자신감을 얻을 수 있어서 좋았고 이제는 결정적인 성공의 단계에서 잠수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자신의 약점을 알 게 되어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번에 회사에서 발행하는 팜프렛에서 D씨의 사진이 한 페이지 정도로 크게 실리고 D씨의 사업 실적에 대해서 소개한 팜프렛을 부인과 치료자에게 보여주면서 기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