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청, 환각 분석(조현병)  

 

환청과 환각은 조현병(정신분열증)의 대명사이다. 조현병 환자의 70%가 환청을 가지고 있고 그리고 10%가 환각을 가지고 있다고 보고되고 있다. 환자는 환청과 환각을 하나씩 가지는 사람도 있고 두 개를 다 가지는 사람도 있다. 환청은 청각 환상의 줄인 말로써 다른 사람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데 환자 본인의 귀에는 들리는 것이다. 환각은 환시로 불리는 것으로 시각 환상의 준말이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환자 자신의 눈에는 보인다는 것이다. 환청과 환각 이외에도 냄새 환상인 환취(幻臭)는 환자가 자신의 몸에서 냄새가 난다(32세의 한 여성은 자신의 항문에서 똥 냄새가 난다고 호소)는 것이고 촉각 환상인 환촉(幻觸)은 환자가 자신의 피부 안에서 벌레가 기어간다(코사코프 증후군을 가진 사람(알코올 중독자)이 자신의 피부 안에 벌레가 기어간다는 불평을 많이 한다)는 것을 느끼는 것을 말한다. 처음에는 자신의 귀에 들리거나 혹은 눈에 보이는 것을 다른 사람들도 보고 들린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환청의 대부분은 자신을 비난하거나 자신을 위협하는 것들이 대부분이고 환각은 귀신이나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 보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가면서 이상한 느낌을 가지게 되고 다른 사람들에게 혹은 가족 구성원들에게 물어 보게 되면서 자신의 귀에 들리거나 혹은 눈에 보이는 것이 다른 사람들의 눈에 혹은 귀에는 보이거나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순간부터 당황하거나 혼란하게 된다.

이러한 시점에 오게 되면 병원을 찾게 되고 조현병(정신분열증)으로 진단을 받게 된다. 동시에 환자의 부모 들은 절대로 그러한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하지 말라고 경고를 하게 된다. 가족 구성원들 사에서도 금기가 된다. 그러한 말을 하게 되면 다른 사람들 특별히 동료들이 혹은 이웃들이 이상한 돌 아이라고 두려워하거나 피하게 된다고 주의를 주게 되고 환자 본인 역시 숨기고 말을 하지 않게 된다. 여기에서 억압이 시작된다. 환자는 혼자서 고민하고 괴로워하게 된다. 약물을 복용하면 환청과 환각은 사라지지만 환자의 마음 속에 억압된 환청과 환각은 무의식 속으로 밀려들어가게 되고 자아가 약해지면 언제든지 의식의 표현으로 등장하게 된다. 이 시점에서 환자는 환청과 환각과 싸움이 시작된다. 환자가 환청과 환각과 싸우면 싸울수록 억압이 강해지고 의식으로 튀어 나오려고 하는 힘도 역시 강해진다. 여기에서 뉴톤의 물리학 제 3의 법칙이 인용이 된다. 작용-반작용의 법칙(주㈜: 한 물체가 다른 물체에 힘을 작용하면 힘을 받은 물체는 그 힘과 같은 크기로 반대 방향으로 힘을 준 물체에 힘을 작용한다: 2019. 3.24 위키피아 참고).이다. 정신분석에서는 뉴톤의 물리학이 많이 인용된다. 축구 공에 바람을 많이 넣어서 누르면 누를수록 더 많이 튀어 오른다는 원리이다. 강박증의 특징이다. 억압을 할수록 그 증세는 더욱더 강해진다는 뜻이다. 정신분석적인 전문 용어로 이것을 반대행동 형성 혹은 반동형성(reaction-formation)이라고 부른다. 약물 치료에서는 환청과 환각을 약물로 억압해서 등장하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정신분석 심리치료에서는 이것을 분석해서 근본적으로 제거하는 치료를 한다. 그 증세의 뿌리는 뽑아서 정상으로 되돌리는 것이다.

환청과 환각은 정신분열증 즉 조현병의 특징이라고 밝혔다. 먼저 조현병(정신분열증이 2011년에 국회 법으로 통과되어 조현병으로 개칭)의 역사적 진화와 선진국인 미국, 영국, 프랑스 등에서는 어떻게 연구되고 치료되어져 왔는가? 그리고 1980년 이후에서 지금까지 어떻게 치료를 하고 있는가?를 먼저 살펴보고 그리고 환청과 환각을 어떻게 분석하는가? 와 치료자의 치료의 사례를 통해서 환각과 환청이 어떻게 제거되어졌는가?를 소상하게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치료자는 정신의학과 심리과학을 연구하면서 학자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장님 코끼리 만지기의 일화를 많이 듣게 된다. 한 장님이 코끼리의 배를 만지면서 코끼리는 넓적하고 평평하다고 말을 한다. 다른 장님이 코끼리의 다리를 만지면서 코끼리는 기둥과 같다고 말을 한다. 또 다른 한 장님이 코끼리의 코를 만지면서 코끼리가 대롱처럼 길다라고 말을 한다. 또 다른 한 장님이 코끼리의 꼬리를 만지면서 코끼리는 밧줄과 같다고 말을 한다. 이러한 현상은 전체를 보면서 부분을 보라는 옛날 우리 조상들이 늘 강조를 했던 경구가 아닌가? 숲을 보고 나무를 보지 못하거나 나무를 보고 숲을 보지 못한다는 말은 이러한 허점을 경고하는 말이다. 먼저 전체를 보고 그리고 부분들을 보아야 한다는 말이 아닌가?

조현병의 치료에 전념하고 있는 정신건강 전문가들(정신과 의사들, 심리치료사들, 사회복지 치료사들, 정신의학을 공부한 치료 간호사들의 통칭)은 증세들의 제거에 혈안이 되어 있기 때문에 나무를 보면서도 숲을 보지 못한다는 말과 장님 코끼리 만지가 아닌가? 가 되기 쉽다는 경고를 많이 듣게 된다. 필자는 미국에서 공부를 하면서 늘 교수들로부터 현재의 증세에 초점을 맞추면서 경험 그 자체에만 매달려서는 안 된다는 경고를 철저히 배웠다. 정신 장애들은 항상 과학의 발달에 따른 진화를 해 왔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고로 치료사들은 연구하고 배우고 경험하는 것이 통합되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이 무장을 하지 않고 전술을 배우지 않고 맨손으로 전쟁터게 나갈 수가 없지 않는가?

여기에서 먼저 정신분열증 즉 조현병의 연구가 어떻게 선진국에서는 시작되었는가? 하는 이야기에서 시작해 보기로 한다. 조현병은 1911년에 스위스의 쥬리히에서 세계에서 처음으로 설립이 된 부르고졸리 대학정신병원에서 20년 동안 연구를 했던 제 5 대 총장인 유진 블루러(Eugen Bleuler)에 의해서 종전의 조발성치매라는 말이 잘못된 용어임을 지적하고 정신분열증이라는 말로써 등장을 했다. 1889년에 독일의 정신과 의사인 에밀 크레펠린(Emil Kraepelin)에 의해서 조발성치매(dementia praecox)라는 이름으로 처음으로 등장을 했었다는 것을 여러 번 밝혔다. 정신분열증은 그 이후에 뇌의 질병으로 알려지게 되면서 약물의 치료에만 의존해 왔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4명의 역동적 정신의학자들 즉 프로이트, 피에르 장(Pierre Janet), (Jung) 그리고 에들러(Adler)는 신경증 치료에 전념을 했지만 정신증(편집증, 조울증, 정신분열증(조현병))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부르고졸리 대학정신 병원에서 9년간 치료 국장으로 있던 융(Jung)은 정신과 의사 출신으로써 정신분열증의 연구에 매진을 했다 그러나 그는 정신분열증(조현병)이 심리적 독극물로써 생긴 뇌의 질병으로 진단을 하고 신경증 치료로 방향을 돌렸다. 프랑스의 가르코트 병원에서 가르코트의 후원으로 실험실에서 9년 동안 히스트리아를 연구하고 치료를 했던 피에르 장은 해리장애(귀신에 씌인 빙의 현상)의 연구로써 자아의 칸막이 현상(여러 개의 자아들이 서로 소통이 단절되어 다른 때에 다른 자아로 등장)으로 규명을 했지만 정신분열증은 언급하지 않았다.

프로이트는 평생 동안 신경증 연구와 치료를 하면서 정신증의 연구에 도전을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고 샌프란시스코 의과대학 정신과 교수이자 정신분석가인 토마스 오가덴(Thoman Ogden, 1994)은 노트를 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프로이트는 초반기에는 신경증과 정신증을 양적인 차이로 설명을 했다. 신경증은 오디팔 단계(3-5)에서 자아의 고착이 일어난 것으로 정신분열증(조현병)은 출생 직후에 스스로 즐거움을 느끼는 단계(autoerotic)에서 고착이 일어난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이후에 그는 신경증과 정신증은 질적으로 다른 장애로 규명을 했다. 신경증은 리비도 에너지(마음)가 외부 세계로 흘러가지만 정신증은 자아(ego)로 내면의 세계로 흘러 들어간 것으로 정의를 했다. 그는 정신분석을 신경증 치료에 국한 시켰다. 정신증은 전이(transference: 치료과정에서 환자가 유년기에 갈등을 겪었던 대상과의 경험을 치료자에게 옮겨서 재경험하는 것: 2019,3. 24, 다음 백과사전)가 형성되지 않는다고 못을 박았다. 그러나 그는 한 가닥 희망의 끈을 제시를 했다. 1911년에 프로이트는 그의 정신분석학 개론의 저서에서 나는 정신분열증 치료가 정신분석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방법상의 변화들로써 성공할 수 있다라는 말을 했다. 정신분석을 수정 보완을 하면 정신분열증(조현병) 치료에 문이 열릴 수 있다는 말을 함으로써 제자들에게 도전과 용기를 주게 되었다(Ogden, 1994).

프로이트가 유일하게 정신증 치료에 대한 연구 논문을 제출한 것은 1911년에 독일 연방 대법원 판사인 스케레버(Schereber)가 쓴 나의 신경증 질병의 회고록이라는 저서에서 그의 편집증 조발성치매(정신분열증의 전신)에 대한 분석 연구였다. 스케레버는 두 번째 발병 후에 9년간의 투병 생활에서 1902년에 퇴원 후에 그의 회고록을 썼다. 그는 신이 그를 여자로 만들었다, 그를 치료한 정신과 의사(라이프지그 대학의 정신과 교수인 프레시그(Flechsig 박사)가 최면으로 그의 신경 속에 신경 언어를 주입해서 그를 여자로 만들었다고 주장을 했다. 그는 신으로부터 신경 언어, 텔레파시로써 사람들과 성교를 해서 인간을 개조시키고 병든 인간을 파괴시켜서 신이 원하는 새로운 인간을 잉태해서 새로운 인간 사회를 창조하라는 명령을 받고 있다고 회고록에서 썼다. 프로이트는 그의 회고록을 분석해서 그의 편집증의 원인을 호모섹스(동성애)의 방어로 보았다. 편집증은 한가지에 집착해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정신장애로써 우리가 알고 있는 대표적인 장애가 의처증(남편이 부인을 의심), 의부증(부인이 남편을 의심)으로 파트너의 간통에 대한 섹스에 의심이 특징이다. 이 편집증에 대한 프로이트의 논문은 이후에 편집증 연구에 씨앗이 되었다(Messiner, 1978: 주㈜: 참고).

프로이트의 격려에 용기를 얻어서 프로이트의 제자들이 용감하게 정신증 치료에 나서게 된 것이 조현병의 연구에 시동이 걸리게 된 것이다. 첫 번째 제자가 독일의 정신분석학회 회장인 칼 아브라함(Karl Abraham)이다. 그는 부르고졸리 대학정신병원에서 융(Jung) 밑에서 4년간 정신분열증을 치료한 정신과 의사로써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매료되어 프로이트의 제자가 된 사람이다. 그는 융(Jung)이 뇌의 질병으로 본 정신분열증(조현병)을 그와 반대로 심리적인 원인의 가설로 프로이트의 지지를 얻었다. 그는 조울증의 치료에서 6명의 환자들을 치료한 치료의 성공 사례를 정신분석 학회에 보고를 하면서 정신증의 하나인 조울증이 전이가 형성된다고 보고를 했다. 그의 치료에서 재발이 없었다는 치료 성공에 정신분석가들이 고무되었다. 두 번째가 스위스의 정신분석가로써 파울 베제르(Poul Bjere)이다. 그는 52세의 한 독신 여성이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그녀를 보고 혀를 내 밀면서 그녀를 음탕한 여자라고 욕을 한다는 망상 장애를 가진 여성을 성공적으로 치료한 것을 보고하면서 전이 형성을 증명을 했다. 그러나 이 이전에 이미 1905년부터 빙의 현상인 해리 장애와 정신분열증을 정신분석학을 수정하고 보완을 해서 치료를 해 온 정신분석가가 있었다. 그가 바로 파울 페드론(Paul Federn)이다. 그는 프로이트의 전이 분석을 개선해서 부정적 전이를 사용하지 않고 프로이트의 분석가의 중립성을 수정해서 능동적으로 환자를 치료하는 쪽으로 치료를 해서 학회에서 그는 자유연상을 사용하지 않고 긍정적 전이와 ego의 힘을 강화 시키는 치료를 보고를 했다.

1923년에 프로이트의 마음의 3두 마치 이론 즉 초자아, 원초 자아, 그리고 현실적 자아(ego)이론이 발표 되면서 정신증에 대한 연구의 길이 더욱 더 활짝 열리게 되었다고 노트하고 있다(Ogden, 1994).

1925년에 윌헬름 레이크(Wilhelm Reich)가 충동적 성격이라는 논문에서 심한 성격장애 치료 쪽으로 그리고 더욱 더 나아가서 정신분열증 환자의 치료를 선언을 했다. 그는 28세의 나이로써 비엔나에서 노동자를 위한 정신분석 치료소를 개업을 했다. 이후에 나치의 위협을 감지하고 미국의 뉴욕에서 정신분석 치료를 하면서 과격한 치료 이론으로 밀고 나갔다.

1929년에 어네스트 심멜(Ernest Simmel)이 정신병원 안에서 정신분석 치료 논물을 발표했다. 그는 이후에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L.A.에서 정신분석 학교를 설립하고 정신분열증(조현벼) 치료에 개척자가 되었다. 그는 자유연상과 카우치 사용에 반대해서 일대 일로 얼굴을 마주보고 치료를 하는 방법으로 개선을 했다. 그는 정신분열증(조현병) 환자들은 카우치를 사용하고 자유연상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을 했다 그리고 그는 프로이트의 분석가의 중립을 거부하고 분석가는 능동적으로 환자를 이끌고 나가야 한다는 기법을 사용을 했다. 그의 치료 기법은 1970년대 정신분열증 치료에서 뉴욕의 정신분석가들의 표준으로 채택이 되었다(Stone et al., 1983).

여기에 또 한 사람의 정신분석의 수정기법을 사용한 개척자가 하버드 대학을 졸업한 루스 번스위크(Ruth Brunswick)이다. 그녀는 대법원 판사인 하버드 법대의 이사(理事)인 아버지를 설득해서 프로이트가 구강암(프로이트는 33번의 구강암 수술을 받았다)으로 입 속에 철판이 맞지 않아서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알고 하버드 대학의 세계적인 보철물 제작 교수가 세계 치과 학회 참가를 위해서 유럽에 온다는 것을 알고 그와 섭외를 해서 그녀의 개인 돈으로 6천 달라(그 당시의 돈으로 엄청난 돈)을 지불하고 20일간 프로이트의 집에 머물면서 보철물을 제작했으나 큰 도움을 받지 못했다고 어네스트 존(Ernest Jones)는 프로이트의 삶과 업적에서 기술하고 있다. 그녀는 프로이트의 늑대인간(Wolfman)의 재발을 치료를 했다. 4살 때 늑대 공포증, 6살 때 신성모독 강박증, 17살에 임질을 가진 23세의 러시아의 귀족 청년으로 주치의 의사를 대동하고 벨벳 모자를 쓰고 프로이트를 방문을 했을 때 그는 스스로 옷을 입지 못하고 삶에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젊은이였다. 프로이트와 치료 4시간 때 항문 성교를 요구하고, 머리에 똥을 싸 달라고 요구한 이 젊은이를 치료한 끝에 프로이트가 성공적인 치료로써 늑대 인간(Wolfman)으로 논문을 발표한 장본인 이었다. 프로이트에게 2번 이나 치료를 받아서 그는 20년 동안 잘 지내다가 프로이트가 구강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 재발해서 번스위크가 치료를 하게 된 것이었다. 늑대인간의 주인공은 러시아 혁명으로 몰락한 러시아의 귀족의 아들로써 번스위크가 재발한 그의 장애를 4년간 2 회에 걸쳐서 치료를 해서 성공적인 치료 결과를 보고를 했다. 그녀는 환자의 사회 경제적 배경과 양육 환경에 초점을 맞춘 치료 기법을 사용을 했다. 정신분석의 치료 기법이 생물학적인 기법에서 점점 사회적 영향력으로 확대되어져 가고 있음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Ernest Jones, 1953, 1955, 1957: 주㈜: 참고).

본격적인 정신분열증(조현병)의 치료는 허만 넘버그(Hern Number)가 균열성, 긴장성 공격이라는 논문을 발표하면서 본격화 되었다고 노트하고 있다. 그는 전통적인 정신분석 기법으로써 카우치와 꿈 분석으로 치료를 할 수 있다고 보고를 했다. 그는 항가리에서 개최된 정신분석 연차 총회에서 스승으로부터 치료 실습을 받아서 자격증을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을 했고 그의 주장이 수용되면서 정신분석가들은 정신분석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스승으로부터 개인적인 분석 치료를 받는 쪽으로 전통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실제로 제 1 세대 정신분석가들은 프로이트로부터 개인 치료를 받은 것이 아니고 프로이트의 분석 치료를 눈여겨 보고 스스로가 치료 기법을 만들어서 사용을 했다. 영국의 신경과 의사로써 프로이트의 전기를 쓴 어네스트 존은 항가리 정신분석 학회 회장은 샌도르 프렌치(Sandor Frenczi)로부터 개인적인 사사를 받았다. 이후에 제 2 세대 정신분석가들은 그들의 스승으로부터 개인 분석을 받기 시작했다. 위니코트(Winnicott)는 내과 의사로써 정신분석가가 된 영국의 세계적인 분석가로써 정신분석을 영어로 번역한 제임스 스트라치(James Strachey)에게 11년 동안 개인분석으로 공부를 했고 그리고 메라니 크레인(Melanie Klein)으로부터 4년간 개인분석을 받았다. 에릭슨(Erikson)은 안나 프로이트로부터 4년간 분석 치료를 받았다. 영국의 여성 정신분석가의 시조가 된 조얀 리비에(Joan Rievere)는 어네스트 존으로부터 개인 분석을 받았다.

1930년대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정신분열증에 대한 연구와 치료에 대한 도전이 시작되었다고 역동적 정신의학의 역사가들은 기술하고 있다. 미국에서 정신분열증(조현병) 환자의 치료 프로그램이 등장하게 된다. 여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사람은 스위스 바젤 의대 출신의 신경과 의사로써 미국에 이민을 간 아돌프 메이어(Adolph Meyer)로써 그는 존 홉킨스 의과대학 정신과 과장으로써 미국에서 정신의학의 개척자가 된 사람이다. 그는 정신분열증(조현병)을 종래의 개념인 뇌의 질병으로 보지 않고 환경적 요인을 강조를 했다. 기질적인 요인과 환경적인 요인의 상호작용으로 보았다. 그는 정신분석가가 된 것은 아니지만 프로이트의 이론을 수용하고 그의 이론을 지지해 주었다(Rosenfeld, 1987: 주㈜: 참고)

드디어 프로이트 이론의 전면 수정의 주장으로 사화와 문화적인 영향력의 강조가 등장하게 된다. 그들이 바로 신프로이트 학파들이다. 컬럼비아 대학의 심리학 교수인 에릭프룸(Eric Fromm), 독일에서 의사로 정신분석가가 후에 미국에 이민을 와서 뉴욕에 정신분석학교를 세우고 프로이트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카렌 호르니(Karen Horney)이다, 그녀는 독일에서 의과대학에 입학한 최초의 여성이 되었다. 그녀는 정신분석학에 흥미를 가지고 칼 아브라함과 한스 사크(Hanns Sacks)에게 개인분석을 받아서 정신분석가가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프로이트의 남성적인 오디프스 콤플렉스를 거부하고 페미니스트 정신분석의 개척자가 되었다. 세 번째가 시카고 의대를 졸업한 해리 스탁 셀리번(Harry Stack Sullivan)이다. 그는 정신분석을 개선해서 대인관계의 정신분석을 창조한 장본인이다. 셀리번은 목자와 에녹 병원에서 치료 국장으로 정신분열증의 치료를 위해서 그의 너와 나의 관계 이론에 입각해서 전체 병원의 스텝들에게 환자와 치료사와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서 치료를 했다 그러나 그의 조기 죽음으로 아쉬움을 남겼다. 그의 제자들인 프리다 프롬 레이크만(Frieda Fromm-Reichmann)과 하놀드 실(Harold Seales) 그리고 오토 윌(Otto Will), 예일 의대 교수인 토마스 맥글라한(Thomas McGlashan) 등이 주축이 되어서 메릴랜드주의 로크빌(Rockville)에 있는 체스트낫트 롯지(Chestnut Lodge) 정신병원에서 본격적인 정신분열증(조현병) 환자들의 정신분석 치료 프로젝트가 실시되었다. 프롬 레이크만은 독일에서 정신과 의사가 된 후에 정신분석가가 된 사람으로 그녀는 체스트낫트 롯지에서 20년간 근무하면서 정신분열증(조현병) 환자들의 성공적인 치료를 저서(집중적인 심리치료)로써 발표를 했다. 그녀의 환자였던 한 사람에 의해서 가명으로 쓴 자서전인 나는 너에게 장미의 정원을 약속하지 않았다라는 작품은 영화로 제작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치료 기법을 정신분석이라는 말 대신에 집중적 심리치료라고 이름을 붙였다. 하놀드 실(Harold Seales: 주㈜: 참고) 13년 동안 체스트낫트 롯지 정신병원에서 환자를 치료를 했다가 이후에 워싱턴 정신분석학교 교수로써 활동을 했다. 그는 한 환자를 26년 동안 개인치료를 해서 기록을 세웠다.

한편 비슷한 시기인 1930년대에 영국에서는 메라니 크레인(Melanie Klein)이 등장하게 된다. 그녀는 비엔나 대학 인문학부를 2년 중퇴 하고 결혼을 했다가 남편의 잦은 해외여행으로 인한 불행으로 이후에 이혼을 하게 된다. 그녀는 어린 시절에 의사 되는 꿈을 가지고 있었지만 가족적인 어려움 때문에 꿈을 이루지 못한 한()을 가지고 있었다. 1901년에 프로이트의 꿈 해석을 읽고 매혹이 되어 정신분석학을 공부하게 되었다. 그녀는 의사가 아니면서 정신분석의 세계적인 대가가 된 사람이다. 그녀는 샌드로 프렌치에게 십여 년간 개인 분석과 공부를 하면서 1917년에 프로이트를 만났다. 프랜치가 프로이트가 강조한 분석가의 중립적 위치에서 벗어나서 능동적 자세를 강조한 점과 부정적 전이를 외면 한 점 등에 실망해서 그를 떠났다. 그녀는 1920년에 칼 아브라함을 만났고 1921년에 독일로 이사를 가서 그에게 4년 동안 개인적인 공부를 하면서 아브라함에게 직접 치료를 받기 시작한지 9개월 만에 아브라함의 사망으로 아쉬움을 남겼다. 그녀는 1924년에 독일 정신분석학회에서 놀이 치료 논문을 발표함으로써 소아 정신분석을 개척자가 되었다. 1925년에 어네스트 존을 만나서 그의 초대로 영국에서 소아 정신분석의 강의를 제의 받았다. 1926년에 영국으로 영구 정착을 했고 영국에 귀화를 했다(Segal, 1989: 주㈜: 참고). 그녀의 소아 정신분석은 프로이트의 막내 딸인 안나 프로이트가 교육학자로 정신분석가가 된 휴그 헬무드(Hug Hellmuth)로부터 전이 형성이 아닌 교육적인 방법으로 소아 정신분석을 연구하고 있었다. 그러나 크레인은 유아들도 전이가 형성된다고 주장을 했다. 그녀는 프로이트의 오디프스 콤플렉스는 유아들 어린이들의 치료에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하고 스스로 편집형-자아분열 유형과 우울한 유형(주㈜: 유형이라는 말은 영어의 position(위치)이라는 말을 유형으로 번역한 것으로 컨버그와 오가덴의 설명에서 현실적 자아(ego)의 힘을 의미한다는 것에 의거한 번역임)을 발표를 해서 정통파 정신분석가들로부터 이단으로 취급을 받았다. 그녀는 유아들의 상상력을 어른의 꿈 분석 대신에 놀이 치료를 통해서 상징적인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을 어린이 정신분열증(조현병) 치료에 적용해서 성공적인 치료 사례들을 보고를 했다.

영국의 정신분석학회는 안나 프로이트를 따르는 비엔나 학파와 메라니 크레인을 따르는 학파로 분리되어 쪼개지게 되었다. 1945년에 실비아 페인(Silvia Payne)이 두 사람의 조정을 통해서 서로 만나서 화해를 했지만 결국은 분열이 되었다. 크레인 학파는 국제 정신분석 학회라는 이름으로 따로 학회를 조직하고 따로 논문집을 발행하게 되었다. 각 학파의 정신분석 학교가 서로 분리되어 1학년과 2학년 때에는 자신의 이론들을 그리고 3학년 때는 다른 학파의 이론을 공부하는 쪽으로 정착 되었다. 두 학파들의 분쟁에서 독립을 선언한 독립학파들이 등장하게 된다. 애착 이론의 존 볼비(John Bowlby)와 위니쿄트(Winnicott)는 독립 학파로 분리되어 어느 쪽에도 소속되지 않았다.

크레인을 추종하는 정신분석가의 한 그룹이 정신분열증(조현병)의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해서 개척자가 된 사람들이 바로 폴란드에서 의대를 졸업하고 영국에서 정식으로 의사가 되어 정신분석학을 공부한 한나 세갈(Hanna Segal), 독일에서 의사가 되었지만 나치의 아리안 계통이 아니면 전문인이 될 수 없는 법령에 영국으로 와서 정신분석가가 된 허버트 로젠필드(Herbert Rosenfeld) 그리고 제 1 차 세계 대전 때 탱크부대 소대장이었다가 전쟁 후에 옥스포트 의대에서 외과 의사가 된 윌프레드 비용(Wilfred Bion)이 정신분석을 공부하면서 크레인의 제자 된 사람으로 위의 세 사람에 의해서 정신분열증(조현병)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에 박차가 가해지게 되었다.

세갈(Segal)은 크레인의 전기를 쓴 사람이다. 그녀는 정신분열증 환자들의 언어 특징을 연구한 결과 상상력의 개발이 부족한 점을 밝혀냈다. 즉 콘크리트 한 언어들을 주로 사용한다는 것을 보고를 했다. 로젠필드는 영국의 정신분석학교인 타비스톡 크리닉(Tavistock Clinic)에 입학을 기다리는 6개월 동안에 무드셀라 병원에서 근무를 하면서 600명의 환자들을 돌보아주는 의사가 자신을 포함해서 3명인 것에 대경실색을 했다. 그는 정신분석학을 공부하기 이전에 정신과 의사로써 무드셀라 병원에 입원을 한 충동적인 심각한 골치덩어리 환자에게 일기를 쓰게 하고 따뜻하게 대해주었을 때 이후에 그 병원에 돌아왔을 때 그가 증세가 완화 되어 퇴원을 한 사실을 발견하고 본격적인 정신분열증(조현병) 연구에서 정신분석적인 치료에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6년 동안 정신분석을 공부하고 크레인의 제자로 정신분열증 연구 팀에 합류를 하게 되었다.

정신분열증(조현병)에 대한 이들의 개척자적인 연구들이 발표되면서 점점 정신분석적인 치료로 치료가 가능하다는 확신이 확대되어져 가게 되었다.

1950년 대에 또 한 사람의 연구가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가 바로 펜실바니아 의대의 정신과 교수이자 정신분석 학자인 실비노 아르에티(Silvano Arieti 1974, 1978, 1994: 주㈜: 참고)이다. 그가 1955년에 쓴 정신분열증의 해석이라는 책은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는 그 책으로 1976년에 과학자의 최고 우수 저술상을 받았다. 그는 환청과 환각의 분석 과정을 소개를 했다. 그리고 정신분열증(조현병) 환자의 치료 기법을 소개를 하면서 그 이전까지의 조현병의 병원 입원 치료에서 사무실 치료, 즉 통원 치료의 모델을 창안을 했다. 그의 제자들인 컬럼비아 의과대학의 마이켈 스톤(Michael Stone), 하리 엘버트(Harry Albert) 그리고 데이비드 포레스트(David Forrest)가 주축이 되어서 공동 작품으로 편찬한 정신분열증의 치료: 분석적 접근(1983: 주㈜: 참고)이 등장을 해서 정신분열증(조현병)의 본격적인 사무실 치료가 확대되어져 갔다.

1980년대로 들어가면서 정신분열증(조현병) 치료에서 약물을 배제한 순순한 정신분석적인 치료가 유행을 하게 되었다. UCLA 의과 대학의 정신과 교수이나 정신분석가인 제임스 크로스테인(James Grotstein, 1997: 주㈜: 참고) 1980년대의 정신분석가들의 정신분열증(조현병)의 연구를 크게 두 가지로 구분을 했다. 첫 번째 그룹은 정신분열증의 연구에 프로이트의 정통적인 고전적 정신분석 치료 이론을 적용해서 조현병을 치료를 하고 있는 분석가들로써 이들을 갈등 이론으로 그리고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이론을 수정하고 보완을 해서 응용 정신분석 치료를 하고 있는 분가가 그룹을 결함 이론의 지지자로 구분을 했다.

갈등 이론을 지지하는 분석가들은 보이어(Boyer), 아알로우(Arlow), 브레너(Brenner), 파오(Pao), 규비에(Kubie) 그리고 실(Hearles) 등이 있다. 샌프란시스코 의과대학 정신과 교수이자 정신분석가인 브라이스 보이어(Brice Boyer, 1982: 주㈜: 참고)는 그의 어머니가 심한 정신분열증 환자로써 어머니의 증세들을 관찰하고 성장한 그의 경험을 바탕으로 정신과 의사가 되었고 이후에 정신분석가가 되었다 그는 그의 경험을 살려서 고전적 정신분석 치료로써 정신분열증(조현병) 치료가 가능하다고 주장하면서 그의 치료 이론을 책으로 출판을 했다.

결함 이론을 지지하는 분석가들로써 프로이트의 이론을 수정하고 보완을 해서 응용 정신분석 치료를 하는 학자들은 그들의 치료 기법을 집중적 심리치료 혹은 정신분석적 심리치료 혹은 역동적 심리치료 등으로 이름을 붙여서 사용한다. 대표적인 분석가들은 아르에티(Arieti), 컨버그(Kernberg), 오가덴(Ogden), 코호트(Kohut), 비용(Bion), 위니코트(Winnicott), 발칸(Volkan) 등이 있다.

오토 컨버그(Otto Kernberg)는 비엔나 태생으로 나치의 박해를 피해서 남미의 칠레에 이민을 가서 칠레 의대 정신과와 칠레 정신분석학교에서 정신분석가가 된 후에 미국에 귀화한 분석가로 그가 초반기 캔사스 주의 토페카에 메닝거 크리닉에서 치료 국장으로 있을 때 그가 정통파 정신분석 치료 기법을 사용 하는 분석가들 그리고 정신분석을 약간 응용한 감정지원적 정신분석 치료를 하는 분석가들 그리고 심한 응용을 한 표현적 정신분석 기법을 사용하는 분석가들의 세 그룹으로 나누어서 정신분열증(조현병) 환자들을 5년에서 6년간 분석 치료를 한 결과를 연구 논문으로 발표를 했다. 가장 많이 치료의 변화를 보여준 그룹은 표현적 정신분석 그룹이고 그리고 그 다음에 감정 지원적 정신분석 치료 그룹이고 그리고 정통파 정신분석 기법을 사용한 분석가의 그룹은 오히려 거꾸로 증세가 악화 되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를 해서 정통파 정신분석가들에게 충격을 던져주었다.

그러나 고전적 치료 기법을 사용하는 분석가들은 결함 이론의 지지자 들이 주장하는 어린 시절에 자아 결함으로부터 정신분열증이 시작되었다고 한다면 왜 정신분열증(조현병) 환자들이 사춘기까지는 정상적인 발달을 보이다가 사춘기 시절에 정신분열증 환자로 발병하는가? 에 대한 의문에 대한 대답이 없다는 것을 지적을 하고 있다. 조현병의 등장이 사춘기의 시작인 13세부터 28세 사이로 주로 20대 초반에 등장한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최근에 30대 혹은 40대 초반까지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자아 결함이라면 어린 시절부터 등장해야 한다는 이론에 대한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물론 결함 이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유아기 시절부터 조금씩 시작해서 눈에 보이지 않지만 결함은 이미 가지고 있다가 가장 복잡한 사춘기의 질풍 노도의 시기에 폭발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 만으로 충분한 설명이 되지 못한다는 것에 문제가 있었다.

여기에 대해서 비용(Bion)이 파괴적 공격이론을 내 놓았다. 정신분열증(조현병)의 특징이 사고 장애로써 언어가 파괴된다는 것을 연구 하면서 비용은 알파 요소와 베타 요소로써 설명을 하고 있다. 즉 인간의 출생 직후에 신생아들은 자아가 없다, 감각 운동으로 경험을 한다, 감각 운동은 심리적인 기능이 없다, 그냥 사물로써 물건으로써 느끼게 된다. 감각 운동이 발달하면서 그 다음 단계인 지각의 단계로 들어가면서 5 감각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좋고 나쁨, 즐거움과 불쾌감을 느끼게 되고 이것이 뇌에 기억으로 남게 된다. 그 다음 단계로 느낌의 단계인 감정을 느끼는 단계로 발전하게 된다, 5욕과 7정으로 7개의 감정인 희, , , , , , 욕의 동양의 7 정을 느낄 수 있고 감정을 나눌 수 있게 된다. 그 다음 단계에서 어린이들은 상상의 단계로 발전한다. 감정들을 서로 연결하고 생각들을 서로 연결해서 각종 상상들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 다음 단계에서 생각을 생각할 수 있는 단계 즉 추상화 단계로 발전하게 된다. 고차원적인 의식의 사고와 감정들로써 세상의 어려움들을 해결해 나가는 원동력을 개발하게 된다. 다양한 아이디어들을 통합해서 문제를 해결하고 선택과 판단과 결정을 하는 ego의 능력이 확대되고 고차원적이 되면서 세상의 어려움들을 뚫고 해결해 나가게 된다. 정신분열증(조현병) 환자들은 삶에서 가장 복잡한 시기인 사춘기에 생리적 변화들(섹스와 신체적 변화), 심리적 변화들(부모의 간섭으로부터 독립과 자아 주체성의 확립의 과정), 사회적 변화들(이성을 찾고 미래를 계획하고 전공을 찾는다)에 직면해서 자아가 혼란으로 소용돌이에 휘말려서 자아의 해체에 직면하게 되자 자아 보호를 위해서 위에서 기술한 알파의 과정을 파괴시켜서 기억과 연상의 연결을 끊어버리고 무감각의 상태로 되돌아가버린 베타 요인을 사용하고 있는 사람들로써 심리적으로 의미가 없는 무감각의 기능들로 퇴행한 것으로 설명을 하고 있다.

이러한 이론은 조현병 환자의 치료에서 응용되어지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의과대학에서 은퇴하고 샌프란시스코에서 만성정신분열증 환자의 치료 연구소를 운명하고 있는 토마스 오가덴(Thomas Ogden, 1982, 1986, 1989, 1994, 1997, 2001, 2005: 주㈜: 참고)은 크레인의 치료 이론들과 비용(Bion)의 치료 이론들과 그리고 수 많은 정신분석가들의 이론들을 수용하고 응용을 해서 약물 치료가 아닌 순수한 정신분석 심리치료의 기법으로 만성 정신분열증 환자들의 성공적인 치료 결과를 발표를 하고 있다.

그는 만성 정신분열증 환자(조현병)들을 4개의 단계로 치료 과정을 소개하고 있다. 첫 번째 단계는 무감각과 무경험의 단계로써 감정이 없는 물건과 같은 무감각한 상황으로 설명하고 있다. 느낌도 없고, 지각도 없고, 상상도 없고, 상징화(추상화)가 없는 환자들이다. 그들은 외부의 자극에 참을 수 없기 때문에, 투사로서 파괴시켜버린 사람들이 바로 만성정신분열증 환자이다. 그들은 마음 속에 심리적인 기능이 없다, 자극에 반응이 없다, 심리적인 기능을 파괴시킨 사람들로써 비용(Bion)의 베타 요소에 해당되는 사람들로 기술하고 있다. 망상상태, 벙어리 수준으로 저항도 반항도 없는 감정이 없는 로봇 상태의 만성 정신분열증 환자들로부터 치료는 환자로부터 주의 관심을 끌어내는 것이다. 몇 개월에서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다고 노트하고 있다. 생각하고 경험할 수 있는 능력의 상황을 창조하는 것이다. 안전, 안정을 유지하면서 생각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느끼도록 요구하고 경험을 구분하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환자가 없애버린 갈등을 등장시키는 것이다.

두 번째 단계는 컨테이너(container) 단계로 투사동일시(쌍방관계의 이심전심의 단계)이다. 컨테이너 이론은 비용(Bion)의 이론이다. 조류들은 어미가 새끼에게 먹이를 줄 때 반드시 찢어서 먹을 수 있도록 준다는 것에 비유되고 있다. 환자는 소화할 수 없는 기능을 투사해서 치료사에게 추방하고 있는 것이다. 사고의 과정과 상상화 능력을 파괴한 것이다. 이것을 수용해서 치료사가 그 환자가 수용하고 감당할 수 있는 형태로 되돌려주는 것이다. 치료는 이 시점에서 환자는 치료사의 행동, , 표정, 목소리를 복사하고 흉내를 낸다. 치료에서 특징은 치료사는 질식을, 목 졸림을, 폭력적이고, 파괴적인 느낌을 느끼게 된다. 환자의 투사동일시가 느껴지는 것이다. 치료사는 이것을 수용하고 소화를 해서 환자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 되돌려 주는 것이다. 1 단계의 의미와 경험을 인식하지 못하는 단계와 제 2 단계는 생각, 느낌에 참을 수 없다는 반응을 지각의 경험으로 바꾸는 것이 서로의 다른 점들이다.

세 번째 단계는 정신증의 단계이다. 심리적 혼란 상태, ego의 영역의 희미함, 혼란된 ego 기능의 상황이다. 차단된 고통스러움을 느끼게 한다. 다른 사람이 자신을 비웃는다, 자신을 죽이려고 공모를 한다(FBI, CIA 비밀 요원들이 미행하고 도청 장치를 설치), 환자는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적대적인 표현들이 많이 등장을 한다. 이러한 정신증의 등장은 치료에서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도록 즉 생각하도록 감정을 말로써 표현하도록 그리고 상징어를 사용하도록 치료사가 도와주는 것이다. 오가덴은 위니코트(Winnicott)의 안아 주기 환경(holding environment)을 수용해서 엄마와 아기의 하나된 관계로써 이심전심을 통해서 갈등을 표현하게 한다. 이 시점에서 신경정신과 의사들, 가족 구성원들은 갈등의 등장과 폭력적인 언행을 두려워해서 약물을 강압하게 된다는 것을 경고하고 있다. 치료의 이 단계에서는 환자는 치료사를 인간으로, 자신을 이해해 주는 사람으로, 놀란 경험을 도와주는 사람으로 보게 된다. 경험의 과정이 넓어지고, 자살 사고가 높아진다. 다른 사람들을 폭력적으로 공격한다.

네 번째 단계는 상징적 사고의 단계이다. 이 시점에 도달하는 데는 적어도 2-3년의 과정이 소요된다. 환청의 감소, 편집증, 과대망상의 감소, 혼란한 상황이 감소된다. 외부 세계를 알려고 한다, 집착 혹은 불안이 증가한다. 몇 개월 동안 침묵으로 갈 수도 있다. 생각과 사고를 할 수 있고 그리고 관찰을 할 수 있고 생각을 쫓아 내거나 불구로 만들지 않고 수용을 해서 구두어로 바꾼다. 이후의 과정은 정신증과 성격장애의 치료 과정과 유사한 치료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는 것은 따로 더 붙이지 않는다.

지금까지 조현병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조현병은 뇌의 질병으로 약물로써 치료를 해 왔던 인식을 깨고 조현병에 도전해서 정신분석으로 치료가 가능하다는 것과 선진국에서는 약물이 아닌 순수한 정신분석으로도 수 많은 조현병 환자들의 좋은 치료 결과들이 보고 되고 있는 것을 간단하게 소개를 했다.

치료자의 치료 사례를 소개하기 이전에 만성 정신분열증(조현병)을 극복하고 성공한 세계적인 유명 인사들의 실화가 영화로 제작되어 소개가 된 3편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만성 정신분열증으로 15년간 정신병원에 입원했던 호주의 천재 피아니스로써 데이비드 헬프캇(David Helpgod)의 실화가 영화로 만들어져 소개가 된 샤인(Shine)(1996 개봉된 영화)과 프린스턴 대학의 수학과에 무시험 입학한 수학의 천재가 만성 정신분열증(조현병)으로 고통을 받다가 이것을 극복하고 프린스턴 대학의 교수로 복직해서 노벨 경제학상을 받는 존 내쉬(John Nash)의 실화가 영화로 만들어진 아름다운 마음(beautiful mind)(2001 개봉) 그리고 합성 수지의 발명으로 세계적인 갑부가 된 베이클랜드 가문의 친 손자가 양육의 과정에서 정신분열증(조현병) 환자가 되어 결국은 어머니를 살해하고 외할머니를 칼로 상해를 입히고 마지막으로 입원한 정신병원에서 자살한 안토니 베이클랜드(Antoni)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세비지 그레이스(Savage Grace)(2007 개봉)가 바로 그 영화의 주인공들이 만성 정신분열증(조현병)의 환자들이었다.

첫 번째 소개 영화인 호수의 천재 피아니스트의 이야기는 아버지 피터가 유태인으로 나치의 폴란드 아슈비치 수용소에서 석방되어 호주로 이민을 온 것에서 시작된다. 아버지는 음악을 전공하고 싶었으나 랍비(주㈜: 랍비는 유태교의 지도자와 율법인의 합성어: 2019, 3, 25, 다음 위키피아 참고)인 아버지의 아버지 즉 할아버지가 랍비를 해야 밥 먹고 산다, 음악을 하면 밥 굶어 죽는다고 반대를 해서 꿈을 이루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는 아버지 몰래 바이올린을 사서 연주를 하다가 발각되어 바이올린을 박살 당하는 상처를 가지고 있었다. 자신의 꿈을 아들인 데이비드에게 전가를 해서 아들이 세계에서 최고의 피아니스트가 되기를 강압한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자신이 음악을 하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가?를 각인을 시켜서 시도 때로 없이 아들에게 내가 바이올린을 샀는데 할아버지가 어떻게 했는지 아는가?”라고 질문을 하면 4살 혹은 5살 된 데이비드는 할아버지가 박살 냈어요? 나는 행복한 아이입니다.”라고 반복하게 세뇌를 시켰다. 어린 시절에 데이비드는 천재적인 음악의 소질을 타고 난 사람으로 가는 곳마다 일등을 휩쓸었다. 아버지는 아마추어 음악가로써 그를 더 이상 가르쳐줄 능력이 없음을 깨닫고 인근에 살고 있는 피아노 선생님 로젠에게 피아노 레슨을 받게 하면서 레슨 비용이 없어서 무료로 지도해 달라고 생떼를 썼다. 로젠 선생님은 그의 재능을 인정을 해서 무료로 피아노를 가르쳐주었다. 로젠 선생님은 데이비드에게 외국 유학을 권유를 했고 드디어 미국의 저명한 대학 교수가 데이비드를 초청을 했다. 아버지에게 미국 유학을 가서 세계의 최고의 피아니스트가 되겠다고 말을 했을 때 아버지는 극구 반대를 했다. 아들이 아버지를 떠나가면 더 이상 부자(父子) 관계의 인연을 끊어버리겠다고 위협하고 초청장을 불에 넣어버렸다. 첫 번째 유학을 좌절 당한 데이비드가 화가 나서 욕조(집 안에서 물을 데워서 목욕)에 오줌을 싼 것을 아버지가 알고(가난해서 가족구성원들이 번갈아 가면서 목욕) 폭력으로 두들겨 패면서 이 세상에서 너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이 아버지 밖에 없다라고 말을 하면서 아버지를 원망하지 말라라고 한다. 아버지가 다 너를 위해서 이렇게 한다고 각인을 시킨다.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서 아들 만을 보고 아들의 성공을 위해서만 살았다, 아버지는 이 세상에서 아들을 가장 사랑한 사람임에 틀림이 없었다. 그러나 그러한 집착적인 사랑은 아들의 자아를 죽인다는 것을 아버지는 몰랐다. 데이비드는 다행히도 로젠 선생님이 데이비드가 돈이 없다는 것을 알고 모금 연주회를 열어서 십시일반으로 유학 비용을 마련하려고 했을 때 그 연주회에 와서 데이비드의 천재성을 인정한 러시아 출신의 작가로 호주에 이민을 온 케스린 여사를 알게 되고 그녀가 그녀의 집에 있는 헌 피아노를 치도록 허용되어지면서 그녀에게 감정적인 지원을 받게 된다.

데이비드는 사춘기로 접어들어가면서 점점 외톨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오로지 피아노에만 열중하게 되면서 대인관계가 서서히 문제가 생기고 어눌하게 행동을 하지만 눈에 띄게 심각하지는 않았다. 드디어 두 번째 장학금을 제의한 영국의 왕립 음대의 초청장이 왔을 때 케스린 여사의 지지를 얻어서 아버지에게 그 초청장을 보여주지 않고 단호하게 영국 유학을 가겠다고 선포를 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구타와 폭력과 회유로 아버지를 떠나면 부자 관계를 끊겠다고 협박을 한다. 치료자는 아버지의 분석에서 아버지가 유태인 수용소에서 살아 났지만 심각한 불안증 환자로써 아들이 눈에 보이지 않으면 안심을 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세계에서 최고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자신의 곁을 떠나지 말라는 모순된 행동을 보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영국 왕립 음대에 진학을 했다.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로부터 각인 된 생각과 느낌은 아버지로부터 수천 마일의 거리에서 따로 분리되어 살고 있다고 해도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데이비드는 전공 선택 때 러시아의 피아니스트인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을 고집을 했다. 어린 시절에 아버지가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피아노 곡인 라흐마니노프의 3번을 쳐야 세계에서 1 등이 된다고 강압을 한 것에서 그 곡을 전공하겠다고 했을 때 지도 교수는 강하게 만류를 했다. 음악은 머리고 하는 것이 아니고 가슴으로 하는 것이니 그 곡을 연주하면 너는 돌 아이가 된다고 말을 했을 때 데이비드는 나는 이미 돌 아이가 되었으니 죽어도 그것을 치겠다고 해서 허락을 받게 된다. 사실은 지도 교수도 대학생이었을 때 그가 그 곡을 연주하겠다고 했지만 포기를 했던 과거의 기억을 떠 올리면서 허락에 주었다. 지도 교수는 음악은 머리로 연주하지 말고 가슴으로 연주를 하라, 고로 악보를 보지 말고 머리 속에서 새겨서 느낌으로 감정으로 칠 것과 피아노를 강하게 쳐서 피아노 줄이 끊어질 정도로 쳐야 한다고 이야기를 해 준 것을 데이비드는 아버지의 가르침처럼 똑 같이 지도 교수의 말을 머리 속에 각인시켜서 악보가 눈에 보이지 않는 신경증을 보인다. 피아노를 힘차게 치다가 실제로 피아노 줄이 끊어지게 되자 지도 교수가 적당하게 하라고 말리는 장면이 나온다. 오로지 음악 연주 때문에 동료들과 대인관계를 피했다. 그는 대학 졸업 때 전교 수석으로 졸업식에서 내외귀빈 들에게 라흐마니노프를 졸업생 대표로써 연주를 하게 되었다. 마침내 그는 그 연주를 성공리에 끝내고 그 자리에서 졸도해서 응급실로 실려가서 정신 이상으로 정신병원에 입원을 하게 된다.

정신병원의 정신과의사가 피아노를 치면 병이 재발할 것이라고 경고를 했기 때문에 그는 피아노를 단념을 했다. 약물 치료를 받았지만 그는 정상적인 상황으로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판정을 받고 15년 동안 혼자서 중얼거리면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그는 유학 중에 아버지에게 편지를 보냈으나 아버지는 자식과 인연을 끊었다고 모든 편지들을 수취인 거부로 되돌려 보았다. 아들이 정신병원에 입원 후에도 아버지는 보호자임을 거부하고 면회를 오지 않았다. 데이비드는 15년 동안 정신병원에서 이상한 사람으로 인간관계를 피하고 줄 담배만 피우면서 혼자서 중얼거리는 사람이 되었다. 약물은 도움이 전혀 되지 않았다. 치료자가 볼 때 데이비드는 만성정신분열증(조현병)과 조울증을 함께 가진 감정적분열 장애(조현병 + 조울증) 환자로 보였다.

그는 이제 중년 늙은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정신병원에 교회의 합창단이 위문 공연을 오게 되었다. 합창단이 합창을 할 때 피아노를 반주하는 연주가 옆에 서서 데이비드가 그 피아노 연주자의 악보를 정확하게 빈틈 없이 넘겨주는 것에 신기해서 그 피아노 연주자가 피아노를 연주한 경험이 있는지? 물어 보았을 때 그는 약간 있습니다 라고 대답을 했다. 당신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라고 물었을 때 그는 내 이름은 데이비드 핼프캇 입니다 라고 대답을 했을 떼 그 피아노 연주가가 깜짝 놀랬다. 당신이 바로 영국의 왕립 음대 졸업 식 때 1 등으로 졸업 연주를 한 사람이 아닌가? 라고 그녀가 물었을 때 그렇다고 대답을 했다, 그녀는 그의 졸업식 연주회에 참가를 하고 그의 피아노 연주에 감탄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병원의 주치의에게 왜 데이비드가 15년 동안 아직도 입원을 하고 있는가? 라고 물어 보았을 때 그 주치의는 그는 보호자가 없기 때문에 아무도 그를 받아줄 사람이 없어서 퇴원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에 그녀가 보호자로써 데이비드를 퇴원시킬 수 있는가? 를 물어 보았고 주치의의 허락으로 퇴원해서 그녀의 집에서 같이 생활 하면서 데이비드는 그녀가 교회의 예배 때 피아노 연주를 하는 것을 지켜 보면서 그녀의 옆에서 악보를 넘겨주는 일을 도와주는 일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데이비드는 노출증이라는 변태성욕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가 교회 예배 때 피아노 연주를 할 때 옆에서 악보를 넘겨주면서 그녀의 유방을 만지는 버릇으로 목사님의 눈총을 받았다. 그는 한번씩 바바리 코트를 걸치고 성인 여성들에게 자신의 페니스를 보여주는 노출증을 가지고 있었다(샤인 영화 포스터가 바로 노출증을 보여주면서 환호하는 장면). 여기에다 그녀와 함께 생활 하면서 그는 그녀가 외출하고 나면 완전이 3살 먹은 어린이가 되었다. 수도 물을 털어 놓고 꼭지를 잠그지 않고 물바다가 되거나 책들을 보고 그대로 내팽개쳐 놓아서 그녀가 감당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친구들에게 데이비드는 피아노는 세계에서 최고지만 행동과 생활은 3살 먹은 어린이와 같다고 불평을 하는 것에서 치료자는 프로이트의 경구가 생각이 났다. 어린 시절에 상처를 받아서 통과하지 못한 자아의 욕구들은 어른 시절에서 재등장 한다는 것이 바로 데이비드는 어린 시절에 피아노에만 집중을 했지만 친구 관계도 취미생활도 다른 욕구들(섹스 욕구)도 차단된 것이 어른이 되어서 자아의 연약함 때문에 무의식을 뚫고 나와 의식으로 표현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데이비드를 컨트롤할 수가 없게 되자 이웃 사람에게 이야기를 해서 그의 집에 있는 헌 피아노를 치도록 허락을 받았다. 그녀는 그것을 그에게 귀띔으로 그의 집에 갈 것을 제의를 했을 때 데이비드가 파아노 라는 말에 신들린 사람처럼 반가워하면서 가겠다고 했다. 그는 그 피아노 앞에 앉아서 밤새도록 미친 듯이 피아노를 쳤다. 피아노의 주인은 감당할 수 없는 그의 피아노에 대한 열정 즉 밤과 낮이 없이 피아노를 치는 것에 화가 나서 데이비드가 외출한 틈을 타서 피아노 건반의 문을 잠가버렸다. 그가 돌아와서 피아노 건반의 문이 잠긴 것을 알고 그것을 열어 보려고 온갖 방법을 써 보았으나 실패하자 그는 실망으로 폭우가 쏟아지는 늦은 밤에 울면서 비를 맞으면서 길거리를 뛰어가는 장면이 이 영화의 첫 장면으로 소개되고 있다. 그 때 우연히도 모퉁이에 있는 한 카페의 열린 창문으로 피아노를 보게 되었다. 그는 그 카페에 비를 흠뻑 맞은 옷차림으로 무턱대고 들어가서 피아노 앞에 앉았다. 매니저가 카페의 문을 닫고 영업을 끝내려고 하는 순간에 데이비드가 들어온 것이었다. 그는 노발대발해서 왠 거지 차림의 미친 놈이 피아노를 만지려고 하는가? 라고 고함을 치면서 쫓아내라고 했을 때 옆에 있던 아가씨가 그렇게 소원이라면 한번 만져 보게 하는 것도 좋을 것이라고 해서 허락을 하기로 했다. 그는 피아노 앞에서 그의 손가락이 번개처럼 움직이면서 연주를 했다. 꿀벌의 여행이라는 피아노 곡이었다는 것이 나중에 밝혀진다. 그의 연주에 넋이 나간 체 연주를 지켜보고 있던 매니저와 경리 아가씨는 감탄을 하고 이름이 무엇인지?를 물어 보았을 때 그가 데이비드 핼프갓이라는 말을 듣고 20년 전에 피아노 신동인 천재 음악가로 신문과 언론에 보고 된 사람이 아닌가? 라고 물어 보았고 그가 바로 그 주인공임을 알게 되었다.

그 다음 날부터 그는 신사복을 차려 입고 그 카페에서 피아노 연주자로 일을 하게 되었다. 그의 소문이 신문에 보도 되면서 어린 피아노 신동이 돌아오다 라는 제목으로 샤인(Shine)이라는 이름으로 보도 되면서 사람들이 그의 연주를 듣기 위해서 몰려들게 되었다. 그의 과거를 알고 그를 도와주는 사람들의 도움으로 그는 점차로 회복되어져 갔다. 칭찬과 인정과 격려적인 주변 환경의 도움을 그는 점차로 만성정신분열증(조현병)과 조울증의 합병으로부터 벗어나서 회복되어져 갔다.

이 영화가 보여준 것처럼 데이비드의 삶의 실화는 영화로 만들어져서 전 세계로 소개가 되었고 데이비드는 처음으로 개인 음악회를 열게 되었다. 그는 우리 나라에도 3(그 중에 하나가 2004, 10, 20)이나 와서 그의 라흐마니노프 3 악장을 TV 방송국의 음악 오디세이 라는 프로그램에서 소개를 한 바가 있다.

여기에서 조현병지속적인 치료가족구성원들의 감정적 지원과 그리고 그가 미래의 희망실현할 수 있도록 도움을 받게 될 때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두 번째 이야기는 수학의 천재인 존 내쉬(John Nash)의 이야기이다. 그는 프린스톤 대학 수학과에 무시험으로 들어온 수학의 천재로써 동료들의 부러움을 대상이었다. 그러나 그는 대인관계가 되지 않았다, 그의 어린 시절은 영화에서 다루지 않았기 때문에 어떻게 그가 정신분열증(조현병)을 앓게 되었지? 는 알 수가 없다. 그의 대학 입학에서 영화가 시작된다. 내쉬(러셀크로우는 내쉬 역할에서 2002년 아카데미 남우 주연상을 받게 된다)는 동료들이 그의 천재를 시샘해서 그를 꼬드겨서 매력적인 한 여학생에게 다가가서 데이트를 신청해 보라고 하는 것에 유도 되어 그 여학생에게 다가가서 나와 데이트를 하자 라고 말을 했다가 뺨을 얻어맞게 된다. 그는 동료들과 완전히 분리된 혼자 만의 세계에서 환각적인 인물인 세 사람과 관계를 하게 된다. 그는 그 3 사람이 환각적인 인물인줄 모르고 그들이 실제 사람으로 서로 대화를 나누고 같이 행동을 하게 된다. 한 사람은 외향적이고 자기 주장이 강해서 자신의 마음대로 행동을 하는 허만이라는 동갑내기(그의 이상화 된 투사된 젊은이), 그리고 파셔라는 소련 비밀정보원 그리고 한 소녀이다. 그는 허만과 같이 술을 마시고 농담을 하고 같은 방에서 생활을 한다. 그와 속내를 털어 놓고 이야기를 하게 된다. 그는 그의 천재를 인정한 소련 정보기관에서 그에게 비밀 접촉으로 숫자 암호를 전달해서 그것을 일정한 장소에 있는 특정 우체통에 넣으라고 이야기를 듣게 되고 비밀 요원으로 활동을 하게 된다. 세 사람의 환각적 인물과 그리고 환청으로 소리를 듣고 생활을 하면서 그 자신은 그것이 환각과 환청인줄을 모른다. 그가 동료들과 학교 생활에서 고립되어 혼자서 생활을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영화의 후반기에 하나씩 밝혀지게 된다. 나중에 제자와 결혼을 해서 그의 부인이 그가 주장하는 허만과 소련의 비밀 첩보원 그리고 한번씩 등장하는 그 소녀는 환각이고 환청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녀가 학교 당국에 문의한 결과 허만이라는 학생은 존재하지 않았고 그리고 소련 첩보원 파셔와 환각과 환청으로 관계를 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내쉬가 비밀 정보를 주고 받았던 그 비밀 우체통은 그가 넣어놓은 숫자들이 적힌 서류들이 그대로 고스란히 그대로 있었기 때문이었다. 부인의 도움으로 허만과 파셔 그리고 소녀가 환각임을 깨닫고 그들의 말을 듣지 않고 그들과 접촉을 끊어버림으로써 그는 내면의 분열된 자아와 관계하지 않고 건강한 자아의 말을 듣게 됨으로써 그는 자아의 통합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마침내 프린스톤 대학에서 쫓겨났던 교수 직책에 복귀하게 되었다. 그는 그의 이론을 정교화해서 게임 이론의 창시자로 1994년에 노벨 경제학상을 받게 된다.

여기에서 환청과 환각의 분석이 왜 필수적인가?를 이 영화가 보여주고 있다. 환자들에게 환청과 환각이 어디에서 오는가? 를 알게 만들어주고 깨닫게 하면 두려움이 없어지게 된다. 환각과 환청은 그의 심리적인 과거의 상처에서 비롯 된다는 것이다. 내쉬는 대인관계가 전혀 되지 않는 고립상태의 자신의 자아 해체를 막기 위해서 살아남기 위해서 허만이라는 환각 인물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리고 그의 천재를 인정받고 싶어하는 내면의 자아가 소련비밀 첩보원을 만들어 내서 천재의 인정을 받게 된 것이 바로 자아의 해체를 막기 위해서 만들어낸 환각이라는 것이 증명을 해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러한 어린 시절의 상처를 부인을 통해서 알게 되면서 그는 그의 환청과 환각의 인물들과 관계를 거부하고 그들의 말을 듣고 따라가지 않고 그들을 자신의 환각과 환청의 인물로 수용하고 인정하고(과거에는 인정을 하지 않았다, 부인을 통해서 알게 되고 스스로 그것을 수용하고) 통합을 하게 되면서 환청과 환각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조현병 환자에게 가장 치명적인 두려움이 환각과 환청이다. 이것 때문에 그의 내면의 마음속에 귀신 혹은 악마가 살고 있다는 생각에서 공포에 떨게 된다. 그것은 악마, 귀신이 아니고 어린 시절에 상처받은 자아가 자아 해체를 막기 위해서 만든 자신의 창조물임을 알게 될 때 빠져나올 수 있는 탈출구가 된다.

세 반째 이야기는 미국의 합성 수지의 발명으로 백만 장자가 된 베이크렌드의 가문의 실화이다. 이 영화는 돈으로 삶을 살 수 없고 그리고 돈으로 사랑을 살 수 없고 그리고 돈으로 양육을 살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주인공은 할아버지의 성공으로 아버지는 일을 하지 않고 돈으로 삶을 산 사람으로 무의도식하면서 사교계를 넘나들고 향락과 마약에 빠져버린 아버지와 어린 시절에 돈에 한이 맺혀서 여자는 돈 많은 남편만 만나면 팔자를 고칠 수 있다는 생각을 딸에게 주입을 해서 영화 배우로 진출해서 돈이 많은 부자 신랑을 만나서 호의호식 하게 된 어머니 한데서 태어난 백만장자의 손자인 토니의 이야기이다.

남편인 브룩스는 아내인 바바라가 혼인 신고서 2 달러와 결혼식 밴드 비용 10 달러를 가지고 그와 결혼한 사람이라고 공공연하게 아들에게 말을 한다. 바바라는 값비싼 옷들과 고급 장신구들로 치장을 해서 사교계에 나가지만 그녀의 천박한 말솜씨와 교양미 없는 태도 때문에 무시당하고 조롱당 당하고 멸시 천대로 상처를 받게 된다. 남편에 대한 집착이 오히려 남편을 질식시키게 만들어서 남편을 도망하게 만들어버린다는 것을 모른다. 남편이 아들인 토니의 여자 친구와 바람이 나서 도망을 가버리자 아들은 분개하고 그리고 어머니는 떠나버린 남편의 사랑의 공백을 아들에게 집착해서 아들에게 호소하고 매달리는 바람에 아들 토니는 사춘기에 어머니에게 발목이 잡혀서 꼼짝 하게 된다. 가정 밖의 넓은 세상으로 나갈 수가 없다. 다시 말해서 사춘기는 가족의 울타리에서 벗어나서 사회생활로 나가는 첫 걸음이 아닌가?  고로 그는 건강한 이성관계를 개발하지 못하고 동성애를 가지게 된다. 남성다움에 끌려서 동성애를 하는 아들의 선배를 어머니가 유혹에서 섹스 관계가 되면서 아들과 동성애 파트너와 어머니가 세 사람이 함께 섹스를 하는 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결국 어머니는 아들과 섹스 관계를 하는 근친상간을 범하게 된다. 프로이트는 사춘기에 근친상간의 장애물을 극복하지 못한 사람이 그 결말이 어떻게 되는가?를 보여주는 오디프스의 이야기를 통해서 오디프스의 신화로써 경고를 했다. 오디프스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 것을 알게 되면서 스스로 눈을 빼고 황야에서 방황 하면서 죽어갔다는 이야기를 통해서 근친상간의 결말을 이야기하고 있다.

토니는 어머니의 사랑에 질려서 어머니로부터 떨어져 나오려고 했지만 어머니가 놓아주지 않았다, 그는 유일하게 그가 애착을 보인 지오토라는 개를 어머니가 질투심으로 없애버린 것에 분노하게 되고 그리고 지오토의 개 목걸이를 애지중지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정신분석가인 위니코트(Winnicott)가 말한 대리 대상으로 어머니를 대신하는 안정과 안전을 제공하는 유일한 대상으로 어머니가 이것 마저 없애버리자 그는 마음의 안정을 잃어버리고 폭발하게 된다. 그것이 그의 정신분열증(조현병)의 문을 열어주는 단초가 되었다.

 아들 토니는 형님으로 부르는 동성애자와 어머니와 근친상간에 휩쓸리게 되면서 결국은 어머니를 살해했다. 어머니를 살해하고 태연하게 경찰에 신고를 하고 음식을 시켜서 어머니 시체 옆에서 식사를 하는 만성정신분열증(조현병) 환자의 무감각한 이상 행동을 보여주고 있다. 외할머니의 돌봄을 받다가 외할머니를 칼로 찔러서 죽이려고 했고 정신병원에 감금되어 자살로 삶을 마감을 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풍족한 돈으로 부러운 것이 없는 삶을 살면서 그리고 돈으로 세계의 곳곳의 휴양지를 전전하면서도 왜 자신들의 비정상적인 심리적인 문제들을 치료를 받으려고 하지 않았는지? 궁금해진다. 그 시점인 1970년대는 영국과 미국에서는 명망 있는 정신분석가들 혹은 심리치료사들이 많았다. 그들이 경제적인 여유로움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치료를 받을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은 자신들의 문제들을 수치심과 모욕으로 숨기기에 급급했던 마음 속 깊이 새겨진 열등감으로 분석을 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결국은 가정을 파괴 시켰고 아들의 양육에서 건강한 부모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에 그리고 어머니의 아들에 대한 집착과 아버지의 자녀 양육에 무지와 무관심 즉 자식은 돈으로 먹을 것과 대소변을 가려주고 원하는 것을 돈으로 다 해주면 된다는 자녀 양육에 대한 무지가 그들의 삶을 붕괴시켰다는 것을 이 영화가 보여주고 있다. 아들은 자신의 목을 조이는 엄마로부터 해방되고 싶어했다. 그러나 그는 살인자가 되고 정신병원에 수용되어 그를 돌보아주는 외할머니를 살해하려고 시도를 했고 결국은 정신병원에서 자살을 했다. 이들의 실화에서 우리는 돈에 의지해서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money talk)라는 잘못된 인식이 비극적인 삶으로 결과 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좋은 영화였다.

이제 치료자가 37년 동안 심리과학과 정신의학으로써 정신장애자들을 연구하고 치료를 하면서 어떻게 조현병 환자의 환청과 환각을 성공적으로 분석해서 그들을 제거해 왔는가? 에 초점을 모아보자. 치료자가 처음으로 대학원에서 전공을 한 분야는 가족 치료학이었다. 가족 치료를 5년 동안 공부를 하고 치료에 응용하면서 치료자는 가족 치료에 2%의 불만족을 느끼게 되었다. 증세 자체는 제거가 되는데 근본적인 자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치료를 받으러 오는 사람들은 만족스러워하지 않음을 알게 된 것이었다. 가족 치료에는 매뉴얼들이 있다. 펜실바니아 의과대학의 미뉴친(Minuchin, 1974: 주㈜: 참고)은 가족 구조 이론과 기법으로 그리고 메릴랜드 의과대학의 제이 헬리(Jay Heley, 1993: 주㈜: 참고)는 전략적 치료 이론과 기법으로 그들의 이론과 치료는 매뉴얼에 나와있기 때문에 그들을 이론을 치료에 응용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치료자는 정신분석을 연구하고 치료에 응용하면서 정신분석이라는 학문에서는 매뉴얼이 없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즉 정신분석가가 되려고 하면 어느 한 학자의 이론과 치료를 모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들의 이론을 수용하지만 자신만의 독특한 치료 기법을 만들어내서 치료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이것이 정신분석이 학문이지만 한편으로는 예술에 가깝다는 이유로 우리나라에서 장인(匠人)에 비유된다). 치료자는 인턴 수료 이후에 가족 치료에서 정신분석으로 방향을 바꾸게 되었다. 그래서 정신분석에 대한 책들을 미친듯이 읽어나갔다. 졸업 수 약 20년의 과정을 통해서 치료자는 정신분석의 응용 쪽으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의 수정과 보완 쪽으로 연구와 치료를 하면서 성격장애 즉 자아 장애들과 정신증 즉 편집증, 조울증, 그리고 정신분열증(조현병) 쪽으로 치료를 하면서 이 분야에서 세계적인 권위자들이 즉 각 개개인들이 저술한 책을 통째로 구입을 해서 조현병의 치료에 세계적인 유명 정신분석가들의 치료 기법을 면밀히 연구를 했다. 그들의 치료 기법을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그들 중에 대표적인 사람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코넬 의과대학의 컨버그(Kernberg)의 저서 5, 일리노이 의과대학의 지오바치니(Giovacchini)의 저서 8, 샌프란시스코 의과대학의 오가덴(Ogden)의 저서 6, 그리고 뉴욕 코넬 의과대학의 마스트슨(Masterson)의 저서 5, 펜실바니아 의과대학의 아르에티(Aireti)의 저서 3 권 등등으로 그들의 치료 이론과 치료 기법을 주도 면밀하게 연구를 하면서 그들의 기법들과 이론들을 통합을 해서 치료자의 치료 기법으로 만들었다. 이것이 치료자가 지금 조현병과 자아 장애에서 응용하고 있는 치료자의 독특한 치료 기법으로 진화를 하게 된 것이다.

치료자는 컨버그의 치료 기법으로부터 정신분석 치료는 무조건 과거만 분석하는 것은 아니라 현재의 문제를 먼저 해결하고 그 다음에 어린 시절의 과거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방법을 수용을 하고 있다. 발등에 불을 먼저 끄고 심층의 문제를 다룬다는 것이다. 현재의 문제들은 역시 과거의 상처들과 연결되어져 있으니 그 연결 고리를 찾아내어 치료를 해 나간다는 것 그리고 분노를 먼저 다루어야 한다는 것, 프로이트와 크레인의 기법을 응용한 컨버그의 욕구 이론을 수용을 했다. 어린 시절에 욕구의 고착은 반드시 이후의 성인 생활에서 장애물로 등장을 한다. 그것이 바로 고착이론 이다 그리고 부분 대상들의 전이를 다루어야 한다는 기법들을 수용을 해서 치료를 하고 있다. 환자와 치료가가 치료의 과정에서 늘 환자의 역할과 치료사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고 때때로 환자가 치료사의 역할을 치료사가 환자의 역할을, 환자가 엄마의 역할을 치료자가 어린이의 역할을 혹은 아버지의 역할 등등으로 수시로 변화되는 역할들을 수용하고 해석으로 이것을 환자로 하여금 깨닫게 하는 부분 대상들의 전이 기법을 수용해서 치료를 하고 있다.

그 다음에 오가덴의 조현병 치료에서 만성 조현병 환자들의 치료의 4 단계 이론을 수용해서 무감각의 단계의 생각과 감정을 파괴시켜버린 단계로부터 느낌과 생각과 감정을 되살려 내는 기법들을 사용해서 만성 조현병 환자들의 치료에 사용하고 있다. 그의 상호주관의 관점을 따 와서 치료사와 환자가 두 사람의 상호관계는 환자의 마음의 상황과 치료자의 마음의 상황이 개별적인 마음의 일대 일의 관계가 아닌 새로운 제 3의 관계가 형성된다는 이론을 따 온 것이다. 즉 치료사는 환자와 치료 회기의 진행 중에서 치료사의 마음 속에서 등장하는 상상이 환자의 반사된 상상에 관계되어진 그 순간의 느낌을 포착해서 그 환자의 상상과 연결 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크레인의 투사동일시 치료 기법으로써 치료자의 마음이 환자에게 반사되어진다는 것과 환자의 마음이 치료사에게 반사되어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수용해서 사용한다.

그 다음에 아르에티의 환청과 환각의 분석 기법을 수용해서 사용한다. 이 부분은 아래에서 환청과 환각 분석에서 다루어질 것이다. 더 붙여서 일리노이 의대의 지오바치니의 저서들을 통해서 치료자는 반전이, 역전이 기법을 수용해서 사용한다. 분석가는 환자들의 어떤 공격과 보챔에도 흔들리지 않고 수용을 해서 환자가 마음대로 자신의 분노, 욕구들을 표현하도록 허용해주는 기법을 사용한다. 이것을 황소의 말뚝 기법이라는 속어로써 설명을 한다. 시골에서 황소들이 거대한 말뚝에 자신의 몸을 비비고 떠 받고 화풀이를 해도 그 말뚝은 꿈쩍하지 않고 수용해주는 것에 비유를 한 것이다. 흔들리지 않고 파괴되지 않고 언제나 든든하게 모든 것을 수용해준다는 것을 인식하게 될 때 환자는 안심하고 자신의 모든 문제들과 충동들을 마음 놓고 밝히게 된다는 이론으로 치료를 해 나간다. 그 다음에 마스트슨의 5권의 저서들로부터 치료자는 자아의 자치심과 독립심을 따와서 치료를 한다. 의존으로부터 자아의 독립으로 자신감의 배양으로 연결 시키는 것이다. 그 이외에도 칼 로저스(Carl Rogers)의 무조건 수용기법을 따와서 사용한다. 조건을 붙이지 않고 내담자의 모든 욕구들을 수용하고 지지하고 인정해주는 내담자를 한 사람의 인격체로 인간다움을 지지해주는 기법이다. 하놀드 실의 치료 기법과 마가레트 몰러의 치료 기법을 수용해서 너와 나의 하나됨의 과정을 사용한다. 이 과정을 반드시 통과해야 그 다음 단계로 분리 개인화 단계로 연결된다는 것을 치료에서 사용을 한다.

치료자는 가족 치료의 저서들과 정신분석의 저서들과 심리치료의 저서들을 1000여권 이상을 읽었고 미국에서 귀국에서 연구와 치료를 하다가 머리 속에 저장되어져 있는 지식들은 언제든지 꺼내 쓸 수가 있지만 그들의 자료들을 내 발자국을 따라오는 사람들을 위해서 남겨 놓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학자들의 저서들을 번역하기 시작을 해서 지금은 500권 이상의 책들을 번역으로 소장하고 있다. 그들의 저서들을 통해서 연구하고 치료를 하면서도 지금도 배움의 끈을 놓지 않고 하루에 최소 5시간 혹은 최대 10시간씩 연구와 치료에 투자를 하고 있다.

위의 이러한 지식들을 통해서 조현병에 대한 치료자의 견해를 요약하고자 한다. 조현병은 주로 13-28세 사이에 등장하지만 최근에는 30대 후반에도 등장하는 사례들을 자주 보고 있다. 그러나 사춘기 이전에 유치원 시절부터 이미 미래의 조현병의 싹들이 자라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학업, 직장에서 흥미 상실과 조현병 진단 이전에 이미 현실에 적응이 어려웠다는 것이 분석으로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다. 조현병은 사고의 분열로써 추상적인 생각, 연상의 연결이 끊어지는 것이 특징이다. 특별히 양면 감정의 분열이다. 사랑과 미움, 너와 나, 현실과 상상, 꿈과 현실, 즐거움과 불쾌감의 통합에 결함을 보인다는 것이다. 그들의 생각들이 한쪽으로 단절되어져서 통합이 부족으로 극단적인 이상한 생각들로 연결된다는 것이 바로 이것을 설명해준다. 고로 그들은 행동과 생각들이 서로 연결되어지지 않고 단절되어져 있기 때문에 그들이 하는 생각들과 말들과 행동들이 그 상황에 적합하지 않고 이상하고 그들이 내린 판단과 선택과 결정들은 대부분이 실패로 실망으로 끝나게 된다는 것이다.

 행동의 분열로써 목적 지향이 붕괴, 어린이처럼 행동하고 생각하는 것이 특징이다. 부정적 감정의 좌지우지로 감정이 납작해짐, 얼굴 표정이 이상하거나 논리성이 부족하고 눈길 주기, 눈 맞추기를 피하거나 언어 사용이 감소, 즐거움이 없다는 것, 목적적 행동이 파괴되어간다는 것 등이다. 특별히 조현병은 60%-70%가 결혼을 하지 못하거나, 이혼을 하게 된다. 대인관계가 파괴 되고 과거에 활발한 사람이 점점 흥미와 활발한 활동의 상실, 활동이 축소, 감정을 철회하고 말이 없어진다, 상상 속에서 살게 된다. 이 시점에서 가족구성원들이 자녀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 채고 정신과의 찾게 된다.

이러한 조현병은 단일 종류가 아니다. 4가지 종류로 분류되어진다. 첫 번째가 편집증 조현병이다. 박해망상(비밀 정보 기관원이 미행을 한다. 도청 장치를 심어 놓았다), 과대망상(신의 아들, 성모 마리아 등등) 등을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인지와 감정 기능이 살아 있으면 치료에서 효과가 좋다. 두 번째가 해체형 조현병이다. 언어 해체와 행동 해체(일상생활의 붕괴), 납작한 감정으로 목적적인 행동이 부족하고 행동이 틀에 박힌 것이 특징이다.  세 번째가 균열형, 긴장성 조현병으로 움직일 수 없는 행동, 과도한 움직임, 남의 말을 흉내, 마비된 행동 등을 보이는데 하지 말라고 제지를 하면 분노가 폭발한다. 이러한 경직된 자세를 보이는 경직성 조현병은 약물을 복용하게 되면 사라지기 때문에 최근에는 이런 환자들이 드물다. 네 번째가 잠복형 조현병이다. 심각한 해체를 보이지 않는다, 망상 환각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휴화산처럼 언제 터질지 모른다, 소강 상태를 계속해서 수년간 지속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유사 조현병으로 위와 같은 증세들이 6개월 미만의 경우에 해당된다. 2013년에 미국 정신의학 학회에서 발간하는 제 5 차 정신장애에 대한 진단과 통계 분류지침서인 DSM-Ⅴ에서는 자아분열 성격장애를 조현병의 분류에 포함시켰다. 고로 자아분열은 성격장애와 조현병에 양쪽 다에 포함시킨 것이 특징이다.

치료자의 조현병의 치료 과정의 몇 가지 특징들을 소개하면 먼저 조현병을 가진 사람들은 세상으로부터 상처를 받았기 때문에 세상을 두려워해서 세상으로부터 탈출하려고 하는 사람들이다. 세상과 접촉을 회피하고 세상에 대한 두려움과 불신이 그들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미행하고 해코지를 한다는 것으로 세상을 회피하고 혼자 만의 내면의 세계로 도망을 하게 되는 근본이유 이다. 치료자는 맨 먼저 조현병 환자의 불안을 다룬다. 심한 불안으로 조그만 좌절에 참을 수 없어 치료를 포기하는 경우들을 많이 보았다. 연약한 자아 때문에 자신감이 없다, 약물을 감소시키면서 약물로 억압된 감정을 다시 살려내는 쪽으로 치료를 해나간다. 두 번째 대인관계를 다루어야 한다, 대인관계의 어려움 때문에 감정을 철회하고 내면의 세계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세 번째는 가족들 구성원들을 환자의 지원자로 도우미로 온 가족이 협력을 하도록 하는 쪽으로 치료를 진행을 한다. 위와 같은 과정을 거치는데 몇 년이 걸리는 경우도 있다. 더 붙여서 치료자는 반드시 발달 단계를 필수적으로 다룬다. 대부분의 조현병 환자들의 분석에서 유아기 때부터 대인관계의 어려움들의 싹이 튼 것을 밝혀내고 그들의 발달 과정을 다룬다. 치료의 핵심은 자아의 결함의 수정 초점을 맞춘다는 것은 수 없이 밝혀왔다. 조현병의 치료에서 초반기에는 정보 수집 혹은 심층 해석은 피해야 한다. 치료 회기에서 마음대로 이야기를 하도록 해서 긴장과 불안을 감소시키고 상호신뢰 관계에 초반기 치료의 초점을 맞춘다.

이제 치료자의 치료 사례들을 통해서 환각, 환청의 분석으로 들어가 보자. 여기에서는 환각, 환청의 분석에만 초점을 맞추기로 한다. 아르에티는 그의 저서에 정신분열증의 해석에서 환청과 환각이 반드시 분석해서 제거되어져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환청, 환각은 어린 시절의 상처 받은 자아가 해체를 막기 위해서 자아 보호로써 자신의 문제를 호소하고 있는 신호로 보아야 한다는 것을 수용해서 사용하고 있다. 아르에티는 환청, 환각을 2단계로 분리해서 분석해야 함을 지적하고 있다. 첫 번째 단계는 환자는 어린 시절의 상처의 기억 때문에 그 상처에 과도하게 예민하고 그 상처의 재 등장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기 때문에 그것의 등장을 두려워해서 과도하게 긴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고로 두 번째 단계로 그것을 예견하고 있다는 것 때문에 유사한 자극에 그것을 확정 짓는 단계를 거치면서 환청과 환각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첫 번째 치료 사례에서 30대의 젊은이 A(3명의 누나가 있고 그가 막내)이 치료자에서 1년 동안 심리치료를 받으면서 그의 환청이 분석의 대상이 되었다. 그는 밥벌레, 혹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다 라는 생각들이 귀에 들린다고 했다. 치료자는 그의 어린 시절의 분석과정에서 그가 사춘기에 진입하면서 가족구성원들 특별히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아들의 이상한 행동이 등장하게 되면서 부모님의 수치심의 대상이 된 것을 밝혀낼 수 있었다. 명절이 되면 아버지가 장남이기 때문에 친척들이 A군의 집에 차례를 지내려고 모이게 될 때 부모님이 아들 A군의 이상한 행동을 친척들에게 숨기기 위해서 항상 A군에게 차례를 지낼 때는 다른 방에서 피신해 있어라 라고 하면서 그가 분노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평소에는 가족 구성원이 되지만 명절 때가 되면 가족 구성원이 아니고 피신해서 숨어야 한다 고로 나는 자식이면서도 자식이 아니다 라는 것이 밝혀지게 되었다. 어느 날 A군이 치료실에 나타나면서 치료사에게 오늘 자신에게 욕설을 하는 사람을 버스에서 만났는데 그 사람을 죽이고 싶었지만 참았다고 털어 놓았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소상하게 이야기를 해보라고 했을 때 A군은 버스 안에서 어떤 사람이 벌레라는 말을 해서 자신을 비웃었다고 했다. 벌레라는 말이 왜 그를 비웃는 말인지를 이야기를 해 보라고 했을 때 A군은 자신은 30세가 넘어가도록 사회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밥벌레라고 스스로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가족 구성원들이 자신을 밥만 축내는 밥벌레라고 보고 있다고 호소를 했다. 버스 속에서 어떤 사람이 여름이어서 모기 나방 등의 벌레 들이 많이 날아다닌다 라는 말들을 친구들과 하고 있는 것에서 다른 것들은 들리지 않고 벌레라는 말이 그의 귀에 들리게 되면서(선택적 지각 – UCLA의 의대 교수인 그로스테인(Grotstein)의 조현병의 지각 특징: 주㈜: 참고) 그가 그들이 자신을 욕설을 한다고 분기탱천해서 그들에게 보복을 하려고 했다는 이야기였다. 그 분석 이후에 그의 환청인 벌레 혹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다 라는 환청은 그 원천을 그가 이해를 하게 되면서 그의 귀에는 더 이상 그러한 환청들이 들리지 않게 되었다.

두 번째는 앞 동의 아파트에서 40대 중반의 여자와 10대의 소녀(모녀 관계) 두 사람이 자신을 쳐다 보면서 비웃는다는 환각이 보인다는 30대 초반의 B군의 환각 증세였다. B군은 치료사에게 약 2년 동안 조현병의 치료를 받게 된 젊은이였다. 그는 두 모녀가 계속해서 자신의 사생활을 들어다 보고 비웃는다는 것 때문에 6개월 동안 참다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분개해서 그녀의 아파트의 도어 문에 큰 글씨의 스프레이로 화냥년(성적으로 난잡한 여성의 비하)의 소굴 이라고 글자를 쓰고 욕설을 갈겨 놓았다고 실토를 했다. 그러나 그들이 그를 쳐다보는 행동이 그 이후에도 중지되지 않고 계속되자 이번에는 신문지로 그녀의 아파트 도어 문에 불을 붙이려고 하다가 바로 앞집에서 주인이 외출하려고 하다가 B군이 불을 지르려고 하는 것을 보고 경찰에 신고를 해서 경찰서에 붙잡혀 갔고 그의 이상한 행동 때문에 xx 종합 병원 정신병동에 3개월간 입원을 하게 되었다. 그는 그 모녀가 실제 인물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으나 부모님과 경찰관이 조사를 해 본 결과 허구이고 환각임이 드러나게 되면서 조현병으로 진단되고 약물 치료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3개월의 약물 치료에도 불구하고 약물의 치료가 효과가 거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약물 복용을 거부했다.

이 시점에서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그의 어머니가 치료자의 홈 페이지를 보고 치료자에게 아들의 심리치료를 의뢰하게 된 것이었다. 1회 치료 회기 당 2시간씩 1주일에 3회 그리고 1년 후에는 1주일에 2회식 치료를 받으면서 약 1년 동안의 분석 치료 과정에서 치료자는 B군이 가족구성원들과 관계가 거의 없다는 것을 밝혀냈다. 그는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남동생과 함께 살고 있지만 그들과 전혀 대화가 없다는 것과 서로 눈을 맞추기 않고 외출과 귀가 때 서로 인사말을 주고 받지 않는다는 것을 밝혀냈다. B군이 치료자와 만날 때 그리고 치료 회기를 끝내고 집에 갈 때 치료자에게 인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이것을 분석하게 되면서 그는 집에서 외출과 귀가 때 인사말이나 눈길주기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었다. 치료자는 B군에게 만나거나 헤어질 때 서로 인사를 하는 것이 대인관계의 시작임을 이야기를 했을 때 B군은 그 이후에 인사를 잘 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의 환각이 어디에서 왔는가? 라는 것은 약 1년의 치료 기간이 지나가면서 그의 과거의 상처에서 기원이 된 것을 찾아낼 수 있었다. B군이 사춘기가 되면서 어느 날 몽정을 하게 되었는데 이후부터 그가 팬티에 묻은 정액에 신경을 쓰게 되었다. B군은 친구들이 없었다. 섹스 욕구에 대한 정보를 얻는 친한 친구와의 채널이 단절되어져 있었다. 어느 날 그가 사정을 한 팬티를 세탁기에 넣어 두었는데 어머니가 세탁을 하기 위해서 세탁물을 점검하면서 B군의 팬티를 살펴보는 것을 목격하고 기절초풍하게 된 것이었다. 그는 어머니가 그의 팬티를 면밀하게 검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 이후에 그는 팬티에 사정을 한 정액이 뭍은 그 팬티를 갈아입지 않고 그대로 입고 다니게 되었다고 실토를 했다. 팬티를 세탁기에 넣어 놓으면 어머니가 그의 팬티를 검사하게 될 것이라고 두려워하고 자위행위를 수치심과 부끄러움과 모욕, 멸시적인 조롱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었다. 앞 동의 아파트에서 40대의 부인과 10대의 소녀가 그를 쳐다보면서 그의 사생활을 감시하고 있다는 것은 바로 그의 사생활을 주도 면밀하게 훔쳐보는 어머니로 그리고 그 소녀는 사춘기에 자신의 자위행위의 나쁜 행동을 쳐다보고 있는 소녀의 모습(섹스의 욕구는 여성 특별히 사춘기 시점에서 소녀에게로 향하는 것)임을 지적을 했을 때 그는 치료자의 해석에 수긍을 했다. 그는 아버지와 갈등으로 3주일간 가출을 했다가 귀가(모텔에서 지낸 것을 알게 되었다)를 했을 때 그의 조현병은 재발을 하지 않았고 그 해석 이후에 B군은 그 중년 여성과 소녀의 환각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세 번째 치료 사례는 남자들의 성기가 눈에 보인다고 호소를 하는 20대 후반의 여자 대학생이었다. 그녀는 그녀의 오빠가 치료자에게 심리치료를 받게 되면서 그의 여동생이 9년 동안 칩거하고 두문불출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왜 그렇게 9년 동안 방치를 하고 있느냐? 라는 질문에 오빠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서 그냥 세월이 가면 회복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치료자는 정신장애들은 시간이 지나갈수록 눈덩이처럼 점점 더 커지게 된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당장 병원에 연락해서 병원에 입원을 하도록 했다. 3개월 후에 퇴원을 해서 그녀가 치료사에게 치료를 받게 되면서 그녀의 첫 시발점은 남자들의 성기가 눈에 보인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초, , 고등학교 시절에는 반에서 1 2 등을 그리고 전교에서 10등 이내로 들어간 학생이었다. 그녀가 중학교 시절에 교회에 참여하게 되었고 열렬한 기독교인이 되었다. 그녀가 지방 명문 대학 영문과에 입학을 해서 오리엔테이션 모임을 끝내고 대학 교문을 나서는데 교회의 단체들이 배포한 팜플렛에서 깊은 정욕 죄를 지은 한 여대생의 고해성사를 읽고 깊은 정욕 죄가 섹스를 뜻한다는 것에 걸려들면서 섹스에 대한 강박증이 시작되어다는 것을 밝혀낼 수 있었다. 그녀는 대학 생활이 시작되면서 그러한 나쁜 생각(섹스 생각에 강박) 때문에 친구들과 멀리하고 혼자서 대학생활을 하게 되어 외톨이가 된 것이었다. 대학 안에서 만나는 많은 남자들의 성기에 눈이 보이게 되면서 점점 학업에 집중도가 떨어지게 된 것이었다. 그녀는 스스로 내가 대학에 공부하러 왔지 남자 성기 보려고 왔나?”라고 독백을 했다고 털어 놓았다. 결국은 1학년을 겨우 끝내고 2학년의 학교 생활은 완전히 뒤죽박죽이 되면서 휴학계를 내고 휴학을 하게 된 것이었다.

그녀의 사춘기의 분석에서 그녀는 가족구성원들 아버지, 어머니, 오빠 그리고 남동생이 너무 가난해서 모두가 한 방에서 생활을 해 온 것이 밝혀졌다. 그녀는 고교 시절에 생리통 때문에 학교에서 구급차게 실려서 응급실에 실려간 최초의 학생이 되었다는 것을 고백를 했다. 그녀가 성숙해지면서 섹스 욕구에 놀래서 억압을 해 온 것이었다. 그녀는 공부는 잘 했지만 친한 친구를 사귀지 못했다. 그녀는 친구들과 잡담을 하는 동료들에게 쓸데 없는 잡담을 하는 시간에 영어 단어를 한 개 더 외우라고 충고를 했던 것을 기억을 했다. 섹스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채널이 없었다. 그녀는 섹스 욕구를 철저하게 억압을 했다. 자위행위라는 글자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 깊은 정욕 죄라는 단어에서 섹스의 욕구가 발동이 걸린 것이었다.

학교를 휴학한 후에 그녀는 어떤 개척 교회에서 무료로 치료를 해 준다는 말에 그 교회를 찾아가서 목사님으로부터 안수 기도를 받으면서 치료를 받게 되었다. 그녀는 약 1년 동안 치료를 받으면서 그 목사가 그녀의 몸을 만지는 것에 처음에는 거부를 했지만 그 목사가 음란 귀신을 치료를 해야 한다는 말에 저항을 할 수 없었다고 고백을 했다. 그녀의 몸을 만지면서 그녀는 그녀의 섹스 욕구를 더 이상 억압을 할 수 없었다. 그 목사는 그녀를 치료할 수 없다고 인정을 하고 한 대형 교회의 목사님을 추천을 해 주었다. 그 교회를 찾아가서 목사님을 만나고 싶다고 했을 때 목사님 대신에 목사님의 사모님을 만나게 되었고 그녀와 면담에서 남자의 성기가 눈에 보인다고 하면서 그녀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입에서 음란 욕설들 즉 개년, 개 좆, 개 불알 등의 욕설들이 튀어나왔다(욕설을 해서는 안 된다는 강박이 결국은 자신도 모르게 욕설이 입 밖으로 통제할 수 없어서 튀어 나온 욕설 강박증- 뉴톤의 제 3의 법칙 참고). 그녀의 욕설을 들은 그 목사님 사모님은 음란 귀신이 들었다고 그녀의 목사님 면담을 취소했다. 그 후에 그녀는 9년 동안 조현병으로 두문불출하게 된 것이었다.

치료자는 그녀에게 남자들의 성기가 실제로 눈에 보이는가? 라고 물어 보았을 때 그녀는 실제로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고 남가의 사타구니 쪽으로 눈이 가면서 자꾸 남자들의 성기가 보인다는 생각들에 휩싸이게 되었다고 실토를 했다. 그녀는 남성들과 대인관계에서 시선 공포증을 피하기 위해서 눈을 피하고 아래로 쳐다 보는 것이 남자들의 사타구니로 향하게 되면서 억압된 섹스 욕구에 놀랜 것이 남자의 성기가 눈에 보이는 것으로 지각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치료자는 섹스 요구는 건강하다는 증거이고 섹스 욕구를 해소하는 건강한 방법으로 자위행위를 하도록 했다. 섹스에 대한 정보들과 이해들을 하게 되면서 억압된 섹스 욕구가 해소 되면서 그녀의 섹스 문제는 그녀가 스스로 80%는 제거되어졌다고 스스로 이야기를 했다.

네 번째 치료 사례는 하느님이 그녀의 머리 속에 들어와서 지시 명령을 한다는 한 중학교 2학년 여학생의 치료 사례이다. 그녀의 어머니가 치료자의 홈 페이지를 보고 전화를 걸어왔다. 그녀의 중학교 2학년 딸이 머리 속에서 하느님이 한번씩 들어와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하라고 명령을 한다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처음에 딸의 목소리가 갑자기 바뀌면서 나는 하느님인데 이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를 하게 되면 너의 딸은 죽을 것이다 라고 경고를 하면서 딸이 xx 특정 음식을 먹고 싶어하니 사주라 라고 명령을 해서 어머니는 예 예! 하느님!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라고 하면서 원하는 음식을 사주게 되었다, 그런데 약 6개월 정도가 지나가면서 점점 딸의 머리 속에서 그 하느님은 더 많은 요구를 하게 되었고 어머니가 도저히 참을 수가 없게 되면서 치료자에게 전화를 걸어서 문의를 하게 된 것이었다. 딸의 머리 속에서 하느님은 어느 날 딸의 공부에 더 이상 관계하지 말라, 내가 알아서 공부를 하도록 책임을 지겠다고 하면서 공부에 간섭을 하지 말도록 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딸이 공부를 전혀 하지 않았지만 전교에서 1 등을 한 성적표를 가지고 왔기 때문에 어머니는 그 하느님의 말을 처음에는 절대적으로 신봉하게 되었다고 실토를 했다. 물론 나중에 그 성적표는 치료자의 분석 과정에서 그녀가 위조된 것으로 밝혀지게 되었다.

그녀는 6개월 동안 1주일에 1회로 회기당 2시간으로 분석 치료가 시작되었다. 그녀는 초등학교 고학년에 올라가면서 왕따를 당했고 친구들로부터 멸시, 조롱으로 무시를 당했고 그리고 그녀가 의사소통에 결함이 있다는 것을 밝혀낼 수 있었다. 그녀의 부모님은 맞벌이로 집을 비우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그녀는 어린 시절에 6살 위의 오빠에게 폭력의 대상이 된 것도 밝혀낼 수 있었다. 치료자는 동료들과 관계에서 상처받은 것들을 분석으로 찾아내어 감정을 토해내고 의사소통을 하는 대화의 기술을 습득하는데 초점을 모았다. 그녀는 상상 속에서 살고 있었다는 것을 밝혀낼 수 있었다. 그녀의 대인관계 기술이 조금씩 개선되어져 가면서 동료들과 어울리고 그리고 자아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면서 치료의 6개월이 흘러갔다. 치료자는 자아의 결함 수정에 치료가 더 필요하다고 어머니에게 이야기를 했지만 어머니는 더 이상 하느님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치료를 종결을 했다.

 세월이 7년이 흘러갔고 2018 6월 달에 그녀의 어머니로부터 아직도 심리치료를 하고 있는지? 안부 전화가 왔고 치료자가 이사를 해서 다른 곳에서 아직도 심리치료를 하고 있다고 이야기를 했을 때 어머니는 그녀의 아들의 심리치료를 의뢰하게 되었다. 치료자가 7년 전에 딸의 치료의 결과를 물어 보았을 때 그녀는 지금 명문 대학 경영학과 3학년에서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다는 것과 치료는 성공적이어서 그 이후에는 하느님은 더 이상 등장하게 않았다는 소식을 전했다.

다섯 번째 치료 사례는 고교 1학년 때 부모님의 등살에 미국 유학을 갔던 30세의 한 청년이 미국 유학 4년 째 조현병으로 귀국을 해서 우리 나라의 최고의 대학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면서 10년 동안 약물 치료를 받고 있었다. 아버지가 치료자의 정신분열증 홈페이지를 접하고 나서 어머니로 하여금 아들 C군이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도록 한 것이었다. C군은 만성 조현병 환자로써 무감각하고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로봇과 같은 젊은이였다. 10년 동안 약물로써 생각을 없애버리고 감정을 억압해버린 오가덴의 만성 정신분열증 환자의 제 1 단계의 환자였다. 그는 머리 속에서 기계소리가 들리는 환청을 가지게 되었다고 했다. 그는 생각이 없다고 했다. 치료자는 그의 생각과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쪽으로 치료에 초점을 맞추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은 거의 없었다. 어떻게 해서 미국 유학을 가게 되었는가?를 물어 보았을 때 부모님의 강압이 70% 그리고 자신의 의지가 30% 라고 대답을 했다. 하도 말이 없이 무감각하게 된 C군에게 치료자는 그의 입에서 말을 끄집어내가 위해서 아침 식사로써 무엇을 먹고 왔느냐? 라는 말에도 기억이 없다고 했다. 방금 타고 온 지하철에서 본 것과 느낀 것을 이야기를 해 보라고 했을 때도 그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와 치료 과정은 짧은 몇 마디 대화가 전부였다. 치료자는 그에게 느낌과 생각을 이야기를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말을 하도록 유도를 했다. 안전 감각과 안정된 분위기에서 치료가 약 20시간을 지나가면서 조금씩 그의 변화가 나타나게 되었다. 그는 초등학교 저학년 시점에서 어머니가 그에게 공부를 가르쳐주면서 매질을 한 것을 회상을 할 수 있었다. 먼지떨이의 대나무로 그의 팔과 손을 때린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팔과 손에 멍이 든 것을 친구들이 물었을 때 넘어져서 다친 상처라고 이야기를 해 주었다고 했다. 점점 그의 생각들이 하나씩 드러나게 되었다. 그는 고 1학년 때 유학을 떠나면서 영어 공부를 잘 하지 못했지만 부모님의 등쌀에 떠밀려서 뉴욕의 한 고등학교에 다니게 되었는데 영어를 쓰고 읽고 하는 것이 부진해서 그냥 공부 시간에 앉아 있었다고 했다. 치료자가 그 학교에 한국인 유학생들이 있었는지? 에 대해서 물어 보았을 때 그는 한국 유학생들이 있었지만 그들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고 했다. 외톨이로 자신의 문제들을 숨기고 철저하게 혼자서 생활하게 된 것이 밝혀졌다. 영어를 읽고 쓰는데 어려움 때문에 시험은 어떻게 쳤느냐? 라는 물음에 OMR 카드에 마크를 했기 때문에 알고 표시를 한 것이 아니고 추측으로 표시를 했고 결국은 4년이 지나가면서 유급되어 졸업이 되지 않으면서 머리 속에서 기계 소리가 들리게 되면서 귀국해서 유명 대학 병원의 약물 치료를 10년 동안 받고 있다고 했다. 지금은 환청이 들리지 않지만 그는 무기력하고 무감각해서 사회생활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30세가 되면서 일을 하라는 부모님의 등살에 떠 밀리어서 창고에서 서적들을 정리하는 노동일을 3개월 하다가 그들과 불편한 관계 때문에 해고를 당했다고 실토를 했다. 조금씩 생각하는 것이 살아나면서 그는 신문을 읽고 그 내용에 대해서 치료자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고 감정이 되살아나면서 그는 부모님에게 분노를 표현할 수 있게 되어갔다. 그가 외모에 신경을 써서 자신의 얼굴에 관심을 가지고 눈썹과 미용에 신경을 쓰는 것에서 조금씩 자신감을 회복해 가는 것에 깜짝 놀랜 어머니가 그의 증세가 악화되어 어머니에게 분노(과거에는 조용한 아들이 지금은)를 표현하고 얼굴에 신경을 쓰는 것을 돌 아이의 행동으로 오해를 하면서 계속해서 치료를 받도록 허용해주지 않아서 치료는 6개월로 끝나게 된 안타까운 사례였다. 그의 머리 속에서 기계 소리가 들리는 환청은 분석하는데 어렵지 않았다. 고교 1학년에서 미국의 복잡한 뉴욕의 생활에서 공부와 동료들 관계 그리고 매일 같이 접촉하는 미국인들과 관계에서 어려움들의 복잡한 생각들에 뒤엉켜서 잠을 이룰 수 없게 된 것이었다. 그의 자아가 해체에 직면하게 되면서 그는 살아남기 위해서 복잡한 고민과 갈등들을 의미 없는 기계소리로 바꾸어버린 것을 알 수 있었다.

여섯 번째는 뇌 속에서 파리 소리가 들리고 뇌가 썩어 간다는 30대 초반의 한 여성 조현병 환자의 치료 사례이다. 그녀의 치료 사례는 UCLA의 의과대학 정신과 교수이자, 정신분석가인 로버트 스톨러(Robert Stoller)의 저서인 자아 쪼갬: 주체성 해리 장애의 저서에서 12년 동안의 정신병원에 입원 치료를 받아온 30대 초반의 부인이 스톨러의 의대 실습생들의 정신병원의 입원 환자들의 인터뷰 실습에서 한 지방 정신병원에서 입원해 있는 그녀를 발견하게 되었고 그녀의 감정이 살아 있다는 점 때문에 그녀의 호소를 수용해서 7년 동안 분석 치료에서 성공한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그녀는 여러 개의 자아들이 그녀의 마음 속에서 살고 있다는 빙의 현상(주체성 해리장애)과 그녀가 절도, 강도, 살인 미수 등으로 교도소와 정신병원을 돌아다니고 있는 만성 조현병 환자로 그리고 반사회적 성격장애, 동성애 그리고 그녀 자신이 남자로 태어났어야 했다고 등등으로 수 많은 장애들의 이름을 가진 여성이었다. 그녀는 4살 때 성폭행을 당했고 14살 때 3번이나 임신과 출산으로 자녀를 입양을 한 전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머리 속에서 파리가 윙윙거리는 소리와 뇌가 썩어가고 있다는 환청과 망상을 가진 여성이었다.

스톨러는 그녀를 치료한지 5년 만에 어느 날 그녀가 항문 출혈 때문에 항문 결장을 검진하기 위해서 항문 검사를 하는데 그녀가 기겁을 하고 대경실색하는 통에 그것을 분석하면서 그녀가 10살 때 남동생과 여동생을 데리고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다가 50대의 한 남성에게 유혹을 당해서 인근에 썩은 풀 더미가 쌓여있는 곳에서 항문으로 성폭행을 당할 때 윙윙 거리던 파리들과 섞은 더러운 풀 더미와 정액의 사정(정자가 그녀의 뇌 속에서)이 그녀의 뇌를 갈아먹고 있다는 것을 분석으로 밝혀냄으로써 그녀의 환청과 망상은 더 이상 등장하지 않았다고 노트한 것을 소개를 한 것이다.

일곱 번째는 미국 유학에서 3년 동안 공부를 하고 있다가 여름 방학 때 잠깐 귀국을 한 고등학교 3학년 여학생의 아버지가 그녀의 딸이 환청이 들린다고 호소를 해서 치료사에게 그녀의 딸을 소개를 해서 2시간 컨설팅을 받게 한 것이었다. 그녀는 몇 개월 전에 미국의 고등학교에서 그녀의 옆을 지나가면 한 미국인 여학생과 그녀의 친구가 그녀에게 바보라고 욕설을 하는 말을 듣고 그녀에게 손찌검을 했다가 학교 폭력 위원회에 회부 되어 심리검사 결과 조현병으로 진단을 받게 되었다고 했다. 그녀가 손찌검을 해던 그 미국인 여학생은 그녀와 함께 있던 친구가 그녀에게 욕설을 한 적이 없다는 증언을 했다. 그녀에게 욕설을 하지 않았는데 분명히 그녀의 머리 속에서 들린 것이 바로 환청을 듣게 되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된 것이었다. 그녀는 그녀의 귀에 들리는 것을 환청인줄 모르고 있었다고 했다. 그녀는 중학교 2학년 때 그녀의 의지와 관계 없이 부모님의 등쌀에 떠밀려서 미국 유학을 떠나게 되었다고 토로 했다. 학교에서 한국인 유학생들이 많이 있었지만 그녀는 그들과 어울리지 않았다고 했다. 치료자는 그녀에게 조현병의 진단으로는 더 이상 미국에서 공부를 진해하기 어려울 것이니 귀국해서 치료를 받아서 건강해지면 다시 미국으로 가든지 혹은 한국에서 공부를 하는 것이 어떡하냐? 라고 제안을 했지만 그녀는 부모님이 그녀에게 지금까지 투자한 비용 때문에 빈손으로 졸업장도 없이 귀국할 수가 없다는 것과 한국에 와서 수능을 공부해야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는 것 때문에 한국에 귀국할 수 없다고 호소를 했다. 그녀가 미국 생활에서 적응해 가면서 영어 때문에 열등감으로 그리고 계속해서 쌓이는 긴장과 불안이 결국은 동료들로부터 비판적인 눈초리에 그들의 얼굴 표정에 과도하게 예민해지면서 그들이 비판과 비난의 욕설을 할지도 모른다는 그녀의 예민한 기대감이 결국은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환청으로 연결된 것을 알 수 있었다.

여덟 번째 사례는 29세로 하늘 나라로 휴거(xx xxx xx 시에 날짜에 예수가 왕림을 해서 모두가 하늘로 부활해서 승천한다는 믿음)를 한다는 믿음 때문에 그녀의 가족이 그녀를 정신병원에 입원을 시키려고 하는 것에 놀래서 3 층의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골절로 병원에 입원을 했다가 골절의 치료 이후에 계속해서 치료자의 심리치료를 받게 된 한 여성의 치료 사례이다. 그녀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그녀의 어린 시절의 분석에서 그녀는 중학교 시절에 전교에서 3등을 해서 어머니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성적표를 보여주었을 때 어머니는 친구의 딸은 1 등을 했는데 너는 고작 3등을 하고 칭찬을 받으려고 하느냐? 라는 질책에 노발대발 했다고 털어 놓았다. 어머니는 그녀가 중학교 시절에 아버지와 결별하고 가출해서 더 이상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는 어머니가 떠난 자리를 그녀가 대신하게 되었다고 호소를 했다. 그녀가 아버지와 남동생의 식사와 청소와 빨래들을 담당하면서 공부에서 밀리게 되었고 그녀는 대학에는 원하는 대학에 진학할 수 없게 되면서 우울증으로 치료사에게 치료를 받게 된 것이었다, 그런대 어느 날 그녀의 귀에 하느님의 목소리가 들렸다고 했다. 그녀가 중학교 시절에 교회에서 만난 오빠가 서울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그곳으로 가라고 말을 하는 것을 듣고 하느님이 그녀에게 계시를 하는 것으로 알고 그녀는 그날 아침에 기차를 타고 서울로 간다고 생각한 것이 동해 남부선 기차를 타고 xx 시에 도착했을 때 혼란하게 되었고 지나가는 택시를 타고 서울로 가자고 했을 때 택시 운전사가 그녀가 이상한 행동을 눈치 채고 그녀에게 보호자인 아버지의 전화 번호를 물어보고 아버지에게 전화를 함으로써 집으로 무사히 돌아오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 시점에서 갑자기 xx xx 시에 하늘로 휴거 한다는 망상에 빠져서 동네 사람들에게 휴거 준비를 하라고 전도를 하려고 하는 것을 아버지가 막아 아파트에 감금하고 내일 병원으로 입원을 시키려고 하는 과정에서 3층에서 뛰어내려서 골절이 된 것이었다. 골절 치료와 약물 치료로써 망상이 사라지고 나서 치료사에게 2년 동안 심리치료를 받으면서 그녀의 초, 중학교 시절에 반에서 1, 2등으로 그리고 전교에서 몇 등을 하던 그녀가 고교 이후에는 자신의 과거의 자존심을 상실해서 하느님의 힘을 빌려서 자존감을 들어 올리려고 한 것을 분석으로 지적을 하면서 그녀의 현재의 삶에서 자신감의 회복으로 그리고 대인관계의 개선으로 자아의 목소리를 높이는 쪽으로 치료를 한 후에 그녀는 파트 타임에서 풀 타임으로 일자리를 얻어서 아버지로부터 독립해서 생활 하도록 해서 치료 종결 후에 2년이 지나가면서 재발이 없이 사회생활에 잘 적응해 나가고 있다는 메일을 받았다.

아홉 번째는 예수님의 아들이자 고구려의 왕자라는 망상을 가진 50대 후반의 한 남자의 사례이다. 그는 치료자가 미국에서 인턴으로 일을 하고 있을 때 그 정신치료 센터에 입원을 한 사람이었다. 그의 분석에서 그는 미국으로 건너와서 열심히 삶을 살아가면서 주변으로부터 인정을 받아서 한 목사님의 딸과 결혼을 했으나 삶에서 연속된 실패로 환청을 경험하게 되고 그 결과 이혼을 당하고 지금은 연금으로 겨우 삶을 지탱하고 있는 미국 이민의 실패자로 자신을 전지전능한 신의 힘을 빌려서 자존감을 들어올리려고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치료자의 귀국으로 치료가 중단 된 사례였다.

열 번 째는 30대 초반의 여성으로 2시간 컨설팅을 받으면서 그녀의 항문에서 똥 냄새가 난다고 환취를 호소한 여성이었다. 그녀는 어린 시절에 3살 때 엄마를 상실하고 계모 밑에서 이복 동생들과 차별 대우로 학대를 받은 것이 밝혀졌다. 그녀가 사춘기 시절에 어느 날 버스를 타고 시골길을 지나가는데 벌판에서 인분으로 농사를 짓는 논에서 나는 인분 냄새가 그녀의 코를 스치면서 그 이후에 그녀는 그녀의 항문에서 똥 냄새가 난다는 것으로 뇌에 각인이 된 것을 분석으로 밝혀낼 수 있었다. 그녀는 계모로부터 치료 비용의 지원을 받지 못해서 치료를 지속할 수가 없었다.

열 한번 째는 치료자에게 12년 동안 심리치료를 받고 있는 한 30대 후반의 청년의 사례이다. 그는 치료 초반기에 6만 원정도 하는 MP3(귀에 꽂고 음악을 듣는 초반기 기재)를 구입하는데 6개월이 걸렸다고 물건을 살 수 없다고 호소를 했다. 그 이유는 물건을 사면 바가지를 쓰게 된다고 불안하고 사지 않으려고 하니 사고 싶은 생각에서 이래도 못하고 저래도 못해서 결정을 내리는데 이리갔다, 저리갔다를 6개월 동안 반복하고 있다고 호소를 한 청년이었다. 그는 최근에 고시원의 폐쇄로 문을 닫게 되면서 9년 동안 거주를 했던 고시원에서 이사를 하면서 치료자가 9년 전에 본가에서 부모님의 간섭으로부터 차단시키기 위해서 혼자서 독립된 생활로 나올 때 고시원의 선택에서 인터넷에서 광고들을 물색을 해서 약 10군데 정도를 알아 보고 그 중에서 2군데를 최종적으로 낙점을 해서 그 중에서 최종적으로 마지막 선택을 하는 것이 좋다(물건을 살 때의 불안의 응급처치로써 이야기를 해 주었던 것을 기억)는 이야기를 기억했다가 이번에 4일 만에 그것을 실행으로 옮겨서 성공적으로 인근에 있는 한 고시원으로 이사를 한 것을 이야기를 하면서 그 날 저녁에 그의 귀에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것을 치료 회기 시간에 분석을 요청을 했다. 처음에는 이웃 집에서 나는 소리로 알고 주의관심을 가지고 살펴 보았지만 이웃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고 바로 자신의 귀에서 들리는 알게 되었다고 했다. 사실 그는 9년 전에 처음으로 부모님 집을 나왔을 때도 이사 후에 그날 저녁에 환청을 들렸지만 곧 사라졌기 때문에 치료자에게 그것을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고 실토를 했다. 분석 치료 과정에서 지나치게 긴장과 불안이 극도의 상황에서 등장한 것은 이해가 되었지만 그 환청의 소리의 원천을 분석해 보자고 했다. 어떤 환청인지를 물어 보았을 때 그는 할아버지의 울음 소리로써 아이고 어이구 으흐흥하는 울음을 우는 소리라고 했다. 그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는가?라고 물어 보았을 때 그는 초등학교 시절에 그를 양육으로 보살펴 주었던 할머니가 고통 속에서 울음으로 아이구 아이고 흐응흐응하는 울음 소리를 듣게 되었다고 했다. 그 후에 중학교 시절에 할머니는 어머니와 갈등으로 아버지의 외면으로 자주 울음으로 그러한 울음 소리를 내는 것을 듣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얼마 전에 고시원 옆에 살고 있는 한 할아버지가 똥을 지리는 것을 모르고 복도에 분비물을 흘린 것을 그가 밟았다가 씻어내면서 노년에 만약에 그가 노년에 자신이 그 노인처럼 갈 곳이 없어서 고시원 생활로 삶을 마감하는 것이 아닌가? 라는 불안에 휩쓸리게 된 생각들을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의 환청은 바로 과도한 자아의 불안이 한계선을 넘어가면서 그의 노년의 모습이 노인의 울음소리로 그에게 경고를 한 것이 바로 그 환청임을 지적을 했을 때 그는 시인을 했고 그 분석 이후에는 그 환청은 더 이상 들리지 않게 되었다고 했다.

열 두 번째는 50대 후반의 부인으로 10년 동안 조현병으로 3차례나 병원에 입원을 한 경력의 부인의 사례이다. 그녀의 아들이 4년 전에 치료자에게 6개월 동안 심리치료를 받았기 때문에 그의 어머니가 다시 조현병의 악화되자 아들의 소개로 치료자에게 심리치료를 받게 된 것이었다. 그녀의 증세의 핵심은 최근에 약물을 복용해도 잠을 잘 수 없다는 것과 한번씩 칼이라는 말이 뛰어나오고 결혼한 딸의 이름을 부른 환청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것이 치료의 과정에서 분석으로 드러나게 되었다. 그녀의 어린 시절의 분석과정에서 그녀는 4살 때 아버지가 폐결핵으로 사망하고 어머니가 그녀를 친정 어머니 즉 외할머니에게 맡기고 재혼을 했고 재혼 후에 4명의 자녀들이 태어났다고 했다. 그녀는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외할머니와 살았다, 그 때까지는 별 문제가 없었다. 그 시점에서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를 본가에서 같이 생활하자고 해서 그녀를 집으로 오게 했다. 그녀는 이복 형제들(바로 밑에 여동생을 제외하고는 그녀의 이복 형제들이 5, 3 1살 등으로 어린 동생들의 양육자가 된 것이 밝혀졌다)과 살면서 어머니 대신에 그녀가 양육자로 동생들의 어머니가 되었다고 실토를 했다. 그런데 그녀는 양부와 관계에서 문제가 생기게 된 것이었다. 계부(양부)는 그녀와 눈맞추기를 피하고 그녀와 말을 하지 않았다. 부인은 양부의 눈치와 비위를 맞추면서 자라나게 되었다. 그녀는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여상(女商)을 졸업하고 취업을 해서 월급 봉투를 그대로 양부에게 드렸지만 양부는 한번도 용돈을 준 적이 없다고 토로 했다 어머니가 이것을 알고 남편을 욕을 하면서 그 대신에 그녀에게 용돈을 대신 주었다고 했다. 어머니는 평소에 그녀의 말을 들으면 모든 것이 다 잘 될 것이라고 이야기를 해서 그녀는 어머니의 말을 철석 같이 믿고 따랐다. 이복 여동생(대학생인 여동생이 사귀는 남자와 임신 때문에 곧 결혼을 할 것이라는 사실)을 위해서 빨리 결혼을 하라고 다그치는 바람에 할 수 없이 마음에도 없는 남자와 선을 보게 되었는데 선을 보는 두 사람의 방문을 밖에서 잠가버렸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분노했다. 결혼 결정을 내리라는 압력이었다. 그녀는 결혼을 하고 보니 남편은 중학교도 졸업을 중퇴한 사람이라고 분개했다. 어머니가 다 알아서 해줄 것으로 믿었지만 어머니는 고졸인 그녀에게 중학교 중퇴인 남편과 결혼하게 한 것이라고 분개했다. 결혼 후에 어머니는 그녀가 부동산 중개업을 하면서 시골의 산자락에 사 두었던 황무지를 그녀에게 소개하면서 그 황무지를 개간하면 너에게 절반을 주겠다는 약속을 받고 남편과 함께 시골의 산골짜기에 들어가서 젖소 두 마리(한 마리는 남편의 퇴직금, 그리고 한 마리는 어머니가 사주었음)와 개간 사업을 빈손으로 시작을 했다. 남편과 부인은 열심히 죽자고 일을 해서 젖소들이 새끼를 낳아서 10마리 되었고 농토는 개간이 되어 사는 보람을 느꼈다고 했다. 그 시점에서 어머니가 젖소를 허락도 받지 않고 마음대로 팔아갔다. 나중에 보니 바로 밑에 이복 여동생의 남자 친구의 학비 조달임을 알고 분개 했다. 그러나 부인은 어머니에게 그러한 불평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드디어 사건이 터졌다. 어느 날 예고 없이 그 개간 농장이 팔렸으니 당장 집을 떠나라고 한 것이었다. 그녀는 놀래서 어머니에게 처음으로 그 계약서를 한 번 보자고 했다(그 농장은 남편과 그녀의 땀으로 일군 것이고 그녀에게 절반을 주겠다고 언약한 것 때문에), 그 말에 어머니가 미친듯이 화를 내면서 죽이겠다고 부엌에서 칼을 들고 나왔다. 그 때 그녀가 그녀의 두 번째 자녀인 4살 된 딸이 옆에 있었고 혹시 할머니의 칼에 상처를 입을 것이라고 두려워해서 데리고 도망을 갔다. 어머니는 죽는다고 산에 올라가서 목을 맨다고 쑈를 부렸다(나중에 분석에서 밝혀졌음). 그녀는 더 이상 두 말 없이 15년간 일군 농장을 포기하고 겨우 어머니가 쥐어준 5천만 원을 가지고 2명의 자녀들을 데리고 인근의 도시로 이사를 오게 되었고 남편은 택시 운전으로 생활 해서 살아왔는데 40대 중반에 아들과 딸의 대학 등록금이 겹치면서 고율을 사채를 쓰면서 돌려막기를 하다가 터지면서 조현병으로 3개월을 입원한 것이 조현병의 시발점이었다(조현병이 40대 이후에도 등장한다는 것이 특이했음). 그녀의 환청인 “ xx !, 칼을이라는 환청은 친 어머니로부터 배신으로 한 마디 한 것 때문에 어머니가 칼을 들고 죽이겠다는 협박에서 나온 비명이었다는 것이 밝혀진 이후에는 더 이상 등장하지 않았다.

그녀의 분석에서 그녀는 계부의 편애와 학대는 용서할 수 있겠지만 친 어머니가 그녀를 이용하고(이복 동생의 양육을 위해서 그녀를 외할머니와 함께 잘 살고 있는 딸을 불러 들여서 어머니 대신에 집안 일과 그녀의 심부름 꾼(어머니는 문맹으로 글자를 모르고 복덕방(과거에 중개업이 등장하기 이전에 면허 없는 중개인)을 했기 때문에 그녀의 손으로 서류를 작성하고 그녀가 심부름과 굿은 일을 맡아서 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분노가 억압되어 우울증을 가지고 있었다. 분석에서 밝혀진 것처럼 그녀의 15년 동안 개간해서 옥토로 만든 농장을 하루 아침에 빼앗긴 것은 바로 이복 여동생의 결혼으로 아파트는 사주기 위한 것임을 나중에 알게 되면서 그녀는 친 어머니가 편애로 그녀를 식모(오늘날 파출부)로 학대하고 그녀의 노동을 착취한 친정 어머니에 대한 배신을 토해내고 말로써 표현하게 되면서 그녀의 10년 동안의 3번의 정신병원 입원은 성공적인 치료로 끝낼 수 있었다(그녀는 그러한 한 맺힌 이야기를 남편에게도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고 통곡하면서 치료 회기에서 토해낼 수 있었다).

열 세 번째는 지금 현재 치료를 받고 있는 21세의 청년으로 그는 하루에 10회 이상씩 어휴, 휴유, 참 등의 한숨 소리가 들린다고 했다(나중에 그것이 다른 사람의 귀에 들리지 않는 환청임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그의 치료 10회기 정도에서 그는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로부터 아들이 2%가 부족하다는 한숨 소리를 들었다는 것이 분석으로 밝혀지면서 그 환청을 더 이상 들리지 않게 되었다. 또 한 사람의 48세의 여성은 가끔 한번씩 눈에 소복을 한 머리를 풀어 해친 귀신이 눈에 보인다고 했다. 언제부터 보였느냐? 라는 질문에 그녀는 25세 때 xx 종교에 심취해서 동굴 속에서 기도를 드릴 때 그 때 머리를 풀어 해친 흰옷을 입은 여자 귀신이 눈에 보이기 시작해서 지금도 마음이 허약해지면 한번씩 눈에 보인다는 것과 기계 소리가 환청으로 들린다고 했다. 그녀는 지금 현재 8시간의 분석으로 아직도 그 환각과 환청의 실마리는 찾아내지 못하고 치료를 계속하고 있다.

지금까지 조현병 혹은 망상 장애에서 환청과 환각의 뿌리를 찾아내서 그들이 어린 시절부터 받은 상처에서 등장한다는 것을 밝혔다. 환자들의 치료 과정에서 환청과 환각의 분석에서 찾아내어 그들이 그것을 알게 하고 그 상처를 치유를 했을 때 그들이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치료 사례를 통해서 소개를 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가 만약에 자신이 조현병의 진단을 받은 사람이라면 치료자의 정신분열증 홈 페이지를 소상하게 읽어보고 부모님에게 치료자의 홈 페이지 혹은 블로그를 읽어보라고 말씀 드려서 심리치료를 받고 싶다고 이야기를 해서 가족들의 도움을 받기 바란다. 아니면 이 글을 읽는 독자가 부모님이라면 자녀가 조현병 혹은 망상 장애를 가지고 있다면 자녀들에게 치료자의 홈페이지 혹은 블로그를 자녀들에게 소개를 해서 자녀들이 치료를 받으러 나오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대부분의 자녀들은 자신은 전혀 이상이 없는 정상적인 사람이라고 자신을 이상하게 돌 아이로 본다는 것에 분노해서 절대로 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하는 것이 보통이다. 정신장애는 그 장애가 심각하면 할수록 절대로 자신은 이상이 없다고 숨기고 감추고 정상인 것처럼 보이려고 하는 것이 특징이다. 자신의 약점이 드러나는 열등감을 숨기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우에는 2시간 컨설팅을 받게 하는 것이 좋다. 치료를 받아라 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그냥 선생님에게 한번 가서 이야기를 들어보자고 해서 달래서 자녀들을 데리고 오면 2시간의 컨설팅에서 95%는 치료를 받겠다고 마음을 고쳐먹는 것이 대부분이다. 왜냐하면 2시간 치료자와 이야기를 하면서 마음이 편안해지고 관계에서 두려움이 낮아진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에 관계에서 불안과 거부감이 감소되기 때문이다. 말이 없는 환자들은 말을 하도록 만들어내야 한다. 감정이 죽어버린 사람은 감정을 살려 내는 치료를 해야 제대로 그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다. 치료자는 항상 자신의 자아에 투자하는 하는 것이 제일 안전하고 제일 현명한 투자라고 이야기를 한다. 이 세상에서 자신의 자아에 투자하는 것만큼 안전한 투자가 어디에 있겠는가? 자신의 자아에 투자를 해서 죽을 때까지 자신의 안전함과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이 돈으로 환산할 수 있겠는가?라고 생각해 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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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참고: 컨버그(Kernberg)5: 보드라인 성격장애를 위한 전이 중심 심리치료(1998), 보드라인 조건들과 나르시즘 장애(1975), 심한 성격장애들: 치료적인 전락들(1993), 내면의 세계와 외부의 세계(1980), 대상관계 이론과 치료적인 정신분석(1976). 보드라안 환자의 치료 제한을 확대(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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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칸(Volkan) 2: 민들레와 장미를 교배를 시킬 때 당신은 무엇을 얻는가?: 정신분석의 치료의 실제 이야기(1984), 보드라인 성격 조직의 치료에 6단계(1995),

            : 메세너(Messiner, 1978). 편집증의 과정

            : 어네스트 존(Ernest Jones)의 프로이트의 삶과 업적 3: 제 Ⅰ권(1953), 제 Ⅱ권(1955), 제 Ⅲ 권(1957).

            : 로젠필드(Rosefeld, 1987): 해석과 심리치료에서 답보 상태: 정신분열증, 보드라인, 신경증 환자들의 정신분석 치료에서 치료적 요소들과 반 치료적 요소들.

            :스톤(Stones et al., 1983)의 정신분열증 치료: 분석적 접근

위의 저서들은 치료자가 우리나라 말로 번역되어 소장하고 있으니 치료자의 홈 페이지에 전문 서적 안내에 들어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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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의 사례는 미국에서 대학 1학년 때 머리 속에서 갑자기 그녀에게 강의를 하고 있는 교수님의 교단에 있는 커피 컵에 든 커피를 쏟아버려라 라는 말을 듣고 그것을 실행을 한 이후에 친구로부터 그러한 것이 환청이라는 말에 정신과 병원으로 달려가서 진단을 받은 결과 정신분열증(조현병)으로 밝혀지면서 그녀의 치료를 맡은 정신과 의사 선생님이 그녀에게 한 말에 충격을 받은 한 조현병 여성의 수기 사례이다. 그 의사는 암은 수술을 받아서 치료를 할 수 있지만 조현병은 치료를 할 수 없는 불치의 병으로 죽을 때까지 고통을 받아야 한다라는 충격적인 말에 절망 속에서 보내다가 한 정신과 의사이자 정신분석가를 만나서 환청이 어린 시절에 받은 상처의 변장된 증세 라는 말에 용기를 얻어서 그에게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받아서 그녀가 정신분열증(조현병)으로부터 회복되어 그녀가 다시 대학원에서 치료 심리학 박사 과정을 성공리에 끝내고 미국 전역을 순회하면서 내면의 목소리 듣기 운동을 펼치고 있는 한 여성(일리노어 롱던) TED 강연(지식 기부의 일종으로 자신의 지식을 일반 대중에게 소개를 하는 프로그램)을 소개하고자 한다.

 

http://www.psychosis119.pe.kr/nth_theme_vector_turquoise_bullet_l.gif환청과 환각은 어린 시절에 받은 상처들입니다. 그 상처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를 분석을 하고 그것들을 그 환자로 하여금 알 게 하고 그 상처들을 재연해서 치유를 해서 뚫고 나가게 하고 더 붙여서 발달 결함을 수정해서 성장이 중지된 자아를 다시 성장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정신분석 심리치료입니다 http://www.psychosis119.pe.kr/nth_theme_vector_turquoise_bullet_l.gif

 

 신경 정신과 의사 선생님들은 약물 치료로서 정신분열증 환자들을 치료를 합니다. 고로 신경 정신과 의사 선생님에게 가면 2-5분 정도 이야기를 나누고 약물 처방으로 상담 시간이 끝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러나 나는 정신분석적인 심리치료를 사용해서 정신분열증 환자들을 치료를 합니다. 만약에 환자가 원한다면 그 약물은 그대로 사용을 합니다. 약물 사용이 주요한 목적이 아닙니다.

 보통 3개월-4개월 정도 약물을 사용해서 치료를 받거나 혹은 병원 입원 치료를 3개월-4개월 정도 받으면 환청, 환각은 사라집니다. 일반적으로 부모님과 환자 그 자신은 그 시점에서 치료가 다 되었다고 정신분열증이 치료가 되었다고 안심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금물입니다. 그 때부터 정신분석 심리치료가 시작되어야 합니다.

 2시간 동안 심리치료를 합니다. 환자가 말로써 자신의 머리 속에서 떠 오르는 생각, 느낌, 상상, 지각, 감각 등을 말로써 편안하게 표현을 하게 합니다. 치료자는 그 환자가 하는 말들을 들어 주면서 그 내용들을 연결해서 계속되는 치료 회기 과정에서 연결 해서 분석을 해 나가게 됩니다.

 쉽게 말을 하자면 환자의 환청환각의 내용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분석해서 그 뿌리를 찾아 냅니다. 그것을 찾기 위해서 기억이 나는 대로 유아기로 돌아가서 양육에서부터 시작합니다. 환자의 환청환각들은 어린 시절부터 누적되어 쌓인 마음의 상처입니다.

 대부분의 정신분열증 환자들은 어린 시절의 기억이 망가져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기억은 지워진 것이 아니고 고통스럽기 때문에 억압한 것으로 마음이 편안해지고 헝클어진 생각들이 정리가 되고 혼란한 경험들이 정리가 되어 다시 분류되어지면서 어린 시절의 기억들은 되돌아 오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은 치료 과정에서 증세의 사라짐으로 표현이 되어집니다.

 양육의 과정 즉 발달 단계에서 심리적인 상처들과 발달의 결함이 있는지를 찾아냅니다. 가족 관계에서 그리고 학교의 동료들과의 학교 생활을 분석해서 따돌림 혹은 외톨이로 생활하게 된 상처들을 분석해서 찾아냅니다.

 정신분열증의 증세가 발발 해서 전면에 등장하기 이전에 그 환자의 어린 시절을 잘 보면 이미 사춘기 시작 전 초등학교 5학년, 6학년 시절부터 대인관계에서 문제로 동료들과 잘 어울리지 않았말이 별로 없고 너무 착한 행동으로 부모님들은 그러한 문제들을 눈치를 채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자신이 내면의 속내고통을 다른 사람들에게 절대로 밝히지 않고 참고 갈등이 생기면 피해 버리는 성격들이미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분석 치료 과정에서 밝혀진 것은 빠른 경우에는 유치원에서부터 문제가 시작된 경우들이 많습니다.

 또한 의사 소통을 어떻게 하는지를 분석해 냅니다. 대인관계에서 갈등이 생겼을 때 어떤 방식으로 해결을 해 나가는지를 찾아냅니다. 감정을 어떤 방식으로 표현을 하는지 즉 화가 나면 물건을 집어 든지거나 폭발해서 폭력을 사용하거나 혹은 문을 닫아걸고 두문불출하거나 입을 다물어 버리고 말을 하지 않거나 하는 방법들을 분석합니다. 그러나 분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이러한 분석의 결과로 나타난 결함적인 방법들을 건강한 방법으로 고치고 수정해 나가는 것이 치료의 과정입니다.

 정신분열증 환자들은 대인관계가 망가져서 사람들과 친밀관계를 어린 시절부터 피해온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어린시절의 몇몇 친구가 있다고 해도 새로운 환경에서 친구들을 사귀지 못합니다.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너무 많은 상처들을 받았기 때문에 대인관계에서 갈등이 생기면 끊어 버리고 피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그들은 결국은 고립으로 외톨이 생활을 하게 됩니다. 어린 시절부터 항상 말이 없고 모든 감정들을 참고 억압해서 자신의 문제들을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거의 없고 가족들에게도 이야기를 하지 않은 이러한 패턴들 때문에 항상 사람들과 갈등이 생기면 폭발하거나 끊어 버리고 잠수를 하거나 집안에 틀어 박혀 밖에 나가지 않고 가족들과도 관계를 하지 않는 것이 특징입니다.

 분석과정에서 나타난 어린 시절의 발달 과정을 보면 이미 유치원 때 혹은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동료들을 피하고 혼자 있게 되는 빈도수가 많아 지고 그리고 사춘기 초기인 초등학교 5학년-6학년으로 올라가면서 동료들이 자신을 보고 비판, 비난, 비웃음, 멸시, 조롱을 한다고 생각이 들어서 이미 다른 사람들의 시선, 다른 사람들의 눈치, 비위 맞추기에 신경을 쓰다가 이것이 나중에 다른 사람이 나를 욕한다, 비웃는다는 소리가 들리는 환청으로 바뀌는 것으로 바뀌는 과정 볼 수 있습니다. 치료자 한데서 치료를 받고 있는 23세의 한 청년이 이러한 정신분열증의 직전에서 다행히도 치료자를 찾아와서 정신분열증으로 발병하지 않고 지금 빠져 나오고 있는 사례에 들어가 보세요.

 의사 소통이 되지 않아서 혼자서 상상 속에 빠져서 살아왔기 때문에 이러한 마음 속에서 상처받은 생각, 느낌, 상상, 지각 들이 마음 속에서 전쟁을 하게 됨으로써 이것들이 외부로 투사되어져서(다른 사람들의 탓으로 돌리는 것) 다시 이것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다시 재 입사되어져서 자신의 귀에 들리게 되는 것(사실은 자신의 내면의 열등감의 목소리들을 다시 듣게 되고 보게 되는 것)환청환각입니다.

 머리 속에의 전쟁터에 에너지가 다 흘러가서 정작 발달 단계들을 통과 하면서 배우고 익혀야 하는 것들에 결함으로 배우고 습득해야 할 발달 단계별 과업들 즉 친구들을 사귀고 선택을 하고 판단을 하고 결정을 내리고 그리고 갈등 관계들을 해결하는 방법과 기술들에 결함으로 이후에 동료들과 비교 되어지고 뒤떨어지게 되어 피하게 된 결과지요. 즉 학교 생활과 사회 생활에 적응에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내가 성공적으로 치료를 한 58세의 부인은 10년 동안 정신분열증의 반복된 재발세 번의 정신병원의 입원으로 고통 속에 살아오다가 세 번째 재발에서 치료자 한데서 심리치료를 받은 30대 초반의 아드님(결혼해서 자녀가 있음)의 소개로 치료자에게 와서 6개월간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받은 결과 거의 회복이 되었습니다. 그녀의 환청과 환각에는 어린 시절에 계부와 친 어머니(4살 때 친부의 사망으로 엄마가 재혼)로부터 받은 학대와 이복 형제들과 편애가 깔려 있었다는 것이 분석 치료의 과정에서 밝혀졌습니다. 58세의 환청과 환각을 가지고 10년 동안 정신분열증에 시달려 온 부인의 치료 과정을 잘 읽어 보시면 위에서 정신분열증 치료를 어떻게 하는가?를 확실하게 파악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고로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환자의 환청과 환각 증세들은 모두가 어린 시절에 상처를 받아서 생긴 마음 속의 응어리들로 마음 속의 매듭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반드시 그 환청과 환각에는 의미 깊은 뜻이 들어 있습니다. 고로 그 이야기들을 듣고 그것에 대한 상처의 뿌리를 찾아가는데는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최소 6개월 이상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나는 6개월 이하의 치료를 원하는 사람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미리 6개월분 치료 비용을 받습니다. 왜냐하면 시간 마다 돈을 받게 되면 사람들은 3개월 정도는 잘 나오지만 치료 효과가 눈에 보이지 않으면 치료에 나오지 않게 됩니다. 6개월 치료 비용을 지불하고 나면 돈을 돌려주지 않기 때문에 할 수 없이 6개월은 나오게 됩니다.

 치료 시작 후에 6개월 정도 되면 치료 효과가 눈에 보이게 됩니다. 그러나 유념해야 하는 한가지는 6개월 동안 치료를 받으면 정신분열증 환자가 완치 된다는 생각은 금물입니다. 치료 효과가 눈에 보인다는 것은 불안이 감소되어, 마음이 안정됨을 보이거나, 잠을 잘 자거나, 생각이 많이 줄었다, 자신감이 생겼다는 등의 효과들입니다. 실제로 시간은 치료자와 환자 사이에 신뢰 관계와 치료자의 치료에 얼마나 잘 믿고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이 따라서 치료 기간이 결정이 됩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정신분석 혹은 심리치료 분야가 발달이 되지 않아서 전무 한 실정입니다. 마음의 병은 병이 아니다, 마음만 강하게 먹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부모들이 자녀들이 불안하면 오히려 강하게 커야 한다고 강제로 실행하도록 압력을 가하거나 물리적으로 힘을 사용하게 되는 것을 종종 봅니다. 그러한 것은 오히려 문제를 증폭시킴니다. 심리적 고통은 신체적인 고통보다 수 십배 더 고통스럽다는 말은 100년 전에 정신분석을 창조한 프로이드(Freud)가 한 유명한 말입니다. 사람들은 심리적인 고통을 참을 수 없어서 신체적 증세로써 바꾸어 버린 것이 바로 증세들입니다. 환각, 환청 역시 그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고통스런 자아가 살아 남기 위해서 그러한 증세들을 선택한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을 정신분석에서는 "자아"라고 부릅니다. 자아가 고통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환각, 환청 혹은 신경증적인 증세를 만들어낸 것으로 보시면 됩니다. 고로 그 증세들은 그 환자가 말로써 표현을 하지 못하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을 하고 있다고 보고 정신분석 학자들이나 심리 치료사들은 그것이 무엇을 상징적으로 소통을 하고 있는가?를 찾아서 그것을 표현하도록 하는 것이 정신분석의 초반기 치료 핵심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위의 방법에 더 붙여서 유아기 시절부터 발달 단계에서 생긴 자아의 결함 때문에 사회생활에서 문제가 누적되어진 것으로 보고 자아 결함과 갈등들을 수정하고 고치고 사회에 적응 능력을 길러서 사회 생활을 해 나갈 수 있도록 하는데 쪽으로 치료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심리치료나 정신분석이 발달이 되어있지 않아서 정신적인 문제들에 대해서 미신과 상식으로 귀신이 들었다고 귀신 쫓는 굿(교회에서 주로)을 하거나 죽은 조상이 해꼬지를 한다고 영혼을 달래는 제사(천도제-불교)를 지내는 것 등의 미신적인 생각들이 아직도 유행을 하고 있습니다. 부모님들 혹은 환자 자신들이 이러한 유혹에 빠져서 치료의 시기를 놓치면 시간이 지나갈수록 악화되고 발달에서 뒤쳐지게 되어 회복하기 어렵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치료자는 정신 의학심리 과학으로 치료를 해 나갑니다.

 다행히도 이제 우리나라에서는 각 대학과 대학원에서 심리치료학과 혹은 상담 심리학과 들이 생기고 공부를 하는 전문가들을 양성하고 있습니다.

 선진국 즉 미국, 영국, 프랑스 등지에서는 이러한 심리치료와 정신분석이 잘 발달되어 있어서 정신적인 문제를 가진 사람들이 여러 종류의 심리 치료들로부터 자신이 원하는 쪽으로 선택적으로 치료를 할 수 있도록 잘 발달되고 연구되어져 있습니다.

 치료자는 미국에서 대학, 대학원을 마치고 인턴쉽을 미국에서 받았고 10년 동안 공부를 마치고 우리 나라에 와서 부산 부경 대학교(과거 부산 수산대학교)에서 심리학(정신분석학) 20년 동안 강의를 하면서 심리치료를 같이 했기 때문에 총 경력이 31년째(20014 2)입니다. 각종 신경증들, 불안증과 우울증 그리고 성격장애들은 약물을 사용하지 않고 치료를 하고 있으며 정신분열증은 약물을 사용해서 환청과 환각을 제거하고 나서 심리치료를 주된 목적으로 사용하고 약물은 원한다면 보조적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환자가 약물을 거부하면 강제로 약물을 먹일 수가 없습니다. 치료자 한데서 환각을 증세를 가진 31세의 정신분열증 젊은이가 치료자에게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받으면서 약물을 거부하는 바람에 약물이 없이 순수한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1년 동안 받아서 환각이 완전히 사라진 사례가 있으니 다음의 홈 페이지에 들어가 보세요.

 치료자가 최근에 미국에서 세계적인 유명 강연자들이 강연을 하는 프로그램 중에서 (http://www.TED.Com)한 여성(엘레노어 롱든)이 정신분열증을 발병을 해서 신경정신과 의사의 약물 치료에서 절망을 느끼고 정신분석가의 도움을 받아서 환청이 어린 시절에 상처를 받은 것임을 알고 이 상처들을 치료를 받아서 회복되어 대학과 대학원에서 심리학을 전공해서 수석으로 졸업하고 심리치료사가 되기 위해서 박사 공부를 하면서 자신의 경험담을 "내 머리 속의 목소리"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해서 세계적으로 유명 인사가 된 사람을 소개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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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그녀에게 환청이 어린 시절의 상처임을 이해시키고 분석하도록 도움을 준 정신과 의사 이자 정신분석가를 소개한 본문을 인용하고자 한다.

"A consultant psychiatrist ... encouraged her to listen to her voices and try to understand what they meant."

Nina Lakhani, The Independent UK, October 25,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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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면에서 엘레노어 롱든(Eleanor Longden)은 여느 다른 학생들처럼 설레는 마음과 세상에 대한 걱정없이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그녀 머릿 속의 목소리가 이야기를 시작하지 전까지는 그랬지요. 처음에는 아무런 해가 없었지만 이 내면의 목소리는 점차 의지에 반하고 정신을 지배하여 그녀의 삶을 악몽으로 바꿔버렸습니다. 정신 분열증으로 진단받고, 약을 처방받고, 결국은 도움을 줄 방법을 몰라 의료 체계로부터 버림받았습니다. 롱든은 정신 건강을 되찾기 위한 몇 년 간에 걸친 여정과 그 목소리를 듣는 법을 배움으로써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경험을 감동적인 이야기로 전합니다. (인터넷의 소개 인용--2014, 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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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떠나 처음으로 대학교에 등교하던 날은 화창하고 넘칠듯한 희망과 낙관이 함께 한 날이었어요. 저는 학교에서 성적이 우수했고, 저에 대한 기대도 높았어요.그리고 전 매우 기쁘게 강의와 파티, 교통 표지를 훔치고 다니는 학생 생활에 입문했어요.

 
저의 이런 모습들이, 물론 속임수일 수 있어요. 어느 정도까지는 이런 적극성,수업에 참여하고 교통 표지를 훔치는 열정적인 성격은 잘 만들어지고 그럴듯하기만 한 겉포장이었어요.그 이면에 저는 실제로 매우 불행하고,불안하고, 근본적으로 두려워하고 있었어요. 다른 학생들, 미래를, 실패를,그리고 내면의 공허함을 두려워했어요.하지만 저는 두려움을 숨기는데 익숙했고, 외부에서는 모든 것에 희망적이고 열정을 가진 이로 보였지요. 이 무적의 신화는 그렇듯 완벽해서 제 스스로도 속을 정도였어요.그리고 나서 첫 학기가 끝나고 두번째 학기가 시작되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누구도 예견할 수 없는상황이 벌어졌어요.

(참고로 그녀는 이미 대학 입학 전부터 오래 전부터 심리적인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암시해 주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에 불행했고 불안하고 두려워하고 자신감이 없고 내면의 갈등을 숨기고 겉으로는 완벽한 체 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저는 세미나가 시작되자 자리를 뜨고 있었어요.콧노래를 부르고 가방을 만지작거리면서 말이죠. 전에 백여 번은 했었던 것처럼요.그런데 갑자기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렸어요."그녀가 방을 나가고 있어."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없었어요.그러나 분명하고도 단호한 그 말은잘못 들었을수가 없었어요.저는 벌벌 떨면서 책을 계단에 둔 채로 집으로 서둘러 돌아왔어요.그리고 나서 다시 그 목소리가 들렸어요."그녀가 문을 열고 있어."

이것은 시작이었어요. 목소리가 저를 찾아온 거에요.그리고 계속되었지요. 며칠 그리고 몇주, 쉬지 않고 말이에요, 제가 한 모든 행동에 대해 삼인칭으로 들려줬어요.

"
그녀가 도서관에 가고 있어."

"
그녀가 강의실로 가고 있어."중립적이고 아무런 감정도 없이, 심지어 몇 번 반복된 후에는 친근하고 안심이 되기조차 했지요.그 조용한 존재가 때로는 실수한다는 것과 이따금 숨은 감정을 반영한다는 것을 분명히 인지하고서도 말이지요.즉 예를 들어, 화가 났지만 숨겨야 할 때 종종 그랬던 것처럼 매우 능숙하게 실제로 어떻게 느끼는지를 숨겼지만그 목소리는 화난 것처럼 들렸어요.그러나 불길하거나 불안하지는 않았어요.그 시점에서 내 감정,특히 멀고 접근할 수 없는 감정들과나 사이에 소통할 그 무엇이 있다는 것이 분명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그 당시 전 치명적인 실수를 했어요. 친구에게 그 목소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그 친구가 겁을 먹은거죠. 미묘한 조절 과정이 시작되었어요.보통 사람들은 그 목소리를 듣지 않는다는 것의 의미와 제가 매우 심각하게 잘못된 것을 말했다는 사실 사이에 말이죠.그 두려움과 의혹은 금새 전파되었어요. 갑자기 더이상 처음처럼 그 목소리가 그리 친절하게 들리지 않았어요. 친구는 진단을 받아야 한다고 저를 설득했고,저는 그렇게 했구요,그것이 저의 두번째 실수였지요.

 
학점에 대해서 얘기를 좀 하고선, 진짜 문제라고 여겨진 것들 --불안, 은 자존감,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대해 얘기하자그 친구는 지루한 무관심을 보였고,그 목소리에 대해 얘기하자 돌리던 펜을 떨구고진정한 관심을 보이는 질문을 하기 시작했어요.전 관심과 도움이 절실했기에기이한 목소리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지요.그리고 전 이 시점에서 그 목소리가 항상"그녀는 제 무덤을 파고 있어."라고 말해주었기를 바랬죠.

 
정신과 의사를 소개 받았는데,그는 그 목소리의 존재에 대해 어두운 시각을 가지고 있었고,그래서 제가 얘기하는 모든 것을 잠재적인 정신병의 관점에서 해석했습니다.예를 들어, 저는 교내 소식을 전하는학교 방송국에서 일했는데 약속 시간에 매우 늦어"선생님 죄송하지만 가봐야겠어요.여섯시에 뉴스를 진행해야 하거든요." 라고 했더니 진료 기록에 제게 방송국 뉴스 진행자 라는 망상이 있다고 적어놓았습니다.

 
이 일을 시작으로 일련의 사건들이저를 따라왔어요. 제일 먼저,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고,그 뒤에 정신 분열증 진단이 나왔어요.그리고 최악이었던 것은, 제 자신과 제 장래에 대한 가망 없고 굴욕적이며 절망적인,끔찍하고 고통스러운 감정이 찾아온거에요.

그러나 그 목소리를 일상 경험이 아니라 병리 증상으로 보게 되면서그에 대한 두려움과 저항은 더욱 가중되었어요. 필연적으로 제 의식에 대해서호전적 태도를 갖게 되었어요. 일종의 정신적 전쟁이었죠.그러자 목소리가 들리는 횟수가 더욱 잦아졌어요.그리고 점점 적의와 위협의 수위가 높아졌어요.무기력하고 절망스러운 나머지 저는이 악몽같은 내면 세계에 굴복하기 시작하였고 결국 그 목소리는 운명적으로 저의 박해자이자 유일하게 인지되는 동반자가 되었어요. 예를 들어, 그 목소리들은 제가 도움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지를 증명하면 제 삶을 이전의 상태로되돌려 줄 수 있다고 했고, 헤라클레스만이 능히 해낼 수 있을 법한 기괴한 일들이 연속해서 일어났어요.아주 작은 것부터 시작했어요. 예를 들면,머리카락 세 가닥을 뽑는 것같은 거죠.하지만 점점 더 극단적인 것으로 발전해, 최고조에 이르자 자해를 지시하는 수준이 되었고,특별히 극적인 지시가 내려졌어요.

"
저기 저 강사 보이지?저기 물컵 보이지?좋아, 저 강사에게 가서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컵에 든 물을 부어버려."

실제로 그렇게 했고, 말할 필요없이교수님들은 저를 싫어했지요.

그 영향으로 잔인한 두려움회피,불신오해순환이 반복되었고,이 전쟁은 저를 무기력하게 만들고 아무런 평화나 화해도 찾을 수 없게 되었어요.

 
2년 후, 악화된 상태는 볼 만했어요.지금까지 저는 모든 광적인 레퍼토리를 모두 갖고 있었어요. 겁나는 목소리, 기괴한 환영, 괴상해도 떨칠 수 없는 망상들. 제 정신 건강 상태는 차별과 언어 폭력,그리고 육체적이고 성적인 폭행의 근원이 되었고, 정신과 의사는 저에게"엘레노어, 차라리 암에 걸리는게 나아, 암은 정신 분열증보다 고치기 쉽거든." 라고 하더군요. 진단받고 약도 처방 받았지만 결국 포기했고, 이제는 그 목소리로 인한 고통이 너무 심해 제 머리에 구멍을 뚫어그들을 꺼내 버리려고까지 했어요.

 
이제와 그 파괴되고 절망스러웠던 그 시간들을 뒤돌아보면 누군가는 그 자리에서 죽고, 동시에 누군가는 살아남은 것처럼 보여요.부서지고 무언가에 홀린 사람이 그 여정을 시작했으나그 길에서 벗어난 사람은 살아남은 자였고,결국은 제가 목표했던 사람으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제 인생에서 많은 이들이 저를 다치게 하고 그들 모두를 기억하지만 저를 도와주었던 이들의 기억에 반해그 기억은 점차 희미해지고 잊혀졌어요. 동반 생존자들, 내 말을 들어준 이들, 친구들과 협조자들, 저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셨던 어머니, 어머니는 언젠가 제가 그 분에게 돌아올 걸 믿었고그것이 얼마나 긴 시간이 걸릴지라라도 말이에요. 의사 선생님은 짧은 기간만 저를 치료해 주셨지만 저에게 회복이 가능할 뿐 아니라꼭 이루어질 거라는 믿음을 주셨고,충격적이었던 재발 기간 동안 두려워하는 제 가족들에게 "희망을 버리지 마세요,저는 엘레노어가 이 시기를 이겨낼 거라고 믿어요.아시죠, 때로는 5월에도 눈이 내리지만결국 여름은 오기 마련이에요." 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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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이란 이 짧은 시간은 모든 친절하고 고마운 이들, 내 편에서 나를 위해 싸워주고 괴롭고 외로운 곳에서제가 돌아올 것을 기다려 준 이들 모두를 말씀 드리기에는 부족한 시간이에요. 이들은 모두 함께 용기와 새로운 아이디어, 존엄성과 산산 조각 난 제 자아가 치료되고 재결합될 수 있다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결합을 만들어주었어요.이들이 저를 살렸다고 말하곤 하지만,이제 사 제가 알게된 것은, 그들이 한 일들이제 자신을 살리도록 힘을 불어넣어 준 것 그 이상이고, 결정적으로 그들은 제가 늘 의심하던 어떤 것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었어요.그 목소리가 제 인생의 트라우마로 남은 기억들,특히 어린 시절의 기억들에 대한 의미 심장한 반응이고, 그것이 나의 적이 아니라 해결 가능한 감정적 문제에 대한 직관의 근원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어요.

사실 처음에는 믿기 어려웠어요.특히 그 목소리들이 적대적이고 위협적으로 나타났기 때문에 이 점에 있어서 제가 내디뎠던 가장 중요한 첫발은 은유적인 의미를 제가 알고 있었던 문자그 대로의 의미로부터 구분해 내는 것을 학습하는 것이었어요.예를 들어 우리 집을 공격하겠다고 위협하는 목소리는 실제적인 구체적 대상의 위협이 아니라 내면의 두려움과 세상에 대한 불안한 감정들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처음에는 그 목소리들을 믿어야 했어요.한 예로, 어느 날 밤 부모님의 방을 지키려고 깨어 앉아있었던 생각이 나요.그 목소리의 위협이 실제 협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자해의 위험이 있었기 때문에 집안의 식사용 칼, 포크는 대부분 숨겨져 있었어요.결국 저는 플라스틱 포크로 저 자신을 무장했어요.그 소풍갈때 들고 가는거 말이에요, 그리곤 방문 앞에 앉아무슨 일이 일어나면 즉시 대응하려고 했지요그건 마치 "까불지마.나한테 플라스틱 포크가 있어, 알지?" 라고 하는 것 같았죠.나름 전략적이었죠.

 
하지만 그 이후의 대응은 훨씬 더 유용했는데, 문장 이면의 의미를 재구성해보려고 노력했어요. 그래서 그 목소리가 집을 떠나지 말라고 경고 하면, 내가 얼마나 불안해하고 있는지를 알게해주어 감사 하다고 느꼈지요. 제가 깨닫고 있으면 긍정적인 대응을 할 수 있으니까요. 그 목소리와 제 자신에게 모두 우리는 안전하고 더 이상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고 안심시켰습니다. 그 목소리에 대한 경계를 정했고, 당당하지만 존중하는 태도로 그 목소리에반응하려 노력했어요.소통과 협력의 관계를 서서히 수립하고, 함께 일하고 서로를 도울 수 있는 방법배우기 위해서였죠.

 
이 모든 과정을 지나, 궁극적으로 깨달은 것은 각각의 목소리가 저의 다양한 모습들,그 하나 하나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그 각각은 압도적인 감정을 지니고 있어서 저는성적인 트라우마(상처)성희롱기억들,분노, 수치, 죄의식, 낮은 자존감 같은 것들을 진행하거나 해결할 수 있는 기회조차 갖지 못했습니다. 그 목소리는 이 아픔들의 자리를 차지하고 각각에 그 말들을 전해 주었던거에. 그리고 가장 큰 수확 중 하나는가장 적대적이고 공격적인 목소리의 대부분이 실제로는 마음 깊은 곳에서 받았던 상처를 대변한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점입니다.그리고 그 말인 즉슨, 이 목소리가가장 위로와 보호가 필요하다는 얘기지요.

 
이런 깨달음으로 무장하게 되자,결국 각각의 조각이 서로 다른 목소리를 반영하는제 산산 조각 난 자아를 하나로 모아 점차 모든 약을 끊고 정신과 의사를 다시 찾았습니다.이제는 다른 사람이 되어서요. 그 목소리가 찾아온지 십 년만에심리학 전공으로 대학에서 줄 수 있는가장 높은 점수를 받고 졸업한 뒤, 일년 후에는 최우등생으로 석사를 마쳤습니다. 미친 여자에게 그리 나쁘지 않은 거라 할 수 있겠네요.사실은 목소리 중 하나가 실제로 시험보는 동안 답을 알려줬어요.아마도 컨닝으로 판단될 수도 있을거에요.

(
웃음)

솔직히 말해 가끔 그 목소리의 관심을 꽤나 즐기기도 했어요.오스카 와일드가 말했듯이, 이야기의 대상이 되는 것보다 나쁜 것 단 하나는, 이야기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것이니까요. 또한 엿듣는 데에도 도움이 됩니다.동시에 두 대화를 들을 수 있거든요.그러니까 다 나쁜 것만은 아니에요.

 
전 정신 보건 단체에서 일했고,학회에서 강연도 했고,책도 내고 논문도 쓰고, 논쟁하고 또 계속 그렇게 할 겁니다. 이 개념의 타당성을 입증하기 위해서요. 정신 의학에서 중요한 질문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가 아니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물어야 한다는 것(과거 어린 시절의 상처를 분석하고 치유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항상, 저는 제 목소리를 듣습니다. 마침내 평화롭게 서로 존중하며 살기로 깨닫고,그 보답으로 제 자신에 대한 연민과 긍정, 그리고 존경심을 보답해 주는 그 존재 말이지요.그리고 가장 가슴 뭉클하고 특별한 순간을 기억합니다.내면의 목소리로 인해 철저히 파괴된 한 젊은 여성을 도왔을 때,처음으로 온전히 이해했습니다.제가 더 이상 그 상황에 처해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마침내 나랑 같은 처지의 다른 이를 도울 수 있는 경험자가 되었다는 것을요.

저는 이제 인터보이스의 일원이 된 것 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요."국제 목소리 듣기 운동" 이라는 이 단체는 마리우스 롬 교수와 산드라 에셔 박사의 탁월한 업적에 의하여 설립되였어요.우리는 목소리 듣기를 생존 전략으로써 정신 이상 상황에 대해 이성적인 대응은 정신 분열증의 비정상적인 증상을 견뎌야 할 것이 아니라 탐구해야 할 복잡하고도 분명하며 의미있는경험이라고 보고 있어요. 우리는 함께 목소리 듣기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사회를 꿈꾸고 또 이를 위해 노력합니다.목소리를 듣는 이들의 필요와 온전한 시민으로써의 가치를 지지합니다.이러한 사회는 가능할 뿐만 아니라, 이미 그 단계에 와있어요.차베스 대통령의 말을 옮기자면,사회의 변화가 시작되면 되돌릴 수 없습니다. 자부심을 느끼는 사람을 모욕할 수는 없어요.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을 억압할 수는 없어요.

 
저에게는 국제 목소리 듣기 운동의 성과가 공감과 교제, 정의와 존중 이말에 앞선다는 것을 새삼 일깨워줍니다. 이는 확신이자 믿음이고,그 믿음은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지난 20년 간 목소리 듣기 운동은 목소리 듣기 네트워크를 5대륙에 걸쳐 26개 국가에 설립했어요.존엄과 연대, 그리고 정신 질환자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함께 일하며,개개인의 힘을 믿는 흔들리지 않는믿음을 한가운데에 두고새로운 언어를 만들며 희망을 연습하고 있어요.

 
피터 레빈이 말했던 것처럼,인간이란 동물은 특별한 존재로 본능적으로 치유할 수 있는 능력과이런 내적인 능력을 보호하는 지적인 영혼을 갖춘 존재입니다.이런 점에서, 사회의 구성원들에게는 증인이 되어주고, 손을 내밀고,그가 겪는 짐을 나누며 회복에 대한 희망을 붙잡아 누군가를 치유하는 과정을 돕는 것처럼 더 큰 영예와 영광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고통과 역경을 이겨낸 이들에게는우리에게 일어난 일들로 인해 손상된 것으로 정의된 삶을살 필요가 없다는 것을 기억하게 해주지요. 우리 개개인은 특별해요 우리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우리 안에 있는 그 무엇도우리를 지배하거나, 조종하거나, 빼앗을 수 없어요.그 빛은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아주 훌륭한 정신과 의사이자 정신분석가가 가 저에게 말했듯이 말이에요."다른 사람이 당신에 대해 이야기한 것 말고, 당신에 대해 얘기해 주세요."(환자의 생각, 느낌, 상상, 지각, 감각, 아이디어 등을 말로써 표현을 해 주세요--치료자가 삽입한 부분임)

감사합니다.


참고: 엘레노어 롱든(Eleanor Longden 30분 강연를 듣고 직접 듣고 싶은 분은 다음의 홈 페이지에 들어가보세요.

http://www.ted.com/talks/lang/ko/eleanor_longden_the_voices_in_my_head.html

 https://blog.naver.com/psychclinic/2215017057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