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는 공황 장애

 

치료자(필자)는 공황 장애에 대한 글을 블로그에서 몇 번 썼다. 첫 번째 글은 공황장애의 모든 것: 공황장애 뿌리뽑기 (2015,11, 27), (2015, 12, 10), (2015, 12, 30), 그리고 공황장애의 모든 것: 공황장애의 뿌리뽑기 Ⅰ, , (2016, 1, 7) 그 다음에 다시 쓰는 공황장애(2018.6, 16)가 있다. 그리고 치료자의 정신분석 심리치료의 홈 페이지의 21개의 정신장애들(불안증, 우울증, 정신분열증(조현병), 자아 장애들(성격장애), 왕따, 심인성질환, 대인공포증, 가족치료, 부부치료, 거식증과 폭식증, 보드라인 장애, 섹스 치료, 인터넷 중독, 아토피와 비염과 천식, 재발하는 고질병(심리신체 질병) 등등에 대한 각각의 홈 페이 중에서 공황장애와 공포증의 홈페이지(2012, 7, 4)에서 이미 학자들의 공황장애 역사, 공황장애의 학술적인 연구, 공황장애의 특징들과 치료자의 실제 치료의 사례들을 올려 놓은 공황 장애 홈페이지를 운명해 오고 있다. 그런데 최근에 새로 알게 된 몇 가지 정보들을 가지고 공황 장애의 재방문 즉 다시 보는 공황장애라는 글을 쓰게 되었다. 물론 중복되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공황장애라는 그 정신장애 자체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최근에 알게 된 몇 가지 정보들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공황장애의 환자 수가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최근에 발표된 보건복지부 산하 건강보험 공단과 국민건강심사 평가원에서 나온 공황장애 환자들에 대한 정보이다. 조선비즈의 인테넷 기사(허지윤 기자: 2018, 6, 6)를 인용하고자 한다.

최근 ‘공황장애’로 병원을 찾는 환자 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습니다심사년도 기준 2013 93080명에서 2017 144943명으로 늘어났습니다 ---- 세대별로 보면 공황장애 환자는 40대가 가장 많고 이어 50, 30, 20, 60, 70, 10 순으로 나타났습니다-----기존 문헌에는 주로 20대에 ‘공황장애’가 가장 많이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40~50 중년층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이에 대해 국민건강보험공단은 ‘한국의 중년층이 갖는  스트레스’를  원인으로 지목했습니다.----- 최근 70 이상 연령대에서도 공황장애 환자가 늘었습니다. 2016 70 이상 남자 공황장애 환자 수는 26939여자 환자는 38034명이었는데 작년의 경우 남자 환자 3436여자 환자 41069명으로 앞자리 숫자가 늘어났습니다.

두 번째는 인기 연예인들 즉 TV 탤런트들 중에서 공황장애의 숫자가 역시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유명인이기 때문에 TV와 영화 그리고 드라마 등에서 자주 출현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쉽게 눈에 띈다는 점이다. 유명세를 타는 사람들의 공황장애 숫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무명으로 눈에 띄지 않는 일반인들에게는 얼마나 심각하겠는가? 하는 말이다. 그들 중에서 이미 오래 전부터 잘 알려진 박항서 축구감독도  방송에 출연해 과거 경기에 대한 심한 스트레스로 ‘공황장애’를 겪었다고 고백했습니다김구라정형돈이경규이상민  지금까지 공황애 사실을 밝혀온 연예인도 상당수입니다(TV 조선기사 인용: 2018, 6, 6). 또한 몇 일 전(2019, 2, 12) TV 인기 탤런트인 손승원이 공황장애라고 보도된 바 있다, 무면허 음주 뺑소니 사고로 구속된 배우 손승원이 공황장애 등을 이유로 보석을 신청했다(MBN스타 대중문화부, 2019, 2, 12).

 이들 TV 연예인들은 이미 수년 전에 공황장애로 몇 년 동안 약물을 복용하고 있다는 기사들을 참고하면 몇 년 동안 약물을 복용해도 역시 공황장애를 달고 다니고 있다는 말이 아닌가? 그들이 말을 하고 있는 것은 공황장애로 약물을 복용하고 있다는 말이 그것을 증명해주고 있지 않는가? 공황장애가 감기약처럼 효과가 있다면 1년 혹은 2년의 약물 치료로 완치가 되었다는 기사들이 넘쳐날 것인데 그러한 소식이 없다는 점에서 약물은 위기를 넘기는데 도움이 되지만 근본적인 치료가 어렵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

 치료자가 유추를 해 볼 때 위에서 언급한 TV 탤런트들이 공황장애로 기존의 TV 프로그램에서 하차를 했다가 6개월 혹은 1년 후에 회복되었다고 복귀를 하는 것을 보면서 그들이 받고 있는 약물 치료와 함께 프로그램에서 하차를 해서 최소 6개월에서 최대 몇 년 동안 휴식을 하면 공황장애가 눈에 띄게 사라진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의 치료는 약물에 의존해 있기 때문에 휴가로 인해서 쌓인 긴장이 해소되면서 신체적으로 누적된 스트레스가 풀리면서 공황장애가 사라진 것이다 라는 점이다. 그들이 복귀해서 몇 년 동안 긴장과 스트레스가 쌓이게 되면 또 다시 언제든지 공황장애가 등장한다는 점을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왜냐하면 그들은 공황 장애의 근본적인 원인을 제거해서 삶의 스타일을 변화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황장애는 과거의 상처가 원인이 되고 그것을 찾아내서 제거를 하고 그리고 기존의 행동 스타일에서 긴장의 누적 원인을 찾아내서 그것을 수정하고 새로운 스트레스 해소 방법으로 고치지 않으면 즉 과거의 행동 스타일은 수정되지 않으면 신체적으로 누적되어 위기 상황이 되면 다시 공황장애가 재등장 한다는 것이다.

 위의 정보들을 바탕으로 해서 정신분석학의 관점에서 정신분석가들은 공황장애의 원인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그리고 공황 장애의 근본적인 치료의 과정을 살펴 보고자 한다. 정신분석에서는 모든 정신 장애를 과거의 정신적인 상처가 원인이 된 것으로 본다. 심리적인 상처는 고통스럽기 때문에 그것을 피하려고 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이것이 말해주는 유명한 경구는 프로이트가 늘 자주 사용했던 말들이다. 동물들은 고통을 피하고 즐거움을 찾는다. 인간이나 동물들은 고통을 싫어하고 피하려고 한다, 사람들은 과거의 고통스런 기억을 잊어버리려고 한다 그래서 세월이 약이다 라는 말들이 유행을 했다. 노래의 가사에 세월이 약이 겠지요라는 구절이 그것이다. 1993년 국민가수 송대관의 세월이 약이겠지요 라는 음반의 가사를 인용하고자 한다. 세월이 약이겠지요, 당신의 슬픔을, 괴롭다 하지말고, 서럽다 울지를 마오, 세월이 흐르면, 사랑의 슬픔은, 잊어버린다, 이 슬픔 모두가 세월이 약이겠지요. 라는 노래 가사가 한때 유행을 했다.

 고통스러움을 잊어버린다는 것은 회상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 노력으로 시간이 지나가면 잊혀지지만 그러나 그것은 기억 속에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우리는 망각으로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지워진다고 잘못 알고 있다) 무의식 속에 밀어 넣어서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다가 최근에 현실적 자아(ego)가 약해지면 최근의 유사한 자극이 과거의 억압된 오리지널과 연결되어 두 개의 자극의 힘이 합쳐져서 지금까지 무의식 속에서 억압되어져 눌려있던 힘들이 누르는 압력(자아의 힘)이 약해진 틈을 타서 다시 의식으로 떠 오르게 되면서 오리지널 상처에 놀랜 자아는 그것을 담당할 수 없기 때문에 타협으로 본인이 모르는 증세로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

즉 그 사람은 그 증세가 과거의 상처의 오리지널이라는 것을 모른다. 고로 그는 증세 그 자체만 보기 때문에 고통스럽지만 그 상처의 오리지널은 보지 못하기 때문에 죽을 지경이지만 참을 수는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참아야 하는 그 고통의 대가는 지불해야 한다. 그것이 신경증이다. 그러나 만약에 자아가 타협을 하지 못하고 그 오리지널 상처가 의식에서 그대로 노출되면 그것은 정신증(정신분열증(조현병), 편집증, 조울증)이 된다는 것이 정신분석가들의 주장이다. 그것이 어떻게 사실인지 증명해 보라고 하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정신분석은 증명을 하는 학문이 아니기 때문에 가장 취약하다고 이구동성으로 말을 하지만 그러한 환자들의 그 원인을 제거할 때 증세가 사라지고 이후에 다시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 바로 그러한 설명이 타당하다는 증거가 아닌가?

 치료자는 공황장애를 위의 정신분석가들의 연구를 바탕으로 치료를 하고 있다.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은 공황장애 환자들은 시간이 많이 흘렸지만 그들은 치료 후에 5년 혹은 10년이 지나고 나서 그들로부터 안부 전화를 받거나 혹은 우연히 연결이 되어 그들의 장애들에 대해서 물어 보았을 때 그들은 더 이상 증세의 재발이 없고 지금은 건강하게 잘 살고 있다는 소식을 종종 듣는다. 이번에 공황장애의 재방문 이라는 글을 쓰게 된 동기가 7년 전에 공황 장애로 5년 동안 집안에 갇혀서 두문불출하고 지내던 37세의 노처녀가 치료자에게 공황장애 치료를 받고 나서 7년 후에 지난 달에 우연히 전화 통화를 통해서 그녀는 결혼을 했고 그리고 남편과 잘 지내고 있고 지금은 약국에 취업을 해서 잘 지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 최근에 알게 된 새로운 정보를 바탕으로 공황장애를 재방문 하게 된 것이다.

 프로이트는 그의 논문에서 정신분석이 미래에 많은 다른 학문들과 경쟁하고 통합하고 지원을 받게 되어 다른 학문의 분야들로 확대되어갈 것이라고 예견을 했다. 그가 죽기 전에 이미 그러한 예견들은 정신분석이 문학, 인류학, 범죄학 그리고 신화를 연구하는 학자들에 의해서 통합되어지고 그리고 미술과 음악의 분야에서 추상화와 입체 미술과 전위 음악으로 등장을 했었다. 이들은 정신분석학이라는 학문이 없으면 해석하고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을 그것이 말해주고 있지 않는가? 프로이트의 그 예언 이후에 100년의 세월이 흘러갔고 정신분석을 수용한 새로운 학문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 중에 눈에 띄게 등장한 학문이 신경생리학이다. 자아를 뇌 과학으로 연구하는 학문인 신경회로-영상학이 그것이다. 각종 첨단 장비들 즉 MRI, PET(양전자 단층 촬영기술) 등의 장비들을 동원해서 뇌의 영상을 눈으로 볼 수 있게 됨으로써 뇌의 세포들이 어떻게 서로 정보를 전달하고 통합을 하는가?를 통해서 자아의 현상들을 연구하게 되었다. 더 붙여서 뇌의 기억을 연구 하는 기억학과 의사소통을 연구 하는 커뮤니케이션 학문들이 그것이다. 그들의 최근 연구들을 통해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이론을 지지해주는 각종 실험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들의 새로운 학문들은 컴퓨터가 등장함으로써 가능해진 학문들이다. 그들이 등장한 시기가 1990년이 이후로 2000년을 넘어가면서 21세기에서 등장을 한 새로운 학문들이다라는 점이다.

 다시 공황장애의 본질로 들어가보자. 이미 오래 전부터 강조를 했던 것처럼 공황장애는 불안증 속에 포함되어져 있다. 불안증은 고대, 중세에는 없었던 장애이다. 불안증과 비교 대조가 되는 장애가 바로 우울증이다. 우울증의 연구를 한 학자들의 논문들은 우울증이 고대 그리스 시대 때부터 이미 존재를 했다고 노트하고 있다. 그 당시에는 우울증을 멜랑꼴리아 라고 불렀다. 멜랑꼴리아 라는 말을 신조어로 최초로 사용한 사람이 바로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이다. 그리스어로 멜랑꼴리아 라는 말은 검은 쓸개라는 뜻이다. 그는 멜랑꼴리아를 쓸개진의 과다 방출로 보았다. 다음의 글은 컬럼비아 의과 대학 교수인 지오그라타(Georgotas)와 칸크로(Cancro)의 저서 우울즈과 조증(1988 :(주㈜: 참고)에서 인용한 글을 소개한다.

우울증과 조증(조울증, 1994년의 DSM-Ⅳ에서는 조울증 대신에 양극성 장애)의 초자연적 기원은 바비로니아, 이집트, 유태와 같은 고대 문화에 의해서 다루어지고 있다. 구약 성서의 사무엘 왕의 우울증은 신이 보낸 악령에 의해서 고통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하느님은 다윗에게 음악 치료를 제공함으로써 치료를 했다. 고대 중국에서 진나라 시대 이전에 최초의 의학 책인 내청(Nei Ching)에 우울증을 자연적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문화적으로 수용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미 그리스 시대 이전에 우울증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다시 그리스 시대의 우울증의 이야기로 되돌아 가보자. 우울증의 그리스 시대의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를 위의 두 교수들이 소개를 하고 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로 신의 처벌로 니오베(Niobe)는 영원이 돌로 변한 인물이다. 돌과 같이 표정이 없는 얼굴이 우울증을 묘사한 기록이다. 그녀의 14명의 자녀들이 모두 아폴로와 아르테미스에게 죽음을 당한 후에 과도한 애통함 때문에 얼굴 표정을 잃었다. 단지 2명의 아들만 가진 아폴로의 어머니 리토(Lito) 앞에서 14명의 자녀를 가졌다고 자랑을 한 죄로 리토의 분노 때문에 처벌을 받은 것이었다. 호머(Homer)는 서사시 일이아드(Iliad)에서 아가메몬에 대한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노래하면서 조증을 사용하고 있다. 조증은 그리스어로 분노란 뜻이다 즉 그리스어의 조증(mania)는 영어로 분노(wrath)이다. 우울증은 분노와 관계되어져 있고 조증은 우울증의 반대로 나타난 것을 보여주고 있다. 조울증은 조증과 우울증이 교대로 나타나는 정신장애이다. 이미 그리스 시대부터 조울증의 조증과 우울증은 두 개의 증세들로 정 반대로 나타나지만 그 뿌리는 우울증에서 시작되는 한 개의 장애임을 밝히고 이다.

우울증과 대조되는 불안증, 불안 장애는 19세기 후반기의 산업사회의 부산물로 나타나게 된다. 1840년부터 1870년에 영국에서 시작되어 전 유럽으로 확대되어진 산업혁명의 부산물로 등장한 것이 불안장애이다. 학자들의 연구 논문에 의하면 최초로 의학계에 등장한 것은 불안증, 불안장애의 이름으로 등장한 것이 아니고 심장 급박증으로 이미 등장을 했었다고 보고 하고 있다. 미국의 남북 전쟁 때 군인들 사이에서 심장이 뛰고 얼굴이 창백해지고 죽음을 호소하는 사람들을 치료한 군의관인 다코스타(Dacosta) 1871년의 보고서에서 그는 약 300여명의 이러한 증세를 호소하는 군인들에 대한 치료 기록을 의학계에 보고를 했다.

그는 군인들 한데서 다음과 같은 공통적인 증세들을 발견을 했다. 군인들이 심장이 벌떡거리고 호흡이 곤란하고 질식 사태로 숨이 막히는 현기증 현상을 그가 발견을 하고 이것을 심장이 화가난 것으로 심장이 짜증을 낸 것으로 기술을 했다. 이후에 제 1 차 세계 대전과 제 2 차 세계 대전으로 다코스타가 발견한 것과 유사한 전투 활동과 격렬한 신체 활동에서 개발되어지는 것으로 스트레스가 촉진 요인으로 보았다. 이후에 이름이 신경순환쇠약증으로 이름이 붙여졌다. 눈에 띄는 심장혈관의 특징을 가진 불안한 상황의 옛날 용어였다. 프로이트가 불안 신경증을 연구하는 비슷한 시절에 독일의 정신과 의사인 웨스트팔(Westphal, 1871)이 사람들이 시장이나 분비는 교회 혹은 극장에 갈 수 없는 사람들을 광장 공포증(agoraphobia)이라는 이름으로 학계에 보고를 했다. 그리스어로 아고라(agora)라는 말을 시장이라는 뜻이고 포이바(phobia)라는 말을 그리스의 공포의 신에서 조합이 된 말로 광장 공포증이 공포증의 대명사로 등장하게 된다(Barlow,1988).

1950년대에 들어와서 로스(Roth, 1959)공포증 불안으로 135명의 환자의 지각 분석으로부터 이 증후군을 이름을 붙이고 불안장애에서 공황장애를 분리 시켰다. 1967년에 미국의 정신장애의 진단과 통계 분류 지침서인 DSM-Ⅱ에서 불안 신경증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그러나 불안장애에 수 많은 장애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불안 신경증의 이름이 부적당하다는 어려움 때문에 1980년의 DSM의 세 번째 수정판에서 불안장애로 이름이 바뀌었다(Barlow, 1988: 주㈜: 참고). 그 때 불안장애는 일반 공포증, 특수 공포증, 일반화된 불안장애, 광장 공포증, 대인공포증, 공황장애, 강박사고 강박행동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그리고 급성 스트레스 장애의 9 개의 장애로 분류되어졌다. 이것이 2013 5월에 DSM-Ⅴ의 등장으로 강박사고 강박행동 장애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너무 광범위한 장애로써 독립된 장애로 불안장애로부터 독립되어졌다.

혈관규제신경쇠약, 신경증심장박동 항진증, 혈관움직임 신경증 그리고 신경쇠약증 등으로 쓰이다가 1980년에 와서 처음으로 공황장애로 통일이 되어져서 사용하게 되었다(Barlow, 1988).

 공황장애는 불안증의 소속으로써 시작되었다는 것은 이미 앞에서 노트를 했다. 불안증의 심리과학적인 연구는 프로이트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프로이트가 처음으로 불안 신경증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1890년대에 유행을 했던 히스테리아 신경증, 강박 신경증, 신경쇠약 신경증 그리고 불안 신경증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게 되면서 10년 동안 그들의 연구와 치료를 한 결과 20세기 초반기에 그는 이들 신경증들의 핵심 원인을 섹스 욕구의 억압과 변장으로써 설명을 한 것이 바로 정신분석의 핵심인 섹스심리학(psychosexual)이었다. 그는 히스테리아 신경증은 섹스 욕구에 상처의 결과(어린 시절에 섹스학대, 신체적 학대의 결과로 발병)으로 강박 신경증은 섹스 욕구의 억압(강박증은 의지의 힘으로 컨트롤되지 않는 섹스 욕구의 억압의 결과)으로. 신경쇠약 신경증은 섹스 욕구의 저하로 인한 섹스 에너지의 소진, 고갈) 그리고 불안 신경증은 섹스 욕구를 감당할 수 없는 놀램(자위행위 강박증이 불안증의 특징)으로 보았다(Ernest Jones, 1953, 1955, 1957; Ellenberger, 1970: 주㈜: 참고).

프로이트는 1917년에 불안 공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불안 공격은 혼자 있으면 불안하다는 느낌으로 구성되어져 있다. 어떤 연결되는 연상 되는 아이디어가 없다. 해석을 동반하지 않는다. 삶의 소멸 혹은 한 개의 뇌졸증 혹은 미침의 위협에 가깝다. 불안의 느낌은 신체 기능의 한 개 혹은 그 이상의 혼란과 연결되어있다. 예를 들어서 호흡 곤란, 심장 박동의 항진, 혈관 운동신경 같은 혹은 내분비 호르몬 활동 등 이런 혼합으로부터 그 환자는 지금 또 다른 요소를 끄집어 지적을 한다, 심장의 경련을 불평을 한다, 호흡 하기가 어렵다, 땀이 난다, 그의 기술 안에서 불안의 느낌들은 종종 뒤 배경 안으로 들어가버린다", 프로이트의 불안 공격은 바로 공황 공격을 의미하고 있다(Barlow, 1988).

 하버드 대학의 정신과 교수이나 정신분석가인 벰포라드(Bemporad, 1978)는 그의 스승인 펜실바이아 의과대학의 아르에티(Arieti)교수와 함께 쓴 심한 우울증과 가벼운 우울증(1978: 주㈜: 참고)이라는 저서에서 프로이트는 처음부터 우울증을 연구한 것이 아니고 그가 20세기에 들어가면서 그의 핵심 연구는 불안 신경증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후에 그의 제자인 독일의 정신분석 학회 회장인 칼 아브라함(Karl Abraham)이 우울증을 정신분석으로 연구를 한 논문에 자극을 받아서 프로이트는 불안증의 연구에서 드디어 1917년에 그의 우울증의 연구의 백미로 손꼽히는 애도와 멜랑꼴리아라는 명작을 우울증의 연구로 내 놓았다(치료자의 우울증 홈페이지에 애도와 멜랑꼴리아는 20세기의 우울증의 최고의 논문이라는 샌프란시스코 의과대학의 토마스 오가덴(Thomas Ogden, 2005: 주㈜: 참고)의 논평을 보라).

 위에서 밝힌 학자들의 주장처럼 불안증의 소속인 공황장애는 심장의 박동과 그리고 호흡과 그리고 죽음과 관계되어져 있다. 공황이라는 영어의 페닉이라는 용어인 panic은 그리스의 신(God)의이름인 팬(Pan)에서 따온 말이다. 팬은 인물이 괴상하게 생겼기 때문에 추물로써 사람들의 싫어함 때문에 사람들을 피해서 덩굴 숲에서 숨어서 살다가 그 옆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를 놀라게 하면 비명을 질러서 사람들을 놀라게 해서 죽음으로 보복을 한 신화에서 나온 이름이 공황 장애라는 낱말이 되었다(Barlow, 1988). 여기에서 보듯이 공황 장애라는 말 속에는 깜짝 놀람심장호흡질식 죽음과 연결된 것을 볼 수 있다.

공황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순간적으로 갑자기 호흡이 막히고 질식을 느끼면서 어지러움, 현기증, 메스꺼움, 구토. 땀이 나고, 가슴이 답답하고, 꽉 조이는 통증을 혹은 심한 경우에는 기절, 졸도를 하는 경우도 있다. 머리 속이 하얗게 되면서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고 순간적으로 대응해 나갈 수 있는 대응 기재가 마비되어 자아가 속수무책으로 죽음 앞에 굴복하는, 돌 아이가 되는 것으로 묘사되어지고 있다. 이들은 순간적으로 심장마비가 오는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되어 죽음을 연상하게 된다는 것이 특징이다.

이처럼 공황 장애는 우울증에 비교를 한다면 우울증은 에너지 고갈로 두문불출하고 기력이 소진되어 움직이기 싫어하고 입맛의 상실과 의욕상실과 삶의 희망의 상실로 무기력해져서 흥미를 가지고 관심을 가진 일들에 무관심하고 자신감의 상실로 무능력함의 3 () 무기력, 무관심,무능력이 특징인데 비해서 불안증의 하나인 공황 장애생각이 너무 많아지고 과도한 긴장 때문에 휴식을 가질 수가 없다는 점이다. 늘 죽음의 문턱에서 들락날락해서 공포두려움이 특징이다. 공황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밤과 낮이 거꾸로 되는 경향이 있어서 낮에는 잠을 자고 밤에는 잠이 오지 않아서 수면장애자가 많다. 잠을 자야 한다고 수면과 씨름을 하면 사람을 절대로 잠을 잘 수가 없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우울증이 생각이 없고 무감각해지는 것과 반대로 공황장애는 너무 많은 생각 때문에 뇌가 과도하게 많은 생각들 때문에 휴식을 가지지 못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고로 우울증보다 고통은 몇 배 심각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우울증을 정신장애에 감기라고 부르지만 실제로 이러한 우울증 대부분이 제 2 차 우울증으로 다른 일들이 마음 먹은 대로 잘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생긴 우울증이 대부분이라는 점에서 우울증 보다 더 고통스럽고 삶에서 치명적인 상처를 준다는 의미에서 불안증의 공황 장애는 우울증보다 몇 배가 더 고통스럽기 때문에 심리치료를 찾는 사람들은 우울증보다 불안증이 많다. 밤과 낮이 거꾸로 되어 밤에 잠을 잘 자지 못하게 되면 잠자는 시간이 많아서 10시간 이상 잠을 잔다고 해도 숙면을 취할 수가 없기 때문에 휴식을 가질 수가 없다는 점이다. 또한 불안증은 생리적인 현상들을 많이 동반한다는 것은 이미 공황 장애가 심장과 호흡과 내장 기관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져 있다는 점 때문에 불안장애 즉 공황 장애를 장기간 방치를 하게 되면 심장과 혈관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지적하고자 한다. 10년 이상 불안장애를 가지고 고전한 경우의 사람들이 대부분이 심장에 문제(심장 보조작동기를 달고 다님)가 많고 생리적으로 호르몬 불균형으로 각종 신체화 장애들이 많았다.

치료자에게 심리치료를 받았던 많은 불안장애자들 중에서 대부분이 두통, 소화기 계통의 장애들, 아토피와 비염과 천식 그리고 요통, 루마치스 관절염, 본태성 고혈압 등의 면역 기능의 장애들이 많았다. 과도한 신체적 긴장으로 호르몬의 분비에 이상 현상이 장기화 되면서 수명을 단축한다는 것을 일반 사람들은 잘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 더 붙여서 치료자는 이미 수 차례의 글들에서 불안 장애의 핵심인 대인공포증이 모든 정신장애의 밑바탕에 깔려 있다고 지적한 것은 대인공포증과 대인기피증은 바로 불안장애에서 공황장애와 쌍두 마차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모든 장애는 사람들과 관계의 어려움에서 사람들을 피하고 혼자 있으려고 한다는 점에서 불안증 안에서 공황장애와 대인공포증은 쌍벽을 이룬다.

그런데 공황장애와 대인공포증은 같은 불안장애에 소속되어져 있지만 서로 많은 점에서 비교 대조가 된다. 공황장애는 공포증에 가깝다 고로 혼자 있으려고 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공황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혹시 혼자 있다가 졸도, 기절해서 쓰러지면 죽는다는 공포감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떨어지지 않으려고 한다. 항상 다른 사람을 달고 다닌다. 혼자서 어디에 가려고 않는다. 혼자서 갈 때에는 반드시 호주머니에 약물을 준비해서 다니거나 약국이나 병원에 가까이 있는가? 확인을 하려고 한다. 반면에 대인공포증은 같은 공포증이지만 같이 있으면 불편해서 견딜 수가 없기 때문에 항상 혼자 있으려고 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치료자의 관점에서 보면 공황장애는 처음부터 대인관계가 전혀 이루지지 않는 것이 아니고 직장 생활을 잘 하고 있다가 공황장애로 직장을 그만 두거나 죽음에도 불구하고 직장생활을 계속하기 때문에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와 신체적인 휴식과 에너지 공급에서 생기는 이중의 문제 때문에 삼중고를 당하고 있다는 점이 대인공포증과 다르다. 공황 장애는 대인공포증보다 치료가 쉽게 잘 된다는 점이다. 치료사가 지금까지 공황장애의 치료의 평균 치료 기간이 1 6개월이었다는 것은 여러 번 밝혔다. 그러나 대인공포증은 그보다 몇 배 기간이 길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공황장애는 대인기피증보다 대인관계가 좋다는 점이 그 이유이다.

공황장애가 소속 되어져 있는 불안증은 19세기 후반기의 세계적인 작가들의 글들 속에서 시, 소설, 음악, 미술 등의 예술가들의 작품 속에서 많이 등장을 한다. 뉴욕의과 대학의 정신과 교수이자 정신분석가인 레오나르도 센골드(Leonard Shengold, 1989, 1999: 주㈜: 참고)는 그의 두 권의 저서인 영혼의 살인(1989)과 영혼의 살인의 재방문(1999)에서 세계적인 명사들의 글들과 그들의 전기작품들을 통한 연구에서 찰스 디킨슨, 뚜르게네프, 체홉, 키플링, 스윈분, 그리고 죠지 오웰 등의 명사들이 어린 시절의 학대와 방기 되어진 상처들 때문에 그들의 시와 소설 그리고 드라마 등에서 그들의 어린 시절의 묘사들이 잘 드러나 있다고 노트를 하고 있다.

영국의 빅토리아 시절의 영국의 최고의 계관 시인(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을 해주는 월계관시인-위키피아 참고, 2019, 2, 17)인 알프레스 테니슨 이후에 최고의 시인으로 추앙 받고 있는 찰스 스윈분(Charles Swinburne)은 영국 상류층의 자제였다. 그는 해군 제독인 아버지가 집을 비우는 사이에 어머니에 의해서 인도의 가정부에게 3살 아래인 여동생과 함께 전적으로 양육이 맡겨졌다. 그 당시 영국의 상류층 부인들은 하인들이 어린이들을 돌보아주었다. 스윈분은 유모, 인도의 가정부, 하인들이 그와 여동생을 돌보아주었고 인도의 가정부는 잔인했다 그들을 매질로 다스렸다. 어린 시절에 매맞은 아이로 성장을 해서 마소키즘적인 사람이 되었다. 그는 8살 때 영국의 상류층 자녀들이 다니는 이튼(Eton)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위해서 이튼 예비학교 기숙사에 그리고 12살 때 이튼 고등학교의 기숙사에서 사감에게 철저한 매질과 복종적 교육을 받았다. 이후에 옥스포드 대학을 졸업을 했다. 그가 이튼 고교의 특징인 수영과 매질을 이후에 사랑의 매라고 찬양을 했다. 영국의 속담에 매를 아끼면 자녀를 망친다라는 말이 그 때 유행을 했다. 그는 고교시절부터 시를 썼다. 그가 작가로써 이름을 날렸지만 그는 결혼을 하지 않았다. 사촌인 메리를 사랑해서 근친상간적인 면과 호모섹스적인 면들이 그의 시와 소설 그리고 극작품 들 속에 잘 묘사되어져 있다. 그는 매질을 당할 때 황홀함을 기술하고 있다. 어린 시절에 어머니에게 학대를 당하고 나서 어머니가 그를 품에 안고 후회의 눈물을 흘리는 것에서 고통을 사랑으로 노래를 해서 왜곡을 일으켰다. 고통 끝에 낙이 온다, 인내는 쓰나 그 열매는 달다 고통 = 즐거움의 등식을 교육 받아서 세뇌가 된 것이 분석가들에 의해서 노트되어지고 있다. 그는 이후에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고 그리고 매춘부 집을 규칙적으로 방문을 해서 엉덩이를 까고 매춘부에게 매질을 하도록 강요를 했다. 스스로 고통 속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마소키스트가 되었다.

러시아의 단편 작가로 세계적인 인물인 안톤 체홉(Anton Chekhov) 역시 그의 작품에서 학대 받는 어린이의 자신의 자화상이 그려지고 있다는 분석가의 보고서가 있다. 그는 어린 시절에 폭군인 아버지의 손에서 자라나면서 학대와 박탈을 당했다. 체홉은 그의 작품 속에서 어린 시절에 반복적으로 보아왔던 아버지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친절한 아버지적인 인물로부터 갑자기 분노로 가득 찬 공포의 얼굴을 가진 괴물로 바뀐다. 식인적이고 참을 수 없고 파괴적이고 참회가 없는 인간 최초의 원시적 아버지가 된다.

 체홉의 이야기는 돈키호테처럼 미침의 이야기로 현실과 착각의 탐색으로 격찬을 받고 있다 그는 병리적 연구의 과학적인 정확성 때문에 정신분석가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고 노트하고 있다. 프로이트가 1901년에 독일의 연방법원 판사 스케레버의 회고록에서 편집증 정신분열증의 논문을 쓰면서 체홉의 작품을 분석하고 연구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체홉은 제 6 병동이라는 단편 소실에서 주인공 앙드레와 양아버지와 관계가 그가 양아버지를 사랑하는 여성으로 호모섹스적으로 묘사되어지고 있다. 양아버지는 체홉의 어린 시절의 아버지를 상징을 했다. 그는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아버지는 독재자이고 엄마의 삶을 파괴 시킨 거짓말쟁이였다. 독재자와 거짓말이 어린 시절의 우리 형제를 파괴 시켰다. 그것만 생각해도 병들고 놀랜다. 아버지는 국이 너무 짜다고 밥상을 뒤집어엎고 엄마를 바보로 만들었다. 독재자는 범죄자보다 3배나 더 나쁘다라고 적고 있다. 어린이를 지속적으로 때리면 어린이의 영혼에 상처를 남긴다고 체홉은 친구에게 말했다. 놀이는 금지되고 아침 저녁 교회 예배에 참가하고 신부의 손에 키스를 하고 집에서 찬송가를 불렀다. 내가 8 살 때 집에서 심부름을 도맡아 하는 아이가 되었다. 나는 거의 매일 같이 얻어맞았다. 체홉은 그의 작품 제 6 병동에서 주인공의 양부인 흑인 승려를 아버지의 상징으로 표현하였다. 집에서 아버지는 신부인 승려 역할을 했다. 가족의 분위기는 항상 거세 분위기였다 라고 적고 있다. 소설 속의 주인공인 양드레의 어린 시절은 과대 망상과 편집증의 분위기 속에서 자랐다. 그는 신은 살아 있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신은 죽은 사람만 다루기 때문에 살아 있는 사람은 이해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라고 적고 있다. 영혼을 살해하는 부모들은 자녀들을 복종적인 시체처럼 다룬다. 어린이의 자아 주체성을 무시한다. 악인의 흔적을 남기려고 한다. 영혼을 살해하는 아버지는 엄마의 역할을 해서 어린이의 모든 것을 일일이 간섭한다. 엄마는 복종적이고 효과가 없다. 그 결과 어린이의 성적 주체성은 혼란하게 된다. 체홉은 어렸을 때 러시아의 무자비한 추운 겨울 속에 밤중에 난로가 없는 교회에 강압적으로 참석해야 했다.  

루디야드 키프링(Rudyard Kipling)은 영국의 언론인으로 신문기자, 시인이자 소설가 그리고 단편 작가로 1901년에 영국에서 최연소 작가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고 그는 정부에서 인정하는 계관시인이 되었다. 그의 소설 중에 유명한 것이 정글 북에서 모글리 라는 주인공이 늑대의 젖을 먹고 정글에서 자라라는 늑대 소년이 그 주인공이다. 그는 어린이들을 위한 작품을 많이 썼다. 빅토리아 시절에 많은 부모들의 어린이들처럼 키플링은 인도에서 보모의 손에서 자라났다. 그는 어린 시절에 보모의 학대를 당했고 부모의 사랑을 박탈을 당한 상처들이 그의 시와 소설의 작품에서 자주 등장을 한다. 키플링의 삶은 2.5세 때 박살이 나기 시작했다. 엄마가 임신을 했고 여동생이 태어났다. 이 때부터 인도 원주민의 손에서 양육이 맡겨지게 된다. 이 때부터 키플링과 여동생은 학대를 받게 되었다. 키플링은 부모에 대한 미움의 이미지를 쪼개버린다. 실제 부모는 착한 부모이고 양육 부모는 나쁜 부모가 된다. 엄마에 대한 의존 관계와 사랑에 집중 정도가 그의 단편 소설덤불 숲 소년속에 나타나 있다. 아버지는 은퇴한 선장에게 키플링을 맡겼고 키플링이 좋아 했던 선장은 얼마 후에 죽었다. 선장의 부인인 로자 아주머니는 소심하고 폭군적이고 종교적으로 강박적인 여성이었다. 로자 아주머니가 키플링의 자매의 1차 박해자였다. 키플링의 작품은 어린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고 모두 다 아버지에 대한 갈구로 가득 차 있다. 좋은 아버지 이미지로 가득 차 있다. 좋은 부모의 기억을 유지하려는 그의 노력은 부인(denial) 방어를 필요로 하게 만들었다.

부모가 그에게 어떻게 해 주었어야 했는가? 그는 이런 질문을 마음 속에 오랫동안 품고 있었다. 그것을 시와 소설 속에서 표현을 했다. 정글 북에서 늑대의 젖을 먹고 자라난 소년은 부모에 의해서 버림받은 소년이 아닌가? 키플링은 삶의 말기에 자신에 대한 자서전에서 악마와 씨름 하는 어린이를 묘사 하였다. 악마는 잔인한 부모의 대체 인물 이었다. 로자 아주머니는 많은 회초리를 가지고 그를 때릴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부당하고 잔인했다. 엄마 아빠가 절대로 허용해주지 않았을 처벌을 자신에게 했다고 적도 있다. 그는 부모님에게 철저히 버림을 받았다고 적고 있다. 그는 버림 받은 어린이 느낌을 적고 있다. “회고 해 보면 나의 어린 시절은 비극이었다, 로자 아주머니의 변덕에 불친절에 희생물이었다, 우리는 아무런 준비도 못했고 대비도 할 수 없었다. 눈 사태처럼 우리의 행복을 덮쳐버렸다. 우리는 버림받은 것이다. 무슨 이유인지도 모르고 문 앞에 버려진 신세였다.” 엄마는 병들지도 않았고 아빠는 전쟁에 나가지고도 않았다. 돈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 엄마 아빠는 그들의 사랑스러운 집으로 돌아가버렸다. 우리를 데리고 가지 않았다. 우리들의 장난감 중에는 어떤 것도 우리들의 것이 없었다. 갑작스런 예기치 못한 버림받음이 상처 효과를 증가 시켰다. 준비한 기회를 어린이로부터 박탈한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세뇌 당한 것이다.

키플링의 마음 속에 좋은 부모의 이미지를 보존함으로써 학대자로부터 피난처로 좋은 부모의 이미지를 유지함으로써 박해와 싸워나갈 수 있었다. 키플링은 잃어버린 왕국을 기억하고 있었다. 과거를 기억하는 것은 어린이에게 고통스러운 것이다. 동시에 축복을 약속하고 그것을 강화 시키는 것이다. 이야기 속에서 키플링은 이상화 된 세계훌륭한 부모를 상상 속에서 만들어냈다. 버림받음은 완전한 고립이 아니라고 믿게 되었다. 영혼을 살해 당한 사람들의 경우에 항상 학대하는 부모로부터 살해적인 분노를 떼어내어 방향을 바꾸어 형제 사이에 식인 소망으로 집중화 된다. 그러나 다행히도 키플링에게 이런 문제는 발상하지 않았다. 상상 속에 빠져서 고통을 잊어버린다. 그는 독서가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수단이라고 썼다. 독서의 박탈은 나를 처벌하는 것이라고 했다.

키플링은 로자 아주머니 한데서 구원된 후 9개월 만에 영국의 공립학교에 간 것은 버림받음과 학대의 반복이었다. 이 학교는 군사학교를 준비하는 학교였다. 교장은 키플링의 아버지의 친구였다. 그러나 키플링은 학교에서 몇 달간 지옥을 경험하였다. 1 6개월은 잔인했고 즐겁지 못했다. 키플링의 마음은 박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갈등으로 쪼개진다. 학교의 의무적인 개입의 경멸, 잔인함의 일방적 수용, 동물에 가까운 잔인함이 허용된 것 등을 비난하였다. 자서전에서 그는 교장 선생님에 대한 분노를 표현했다. 영혼의 살해자 들은 피해자의 자아 주체성을 모순적 조각으로 깨어버린다. 기능이 독립되어 쪼개져 있어서 효과적인 통합이 일어날 수가 없다.

정신분석학적 용어로 보면 피해자의 자아 이미지와 대상 이미지(부모 이미지)가 수직으로 분열되어 쪼개진 것이다. 착한 부모에게 버림받은 후에 나쁜 부모와 살게 됨으로써 권위자에 대한 해결할 수 없는 모욕적 견해를 가지게 된다. 계속해서 그들을 좋게 묘사한다. 분노와 공격 욕구가 권위자로부터 분리되어버린다.

우리는 키플링의 작품으로부터 어둠은 영혼의 살인으로 너무 많은 것을 부모의 섹스 장면의 과다 노출로 영혼의 고갈, 음산한 우울증, 자아 미움과 그 미움은 거세의 두려움으로 버림받음 어린이의 죽음으로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키플링의 어린 시절은 출생 후 6년은 축복으로 다음 6년은 지옥으로 묘사되어 있다. 출생 후 첫 축복의 6년이 키플링이 영혼의 살해에 살아남을 수 있게 힘을 주었다. 회고록에서 키플링은 과도하게 과잉보호를 받은 어린이에게서 동반되는 저주 받은 나르시즘의 취약점을 묘사하고 있다. 과잉 보호박탈과 더불어 영혼의 살해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부모의 섹스 장면에 고착이 평생 동안 집중적 호기심과 알고 싶은 필요성에 집착하였다. 6-12세 사이에 3개의 연속된 심리적 상처를 경험하게 된다. 부모의 상실, 분리 불안 그리고 과도한 살해적인 상처와 불안, 거세 불안의 위협이 그것이다. 어린이는 준비 없이 갑자기 감정적으로 대응해 나갈 수 없는 위험에 노출되어 상처를 받게 된다.

위에서 언급한 세계적인 작가들의 어린 시절과 그들의 작품 속에서 어린 시절에 학대를 받은 사람들은 평생 동안 고통과 박탈 속에서 시달린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시, 소설, 드라마 등의 작품으로 승화를 한 사람이지만 그렇지 못한 일반인들의 고통은 말로써 표현할 수가 있겠는가?

시인, 소설가, 단편 작가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후기 인상파 미술의 대표자인 빈센트 반 고호(Vincent Van Gogh)는 정신분석가들에게 연구의 대상으로 널이 알려져 있다. 그는 심한 우울증(멜랑꼴릴아), 정신분열증(조현병) 환자였고 그리고 모델을 구입할 돈이 없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을 모델로써 초상화를 즐겨 그렸다. 생활비는 그의 동생인 데오(Theo)의 지원으로 구차하게 살았다. 그는 폴 고갱과 함께 생활하다가 갈등으로 자신의 외쪽 귀를 잘랐고 두 사람은 헤어졌다. 그는 고통 속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37세에 권총으로 자살을 한 인물이다. 그의 사후에 그의 인상파적인 작품은 20세기 초반기에 서구 시장에서 가장 값 비싸게 경매시장에서 팔리는 작품이 되었다.

예술가들은 일반인들이 느끼지 못하는 예술적인 예민한 감각 때문에 정신적인 장애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은 분석가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그들은 보통 사람들이 느끼지 못하는 감각의 세계에 천재적으로 예민하기 때문에 일반인들 보다 더 많은 고통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들을 다행히도 그러한 고통을 예술로 승화 시켜서 성공한 사람들이 아닌가? 여기에서 프로이트의 방어이론으로 승화라는 용어가 등장한 것이다. 정신분석가들은 세계적인 인물들과 신화들에 대한 연구와 분석으로 인간의 내면 세계를 관찰하고 분석하고 그들의 작품의 세계 속에서 인간의 내면의 세계의 자아를 연구하고 분석을 한다.

특별히 공황 장애의 심리적인 공포를 시각 예술로써 승화시킨 표현 예술의 세계적인 작가가 바로 에드바르 몽크(Edvard Munch)로써 그의 작품인 비명, 절규(Scream)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작품이 아닌가? 몽크는 노르웨이의 작가로써 공황 장애와 공포증 환자들의 내면의 심리적인 세계를 그림으로 표현한 작가로써 그의 삶과 작품을 분석한 뉴욕의 코넬 의과대학 정신과 교수이자 정신분석가인 제임즈 마스트슨(James Masterson,1989:주㈜: 참고)의 저서인 참 자아를 찾아서에서 연구되어진 것을 치료자의 공황장애와 공포증의 홈 페이지에서 인용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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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크(Edvard Munch)의 대표작 "비명, 절규"(The Scream)

-  공황과 무기력 함과 공포감의 드라마틱한 표현-

에드바르 몽크(Edvard Munch)는 공황 장애, 버림받음의 우울증, 죽음, 그리고 애통을 눈에 보이는 그림으로 표현을 가장 잘 한 시각  예술의 대표자

--뉴욕 코넬 의과대학 정신과 교수, 정신분석학자인 제임즈 마스트슨(James F. Masterson)--

노르웨이의 표현주의 작가 에드바르 몽크(1863-1944)의 대표작 파스텔화 작품이 2012 5 2일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1 1992 2250달러( 1355억원)에 낙찰이 되었다. 예상 낙찰 가격의 8000만 달러를 크게 뛰어넘은 것이다. 이날 경매에서 나온 몽크의 절규라는 이름으로 그린 회화 4점 가운데 1895년 작품이다. 파스텔로 그린 이 작품은 피테르 올센이 소장해 왔다. 올센은 몽크의 친구이자 후원자였던 토마스 올센의 아들이다. 이 작품은 이날 경매에서 시작해서 낙찰자 7명의 경쟁 속에서 12분 만에 낙찰이 되었다. 몽크의 절규는 인간의 원초적인 두려움을 묘사한 작품으로 1892년에 경험한 공황 발작을 토대로 그린 작품이다(2012.06.10 한국경제 )

 

 

 

 

에드바르 몽크(Edvard Munck)는 공황, 공포증, 우울증을 앓았던 표현주의의 화가로 그가 느낀 내면 마음 속의 심리적인 상황을 드라마틱하게 표현을 한 작가이다. 그가 그린 그림들은 인간의 공포, 공황, 우울함, 무기력, 죽음 등의 심리적인 모습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으로 유명하다.

몽크의 내면 심리는 많은 정신과 의사, 정신분석학자들의 연구의 대상이 되었다. 대표적인 학자로써 뉴욕 코넬 의과대학 정신과 교수이자, 정신분석학자인 제임즈 마스트슨(James F. Masterson)이 몽크의 전기와 몽크의 작품들을 정신분석적으로 분석한 그의 저서 "참 자아를 찾아서"에서 몽크에 대한 그의 글을 일부분 발췌한 것을 소개하고자 한다. 몽크를 공황, 공포증의 심리치료 홈페이지에 소개한 것은 공황, 공포증, 무기력함, 우울증 등의 인간 내면의 심리적 상황을 절묘하게 잘 표현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의 어린 시절의 성장 과정과 성인으로 평생 동안 살아온 삶의 역정을 살펴 보면 공황, 공포증, 우울증, 무기력함에 대한 심리적 이해가 도움이 될 것이다.

 

 

 

 

 에드바르 몽크(Edvard Munck)(1863-1944): 공황, 공포증, 우울증의 화가

 에드바르 몽크(Edvard Munck)는 노르웨이에서 태어났다. 5명의 자녀들 중에 둘 째였다. 그의 누나는 1살 위였다. 군의관인 그의 아버지는 그의 어머니의 나이보다 두 배가 많았다. 그의 어머니는 그녀가 에드바르(Edvard)를 낳았을 때 이미 폐결핵으로 병이 들어 있었다. 어머니는 몽크(Munch) 5 살 때 죽었다. 그 어머니의 여 동생인 이모가 그 어린이들을 돌보아 주고 가사를 돌보기 위해서 그의 집에 왔다. 에드바르(Edvard)는 종종 병약한 어린이였다. 그는 그의 누나와 대단히 가까웠다. 그러나 그의 누나는 에드바르(Edvard) 15살 때 폐결핵으로 죽었다. 이러한 그의 어린 시절은 그의 성격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심어 주었다. 여성들에 대한 느낌들과 그의 지각들 그리고 그의 예술을 통해서 그 참 자아를 창조하려는 그의 욕구에 영향을 미쳤다. 그의 참 자아는 그가 어렸을 때 나타날 수가 없었다. 그의 분리 불안과 버림받음의 우울증은 그의 그림을 통한 초상화 들로부터 그리고 그가 그의 삶에서 그가 개인적인 관계에서 가졌던 어려움들로부터 정신분석학자인 마스트슨(Masterson)은 다음과 같은 가설을 세웠다.

 "그는 한 사람의 자아 장애자로써 특별히 "보드라인 성격장애자"였다. 그리고 그러므로 그의 엄마와 누나의 죽음을 애도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그들의 죽음뿐만 아니라 그에게 영향을 미친 어린 시절의 자아의 애착 결함 때문에 엄습하는 공포와 공황이 그의 내면 세계를 채색을 했기 때문이었다.”

 81살의 긴 생애 속에서 몽크(Munch) 50,000장의 그림과 스케치들을 생산을 했다. 참 자아를 탐색을 위한 천재적인 시각적인 노력이었다. 몽크(Munch)는 완전히 그림 속에 묻혀서 방황하는 방랑자 생활을 했다. 우울증, 외로움, 그리고 알코올 중독이 그를 괴롭혔다. 그리고 건강 휴양지로 빈번하게 여행을 했다. 그러나 그의 문제점 들을 치유를 찾지 못했다. 그의 삶을 통해서 그는 한 여성과 장기적인 관계를 그 스스로 지속할 수가 없었다. 그의 삶의 대부분은 툴라 라르센(Tulla Larsen)과의 2년 동안의 생활을 제외하면 빈약하고 단발적이고 에피소드적이었다. 그러나 툴라(Tulla)가 결혼을 제의를 했을 때 몽크(Munch)는 글자 그대로 탈주해서 도망을 가 버렸다.

 그는 여성들이 그의 진실한 예술적인 자아-표현의 잠재력을 실행을 하는데 방해물이 된다고 합리화를 했다. 다른 말로 하면 그들은 여성들이 참 자아의 발달에 방해가 된다는 것이었다. 참 자아를 위한 그의 예술적 요구는 너무나 연약했다. 그는 그것을 그것에 노출을 하지 못했고 관계의 위협으로 받아들인 것이었다.

 그의 그림들은 분리불안, 공황, 버림받음의 우울증, 죽음 그리고 애통을 눈에 보이는 그림으로 표현을 가장 잘 한 시각 예술의 대표자의 한 사람으로 꼽히고 있다. 그의 유명한 그림인 비명, 절규(The Scream)은 무기력함과 분리의 공황의 한 개의 드라마틱한 유발을 표현하고 있다. 그는 반복해서 상실의 느낌들을 그리고 죽음의 버림받음을 두고두고 반복해서 그렸다.

 그 자신의 고통에 찌들린 그의 어린 시절의 기억들과 어린 시절에 엄마와 누나의 죽음이 그러한 그림들에서 일어나고 있다. 즉 죽음의 침대 옆에서(1893), 병실에서 죽음(1893-1894), 병든 어린이(1885-1886), 멜랑꼴리(1891), 할렘(배의 조타실)에서 죽음(1893), 죽은 엄마(1895) 그리고 죽은 엄마와 어린이(1897-1899) 등이 그들이다.

 여성들을 지각하고 이해를 하는데 몽크(Munch)의 어려움 들은 다음과 같은 그의 그림 안에서 묘사되어져 있다. 마돈나(1895), 흡혈기(1893-1894), 그 여성(스핑크스)(1893-1894), 질투심(1898). 그리고 그의 두 개의 작품들 그 작품의 제목 들인 분리(1894, 1896)는 그 버림받음의 우울증의 한 개의 핵심 테마를 메아리 친다.

 그는 말을 하기를 나는 결코 사람들을 사랑해 본 적이 없습니다. 나는 산에 올라갈 수 있는 그 열정을 경험을 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그 열정을 경험을 했습니다 그 열정은 심장을 찢어 놓고 그리고 사람의 피를 마십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내가 다음과 같이 말을 할 수 있는 사랑이 아무데도 없었습니다. 여성들이여! 내가 사랑을 한 사람은 당신이었습니다. 당신은 내 모든 것 내 전부입니다.(Ragna Stang: Edvard Munch, 1979). (Woman! It is you I love you are my all).

 45세의 나이에 그의 알코올 중독은 악화 되었다. 그는 박해 망상들 그리고 환각들을 개발을 했다. 그는 8개월 동안 병원에 입원을 했다. 내 조건은 미침의 문턱에 와 있습니다. 그는 단언을 했다.

 그는 한개의 보드라인 조건 안에서 한 개의 분리 정신증을 경험을 하고 있었다. 혹은 그의 조건은 한 개의 정신증 악화로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많은 생산적인 작품 활동을 함으로써 회복을 했다. 고통스런 느낌들을 방출을 할 수 있는 그의 능력은 그리고 그의 예술을 통해서 그의 참 자아를 활동을 시키기 위한 그의 능력은 그로 하여금 더 좋은 조정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는 그렇지 않았다면 빠져 나올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기본적인 성격 구조는 변화되지 않았다(Masterson, 1989).

 

이제 여기에서 이름난 정신분석가들의 공황장애에 대한 연구들의 소개에서 고개를 돌려서 우리 주변의 일상적인 공황장애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몇 일 전에 한 인터넷 신문에서 다음과 같은 기사를 본 것을 인용하면서 그들의 내면 세계의 심리적인 문제들을 들려다 보기로 한다. 49세의 공황장애로 일자리를 잃고 빈곤으로 15년을 살고 있는 한 부인의 이야기이다(2019, 2, 8., 중앙일보)

서울 강북구 김모(64·여)씨는 15 전까지만 해도 빌딩 청소 일을 하는 평범한 가장이었다그러던 어느날 청소일을 하다 지하 식당에서 밥을 먹으러 계단을 내려가던 도중에 난생 처음 이상한 일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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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이  이상했어요벽이 나한테 다가오는 듯한 공포를 느꼈어요공포영화도 그렇게 무섭지 않을 거예요그때 상황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워요영화 필름이 착착 끊기고 길이 막히는  같았죠가슴이 두근거리고 숨이 찼고고함을 질렀으며그러곤 쓰러졌어요."

김씨는 빌딩 보안요원에게 업혀 병원 응급실로 갔다그는 "병원에서도 무섭고 힘들어 고함을 질렀던  같다" 회상한다그는 까운에 정신과라 새긴 의사가 옆에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저는 정신과 환자가 아니에요"라고 소리쳤다주사를 맞고 이내 편안한 상태가 됐다의사는 '공황장애' '불안장애' 진단했다.

청소 용역회사 사장이 병원에  "그냥 치료 받고 집에서 쉬세요몸을 보살피는  가장 중요하죠"라며 해고를 통보했다김씨는 눈앞이 캄캄했다당장 방세·쌀값·난방비·공과금 등을 내야 하는데딸과 할머니를 부양해야 하는데…김씨는 "그게 말이나 돼요병원 마당에서  울었어요"라고 당시를 회상한다.

김씨는 그렇게 정신질환자가 됐고처음  년간 일자리를 찾아다녔다하지만 받아주는 데가 없었다발병 이후 일을  적이 없다김씨는 "아프기 전엔 기초수급자가 뭔지도  몰랐다여유 있지는 않았지만 정부 보조금에 의지할 정도는 아니었다" 말한다결국 기초수급자가 됐다딸은 결혼했고 김씨는 혼자 산다지난해까지 술에 취해 살았지만 요즘엔 많이 줄였다병세가 많이 호전됐으나 가끔 심해질 때도 있다김씨는 " 없으면 일상생활을 정상적으로   없다약을  먹으면 불안해진다" "평생 정신과 진료를 받아야   같다" 말한다그는 매달  타러 병원에 가는 것을 잊지 않는다김씨는  50만원의 생계급여 정부 지원금으로 살아간다이걸로 공과금을 내고 생활하는데 살림살이가 매우 빠듯하다고 한다.


 김씨는 어릴  아버지를 여의었다어머니가 외가에 의탁했다얼마  지나 집안을 돌보던 외할머니가 숨지며 가세가 기울었다어머니가  돌보지 않았고 장사를 한다고 김씨를 고아원에 보냈다중학생 언니는 어디론가 가버렸다. 2  고아원에서 도망쳐 나와 빵집에서 일했다빵집이  닫자 일자리를 구하러 직업소개소에 갔다 인생이 꼬이기 시작했다김씨는 서울 외곽 도시의 기지촌으로 끌려갔다지금도 소개소 직원이 부모 없는 어린애라는 사실을 알고서 입이 찢어지던  생각난다고 한다그는 처음엔 이런 사실을 말하지 않다가  번째 인터뷰에서 털어놨다그때 나이 15세였다거기서 14년을 보냈다. "고생 많이 했어너무 힘들게 살았어"라며 계속 한숨을 내쉬었다가슴 깊은 곳의 한의 일부를 토해 냈다김씨는 "아무리 못살더라도 명절에 집에 가고 그래야 마음이 안정되는데 떠돌아다니니까 병이 생긴  같아요 생각에…"라고 말한다그의 넋두리는 계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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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에게 물어보니까 맞대요너무 어릴 때부터 돌아다니면서 그렇게 병이 생긴 거라고고생해서 생긴 거라고돈이 없어도 평범한 가족 사이에서 태어났으면 이런 병이 생기지는 않았을 텐데 다섯 살이면 아직 애기인데세상에 부모 없다고 그런 데다 팔아먹어서…한창 배울 나이인데제대로  배워도 사람 대하는 예절은 배웠어야 하는데제대로 배우지 못해 내가 사람이 그래요제대로  컸어요."
 
의료급여(기초수급자대상자  김씨와 같은 정신질환자(치매 포함) 가장 많다. 7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17 진료를 받은 의료급여 대상자 1591000  정신  행동장애 환자가 428051명으로 26.9% 차지한다고혈압(21.1%), 관절염(19.9%)보다 많다기초수급자가 아닌 일반인  정신  행동장애 환자는 6% 불과하다. 2017 기준으로 정신병원 입원 환자는 84000명이다  의료급여 환자가 6 (71.4%) 달한다빈곤과 정신질환이 밀접하다는 뜻이다


정신질환이 빈곤을 야기한다이소희 국립중앙의료원 정신건강의학과장은 "정신질환이 있으면 업무 수행력이 떨어질  있는데이로 인해 취업이 어렵거나 해고되고 대인관계가 어려워진다" "일자리를 갖더라도 소득이 낮은 단순 업무를 하게 된다" 말했다반대로 빈곤이 정신질환을 야기하기도 한다 과장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면 불안증세나 불면증을 겪게 되고 사업 실패로 인해 공황장애가 오거나 장기적으로 취업이  되면 우울증이 오기도 한다" "이런 악순환이 세대를 넘어 전해지는 '트랜스제너레이셔널 트랜스(transgenerational transmission·세대  전이)(정신분석에서는 이것을 대물림-치료자가 삽입) 일어난다" 진단했다

세대간 (전이도 있다경기도에 사는 김모(84·여)씨는 35세에 이혼했다. 1989 어느날 갑자기 멀쩡하던 아들(현재 54) 성질을 내고 난리를 피웠다조현병이었다아들은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고 김씨는 아들에게 매달렸다김씨는 "그때부터 죽지 못해 살았다" 말한다막노동을 비롯해    일이 없다. 10  김씨에게도 조현병이 찾아왔다머리에 벌레가 있는 것처럼 이상한 느낌이었다그리고   지나 기초수급자가 됐다김씨는 그런 과정을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서울 성북구 김모(63)씨는 사업에 실패하면서  청산에 날아간 건물에 물끄러미  있었다오후 9시만 되면 멍청히 바라보면서 소주 두세 병을 마셨다그런 세월이 계속되면서 알코올에 중독돼 갔다입퇴원을 반복했다 먹겠다고 맹세하고 나와서  먹는 일이 반복됐다가족에게 폭력을 휘둘렀고 혼자가 됐다지금은 기초수급자가   50만원 정부 지원금으로 산다.

최재영(청아의료재단 이사장대한정신의료기관협회 회장은 "정신과 환자는 경제력이 약하고 사회생활이 힘들다" "정신질환자의 사회 복귀를 돕는 재활시설이나 적응시설이 부족한데이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건강보험 환자와 진료 수가 차별을 개선해야 한다" 말했다의료급여 환자의 하루 진료 수가는 건강보험 환자의 54.5% 불과하다(중앙일보, 특별 취재팀, 2019, 2, 8).

위의 첫 번째 사례에서 64세의 김모 부인은 공황장애라기 보다 더 심각한 자아 장애로 보인다. 그녀의 증세인 벽이 다가 온다, 영화의 필름이 끊어지고 길이 막힌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숨이 막히고 현기증으로 쓰러졌다는 말들은 공황 장애를 넘어가서 자아 장애인 보드라인 장애의 특징이다. 공황장애보다는 심각하고 정신분열증 보다는 약한 그 중간에 있는 장애가 바로 경계선 성격장애 혹은 보드라인 성격장애인 자아 장애이다. 상처가 기억에 남아서 연결이 끊어져서 의식의 계가 좁아지고 경험의 통합이 손상을 입어서 과거에 배운 지식들이 단절되어 현재의 경험에만 의존해 있기 때문에 자아 장애자들(위에서 노트한 보드라인)은 과거와 미래가 없다, 왜소하고 좁은 현재의 경험에만 의존해 있기 때문에 현실적응 능력이 떨어져 일이나 업무 수행에서 능력이 발휘될 수가 없다. 그들은 계속해서 과거의 상처를 되풀이 하고 있다는 것으로 있다. 그들은 자신의 운명을 탓하고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위의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알 수 있을 것이다. 즉 빈곤의 대물림, 계속해서 일자리에서 실직 등으로 경제적인 빈곤으로 내 몰리게 된다. 그들의 근본적인 문제들은 과거의 상처가 기억의 연결을 끊어버리고 의식이 축소되고 경험들이 빈곤해진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의 상처가 젊은 시절에는 현실 자아인 egp의 힘에 눌려 무의식 속에 갇혀 있다가 중년기에 자아의 힘이 약해져서 증세로 나타난 것이다. 공황장애와 공포증은 정신분석 심리치료에서는 자아가 한계점에 내 몰려서 위기의 비명을 지르고 있는 자아의 울음, 호소로 본다. 자아가 벼랑 끝에 서 있다는 것을 우리의 의식 세계에 경고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 부인이 호소하고 있는 벽이 다가오는 벽 속에 치여 죽을 것 같은 공포감은 불안증 환자들이 자주 꾸는 불안몽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그런데 김모 여성은 현실에서 그것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 심각하다는 증거이다. 그녀의 어린 시절을 보라,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가 재혼으로 딸을 고아원에 맡겼다. 14살 때 고아원에서 탈출해서 매춘부 생활을 한 그녀의 어린 시절의 상처는 위에서 세계적인 유명작가들의 어린 시절과 비교를 해보라. 어린 시절의 상처는 평생 동안 낙인으로 따라다닌다는 정신분석가의 주장이 실감이 날 것이다. 84세의 김모 할머니, 그리고 63세의 김모씨 등은 30대와 40대에는 증세가 등장하지 않았지만 나이 들어가면서 직장의 상실 가족과 이혼 그리고 갈등 등으로 자아의 힘이 약해지면서 어린 시절에 묻어 두었던 상처들에게 압도되어 증세가 등장한 것이 아닌가?

프로이트가 0-6세까지를 삶에서 가장 중요한 기간으로 강조를 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를 비웃고 귀담아 듣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지금 현재이지 어린 시절이 아니다 라고 강변을 한다. 어린이는 어른이 되기 위한 준비 기간이고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어서 결실은 어른의 삶인 지금 현재가 아닌가? 라고 이야기를 한다.

오늘날의 자녀 양육들을 보라, 과학 문명의 급속한 발달로써 세상은 과거보도 점점 복잡해지고 인간관계는 더욱 더 어렵게 되어간다. 0-6세까지의 발달 과정에 있는 21세기의 어린이들을 보라. 부모님들은 먹여주고 입혀주고 돌보아주고 유아원에, 유치원에 그리고 학교에 보내주면서 원하는 장난감들을 마음대로 제공해주고 다양한 특수 학원(미술, 음악, 무용, 태권도, 피아노 등등)에 보내주고 특수 과외 학습을 시켜서 부모가 맞벌이로 경제적으로 넉넉해지면서 1명 혹은 2명의 자녀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다 해주었으니 이제 남은 것은 너희들의 몫이다라고 말을 한다. 그런데 위와 같은 양육은 신체적인 물질적인 양육이 아닌가? 정신적인 양육과 심리적인 돌봄은 어디로 갔는가? 오늘날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은 신체적으로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 먹은 것은 과잉으로 비만인구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과거의 부모님 세대보다 키도 크고 인물도 예쁘고 체격이 좋고 신체적인 모든 면에서는 좋아 보인다. 그런데 정신적인 장애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신체적으로 멀쩡한데 정신적으로 장애들이 넘쳐나고 있는 것을 지적하고자 한다.

 더 붙여서 오늘 날 의사들 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직종이 성형외과가 아닌가? 얼굴을 뜯어 고치고 눈을 쌍가풀로 크게 하고 코를 높이고 턱을 수술하고 키를 크도록 하는 성형 수술이 유행이 되었다, 그러나 정신적인 어려움 때문에 치료를 받으려고 하는 것은 마음만 강하게 먹으면 모든 문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부모님들은 자녀들이 정신적으로 고통스럽다고 하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감기에 걸려도 병원을 찾는 세상이 되었지만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자녀들에게 부모님은 무관심하다. 정신적인 고통을 신체적인 고통보다 수십 배 더 고통스럽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옛날로 되돌아갈 수가 없다. 맞벌이 부부를 엄마가 일을 그만 두고 생활에 자녀 양육에 전념하라고 할 수가 없다. 대신에 부모님은 자녀들에게 빠진 정신적인 보살핌을 보상해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먹고 입고 마시는 것 그리고 감기만 걸려도 병원에 가는 것은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부모들이 인간의 심리적 세계, 내면의 세계는 모른다.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공황장애와 대인공포증은 출생 때부터 시작된다. 출생 후에 신생아는 엄마의 모유를 엄마의 목소리를 구별할 수 있다는 실험들은 이미 수 없이 소개를 했다. 엄마와 아기는 상호작용으로 아기의 마음 속에 기억으로 흔적을 남긴다. 신생아의 기억은 1세 이전에는 감정의 뇌에 기억이 된다 고로 어린이들은 1, 2세는 기억이 없다 그것을 유아기억 상실이라고 부른다. 1살 이후에 배우는 언어의 사용은 기억의 뇌에서 저장이 된다. 감정의 뇌와 기억의 뇌는 서로 연결이 되어 어린이는 유아기를 기억하지 못하지만 뇌는 기억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정신장애의 시작은 아기가 7개월-9개월이 되면 엄마의 모습을 인식하는 낯가림에서 시작된다. 엄마의 얼굴의 이미지가 마음 속에 새겨져서 엄마와 낯선 사람을 구분하는 시점이 바로 생후 7개월이다. 이 때 아기는 엄마 옆에 있으려고 한다. 그리고 엄마가 옆에 없으면 불안해 하고 두려워한다. 이것을 분리불안이라고 부른다. 정신장애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이 분리 불안이다, 이 분리 불안이 이후의 자녀의 성장에 어떤 역할을 하는가?라는 것은 이미 여러 차례 글에서 밝혔다.

 분리 불안이 심각하면 어린이들을 엄마에 매달리려고 하고 엄마의 그림자가 된다. 엄마가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고 엄마로부터 분리되면 죽음의 공포를 느낀다는 것을 부모님은 모르고 있다. 분리 불안이 심각하면 1-3세 기간에 주변 환경의 탐색에서 활발하게 세상을 마음대로 만지고 부수고 조작을 하면서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세상을 마음대로 가지고 놀게 되는 자신감이 결여되어 청소년 혹은 어른이 되어서 세상의 탐색을 두려워하고 자아의 보호에 에너지가 집중이 된다(자아 보호가 방어 기재이론)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이것을 항문기(1-3)로 그리고 에릭슨(Erikson, 1950: 주㈜: 참고)은 주도적인 자아(자아의 자치심) (vs) 의심. 불신의 자아로 명명을 했다.  

영국의 정신분석가인 존 볼비(John Bowlby)(Jeremy Holmes의 존 볼비의 탐색: (주㈜: 참고)가 프로이트의 이론을 생태학적인 연구를 첨가해서 애착 이론을 발표를 했다. 이 기간에 부모와 자녀 사이에 상호관계로써 발달하는 애착 형성이 부모님과 친밀한 관계에서 마음의 안정과 마음의 불안정(불안한 애착) 이 이후에 청소년과 성인의 발달에서 불안한 대인관계의 결정적인 요소가 된다는 것을 이론화 했다. 이것이 버지니아 대학의 마리 에인스워드(Mary Ainsworth)와 그녀의 제자인 버클리 대학의 마리 메인(Mary Main)이 애착의 다양한 종류로 유아의 발달 단계에서 실험으로 증명을 하는 발달 실험으로 안정된 애착, 불안한 애착 그리고 불안한 애착 안에서 애착 애매형, 애착 혼란형, 애착 분열형으로 구분을 한 연구들은 애착이론이 치료에 응용되어지는 광범위한 학문으로 발전해 나갔다. 성격장애의 연구로 연결되어졌다. 강조점은 유아기와 어린이의 0-6세의 기간 동안에 외부의 환경으로부터 안전함(부모의 갈등과 외부의 간섭과 경제적인 어려움 등등을 포함)안정됨(마음의 안정과 안심과 즐거움)이 최우선이라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오늘날의 양육을 보면 맞벌이로 출생 후에 약 3개월 시점이면 아기는 유아방, 영아방에 맡겨지고 그리고 아기들은 엄마의 품에서 멀어진다, 4, 5세가 되면 유치원에 그리고 7세가 되면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어린이들은 장난감의 더미 속에서 그리고 과학전집 혹은 동화책 속에서 살게 된다. 여기에 휴대폰의 가세해서 휴대폰의 장난감 대용으로 초등학교 학생들로 유행이 되고 있다. 엄마 대신에 유모 혹은 조부모 혹은 할머니의 손에 맡겨지고 먹는 것과 대소변과 신체적 건강에만 주의관심이 집중이 된다. 여기에서 엄마가 전업 주부로 어린이를 양육하면 어린이들이 불안하지 않고 건강한 애착이 형성된다는 말이 아니다. 엄마 자신이 불안하면 그 불안이 아기에게 반사되어 자녀가 불안하게 된다. 엄마의 마음이 아기의 마음에 그대로 반사되어 상호반사가 되기 때문이다. 불안한 엄마는 아기를 과잉 보호를 하려고 한다. 주변 환경에서 다치거나 상처를 입을 까봐서 아기를 놀이를 간섭하고 지시하고 명령하게 된다. 엄마와 아기는 쌍방 관계로써 엄마는 아기의 놀이에 유아가 되어서 같이 참가해서 사적인 자아의 성장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놀이에서 어린이들이 내면의 상상과 감정과 지각을 마음대로 표현하게 도와주고 어떤 상상이라도 수용하고 포용하고 지원해주면서 어린이의 내면의 비밀을 같이 나눌 수 있어야 사적인 자아가 성장을 하게 된다는 말이다. 사적인 자아는 혼자서 성장할 수가 없다.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상대인 엄마가 필요하다. 엄마가 옆에 있을 때(안전함) 아기는 혼자서 자신의 자아와 혹은 엄마와 이야기를 나눈다. 아기는 이미 마음 속에 여러 개의 사람들이 존재한다, 스스로에게 이야기를 하거나, 혹은 직접 엄마에게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아기를 상상 속의 인물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이것이 놀이의 시작이다, 장난감 놀이에는 반드시 엄마, 양육자가 참가를 해서 어린이들의 생각과 상상과 이야기들을 듣고 나누고 지지하고 포용하고 수용해주어야 어린이들은 자신의 내면의 상상들을 마음대로 이야기를 하고 나눌 수가 있다.

오늘날 유아방, 놀이방, 영아원에 맡겨진 어린이들은 이런 사적인 자아의 공간이 성장할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다. 혼자서 놀고 혼자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 재미가 없으면 팽개치고 새로운 장난감을 요구를 한다. 내면의 사적인 자아가 개발되어지지 못하고 성장이 멈추어버린다. 친한 친구라고 하면 상대방의 내면을 많이 알고 있을수록 친하다고 하지 않는가? 사적인 자아를 나누는 것이 친밀감의 형성의 핵심이다. 정신적인 장애들의 핵심은 공적인 자아는 큰 문제가 없다(벙어리가 아닌 이상 묻고 대답을 하는 것) 그러나 동료들과 친구들의 관계가 안 된다는 것이 핵심이다, 동료들과 함께 하면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 그리고 어떻게 대화를 해야 할지를 모른다, 함께 있으면 불안하고 불편하고 껄끄럽고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관계를 한다고 해도 표면적인 일상적인 이야기가 전부이기 때문에 관계는 몇 개월 혹은 1 2년으로 끝이 난다. 친밀관계의 형성에서 문제가 해결되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공황 장애의 핵심친밀관계의 결함으로 대화를 통해서 인간관계를 통해서 자신의 내면의 이야기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긴장이 누적되어지고 한계점을 넘어가버린 깃이다. 사람들은 친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긴장이 풀리고 친밀감이 형성되어져서 진실된 인간관계가 내 경험에 쌓이고 그 경험의 폭이 넓어지면서 위기의 대응능력에 대한 반사적인 능력(임기 응변, 혹은 순발력)으로 위기에 대처 능력이 생긴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공황 장애의 치료 사례로 돌아가 보자, 치료자는 공황장애로 고통을 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100% 수용해준다. 그리고 그들의 내면에 쌓인 긴장과 불안으로 누적된 신체적인 긴장을 풀어내는데 첫 번째 초점이 맞추어진다. 그리고 그 다음에 발달 단계를 다루면서 심리적인 상처를 분석으로 찾아낸다. 발달 단계에서 통과하지 못한 결함들을 찾아서 자아의 수리 과정을 거친다. 어린 시절의 사적인 자아의 발달 과정을 체크를 해서 대인관계에서 자신의 내면을 이야기할 수 있는 인간관계를 만들어 가도록 도와준다. 그들이 지금은 심리치료사에게 의존해 있지만 그러나 사회생활에서 조금씩 치료사와 편안한 즐거운 대화의 관계를 일반화시켜서 점점 혼자서 대인관계를 건강하게 만들어가도록 도와준다. 고로 분석 치료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 자아의 개발을 통해서 자아가 죽을 때까지 건강하게 성장해 나가도록 도와주는 치료를 하고 있다.

이제 지난 달에 7년 전에 공황 장애로 치료를 받았던 37세의 여성의 이야기로 되돌아가 보자. 치료사는 어느 날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그 전화에서 그녀는 선생님 혹시 저를 기억하시겠습니까?”라고 물어 보았다. 치료자는 그녀의 목소리를 통해서 그녀가 누구인지?를 알 수가 없었기 때문에 목소리만 들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라고 말을 했더니 그녀는 7년 전에 제가 선생님에게 심리치료를 받았던 사람입니다 라고 했다. 치료자는 그 때 어떤 증세와 문제로 치료를 받았는지? 이야기를 해 주시면 기억이 날 것입니다 라고 대답을 했을 때 그녀가 선생님 저는 공황장애로 선생님에게 치료를 받았던 사람입니다. 혹시 그 때 제가 골프 케디로 5년 동안 일을 하다가 공황장애 때문에 5년 동안 두문불출하고 폐인의 직전에 선생님에게 치료를 받았던 xxx 입니다.”라고 대답을 했을 때 치료자는 기억이 났다. 치료자는 기억이 납니다. 그 때 손님(치료자는 환자라고 부르지 않는다)의 남동생이 영화감독 보조 기사로써 일을 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라고 이야기를 했을 때 그녀는 맞습니다. 정확합니다라고 맞장구를 쳤다. E양은 그 때 37세의 노처녀로써 10살이나 나이가 많은 한 이혼남자를 사랑하고 있었는데 그 남자와 갈등이 심각했다는 것이 기어기 났다. 특이한 것은 그녀가 오후 1시에 시간 예약을 해 놓고 치료실에 도착한 것은 4 30분이었다. 그녀는 오면서 우왕좌왕해서 길을 잘못 알고 이리저리 해매다가 치료자에세 선생님 길을 잘못 들어서 늦어지겠습니다 라고 이야기를 했고 치료자는 그 때 그 시간에 손님이 없었기 때문에 그녀를 안심시키고 천천히 오도록 해서 치료를 시작할 수 있었다는 것이 기억이 났다. 치료자는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를 물어 보았을 때 그녀는 선생님의 치료 덕분에 저는 처음에 사귀던 남자와는 헤어졌고 그리고 그 다음에 좋은 사람을 만나서 결혼을 했고 지금은 약국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남편과 사이도 좋아서 지금은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라고 대답을 했다. 그녀가 이번에 치료자에게 전화를 하게 된 것은 지금 영화를 만들고 있는 남동생의 친구가 정신과적인 문제로 고통을 받고 있어서 누나에게 옛날에 누나가 치료를 해주었던 그 치료사 선생님의 주소와 전화 번호를 물어왔기 때문이라고 했다. E양은 그 남동생에게 인터넷에서 심리치료를 하는 사람들을 찾아보고 치료를 받으면 되지 않는가?라고 대답을 했을 때 남동생은 누나가 치료를 받고 회복되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누나를 치료한 그 치료사 선생님을 소개시켜주겠다고 해서  치료자의 전화 번호를 가까스로 찾아서 안부 전화 겸에 선생님이 지금도 심리치료를 하고 계시는지?를 물어보고 싶었다고 했다.

치료자는 3년 전에 과거의 독산동에서 심리치료를 하다가 지금은 오류동 쪽으로 이사를 해서 아직도 심리치료를 하고 있다고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녀는 지금도 그녀의 어머니가 네가 회복이 된 것은 기적이다라고 말을 한다고 했다. 그 때 그녀는 5년 동안 공황 장애로 바깥 출입을 하지 못하고 집안에서 갇혀 살았다는 것이 기억에 떠 올라서 회상이 되었다. 그녀는 거실에서 어머니와 함께 같이 있으면 가슴이 쿵쾅거리고 불안하고 불편해서 어머니를 집에 들어가라고 고함을 치고 어머니를 멀리 했고 남동생과도 같이 있으면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는 기억이 회상 되었다. 그녀는 공황장애, 아토피, 갑상선기능저하증, 비염, 약한 소화성 궤양 등의 다양한 심리신체적인 증세들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감정이 억압되어서 신체의 긴장이 한계선을 넘어가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녀와 통화를 하면서 치료자는 그 시점에서 E양이 6개월 치료의 마감이 다가오면서 6개월로써는 회복이 어려울 것이라고 치료를 더 받는 것이 좋겠다고 권유를 했으나 그녀는 경제적인 문제로 치료를 종결을 했다. 그녀는 5년 동안 실직으로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돈을 소진해버렸고 어머니는 노동으로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남동생은 영화 촬영기사 보조였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어려웠다. 치료자는 치료를 종결 했지만 그녀가 37세로 결혼 문제들과 그리고 친밀감이 형성 되어지지 않아서 이성관계가 어려움 때문에 치료 이후에 그녀를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공황 장애의 치료 기간이 평균 1 6개월 정도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가 회복될 것이라는 것은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치료의 과정에서 그녀의 아버지가 E양이 초등학교 4학년 때 갑자기 돌아가셨고 어머니가 생활 전선에 나서는 바람에 E양은 고교 시절부터 알바로 스스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해결해 나갔다. 치료의 과정에서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애통의 과정이 결여된 것을 분석으로 밝혀내고 애통의 과정을 다시 통과하도록 했다. 그녀는 갑작스런 아버지의 사망으로 놀래서 무감각으로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고 실토를 했다. 그녀는 동료들과 관계에서 갈등을 무조건 참고 상대방의 눈치, 비위를 맞추려고 한 것들이 분석의 과정에서 드러났다. 골프 케디를 하면서 수치심과 모욕감와 멸시 조롱을 받았던 상처들이 등장을 했고 그러한 상처들을 치료의 과정에서 다루면서 대화의 훈련을 했다. 특별히 지금의 남자 친구는 이혼한 경력이 있고 그녀보다 10살의 남자로써 어린 시절에 아버지의 상실에 따른 아버지의 사랑을 갈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고 그 남자 친구와 친밀관계를 다루다가 48시간의 6개월 치료 회기가 종말을 맞았고 치료를 그것으로 끝이 났다.

 7년 후에 그녀는 다행해도 치료자의 치료의 과정에서 배웠던 감정 표현과 대인관계에서 갈등 해결과 가족구성원들 사에서 불편함 등을 뚫고 나갔고 이후에 좋은 남자를 만나서 결혼해서 지금은 어려움 없이 살고 있고 그리고 약국에서 일을 하는 직장을 가지고 큰 어려움이 없이 잘 살고 있다는 소식에 37년 동안의 심리치료사로써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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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참고: 제임즈 마스트슨(James Masterson).  참 자아를 찾아서: 우리시대의 성격장애의 가면을벗긴다1988), 보드라인 어른의 심리치료(1976), 청소년의 정신과적인 딜레마(1967), 보드라인 증후군을 가진 청소년들의 치료(1971),보드라인 어른의 치료(1976) 5

          : 에릭 에릭슨(Eric Erikson, 1950). 어린이와 사회

          : 어네스트 존(Ernest Jones). 프로이트의 삶과 업적 Ⅰ(1953), (1955), (1957) 3

          : 데이비드 바알로우(David Barlow). 불안과 불안장애(1988): 불안과 공황의 본질과 치료

          : 헨리 엘렌버그(Henri Ellenberger, 1970). 무의식의 발견: 역동적 정신의학의 진화와 역사

          : 토마스 오가덴(Thomas Ogden). 정신분석의 예술(2005), 마음의 모체(1986), 몽상과 해석(1997), 분석의 주체(1994), 경험의 원시적인 끝지점(1989), 투사동일시와 심리치료 기법(1982) 6

          : 제메리 흄(Jeremy Holmes).존 볼비와 애착 이론(1993), 안전한 기지를 찾아서: 애착 이론과 심리치료(2001) 2

          : 벰포라드와 아르에티(Bemporad & Aireti, 1978). 심한 우울증과 가벼운 우울증

          : 지오그라타와 칸크로 (Georgotas &(Cancro, 1988). 우울증과 조증

위의 저서들은 치료사가 우리나라 말로 번역을 해서 소장하고 있으니 치료자의 정신분석 홈 페이지에 들어가서 전문서적 안내에 들어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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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치료 사례는 E 양의 7년 전의 공황 장애의 48시간의 마지막 치료 회기에서 치료 과정을 소개하고자 한다.

카우치에 누워서 정신분석 치료를 받고 있는 사람과 분석가

대상: 공황 장애 때문에 외출, 지하철, 버스를 타지 못하고 5년 동안 집안에 갇혀 버린 37세의 E

증세: 호흡이 끊어질 것 같아서 공황장애 약물을 가지고 다니면서 그 때 마다 복용 중, 과거 회상이 공황 공격을 불러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과거의 상처 기억을 두려워함

접촉: 인터넷으로 치료자의 홈페이지를 접한 후에 치료를 받겠다고 휴대폰으로 연락

진단명: 공황 장애, 아토피 습진, 갑상선 기능 저하증, 변비, 약한 소화성 궤양 - 5개를 가지고 있음, 최근에 비염이 하나더 첨가됨

치료 기간: 1주일에 3 치료 회기로 1회기당 2시간씩 1주일에 6시간씩 집중적인 치료를 받고 있음, 2주일 후에 1주일에 2회기로 빈도수를 줄이기로 했음

치료 결과: 아래의 치료 과정은 제 22 회 치료 회기 44시간을 마치고 E양의 치료 과정을 요약한 것임. E양은 모처럼 M씨와 만나서 자신 있게 갈등을 해쳐 나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고 우울한 모습에서 벗어나서 활기를 찾아가고 있음

 

치료의 과정  

월요일 치료 회기

 E양은 월요일 치료 회기가 시작 되면서 기분이 썩 좋지 않다고 하면서 치료 회기를 시작했다. 집에서 어머니와는 상당히 많은 대화가 흘러 가고 있었다. 치료 회기 시간에 어린 시절의 E양의 분석을 어머니에게 소상하게 소통을 하고 있었다.

 E양은 어린 시절에 아버지가 고혈압으로 위험 수위에 있었기 때문에 온 가족들이 아버지와 갈등을 피했다. 유치원 시절에 이미 아버지는 중풍의 공격으로 한쪽 다리를 절뚝거리고 있었다는 기억을 회상을 했다. 결국 아버지는 E양이 초등학교 4학년 때 고혈압으로 세상을 떠났다.

 E양은 치료 첫 시간에 "어린 시절에 가슴에 쇠뭉치를 올려 놓은 것처럼 가슴이 늘 답답했다"라고 어머니에게 이야기를 했다는 기억의 회상으로 짐작해 보면 가족들이 분노를 제대로 표현을 하지 못한 것을 유추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본태성 고혈압의 원인이 "폭발하지 않는 화산으로 밑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지만 결코 폭발하지 않는 화산"으로 비유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분노를 표현을 하지 못하고 억압해서 심층에서 쌓여있는 것이었다. E양은 자신의 분노를 제대로 표현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분석해서 치료 회기 시간에 E양 자신의 분노를 표현하도록 하고 있었다.

 지난 치료 회기 시간에 치료자는 "E양은 어린 시절에 아버지와 갈등을 피했고 어머니와 온 가족이 아버지와 갈등을 피했기 때문에 제대로 분노를 표현을 할 수가 없었다"고 지적을 다시 했다(어머니는 아버지와 부부 싸움을 한 적이 없었다 라고 여러 번 이야기를 했다). 지난 치료 회기 때 E양은 치료자가 목소리가 크지고 감정이 실리게 되면서 E양 자신이 위축이되고 공황 장애가 올라 오려고 치솟아 올라온다는 말을 했다. 치료자는 E양이 화를 낼 수 없기 때문에 치료자가 E양을 대신해서 치료자가 화를 내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를 해 주었다. E양은 어머니가 늘 집에서 화가 난 목소리로 전화를 동료들과 하거나 가족 구성원들에게 목소리가 커지면 E양의 공황 장애가 치솟아 올라 온다는 것을 이야기를 하면서 E양이 내면 속에 많은 분노가 억압되어져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 분노를 말로써 표현을 해야 한다는 것을 치료 회기에서 다루어 오고 있었다.

 E양은 이러한 치료자의 분석을 이후에 어머니에게 소상하게 이야기를 했고 어머니가 E양의 눈치를 보면서 어머니의 감정을 조절해주고 있다고 했다. 어머니가 목소리가 커지고 어머니의 동료들에게 전화를 통화를 할 때 화를 잘 내는 것은 가족 구성원인 E양과 남동생에게도 똑 같이 적용이 된다는 것을 이야기를 해 주었을 때 E양이 시인을 하면서 이러한 분석의 내용을 어머니에게 했고 어머니는 앞으로 남동생이 감정을 억압하게 되면 중년기가 되어서 아버지처럼 고혈압이 될 수 있는 확률이 높다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어머니가 E양과 남동생에게 신경을 써주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고 이제 어머니 한데는 마음 대로 어떤 이야기로 흘러 간다는 이야기를 했다.

 치료자는 E양이 이제는 어머니와는 껄끄러운 관계가 없어졌고 어머니에게는 치료 회기 시간에 배운 것들을 마음대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는데 남동생과 함께 있으면 아직도 껄끄러워지고 공황장애가 치솟아 올라온다는 것을 지난 시간에 E양이 이야기를 했고 치료자는 남동생에게도 치료 시간에 분석해서 알 게 된 내용들을 소상하게 이야기를 하도록 했다. 그렇게 해서 남동생과의 껄끄러움에서 해방되어야 공황장애가 작아지고 사라지게 됨을 지적을 했었다.

 남동생도 가족들에게 감정을 잘 표현하지 못하고 말이 별로 없다고 했다. 남동생은 과거에 한번 크게 화를 내서 "불같이 화를 내서 폭발할 것 같아서 온 가족이 놀랜 적이 있다"라는 E양의 표현에 치료자는 그러한 남동생의 행동이 아버지와 유사한 점을 지적을 했을 때 E양은 깜짝 놀랐다. 아버지와 유사하다는 점에 동의를 했다. 남동생은 앞으로 중년기가 되면 아버지처럼 고혈압의 위험이 있다는 것을 이야기를 해 주고 남동생으로 하여금 감정을 행동으로 표현하거나 억압하지 말고 말로써 표현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를 했고 지난 주일에 E양이 남동생과 이야기를 하면서 남동생에게 아버지와 유사한 점이 있으니 앞으로 고혈압에 조심을 해야 한다는 말을 했을 때 남동생은 자신은 동료들과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라고 E양의 지적을 부인을 했다고 했다.

 치료자는 남동생이 동료들과 이야기를 많이 한다고 했는데 정작 가족들과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는 것은 남동생이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는 증거라고 지적을 했다. 동료들 사에서 말을 많이 한다는 것과 분노, 갈등, 짜증 등의 부정적인 감정을 말로써 표현을 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점을 지적을 했다. E양은 남동생과 지난 주일에 그러한 이야기를 많이 하고 나서는 남동생과 껄끄러운 감정이 많이 해소 된 것 같다고 했다.

 치료자는 E양으로 하여금 분노를 말로써 표현을 해 보자고 이야기를 했을 때 E양이 갑자기 공황 공격이 온다고 하면서 10분 쉬었다고 하자고 했다. 치료자는 그렇게 하라고 허용을 하고 E양은 치료실 밖으로 나갔다. 10분이 흘러가도 소식이 없었 치료자가 치료실 밖에 나가서 찾아 보았으나 E양이 보이지 않았다. 9층 건물의 옥상에도 없었고 내려와서 1층에 E양의 모닝 승용차에도 보이지 않았다. 치료자는 불안해지기 시작을 했다. 치료 회기가 끝나는 시간인 오후 3시가 되어서야 E양이 현관 문을 열어 달라는 벨을 누른 것이었다. E양이 치료실을 나가서  30분이 지나가면서 E양이 현관 도어벨을 누르는 소리를 듣고서 치료자가 문을 열어 주었을 때 E양이 들어왔다.

 어디에 있었느냐?라고 물었을 때 E양은 모닝 승용차 안에서 누워 있었다고 했다. 치료자가 모닝 승용차를 밖에서 그냥 보았을 때 E양을 발견할 수 없었던 것은 승용차의 유리 문이 검은 색으로 채색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내부를 잘 볼 수 없었고 그리고 E양이 뒷자석에 누워있었기 때문이었다. 치료자에게 E양은 할 수 없이 공황 장애 약물을 복용했다고 실토를 했다. 오늘 치료 회기 시작 때 E양은 공황 장애 약물이 다 떨어졌기 때문에 오늘 병원에 가서 공황 장애 약물의 처방을 받고 나서 공황 장애 약물을 사 가지고 치료실에 왔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월요일 치료 회기는 치료 회기 도중에 E양이 공황 장애 약물을 복용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지금까지 약 44시간의 치료에서( 6개월 기간) 한번도 치료 회기 시간에 약물을 복용한 적은 첫 치료 회기 시간을 제외하면 한번도 없었다.

 치료자는 그 순간에 치료 회기 시간에 치료자가 E양에게 강압과 분노가 흘러간 것을 직감을 했다. 월요일 아침 치료 회기 시간에 Y군이 연락도 없이 결석을 한 것과 휴대폰이 꺼져 있고 Y군의 어머니와 통화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오전에 불안감이 치료자의 내면 속에 있었고 이것이 E양의 감정을 대신해서 E양에게 감정을 표현하게 되면서 E양 한데로 흘러간 것을 알 수 있었다.

 E양은 이미 치료자의 목소리가 크지고 강압이 들어가게 되면 E양의 어머니가 E양에게 하는 것처럼 E양의 공황 공격이 올라가서 시작된다는 것은 이미 이전의 치료 회기에서 다루었기 때문에 잘 알고 있었지만 그 순간에 치료자가 깜빡할 것을 알 게 되었으나 이미 E양은 공황이 올라오는 것을 느끼고 약물을 복용하고 치료실을 나가서 그녀의 모닝 승용차에서 30분간 누워있게 된 것이었다.

 치료자는 치료 회기를 정리를 하면서 E양에게 오늘 공황이 올라와서 위기를 느끼고 약물을 복용하고 승용차 안에서 누워 있었던 것은 치료자의 목소리에 분노가 섞에 있고 치료자가 E양에게 화를 내는 것 같은 느낌에 분노해서 공황으로 연결된 것이 아닌가?라고 분석을 했을 때 E양은 그렇다고 시인을 했다. 치료자는 E양에게 사과를 했다. 치료자가 E의 행동을 보고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는 것을 지적을 하면서 치료자가 신이 아니기 때문에 실수를 하는 것이고 그리고 실수를 하는 것이 인간임을 지적을 했다.

 치료자는 E양이 치료자의 목소리에서 강압과 분노를 느꼈고 그 순간에 화가 나서 말로써 그러한 감정들 치료자의 목소리가 커지고 화가 섞여 있어서 치료자 선생님에게 화가 납니다, 왜 나에게 화를 내는지요?"라고 이야기를 하지 않고 치료자에 대한 분노를 행동으로 표현을 한 것을 지적을 했다. 치료자를 처벌한 것이었다. 치료자는 약물 복용을 하지 말고 자아의 힘으로 위기를 대응해 나가야 한다고 늘 강조를 해 왔다. 그런데 E양이 분노해서 순간적으로 치료자의 제일 큰 약점을 강타를 한 것이었다. 치료자를 정면으로 공격을 해서 치료자에게 치명타를 가한 것이었다. 치료자 앞에서 공황 장애 약물을 복용하고 승용차 안에 들어가서 30분 동안 안정을 취한 E양의 행동은 치료자를 정면으로 치명타를 가한 것이 아닌가! 치료자에게 화가 나서 치료자를 모욕하고 망신을 준 것이었다. 그 결과 E양은 치료자에게 복수를 한 것이었다. 치료자에게 화가 나서 치료자에게 행동으로 복수를 한 것이 아닌가! 이러한 분석은 이후에 상세하게 다루기로 하고 이 치료 회기 시간에는 거론을 하지 않았다.

 그 대신에 치료자는 E양에게 "중요한 것은 E양이 치료자 한데 짜증, , 분노, 미움 등의 부정적인 감정을 치료자의 눈치, 비위를 맞추려고 하지 말고 마음대로 표현을 할 수 있어야 하고 앞으로는 치료자에 대한 E양의 감정들을 마음대로 표현할 수 있도록 훈련을 받아야 함"을 강조를 했다.

목요일 치료 회기

 목요일 치료 회기 시간에 E양은 기분이 좋아져 있었다. 월요일 치료 회기 이후에 M씨가 연락이 와서 E양의 남동생에게 사업권을 물러 주려고 하니 충청도에 있는 xx 로 내려 오라는 문자 메시지를 받고 나서 E양은 M씨 한데로 약 2시간 동안 승용차를 몰고 갔고 그리고 M씨와 함께 하루 밤을 보내고 그 다음 날에 다시 각자의 승용차로 M씨가 선두로 오고 그리고 E양이 뒤따라 오면서 E양이 거주하고 있는 서울로 다시 약 2시간을 운전을 해서 서울로 왔다. 목적은 M씨의 친구를 만나서 E양의 남동생에게 M씨가 사업 권을 물러 주겠다고 약속을 한 것 때문에 M씨의 친구를 만나서 E양의 남동생을 위해서 사업권 이전을 설득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E양은 M씨가 남동생을 위해서 노력을 하는 것을 보고 M씨에게 다시 좋은 감정을 가지게 되었다고 했다. M씨는 남동생을 도와주려고 하는 것은 E양 때문이라고 강조를 했다.고로 M씨가 E양을 사랑하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에 다시 M씨와 관계를 재개 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E양과 M씨가 M씨의 친구를 만나면서 E양을 소개를 할 때 충청도에서 같이 올라왔다는 말 대신에 서울의 E양의 거주지에서 E양을 만나서 함께 왔다는 거짓말을 M씨가 친구에게 하는 말을 듣고 이후에 M씨에게 왜 거짓말을 했느냐?라고 따졌고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겨서 M씨가 E양에게 화를 냈는데 M씨가 삐져서 말을 하지 않고 무반응으로 대응하는 것을 보고 E양이 치료자 한데서 배운 M씨의 성격 스타일을 이야기를 해 주었다. M씨는 화가 나면 말로써 표현을 하지 않고 행동으로 표현을 해서 과거에 갈등이 생길 때는 서로 관계가 끝어지고 단절된 것을 지적을 하면서 E양은 심리 치료사에게 심리치료를 받아서 이제는 과거의 E양이 아니고 지금은 공황 약물을 일주일 동안 거의 복용을 하지 않고 이제는 많이 회복이 되었고 그리고 앞으로 대인관계 특별히 M씨와 관계에서는 E양이 과거처럼 행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를 하자 M씨와 다시 이야기가 제개 되었다고 했다. E양은 과거에는 삐져서 말을 하지 않고 결별로 대응을 했는데 이번에는 기죽지 않고 M씨에게 따지고 하고 싶은 말들을 망설이지 않고 다 했고 그 결과 M씨와 갈등을 깨끗하게 해소되어져서 기분이 좋았고 서로 좋은 관계로 해어졌다고 했다.

 E양은 치료자 한에서 치료실에서 배운 것을 M씨에게 그대로 적용을 해 본 결과 과거에 M씨와 갈등 관계로 관계 단절로 이어졌던 것들이 M씨의 눈치를 보지 않고 E양의 감정을 마음대로 표현을 했고 그리고 하고 싶은 말들을 과감하게 다 한 결과는 오히려 갈등들이 해결되고 서로 좋은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을 실감을 했다고 털어 놓았다.

 어머니 혹은 남동생 뿐만 아니라 친한 친구들 그리고 치료자 선생님 한데도 눈치 보지 말고 분노, 짜증, 미움 등을 마음대로 표현할 수 있어야 신체적 긴장이 쌓이지 않고 약물로 신체적 긴장을 다루어왔던 E양의 행동에 변화가 올 것임을 지적을 했다. 치료자는 E양의 자아가 많이 자라서 이제는 상대방의 눈치, 비위를 맞추려고 하지 않고 자신감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칭찬을 해 주었다.

 E양은 치료자와 치료 회기가 끝나면 M씨와 골프를 함께 치자라는 약속을 했다고 기뻐 하면서 특별히 오늘 치료 회기는 E양이 마음대로 말을 치료자에게 많이 했기 때문에 공황이 올라오지 않는 것 같다고 기분 좋게 치료실 문을 나갔다.

https://blog.naver.com/psychclinic/221467743925